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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eesiwoo.net &#187; 미학 자료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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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기다림이 간절한 자는 먼 곳을 본다.  평화가 간절한 자는 유라시아를 본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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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복합문화축제 ‘국가란 무엇인가?&#82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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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2 May 2017 12:16:42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미학 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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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복합문화축제 ‘국가란 무엇인가?’ &#124; 문화 전시, 공연, 영화로 시대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국가란 무엇인가?’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7-05-19 00:02:24 수정 2017-05-19 00:02:24 이 기사는 25번 공유됐습니다 난곡 이야기 전시장 전경 난곡 이야기 전시장 전경ⓒ복합문화공간 에무 국가란 무엇인가? 인기를 모았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복합문화축제 ‘국가란 무엇인가?’ | 문화 </p>
<p>전시, 공연, 영화로 시대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국가란 무엇인가?’</p>
<p>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p>
<p>발행 2017-05-19 00:02:24 </p>
<p>수정 2017-05-19 00:02:24 </p>
<p>이 기사는 25번 공유됐습니다 </p>
<p> 난곡 이야기 전시장 전경  </p>
<p>난곡 이야기 전시장 전경ⓒ복합문화공간 에무</p>
<p>국가란 무엇인가? 인기를 모았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듯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라가고, 살아간다.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국가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웬지 어색하다. 국가에 의문을 나타내는 건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의 역사와 맞물리면 ‘반역’의 신호로 읽히기도 한다. 국가를 당연시하고 살아왔지만 우리가 마주한 근현대사의 사건들은 과연 국가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의문을 갖게 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국가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더욱 증폭시켰다. 대선을 앞둔 지난 5월초부터 서울 종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선 이런 질문과 관련한 고민이 담긴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영화, 공연, 전시, 심포지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에 접근하는 복합문화축제 ‘국가란 무엇인가’가 펼쳐지고 있다.</p>
<p>이번 행사는 ‘현재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람객과 함께 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나가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국가란 무엇인가’ 영화 기획전은 한국 다큐멘터리, 한국극영화, 외국 극영화 등을 통해 청산돼야 할 역사의 반복을 시민의 시각에서 다시 보며, 새로운 역사를, 국가를 상상해보기 위한 자리다. 지난 5월7일부터 매주 일요일 관련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광주항쟁을 다룬 ‘오월애’ 등 국내다큐멘타리,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 국내 극영화 상영이 이어졌다. 25일 마지막 순서로 외국 극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이날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알제리 전투’ 등 영화가 상영된다.</p>
<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7/05/18062616_111-290x290.jpg" alt="" title="18062616_111" width="290" height="290" class="aligncenter size-thumbnail wp-image-7695" /><br />
 김영종,(무제), 107x137cm, analog bw handmade print, 2004_1  </p>
<p>김영종,(무제), 107x137cm, analog bw handmade print, 2004_1ⓒ복합문화공간 에무</p>
<p>‘국가란 무엇인가’를 주제로한 전시도 열린다.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선 김영종 작가의 ‘난곡이야기’와 전성권 작가의 영상 ‘거미의 침’을 만날 수 있다. 김영종 작가의 ‘난곡이야기’는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난곡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04년 발표한 작품을 다시 끄집어내놓은 것이다. 작가 김영종은 농촌을 떠나 달동네에 들어온 수많은 빈민들이 다시 쫓겨나는 이중의 축출을 ‘난곡’의 철거현장에서 사진으로 담았다.</p>
<p>‘난곡이야기’에서 작가가 자의적으로 구성한, 사태의 발생적 원인은 ‘개발 신화’이며 신화와 축출의 ‘재통합’이며 ‘가난의 공모’다. 객관적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흔히 보이는 폐허미(美)나 향수는 원인을 은폐하려는, 이것들의 유혹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사진 전시와 별개로 출판된 ‘난곡이야기’는 ‘사진+소설’ 형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 전시장에선 이 책도 만날 수 있다.</p>
<p>전성권 작가의 12분 분량의 영상 작품인 ‘거미의 침’은 1970년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영상들이 담겨 있다. 아폴로 13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의 장례식,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아르헨티나의 후안페론의 죽음과 자유를 부르짖는 군중들의 행렬, 1968년 파월3주년 위문공연 필름, 1972년 서울시민회관 대화재 등 1970년대와 국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다.</p>
<p> 전성권,거미의 침(work-in-progress)싱글SD비디오, 12분 40초, 2016_2  </p>
<p>전성권,거미의 침(work-in-progress)싱글SD비디오, 12분 40초, 2016_2ⓒ복합문화공간 에무</p>
<p>25일에는 미술평론가 성완경, 역사학자 한홍구, 사진작가 이시우 등이 참석해 ‘이미지의 공모와 기억, 그리고 재현과 표현의 차이-영상을 통해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린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은 ‘혁명을 그릴것인가, 그림을 혁명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하고, 역사학자 한홍구는 ‘국가폭력과 트라우마-다시,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를, 작가 김영종은 ‘난곡이야기:다큐멘터리 사진 이미지의 진실에 대한 모색’을, 사진작가 이시우는 ‘국가와 항쟁’을, 작가 전성권은 ‘거미의 침’ 작업과정을 공유할 예정이다.</p>
<p>전시와 행사는 오는 28일까지 계속된다. 관련 문의는 복합문화공간 에무(02-730-5514, http://www.emu.or.kr)</p>
<p>http://www.vop.co.kr/A00001160547.htm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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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동 원문 2001/11/16  59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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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6 Jan 2013 11:21:10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미학 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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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動動 德으란 곰　예 받　고 福으란 림　예 받　고 德이여 福이라 호　 나　라 오소　다 아으 動動다리 正月ㅅ 나릿 므른 아으 어져 녹져 논　 누릿 가온　 나곤 몸하 올로 녈셔 아으 動動다리 二月ㅅ 보로매 아으 노피 현 燈ㅅ블 다호라 萬人 비취실 즈　샷다 三月...]]></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動動</p>
<p>德으란 곰　예 받　고<br />
福으란 림　예 받　고<br />
德이여 福이라 호　<br />
나　라 오소　다<br />
아으 動動다리</p>
<p>正月ㅅ 나릿 므른 아으<br />
어져 녹져 논　<br />
누릿 가온　 나곤<br />
몸하 올로 녈셔<br />
아으 動動다리</p>
<p>二月ㅅ 보로매 아으<br />
노피 현 燈ㅅ블 다호라<br />
萬人 비취실 즈　샷다</p>
<p>三月 나며 開 아으<br />
滿春 　욋고지여<br />
　　 브롤 즈　<br />
디녀 나샷다<br />
아으 動動다리</p>
<p>四月 아니 니저 아으<br />
오실셔 곳고리새여<br />
므슴다 錄事니　<br />
녯나　 닛고신뎌<br />
아으 動動다리</p>
<p>五月 五日애 아으<br />
수릿날 아　 藥은<br />
즈믄 　 長存샬<br />
藥이라 받　노　다<br />
아으 動動다리</p>
<p>六月ㅅ 보로매 아으<br />
별해 　룐 빗다호라<br />
도라 보실 니믈<br />
젹곰 좃니노　다<br />
아으 動動다리</p>
<p>七月ㅅ 보로매 아으<br />
百種 排보야 두고<br />
니믈 　 녀가져<br />
願로을 비　노　다<br />
아으 動動다리</p>
<p>八月ㅅ 보로　 아으<br />
嘉俳나리마　<br />
니믈 뫼셔 녀곤<br />
오　　 嘉俳샷다<br />
아으 動動다리</p>
<p>九月 九日애 아으<br />
藥이라 먹논 黃花<br />
고지 안해 드니<br />
새셔 가만얘라<br />
아으 動動다리</p>
<p>十月애 아으<br />
져미연 　　다호라<br />
것거 　리신 後에<br />
디니실 부니 업스샷다<br />
아으 動動다리</p>
<p>十一月ㅅ 봉당 자리예<br />
아으 汗衫 두퍼 누워<br />
슬　　라온뎌<br />
고우닐 스싀옴 녈셔<br />
아으 動動다리</p>
<p>十二月ㅅ 분디남　로 갓곤<br />
아으 나　盤　 져다호라<br />
니믜 알　 드러 얼이노니<br />
소니 가재다 므　　노이다<br />
아으 動動다리</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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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령과의 싸움-유엔사, 김현아 나와우리2005/06/12  8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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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42:41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미학 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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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유령과의 싸움 작성자 : 현 아 2005-04-13 조회 655 2004년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삼보일배와 단식이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세걸음에 한번씩 절을 하며 올라온 문규현신부와 수경스님,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45일간 단식을 한 지율스님.(지율스님은 90일이 넘는 단식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 몸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2/12/untitled1.bm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2/12/untitled1.bmp" alt="" title="untitled"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99" /></a><br />
유령과의 싸움<br />
작성자 : 현 아  2005-04-13 조회 655 </p>
<p>2004년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삼보일배와 단식이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세걸음에 한번씩 절을 하며 올라온 문규현신부와 수경스님,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45일간 단식을 한 지율스님.(지율스님은 90일이 넘는 단식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 몸은 사의 영역에 있고 정신만 생의 영역에 있다고 그를 진단한 한의사는 말했다.)<br />
소통과 교류와 합의를 위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목숨을 건 단식을 필요로 하고 늙은 성직자들의 무릎에 피가 흘러야 하는 것일까.<br />
이런 와중에 진행된 한 ‘건장한 남자’의 ‘걷기 명상’은 세상의 큰주목을 받지 못했다.<br />
유엔사 해체를 위한 이시우의 걷기명상.<br />
이슈도 생뚱맞았다. 주한미군철수도 아니고 통일도 아니고 유엔사 해체라니.<br />
그래서였을까, 나와우리에 와서 강의도 하고 민통선평화기행 진행도 해준 이시우선생이 고성에서 부산까지,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 걷고 또 걷는 이유를 나 역시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유엔사가 왜 해체되어야 하는지, 아니 그 이전에 유엔사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촛불집회니 총선이니 이라크파병이니 눈앞에 닥쳐오는 문제들을 바라보기에도 버거웠다. 정말이지 이 땅은 잠시도 한 개인이 온전히 사적인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며 신문과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기웃거렸다. 짬짬이 그의 걷기명상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메일이 개인편지함에 도착하곤 했다. </p>
<p>올초 우연히 이시우선생을 목동에서 만났다. 정릉에 사는 나와 강화도에 사는 이시우선생이 우연히 만나기에 목동은 좋은 장소다. 우연히 만나 같이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우연히 혜화동까지 지하철을 함께 타고 왔다. 목동에서 혜화동까지는 우연히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그 30여분의 시간은 유엔사 이야기의 꼬리를 슬쩍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거대한 지하철의 소음에 파묻히려는 그의 낮은 목소리를 잡아내기 위해선 온신경을 집중해야 했지만, 그래서 웬만하면 건성으로 듣는 척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유엔사 이야기는 너무 황당하고 엽기적이었다. 뱀파이어나 마녀의 이야기라면 밤이 깊어 은하가 삼경이어도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은하철도999와 혹성탈출이라면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은 개인적 취향에 유엔사 이야기는 딱 제격이었다고나 할까. 안개가 흐르는 밤에 듣는, 음습하긴 하지만 간을 졸이게 하는 유령이야기. </p>
<p>지하철의 소음에서 건진 유엔사에 대한 단편1<br />
옛날도 멀지 않은 옛날, 1950년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한국의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왜 그들은 한국의 전쟁에 개입하려 했을까, 유엔에서는 안보리를 열고 참전을 결의한다. 하여 16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이 탄생한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정부의 군통수권을 유엔군사령관인 맥아더에게 넘긴다. 맥아더는 난처하다. 왜냐면 군통수권을 넘겨받으면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승만은 군통수권과 작전지휘권을 혼동하여 군통수권을 넘긴 것이고 군통수권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이니까 이걸 받으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실로 맥아더는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맥아더는 “프레지던트 리, 나는 군지휘권만 받겠소” 라고 하여 대한민국은 국가 이래 최초의 미국인 대통령을 맞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br />
어쨌든 그 날 이후 한국의 군통수권은 유엔군에 넘어가게 되었고 1978년까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유엔사에 있었다. 유엔사라 함은 유엔군 사령부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국민학교 때 배웠던대로 한국전쟁을 도우러(?) 온 16개국 참전국가들의 연합체인 것이다. 그런데 유엔사령부는 미군 합참의장의 지휘하에 있다.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의 지위가 일개 국가인 미군의 지위보다 낮은 것이다.<br />
게다가 16개국 중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은 1967년 태국을 마지막으로 모두 철수했다. 그러므로 유엔사령부란 그야말로 허울만 남은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되자 다시 필리핀, 태국, 이디오피아 등 당시 참전국들에게 연락하여 연락장교 한 사람씩을 용산기지로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현재 유엔사는 유엔군 15명과 나머지 미군으로 구성된 엽기부대인 셈이다. 유엔군이 하는 일은 아침 저녁으로 유엔기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다.<br />
어쨌든 이 엽기군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어 1975년 유엔에서는 유엔사 해체결의가 있었다. 당시 헨리 키신저는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br />
대신 1978년 한미연합사가 만들어지면서 작전통제권은 유엔사령부에서 한미연합사로 넘어가게 된다. 미국 역시 언젠가는 해체될지도 모를 유엔사보다는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작전통제권을 가지는 것이 한반도에서 미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한미연합사령부를 다시 만든 것이다.</p>
<p>그렇다면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의 차이는 뭘까?<br />
한 가지만 말한다면 이런 거다.<br />
만약에, 정말이지 만약에 한반도에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유엔사는 한국 대통령과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과 미국의 협약 아래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는 당연히 한국의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한반도 전쟁 사실을 통보 혹은 사전에 말해야 하지만 유엔사령부의 사령관은 말할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1994년 당시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3가지 중 한 문서에 클린턴이 싸인을 했을 때도 한국의 대통령은 몰랐다. 내 운명은 태국, 필리핀, 이디오피아를 비롯한 15개국의 연락장교와 미군의 손에 있는 것이다. </p>
<p>나는 이 유령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와우리의 멋진 새 집으로 그를 초대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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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풍 오는 일요일 새벽, 동쪽으로 떠난 이시우2004/12/02  133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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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38:02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미학 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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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시우씨가 먼길을 떠나기 전, 덕담을 건넬 생각에 그와 자리에 앉았다. 태풍 오는 일요일 새벽, 동쪽으로 떠난 이시우&#8230; 반쪽이 > 대형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길 위로 그는 홀로 떠나고 있었다. 6월 19일.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이시우씨로부터 메일이 한 통 들어와 있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2/12/67_22116817612284231088283465015.jpg"><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2/12/67_22116817612284231088283465015.jpg" alt="" title="67_22116817612284231088283465015" width="1280" height="960"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2096" /></a><br />
이시우씨가 먼길을 떠나기 전, 덕담을 건넬 생각에 그와 자리에 앉았다. </p>
<p>태풍 오는 일요일 새벽, 동쪽으로 떠난 이시우&#8230;<br />
반쪽이 > 대형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길 위로 그는 홀로 떠나고 있었다.  </p>
<p><3000km 릴레이 리포트1 - 이시우가 동쪽으로 떠나는 이유> </p>
<p>6월 19일.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이시우씨로부터 메일이 한 통 들어와 있었다.<br />
“유엔사해체에 대한 걷기 명상을 6월20일부터 시작합니다.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유엔사후방기지가 있는 일본까지 걷게 됩니다. 6월 20일 강화도 집을 출발하여 휴전선을 따라 강원도 고성까지 걷고, 다시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걷습니다.<br />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사세보기지 까지 갑니다. 도쿄에 있는 3개의 유엔사기지와 사세보기지를 방문합니다. 사세보에서 오끼나와로 건너가 나머지 3개의 유엔사기지를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 별일이 없다면 9월경엔 다시 강화도로 돌아올 것 입니다.”<br />
동행자 없이 3000km를 혼자 걷는다? 그는 독하디 독한 &#8216;獨行&#8217;을 결행하고 있었다.<br />
그가 떠나는 새벽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p>
<p>그는 오랜동안 DMZ를 품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아픔의 땅을 걷고 또 걸으며 기록하고 또 기록해왔다. 지난해 그 기록을 모아 <민통선, 평화기행(창작과비평사)>을 내놓았다.<br />
그는 길을 나섰다가 돌아올때마다 이 땅에 상존하는 음습한 전쟁의 그림자와 알알한 상채기들을 꺼내놓고 사람들에게 낮은 소리로 전한다. “평화는 아름답다. 평화는 힘이 세다”고, “전쟁 억지력의 으뜸은 평화”라고. 그의 귀가길마다의 발뒤꿈치에 매달린 여럿의 사진전이 그것이다.<br />
지난해 그와 그의 동료들이 국회에 발의했던 ‘대인지뢰제거와 피해보상특별법’ 제정 노력 또한 그것이다.  </p>
<p>이시우, 그가 또 들메끈을 단단히 죄고 한낱 바람이 되어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유엔사 재조정(해체)을 촉구하는 명상걷기다. 그는 최근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과 주한미군의 재배치’란 이 땅에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 폭풍우의 끝자락을 물고 들어올 변화와 위험을 그의 직관이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고민이 많아졌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되묻던 그다. 그리고 3000km가 넘는 머나먼길을 바람처럼 걷기로 했다.<br />
그리고 함께 걸을 사람들을 길 위에서 만나기로 작정한다. </p>
<p>“&#8230;바람처럼 걷기로 했다. 강화를 떠나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는 휴전선을 따라 고성까지걷고, 거기서 다시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가서 일본의 사세보기지로 건너가 거기서부터 동경까지 걸어 요코스카, 자마, 요코다 3개의 유엔사 기지를 돌고, 오끼나와로 내려가 카데나 후템마 화이트비치 기지를 걸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유엔사본부가 있는 용산기지까지&#8230; 3000킬로가 넘는 거리이다. 서울과 부산을 7번 넘게 오갈 정도의 거리이다.  </p>
<p>간단치 않았다. 몇일동안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역시 반대보다 더한 것은 무관심이다. 나는 절대 무엇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거나 준비없이 추진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 일은 왠지 급하다. 오랫동안 미군을 관찰해오면서 얻어진 직감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몇일 고민하는 사이 나는 또 밤길 바람앞에 서 있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우고 간다. 자신을 알아달라고 매달리지 않고 홀연히 와서는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그렇다 그것이 바람결이다. 바람과 함께 나는 다시 결심할 수 있었다. </p>
<p>6월 20일경 나는 강화 집을 출발한다. 별일이 없다면 가을이 되어서야 다시 이집에 돌아올 것이다&#8230;“ </p>
<p>그가 떠난 6월 20일 새벽 5시 25분, 강화도 양도면 도장리에서 우리 일행은 이시우씨를 배웅했다. 그의 배낭 위로 화선지와 같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까만 먹물이 뭉클 번지고 있었다. 대형 태풍인 ‘디앤무’가 올라오고 있는 길 위로 이시우는 홀로 떠나고 있었다. </p>
<p>6월 20일 반쪽이(이 글은 같은 날 올린 &#8216;이시우가 동쪽으로 떠난 이유-1&#8242;의 일부 입니다.) </p>
<p>http://www.peacedmz.ne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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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시우의 이야기 덫에 걸린 반쪽이의 &#8216;DMZ짝사랑&#8217;2004/12/02  166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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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33:45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미학 자료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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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시우는 사색을 통해 정리된 것을 실천에 옮긴다. 자기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고, 자기 발로 목적지를 향한다. 그러나 그가 부르는 평화의 노래는 아직 ’독창‘이다. 예의 낮은 목소리 탓일까? 그의 메시지를 사람들은 흘려 듣고있다. (사진=이시우) 이시우의 이야기 덫에 걸린 반쪽이의 &#8216;DMZ짝사랑&#8217;&#8230; 반쪽이> 이시우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이시우는 사색을 통해 정리된 것을 실천에 옮긴다. 자기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고,<br />
자기 발로 목적지를 향한다. 그러나 그가 부르는 평화의 노래는 아직 ’독창‘이다.<br />
예의 낮은 목소리 탓일까? 그의 메시지를 사람들은 흘려 듣고있다. (사진=이시우) </p>
<p>이시우의 이야기 덫에 걸린 반쪽이의 &#8216;DMZ짝사랑&#8217;&#8230;<br />
반쪽이> 이시우의 獨唱 그리고 絶唱  </p>
<p>일요일 새벽 2시, 이시우를 만나러 강화도로 가며 떠오른<br />
&#8216;DMZ짝사랑&#8217; </p>
<p>이시우는 왜 낮은 목소리로 거푸 ‘신호’를 전하는가?,<br />
그에게 이 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장터이기 때문이다. 원치않은 전쟁이 멈추어 섰을 뿐이다. 50여 년 세월은 사람들의 귓전에서 포성을 멀리 흘려보냈다.  </p>
<p>하지만 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오감의 작동은 멈추어 서지 않았다. 그의 감각세포가 남보다 예민한, 생물학적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현장’을 많이 만져온 사람만이 헤아릴 수 있는 직관으로 늘 깨어있다. 또 그 직관을 뒤잇는 확인작업으로 그의 수족은 늘 분주하다.  </p>
<p>이시우 사진작품의 공간공포 속으로&#8230; </p>
<p>지난 1년 여 동안 여러번 그의 사진을 접하면서 설핏 공간공포를 느꼈다. 새벽안개 내리는 강화도 바닷가의 바이올릿공간의 공포, 팥죽색 녹이 슨 철마 주변 들녘에 깔린 녹색공간의 공포, 철새 몇 마리의 자유비행을 무심한 양 점점이 찍어 담은 비무장지대 파란색 하늘의 공포를&#8230; </p>
<p>그러나 이시우와 대화 하면서, 그가 담아낸 비무장지대라는 영구할 것만 같은 부동적 실존의 절대공간 속을 서두르지 않고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 절대공간 속에 켜켜이 쌓아올리며 장치해 놓은 이야기의 덫에 걸리게 되었다.  </p>
<p>이제 그의 사진작품 속의 공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 공간엔 해리포터보다, 반지의 제왕보다 더한 판타지와 어드벤쳐로 꽉 채워져 있음을 느낀다.  </p>
<p>요즘들어 틈만 나면 자유로를 타고 거슬러 올라간다. DMZ를 짝사랑하게 된 반쪽이의 ‘로맨스그레이’, 못말리는 늦바람을 불러 일으킨 현장사람 가운데 한 명이 이시우다.  </p>
<p>새벽 5시, 출발 전 짧은 덕담과 거친 수채화<br />
“길을 가다보면 사람을 만나겠지요&#8230;” </p>
<p>그가 보따리를 꾸리기 전인 6월 19일(토) 아침, 그의 편지를 읽었다.<br />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는 핸드폰이 없다. 오늘 아니면 그가 날리는 비둘기의 입만 쳐다보아야할 터. 서영준 화백에게 전화를 했다.<br />
“홀로 떠나는 그에게 막걸리 한 사발과 안주로 덕담을 건네고파”. “날자와 독존이를 데리고 가지요”. 빗길을 달려간 일요일 새벽, 이시우의 집 앞마당엔 무릎까지 자란 들풀이 어둠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p>
<p>먼 길을 떠나는 그의 얼굴은 여느때보다도 더 평온하고 맑아보였다. 차를 따르는 그의 머리 너머로 까만 먹구름이 일렁이는게 보였다. 태풍 얘기를 꺼내다가 걱정 투의 말은 목구멍으로 되넘겨버렸다.  </p>
<p>“몸이 좋아 보이네요” “네, 그리고 집을 봐줄 사람도 구했어요. 책도 읽고 공부하기는 좋거든요” 그는 긴 시간 동안 집을 비울때면 집을 봐줄 사람을 찾곤한다. 그의 서가엔 통일 관련 서적 외에도 역사, 미학, 노동, 시집과 각종 자료들이 빼곡하다.  </p>
<p>“이 선생, 왜 하필 강화도로 들어왔어요?(필자는 파주를 통일의 앞마당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이 앞으로 중요한 지역이 될 것 같아서요” 그는 앞으로 전개될 통일생태계에서 강화도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회벽이 떨어져 나간 천정을 올려다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p>
<p>그는 요즘 사진 찍는 일에 더하여 공부와 사색에 열심이다. 지금은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통일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준비할 시기이다.  </p>
<p>이시우는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끝자락 쯤에 있다. 그는 미래세대인 통일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이 부여잡을 동앗줄을 잇기위해 매듭을 만들고 있다. 공부와 사색을 통해 그 일을 게으름없이 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듯하지만 오지인 이곳에 또아리를 튼 것이리라.  </p>
<p>“낡았지만 강화도 전통 가옥으로 백년이 넘었나봐요” 그의 집 본채는 경기, 충청, 평안도의 전통적인 농가에서 볼 수 있는 용마루가 기역자로 꺽인 곱은자집(평안도:꺽은집)으로 안방-대청-건넌방이 일자형으로 잇대어 있고 부엌이 안방에 붙어있다.<br />
특이한 것은 건넌방에도 따로 군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고 그 아궁이 위에는 대청을 잇댄 한 자 높이의 층이 진 쪽마루가 붙어 있다.  </p>
<p>사람이 누으면 딱히 좋은 이 격자 유리창이 있는 쪽마루에서 오래전 이집의 주인은 집 앞으로 펼쳐져 있는 들녘의 곡식이 자라는 것을 내다보며 오수를 즐겼음직 하다.<br />
이시우는 이 한 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서 서예를 익히고 있었다. </p>
<p>화선지엔 &#8216;UN司 解体를 위한 명상걷기‘란 예서체의 글이 여럿 보였다. 그가 떠날 때 입고 있었던 하얀 반팔 상의에 쓰여진 글도 그가 쓴 것이리라. 그는 사색을 통해 정리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며 자기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고, 자기 발로 목적지를 향한다. 그래서인가. 이시우가 부르는 평화의 노래는 아직 ’독창‘이다. 예의 낮은 목소리 탓일까? 그의 메시지를 사람들은 흘려 듣는다.  </p>
<p>그러나 이번 그의 獨行은 獨尊이 아니다. “몇일동안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 했다.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p>
<p>“역시 반대보다 더한 것은 무관심이다. 나는 절대 무엇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거나 준비없이 추진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 일은 왠지 급하다.” ‘유엔사 해체’ 문제의 절박함을 인식한 그와 세상과는 아직 비전도 물질이 상존하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전도체가 되기로한 이시우는 길에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p>
<p>“좀 주무시다 가세요” 비오는 새벽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새벽길을 달려온 나그네에게 집을 나서며 던지는 배려다.<br />
성큼 첫걸음을 떼어놓는 그의 높다란 배낭 위에 안녕을 살포시 얹어 놓았다.<br />
집주인을 떠나 보낸 무릎 높이로 자란 앞마당의 들풀이 종아리에 처억 감겨온다.<br />
(글=반쪽이)  </p>
<p>http://www.peacedmz.ne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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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켈리니코스2004/11/15  169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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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27:2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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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Alex Callinicos(&#8216;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8217;의 저자)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초청강연 내용 남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그 투쟁의 규모와 용맹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투쟁이 일어난 이곳에서 연설하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또한 저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돼있는 분들에게...]]></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1세기 자본주의와 맑스주의 </p>
<p>Alex  Callinicos(&#8216;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8217;의 저자) </p>
<p>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초청강연 내용</p>
<p>  남한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그 투쟁의 규모와 용맹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투쟁이 일어난 이곳에서 연설하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또한 저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돼있는 분들에게 연대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대통령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인권상을 받은 나라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 때문에 수감돼 있다니 망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한이 기쁜 일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한국인 민족주의를 고무하고 싶지는 않지만, 남한은 오늘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1990년대 대부분의 기간에 서방 세계인 유럽과 미국에서 남한은 역동적으로 팽창하고 전진하는 경제로,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하는 모범 사례로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IMF 위기 전개 이후인 지난 2년간 남한은 자본주의 경제·사회체제의 모순들을 대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남한이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대표한다는 것이 참말일 것 같습니다.<br />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1990년대의 풍조는, 특히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이 판을 쳤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동구권이 무너진 이래로 득의 만만한 주장은, 서방식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의기양양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인 중심인 미국에서 월가의 주식 시장이 1990년대 동안 전례없는 호황을 누려 왔다는 사실 덕분에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 의기양양은 지난 주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사람이 표현했습니다. 그린스펀은 월가의 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입니다. 지난 주 &#8216;새 천 년 강연&#8217;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8220;자유인들이 자유 시장에서 발휘하는 생산 능력에 대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증거를 우리가 지난 10년가 미국에서 목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8221; 그린스펀은 지난해에는 더 나아간 말도 했습니다. 그는 &#8220;아마도 미국 경제가 역사를 넘어, 그 동안 자신의 성장에 가해져 온 모든 전통적 제약들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8221; 하는 추측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포스터모더니즘이 갑자기 월가에 자리잡기라도 한 양 매우 보수적인 중앙은행 총재가 &#8216;역사를 넘는&#8217; 것에 대해 얘기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순간이었습니다. </p>
<p>그린스펀의 시각, 즉 신자유주의자의 시각에서 보면 아시아 경제의 추락과 IMF위기는 영미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이삼 년 전에 남한 같은 경제들이 위기에 빠진 것은 &#8216;정실 자본주의;&#8217;즉 재벌과 국가 관료들 사이의 부패한 연계들이 판을 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IMF위기는 남한 같은 경제들을 좀더 자유시장 방향으로 구조조정할 기회이자 또한 서구 다국적 기업들이 이런 나라들의 값싼 생산적 자산을 사들일 기회인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이 과정에 저항하는 것은 구제 불능의 반동입니다. 경제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각 국민 국가가 자신의 경제를 통제하던 지나간 과거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묘사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우리가 세계적 규모로 직면하고 있는 쟁점들을 제시하는 방식 치고는 완전히 비생산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화의 반대자들과 지지자들 사이의 불모의 논쟁을 피하려면 칼 마르크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p>
<p>자본주의 모순 </p>
<p>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변증법적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즉,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규정하는 모순들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예컨대<공산주의 선언>에서 매우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원동력, 즉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사회관계들에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인정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를 형성하고 부르주아지가 생산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며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한다고 마르크스가 말했을 때 그는 앤써니 기든스와 여타 세계화론자들을 150년이나 앞질렀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본래부터의 결함들을 파악했습니다. 즉, 노동착취에 바탕을 둔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는 위기로 나아가는 본래부터의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증법적 시각은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프레드릭 제임슨이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그는<공산주의 선언>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8220;우리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인 동시에 최악의 것이라는 점을 이해 할 수 있는 지점으로까지 인식 수준을 어떻게든 높여야 한다.&#8221; 자본주의는 원리상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어지간한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는 지점까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선의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착취, 부당함, 환경파괴, 위기와 전쟁으로 나아가는 경향 따위 때문에 인류가 겪은 최악의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시각이 새 천 년에 들어서는 세계를 인식하는 최상의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p>
<p>그러면, 먼저 세계적 규모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들의 전력을 살펴봅시다. IMF와 세계은행이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 정책들을 전세계에 강요하기 시작한 지 대략 10-15년이 됐습니다. 해마다 UN이 발행하는 <인간 개발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보고서가 서술하는 빈곤과 불평등 때문입니다. 세계 인구 중 최부유층 5분의 1의 소득과 최빈곤층 5분의 1의 소득 격차는 1960년 30대 1에서 1990년대 60대 1로 벌어졌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승리한 1990년대에 불평등은 훨씬 더 커졌습니다. 1997년에 그 비율은 74대 1로 올랐습니다. 1994년과 1998년 사이에만도 세계 최상위 200대 갑부는 재산이 갑절 이상 늘어났습니다. 4천4백억달러에서 1조 4백2십억 달러로 말입니다. 그들 가운데 단지 세 사람, 즉 빌게이츠와 월마트 회장 월튼과 브루나이국왕의 재산이 세계 최빈국 36개국의 소득 합친 것만 합니다. 서구의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 안에서도 똑같이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만 들면, 1973년과 1993년 사이에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실질 임금은 하락했습니다. 1997년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1985년보다 낮았고 최고 수준이었던 1978년 보다는 한참 낮았습니다. </p>
<p>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처지에서 보면 꽤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흔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더 빈곤해질 것이라고 충분한 증거도 없이 우겨댔다는 비판에 맞서 마르크스를 변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부국인 미국에서 실제로 노동자들이 지난 25년간 더 가난해졌음을 봅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빈곤화라고 부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긋지긋하고 증대하는 불평등의 세계에 직면해 불확실성과 다원성을 창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 같은 것은 제게 그저 경박하고 엉뚱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시각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세계적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이러한 현실을 다루어야 합니다. </p>
<p>세계경제 위기 </p>
<p>이러한 현실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장기간에 걸쳐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선진 자본주의의 세 주요 지역을 봅시다. 유렵대륙은 1990년대 동안 경제가 지지부진했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 동안 악성 디플레 위기를 겪었는데, 이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로 어떤 주요 경제도 겪은 적이 없는 최악의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한 바 있는 자본주의적 의기양양의 유일한 객관적 근거는 지난 이삼 년가 경제가 비교적 급성장한 미국입니다. 하지만 이 성장은 월 가 주식 시장 호황에 결정적으로 의존한 것입니다. </p>
<p>이 호황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서양식 정실 자본주의의 사례라는 것입니다. 1년 전, 금융시장에 거액의 투기를 한 롱텀 캐피틀 매니지먼트(LTCM)라는 투기성단기자금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투기 금액이 하도 거액이어서 그 회사의 붕괴는 서구 금융 체제를 파멸시킬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LTCM을 구하러 개입했습니다. 그 투기성 단기자금 회사의 대표이사가 전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고위 임원이었다는 사실과 월 가 은행들이 그 회사를 투기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면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정실자본주의가 아시아의 현상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 하라고 하십시오. 세계 모든 곳에서 자본가들은 서로 속이고 또 서로 뒤를 돌보아 줍니다. </p>
<p>미국 주식시장 호황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계급 사람들은 사치 소비재에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식시장에 돈을 투자했고, 주각가 올랐고, 더 부유해졌다고 느꼈고, 그래서 돈을 더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에, 또 실제로 세계 경제에 유리한 일인데, 왜냐하면 소비 증대가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가가 계속해서 급상승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가는 결국 주식을 발행한 기업들의 이윤에 근거하므로 궁극적으로 주가는 이윤율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초에 시작된 현시기 경제 위기를 일으킨 것은 바로 주요 경제들의 이윤율, 즉 투자수익률의 대폭 하락이었습니다. 근래에 미국의 이윤이 회복된 것은 주로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식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한 덕분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의 이윤율은 현시기 경제 위기가 시작된 1970년대 초보다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식 시장이 근저의 비교적 낮은 이윤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무한정 상승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만간 월 가 주쇼螢 시장은 추락할 것입니다. 비록 이 일이 정확시 언제 일어날 것인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p>
<p>지난 주에 IMF는 그들이 &#8220;월 가의 중대한 조정국면&#8221;이라고 부른 증시 대폭락의 가능성이 지난 한 해 동안 급증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주식 시장 추락의 충격은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미칠 것입니다.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가 지난해 아시아의 경제추락과 금융 공황을 겪는 동안 세계 경제를 지탱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소비 지출은 나머지 세계로부터 미국의 수입을 흡수하는 데 일조했고, 그럼으로써 다른 경제들을 가라앉지 않게 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한 경제학자 말마따나 미국은 세계 전체를 위한 최후 수단으로서 소비자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월 가가 추락한다면 이 과정은 역전될 것입니다. 자기의 주가가 떨어진 중간계급 가구들은 가난해졌다고 느끼고는 돈을 덜 쓸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경제와 십중팔구 세계 경제를 경기 후퇴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 초 이래로 세계 경제가 겪는 네 번째 세계적 불황이 될 것입니다. 단지 마르크스주의자들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의기양양의 분위기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적 경기 후퇴라는 전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결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p>
<p>사회민주주의의 해결책 </p>
<p>지금까지 저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의기양양이 합리적 근거가 없음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잘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해결책은 뭘까요? 지금 유럽은 사회민주주의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최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전통은 자본주의를 개혁하고자 한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남한에서 이 전통은 지금 민주노동당이라는 형태로 계승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2차세계대전 이래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시장에 대한 케인즈적 국가 개입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하려 해왔습니다. 바탕에 깔린 생각은 시장이 스스로는 잘 돌아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시장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 생각은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의 이른바 &#8216;이해당사자 자본주의&#8217;가 미국 같은 나라의 자본주의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사회적인 버전(변형)을 대표한다는 생각과 결부되곤 합니다. </p>
<p>이런 시각에 대해 첫 번째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원천에 대한 피상적인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케인즈주의자들은 문제가 금융시장의 불안정과 불합리함에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시장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만사형통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대한 선구적 분석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근원은 생산관계 자체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그의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으로 표현됐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은 자본가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로 경쟁하는 자본주의 기업은 각각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키려고 투자를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윤 추구적 투장 행위들의 종합적인 효과는 체제 전체의 세계적인, 즉 일반적인 이윤율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자본가가 행하는 합리적 행위인 개별 이윤 증대 노력은 세계적으로 비합리적인 효과인 전반적 이윤율의 저하라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이윤율저하 경향이야말로 자본주의가 흔히 겪곤 하는 위기의 숨은 원인인 것입니다. 이 위기는 실수나 우연 또는 잘못된 정책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러한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작용 안에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p>
<p>제가 논의하고 있는 전략의 수립자인 케인즈 자신은 실제로 이러한 현실을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8216;자본의 한계효율&#8217; 저하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 개념은 이윤율과 얼추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그가 &#8216;투자의 다소 포괄적인 사회화&#8217;라고 부르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달리 말해, 그는 사회가 자본가들한테서 투자에 대한 통제력을 압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회의 생산적 자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지배력을 그들로부터 박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혁명을 뜻합니다. </p>
<p>사회민주주의자들은 케인즈 분석의 논리에 두려움을 느껴 뒷걸음질을 칩니다. 그들은 차라리 자본주의를 조절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처 방식의 난점들은 독일의 최근 경험이 보여주었습니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경제적 중심입니다. 1년 전, 독일은 연방 선거를 통해 16년간의 우파 지배가 끝났습니다.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인 &#8216;적록연정&#8217; 이 성립됐습니다. 적록정부의 선출은 이전 우파 정부가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거부을 뜻했습니다. 이것은 정부에서 라퐁텡이 한 역할에 반영됐습니다. 사회민주당 당수인 라퐁텐은 새 정부의 재무장관에 임명됐습니다. 그는 사회민주당내 좌파계 인사이고, 골수 케인즈주의자이며, <세계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책의 지은이입니다. 재무장관에 임명되자마자 그는 유럽 중앙은행에 반대하는 공세를 폈습니다. 그는 경기 부양과 대량실업 완화를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빈곤층에서 부유층으로 조세 부담을 이동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 대기업들은 무지무지하게 격노했습니다. 매스 미디어는 라퐁텐을 악마처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선도적인 우파 신문은 1면톱으로 상단에 크게 라퐁텐 사진을 싣고는 헤드라인을 이렇게 달았습니다. &#8220;이 사람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인가?&#8221; 독일의 손꼽히는 기업들은 라퐁텐의 세법개정안이 실행된다면 본사를 독일 밖으로 옮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일단의 손꼽히는 산업체와 은행 경영자들이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드에게 압력을 넣는 공작을 했습니다. 올해 3월초에 그들의 운동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라퐁텐은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패퇴에 이어 적록 정부의 급속한 우경화가 뒤따랐습니다. 라퐁텐이 사임한지 겨우 몇 주 안에 나토가 유고슬라비아에 대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독일 외무장관은 요슈카 피셔라는 사람인데, 그는 녹색당 당수로, 전에 혁명가였고 노련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토의 발칸 전쟁을 앞장서서 옹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겨우 몇 주 안에 슈뢰더는 일연의 신자유주의적 삭감 정책들을 발표했습니다. 이 일괄 정책들의 골자는 부유층에게는 법인세를 삭감하고 빈곤층에게는 연금을 삭감하는 것이었습니다. </p>
<p>라퐁텐 사건은 두가지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 그 사건은 자기네가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제거할 수 있는 순전한 자본의 권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라퐁텐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이고 그것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선거로 뽑히지 둽은 기업인들에 의해 직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국민이 투표하지만 기업가들이 결정합니다. </p>
<p>둘째, 라퐁텐 사건은 자본이 자신의 활동에 대한 국민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신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전체적인 시야를 갖고 이 두 번째 요점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의 정도를 크게 과장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국적 자본들을 마치 영화<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외계 우주선처럼 그립니다. 그 외계 우주선은 지구 위의 허공을 떠돌아 다니면서 파괴적인 광선을 아래로 세차게 퍼붓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본은 국가적 정박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자기네 국민 국가의 후원에 계속 의지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1년 전에 금융 시장이 심각한 공황에 사로잡혔을 때 상황을 진정시켰던 것은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EDUXK 중앙은행들이라는 형태의 국가였던 것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여타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대폭 인하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심시켰습니다. 자유로이 움직이는 금융 시장조차 국가의 후원에 기대고 있습니다. </p>
<p>그럼에도 지난 한 세대 동안 자본주의는 더욱 세계적으로 통합됐습니다. 이것은 수입억 달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금융시장 차원에 가장 잘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제조업 제품 수출이 미래를 결정하는 대부분의 경제의 국제 무역 차원에도 들어 맞는 말입니다. 그것은 갈수록 다국적 기업에 의해 국경을 가로질러 조직되고 있는 생산의 차원에도 들어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자신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국민 국가의 제한을 전보다 훨씬 탐탁해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각에서 보면 라퐁텐 사건은 본때를 한번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p>
<p>좌파의 선택 </p>
<p>라퐁텐 케인스주의의 실패는 좌파에게 두가지 선택을 남겨 놓습니다. 첫번째 선택은 항복입니다. 이른바 제 3의 길이 이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제 3의 길 찬양자라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가 말하는 제 3의 길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제 3의 길 원조들인 빌 글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말하는 제 3의 길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꽤 어렵습니다. 제 3의 길은 국가 통제주의와 신자유주의 모두의 대안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국가 통제주의나 신자유주의 모두가 좋지 않으므로 그것들의 대안이 있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제 3의 길은 그러한 대안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외관상의 반대 이면에서 실천상으로 제 3의 길은 신자유주의적 의제를 받아들립니다. 발칸 전쟁 직후에 두 명의 지도적인 제 3의 길 유럽인들인 토니 블레어와 게르하르트슈뢰더는 정책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정책들은 일단의 신자유주의적 계획안들로서 이른바 유연 노동 시장, 사람들한테서 각종 복지 혜택들을 뺏어가는 것을 뜻하는 사회보장 ‘계혁’따위였습니다. 그러니 제 3의 길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항복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강연 앞부분에서 제가 예증한 지긋지긋한 불평등의 증대를 고려한다면 이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것입니다. </p>
<p>두 번째 선택은 혁명적 사회주의입니다. 즉, 자본주의를 개혁 또는 조절하려 하지 말고 완전히 없애고 사회주의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즉 혁명적 사회주의 전략을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그토록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널리 퍼져 있는 생각, 특히 서구의 통념은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특히 옛 소련과 동유럽이 이른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마르크스주의가 죽은 사상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89년 동유럽 혁명이 ‘역사의 종말’을 뜻한다고 주장한 바도 바로 이것을 가리켰습니다. 미래는 그저 끝없는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는 이 주장은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가정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련과 동유럽 또는 북한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를 마르크스주의와 똑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 개인의 관점이 아니라, 제가 당원으로 있는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과 전세계 국제사회주의 경향에 속한 자매단체들의 관점임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합니다. 단지 하나의 마르크스주의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경쟁하는 여러 마르크스주의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어떻게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이어 나아갈지를 규정하려는 서로 경쟁하는 시도들입니다. 특히 스탈린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전통과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에 주창해서 레닌과 볼셰비키 그리고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지속시킨 전통입니다. </p>
<p>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 </p>
<p>그것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적 근거로서 유물론적 역사 이론과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단지 지적인 도구 또는 특정 세계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해석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br />
그러므로, 둘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변혁의 정치적 프로젝트(계획)입니다. 그 계획의 핵심은 사회주의에 대한 특정 개념입니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일이라는 마르크스의 말로써 정의됩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으로써만 이룰 수 있습니다. 당도, 의원도, 노동조합 지도자도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변화는 대중의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의 개념이 이렇다면 옛 소련 동지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적 사회주의와 정반대의 것이라는 점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스탈린주의 체제 하에서 권력은 아래로부터 행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권력은 사회의 맨 꼭대기에 집중돼 있었습니다.<br />
그러므로, 셋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에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 포함됩니다. 오늘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자부심이 충만해 고개를 반듯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소련에서 맨 처음으로 관료가 떠올랐을 때부터 레온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가 스탈린에게 도전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의 사회적 근원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스탈린이 몹쓸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탈린주의의 문제는 관료 권력이라는 전체 사회 체제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스탈린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결정적인 발전은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창립자인 토니 클리프가 1940년대 말에 국가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썼을 때였습니다. 클리프는 스탈린주의가 사회주의의 한 형태이기는커녕 단지 자본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 말로 ‘노멘클라투라’라는 관료가 노동자 계급을 집합적으로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탈린주의 체제와 서방식 자본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오직 하나, 즉 지배계급이 편제되는 방식입니다. 서방에서는 사기업을 통해서, 동구권에서는 국가 권력을 통해서 말입니다. </p>
<p>이런 시각에서 보면 1989년과 1991년의 격변, 즉 소련 등의 붕괴는 특정한 모양을 띠게 됩니다. 1989년과 1991년을 좌파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부활하는 반혁명으로 보았습니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낙후한 사회주의에서 현대적 자본주의로 진일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어느 것도 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 형태의 자본주의에서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로 옆걸음질친 것이었습니다. 관료적 국가 자본주의에서 시장 자본주의로 말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러시아 사회의 현실을 설명해 줍니다. 러시아인 자신들이 ‘노멘클라투라’자본주의에 대해 얘기합니다. 바꿔 말해, 옛 관료 지배계급이 민간 자본주의 기업가로 변신함으로써 생존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과두’에 대해 얘기합니다. 과두는 러시아 경제와 러시아 정치를 지배하는 거대 기업 제왕들을 말합니다. 이 과두는 옛 스탈린주의 관료 출신이었던 덕분에 기업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시장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주민 대중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사회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자칭 민주주의자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출신은 옛 노멘클라투라에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한 엘리트 집단에서 다른 엘리트 집단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 자신이 과거의 혁명들은 그저 한 소수파에서 다른 소수파에게로 권력을 이전시켰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란 거대 다수를 위한 거대 다수의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인 변혁입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 자신의 투쟁과 삶을 통해 아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p>
<p>이 점은 저를 이 강연의 첫 부분으로 도로 데려갑니다.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논의하는 것은 옳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최대 비판자였습니다. <자본>에서 그가 한 분석은 여전히 오늘날 세계 경제 모순들을 이해하는 최상의 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는 사회변혁의 주체를 규명하지도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화에 직면해 절망하기가 쉽습니다.‘초국적 자본이 얼마나 강력한가’, ‘그들이 케인즈주의자인 라퐁텐을 어떻게 쉽게 제거했는가’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세계 자본과 맞설 수 있는 세력이 세계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노동자 계급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임금 노동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넓게 이해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착취당하는 조건하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축적과정의 확산 덕분에 노동자 계급은 전세계 인구의 다수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노동자 계급이 여전히 사회변혁의 결정적 주체라고 믿고 있습니다. </p>
<p>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 </p>
<p>이런 맥락에서 저는 계급 문제를 다루는 잘못된 방법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정체성 정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별개인 다원적 이해관계와 투쟁으로 사회가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는 계급의 충돌같은 중심적인 충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껏해야 그 정치는 상이한 사회운동들을 불러 모은 연합체를 건설하려 애씁니다. 정체성 정치는 현대 사회의 현실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왜 마르크스가 자본-노동 관계가 사회 변혁에 그리도 핵심적이라고 주장했는지 정체성 정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유일하게 또는 가장 억압당하는 사회 집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이 중요한 건 자본주의 생산에서 그들이 착취당한다는 사실 덕분에 그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집단적으로 마비시키고 심지어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래에 일어난 비교적 부분적이고 제한된 변화에서조차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왜 남한은 근래에 부분적·제한적 정치 자유화를 겪었습니까? 결정적인 이유는 첫째로 1987년의 반란이었습니다. 이 반란은 학생 운동으로 시작돼 산업의 대중 파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둘째로 1997년 1월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중 파업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 계급은 정치 체제의 변화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p>
<p>계급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잘못된 방식은 ‘자율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에 대해 저는 단지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자율주의’는 안토니오 네그리나 질 들뢰즈 같은 일부 유럽 좌파 철학자들과 연관돼 있습니다. 자율주의는 자본 노동 관계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권력 관계로 환원시킵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왜 착취가 일어나는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입니까? 단지 그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물론 매우 흔히 자본가들은 심보가 나쁘고 탐욕스런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착취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다른 요인들, 특히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이 축척하고 착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내몰리는 방식을 포함해야 합니다. 달리 말해, 생산에서의 착취과정을 자본주의 체제의 동력에 관한 이론이라는 더 큰 틀 안에 자리 매김해야 합니다. </p>
<p>이러한 잘못된 출발점에서 출발해, 안토니오 네그리는 그 다음에 이러한 권력 관계를 사회 전체로 적용합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으로 됩니다. 학생도 착취당하고, 주부도 착취당하고, 실업자도 착취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착취 개념을 희석시켜 마침내 그 개념은 더 이상 아무런 명확한 경제적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p>
<p>이와 동시에, 자율주의자들은 착취에 맞서는 대중의 자생적 반란에 특권적 의의를 부여합니다. 물론 자생적 반란은 아주 좋은 것이고 사실 굉장히 멋진 것이죠. 하지만 흔히 자율주의자들은 자생적 반란의 구호를 이용해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적개심을 정당화 합니다. 물론 노동조합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노동조합은 보통 보수적 노동 지도자들이 득세합니다. 노동 조합은 개량주의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노동조합니 노동자 계급대중, 즉 조직이 가장 잘 돼 있고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착취에 저항하기 위해 함께 만나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는 노동자 계급 다수의 능동적 지지를 획득하는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면 노동자들이 있는 곳, 노동조합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율주의는 단순히 이론상으로 큰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적용된 바 있는 유럽에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빚은 잘못된 정치 전략으로 끝납니다. </p>
<p>맺음말 </p>
<p>저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정체성 정치와 자율주의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중요한 정치 쟁점들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 변혁에서 노동자 계급 대중이 하는 중심적 역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근래에는 이 계급, 노동자 계급이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주요한 투쟁을 치렀습니다. 앞에서 저는 1997년 1월 남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예들도 있습니다. 1995년 11∼12월 프랑스 공공부문 대중 파업은 프랑스 지배계급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려다 실패한 주된 경험입니다. 저는 21세기는 자본과 노동이 이제 진짜로 세계적인 규모로 위대한 대결을 계속할 세기라고 믿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과제는 이 투쟁과 연계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따라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21세기에 위대한 미래를 누릴 것이라고 믿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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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쿠바혁명과 카스트로-리우스만화2004/11/14  108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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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23:2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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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2004/11/14  107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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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15:57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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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http://reltih.jinbo.net/new_index.html 목 차 영어판 편집자 서문 레닌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작인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전집 제14권에 실려 있다. 이 저작은 1908년에 집필되어 1909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는 볼셰비크당을 위한 이론적 준비의 일환이었다. 이 저작에서 레닌은 러시아의 마하주의자들과 그들이 가르침을 받은 외국의 철학자들의 반맑스주의적...]]></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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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목 차</p>
<p>영어판 편집자 서문</p>
<p>레닌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작인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전집 제14권에 실려 있다. 이 저작은 1908년에 집필되어 1909년에 출간되었는데 이는 볼셰비크당을 위한 이론적 준비의 일환이었다.<br />
이 저작에서 레닌은 러시아의 마하주의자들과 그들이 가르침을 받은 외국의 철학자들의 반맑스주의적 견해 전반에 걸쳐서 비판을 가하였다. 이와 동시에 레닌은 이 저작을 통해 맑스주의의 이론적 기초 &#8211;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8211; 를 지켜냈으며 또한 엥겔스가 죽은 후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 출현하기까지의 시기에 과학, 특히 자연과학이 이룩한 귀중하고 본질적인 성과에 대한 유물론적인 일반화를 수행하였다.<br />
이 저작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적에 대한 당내에서의 비타협적 투쟁의 표본이 되었다.<br />
레닌의 ≪강연자에 대한 10가지 질문≫까지 포함된 이 책은 1908년 봄에 씌어졌다. 1905년에 볼셰비키와 제휴하였던 마하주의자 보그다노프 및 그 지지자들의 철학적 견해에 대해 볼셰비키 그룹이 공개적으로 분리를 선언할 수 있도록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br />
여기서는 1909년에 출간된 제1판을 주대본으로 삼고 1920년에 출간된 제2판을 참고본으로 삼았다. 그리고 레닌이 1908년과 1909년 이 책의 출간을 준비하고 제1판의 교정쇄를 고치는 과정에서 관계자에게 지시한 편지의 내용도 참고하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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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택동 실천론2004/11/14  100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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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11:57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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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http://reltih.jinbo.net/new_index.html 실천론 인식과 실천의 관계 &#8211;앎과 함의 관계에 대하여 毛澤東 1937년 7월 출판사 두레에서 나온 이등연씨의 번역을 참고했습니다.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은 인간의 사회성과 인간의 역사적 발전을 떠난 채 인식의 문제를 관찰했다. 그리하여, 인식이 사회적 실천에 대해 갖는 의존관계, 즉 생산과...]]></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http://reltih.jinbo.net/new_index.html</p>
<p>실천론<br />
인식과 실천의 관계<br />
&#8211;앎과 함의 관계에 대하여<br />
毛澤東<br />
1937년 7월 </p>
<p>출판사 두레에서 나온 이등연씨의 번역을 참고했습니다. </p>
<p>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은 인간의 사회성과 인간의 역사적 발전을 떠난 채 인식의 문제를 관찰했다. 그리하여, 인식이 사회적 실천에 대해 갖는 의존관계, 즉 생산과 계급투쟁에 대한 인식의 의존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p>
<p>마르크스주의자는 우선, 인간의 생산활동이 가장 기본적인 실천활동이며 그밖의 다른 모든 활동을 결정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인식은 주로 물질적 생산활동에 의존하며 [이를 통해] 자연의 현상과 성질, 법칙성,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인간은 [이러한] 생산활동을 통해, 여러가지 상이한 정도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정한 상호관계도 차츰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지식들은 생산활동을 떠나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계급이 없는 사회 속에서 각 개인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들과 협력하여 일정한 생산관계를 맺고 생산활동에 종사함으로써 인간의 물질적 생활 문제를 해결한다. 여러 종류의 계급 사회에서는 각 계급의 사회구성원들이 역시 여러 상이한 방식으로 일정한 생산관계를 맺고 생산활동에 종사하면서 인간의 물질적 생활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이 인간의 인식발전의 기본적 원천이다.</p>
<p>인간의 사회적 실천은 생산활동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 즉 계급투쟁, 정치활동, 과학이나 예술활동 등이 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사회의 실제생활 모든 영역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식은 물질적 생활뿐만 아니라 [물질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치생활, 문화생활 등을 통해서도,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 사이의 여러 가지 관계를 알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각종 형태의 계급투쟁은 인간의 인식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계급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일정한 계급적 지위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며, 모든 사상에는 틀림없이 어떤 계급적 낙인이 찍혀 있다.</p>
<p>마르크스주의자는, 인류사회의 생산활동의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한걸음씩 한걸음씩 발전해 나가기 때문에, 자연계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인식도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즉 얕은 것에서 깊은 것으로, 일면적인 것에서 다면적인 것으로 점차 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은 사회의 역사에 대해서 그저 일면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착취계급의 편견이 역사를 항상 왜곡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 규모가 협소하여 인간의 시야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 전면적이고 역사적인 이해를 하면서 사회에 대한 인식을 [하나의] 과학으로 전화시키는 것은, 거대한 생산력&#8212;대규모 공업과 함께 근대 무산계급이 출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 과학이다.</p>
<p>마르크스주의자는 인간의 사회적 실천만이 외계에 대한 인간의 진리성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회적 실천과정(물질적 생산과정, 계급투쟁과정 또는 과학실험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사상 속에서 예상했던 결과에 도달했을 때에만 그 인간의 의식은 비로소 검증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즉 기대했던 결과들을 획득하려면 인간은 자신의 사상을 객관적 외계의 법칙에 합치시켜야만 한다. 만약 합치시키지 못한다면 실천에서 실패할 것이다. 샐패한 뒤에라도 그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자신의 사상을 외계의 법칙에 적합하도록 바르게 고친다면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8220;실패는 성공의 어머니&#8221; 또는 &#8220;하나의 좌절을 맛보면 하나의 지혜를 얻는다&#8221;는 속담의 뜻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은 실천을 제1의 지위에 두고 모든 인간의 인식은 실천과 조금도 분리될 수 없다고 여기며, 실천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인식을 실천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체의 잘못된 이론을 거부한다. 레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8220;실천은 [이론적] 인식보다 우월하다. 왜냐하면 실천은 보편성이라는 가치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현실성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8221; [1] 마르크스주의 절착인 변증법적 유물론은 뚜렷한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계급성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무산계급에 봉사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언명한다. 다른 하나는 실천성으로서 이론의 실천에 대한 의존관계, 즉 이론의 기초는 실천이며 그 이론은 다시 실천에 봉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식 또는 이론의 진리 여부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어떻게 느끼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사회적 실천의 결과가 어떠한가에 따라 판정된다. 오직 사회적 실천만이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실천적 관점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에서 제1의, 기본적 관점이다. [2]</p>
<p>그러면 인간의 의식은 도대체 어떻게 실천에서 발생하고 다시 실천에 봉사하는가? 이것은 인식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명백해진다.</p>
<p>원래 실천과정에서 인간은 처음에는 각 사물들의 현상, 각 사물들의 일면적인 부분, 각 사물들 사이의 외적 연관밖에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외부 사람들이 연안(延安)에 시찰하러 왔다고 했을 때, 그들은 처음 하루 이틀 동안은 연안의 지형·거리·가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연회(宴會)·야회(夜會)·군중집회 등에 참가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자료들을 읽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사물의 현상, 사물의 각 일면, 사물의 외적 관계이다. 이것을 인식의 감성적 단계, 즉 감각과 인상의 단계라고 한다. 즉 연안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연안 시찰단원의 감각기관에 작용하여 그들의 감각을 일으켜 그들의 두뇌 속에 수많은 인상과 그 인상들 사이의 대략적인 외적 관계를 지어내는데 이것이 인식의 제1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아직 심화된 개념들을 형성하거나 논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p>
<p>사회적 실천이 계속되면서 실천과정 속에서 인간의 감각과 인상들을 일으키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된다. 그러면 인식과정상에서 인간의 두뇌에 갑작스런 변화(비약)가 일어나 개념이 형성된다. 그러한 개념들은 더 이상 사물의 현상, 사물의 여러 가지 일면적인 부분, 사물의 외적 관계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 사물의 전체성과 내적 관계를 파악한 것이다. 개념과 감각은 양적 차이뿐만 아니라 질적 차이도 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해 나아가서 판단과 추리라는 방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8220;양미간을 좁히면 꾀가 나온다&#8221;는 표현이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8220;좀더 생각해 보자&#8221;는 말은 바로 인간이 두뇌 속에서 개념을 사용하여 판단과 추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인식의 제2단계이다. 외부에서 온 시찰단원들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서 그 자료들을 &#8220;곰곰히 살펴보았다&#8221;고 한다면 그들은 &#8220;공산당의 항일민족통일전선정책(抗日民族統一戰線政策)은 철저하고 성의있고 진지한 것이다&#8221;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구국을 위한 단결에 보다 진지하다면 이러한 판단은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 &#8220;항일민족통일전선은 능히 성공할 수 있다&#8221;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판단·추리의 단계는 인간이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전과정 속에서 한층 중요한 단계인 이성적 인식 단계이다. 인식의 진정한 과제는 감각을 거쳐 사유에 도달하고, 더 나아가서 객관적 사물의 내적 모순, 그것들의 법칙 그리고 하나의 과정과 다른 과정 사이의 내적 관계를 이해해 나가는 것, 즉 논리적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논리적 인식이 감성적 인식과 다른 까닭은 감성적 인식이 사물의 일면적 부분, 현상, 외적 관계에 관계된 반면, 논리적 인식은 크게 한걸음 나아가서 사물의 전체성, 본질, 내적 관계에 도달하여 주변세계의 내적 모순을 드러내준다. 그럼으로써 논리적 인식은 주변세계의 발전을 그 전체 속에서, 모든 측면의 내적 관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p>
<p>실천에 기초하여 피상적인 데서 심오한 데로 나아간다는 인식의 발전과정에 관한 이러한 변증법적 유물론을 마르크스주의 이전에는 누구도 이렇게 해결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이 맨처음 이 문제를 정확히 해결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은 인식의 심화과정, 즉 사회적 인간이 생산과 계급투쟁이라는 복잡하고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실천활동 속에서 감각적 인식이 논리적 인식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설명했다. 레닌은 &#8220;물질이라는 추상, 자연법칙이라는 추상, 가치라는 추상 등 한마디로 모든 과학적(즉 정확하고 진지하며 허구나 피상적인 것이 아닌) 추상은 자연을 더 심오하고 더 정확하고 더 완전하게 반영한다.&#8221; [3] 고 말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인식과정의 두 단계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즉, 낮은 단계에서는 인식이 감성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높은 단계에서는 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어떤 단계이건 모두 통일적 인식과정 속의 단계이다. 감성과 이성은 성질이 서로 다르나 서로 분리되지 않고 실천의 기초 위에서 통일되어 있다. 감각된 것은 바로 이해할 수 없으나 이해된 것은 보다 깊이 감각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실천은 증명해준다. 각감은 단지 현상의 문제를 해결할 뿐이며, 이론만이 본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결코 실천과 분리될 수 없다. 누구든지 어떤 사물을 인식하려면 그 사물과 접촉하지 않고서는, 즉 사물의 환경 속에서 생활(실천)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의 법칙을 미리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은 자본주의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고 그에 상응하는 실천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자유경쟁단계에 살았던 마르크스는 제국주의시대의 특수한 법칙들을 미리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제국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최후단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그에 상응하는 실천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레닌과 스탈린만이 이 과제를 담당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이 그들의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천재였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당시의 계급투쟁과 과학실험이라는 실천에 몸소 참여했다는 데 있다.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그러한 실천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8220;학자는 문 밖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천하를 다 안다&#8221;는 말이 한낱 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이 말이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몸소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 실천과정에서 &#8216;지식&#8217;을 얻고 그 지식이 문자와 기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8216;학자&#8217;에게 전해졌을 때 비로소 학자는 간접적으로 &#8220;모든 세상만사를 알 수 있다.&#8221; 하나의 사물 또는 어떤 종류의 사물들을 직접 인식하고자 한다면, 현실을 변혁하는 투쟁, 즉 하나의 사물 또는 몇 개의 사물을 변혁하는 실천적 투쟁에 직접 참여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러한 사물의 현상과 접촉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현실을 변혁하는 실천적 투쟁에 직접 참여해야만 한 사물 또는 어떤 종류의 사물들의 본질을 밝혀내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실제로 밟아가는 인식의 과정인데 오로지 일부 사람만이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하여 정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자신이 &#8216;천하제일&#8217;이라 자처하는 &#8216;박식가&#8217;들로서 이것은 자신을 모르는 소치의 결과이다. 지식은 과학의 문제로서 조금의 허위나 자만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정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그 정반대, 즉 성실하고도 겸손한 태도이다. 지식을 얻으려면 현실을 변혁하는 실천에 참여해야만 한다. 배의 맛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배를 먹음으로써 배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원자의 구조와 성질을 알기 위해서는 물리적·화학적 실험을 통해서 원자의 상태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혁명의 이론과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혁명에 참여해야만 한다. 모든 참된 지식은 직접적인 경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인간이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사실 우리들의 지식의 대부분은 과거의 지식과 외국에서 전해진 지식과 같이 간접적인 경험에서 유래한다. 물론 그러한 지식도 옛사람과 외국인에게는 직접적인 경험이었다. 또한 이러한 지식이 직접경험과정에서 레닌이 말하는 &#8220;과학적 추상&#8221;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과학적으로 객관적 사물을 반영하고 있다면 이 지식들은 신뢰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지식은 다름아닌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더우기 자신에게는 간접적인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는 직접경험일 수가 있다. 따라서 지식을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종류의 지식도 직접경험에서 분리될 수가 없다. 모든 지식은 객관적 외계에 대한 인간의 육체적 감각기관을 통한 감각에서 발생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러한 감각과 직접경험을 부정하거나, 현실 변혁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를 부정한다면 그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8216;박식가&#8217;가 어리석다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속담에 &#8220;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8221;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실천의 경우에도 진리이며 인식론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실천을 떠난 인식이란 있을 수 없다.</p>
<p>현실을 변혁하는 실천의 기초 위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과정&#8212;인식이 점차 심화되어 가는 과정&#8212;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다음에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p>
<p>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무산계급의 인식은 기계 파괴나 자연발생적 투쟁을 하던 실천의 초기에서는 단지 감성적 인식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여러 가지 현상 중에서 일면적 부분 또는 외적 과계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그때의 무산계급은 아직 이른바 &#8216;즉자적 계급&#8217;이었다. 그러나 실천의 제2기인 의식적·조직적 경제투쟁 및 정치투쟁의 시기에는, 마르크스·엥겔스가 실천과 장기간에 걸친 투쟁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여러 가지 경험을 과학적 방법으로 종합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무산계급을 교육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사회의 본질, 사회계급들 간의 착취관계,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과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무산계급은 &#8216;대자적 계급&#8217;이 되었던 것이다.</p>
<p>중긱인민의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제1단계는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과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 등 막연한 배타주의적 투쟁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표면적·감성적 인식단계이다. 제2단계에서야 비로소 중국인민은 이성적 인식단계에 도달하여 제국주의의 내적·외적 모순들을 간파함과 동시에 제국주의가 중국 매판계급 및 봉건계급과 결탁하여 중국인민대중을 억압·착취하고 있는 본질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1919년 5·4운동 전후에 시작되었다.</p>
<p>다음엔 전쟁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전쟁의 지도자들이 전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처음 단계에서 그들은 구체적인 전쟁(가령 우리의 지난 10년간의 토지혁명전쟁)의 심오한 지도법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 단계에서 그들은 단지 많은 전투 경험을 하는 데 지나지 않고 게다가 많은 패배를 맛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승리의 경험, 특히 패배의 경험)을 통해 그들은 전쟁 전체에 관철되고 있는 내부적인 것, 즉 구체적인 전쟁의 법칙성을 이해할 수 있고 전략·전술을 알게 되어 마침내 자신있게 전쟁을 지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시기에 지도자가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바뀐다면 그 또한 몇 번의 패배를 겪은 후에(경험을 얻은 후에) 전쟁의 법칙을 정확히 알게 될 것이다.</p>
<p>우리는 가끔 일부 동지가 과업을 용감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 때 &#8220;자신이 없다&#8221;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왜 자신이 없는가? 그것은 그가 이러한 종류의 일을 지금껏 접촉해 본 적이 전혀 없었거나 접촉해 보았다고 하더라도 조금밖에 못했기 때문에, 활동의 내용과 환경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여 그러한 활동의 법칙성에 대해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의 성격이나 조건을 자세하게 분석한 후에는 비교적 자신을 갖게 되고 그 일을 기꺼이 하려고 한다. 만약 그가 그 일 속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게 되어 그 일에 대한 경험을 얻고 문제를 주관적·일면적·표면적으로 보지 않고 상황을 겸허한 자세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 일을 추진시켜 나갈 방법에 대한 결론을 몸소 내길ㄹ 수 있게 되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주관적·일면적·표면적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사물을 전체적으로(사물의 역사와 전반적인 현상황) 바라보지 않으면 사물의 본질(사물의 성질과 이 사물과 저 사물 사이의 내적 관계)에 접촉하지 않은 채 혼자 옳다고 여기면서 호령하고 명령한다. 그러한 사람은 실패하게 된다.</p>
<p>이렇게 볼 때 인식 과정에서 제1보는 외계의 사물과 접촉하는 감각단계이다. 제2보는 감각된 자료를 정리하고 재구성하여 종합하는 개념·판단·추리의 단계이다. 감각된 자료가 아주 풍부하고(단편적이거나 불완전하지 않고) 실제에(착각이 아닌) 상응할 때만 그 자료는 정확한 개념과 이론을 형성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p>
<p>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해 두어야 하겠다.</p>
<p>첫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기서 다시 강조하는 것은 이성적 인식이 감성적 인식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성적 인식이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낱 관념론자이다. 철학사에는 &#8216;합리론&#8217;이라는 학파가 있는데 그들은 이성의 실재성만을 인정하고 경험의 실재성은 인정하지 않으며, 이성만을 신뢰할 수 있고 감각적 경험은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학파의 오류는 사실을 전도시켰다는 데 있다. 이성적인 것은 확실히 감각에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지, 그렇지 않은 경우 그것은 원천없는 물줄기나 뿌리없는 나무처럼 주관적·임의적이며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인식과정의 순서에서 감각적 경험이 첫번째로 작용한다. 따라서 사회적 실천만이 인간의 의식을 낳게 하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객관적 세계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식과정에서 사회적 실천의 의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고 자신을 객관적 세계로부터 차단시킨 사람에게 인식은 있을 수 없다. 인식은 경험에서 출발한다&#8212;이것이 인식론의 유물론이다.</p>
<p>둘째, 인식은 심화되어야 하고 인식의 감성적 단계는 이성적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8212;이것이 인식론의 변증법이다. [4] 인식이 낮은 감성적 단계에 머무를 수 있고 감성적 인식만을 믿을 수 있으며 이성적 인식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이는 역사상의 &#8216;경험론&#8217;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 이론의 오류는 감각 재료가 객관적 세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진실성은 반영하지만(나는 여기서 경험이 내재적 체험에 불과하다는 관념론적 경험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단지 일면적이고 표면적일 뿐 사물을 불완전하게 반영하고 본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데에 있다. 완전히 사물 전체를 반영하고, 사물의 본질을 반영하고, 사물의 내재적인 법칙성을 반영가히 위해서는 사고작용을 통해 풍부한 감각자료를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를 골라내며, 가짜를 제거하고 진짜를 취하며, 이것에서 저것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진전하는 사고 작용을 통해서 감각된 풍부한 자료들을 개조하여 개념 및 이론 체계를 구축해야만 하며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비약해야만 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인식은 보다 공허하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이 인식과정에서 실천적 기초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개조된 것이라면, 레닌이 말한 바와 같이 객관적 사물을 더욱 심오하게, 더욱 정확하게, 더욱 완전하게 반영한 것이다. 이에 반해 통속적인 실무주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이론을 경시하고 경험만을 존중하므로 명확한 방침이나 장기적인 전망의 결여로 인해 객관적인 과정 전체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없고 자그마한 성공이나 편협한 소견을 갖고 자기만족에 빠진다. 이런 사람이 만약 혁명을 지도한다면 그는 혁명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말 것이다.</p>
<p>이성적 인식은 감성적 인식에 의존하고 감성적 인식은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이다. 철학 중에서 &#8216;합리론&#8217;과 &#8216;경험론&#8217; 어느 것도 인식의 역사적 또는 변증법적 성격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각기 일면적인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것은 유물론적 합리론이과 경험론이지 관념론적 합리론과 경험론은 아니다) 인식론 전체로서 보면 모두 오류이다. 감성에서 이성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운동은 작은 인식과정(가령 하나의 사물이나 과업에 관한 인식)과 큰 인식과정(가령 사회전반이나 혁명에 관한 인식) 모두에 적용된다.</p>
<p>그러나 인식운동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운동이 이성적 인식에서 그친다면 아직 문제의 절반밖에는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절반만을 파악한 데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객관세계의 법칙성을 이해함으로써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객관적 법칙성에 관한 인식을 적용함으로써 세계를 능동적으로 변혁한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론은 중요하며 이것의 중요성은 &#8220;혁명이론 없이 혁명운동은 있을 수 없다&#8221; [5] 는 레닌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론만이 행동을 지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올바른 이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석에 처박아 둔 채 공론만을 일삼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그러한 이론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인식은 실천에서 시작되고 실천을 통해 이론적 인식에 도달되고 다시 실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인식의 능동적 작용은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에 이르는 능동적 비약에서 나타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나아가 그것이 이성적 인식에서 혁명적 실천에 이르는 비약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법칙성을 파악한 인식을 다시 세계를 변혁시키는 실천으로 되돌리고, 그러한 인식을 다시 생산의 실천, 혁명적인 계급투쟁 및 민족투쟁의 실천, 그리고 과학실험의 실천에 적용시켜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이론을 검증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며 전 인식과정의 계속이다. 이론이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는 앞에서 이야기한 감성에서 이성으로의 인식운동에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며 또한 완전히 해결될 수도 없다.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성적 인식을 사회적 실천으로 되돌리고 이론을 실천에 적용시켜서 그 이론이 예상했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보는 것이다. 많은 자연과학의 이론들이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은 그 이론들이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뿐만 아니라 그 후의 과학적 실천에 의해서 검증되었을 때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도 이 학설이 마르크스·엥겔스·레닌·스탈린에 의해 과학적으로 만들어졌을 때뿐만 아니라 그 뒤 혁명적인 계급투쟁과 민족투쟁의 실천을 통해서 실증되었을 때인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보편적 진리가 되는 까닭은 누구든지 실천을 할 때 그것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인식의 역사는 많은 이론들의 진리성이 불완전하며, 이 불완전성은 실천의 검증을 통해서 바로잡힌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많은 이론이 잘못되어 있고, 잘못은 실천의 검증을 통해 시정된다. 실천이 진리의 기준이며 &#8220;생활과 실천의 관점은 인식론의 첫째의, 그리고 기본적인 관점이 되어야만 한다&#8221; [6] 는 이유가 곧 여기에 있는 것이다. 스탈린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지적했다. &#8220;이론은 혁명의 실천과 혁명이론을 지침으로 하지 않으면 맹목적인 실천이 된다.&#8221; [7]</p>
<p>이렇게 하면 인식운동은 완결됐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의 대답은, 완결되었으면서도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의 인간이 어떤 발전단계에서 어떤 객관적 과정을 변혁하는 실천(그것이 어떤 자연의 과정을 변혁하는 실천이건 혹은 어떤 사회의 과정을 변혁하는 실천이건 관계없이)에 참여해서, 객관적 과정의 반영과 주관적 능동성의 작용에 의해 인식을 감성적인 것에서 이성적인 것으로 진전시키고, 객관적 과정의 법칙성에 부합하는 사상·이론·계획 또는 방침을 세운 뒤에 다시 이러한 사상·이론·계획 또는 방침을 동일한 객관적 과정의 실천에 적용하여 예상했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즉 예정했던 사상·이론·계획 또는 방침이 동일한 과정의 실천 속에서 사실로 바뀌어지거나 혹은 대체로 사실로 바뀌어졌다면 이 구체적인 과정에 관한 인식운동은 완성된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자연을 변혁하는 과정에서는 공사계획의 실현, 과학적인 가설의 실증, 기구의 제작, 농산물의 수확,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는 과정에서는 파업의 승리, 전쟁의 승리, 교육계획의 실현, 이 모두가 예상했던 목적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연을 변혁하는 실천이나 사회를 변혁하는 실천에서 처음부터 예상했던 사상·이론·계획 또는 방침이 조금도 틀림없이 그대로 실현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것은 현실변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인데 그는 과학적·기술적 조건뿐 아니라 객관적 과정 자체의 발전과 표현정도에 따라서도(객관적 과정의 측면 및 본질이 아직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경우)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실천 도중에 미리 예측하지 못했던 사정이 나타남에 따라서 사상·이론·계획·방침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경우가 흔히 있으며 때로는 전체를 수정하는 경우도 있게 된다. 즉, 처음에 예정했던 사상·이론·계획·방침이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현실과 일치하지 않거나 잘못될 수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해야 비로소 그릇된 인식이 시정될 수 있고 객관적 과정의 법칙성에 부합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즉, 실천 속에서 예상했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시점에 이르게 되면 어떤 발전단계에서 어떤 객관적인 과정에 대한 인간의 의식은 완성된 셈이다.</p>
<p>하지만 과정의 추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인식운동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자연계에 속하든 또는 사회에 속하든 모든 과정은 모든 내부의 모순과 투쟁에 의해 앞으로 전진하고 발전하는 것이며 인간의 인식운동도 이에 따라 진전하고 발전해야 한다. 사회운동 속에서 진정한 혁명지도자는 자신의 사상·이론·계획·방침에 오류가 있을 때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잘 시정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객관적 과정이 한 발전단계에서 다른 발전단계로 진전하고 변화했을 때 이 변화에 따라 자신을 비롯해 혁명에 참여한 모든 혁명동지들의 주관적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새로운 상황 변화에 들어맞는 새로운 혁명과제와 새로운 활동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혁명의 시기에 상황의 변화는 매우 급격한데 혁명당원의 인식이 이러한 변화에 따라 재빨리 변화할 수 없다면 그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없다.</p>
<p>그러나 사상이 실제보다 뒤처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 수많은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제약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혁명진영 내에 있는 완고파에 반대한다. 그들의 사상은 변화하는 객관적 상황에 따라 진전할 수 없고 역사에서는 우익기회주의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순의 투쟁이 객관적 과정을 이미 앞으로 전진시켰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채 그들의 인식은 낡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 모든 완고파의 사상은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사상은 사회적 실천과 유리되어 있다. 그들은 사회라는 수레 앞에 서서 안내자의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레의 뒤를 따라가면서 수레가 너무 빨리 간다고 투덜거리고 수레를 뒤로 끌어당겨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데 급급하다.</p>
<p>또한 우리는 극좌공론주의(極左空論主義)에도 반대한다. 그들의 사상은 객관적 과정의 일정한 발전단계를 뛰어넘어 어떤 사람은 환상을 진리로 여기고 또 어떤 사람은 장래에 가서야 현실화될 수 있는 이상을 억지로 현실화하려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다수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실천과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있으며, 행동상으로는 모험주의로 나타난다.</p>
<p>관념론과 기계론적 유물론, 기회주의와 모험주의는 모두 주관과 객관의 분열, 인식과 실천의 분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과학적 사화적 실천을 특징으로 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인식론은 이러한 그릇된 사상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세계의 절대적이고 총체적인 발전 과정 속에서 개개의 구체적인 과정의 발전은 모두 상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의 큰 물줄기 속에서 각각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있는 하나의 구체적 과정에 대한 인간의 인식도 상대적인 진리성밖에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수한 상대적 진리의 총화가 곧 절대적 진리이다. [8] 객관적 과정의 발전은 모순과 투쟁으로 가득찬 발전이며 인간의 인식과정의 발전 또한 모순과 투쟁으로 가득찬 발전이다. 객관적 세계의 모든 변증법적 운동은 언젠가는 모두 인간의 인식 안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사회적 실천의 발생·발전·소멸의 과정은 무한하며, 인간의 인식의 발생·발전·소멸 또한 무한하다. 일정한 사상·이론·계획·방침에 따라 객관적 현실의 변혁에 매진하는 실천이 하나하나 진전해 가면서 객관적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인식도 하나하나 심화되어 간다. 객관적 현실세계가 변화해가는 운동은 영원히 완결되지 않으며 실천을 통한 인간의 진리인식도 영원히 완결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는 결코 진리의 종착점은 없으며, 그것은 부단한 실천을 통해 진리의 인식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 있다. 우리의 결론은 주관과 객관, 이론과 실천, 그리고 앎과 함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통일이며 구체적 역사를 떠난 모든 &#8216;좌익&#8217; 또는 우익의 그릇된 사상에 반대하는 것이다.</p>
<p>사회가 현단계까지 발전함에 따라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변혁할 책임은 이미 역사적으로 무산계급과 그 정당의 어깨 위에 지워져 있다. 이처럼 과학적 인식에 근거하여 결정된 세계변혁의 실천과정은 세계나 중국 속에서 하나의 역사적 시기에 도달했다. 이 역사적 시기는 세계와 중국에 존재했던 암흑을 완전히 일소해 버리고 전에 없던 광명의 세계가 되는 역사상 미증유의 중대 시기인 것이다. 세계를 변혁하기 위한 무산계급과 혁명적 인민의 투쟁은 객관적 세계를 변혁하고 자기의 주관적 세계를 변혁하는, 다시 말해 자기의 인식능력을 변혁하고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의 관계를 변혁하는 임무를 실현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구상의 일부지역에서는 이미 이런 변혁이 행해지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소련이다. 소련의 인민은 지금도 이러한 변혁의 과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세계의 인민은 모두 이러한 변혁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 거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변혁될 객관적 세계에는 변혁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먼저 강제적인 변혁단계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자발적인 변혁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전체가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변혁하고 세계를 변혁할 때 세계적인 공산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p>
<p>실천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을 통해 진리를 검증하고 진리를 발전시킨다. 감성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능동적으로 이성적 인식으로 발전시키고, 또 이성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능동적으로 혁명적 실천을 지도함으로써 주관적 세계와 객관적 세계를 변혁한다. 실천·인식, 다시 실천, 다시 인식이라는 형식이 끝없이 순환·반복되고 이렇게 순환할 때마다 실천과 인식의 내용은 한층 높은 수준으로 심화된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 전체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의 앎과 함의 통일론이다.</p>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p>
<p>NOTES</p>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p>
<p>[1] V. I. Lenin, &#8220;Conspectus of Hegel&#8217;s The Science of Logic&#8221;. Collected Works, Russ. ed., Moscow, 1958, Vol. XXXVIII, p. 205.</p>
<p>[2] Karl Marx, &#8220;포에이르바하에 관한 테제&#8221;. Karl Marx and Frederick Engels, Selected Works, in two volumes, Eng. ed., FLPH, Moscow, 1958, Vol. II, p. 403, and V. I. Lenin,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 ring. ed., FLPH, Moscow, 1952, pp. 136-4.</p>
<p>[3] V. I. Lenin, &#8220;Conspectus of Hegel&#8217;s The Science of Logic&#8221;, Collected Works, Russ. ed., Moscow, 1958, Vol. XXXVIII, p. 161.</p>
<p>[4] &#8220;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의 기초 위에서 이해하고 연구하기 시작해야 하며 경험에서 일반으로 고양되어야만 한다&#8221;는 구절을 참조 (앞의 책, p. 197.)</p>
<p>[5] V. I. Lenin, &#8220;What Is to Be Done?&#8221;, Collected Works, Eng. ed., FLPH, Moscow, 1961, Vol. V, p. 369.</p>
<p>[6] V. I. Lenin, 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Eng. ed., FLPH, Moscow, p. 141.</p>
<p>[7] J. V. Stalin, &#8220;The Foundations of Leninism&#8221;, Problems of Leninism, Eng. ed., FLPH, Moscow, 1954, p. 31.</p>
<p>[8] See V. I. Lenin, Materialism and Empirio-Criticism, Eng. ed., FLPH, Moscow, pp. 129-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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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엘리아스,문명화과정요약2004/11/14  99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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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1 Dec 2012 11:08:13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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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http://was.pe.kr/soc.htm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8220;문명화과정&#8221; [문명화과정(The Civilizing Process)]은 이미 1930년대에 출판되었지만 줄곧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 7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의 대표적인 저서다. 57세가 되어서야 전임강사가 되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불운했던 엘리아스. 영미권을 풍미하던 기능주의와 체계이론이 점차 비판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http://was.pe.kr/soc.htm</p>
<p>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8220;문명화과정&#8221;  </p>
<p>  [문명화과정(The Civilizing Process)]은 이미 1930년대에 출판되었지만 줄곧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 7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의 대표적인 저서다. 57세가 되어서야 전임강사가 되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불운했던 엘리아스. 영미권을 풍미하던 기능주의와 체계이론이 점차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의 역사적인 실증연구와 결합된 독창적인 사회학 이론과 방법이 부각되기 시작한 이래 엘리아스는 최근까지 새로운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는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독일의 사회학자로 인정받고 있다.<br />
다음은 [문명화과정]의 국내 번역문 중에서 머리말을 발췌하여 소개해본다. </p>
<p>노르베르트 엘리아스. 1996.  문명화과정  박미애 올김. 한길사. p 45-53. </p>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p>
<p>이 연구의 중심주제는 서구적으로 문명화된 사람들에게 전형적이라고 간주되는 행동양식이다. 그 주제가 던지는 질문들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에게 전형적이며 &#8216;문명화된&#8217;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예전부터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서구적으로 문명화된 우리 시대의 사람이 과거의 어느 시대로, 예컨대 중세 봉건적인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는 자신이 오늘날 다른 사회들에서 &#8216;야만적&#8217;이라고 평가하는 많은 특성들을 재발견할 것이다. 그때 느끼는 그의 감정은 서구 밖의 봉건사회 사람들의 행동이 그에게 촉발시키는 감정과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마 자신의 처지와 취향에 따라 곧 그 사회의 상류층이 영위하는 거칠고, 자유분망하며 모험에 가득 찬 삶에 끌리거나, 아니면 그들의 &#8216;야만적인 &#8216; 습관, 불결함과 조야함에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8216;문명&#8217;을 어떻게 이해하든 과거의 어느 시점의 서구사회는 현재의 서구사회와 동일한 의미에서 그리고 동일한 수준으로 &#8216;문명화&#8217;된 사회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그는 분명하게 감지할 것이다. </p>
<p>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으므로 다시 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은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그 질문이 우리의 자기이해에 전혀 무의미하지 않는데도,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의 의식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 변화, 즉 서구의 &#8216;문명화&#8217;가 실제로 일어났는가, 그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그 원동력과 원인 또는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p>
<p>이 연구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주된 질문들이 바로 이것이다. </p>
<p>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즉 그 질문에 대한 서론으로서 독일과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8216;문명화&#8217; 개념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들과 가치평가들을 살펴보겠다. 제1장에서 이 과제를 다룰 것이다. 이 작업은 &#8216;문화&#8217;와 &#8216;문명&#8217;의 개념을 항상 대립시키는 우리의 고정된 사고틀을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독일인에게는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행동에 대한 역사적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반대로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에게는 독일인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은 문명화과정 자체의 전형적인 형태들을 명료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p>
<p>중심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하여 우선 서구인들의 행동과 감정을 다스리는 구조가 중세 이래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은 제2장에서 다루게 될 과제이다. </p>
<p>서구 역사의 흐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심리적 태도의 변화가 특정한 질서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또는 사변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경험자료들의 검토만이 무엇이 올바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런 연유로 여기에서, 즉 이러한 실물자료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지 않은 지금 전체 연구의 구성과 주요사상들을 간략히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 자체가 단지 점차적으로, 즉 역사적인 사실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또 나중에 관찰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들을 통하여 이전에 보았던 사실들을 통제하고 수정함으로써 확고한 형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8230;) </p>
<p>독자들은 제2장에서 여러 가지 예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 보기들은 장면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영화에서처럼 전체의 발전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행동수준의 변화가 여러 세기에 걸쳐 항상 동일한 상황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여기에서는 단지 몇 쪽에 걸쳐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있는 광경을 본다. 그들이 잠자러 가거나 혹은 전투에서 적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관찰한다. 이런저런 기초적인 활동에서 개개인이 행동하고 느끼는 방식이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그 방식은 단계적 &#8216;문명화&#8217;의 의미에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이 단어가 원래 무엇을 뜻했는지 더 명확해진다. 예컨대 이 단어는 수치심과 불쾌감의 특정한 변화가 이러한 문명화과정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의 수준도 변한다. 이 변화에 발맞추어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불쾌와 불안의 한계점도 변한다. 사회적으로 발생한 인간의 불안문제는 문명화과정의 핵심문제 중의 하나로 부상한다. </p>
<p>이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다른 문제들이 있다. 행동 및 전체 심리적인 구조에서 어른과 어린의 격차는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점차 커진다. 왜 많은 민족들과 민족집단들이 &#8216;더 어리거나&#8217;, &#8216;어린아이와 같은지&#8217;, 다른 민족들이 &#8216;더 나이가 들었거나&#8217; 또는 &#8216;어른스러운가&#8217;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이 사회들이 거쳐온 문명화과정의 종류와 단계들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 책의 테두리 안에 넣을 수 없는 문제이다.(&#8230;) </p>
<p>제3장의 과제는 이러한 긴 역사의 특정한 과정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제2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3장에서는 정확하게 규정된 몇 개의 영역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서구사회의 구조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부단히 변화하는지 밝혀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그 영역 안에서 서구인들의 행동수준과 심리적인 태도가 변화한 까닭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p>
<p>예를 들어 여기에서 우리는 중세 초의 사회적 풍경을 보게 된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성들이 가득하다. 오래 전부터 도시 주거지였던 곳조차도 봉건제화되었다. 무사계급 출신 지주들의 농장과 성들이 도시의 중심을 이룬다. 문제는 어떤 사회적 관계들이 서로 얽혀 우리가 &#8216;봉건제도&#8217;라고 부르는 것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몇몇 &#8216;봉건제화의 기제들&#8217;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유로운 도시의 수공업자와 상인의 주거지를 거느린 성채의 충경에서 부유한 대영주의 저택들이 서서히 돌출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무사계급 내에서도 점차적으로 일종의 상류층이 뚜렷하게 형성된다. 그들의 저택이 한편으로는 연가와 중세 남프랑스 음유시인풍 트로바도르 서정시 중심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8216;궁정 기사적&#8217; 행동과 대화양식의 중심지이다. 앞에서 심리적 태도변화에 대한 명확한 상을 제시하는 여러 보기들의 출발점으로 &#8216;기사적인&#8217; 행동수준을 설정하였다면, 여기에서는 이러한 기사적 행동양식의 사회발생적 근거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p>
<p>또는 우리가 &#8216;국가&#8217;라고 부르는 것의 초기 형태가 서서히 형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행동은 &#8216;절대주의&#8217; 시대에 &#8216;예절&#8217;의 표어 아래, 오늘날 우리가 &#8216;예절&#8217;에서 파생된 낱말을 가지고 &#8216;문명화된&#8217; 행동이라고 표현하는 그러한 행동수준의 방향으로 변화해갔다. 문명화과정을 밝히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일은 절대주의 정권과 국가의 형성과정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 작업에 요청되는 방법이 과거를 관찰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여러 사실들을 관찰하여보면 &#8216;문명화된&#8217; 행동의 성립은 서구사회가 &#8216;국가들&#8217;로 조직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크고 작은 세력을 가진 무사들이 서구지역을 실제로 장악했던 중세 초의 지방분권적인 사회로부터 내적으로는 어느 정도 평화를 유지하지만 외부에 대해서는 무장한 사회, 즉 우리가 &#8216;국가&#8217;라 부르는 사회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어떤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넓은 지역들이 비교적 안정되고 중앙집권적 하나의 통치기구로 통합되는가. </p>
<p>모든 역사적 구성체들의 발생근거를 묻는 것은 일견 불필요하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현상들, 인간의 태도나 사회제도들도 실제 &#8216;형성된&#8217;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인위적인 추상화를 통해 이 현상들을 자연적 또는 역사적 흐름으로부터 분리하여, 그것으로부터 운동과 과정의 성격을 박탈하고 또 이 현상들을 발생, 변화되어가는 과정과는 무관한 하나의 정적인 구성체로서 파악하려는 사고형식들이 어떻게 이 역사적 현상들의 이해에 평이하고 적합한 것일 수 있겠는가. </p>
<p>다른 사유수단과 방식을 요청하는 것은 어떤 이론적 선입관이 아니라 경험 자체이다. 역사적으로 동적인 모든 것을 부동적인 것으로 또는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을 가진 &#8216;정태주의&#8217;의 호구(虎口)를 피하는 한편, 역사에서 단지 끊임없이 변화만을 보기 때문에 이 변화의 질서와 역사적 구조의 형성을 지배하는 법칙을 꿰뚫을 수 없는 &#8216;역사적 상대주의&#8217;의 용혈(龍穴)로도 빠지지 않고 우리의 의식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유의 길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여기에서 시도되고 있다. 사회발생적·심리발생적 연구는 역사 변화의 질서와 법칙, 구체적인 기제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잡한 것으로, 또는 사유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한 상당히 단순하고 정확한 답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p>
<p>이러한 의미에서 &#8216;국가&#8217;의 사회발생적 근거를 묻는 것이다. 국가의 형성사와 구조사의 한 측면을 말한다면, 그것은 &#8216;권력독점&#8217;의 문제이다. 이미 막스 베버도 처음에는 단순히 개념을 정의하려는 의도에서 물리적인 폭력행사의 독점이 이른바 &#8216;국가&#8217;라는 사회 조직체의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이 연구에서 폭력행사가 서고 경쟁관계에 있던 무사집단의 특권이었던 시대로부터 점차 물리적인 폭력행사와 이를 위한 수단의 중앙화와 독점화에 이르는 구체적인 역사과정을 밝혀내고자 한다. 과거 어느 시대의 독점현성 경향은 현 시대보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관계들이 함께 얽혀 있는 일종의 매듭점인 육체적인 폭력행위의 독점과 더불어 개인을 형성하고 각인하는 장치들, 개인에게서 사회적 태도를 조형해내는 사회적 요구와 금지의 작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안의 형태가 결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p>
<p>전체의 개략으로서 &#8216;문명이론의 초안&#8217;은 사회구조의 변화와 심리적 태도 및 행동구조의 변화 간의 연관관계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제1권에서 구체적인 역사과정을 서술하면서 단지 암시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여기에서 분명하게 진술된다. 제1권에서 사료를 직접 고찰하면서 저절로 드러난 사실들로부터 도출해낸 일종의 이론적 결과로서 수치감 및 정서적 고통의 구조에 대한 짧은 개요가 마지막 장에 들어 있다. 또한 왜 이런 종류의 불안이 문명화과정의 진전과 함께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첨부되어 있다. 동시에 &#8216;초자아&#8217;의 형성을 비롯해 &#8216;문명화된&#8217; 사람들의 정신구조 속에서 의식적 충동과 무의식적 충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몇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 또 역사적 과정의 문제도 이 결론부분에서 비로소 해답을 얻게 된다. 즉 이 모든 과정들이 개인의 행위들로만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어떤 한 개인의 의도와 계획에 따르지 않은 제도와 구성체들이 생성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823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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