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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eesiwoo.net &#187;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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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기다림이 간절한 자는 먼 곳을 본다.  평화가 간절한 자는 유라시아를 본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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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 교동읍성 이데올로기 2026.3.2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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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9 Mar 2026 06:39:34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사진가 이시우]]></category>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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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전문은 첨부된 화일을 열어읽으실 수 있습니다. C. 국가유산포탈 목 차 1) 성곽이념 1. 인구-계급 2. 정착-배제 3. 잉여-수탈 4. 안보-지배 5. 시장-군대 6. 권력이념 2) 교동읍성의 이념 1. 인구 2. 농업 3. 시장 군대 배급 약탈 4. 이념 등의 반대편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전문은 첨부된 화일을 열어읽으실 수 있습니다.<br />
<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6/03/2019110511113901.jpg" alt="" title="2019110511113901" width="640" height="480" class="alignright size-full wp-image-9447" /><br />
C. 국가유산포탈<br />
목     차<br />
1) 성곽이념<br />
1. 인구-계급<br />
2. 정착-배제<br />
3. 잉여-수탈<br />
4. 안보-지배<br />
5. 시장-군대<br />
6. 권력이념</p>
<p>2) 교동읍성의 이념<br />
1. 인구<br />
2. 농업<br />
3. 시장<br />
   군대<br />
   배급<br />
   약탈<br />
4. 이념<br />
등의 반대편을 가슴이라 한다. 몸에 대한 한국말에는 많은 등이 있다. 눈등, 귓등, 콧등, 입등, 손등, 발등이 그것이다. 이들 등의 반대편을 눈깔, 귓구멍, 콧구멍, 손바닥, 발바닥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등의 반대편을 가슴이라 했으므로 기존의 이름 대신 눈가슴, 귀가슴, 코가슴, 입가슴, 손가슴, 발가슴이라고 해보자. 눈가슴은 보이는 것을 끌어안는다. 귀가슴은 들리는 것을 끌어안는다. 입가슴은 음식을 끌어안고, 숨을 끌어안는다. 코가슴은 냄새를 끌어안는다. 손가슴은 사물을 끌어안는다. 발가슴은 대지를 끌어안는다. 뇌가슴은 표상과 개념을 끌어안는다. 사람은 가슴으로 세계를 안는 존재다. 사람은 세계를 안음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인간화된 세계이다. 사람이 경험하는 만큼 인간화된 세계는 창조된다. 안기를 통해 가슴과 세계는 새로운 결을 생성한다. 그 결이 가슴에 의한 결이므로 가슴결이라 하자. 가슴결은 고착된 실체이다. 그러나 가슴결이 안기를 시작하는 순간 가슴이 된다. 안기는 주체이다. 가슴은 실체이자 주체이다. 헤겔은 개념에 세 가지의 기능을 담고 있는데 규정, 작용, 방법이다. 가슴은 규정과 안기를 결합한 개념이다. 가슴규정은 전제된 가슴결이며 가슴안기와 결합하여 개념으로서의 가슴이 되는 셈이다. 가슴이 대상을 안음으로서 가슴결이 생성된다. 개념과 대상존재의 결합이 이념이므로 생성된 가슴결, 정립된 가슴결은 이념과 동의어이다.<br />
 가슴결은 자연가슴결로부터 권력가슴결까지 모든 이념을 포괄한다. 그러나 안기는 직관적으로 모든 것을 포섭하지 못하고 봉합할 수밖에 없다. 안을 때마다 틈이 생기고 그 틈을 봉합하는 것이 안기이다. 따라서 안기에 의해 생성된 결은 항상 틈의 봉합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따라서 이념인 가슴결은 봉합했으나 봉합되지 않은 틈이 항상 존재한다. 그 틈으로 인해 다시 안기가 시작된다.<br />
그 자체로서의 세계와 가슴결의 완벽한 일치는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세계자체와 가슴결이 점점 정교하게 봉합되어 간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확인된다.<br />
이글은 읍성이념을 안기의 운동과 그로인해 생성되는 가슴결로 확인하고, 가슴결에 내재된 틈을 발견하고 봉합하며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추상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전개한다.</p>
<p>죽다 살아난 사람이 깨어나서 맨 처음 하는 말이 ‘여기가 어디지’이다. 인간 뇌에서 인지는 장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소는 본능차원에 머물지 않고 고차적인 인식의 단계마다 소환되어 재구성된다. 맥다웰(Linda McDowell)은 “장소를 규정하는 것은 사회-공간적인 실천이며, 이러한 실천들은 권력과 배제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구성되고 유지된다”고 한다.<br />
 장소의 구체화인 경관에서 이 같은 입장은 더 잘 증명된다. 경관이란 지배적 행위의 주체가 자신의 권력을 세상에 새겨 넣는 작업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경관을 분석하는 작업은 그 경관을 형성한 집단의 생각이나 규범, 가치 등을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br />
글 교동읍성 이데올로기글2 교동읍성 수정추가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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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 러시아 이르쿠츠크 여행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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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8 Apr 2024 14:10:22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사진가 이시우]]></category>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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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우사 김규식과 관련하여 오래전에 썼던 이르쿠츠크 여행기입니다. 유라시아의제의 출현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근대이전까지 전혀 다른 세계처럼 인 식되어 왔다. 헤겔에게 세계사는 유럽사였으며 마르크스에 이르러 비로소 세계의 범위에 아 시아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중국과 한국 일본등은 아시아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4/04/바이칼-호수-알혼섬.jpg" alt="" title="바이칼 호수 알혼섬" width="600" height="338" class="alignright size-full wp-image-9111" /><br />
우사 김규식과 관련하여 오래전에 썼던 이르쿠츠크 여행기입니다.</p>
<p>유라시아의제의 출현<br />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근대이전까지 전혀 다른 세계처럼 인<br />
식되어 왔다. 헤겔에게 세계사는 유럽사였으며 마르크스에 이르러 비로소 세계의 범위에 아<br />
시아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중국과 한국 일본등은 아시아가 아닌 극동(Far<br />
East)이었다. 유럽으로부터 극동까지 유라시아대륙을 하나의 지정학체계로 인식하기 시작한<br />
것은 1차대전 이후부터이다.2) 이같은 인식은 당시 운동가들에게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br />
다.3) 김규식도 그의 논문에서 한반도 독립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의 한<br />
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4) 이것은 다른 운동가들의 민족해방이론과 구별<br />
되는 점이었다.<br />
유라시아체계를 만들어갈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유라시아의제가 출현한 것은 1차대전 직후<br />
이다.5) 첫 번째 유라시아의제는 1919년 미국이 제출한 ‘민족자결주의’였고 두 번째 유라시<br />
아 의제는 1920년 소비에트러시아가 제출한 ‘민족‧식민지문제에 관한 테제’였다.6) 우사 김<br />
규식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 참여와 그 이후 미국행을 통해 미국의 유라시아의제를 경험하<br />
게 되며 1922년 극동민족대회의 참여를 통해 소비에트러시아의 유라시아의제를 경험함으로<br />
서 양대의제의 핵심에 서게 되는 중요한 기회를 갖게 된다. 이 두 번의 기회가 중요했던 것<br />
은 그의 필생의 숙원이 되는 좌우합작의 주체인 좌와 우를 모두 학습하는 기회였다는 것 말<br />
고도, 희망으로서 표방된 유라시아의제와 그것이 집행되고 실행되는 과정에서 변형된 현실<br />
의 의제를 통찰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p>
<p>전문은 아래 pdf화일을 열어야 읽으실 수 있습니다.<br />
글 이르쿠츠크 여행기</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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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글 제주4.3통일운동론 2023.5.1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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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2 May 2023 23:55:55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사진가 이시우]]></category>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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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아래 글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통일청년회, 제주틍일평화교육센터가 주최한 2023년 5월 10일 이시우 평화운동가 4·3 특별강연 &#60;4.3에서 통일로> 강연 자료로 이시우 작가가 쓴 것 입니다. 작가와 주최측의 동의를 얻어 글을 첨부하니 많은 참조 부탁드립니다. 79 페이지로 분량이 길어 첫번째 페이지만 복사해 올립니다. 전문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아래 글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통일청년회, 제주틍일평화교육센터가 주최한 2023년 5월 10일 이시우 평화운동가 4·3 특별강연 &lt;4.3에서 통일로> 강연 자료로 이시우 작가가 쓴 것 입니다. 작가와 주최측의 동의를 얻어 글을 첨부하니 많은 참조 부탁드립니다. 79 페이지로 분량이 길어 첫번째 페이지만 복사해 올립니다. 전문은 첨부를 참조하시면 고맙겠습니다.</p>
<p>이시우_제주 강의 원고 2023 5 10.hwp이시우원고 &#8216;제주4.3통일운동론&#8217;2023 5 10<br />
220.50KB</p>
<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3/05/800edc5e11505483c455f497f4dfc9ad268ee3ad1.png" alt="" title="800edc5e11505483c455f497f4dfc9ad268ee3ad" width="1564" height="912" class="alignright size-full wp-image-8961" /></p>
<p>(이시우 작가)</p>
<p> 이시우 평화운동가와 함께하는 4.3답사 이야기</p>
<p>제주4.3통일운동론  (2023, 5, 10)</p>
<p>사진가 이시우 </p>
<p>목차</p>
<p>(1) 헌법재판소 판결 비판 </p>
<p>1)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부정’에 대한 비판<br />
2) 북한 공산정권을 ‘지지’했음에 대한 비판<br />
3) 미군정기간 공권력의 집행기관의 공격에 대한 비판</p>
<p>(2) 미군정이후 지금까지 이어온 미군점령</p>
<p>1) 1950년 10월 12일 언커크준비위 결정의 불성립과 무효<br />
2) 1954년 11월 17일 38선 이북 행정권이양<br />
3) 1963년 7월 1일 대성동 행정권이양 실패<br />
4) 2000년 11월 17일 남북관리구역합의서</p>
<p>(3) 9.19남북군사합의서 비준‧발효</p>
<p>(4) 작은 연방</p>
<p>1) 평화구역 남북공동 행정권의 수립</p>
<p>1. 법철학과 법경제학의 원리<br />
2. 정책<br />
3. 연합단계 행정권의 한계</p>
<p>2) 평화구역 남북공동 입법권의 수립</p>
<p>1. 자연법론의 장점<br />
2. 사례: 유럽연합에서 유럽연방으로</p>
<p>3) 낮은 단계 연방과 작은 연방</p>
<p>(5) 결론</p>
<p>제주4.3에 대한 정명운동이 있었다. 최근 4.3사건, 4.3항쟁 대신 4.3통일운동으로 성격규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크게 환영한다. 2000년 성우회는 헌법소원에서 4.3명칭을 4.3폭동으로 할 것을 제기했다. 헌재는 이를 기각했지만 단서조항을 달아 4.3희생자중 남로당수뇌부등을 제외시키도록 권고했고 4.3위원회가 이를 수용하여 4.3평화공원에서 이들의 위패가 철거되었다.</p>
<p>필자는 폭동에도 반대하고 항쟁에도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 둘은 진영마다 선호하는 표현이란 점에서 다를 뿐 정통정부를 전제한 점에서는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정부는 1948년 8월15일에 수립되었다. 1948년 4월 당시 한반도에는 정통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고 따라서 정통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통정부를 전제한 폭동도, 항쟁도 법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 미군정은 외국기관이므로 외국에 대한 저항은 항쟁이라기 보단 전쟁에 가까울 것이다. 미군정은 점령기구이다. 국제점령법에 의하면 점령국에 대한 저항은 허용되며, 충성은 강요될 수 없다. 따라서 미군정에 대해서도 4.3은 불법을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p>
<p>따라서 4.3은 그 주체들이 명확히 선언한 대로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 통일정부수립운동이라 해야 할 것이다.</p>
<p>이 글은 첫째 4.3통일운동 정립에 있어서 법적으로 극복해야하는 2001년 헌재판결의 논리를 비판한다. 이 비판의 궁극적 결론은 미군점령의 불법성에 의해 미군정 군정법령체계가 부존재한다는 점이다. 둘째 남측비무장지대에서 지금까지 미국이 점령정책을 유지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한국법체계에 의해 정전협정도 부존재함을 입증하고자 한다. 셋째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서가 비준‧발효됨으로서 정전협정을 대체할 대안이 마련되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넷째 9.19남북군사합의서에 명시된 비무장지대평화지대, 한강하구남북공용수역, 서해평화수역이 작은 연방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신의주와 더불어 남북의 작은연방을 실험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로서 4.3통일운동이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의 성공과 같은 궤에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p>
<p>[..]</p>
<p>전문은 첨부 참조</p>
<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3/05/image011.png" alt="" title="image01" width="768" height="1280" class="alignright size-full wp-image-8960" /></p>
<p>https://m.cafe.daum.net/peacekj/UvsW/65?</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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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3의 미래, 독립운동가 리더십에서 찾자. 도외지역 답사 &#8216;통일국가 건립&#8217; 의제 던진 첫 사건 &#8230; 정명해야-제주투데이2022.10.20</title>
		<link>https://www.leesiwoo.net/?p=895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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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2 May 2023 23:47:29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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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20;4·3의 미래, 독립운동가 리더십에서 찾자&#8221; 도외지역 답사 &#8217;4·3평화통일아카데미&#8217; : 강화중앙교회이시우 &#8220;&#8216;통일국가 건립&#8217; 의제 던진 첫 사건 &#8230; 정명해야&#8221; 기자명박지희 기자bathi@ijejutoday.com 다른 기사 보기 • 입력 2022.10.20 17:38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강화중앙교회. (사진=박지희 기자)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빨간 벽돌로 이뤄진 서양식...]]></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8220;4·3의 미래, 독립운동가 리더십에서 찾자&#8221;<br />
도외지역 답사 &#8217;4·3평화통일아카데미&#8217; : 강화중앙교회이시우 &#8220;&#8216;통일국가 건립&#8217; 의제 던진 첫 사건 &#8230; 정명해야&#8221;<br />
기자명박지희 기자bathi@ijejutoday.com 다른 기사 보기<br />
• 입력 2022.10.20 17:38<br />
<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3/05/image04.png" alt="" title="image04" width="600" height="400" class="alignright size-full wp-image-8957" /><br />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강화중앙교회. (사진=박지희 기자)<br />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빨간 벽돌로 이뤄진 서양식 건물이 웅장함을 드러냈다. 1900년 창립된 강화중앙교회는 민족운동과 교육을 통한 계몽운동에 앞장선 이들이 모인 곳이다.1907년 강화진위대가 강제 해산되자 의병이 일어났고, 이와 연루된 교인들은목숨을 잃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이동휘와죽산조봉암도 이곳 출신이다.<br />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통일평화교육센터가 주관한도외지역 답사 &#8217;4.3평화통일 아카데미&#8217;가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진행했다.<br />
『민통선 평화기행』,『제주오키나와 평화기행』저자 이시우 사진작가는 답사 첫째날인 14일 인천 강화군강화중앙교회에서 &#8217;4.3과 제국주의&#8217;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br />
그는 이동휘와 조봉암의 리더십과 의제설정 능력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모범 선례를 통해 제주4·3에 대한 의제를 전략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br />
1920년 12월 28일 상해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환영회가 열린 당시 사진이 강화중앙교회에 전시돼 있다. 이승만(가운데)의 곁에 카이젤 수염을 기른 국무총리 이동휘(왼쪽)가 서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br />
&#8220;이동휘 선생이독립운동을 펼친 과정에서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한반도의 문제를 한반도라는 틀 안에서만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계적 차원의 의제를 조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만 독립할 수 있다는 의식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죠. 100년이 넘은 역사이지만 이러한 리더십은 조선에 이미 존재했습니다.&#8221;<br />
기독교의 중심에 미국이 있었던 당시 우리나라는 선교를 펼쳐나갔다. 미국에게 독립에 대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하지만 1907년을 기점으로 희망이 꺾였다. 미국이 헤이그평화회의를 통해 &#8216;우리나라를 지지해주면 조선과 필리핀을 넘겨주겠다&#8217;고 일본과 협상을 하며 한일합병조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반미운동이 시작된다.<br />
특히 이동휘는 운동가 중에서도 유능한 지도자로 꼽힌다. 기독교 장로였던 그는 만주에서 연설을 벌이며 독립운동정신 고취를 주도했다. 여성을 독립운동의 주체로 만든 것은 가장 큰 역할 중에 하나였다.<br />
하지만 만주에서도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의 마수가 확대되자 1915년 연해주(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활동하기에 이른다. 그가 머물던 때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혁명도 모스크바 지역에서 일어난 시기다. 등지에서 활동하다 붙잡힌 그는 옥살이를 하던 중 볼셰비키 혁명가들을 만나게 된다. 이는 이동휘가 항일독립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볼셰비키 정권의 원조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을 창설했다. 바로 한인사회당이다.<br />
그러다 1919년을 기점으로 3.1 운동이 전개되면서 국내외에서 여러 임시정부가 조직됐다. 이동휘는 여기서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았지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신이 정당의 당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수락했다. 일본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이 모아져야만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고 판단해서다. 비록 공산주의운동의 선구적 활동을 했지만 그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반일민족독립운동을 우위에 놓고 있었다.</p>
<p>죽산 조봉암의 사진이 강화중앙교회에 전시돼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br />
&#8220;조봉암 선생은 &#8216;핵&#8217;이라는 의제를 1950년대에 던질 수 있던 만큼 세계를 보는 안목이 빛났던 인물이에요. 이동휘와 조봉암은 노선의 차이는 있었지만 개인과 집단을 고취시키는 능력이 월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8221;<br />
1899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죽산 조봉암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여러 직업 전선에 뛰어든 인물이다. 강화에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유인물을 돌리는 방식으로 참여했다가 붙잡혀 1년간 투옥했다.빈털터리 상태로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대학 정경학부에서 공부하던 중우리나라 동경유학생들이 조직한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의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해 아나키즘에 심취했다.<br />
하지만 아나키즘이 관념적 유희에 그쳐 실망하게 된다. 그는 보다 강력한 조직력이 있어야만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다고 판단, 사회주의로 전향한다. 그러다 러시아혁명을 주도한 볼셰비즘의 영향으로 북성회를 조직, 항일운동을 하다가 1922년 귀국해강화도로 돌아왔다.<br />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박헌영과 사회주의운동 단체인 조선공산당을 1926년 꾸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창당 승인을 얻기 위해 모스크바로 비밀리에 파견되는 등 결정적 역할을 한다. 코민테른의 지시로 상해로 가서 코민테른 원동부(遠東部)의 조선대표를 겸직하기도 했다.<br />
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농림부장관을 맡아 농지개혁을 일으켰다. 이 과정은 주목할만 하다. 이미 일본과 러시아, 중국 등의 농지개혁 문제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던 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전국을 순회하며 현지 주민들의 입장을 빠짐없이 듣고 주민간 토론의 장을 열었다. 이는 1년 내내 신문이 도배되는 등 농지개혁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들었다.<br />
또 주목할 점은 1957년 진보당 창당 과정이다. 이 작가는 “조봉암의 탁견은 진보당 강령에 핵 문제를 포함시킨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며 “창당 당시 후배들이 강령을 만들어 찾아오자 ‘한 가지만 추가하자’며 강령 1호에 핵 문제를 넣었다”고 설명했다.</p>
<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3/05/image02.png" alt="" title="image02" width="600" height="400" class="alignright size-full wp-image-8954" /><br />
&#8217;4.3평화통일 아카데미&#8217;가 지난 14일 열린 가운데, 『민통선 평화기행』,『제주오키나와 평화기행』저자 이시우 사진작가는 답사 첫째날인 14일 인천 강화군강화중앙교회에서 &#8217;4.3과 제국주의&#8217;를 주제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br />
&#8220;이처럼 의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도 마찬가지죠. 4.3은 특법법 제정 등 표면적 문제해결에 대해선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 목표인 통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목표와 멀어지고 있어요.&#8221;<br />
이 작가는 그러면서 4.3항쟁의 정식 명칭을 4.3 &#8216;통일운동&#8217;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br />
그는 &#8220;예전에는 4.3을 반란이나 사건으로 부르다가 현재 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4.3항쟁이라는 이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8221;면서 &#8220;&#8216;항쟁&#8217;이라는 단어는 반란과 폭동의 다른 모양새의 이름일 뿐이지 성격은 같기 때문&#8221;이라고 주장했다.<br />
이어 &#8220;정통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폭동·내란으로 규정되고, 주체를 달리 하면 항쟁으로 정의된다. 혁명도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기에 같은 맥락&#8221;이라면서 &#8220;하지만 1948년 4월 3일에는 정통정부가 없었다. 그 시점에는 항쟁과 내란, 폭동 등 그 어떤 것도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8221;는 의견을 냈다.<br />
또&#8221;헌법재판소는 2001년 9월 4·3 당시 진압에 직·간접 관련 있는 인사들이 제기한 4·3특별법 위헌 청구 소송을 각하하면서 희생자 가운데남로당 간부, 무장봉기 주도자 등을 희생자의 범주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단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결&#8221;이라면서 &#8220;결정문을 보면 &#8216;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한다&#8217;고 명시돼 있는데, 당시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기 전이기 때문&#8221;이라고 덧붙였다.<br />
이 작가는 &#8220;4.3이 일어난 이유는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곧 통일국가를 건설하자는 것&#8221;이라면서 &#8220;달리 말하면 4.3은 &#8216;통일국가&#8217;라는 의제를 처음으로 던졌던 첫번째 사건&#8221;이라고 강조했다.<br />
이어 &#8220;이동휘와 조봉암 선생 리더십은 전혀 새로운 길이 아니다. 이러한 유전자가 이미 우리에게 내재돼 있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8221;고 당부했다.</p>
<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3/05/image03.png" alt="" title="image03" width="600" height="450" class="alignright size-full wp-image-8955" /><br />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하고 제주통일평화교육센터가 주관한도외지역 답사 &#8217;4.3평화통일 아카데미&#8217;가지난 14일 진행된 가운데, 이시우 사진작가가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4.3평화통일 아카데미)</p>
<p>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8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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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3항쟁인가 4.3통일정부수립운동인가 &#8211; 민중당정치학교특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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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06 Apr 2018 14:31:45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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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8년 4월 4일 19시 민중당정치학교특강 강의 원고없이 한장짜리 메모만을 가지고 강의하였다. 4.3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위해 방법론을 좀 길게 설명하게 되었는데 작년부터 발전시켜 온 가설에 눈에 띄지 않을만큼 변화가 있었다. 권력-법순환체계에서 권리-법순환체계로 변화가 있었고, 권리에서 권력이 어떻게 도출되는가 하는 과정에...]]></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8/04/IMG_8451-290x290.jpg" alt="" title="IMG_8451" width="290" height="290" class="aligncenter size-thumbnail wp-image-7762" /></p>
<p>2018년 4월 4일 19시 민중당정치학교특강</p>
<p>강의 원고없이 한장짜리 메모만을 가지고 강의하였다.<br />
4.3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위해 방법론을 좀 길게 설명하게 되었는데<br />
작년부터 발전시켜 온 가설에 눈에 띄지 않을만큼 변화가 있었다. </p>
<p>권력-법순환체계에서 권리-법순환체계로 변화가 있었고,<br />
권리에서 권력이 어떻게 도출되는가 하는 과정에 대한 변수가 추가되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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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항쟁으로 주조한 활자-&#8217;이정희.다시 시작하는 대화&#8217; -민중의소리 서평</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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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8 Mar 2017 14:53:23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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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항쟁으로 주조한 활자-이정희.다시 시작하는 대화 여기 항쟁의 복판에서 한권의 책이 태어났다. 항쟁이 아니었으면 신원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아니 항쟁 속에서도 배제의 눈초리와 싸워야 했던 통진당 대표의 저술이란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돋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한계선은 혁명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은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7/03/07061323_001-290x290.jpg" alt="" title="07061323_001" width="290" height="290" class="aligncenter size-thumbnail wp-image-7659" /><br />
<strong>항쟁으로 주조한 활자-이정희.다시 시작하는 대화</strong></p>
<p>여기 항쟁의 복판에서 한권의 책이 태어났다. 항쟁이 아니었으면 신원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아니 항쟁 속에서도 배제의 눈초리와 싸워야 했던 통진당 대표의 저술이란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돋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한계선은 혁명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은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들 앞에서 그어졌다. 만약 이석기, 한상균, 이정희가 항쟁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 항쟁의 한계선도 그들 앞에서 그어질 것이다. 따라서 그 경계에 선 자가 던져온 대화제의는 항쟁의 경계획정과 관련하여 역사적 성격을 갖는다.</p>
<p><strong>대화</strong><br />
그러나 저자의 대화시도는 상처받은 자들이 그러하듯 여전히 조심스러움이 배어있다. </p>
<p>‘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시간에 비하면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오늘은 무척이나 감사한 날이다.’(p.22) </p>
<p>대화란 공동체 안에서가 아니라 공동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평등대신 불평등을 전제한다. 가라타니 코진은 대화란 가르치고-배우기의 관계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평등한 대화란 없다. 가르치기 위해 배워야 하고, 배우기 위해 가르쳐야 한다. 대화는 시작하기가 어렵다. 남보다 위에 서서, 심지어 남과 같은 자리에 서서도 대화는 어렵다. 저자는 오직 ‘아래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p.195)고 말한다. 자발적 불평등으로 남보다 아래에 설 때만이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실제로 저자는 서울대병원 간병인들과 함께 창가에 숨어서 밥을 먹으며 ‘은근히 서러워졌던’(p.115)경험을 말한다. 서러운 마음으로 창밖의 세상을 바라본 경험이 있기에 그의 대화시도는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배우는 자세만으로는 대화가 안된다. 가르침이 없다면 그 또한 대화가 아니다. 가르침의 방편일 진보정치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p>
<p>‘진보정치의 역할은 이 길로 가자고 말하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장애물은 어떻게 치울 것인지 방법을 말해주고 좀 더 빨리 갈수 있게 돕는 것뿐이다.’(p.255)</p>
<p>가르치는 자세가 아닌 ‘돕는’자세에서 저자는 코진의 방법을 극복한다. 내가 내려서는 것은 상대가 올라서게 하기 위함인데 그것이 가르치는 자세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한편 개인 간의 대화조차 그 밑바탕에 사회적 장벽 있음을 발견하는데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이 있다. 이제 저자는 노동자가 대화의 주체로 올라서기 위해 대등한 사회적 지위가 필요함을 지적한다. </p>
<p>‘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 올라서는 유일한 방법이 노동3권 행사다.’(p.155)</p>
<p>노동3권. 말로는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냉혹하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결코 평등한 대화를 할 수 없는 법적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저자는 30년 전에 유행한 노동법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노동3권은 노동자가 대화의 주체로 인정받기위한 전제이다. 그러나 내가 준비되었다고 대화가 가능해지지 않는다. 대화상대를 찾기가 어렵다. 인정의 대상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의점 알바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알바는 자신의 노동3권을 주장할 상대를 찾는 것부터가 어렵다. 저자는 경제적･조직적 종속성이란 새로운 개념을 적용하여 이 문제를 푼다. 그리하여 가맹점 사장님이 고용한 알바라는 외형의 틀에 갇히지 말고 알바들의 노동조건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경제적 결정권을 가진 존재, 프랜차이즈본부를 진짜 사장으로 불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p.226) 저자가 사회적 묵언기간동안 노동문제에 얼마나 깊이 천착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이다.<br />
인정주체는 반드시 노동자라는 하나의 정체성만을 갖지 않는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은 계급이 아니라 계층이다. 저자가 노동자계급 내 계층에 주목하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 착취 받지만 바로 그래서 현행법의 틀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p>
<p>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키기를 갈망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행법의 틀도 뛰어넘을 수 있다. 그것이 진보적 상상력이다.(p.191)</p>
<p>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바뀌는 것은 구체성을 갖는 것이다. 구체적이란 대립하고 모순되는 모든 측면과 계기를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정규직과 청년노동에 노동계급과 사회전체의 문제들이 집약되어 있다. 그것이 한명의 노동자에 이르면 구체성은 더 많은 복잡함을 포함하게 된다.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 다친 고3의 공 모군,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온 대학생 시영씨에게서 저자는 새로운 주체를 발견한다. ‘주권자’이다.</p>
<p>주권자인 국민은 헌법을 통해 연소자의 노동을 특별히 보호하도록 명하였지만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특별한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p.209)</p>
<p>평상시 우리는 소비자, 근로자, 대중으로 불린다. 그러나 저자가 항쟁의 시대에 불러낸 주체는 ‘주권자’이다.<br />
<strong><br />
주권자</strong><br />
좀 낯선 시각으로 주권문제를 접근해보기 위해 칼 슈미트의 &#8216;정치신학&#8217; 첫 장을 펼쳐보자. 그는 ‘주권자란 예외를 결정하는 자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주권자란 독재자를, 예외란 헌법의 적용이 정지되는 비상사태를 말한다. 헌법은 헌법 스스로의 한계를 결정할 수 없다. 그 한계를 정하는 자는 헌법 밖에 있다. 그래서 헌법의 예외는 주권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 쿠데타가 그렇고 통진당해산과 더불어 진행된 국회의원직 박탈이 그렇다. ‘계엄령만이 답’이라고 외치는 이들의 의지를 이론적으로 표현하기에 나치전범재판정에 섰던 슈미트의 정의처럼 간명한 것은 없을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시민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근거 역시 있다. 도노소 코르테스는 부르주아지를 ‘토론하는 계급’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그의 사상을 더 정확한 표현으로 만들기 위해 한글자만 추가하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부르주아지는 ‘토론만하는 계급’이다.” 자유주의의 본질은 결전의 순간에 결정을 하는 대신, 토론을 개시하려는 데에 있다. 결정대신 토론을 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이같은 비판은 코르테스만의 것은 아니다. 정 반대편에 서 있는 저자 역시 토론만 잘하는 소위 ‘합리적 진보정치’란 이름의 자유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p>
<p>‘정치인이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면 지지자들이 만들어지고 박수가 쏟아진다. 문제를 해결할 사람으로 기대를 모은다. 거기까지다.’(p.127)</p>
<p>저자가 말한 ‘거기까지’란 토론만 하는 자유주의의 한계선이다. 정치적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헌법안의 진보’(p.126)역시 본질은 자유주의이다. ‘정치적현실주의는 진보정치의 영토를 넓히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과는 수구세력의 자기장 확대로 나타났다’(p.125)는 저자의 통찰은 자유주의가 수구를 강화시키는 역설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토론권이 아닌 저항권이 독재주권을 대체할 수 있는 민중주권의 수단임을 말한다. </p>
<p>민중이 주권자로서 지위를 찾기 위한 것이라면 저항권의 행사로서 헌법과 법률의 틀을 넘어 합법으로 시인되게 하는 것, 이것이 진보정치에 필요한 상상력이다.(p.142)</p>
<p>주권자는 법밖에 있으면서 법안에 있는 자이다. 법 밖에서 법의 한계를 결정하되 다시 그 주권을 법안으로 끌고 들어가 합법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권력의 축적체계이다. 그리고 축적된 권력의 성과는 일상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주권자는 일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내가 읽기에 저자는 이것을 ‘헌법을 통한 주권자의 명령’(p.209)이라고 표현했다.</p>
<p><strong>명령</strong><br />
11월 5일 촛불집회에서 김영호전농의장은 11월 12일 정오까지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했다. 그 뒤 ‘국민의 명령’이란 말이 항쟁의 언어로 정착되었다. 주권자인 민중이 ‘명령자’로서의 지위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명령을 따르지 않고 버티는 박근혜에 대해 탄핵결정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공권력을 장악한 독재주권과 달리 민중주권은 명령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단이 미흡한 것이다. 저자는 그 수단을 조직에서 발견한다.   </p>
<p>인간으로서의 존엄, 주권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조직을 이루는 것이다. 조직 중에서도 노동조합과 정당이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pp.251-252)</p>
<p>노조나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일상은 토론과 결정이다. 이들 조직이 일사불란한 수구단체들과 다른 점은 ‘토론’에 있고, 자유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결정’에 있다. 토론만하는 조직이 아니라 토론하여 결정하는 조직이었기에 오늘날 민중주권의 성취는 가능했다. 전원참여, 전원발언, 전원실천의 원리가 조직의 일상으로 더욱 뿌리내려야 한다. 그것이 명령자로서의 주권자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제이다. </p>
<p>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9장에서 ‘귀족들은 지배하고 명령하기 원하며, 인민들은 지배받지 않고 명령받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한다면, 인민은 지배받지 않게 해 줄 지도자에 대해 그의 명령을 따를 용의를 가진다. 독재주권자는 지배와 명령을 원한다. 민중주권자는 비지배와 비명령을 원한다. 그러나 민중은 비지배를 실현시킬 지도자라면 그 명령을 따를 용의를 가진다. 명령자는 주권자의 힘을 표현하는 지위이다. 검증된 지도자와 실천하는 민중의 유기적 조직이야말로 ‘주권자로서의 힘을 발휘’(p.196)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리하여 조직된 비폭력은 폭력보다 힘이 세고, 조직된 폭력은 비폭력보다 평화적이다. 폭력과 비폭력의 모순을 해결하는 근거가 바로 조직력인 것이다.  </p>
<p>공산당선언이 고전이 된 것은 저자의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보편적 상식을 집약했기 때문이다. 항쟁이 진행되는 생생한 순간, 항쟁의 용광로에서 날 것 그대로의 살아 꿈틀거리는 ‘상식’을 집약하는 것은 모든 주권자들의 의무이고 기쁨이다. 만일 이 책이 항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다면 항쟁의 경계를 확장할 기회는 아직도 우리 손에 남아 있다.</p>
<p>http://www.vop.co.kr/A00001130574.htm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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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항쟁의 선택, 파쿠비우스냐 레닌이냐- 민중의소리 기고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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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9 Nov 2016 03:28:38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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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항쟁의 선택, 파쿠비우스냐 레닌이냐 이시우 사진가 발행 2016-11-09 11:36:36 수정 2016-11-09 11:36:36 이 기사는 27번 공유됐습니다 항쟁이 시작되었다. 범상치 않은 공기가 전국을 배회한다. 집회･시위란 법적용어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항쟁이란 역사적용어가 심장에서 박동치기 시작했다. 항쟁이란 낡은 공권력의 시각으로 보면 질서파괴적 시위, 폭력시위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항쟁의 선택, 파쿠비우스냐 레닌이냐</p>
<p>이시우 사진가 </p>
<p>발행 2016-11-09 11:36:36 </p>
<p>수정 2016-11-09 11:36:36 </p>
<p>이 기사는 27번 공유됐습니다 </p>
<p>항쟁이 시작되었다. 범상치 않은 공기가 전국을 배회한다. 집회･시위란 법적용어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항쟁이란 역사적용어가 심장에서 박동치기 시작했다. 항쟁이란 낡은 공권력의 시각으로 보면 질서파괴적 시위, 폭력시위로 구분되는 불법행위이다. 기본권의 제약을 감수하고라도 개인 간에 생기는 분쟁을 조정･강제하기 위해 권력을 위임한 것이 공권력이다. 그러나 그 위임을 철회하고 공권력을 국민의 손에 환수하여 새로운 법질서를 세우고자 함이 항쟁의 본질이다. 항쟁은 권력을 주인이 환수하는 역사의 시간에 호출되는 용어인 것이다. 그리하여 항쟁의 근본문제는 권력이다.</p>
<p>항쟁의 양</p>
<p>항쟁은 시간적측면에서 보면, 민중의 힘이 위임된 공권력을 넘어서는 순간 시작되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순간 완성된다. 항쟁의 법질서적 형식인 집회･시위는 원칙적으로 일정한 물리적 힘을 가지고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언론･출판의 경우와 다르다. 따라서 항쟁의 척도는 힘이다. </p>
<p>힘을 정치적으로 번역하면 지배력이다. 나는 ‘order’라는 단어에서 항쟁의 발전단계의 탁월한 유비를 발견한다. ‘order’는 ‘요청’, ‘명령’, ‘질서’등 여러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 말을 힘, 즉 지배력의 발전단계에 따라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요청’은 기존의 법질서의 틀에서 위임된 권력에게 소극적 힘을 행사하는 단계이다. ‘명령’은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위임된 권력자로부터 권력을 환수하는 적극적 지배를 행사하는 단계이다. ‘질서’는 권력의 환수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권력이 요구하는 체제를 내면화시키는 단계이다. 질서란 외형적인 강제가 없이도 권력이 행사되는 내면화된 권력이다. 새로운 질서를 창출함으로써 항쟁의 목적은 완수된다. 이를 ORDER1(요청), ORDER2(명령), ORDER3(질서)라고 명명하자. 작년부터 시작된 민중총궐기는 1년간 ORDER1(요청)단계였다. 그러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1월 12일 정오까지 박근혜하야를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함으로써 ORDER2(명령)단계에 들어섰다. </p>
<p>항쟁을 공간적 측면에서 보면 ‘법적공간의 변경’을 의미한다. ORDER1(요청)은 법적으로 허용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ORDER2(명령)은 법적으로 허용된 공간을 변경, 극복한다. ORDER3(질서)는 새로운 법적공간을 창조한다.</p>
<p>작년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의 차벽은 조선일보-광화문네거리-세종대왕상-경복궁 앞에 4중저지선을 형성했다. 그러나 2016년 10월 29일에는 경복궁에, 11월 5일에는 세종대왕상과 경복궁에만 차벽을 설치하여 저지선의 절반이 후퇴했다. 시민들은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광화문광장이 열림으로써 벅찬 해방감과 승리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광화문저지선은 물론이고 경복궁저지선도 합법적이라고 할 수 없다. 청와대 주변의 원천봉쇄작전은 경찰청이 아니라 청와대 경호실이 지휘한다. 경호실장은 재량에 따라 경호구역을 설정하도록 되어있고 경호대책위원회에 포함된 경찰청이 업무분장에 따라 대통령경호작전에 투입되는 것이다. 집시법에 따르면 청와대 100m밖에서는 모든 집회가 가능하다. 청운동사무소가 집회의 마지노선이 되는 이유다. 경호구역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함이 분명함에도 법률에 구체적 근거없이 경호실장이 상황에 따라, 그것도 비밀로 지정하도록 되어 있다. 경복궁에서 로켓포 등 군사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이상 공간상으로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럼에도 사직로-율곡로까지 경호구역을 설정하여 집회시위는 물론 통행조차 막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p>
<p>법적 테두리에서 진행되는 항쟁의 1단계(ORDER1)은 경호구역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청와대 100미터(청운동사무소)앞에 서는 것이다. 물론 기자회견이라면 청와대 앞도 합법이다. 항쟁의 2단계(ORDER2)는 이를테면 100미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국민의 명령은 대통령하야이지 대통령테러가 아니므로 대통령 경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호실은 청와대내부에서만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청와대 광장이 국민의 힘에 의해 열린다면 공간적 의미에서 항쟁의 2단계인 것이다. 항쟁의 3단계(ORDER3)에 이르면 청와대는 위임된 권력의 은폐된 독재적 공간에서 국민다수의 민주적 공간으로 변경될 것이다. </p>
<p>항쟁의 질</p>
<p>항쟁의 양적 발전은 질적 발전을 수반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항쟁을 질적측면에서 보면 ‘주체성’의 발전문제이다. 주체(Subject)란 단어는 Sub(아래에)-ject(던져지다)란 합성어이다. 발아래 던져진 존재란 뜻에서 근대이전, 이 단어는 ‘피조물’, ‘하인’이란 뜻으로 통용되었다. 남의 강제에 의해 던져진 수동적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근대를 전후하여 이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주체’, ‘주인’, ‘주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남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민중의 삶 속에 자기를 던지는 존재는 이미 주인이다. 던져진다는 형식은 동일하나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경우 비약이 일어난다. ‘목숨을 건 비약’이다. 절벽에서 나뭇가지를 놓을 수 있는 자야말로 대장부라는 백범의 비유가 이에 적절하다. 주체성은 준비보다 결단이며, 수기(修己)보다 치인(治人)이다. 항쟁지도부는 국민의 이름으로 11월 12일 정오까지 박근혜의 하야를 명령했다. 이로서 항쟁은 1단계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박근혜가 하야하면 항쟁은 바로 3단계로 진입하며, 하야하지 않으면 낡은 법질서의 집행자인 공권력을 강제･지배하는 2단계로 돌입한다. 박근혜에게 명령을 통첩한 이상 이제 주체는 ‘요청자’에서 ‘명령자’로 지위가 바뀌었다. ‘명령자’로서 혹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로서 국민은 새로운 주체로 질적 변화를 이룬 것이다. 이는 누군가에겐 가슴 벅찬 일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역사적인 항쟁의 순간, 동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결국 민중은 두가지 테제의 선택 앞에 놓여지고, 항쟁의 질이 결정된다. 하나는 자유주의의 길이며, 또 하나는 진보주의의 길이다.</p>
<p>자유주의정치의 귀감이 된 것은 파쿠비우스테제이다. 알프스산맥을 넘은 한니발부대의 공격에 직면한 도시 카푸아에서는 항쟁이 일어났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원로원 귀족들을 처단하라는 요구가 들끓었다. 파멸적위기를 직감한 군주 파쿠비우스는 노련한 정치적지략을 발휘한다. 우선 원로원귀족들을 찾아가 당신들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으니 모든 것을 나에게 위임하라고 한다. 원로원은 그의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화난 군중들 앞으로 나아가 당신들이 원한다면 귀족들을 모조리 처형하겠다. 대신 국정공백이 있으면 안되니 당신들 중에 귀족들을 대신할 지도자들을 뽑아달라고 한다. 원로원 처단에는 한 목소리였던 민중들은 막상 지도자를 뽑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자 누구는 이래서 안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된다고 하며 분열되어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분열과 혼란이 극에 달할 때쯤 파쿠비우스가 나서 중재안을 냈다. 여러분이 당장 지도자를 뽑지 못하니 우선 기존의 원로원을 유지하며 위기를 수습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민중들은 달리 방법이 없었으므로 파쿠비우스를 따랐다. 마키아벨리가 <로마사강의>에 소개한 일화이다. </p>
<p>준비되지 않은 군중을 통치하는 방법으로, 파멸적 위기를 조화의 기회로 승화시키는 정치의 기술로, 마키아벨리는 파쿠비우스테제를 제시했다. 이는 민중을 지배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지배엘리트를 위한 테제이다.</p>
<p>이것을 뒤집은 진보주의정치의 귀감은 레닌테제이다. 1917년 2월 러시아혁명이 일어났을 때 파쿠비우스테제의 망령이 다시 살아났다. 혁명을 일으킨 노동자민중들이 의회가 있는 타브리다궁으로 몰려가 우리를 통치해달라고 의원들에게 청원한 것이다. 그 결과 민중이 아닌 의회권력에 의해 임시정부가 꾸려졌다. 이 같은 상황은 6월까지 지속되었다. 6월초 정국수습을 위해 처음 열린 전러시아소비에트대회에서 임시정부의 지도자는 “현재 러시아에 권력을 넘겨받아 ‘우리가 당신들을 대신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당이 과연 있는가”라고 다그치듯 물었다. 조용해진 대회장 한가운데서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 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에도 모든 권력을 장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레닌이었다. 당시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당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혁명 후 전시공산주의의 실패과정을 떠올리면 완벽한 집권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러시아혁명은 성공했고, 역사상 최초로 지배를 받기만 하던 민중이 지배세력이 되었다. 레닌은 민중의 주체성의 본질이 준비와 경륜보다 결단에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p>
<p>파쿠비우스테제는 민중의 준비 안 된 상태를 전제한다. 그러나 전제한다는 것은 민중이 영원히 준비될 수 없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지프스를 만드는 것이다. 파쿠비우스주의자들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민 여러분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겠으나 여러분은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 달라.’ </p>
<p>11월 12일 박근혜 하야를 명령한 국민에게, 정치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당신들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답하겠다.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다음과 같이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권력은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에 맡겨달라”</p>
<p>그러고 보니 이번 주의 시작인 11월 7일은 100년 전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날이다.</p>
<p>&#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2;&#8211;<br />
이시우 사진가는?</p>
<p>이시우 사진가는 보통의 사진가와 작업 방식이 다르다. 그는 사진 촬영하기 전에 먼저 당대의 지식수준을 독파할 정도의 공부를 한다. 비무장지대, 지뢰, 한강하구, 미군, 제주 4.3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해온 이시우 작가는 그 결과물로 <민통선 평화기행>, <한강하구>, <유엔군사령부>와 같은 저서를 펴냈다. 이 책들은 어지간한 박사논문에 뒤지지 않을 독창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서이기도 하다. &#8216;자본주의&#8217;를 주제로 사진 촬영 준비할 때는 <자본론> 통신강의를 2년간 들으며 이론공부를 했다.</p>
<p>분단과 반공이 지배하는 우리 현실을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유라시아체계를 화두 삼아 공부하는 이 작가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 미군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 독일의 미군부대와 러시아, 베트남, 유고의 역사와 지도자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 2007년, 미군을 주제로 한 사진 때문에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된 이시우 작가는 1심에서 무죄로 석방된다. 이후 작가는 국가보안법의 뿌리를 찾아 제주4.3을 주제로 사진작업에 몰입했는데,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은 이 시기의 연구 작업과 기행의 기록물이다. 비무장지대 지뢰밭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찍은 <지뢰꽃>(1997) 사진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도 한 이 시우 작가는 말한다. &#8220;창작을 함에 있어 감옥에 가거나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 창작의 순간에는, 그 모든 각오와 노력을 홀연히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초연해야 한다.&#8221;</p>
<p>저서</p>
<p><사진시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1999)<br />
 <민통선 평화기행>(2003)<br />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 한강하구>(2008)<br />
 (2013)</p>
<p>사진전<br />
<한국의 대인지뢰 피해자들>(1999,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초대사진전)<br />
 <눈 위에 핀 꽃>(2010, 대전시립미술관 분단미술전)<br />
 <한강하구>(2010, 공간 415)<br />
 <主體寫象>(2012, 아트스페이스풀)</p>
<p>수상<br />
 박종철인권상(2007) 사월혁명상(2008) 늦봄통일상(2010)</p>
<p>출처 &#8211; 도서출판 말</p>
<p>http://www.vop.co.kr/A00001086695.htm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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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러시아혁명여행 모스크바 답사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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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8 Jul 2016 16:00:39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category><![CDATA[역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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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7년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마도 내년은 전세계적으로 러시아혁명을 재조명하는 논의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대 중국공산당을 비롯 전세계 사회주의진보운동에서는 러시아혁명기의 논쟁이 예외없이 재등장하고 있다. 소련의 패망이 미국의 승리를 의미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련내에서 패배한 노선이나 정책들이 어부지리로 승리했음을 의미하지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17년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마도 내년은 전세계적으로 러시아혁명을 재조명하는 논의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대 중국공산당을 비롯 전세계 사회주의진보운동에서는 러시아혁명기의 논쟁이 예외없이 재등장하고 있다. 소련의 패망이 미국의 승리를 의미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소련내에서 패배한 노선이나 정책들이 어부지리로 승리했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러시아혁명과 건설에 대한 주체적해석은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p>
<p>80년대 한국민주화운동에 있어서 러시아혁명사는 엄청난 열정과 창조적영감을 불어넣었던 원천이었다. 그러나 이미 70여년전인 1918년 한국최초의 근대정당인 한인사회당창당이 볼세비키혁명가들의 헌신적 희생으로 가능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20년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러시아혁명과 코민테른을 지우면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고리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우리 역사에선 이 같은 사실이 지워지거나 잊히도록 강요받았다. 근대한국의 형성에서 러시아혁명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p>
<p>소련 패망후 운동권에서조차 폐기처분된 책과 자료들을 차곡차곡 긁어 모으고 줄쳐 읽어가며 나는 다시 왜곡된 사실을 가려내고 현실변혁의 유효한 이론이 거기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p>
<p>이에 관련 글을 준비하려다가 여의치 않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이일을 할 수 없다. </p>
<p>대신 간략하나마 여행정보로 요약해 보았다. 여행정보라고 해서 가벼운정보는 아니다. 오히려 한 장소를 특정해야하는 작업은 관습적인 학문연구로는 해결하기 힘든 창의력과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들면 답사지 중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은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곳이었다. 조봉암, 박헌영, 호치민등 아시아혁명가들의 이력에서 이 대학출신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이 대학에 관한 연구는 부족하며 부분적으로는 부정확하다. 임경석의 책 &#8216;모스크바밀사&#8217;에 게재된 이 대학의 사진은 틀린 사진임이 확실하다. 또한 당시 이 대학을 방문하여 상세한 기록을 남긴 미국여성운동가 어네슈타인 에반스가 기록한 주소는 틀린 것이었다. 아니면 행정구역 변경으로 주소가 변경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현재의 주소지엔 이 대학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스트라스트노이수녀원에 관한 러시아 자료에서 이 대학의 사진과 이곳의 기숙사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하는 관련글을 교차확인할 수 있었다. 소련시절 이 수녀원은 철거되었으며 이 대학 역시 철거되었다. 그 터엔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다. 코민테른 본부도 새롭게 확인하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한 책에 사진과 함께 러시아연방의회건물을 구 코민테른본부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잘못이었다. 코민테른은 러시아사회학대학교로 쓰이고 있다.   </p>
<p>중국정부는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이왕이면 쌍뜨 뻬쩨르부르크와 모스크바, 핀란드등 혁명유적지를 돌아보는 &#8216;혁명여행&#8217;, &#8216;붉은관광&#8217;을 장려하고 있다. 여행경비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곳이지만 한국인들도 이들 도시를 찾는 여행객이 많아졌다. 간혹 &#8216;혁명여행&#8217;을 계획하고도 정보의 부족으로 내실을 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답사지의 정확한 주소나 내용등을 모두 정리해서 올릴 시간이 없어 아쉽지만 혹시 &#8216;혁명여행&#8217;을 계획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저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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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만주(동북3성)여행 강의자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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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8 Jul 2016 09:16:25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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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encoded><![CDATA[<p>만주는 중국에선 동북 혹은 연변자치주라고 부릅니다. 만주란 이름은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중국인으로서는 일제의 만주국을 떠올리게하는 치욕의 이름일때가 많습니다. 어쨌든 우리에겐 독립운동의 성지 중 하나여서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더듬어가며 숙연하게 여행하는 곳이지요. 저는 해외독립운동을 &#8216;국민만들기&#8217;란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국가의 3요소를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하죠. 주권도 영토도 빼앗긴 상황에서 해방과 건국을 위한 준비는 사람, 즉 국민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독립운동과정에서 형성된 &#8216;국민&#8217;은 해방과 함께 남북의 서로 다른 국민으로 태어납니다. 오늘날 남북의 국민은 하나이면서도 너무 다른 두 국민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개성공단노동자들과 한국관리자들의 적응과정이나, 새터민들이 남쪽에서 적응하는데 겪는 어려움의 기원은 멀리 독립운동과정에서의 국민만들기의 차이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생각입니다. 다음 자료는 답사지를 이동하는 버스안에서의 긴 시간을 활용하여 진행한 강의의 일부입니다. 여행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p>
<p>만주여행-국민만들기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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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미정에서-45호 2013여름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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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Jul 2013 07:51:53 +0000</pubDate>
		<dc:creator>leesiwoo</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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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57' title='사진 1702'><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702-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702" title="사진 1702"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58' title='사진 1694'><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694-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694" title="사진 1694"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59' title='사진 1695'><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695-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695" title="사진 1695"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60' title='사진 1696'><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696-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696" title="사진 1696"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61' title='사진 1697'><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697-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697" title="사진 1697"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62' title='사진 1698'><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698-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698" title="사진 1698"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63' title='사진 1699'><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699-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699" title="사진 1699"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64' title='사진 1700'><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700-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700" title="사진 1700" /></a>
<a href='https://www.leesiwoo.net/?attachment_id=7365' title='사진 1701'><img width="290" height="290" src="http://www.leesiwo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13/07/사진-1701-290x290.jpg" class="attachment-thumbnail" alt="사진 1701" title="사진 1701"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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