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19일째-유엔사해체와 미군작전의 약한고리 5 2004/07/12 1054

5027작계의 실질적 지휘부가 될 지휘소 오스카 텐트시티. 대구 갬프워커

유엔사해체와 미군작전의 약한고리-작전계획5027

이시우

트럭

길을 가다보면 덤프트럭은 그 덩치 때문에 지날때마다 먼지를 날리고 매연을 쏟아놓듯 내뿜는다. 운전수를 보니 젊고 서글서글한 인상이다. 문제는 그가 덤프트럭을 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지만 개인과 분리시킬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분리와 연관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럴 때 문제는 누가 선이고 악인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태를 개선하는 것이다. 개선하는게 선이고 개선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이 악이다.
그러나 개선에는 합의하는데 서로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가 있다. 상대방의 요구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조절한다면 그것이 선이다. 이해나 요구는 논리의 영역이 아니기에 논쟁되기보다 조절되고 합의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도 양보도 되지 않을 때 돌파구가 없을 때 궁극에선 힘만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우월한 힘을 가진자가 일방적이고 배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권력이다. 수평적이고평화로운 해결을 막는 다는 점에서 힘 자체가 악이다.
그래서 힘 자체에 저항하는 운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제도화된 힘을 갖지 않으려는 무정부주의가 나타난다. 그러나 힘은 산술이 아니다. 힘은 량과 방향의 통일이다. 힘이 서로 비슷하여 일방적인 권력의 행사가 방해 받을 때 분쟁, 전쟁이 일어난다. 힘 역시 궁극적으로는 가치이기 때문에 산술적 양과 함께 사상과 의지 신념과 같은 방향이 중요시 된다. 힘은 양에 의해 주도 될 수도 있고, 의지에 의해 주도 될 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대체로 미국이 힘의 량에서 우세했다면 호치민과 지압의 부대는 사상과 의지에서 우세했고 결국 그 엄청난 물량공세를 이겨내고 승리했다.

미군 전략과 작전의 약한고리

미군 재배치 계획의 배후가 지난 3월 말 LA 타임스가 보도한 ‘1-4-2-1 전략’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2002년 5월 마련한 ‘방어계획지침(DPG)’이라는 군사 전략 계획을 수립하면서 이 전략을 채택했다.
여기서 1은 미국 본토에 대한 완전 방어를 뜻한다. 4는 전세계를 동북아·동남아·중동·유럽 4개 권역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 미군을 전진 배치해 가상 적의 침략 및 위협을 사전 억제한다. 2는 네 지역 중 두 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전진 배치된 미군을 두 곳에 집중해 단기간에 승리를 거둔다는 전략이다. 마지막의 1은 이 두 전쟁 중에서도 또다시 미국이 선택하는 한 곳에 군사력을 총집중해 정권 교체와 점령을 수행함으로써 결정적 승리를 거둔다는 계획이다.’(서재정 교수 ‘미국의 1-4-2-1 군사전략’ 참고)
작계-5027은 2년마다 내용이 수정되어 왔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의정부가 출범한 1998년부터 작계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그 이전만 해도 북한이 공격해올 경우 이를 격퇴하고 휴전선 이북으로 몰아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작계 5027-1998’부터는 적을 끝까지 추격해 북한 전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으로 확대된 것이다. 유사시 주한미군 3만7천명에 최대 69만명의 미군을 증원한다는 군 증강 계획 역시 이때부터 마련되었다. (시사저널 2004/06/03 762호)

미군의 작전계획이 ‘점령과 군정실시’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위 기사는 가조했다. 점령과 군정을 현재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존재는 유엔사뿐이다. 이라크전쟁의 과정에서 보이듯 전쟁의 시작도 점령통치도 일일이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외교적 수세에 몰릴 때 미국으로서는 군사적으로 성공하고 외교적으로 난처한 위치에 처할 상황이 된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걸프전의 성격을 미군의 집단적 자위조치로 해석했고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주도한 프랑스는 유엔차원의 행동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는 유엔사의 존재로 인해 이러한 과정이 전혀 필요없다. 따라서 1-4-2-1전략에서 목표로 하는 마지막 1은 약간의 상식만 가지고 있다면 이북임을 어렵지 않게 추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전계획은 기밀이란 사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작전계획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전쟁에 대입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인 순간에 모든 계획은 다시 짜여지는 것이 여지껏 미국이 주도한 전쟁에서의 추세다. 또한 작전계획의 윤곽이 공개되더라도 기밀이 유지 되어야하는 핵심계획이 있다. 파월을 중심으로 한 걸프전 지휘부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언론이 쿠웨이트로 출격하는 폭격기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출격이 보도되면 후세인은 전쟁의 시작으로 보고 현지 미국을 집중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아직 후방 보급선이 건설되지 않은 미군으로서는 치명타를 얻고 전쟁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며 계획에 차질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기자들은 출격상황을 일상적인 출격훈련과 구분하지 못하여 눈치채지 못했고 파월은 이 대목에서 기밀이 유지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공개된 5027계획에는 이미 미군 증원이 명시되어 있다. 일반인들도 작전계획의 변화추세를 보면 미국의 계획을 한눈에 알텐데 상대방인 북이 그 의미를 해석치 못할 리가 없다. 미국이 이 작전계획을 숨기고 진짜로 전쟁을 계획한다면 북이 속을 정도의 상당한 평화공세를 취해 북의 긴장을 완화시킬 정도의 기만이 완벽히 성공할 때나 가능하다. 즉 이 계획들은 심리전용은 될 수 있어도 실전용은 아니다. 군사적 메카니즘에 어두운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그저 놀랍고 위협스러운 것일 뿐이다.

또한 김정일 제거작전이 추가된 부분이다. 코넬 대학 서재정 교수(현재 연세대 교환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의 군사 정책은 ‘신 롤백 전략’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신 롤백은 기존 롤백 전략의 핵심인 점령정책에다 선제 공격을 추가한 것이다. 신 롤백 전략은 ‘작계 5027-2002’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 제거 작전을 추가’하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적국의 지도부를 색출 제거한다는 개념을 미군은 파나마 이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패했다. 붉은 여명黎明이라고 명명된 후세인 체포작전에는 美 제4사단 1여단 병력 600명과 이들을 지원하는 기병·항공·정찰 병력이 동원됐다. 수색 작전을 주도한 것은 121특수부대이다. 특수부대원과 CIA 요원으로 편성된 이 부대는 지난 8개월 동안 후세인과 주요 측근들만을 추적해 왔다. 후세인의 체포는 이미 군정이 실시되는 정도의 상황에서야 가능했다. 그리고 라덴과 오마르와는 달리 어떤 저항세력도 지도하고 있지 못한 무력화상태였다. 노리에가는 체포된 게 아니라 자수했다. 당시에 그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는 주파미군사령관이었던 워너와 체니의 갈등으로 설명된다. 당시 전시 작전명은 ‘블루스푼’이었고 야전사령관은 ‘워너’였으며, 합참의장은 ‘크로’, 국방장관은 ‘체니’였다.

1980년에 이란에서 ‘사막1호’라는 인질구출작전이 실패로 끝나자마자, 국방부는 대테러작전수행을 위해 합동특별작전사령부(JSOC)를 창설했다…..체니는 델타팀과 SEAL팀 6의 일부를 파나마에 파견할 것을 대통령에게 권고하자는 크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크로는 그러고 나서 파나마에 있는 워너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워너는 또다시 자신은 펜타곤이 생각하는 새로운 병력이동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로로서는 병력증강을 거부하는 사령관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워너는 워싱턴의 압력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블루스푼’비상사태 계획은 노리에가의 생포를 위한 1개 델타팀 운용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델타팀이 오게 된 것이다. 미국은 군사개입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인데 워너는 이런 움직임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블루스푼’의 일부로서 혹은 독립적으로 수행될 전격작전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만일 이 작전이 실패한다면, 파나마에 있는 모든 미국인들을 위험에 몰아넣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워너가 생각하기로는 전격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노리에가의 종적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고 있었다. 워너는 노리에가가 있었던 장소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어떤 특정한 시간대의 노리에가의 행적은 물론, 특히 노리에가의 일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노리에가를 생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워너는 자신의 비밀정보원 노릇을 하는 노리에가의 군정보부장인 기예르모웡 대령을 통해, 노리에가는 자신이 미군에 의해 공격당하거나 추격당하게 되면 실행에 옮길 두가지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산으로 가서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미국인을 인질로 잡는 것이었다. 이처럼 전격작전이 실패할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악몽같은 인질억류 사태가 발생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워너로서는 어떠한 전격작전이라 해도 ‘정신나간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사령관들p85~86 보브우드워드 중앙출판사)

2002년 11월 28일 판문점 장성급회담 유엔사측 대표이기도 한 솔리건 장군은 국방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군사분계선(MDL) 월선과 관련, “북측이 유엔사의 승인을 계속 배제하려 든다면 금강산 육로 관광 등 남북 교류 ·협력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날 다시 솔리건 소장은 이날 일부 언론매체들의 `유엔사가 금강산 관광 사업 등의 남북 교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 “유엔사는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남북 교류 사업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며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관련 사업과 같은 모든 경제협력 문제에 관해서도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28일에는 유엔사가 남북관계의 상위기구임을 확인시켜주는 발언이었고, 29일에는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된 남북교류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발언이었다.
또한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국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의선 복원 을 합의하고 남북이 이를 본격 논의하자, 철도.도로가 통과하는 구역을 한반도 정전협정에 의거해 주한 유엔군사령부가 직접 관리 통제하는 현재의 JSA와 같은 지역으로 설정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이 구역이 남북 화해 협력을 대표적으로 상징하기 때문에 양측 당 국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한미가 한동안 대립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한국측 고위관계자 등을 통해 “정전협정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정신만 지켜진다면 남북 당국간의 교류협력 사업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의 ‘특별의견서’를 당시 토머스 슈워츠 유엔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보내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측은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다가 북한의 강력 반발과 남측의 설득 노력으로 유엔사 관할구역(Jurisdiction area)이 아닌 남북관리구역(Administration area)으로 정리해 양측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막판에 결단을 내렸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연합뉴스 2004-07-02)

위 기사는 남북관계에 의해 유엔사의 기능이 이끌려 가고 있는 예를 보여준다. 남북관계의 유엔사 문제에 대한 주도성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킨 결정적인 사건은 남북장성급회담이다.
유엔사의 해체를 부정하는 학자는 아직 보질 못했다. 언제냐의 문제이지 해체에 대해서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그러나 유엔사 해체 이후의 대안에서는 학자마다 차이가 심하게 난다. 유엔사 해체는 곧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사라지는 문제이므로 곧장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유엔사는 유엔사를 대체해서 정전협정을 관리할 남북군사위원회 같은 관리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남북장성급 회담이 성사된 것은 예상을 뒤엎는 일로 북이 유엔사 해체를 염두에 두고 우회길을 택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되었다. 더구나 장성급회담에 앞서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한성렬 차석대사가 5월13일자 미국 USA 투데이와 가진 전화 인터뷰는 결정적 암시로 보인다. 그는 북한 핵문제 해법으로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가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했다.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남한·북한·미국이다. 남이 평화협정의 주체가 된다면 남북장성급회담이 유엔사가 해체되고 나서도 일정기간 정전상태를 관리할 수 있다는 설득 논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이 상황들은 민족관계가 유엔사 기능을 좁혀가고 있으며, 작전차원의 모순이 유엔사해체를 압박하고 있다는 암시로 받아들여 진다. 유엔사의 해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있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