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27일째-부인된 유엔사 설립근거2004/07/21 1202


눈내린 판문점내의 군사정전위사무소

효문공단

울산 북구에서 산길을 넘어오는 길은 갓길이 없어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효문공단을 벗어난 식당에 들어서자 손님들이 왁자지껄 하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들로 나는 이 자리가 부서 회식임을 알 수 있었다. 회식은 공단 식당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곳은 특별한 의미와는 관계가 먼 일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내까지 나가기엔 뭔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 회식은 공단 외곽, 변두리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자신들의 분위기에 몰두하면서도 다른상에 홀로 앉은 내게 사람들의 눈이 한번 씩 스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식당에서 나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유엔사해체에 대한 걷기명상’이라고 쓴 내 옷이다. 누군가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거 아자씨 유엔사 해체가 뭐꾜”하며 따져 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정서와 나의 성격상 몇 단계는 거쳐야 말이 나올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내리고 선선한 미소를 띄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동이었다.

민감함

이해관계 때문이든 미적관계 때문이든 민감한 자에 의해 세상은 구분되고, 구획되고, 해석된다. 민감함은 세상을 구분함으로써 창조성의 토양이 되며, 구획함으로써 통제의 범주를 결정하며, 해석함으로써 지배한다.

부인된 유엔사 설립근거
한국전쟁에 있어서의 국제연합군은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15개국의 군대와 국제연합 결의에 앞서 군사행동을 취한 미군으로 구성되었는데, 이것은 유엔헌장에 근거한 국제연합군이 아니라 이사회의 권고에 임의로 응한 가맹국의 강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유엔헌장 어디에도 유엔사를 설명할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들이 집단적 자위조치에 따른 임의강제행동이 아닌 유엔헌장에 입각한 유엔차원의 행동임을 강조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서 미국은 유엔을 등에 엎고 세계평화유지의 경찰로 행세해 왔다. 그러나 걸프전 당시 미국이 보인 태도는 한국전 당시와는 정반대일만큼 상반된다. 미국은 걸프전에서의 군사행동이 한국전쟁의 그것과 정반대로 유엔차원의 행동이 아닌 자위권적 조치, 즉 임의행동임을 주장했다.

유럽의 국제법교수와 실무자들은 탈 냉전적 상황에서 안보리상임이사국들의 입장이 일치된 가운데 이루어진 대 이라크 군사행동을 냉전시기 사문화되었던 제7장의 규정에 따른 군사적 강제조치의 최초의 적용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대다수의 미국교수들은 유엔헌장 제43조의 특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제42조의 군사조치가 법적으로 발동이 불가능하므로 대 이라크 군사행동을 제42조의 군사조치로 해석하는 것은 모순이며 또한 문제의 군사행동이 유엔의 여하한 통제도 받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이는 유엔의 행위 즉 강제조치라고 볼 수 없으며 문제의 군사행동의 법적 정당화는 이를 헌장51조에 의한 집단적 자위권행사로 볼 때에 가능함을 역설한다.(걸프전의 법적성격 p105 김석현논문 국제법학회 논총37권2호)
유럽과 미국의 이러한 견해 대립은 단순한 법논리상의 대립이 아니라 탈냉전상황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부각시키려는 양대 정치권의 국제정치관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은 걸프전을 계기로 국제 경찰국으로서의 자국의 역할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프랑스는 결의비준과정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 자국의 위치를 강조하며 미국의 독주를 반대하는 유럽제국과 이해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걸프전에서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행동이 안보리의 군사적 강제조치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안보리의 군사적 제재 권한에 대한 유일한 법적 근거인 유엔헌장 제42조가 적용되어야 한다. 제4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제41조에 규정된 조치가 불충분한 것으로 인정되거나 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한 조치는 유엔회원국의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시위, 봉쇄 및 다른 작전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장 해석상 제42조는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42조는 안보리에 병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안보리와 회원국들간의 특별협정 체결을 규정하고 있는 제43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제43조에 의한 특별협정 체결은 제42조에 의한 군사적 강제조치 적용의 전제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주3. H.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London, Stevens & sons, 1951, p756 [걸프전의 법적 성격] 김석현 논문p107에서 재인용)
이는 헌장 106조에 의해 재확인되고 있다. 안보리가 제42조상의 책임수행을 시작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제43조에 규정된 특별협정이 발효될 때까지…유엔회원국과 협의한다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안보리의 요청에 따라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병력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주4.H.Kelsen 위의자료 p750 재인용)에 따라, 특별협정체결 없이 회원국의 병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도 거기엔 필요한 전제가 있다. 그 병력이 안보리 강제조치에 사용되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안보리의 사용권아래(at the disposal) 놓여야 하는 것이다. 안보리의 사용권하에 놓인다는 것은 그 통제(control)하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통합군대가 한국전에서 걸프전까지 안보리의 작전 통제를 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름은 국제연합군이라고 하지만, 미국정부가 임명한 사령관이 국제연합군을 지휘하였으며, 국제연합 기관의 직접적인 통제에 따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15개 참전국군대는 그 소속국에 의해 미국에게 제공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의 행위는 국가책임에 관한 국제법위원회 초안 제1부 제9조의 일국의 통제하에 놓여진 타국 또는 국제기구의 기관의 행위는 국제법상 그 국가의 행위로 간주된다는 원칙에 의해 다루어짐이 마땅하다.(Annuare de la Commssion du Droit International, 1980, vol.2, p.30 앞 논문서 재인용)
유엔군사령부와 국제연합과의 연관 관계는 그것이 이사회의 결의에 입각한 것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전혀 없다. 흔히 유엔군사령부설립의 근거로 제시되는 1950년 7월7일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S/1588)제 3항을 살펴보자.

3.전기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의거하여 군대와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가맹국은 이런 군대와 원조를 미국의 통합군사령부하에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

결의안이 보여주는 것처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군>을 조직한 것이 아니라 다만 유엔성원국들이 <제공>하는 <무력>과 기타 <원조>를 미국이 통솔하는 통합군사령부가 사용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주도하고 주장하는 바도 논리가 부족하며 더구나 걸프전에서 입장을 바꿔 유엔차원의 행동을 부인함으로써 미국이 주장하는 유엔사 설립의 근거는 완전히 부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