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평화기행연천2004/11/28

연천 – 통일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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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책 이야기
답사를 갔다오던 길에 있었던 일이다. 마침 장마가 시작되는 날이라 비가 꽤 왔다. 언제나 답사길이 그렇지만 길을 찾아 헤메는 시간이 반이다.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떨어져 나온 듯한 절벽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다. ‘와! 폭포다’ 답사간 모든 사람들이 뜻밖의 구경거리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답사반장님께서 ‘저건 폭포가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도에는 이 위치에 폭포가 없다는 것이다. ‘바위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 아닌가?’ 갑자기 폭포란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면서 꽤 오랫동안 수다거리가 되어 주었다.
선사가 제자에게 했다던 옛말이 생각났다. ‘달을 보라고 했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라고 했느냐?’ 달은 폭포였고, 손가락은 지도책이었다. 폭포는 실체이고, 지도책은 실체에 이르는 방법이다. 지도책은 오랜 경험과 지식의 축적이며, 법고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지도책은 실체에 이르기 위한 조건이지 실체 자체는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도 지도책엔 없지만 어제밤 비로 생긴 폭포를 폭포로 바라봐야 한다. 창신이다. 창신없는 법고는 사실상 복고이다. 법고창신이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동포애라는 실체조차도 법전에 안 나와 있으면 실체로 인정될 수 없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살아서 변화하는 현실을 현실로 볼줄안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억압을 이길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오류를 반성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포기할수 있는 용기, 이것이 현실을 법칙으로 발전시키는데서 객관성만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 이유이다. 사람의 감정과 의지가 빠진채 발견된 법칙이 사람을 위해 복무하려할 때 법칙의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법칙은 사람을 발견할 때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통일에 대한 원칙과 현실의 주제에 대한 사색과 영감을 이끌 만한 곳을 권할 때 연천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연천 전곡리 선사 유적지는 우리의 조상들이 자연법칙의 굴레와 스스로의 외로움을 딛고 인간성을 획득한 곳이며, 신탄리 열차 종착점과 폐허가 된 터널 유적은 소망마저 제도화되고 관성화될 때 어떤 모습으로 남는가에 대한 인상을 던져준다. 이에 비해 태풍 전망대는 알몸으로 만나는 남북산천의 통일미학을 본다.

전곡리 선사유적지
얼마전 한 노동운동가의 얘기를 들었다. 국민학교를 중퇴하고 결핵으로 죽을 지경이 되자 홀어머니에게 서울에 돈벌러 간다고 가방하나 둘러메고 집을 떠났다. 어머님은 울기만 하실 뿐 붙잡지 않았다. 돈벌러 가는게 아니라 죽으러 가는줄 알았지만 붙잡아도 어떻게 할 수 있는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치료하는 사람을 만나 산속에서 수양을 하면서 죽을 고비는 넘겼다.
그러고는 다시 산에서 내려와 가락시장에서 짐꾼을 하였다. 먹을게 없어서 버리는 생선을 주워서 구워 먹던 어느날 살이 찌기 시작했다. 병세가 기적처럼 회복되는걸 느끼고 자신감을 얻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대학에 입학했다. 늦은 나이였지만 노동운동을 위해서 그렇게 했단다. 죽음을 이겨낸 생활력과, 자상한 성격, 명석한 두뇌는 인천 지역 노동운동의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를 얘기하는 것은 화려한 성공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뒤에 따라온 실패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다. 수배생활을 하며 어느 회원집에 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모습을 보고 그가 외로움을 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단다. 사회주의 몰락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더란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아무에게도 얘기 하지 않고 시골 어딘가로 내려갔다는 소문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가 낙향한 가장 큰 이유를 들라할 때 주변사람들은 외로움이라고 얘기하는데 이견이 없었다. 외로움. 전곡리 유적지의 초라한 마당에 서서 나는 이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구석기시대 초기 인류의 생활은 살을 애는 추위와, 그때까지는 잡기보다는 쫒기는 존재였던 불안한 생활은 엄습하는 공포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생활에서 서서히 자유롭고 힘있는 존재로 갈수 있었던 기록이 이곳에는 전시되어 있다.
돌도끼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돌이 결을 따라 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했다. 아무 돌이나 똑같은 결로 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돌에 대한 관찰과 지식이 필요했다. 결에 대해 한비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理)란 이미 이루어진 사물의 결(文:법칙)이다. 만물에는 저마다 다른 이(理)가 있지만 도는 만물의 이를 다 모은 것이다. {해로(解老)편}
돌의 결은 우리의 조상들이 자연의 객관적인 법칙에 눈뜨므로해서 얻을 수 있었던 성취를 보여준다. 이 자신감 넘치는 세계의 주인이 된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일이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을 얻기 까지의 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돌의 결을 발견하여 사람의 손으로 결을 지배할 수 있기 까지 수 많은 유혹(돌을 깨고 있느니 당장 숲에서 먹을 것을 채집하는게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이었다)을 뿌리치고 배고픔의 본능을 이겨가며 돌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고통 뿐일지라도 언젠가는…’ 이라는 전망이 없었다면 이들에게 과학은 존재할 수 없었다. 전곡리의 콘테이너 박스 전시관과 비좁고 초라해서 왠지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마당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신념과 과학을 통해 인류가 자연의 주인으로 설 수 있었던 기록이다.

신탄리역과 막힌 터널
선로를 주춧돌처럼 받치고 있는 기름에 절인 나무를 침목이라 한다. 무한히 이어지는 철길의 침목은 관성보다는 긴장의 재료이다. 차분히 한걸음 한걸음 침목을 옮길 때마다 빠져드는 사색의 세계는 가능한 만큼의 자유와 필요한 만큼의 구속이란 조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평지의 산보와는 다르다.
어느 새 두 개의 선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섰다. 두 개의 선로가 달려와 만나지만 길은 충돌하지 않는다. 옆에 놓여진 선로 운전기를 앞으로 당기면 좌측 선로로 통하게 되고, 뒤로 제끼면 우측 선로로 통하게 된다. 그저 선로 운전기로 한번씩 조절해주면 된다. 이국양제니 연방제니하는 방식은 가장 단순한 2진수의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신탄리 선로의 비극은 두 선로의 통일이 더 나가지 못하고 종착된다는데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비극은 외부적 장애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침향 또는 매향이란 것이 있다. 천년 뒤에 올 미륵을 생각하며 개펄에 묻어 놓은 향나무이다. 땅에 묻힌 나무라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침향이 사람의 이상을 표현한다면 침목은 기능을 표현한다. 이상은 기능으로 치환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이 기능으로 전락할 때 관성이 발생한다. 신탄리역의 철도 종단점 표시판에는 어디에나 철도 종단점에서 볼 수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 라는 문구가 씌워져 있다. 페인트로 거칠게 씌어져 투박했던 표시판은 깔끔하게 뽑아진 컴퓨터 명조체로 바뀌어져 있었다. 간혹, 금박 입힌 석불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관성과 부박한 취미가 여기에도 있었다. 그나마 한가닥 희망마저도 역에서 조금 떨어진 터널앞에 서면 무너져 버리고 만다. 한쪽은 콘크리트벽으로 한쪽은 철조망으로 막아버린 이 터널은 사람이 할 일을 철마에게 다 미루어 놨던 사람들이 결국은 철마조차 달릴 수 없게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이곳 터널은 터널이 아니라 굴이었다. 우거진 풀섶을 헤치고 들어가면, 엉성하게 설치해놓은 철조망의 무첵임성이 더 거북하게 하고, 습기 때문인지 콘크리트의 진액이 녹아내리고 있는 깜깜한 동굴이었다. 아니 무덤이었다. 철마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었다. 회원들이 굴안에까지 가서 찍어온 사진에 담긴 것은 무덤이 아니라, 빛이었다. 이상이었다. 굴에서 굴을 향해 서지 않고 빛을 향해 설 수 있다는 것은 사람만의 능력이다. 굴종의 편에 서기 보다 주인의 편에 서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가장 어두운 곳에서만이 가장 밝은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상은 이상적인 상태를 누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이상을 찾아가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의 높이는 곧 시대의 아픔에 대한 희생과 헌신의 깊이이다.
이철수 화가는 눈보라 속에서 눈을 감고도 보이는 길만 길이라고 했다. 그 길이 바로 이상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갈길을 가게 만드는 힘. 인간 능력의 최상급이 바로 이상인 것이다. 그런 눈을 가질 때 어떤 고난도 전망으로 바꾸는 {인간성}이 획득되는 것이다. 막힌 터널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천년전 석굴암의 그것과 닮아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높이 이다. 다시 침목을 밟으며 철길을 걷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성과 한걸음 마다 새겨지는 생동한 긴장성.이상도 그와 같다.

태풍전망대
통일사진기행의 마지막 일정을 태풍전망대로 했다. 이곳은 비무장 지대의 폭이 가장 좁아서 북쪽을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는 보기드문 장소이다. 서로의 침투를 경계하기 위해 인근 산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잡초만 무성한 알몸뚱이의 민둥산들이다.
산이 모두 알몸뚱이가된 것은 이곳이 얼마나 긴장감도는 지역인가를 대변해준다. 작년 북한군의 정전협정의 부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무력시위가 있었고, 올해 남측의 핵우라늄탄 폭발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그 첨예한 긴장과 대립을 알몸으로 받아 안아주는 연천의 저 포용력은 연천의 거대한 역량이다. 그 역량의 원천은 가식없는 알몸의 미학이다. 팽팽한 긴장감은 가식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남측엔 [귀순자 대환영]이란 대형 선전판이 북측엔 [자주통일] [미국은 물러가라] 등의 선전판이 노골적으로 내걸려 있다. 감상적 통일이나 가식적 통일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그 내용에 집중하게 한다. 통일은 조건이다.
그자체가 삶의 내용은 아니다. 통일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통일이냐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통일의 내용이라 생각하는 자유와 평등 또한 생활의 조건이지 내용은 아니다.
자유는 욕구를 충족할수 있는 자유이다. 욕구는 끝이 없다. 그래서 자유는 끝없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조건으로 부터의 자유이다. 자유를 얘기 할 때 ‘~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때문에 자유 역시 조건이지 욕구가 추구하는 내용은 아닌 것이다. 욕구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상태일 때 진정한 자유가 성취된다. 구속을 통한 자유도 있고, 자유를 빙자한 구속도 있다. 문익환 목사님은 ‘통일은 됐어’하고 훌쩍 북으로 갔다. 그 결과는 구속이었지만 아무도 문목사님을 자유인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복종이 자유일수도 있고 구속이 자유일 수도 있다. 자유는 그래서 어떤 내용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그릇인 것이다.
평등은 생활조건의 동등함이다. 평등자체가 사람됨의 본질은 아닌 것이다. 어떤 평등인가? 다 같이 굶어 죽을 수 있는 평등인가? 다같이 억압, 감시 받을 수 있는 평등인가? 사람을 위한 민중을 위한 평등일 때 그것은 올바른 가치를 지향한다.
자유와 평등과 통일은 사람의 주인됨이 발현되는 상태에서만 완전히 실현된다. 민족이 스스로 주인 답게 참여하여 제 운명의 주인으로 되는 통일, 그것이 통일의 이상이다. 저멀리 [자주통일]이란 선전판이 그런 의미이길 바라면서 물그러미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전판의 구호보다 그조차 왜소하게 만들어 버리는 어머니 품같은 광활한 산천이다.
화려강산이기 보다는 포용과 원융의 강산이 더 어울리리라.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들은 찰랑이듯 물결을 이룬다. 산물결 저 끝에서 임진강이 굽이굽이 산을 에돌아 흐른다. 풍경을 볼줄안다는 것은 음악을 보는 것과 같다.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 이것이 풍경을 대할 때 알몸으로 만나는 방법이다. 광활하고 웅장한 경관은 격동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힘찬 구도의 화면으로 표현된다. 작고 아기자기한 경관은 자상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차분한 구도의 화면으로 표현된다. 이곳 태풍전망대의 산천은 아기자기하고 광활하며, 차분하고격동적인 정서를 모두 불러일으킨다. 통일의 이상을 산과 강으로 빚어 놓는다면 바로 이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