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가,수궁가 여러판본 2002/08/31 505

적벽가(赤壁歌) 성두본 B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分久必合)이요, 합구필분(合久必分)이 성탄선생(聖歎先生)의 만고확론(萬古確論)이라.
한(漢) 영제(靈帝) 건영(建寧) 2년 4월 망일 온덕전(溫德殿)에 전좌(殿座)하여 백관(百官) 조회(朝會)받으실 새 난데 없는 푸른 배암 양상(梁上)으로 기어 내려 어탑(御榻)을 두르더니, 인홀불견(因忽不見) 간 데 없이 뇌성대우(雷聲大雨) 우박(雨雹)하고, 그 후 4년 2월 일에 낙양(洛陽)에 지진(地震)하여 해수(海水)가 넘쳐 흐르고, 그 후 광화(光和) 원년(元年)에 암탉이 수탉되어 6월에 검은 기운, 7월에 무지개요, 오원산(五原山)이 무너지니, 이때 천하가 분분(紛紛)하여 사방병(四方兵)이 일어날 제 황건적도 어렵거든 17진 웬일인고. 파적안민(破賊安民) 중흥지주(中興之主) 탁군(탁郡)에서 일어나니, 경제(景帝)의 각하(閣下) 현손(玄孫) 탁록(탁鹿) 정후(亭侯) 후손(後孫)인데 신장이 8척이요, 시년이 28세, 두 귀가 훨썩 커서 손수 돌아 보시오며 두 손을 드리우면 무릎에 지나간다. 빛 고운 입술은 주사(朱砂)를 발랐는 듯, 성정(性情)이 관화(寬和)하여 언어가 적으시며 희노(喜怒)를 불형어색(不形於色) 품은 것이 큰 뜻이라, 모친을 효양(孝養)하고 호걸을 교결(交結)하니 성함은 유비(劉備)시요, 자호(字號)는 현덕(玄德)이라.
탁군의 장비(張飛)하고, 하동의 관운장(關雲長)과 도원(桃園)에 결의하셔, 상보국가(上報國家)하고 하안백성(下安百姓)하시기로 경륜지사(經綸之士) 만나렬 제, 와룡선생(臥龍先生) 높은 이름 수경선생(水鏡先生) 말씀이요, 서원직(徐元直)의 천거로다. 춘풍세우(春風細雨) 밭갈 제와 백설한풍(白雪寒風) 깊은 겨울 두 번 가서 못 뵈옵고, 세 번 찾아가실 적에 융중(隆中) 경물(景物) 둘러보니 양양성서(襄陽城西) 이십리에 일대고강침류수(一帶高岡枕流水)라, 산불고이수려(山不高而秀麗)하고 수불심이징청(水不深而澄淸)하며, 지불광이평탄(地不廣而平坦)이요 임불대이무성(林不大而茂盛)이라, 원학(猿鶴)은 서로 보고 송황(松篁)은 푸르렀다. 시비(柴扉)를 두드리며 동자 아직 불러 물은 말씀,
“선생이 계옵시냐.”
동자가 대답하되,
“이번에는 계옵시나 초당(草堂)에서 낮졸음 아직 아니 깨시니다.”
현덕이 눈을 들어 초당을 바로보니 벽상(壁上)에 붙인 글씨 담박이명지(澹泊以明志)하고 영정이치원(寧靜以致遠)이라 단정히 붙였구나.
공순히 국궁(鞠躬)하고 계하(階下)에 오래 서서 기침키를 기다릴 제, 반향(半향)이 지나도록 동정이 없는지라, 장비의 급한 성정 참다가 못 견디어 초당 뒤에 불 놓기로 떨뜨리고 냅다 서니, 관공(關公)이 손을 잡고 간신히 만류하여 문외(門外)에 등후(等候)터니, 선생이 돌아누워 풍월을 읊으시되,
“대몽(大夢)을 수선교(誰先覺)오 평생을 아자지(我自知))라, 초당에 춘수족(春睡足)하니 창외(窓外)에 일지지(日遲遲)라.”
읊기를 파한 후에 동자 불러 물으시되,
“속객(俗客)이 와 계시냐?”
동자가 여짜오되,
“유황숙(劉皇叔)이 여기 있어 기다린 지 오랩니다.”
선생이 일어나서 후당에 들어가서 의관을 정제하고 황숙을 영접할 제, 공명 기상(氣象) 바라보니 신장은 8척이요 얼굴은 관옥(冠玉)이라. 머리에 윤건(綸巾)이며 몸에 입은 학창의(鶴창衣)가 표연한 신선이라. 황숙이 배례하고 꿇어앉아 여짜오되,
“한실(漢室)의 말주(末冑)요. 탁군의 우부(愚夫)로서 선생의 큰 이름을 우러른 지 오랜 고로 두번 찾아왔삽다가 못 뵈옵고 가옵기에 흉중의 소회사(所懷事)와, 이 몸의 천한 이름 기록하고 갔삽더니 선생이 보시니까.”
공명이 여짜오되,
“남양(南陽)의 들사람이 소라(疎懶)한 성정인데 장군의 귀한 행차 여러 번 왕림하니 불승괴란(不勝愧란)하여이다.”
빈주(賓主)의 예를 차려 차 올려 파한 후에 공명이 여짜오되,
“나 어리고 재조 없어 위국위민(爲國爲民) 물은 말씀 대답할 수 없나이다.”
황숙이 여짜오되,
“사마덕조(司馬德操) 서원직(徐元直)이 어찌 허담(虛談)하올는지, 경세지재(經世之才) 속에 품고 공로임천(空老林泉) 하오리까. 천하 창생(蒼生) 생각하여 가르쳐 주옵소서.”
공명이 웃으시고 세 번 사양하신 후에,
“장군의 장한 뜻이 어찌코자 하나이까.”
사람을 물리치고 황숙이 하는 말씀,
“한실이 경퇴(傾頹)하고 간신이 절명(竊命)키로 대의(大義)를 펴자 하되 지술(智術)이 단천(短淺)하니 선생만 바라내다.”
공명이 여짜오되,
“조조는 간웅(奸雄)이라. 백만 무리 거느리고 협천자(挾天子) 호령, 제후 쟁봉(爭鋒)치 못할 테요. 강동의 손권(孫權)이는 국험민부(國險民富)하여 3 세(世)가 되었으니 구원은 청하여도 도모는 못 할테요, 형주(荊州)는 용무지지(用武之地), 익주(益州)는 천부지토(天府之土), 형‧익(荊‧益)을 차지하여 천하 일을 도모하면 대업을 이루시고 한실을 흥하리다.”
익주도 펴서 걸고 가리켜 보이면서,
“조조는 천시(天時)옵고, 손권은 지리(地理)옵고, 장군은 인화(人和)되면 삼분정족(三分鼎足) 되오리다.”
황숙이 배례하고 다시 꿇어 여자오되,
“명미덕박(命微德薄) 하온 몸을 비천타 마시고 출산상조(出山相助) 하옵소서.”
공명이 사양하고 나올 뜻이 없었으니, 황숙의 슬픈 눈물 의금(衣襟)이 다 젖는다.
공명이 하릴 없어 예단을 받으시고 관‧장(冠‧張)과 한가지로 하루밤 동숙 후에 그 아우 균을 불러 매학(梅鶴)을 맡기시고 부탁을 하는 말씀,
“제실지주(帝室之冑) 유황숙이 삼고지은(三顧之恩) 중하기로 부득이 나가노니 전묘(田묘)를 잘 다스려 황무(荒蕪)케 말지어다. 공명을 이룬 후에 돌아와 숨으리라.”
사륜거(四輪車)에 높이 앉아 황숙을 모시옵고 신야(新野)로 돌아오니 병불만천(兵不滿千)이요 장불만십(將不滿十)이라.
군사를 소모(召募)하여 박망(博望)에 소둔(燒屯)하고 백하(白河)에 용수(用水)하니 초출(初出) 모려(茅廬) 제일공(第一功)에 조조가 혼이 나서 십만병사 거느리고 팔로(八路)로 달려드니, 장판(長坂)에 대전(大戰)하고 하구(夏口)에 웅거(雄據)하여 조조를 잡으려고 경륜을 꾸밀 적에, 강동의 손권이가 유형주(劉荊州) 조상차(弔喪次)로 노숙을 보냈구나. 의사 많은 공명선생 황숙 전에 여짜오되,
“양(亮)이 재조 없사오나 노숙과 한가지로 동오(東吳)에 들어가서 세 치 되는 혀를 놀려 조조와 손권으로 한 번 싸움 붙인 후에 남군승즉(南軍勝則) 위(魏)를 치고 북군승즉(北軍勝則) 오(吳)를 쳐서 방휼지세(방鷸之勢) 다투는데 어인지공(漁人之功) 되사이다.”
암암(暗暗) 약속하신 후에 노숙과 한가지로 일범선(一帆船) 빌어 타고 강동을 건너가서, 설전군유(舌戰群儒)한 연후에 대교‧소교(大喬‧小喬) 한 말씀에 동작대부(銅雀臺賦) 송전(誦傳)하니 주공근(周公瑾)이 분을 내어 조조를 치려 할 제 장하다 손중모(孫仲謀)는 벽안자염(碧眼紫髥) 당당하다. 찼던 칼 빼어내어 서안(書案)을 깨친 후에 81주 넓은 땅에 백만 웅병 조발(早發)할 제 대도독(大都督) 주공근과 부도독(副都督) 정보(程普)이며 찬군교위(贊軍校尉) 노숙이라. 전부선봉(前部先鋒) 한당‧황개, 제 2대에 장흠‧주태, 제 3대에 능통‧반장, 제 4대에 태사자‧여몽, 제 5대에 육손‧동습, 순경사(巡驚使)에 여범‧주지, 수군‧육군 점고(點考)하고 선척‧군기 수습하여 수륙 병진(幷進)하올 적에 대도독 주공근이 장대에 높이 앉아 제장을 호령한다.
“방금의 조조 권세 동탁보다 심한지라 천자를 위협하여 허창(許昌)에 가두고, 폭병(暴兵)을 몰아다가 경상(境上)에 둔취(屯聚)키로 주공의 명을 받아 역적을 치려 하니, 제군은 힘을 써서 대군이 간 데마다 백성을 침로 말고 공 있는 자 상 주기와 죄 있는 자 벌하기를 상벌이 분명하여 각수내직(各守乃職)하라. 왕법(王法)은 무친(無親)이라 인검(印劒)이 예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
호령이 엄숙하니 수륙이 진동한다. 삼강구(三江口) 오륙십 리 전선(戰船)으로 둘러싸고 서산(西山)을 의지하여 영채(營寨)를 세웠으니.
이때에 공명선생 주도독을 따라와서 일엽소선(一葉小船) 혼자 타고 군중사무(軍中事務) 의논할 제, 애닯다 주도독은 재조를 시기하여 공명을 해하련들 신출귀몰 저 재조를 뉘라서 알 수 있나. 취철산(聚鐵山) 양식 끊기 한 말로 모면하고, 조조의 십만전(十萬箭)을 삼일 내에 뺏아오니 도독의 놀란 마음 갈수록 더하구나. 유예주(劉豫州)를 청하여서 살해코자 하였더니, 관공이 따라오니 어찌할 수 있겠느냐. 하직하고 가실 적에 공명이 아시고 강변에 대후타가 대강 사연 고한 후에 은근히 여짜오되,
“11월 20일에 일엽소선(一葉小船) 조자룡 주어 남안변(南案邊)에 매었으되 부디 실기(失期) 마옵소서. 동남풍이 일어나면 양(亮)이 돌아가오리다.”
하직하고 돌아오니.
조조의 보낸 편지 외봉(外封)이 괘씸쿠나. 주도독이 분을 내어 훼서참사(毁書斬使) 하온 후에, 감녕‧한당‧장흠으로 조조와 일장(一場) 대전(大戰) 승전(勝戰)하고 돌아오니, 조조가 겁을 내어 수채(水寨)를 새로 꾸며 수군을 조련할 제, 주도독이 배를 타고 다 둘러보았구나. 장간(張幹)의 어린 소견 원섭강호(遠涉江湖) 웬일인고. 매국지적(賣國之賊), 채모(蔡瑁)‧장윤(張允) 조조 손에 죽단 말가. 주도독과 공명선생 조조 파(破)  할 꾀를 돌아 앉아 의논할 제, 장중(掌中)에 쓰인 글자 서로 보니 여덟 팔(八), 사람 인(人)자라 화공(火功)을 하려 할 제, 온갖 비계(秘計) 다 꾸미니 황개(黃蓋)의 고육계(苦肉計)와 감택(감澤)의 사항서(詐降書)며 봉추선생(鳳雛先生) 연환계(連環計)라. 쓰고, 달고, 매운 약을 한데 모두 고(膏)를 내며 83만 먹이렬 제, 도독은 불을 때고 부채질 누가 할까.
이때는 건안 12년 11월 15일이라. 천기 명랑하고 파도 고요하니 조조 대연배설(大宴排設)하여 술 많이 거르고, 떡 많이 치고, 소 많이 잡고, 돝 많이 잡고, 개 잡고, 닭 잡아서 호군(호軍)을 질끈하고, 연환(連環)한 큰 전선(戰船)을 대강(大江) 중앙에 덩실 띄워 푸른 복판 황금대자(黃金大字) 크나큰 수자기(帥字旗)를 둥두렷이 앞에 세우고, 양편 전선 수백 척을 수채(水寨)를 굳게 꾸며 궁노수(弓弩手) 1천 명을 단단히 매복하고 조조의 거동 보소. 홍포옥대(紅袍玉帶) 금관으로 한가운데 좌기(坐起)하니 좌우에 모신 장수 황금 투구, 비단 갑옷 창도 메고 칼도 차고 반차(班次)로 벌렸는데, 동산에 달 오르니 백일(白日)과 한가지라. 일대장강(一帶長江) 맑은 물은 흰 비단을 폈는 듯, 남병산(南幷山) 고운 봉(峰)은 그림 병풍 둘렀는 듯, 동시시상(東視柴桑)하고, 서관하구(西觀夏口)하고, 남망번성(南望樊城)하고, 북저오림(北저烏林)하니 사고공활(四顧空闊)하여 호기(豪氣)가 절로 난다.
창를 빼어 손을 쥐고 제장(諸將)더러 하는 말이,
“내가 이 창 가지고서 황건적을 부수고, 여포를 사로잡고, 원술을 초멸하고, 원소를 거두고, 심입새북(深入塞北)하고, 직저요동(直抵遼東)하여, 남으로 가리키며, 유종이 속수(束手)하니 천하에 횡행하되 대장부 먹은 마음 저버리지 아니하니 사해를 삭평(削平)하고 못 얻은 게 강남이라, 백만 웅수(雄帥) 거느리고 제군의 힘을 입어 강남을 얻으며는 좋은 일이 별(別)로 있다. 교공(橋公)의 두 여자가 국색(國色)으로 유명터니 손책, 주유(周瑜) 아내 됨을 내 매양 한탄이라. 강남을 얻은 후에 이교녀를 데려다가 동작대(銅雀臺) 봄바람에 모년행락(暮年行樂) 하여볼까.”
남안(南岸)을 가리키며,
“주유와 노숙이는 천시(天時)를 모르느냐. 내 군사 거짓 항복 네 복심(腹心)이 되었으니 하늘이 도움이오.”
하구(夏口)를 가리키며,
“유비와 제갈량이 어찌 그리 우미(愚微)하여 개미의 약한 힘이 태산을 흔들소냐.”
장담을 한참 할 제, 난데 없는 까마귀가 남천을 바라보고 까욱까욱 울고 가니 조조가 물어,
“어떠한 까마귀가 이 밤에 울고 가노.”
좌우가 여짜오되,
“그 까마귀 달 밝으니 새벽인가 의심하여 나무를 떠나 우나이다.”
조조가 크게 웃고 교기(驕氣)가 잔뜩 나서 노래 지어 부르기를,
“대주당가(對酒當歌)하니 인생기하(人生幾何)요. 비여조로(譬如朝露) 하여 거일(去日)이 무다(無多)로다. 월명성희(月明星稀)에 오작(烏雀)이 남비(南飛)로다. 요수삼잡(요樹三잡)에 무지가의(無枝可依)로다.”
제장이 화답하고 한참 서로 즐길 적에 양주자사(揚州刺史) 유복(劉馥)이 썩 나서서 하는 말이,
“대군이 상당하여 장사가 용명(用命)할 제 승상의 지은 노래 불길조(不吉兆)는 웬일인고. 월명성희 오작남비요, 요수삼잡 무지가의 좋지 않은 말씀이오.”
조조가 대노(大怒)하여,
“내 속에 나는 흥을 네가 감히 파하느냐?”
창으로 퍽 찌르니 좌중이 다 놀란다.
이 때에 만군중에 무론(無論) 장졸(將卒) 다 취하여 그런 야단이 없구나. 노래부르는 놈, 춤추는 놈, 이야기하는 놈, 싸움하는 놈, 과음식(過飮食) 많이하고 더럭더럭 게우는 놈, 투전‧골패하는 놈, 서러워 엉엉 우는 놈, 언문책 보는 놈, 왕왕이 사중(沙中)에 늘어앉아 각색으로 장난할 제.
한 군사가 썩 달려드는데 이 손이 인물도 준수하고 기력이 과인(過人)하여, 매우 덩벙여 수인사(修人事) 목을 권(權)판 비슷하게 문자로 내놓는데, 매우 유식하여,
“고읍황금편(高揖黃金鞭)에 피차 없이 초면이요. 남정부북환(南征復北還)에 수고가 어떠한고, 빈년불해병(頻年不解兵)에 싸움으로 늙어 오니, 창망문가실(蒼茫問家室)에 고향이 어느곳인고. 겁억루첨건(겁憶淚沾巾)에 생각하면 눈물이라, 금석(今夕)이 시하석(是何夕)고 달이 밝고 밤 길었네. 장검대준주(仗劒對樽酒)에 술이 좋고 안주 있다. 만사삼소파(萬事三笑罷)에 웃음 웃고 놀아 보세.”
한 군사 나앉으며,
“너는 유식하고 호기 있는 사람이다. 내 서러운 말 들어 보라.”
“당상(堂上) 학발노친(鶴髮老親) 이별한 지 몇 해 된고. 부혜생아(父兮生我)하고 모혜국아(母兮鞠我)하사 호천망극(昊天罔極) 큰 은혜를 어찌하여 다 갚을꼬. 혼정신성(昏定晨省) 출고반면(出告反面), 조석이면 숙수공양(菽水供養) 지성으로 다한대도, 수욕정이풍부지(樹欲停而風不止)요,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 서산에 지는 해를 붙들 수가 없삽는데, 슬하를 한번 떠나 몇 해 소식 없었으니 우리 부모 날 기다려 바람 텅텅 부는 날에 의문망(倚門望)이 몇 번이며, 비가 죽죽 오는 밤에 의려망(倚閭望)이 몇 번인고. 피호피기(彼岵彼기) 올라가서 바라나 보자 하되, 군법이 지엄하여 잠시 천이(遷移)할 수 없네. 무상타 조승상은 군법도 모르던가. 무형제 독신 나를 귀양(歸養)하라 아니 하고 천리 전장 데려다가 불효자가 되게 하네. 애고애고 설운지고.”
한 군사가 나앉으며,
“너는 부모 생각하여 우니 효자로다. 내 설움 들어 보라. 내 팔자 무상하여 십세 전에 조실부모(早失父母) 혈혈한 이 목숨이 기식인가(寄食人家) 자라나서 적수(赤手)로 돈냥 모아 이십 넘어 장가드니, 처복은 있었던지 우리 아내 얌전하지. 운빈화안(雲빈花顔) 어여쁘고 침선방적(針線紡績) 다 잘하네. 친척 어른 대접하고 동네 사람 화목하여 백집사가감(百執事可堪)하니,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 가난한 살림살이 차차 나아가더구나. 길쌈으로 모은 돈을 올해 심을 논을 사고, 바느질 삯을 모아 송아지 사서 남을 주고, 집안을 둘러보면 묵은 침채(沈菜), 묵은 간장, 솥 빛은 얼른얼른, 채전(菜田)에 풀이 없네. 내 비위에 똑 맞으니 그 정지(情地)가 어떻겠나. 마주 앉아 밥을 먹고 꼭 껴안고 잠을 자서 잠시도 이별 말고 사즉동혈(死則同穴)하쟀더니 생이별 전장에 와서 못 본 지가 몇 해던고. 우리 아내 이내 생각 오죽이 간절할까. 채채권이(采采卷耳) 불영경광(不盈頃筐) 나물 캐며 날 바라는가. 제롱망채엽(提籠忘採葉) 뽕을 따며 생각는가. 꾀꼬리 우는 소리 이주몽(伊州夢) 못 이루고 기러기 날아갈 제 금자(錦字)를 붙였는가. 형용이 눈에 암암 욕망난망(欲忘難忘) 못 살겠네. 애고애고 설운지고.”
한 군사 나앉으며,
“너는 아내 생각으로 우는구나. 너 내 설움 들어 보라. 나는 남의 오대 독자, 사십이 넘어가되 남녀간에 자식 없어 불효지죄(不孝之罪) 많은 중에, 무자(無子)한 죄 크다기에 자식을 보려 하고 온갖 정성 다 들였다. 명산대찰(名山大刹), 영신당(靈神堂)과 고묘총사(古廟叢祠), 성황당, 석불, 미륵 서 계신 데 지성으로 제사하고 가사시주(袈裟施主), 인등시주(引燈施主), 창호시주(窓戶施主), 백일산제(百日山祭), 무수히 하였더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신(信)든 나무 꺾어질까. 우리 아내 포태(胞胎)하여 또독또독 배가 불러 오륙삭이 넘어가니 부부의 좋은 마음 조심이 극진이다. 석부정부좌(席不正不坐), 할부정부식(割不正不食), 목불시악색(目不視惡色), 이불청음성(耳不廳淫聲) 태교를 다하여서, 십삭이 찬 연후에 순산으로 득남하니, 천지간 좋은 일이 이 밖에 또 있는가. 칠일까지 소(素)를 하고, 칠칠일에 큰 굿하고 백일에 대연(大宴)하고 첫돌에 큰 불공, 젖살이 점점 올라 빵긋빵긋 웃는 양, 터덕터덕 뒤집는 양, 아장아장 걷는 양, 작강작강 길라아비 훨훨 온갖 장난 다 할 적에, 그 사랑이 어떻겠나. 선영의 음덕인가 석가님이 보내셨는가. 금을 주고 너를 사랴 옥을 주고 너를 사랴. 사씨(謝氏)네 집 보배나무, 서씨(徐氏)네 집 기린 새끼, 상호봉시(桑弧蓬矢) 이사방(以射四方) 호반(號班)질을 시켜 볼까. 인생 팔세 개입소학(皆入小學) 글공부를 시켜볼까. 밤낮으로 농장지경(弄璋之慶) 철 가는 줄 모르더니, 전장에 잡혀 와서 내 아들 못 본 지가 지금 벌서 몇 해 된고. 아빠아빠 우는 소리 귀에 그저 쟁쟁하네. 이 몸이 아니 죽고 설령 살아 간다 하되, 아동상견불상식 소문객종하처래(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인데 만일 불행 이 몸 죽어 골포사장(骨暴沙場) 하거드면 자식 다시 볼 수 있나. 애고애고 설운지고.”
한 군사 나앉으며,
“너희는 팔자 좋아 얌전한 아내하고 살림도 하여 보고 어여쁜 아들 낳아 사랑하여 길러 보아 볼 재미 다 보았다. 그렇게 지냈으면 손톱만큼 섧거드면 개 아들놈이다. 참 뼈 빠질 설움 들으려나?”
“어디 하여라. 들으면 알지.”
“또 그러다가 다 기절하면 어찌 하게야.”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남의 설움에 기절하여야.”
“장담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내 설움 나간다. 이내 전생 무슨 죄악 강보(襁褓)에 부모 잃고 외가에서 길러내어, 일곱살이 겨우 되니 외가가 지빈무의(至貧無依), 할 수 없이 유리개걸(流離개乞) 모진 목숨 아니 죽고 십오세가 넘더구나. 남의 집을 살자 하니 늦잠 까닭 할 수 없고, 소금짐 지자 한즉 성정 바빠 못 할테요. 급주군(急走軍)을 다니자니 해찰에 탈이 나고, 중놈이나 하자 하니 군것질에 쫓겨나니 그렁저렁 삼십 넘어 계집 천신할 수 있나. 초라니패 따라다녀 비비각시 베개노릇, 잡기군(雜技軍) 수종(隨從)하여 불 돋우는 시들뀌, 한 푼 두 푼 돈을 보면 이를 갈고 모은 것이 돈 백이나 되었기에, 가난한 집 과혼처녀(過婚處女) 간신히 청혼하여 오십냥 조혼(助婚) 주고 사십냥 의복등물, 혼인날이 당하여서 납폐(納幣) 전안(奠雁) 지내고서, 신부방에 들어앉아 주물상(晝物床) 먹은 후에 조금 있다 저녁밥, 반찬은 좋도소니 단단히 먹은 후에, 담배 피워 입에 물고 누으락 앉으락 한참을 지냈더니, 신부 잡아 넣더구나, 오십냥 조혼으로 그리 잘 차렸겠나. 초록 명주 저고리, 나 맣은 처녀에게 홍상(紅裳)이 당하겠나. 파랑물 무명치마 새 속옷, 새 버선 낭자하고 주석비녀, 야, 우리 보는 소견에는 관물(官物) 맵시 같더구나. 아주 좋아 못 견디어 수작을 붙이기를, 내 나이 이만하니 신부 다룰 줄을 모르는 게 아니로되, 피차 늙어가는 것이 잔 수인사 찾지 말고 어서 벗고 누워 자세. 신부 대답 아니 하고 가만히 앉았기에 뒤로 안고 얼른 벗겨 잔뜩 안고 드러누워, 그러할 줄 알았더면 곧 시작하였을 새, 고생하던 이야기며 살림살이할 걱정을 한참 수작한 연후에 두 무릎 정히 꿇고 신부 양각(兩脚) 곱게 들고 주장군(朱將軍)을 잘 바수어 옥문관(玉門關)에 당도하니, 사면은 다 막히고 한가운데 수렁이라, 들어갈까 물러날까 한참 진퇴하느라니, 영취(營聚)하는 천아성(天鵝聲)이 사면에서 ‘뙤뙤’ 하며 염치 없는 우리 기총(旗總) 방문 차고 달려들어 상투 잡아 일으키어 뺨을 치며 하는 말이 ‘계명군령(鷄鳴軍令) 모르관대 이 짓이 웬 짓이냐.’ 구박 출문 몰아 오니 벗었던 옷 못 입어서 손에 들고 따라와서 이 때까지 못 갔더니, 내 설움은 고사하고 주장군이 더 서러워 이 때까지 눈물 방울 댕강댕강 떨어치니, 이왕 시작한 일이나 필역(畢役)하고 왔더라면 조금이나 서러울 내 아들놈 있겠느냐.”
좌중이 낙루(洛淚)하며,
“참 불쌍한 일이로다.”
한 군사 나앉으며,
“서러운 내력 다 다르니 너 내 설움 들어보라. 우리 형제 중한 우애 옛 사람과 다름 없다. 동기연지(同氣連枝) 생겨나서 두 사람이 한 몸이라, 한 상에서 밥을 먹고 일척포(一尺布)도 둘이 입어 주야 상종 지내더니 전장에 나온 후에 형 못 본 지 몇 해 된고. 구름을 바라보니 낮잠이 절로 오고, 나뭇잎 날아오니 서러운 마음 못 금한다. 척령은 어찌하여 둘이 서로 안 떠나고, 기러기 좋을씨고 일자행(一字行) 날아오네. 내 마음이 이러할 제 우리 형님 날 생각이 오죽이 간절하리. 상체꽃이 피었은들 뉘와 함께 구경하며, 수유꽃 꽂자 한들 소일탄(少一歎)이 불쌍하네. 애고애고 설운지고.”
옆에 무슨 울음 소리 쇠끝같이 되게 나도, 사람은 아니 뵈어 좌중이 의심 하 되어 어인 재변인고, 한참을 찾아보니 벙거지가 울거든 좌중이 공론하여,
“이게 큰 변괴로다. 저 벙거지 집어다가 강물에 내버려라.”
한 군사가 집어드니 더럭더럭 더 울면서,
“이놈들아, 내 목 는다.”
잦혀놓고 자세 보니 선초만한 사람 하나 벙치 끈에 달렸거든 좌중이 물어,
“네가 무엇이냐.”
“내가 전부 선봉 장합의 화병(火兵)이다.”
좌중이 대소하여,
“불알만한 그 형상에 말소리는 똑똑하네. 쥐 창만한 네 뱃속에 무슨 설움 들었느냐.”
“내 설움은 참 설움.”
“말하여라, 들어보자.”
“우리 집에 있을 적에까지 새기 하나 잡아 꼴아이에 공작미(孔雀尾), 받침대에 앉혀 들고, 줄 밥을 먹였더니 급히 잡혀 오느라고 못 가지고 그저 와서 밤낮으로 생각터니, 아까 울고 가는 까치 정녕한 내 까치가 날 찾아왔는 것을, 겸앙한 승상님이 날더러 묻도 앟고 글만 지어 읊으시니 절통하여 살겠는가. ”
좌중이 대소하여,
“실없는 자식이다.”
한 군사 썩 나서며,
“너희는 사근취원(捨近取遠) 집 생각을 한다마는 몸 생각을 하여보라. 병고차는 패란 말을 너희 아니 들었느냐. 우리의 승상님이 안하에 무인(眼下無人)하여 남은 것이 교 뿐이라. 정녕 이 싸움에 패하고만 말 터이니 우리 신세 어찌되리. 적시여산(積屍如山) 누웠다가 오연(烏鳶)이 탁인장(啄人腸)에 함비상괘고수(銜飛上掛枯樹枝)지라 피육(皮肉)은 시진(시盡)하고, 풍마우세(風磨雨洗) 남은 뼈를 묻어 줄 이 뉘 있으리. 가련상사무정골(可憐相思無情骨)이 유시춘규몽리인(猶是春閨夢裡人)은 옛 사람이 지은 풍월 우리 두고 한 말이라, 죽은 날을 몰랐으니 제 지낼 이 뉘 있겠나. 애고애고 설운지고.”
서러운 말들 한창 하고 슬픈 눈물 흩뿌릴 제, 한 군사 들어오는데 생긴 모양 헌걸차고 살기가 담성(膽盛)하여 온 세상 톡 떨어서 꿈속으로 짐작하고 벗어 들어 멘 놈인데, 좌중을 모두 꾸짖어,
“예 이 손들 녹록(碌碌)하다. 전쟁에 나온 놈이 고향 생각 어디다 쓰리. 싸움타령 들어보라. 헌원씨(軒轅氏) 습용간과(習用干戈) 치우(蚩尤) 잡던 판천 싸움, 유사상부(維師尙父) 시유응양(時維鷹揚) 혈류표저(血流漂杵) 목야(牧野) 싸움, 칠웅(七雄) 웅자유미분(雄雌猶未分) 조득모실(朝得暮失) 춘추 싸움, 육국이 하나 되니 진시황의 통합 싸움, 닫는 사슴 뉘 쫓을꼬, 판련간과(八年干戈) 초한 싸움, 궁병독무과(躬兵讀武過)할씨고, 효무황제 흉노(匈奴) 싸움, 사칠지제화위주(四七之際火爲主) 광무황제 중흥 싸움, 천개지벽(天開之闢)한 연후에 싸움 없는 나라 있나. 한운(漢運)이 말세되니 삼국 싸움 생겼구나. 우리 몸 군사 되어 전장에 나왔으니 안득념향규(安得念香閨) 생각한들 쓸 데 있나. 닫는 말 칩떠 타고 삼척검(三尺劒) 둘러메고 끓는 물 붙는 분별 없이 달려들어 오‧한 양국 상장(上將) 머리 한칼에 선뜻 베어 인기(認旗) 대에 놓이 달고 개가환양(凱歌還鄕) 돌아가면 대장부득의추(大丈夫得意秋)가 이 밖에 도 있느냐. ”
한 군사가 대답하여,
“진소위(眞所謂) 각언기지(各言其志)로다. 군신유의(君臣有義) 생각하니 충신의 아들이나, 까마귀 새벽 울음, 승상의 웃음소리 두 방정이 모였으니 모르겠다, 네 신세가 개가환향하려는지 소가 환향하려는가.”
밤새도록 주육(酒肉)으로 장난하고 놀았구나.
이튿날 주도독이 산정(山頂)에 올라서서 북군 형세 살필 적에 조조의 중앙 황기(黃旗) 바람결에 뚝 부러져 대강(大江) 중에 들어가니, 마음에 대희하여 불상조(不祥兆)를 짐작터니 홀연히 일진광풍(一陣狂風) 강중에서 일어나서 진전(陣前)에 세운 깃발 도독 뺨을 씻어가니, 마음에 있는 생각 맹연(猛然)히 일어나서 한 소리 크게 질러 입으로 피 토하고 뒤로 벌떡 넘어져서 불성인사(不省人事)하는구나. 제장이 대경하여 장중(장中)으로 업어들여 온 가지로 구완할 제, 공명의 높은 재조 의술도 하셨던지 노숙과 한가지로 도독에게 문병할 제, 천유불측풍우(天有不測風雨)이라 한 말씀에 집증(執症)하고 순기를 시키기로 양약을 쓰려 할제,
“욕파조공(欲破曹公)인데 의용화공(宜用火功)이라, 만사 구비하되 지흠동풍(只欠東風)이라.”
16자 적어 놓으니 도독의 급한 병세 쾌히 집증되었구나. 도독이 비는 말이,
“병세 과연 그러하니 무슨 약을 쓰올는지 가르쳐 주옵소서.”
공명이 대답하되,
“양이 재조 없사오니 이인(異人)을 만났기로 팔문둔갑(八門遁甲) 공부하여 호풍환우(呼風喚雨)하옵나니, 남병산에 단을 묻고 지성으로 빌었으면 때 아닌 동남풍이 삼일 삼야(三夜) 부오리다.”
도독이 대답하되,
“사세(事勢)가 급하오니 지완(遲緩)하면 못 하리다.”
공명이 대답하되,
“십일월 이십일 갑자일에 바람이 시작하여 이십이일 병인에 그치게 하오리다.”
도독이 대희하여 정장군(精壯軍) 5백명을 불시에 조발(調撥)하여 남병산에 단 묻을 제, 공명선생 거동보소.
노숙과 한가지로 지세를 살핀 후에 동남방에 적토(赤土) 파서 단 하나를 묻었으되 방원(方圓)은 24장 높기는 3층인데, 일층고(一層高)가 3척이라. 하일층에 꽂은 기는 28수응(宿應)했으니, 동방 7면 꽂은 청기 각항저방심미기(角亢저房心尾箕) 창룡지형(蒼龍之形) 펴 있고, 북방 7면 박은 흑기 두우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 현무지세(玄武之勢) 지어 있고, 서방 7면 세운 백기 규루위묘필자삼(奎婁胃昴畢자參) 백호지위(白虎之威) 걸앉았았고, 남방 7면 지른 홍기(紅旗)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 주작지상(朱雀之狀) 이루었고, 제2층에 꽂은 황기 64괘 응하여 팔위(八位)를 나눠 세우고, 상일층(上一層)에 네 사람은 속발관조(束髮冠早) 나포(羅袍)에 봉의박대(鳳衣博帶) 주리방거(朱履方거) 다 각기 하였는데, 전좌에 한 사람은 간대 끝에 닭의 깃 달아 풍신(風信)을 불렀으며, 전우에 한 사람은 간대 끝에 칠성호(七星號) 달아 풍색(風色)을 표하였고, 후좌(後左)에 한 사람은 보검을 받들었고, 후우(後右)에 한 사람은 향로에 받들었고, 단하(壇下)에 24인 정기(旌旗)‧보개(寶蓋)‧대극(大戟)‧장과(長戈)‧황모(黃모)‧백월(白鉞)‧주번(朱幡)‧조독(조纛) 사면으로 둘러 세우고, 노숙더러 하는 말씀,
“자경은 내려가서 도독과 한가지로 승전을 하게 하라.”
노숙을 보내시고 목욕재계하신 후에, 도의(道衣)를 몸에 입고 발벗고 머리 풀고 단 앞에 우뚝 서서 단 지킨 장사에게 분부를 하시기를,
“천이방위(擅移方位) 말고 교두접이(交頭接耳) 말고 실구난언(失口亂言) 말고 실경타괴(失驚打怪) 말라. 위령자(違令者)는 참 하리라.”
약속을 다 하시고 완보(緩步)로 단에 올라 방위를 살핀 후에 화로에 향 피우고 바리에 물을 부어 앙천 암축(仰天 暗祝)하시는데, 가만 가만 빈 말씀을 알 수가 없건마는 제사를 지내실 제, 축문이 있겠기에 이 사설 짓는 사람 제 의사로 지었으니 공명선생 아시면 꾸중이나 안 하실지.
“유세차(維歲次) 대한 건안 십이년 십일월 을사 삭(朔) 이십일 갑자, 좌장군 의성정후 영예주목 유비의 군사(軍師) 신 제갈량은 감소고우(敢沼告于) 황천후토(皇天后土) 풍백(風伯)전(前) 하옵나니, 한실(漢室)이 경퇴(傾頹)하고 간신이 절명(竊命)키로 양의 주인 유예주가 제실(帝室)의 말주(末冑)로서 대의를 펴려다가, 지술(智術)이 단천(短淺)하여 장판(長坂)에서 패를 보고 하구에 몸을 붙여 동오와 화친하여 조조를 치옵는데, 병미장과(兵微將寡)하와 화공(火功)을 하려 하되 서북풍이 불어서는 반수기앙(反受其殃)할 테오니, 미성(微誠)을 하촉(下燭)하사 때아닌 동남풍을 삼일삼야(三日三夜) 빌어옵서 초멸역적(剿滅逆賊)하고 흥부한실(興復漢室)하옵소서. 尙饗.”
축문을 읽으시고 상단 삼차 하단 삼차 빌기를 다한 후에 공명은 간 데 없다.
이때에 주도독은 화전기계(火戰器械) 준비하여 노숙과 한가지로 동남풍을 기다릴 제, 야색(夜色)이 청명하여 미풍 불기(不起)터니 삼경이 지난 후에 바람소리 들리거늘, 도독이 나서 보니 손사방(巽巳方)에 박힌 깃발 술해방(戌亥方)에 펄펄 풍겨 동남풍이 완연쿠나. 도독이 대경(大驚)하여 ‘이 사람은 천신(天神)이라, 천지조화(天地造化)의 법과 귀신불측지술(鬼神不測之術)을 가졌으니, 만일 살려 두어서는 동오에 화근(禍根)이라’, 장전(帳前) 호군교위(護軍校尉) 서성‧정봉 두 장수를 급히 불러 분부하되,
“너희 두 장수가 일백인씩 거느리고 수로(水路) 한로(旱路) 바삐 쫓아 남병산 급히 가서 제갈량을 만나거든 장단을 묻지 말고 한칼에 목 베어 오라.”
두 장수 영을 듣고, 서성은 배를 타고 정봉은 말을 달려 남병산에 올라가니, 공명은 간 데 없고 끈 떨어진 차일(遮日) 장막(帳幕) 바람결에 펄펄, 단 지킨 군사들이 깃대만 붙들고서 바람 앞에 서 있구나. 정봉이 칼 빼들고,
“공명이 어디 갔노.”
“바람을 빈 연후에 단에서 내려가더이다.”
서성은 배에서 내려 강가에 급히 가니 소졸(小卒)이 여짜오되,
“어저께 석양천(夕陽天)에 난데 없는 한 척 쾌선(快船) 전변 탄구(灘口)에 매였더니 동남풍 일어날 제 공명이 머리 푼 채 급히 와서 그 배 타고 저 위로 가더이다.”
서성이 깜짝 놀라 양 돛을 갈라 달고 배를 저어 쫓아가니 공명 탄 배 멀쟎은 데 돛을 아니 달앗거늘 서성이 크게 외치되,
“저기 가는 공명선생 거기 잠간 머무소서. 우리 나라 주도독이 하는 말씀 있더이다.”
공명이 크게 웃고 서성더러 하는 말씀,
“잔말 말고 돌아가서 주도곡께 여쭙기를, 용병(用兵)이나 잘하셔서 승전을 하시래라. 제갈량은 일이 있어 하구로 잠깐 가니 다시 뵐 날 있으리라.”
서성이 아니 듣고 긴한 말씀 있다 하고 점점 급히 따라가니 조운(趙雲)이 분을 내어 선두(船頭)에 뚝 나서서 크게 외쳐 호령한다.
“상산(常山)의 조자룡을 너 혹 이름 들었느냐. 재조 높은 우리 선생 네 나라에 들어가서 유공(有功)하고 오시는데, 간사한 주독은 무슨 일로 해하려고 너를 쫓아 보내든다. 발무불중(發無不中) 내 활 재조 너를 쏘아 죽일 테나 양가화기(兩家和氣) 생각하여 죽이든 아니하니 수단이나 보고 가라.”
철궁(鐵弓)에 왜전(矮箭) 메겨 흉허복실(胸虛腹實) 만작(滿作)하여 하삼지(下三指) 받아 쥐고 머문 깍지 떼 떨치니 바람같이 빠른 살이 피루루 건너가서 서성 탄 배 돛대 질끈 용층줄 끊어져 또기또기 찢어진 돛폭 물에 둥둥 떠나가니 뱃머리 뱅뱅 돌아 따라갈 수 있겠느냐.
자룡은 배를 저어 순풍에 돛을 달고 나는 듯이 돌아오니, 황숙과 공자(公子) 유기(劉琦) 반겨서 영접한다. 대강 인사하신 후에 공명이 여짜오되,
“약속하신 군마전선(軍馬戰船) 다 준비하시니까.”
황숙이 대답하되,
“준비한 지 오래니다.”
공명선생 거동 보소. 황숙 공자 모시옵고 장대에 올라 앉아 분발(分撥)을 하실 적에 조운을 먼저 불러 3천 군마 주시면서,
“오림소로(烏林小路) 급히 가서 수목로위(樹木蘆葦) 깊은 곳에 매복을 하엿으면 오늘밤 사경(四更) 후에 조조 그리 올 것이니 불 놓고 내달으면 조조는 못 잡아도 일반(一半)을 죽이리라.”
자룡이 여짜오되,
“오림 길이 두 갈래라 한 길은 남군 가고 한길은 형주 가니, 어느 길로 가옵는지.”
공명이 대답하되,
“남군은 세박(勢迫)하니 조조가 못 갈테요, 형주로 말미암아 허창으로 갈 것이니, 그리 알아 매복하라.”
자룡이 떠난 후에 장비 불러 분부하되,
“조자가 패한 후에 남이릉(南이陵)을 갈 수 없고 북이릉(北이陵)으로 갈 것이니, 삼천군 거느리고 강을 거너 급히 가서 호로곡(葫蘆谷)에 매복(埋伏)타가 내일 비 온 후에 조조가 그리 와서 솥 걸고 밥 짓거든, 연기 나는 것을 보고 불 놓고 엄살(掩殺)하면 조조는 못 잡아도 그 공로가 적쟎으니 착실히 거행하라.”
익덕(益德)이 떠난 후에 미축‧미방‧유봉 불러,
“너희는 배를 타고 강상(江上)에 떠 있다가 패군을 사로잡고 기계를 탈취하라.”
세 사람이 떠난 후에 공명이 일어서서 공자‧유기 돌아보며,
“무창으로 가는 길이 긴요한 곳이오니 안구에 진을 치고, 도망 군사 사로잡고 성곽을 지키옵고 떠나지 마옵소서.”
공자가 떠나시니 공명이 여짜오되,
“주공(主公)은 오늘 밤에 번구(樊口)에 둔병(屯兵)하고 높은 대에 올라앉아 주랑(周郞)의 성공함을 구경이나 하사이다.”
관공이 곁에 서서 기다린 지 오래더니 분발을 다하여도 찾는 일이 없는지라, 참다가 못 견디어 고성(高聲)하여 여짜오되,
“관모(關某) 재조 없사오나 형장(兄長)을 모시옵고 허다년(許多年) 정벌할 제 낙후(落後)함이 없삽더니, 오늘같은 큰 싸움에 찾는 일이 없사오니 무슨 연고 있나이까.”
공명이 웃으시며,
“운장(雲長)은 노여 마오. 조조를 잡자 하면 긴한 목이 있사오니 그 목에 보낼 장수 관공밖에 없사오나, 걸리는 일 있삽기로 가란 말씀 못하오니 어찌 알지 마옵소서.”
관공이 여짜오되,
“무슨 일이 걸립니까?”
“옛날에 조맹덕(曹孟德)이 장군을 대접하기 극진히 하였으니 오늘날 패군(敗軍)하고 좁은 길에 도망타가 장군을 만나오면 정녕 애걸할 것이니, 장군의 장한 의기 옛 은혜를 못 잊어서 필연 놓아 보낼 테니 그 일이 걸리기에 보내지 못합네다.”
관공이 여짜오되,
“군사(軍師))의 하는 말씀 좋은 마음 많사외다.
전일의 조맹덕이 과연 후대(厚待)하옵기로 안량‧문추 목을 베어 백마위(白馬圍))를 풀었으니 제 은혜를 갚은지라 오늘날 만나오면 어찌 놓아 보내리까.”
공명이 또 물으셔,
“조조를 놓고 오면 그 죄를 어찌할꼬.”
관공이 대답하되,
“군령장(軍令狀)을 두려니와 조조 그리 아니 오면 군사는 어쩌시려오.”
“군령장을 나도 두제. 화용소로(華容小路) 좁은 곳에 높은 뫼에 불을 놓아 간사한 저 조조를 연기로 유인하라.”
관공이 대답하되,
“조조가 연기 보고 복병인가 짐작하고 그리 올 리가 있소?”
“허허실실(虛虛實實) 묘한 병법 장군 어찌 모르나뇨. 조조가 연기 보면 허장성세(虛張聲勢)한다 하고 그리 정녕 올 것이니, 부디 사정 두지 말고 산 조조로 묶어오라.”
관공이 영(令)을 듣고 관평‧주장 거느리고 5백 명 교도수(校刀手)를 화용도로 행군할 제, 청도(淸道) 한 쌍, 홍문(紅門) 한 쌍, 주작, 남서각(南西角)‧남동각(南東角), 홍초(紅招), 남문(藍門) 한 쌍, 청룡, 동남각(東南角)‧동북각(東北角), 남초, 황문 한 쌍, 등사(謄蛇)‧순시(巡視) 한 쌍, 황초(黃招)‧백문(白門) 한 쌍, 백호(白虎), 서북각‧동북각, 백초‧흑문 한 쌍, 현무(玄武), 북서각‧동북각, 흑초, 홍신(紅神), 남신(藍神), 황신, 백신, 흑신, 표미(豹眉), 금고(金鼓) 한 쌍, 호총(號銃) 한 쌍, 바라 한 쌍, 나팔 한 쌍, 세악(細樂) 한 쌍, 고(鼓)두 한 쌍, 솔발(솔발) 한 쌍, 순시 한 쌍, 영기(令旗) 두 쌍, 좌(左) 관이(貫耳), 우 영전(令箭), 중 사명(司命), 집사 한 쌍, 기패관(旗牌官) 두 쌍, 군뢰(軍牢) 두 쌍, 좌마(座馬), 독(纛), 난후(난後), 친병(親兵), 교사(敎師), 당보(塘報) 각 두 쌍, 퉁 쾡 뙤 대취타(大吹打)로 나가는구나.
이때에 서성‧정봉 돌아와서 공명선생 가던 내력 도독 전에 여짜오니 도독이 분을 내어 현덕 먼저 치려 하니, 노숙이 만류하여 조조를 치라 하고 동남풍 때를 타서 화전을 하려 할 제, 감녕을 먼저 불러,
“채중(蔡仲) 항졸(降卒) 거느리고 북군(北軍) 기호(旗號) 가지고서 오림지면(烏林之面) 급히 가서 조조 양식 불지르라.”
제2에 태사자(太史慈) 불러,
“삼천 병 거느리고 황주지계(黃州之界) 급히 가서 조조의 구원병이 합비(合肥)로 올 것이니, 불을 놓아 엄살(掩殺)하고 홍기(紅旗) 보고 접응(接應)하라.”
제3에 여몽(呂蒙) 불러,
“삼천 병 거느리고 오림에 급히 가서 감녕을 접응하고 조조 채책(寨柵) 불지르라.”
제4에 능통(凌統) 불러,
“삼천 병 거느리고 이릉 길을 막았다가 오림에서 불나거든 급히 나서 접응하라.”
제5에 동습(董襲) 불러,
“삼천 병 거느리고 한양으로 바로 가서 조조 채중 달려들어 백기 보고 접응하라.”
제5에 반장(潘璋) 불러,
“삼천 병 거느리되 모두 다 백기 들고 한양으로 급히 가서 동습을 접응하라. 한당‧주태‧장흠‧진무 너희들 네 장수는 전선(戰船) 삼백 척과 화선(火船) 이십 척씩 다 각기 거느리고 황개 뒤를 접응하라.”
대도독이 주공근과 부도독 정보는 몽동전선(朦동戰船)에 높이 앉아, 서성‧정봉 두 장수가 좌우 호위하였는데 포고관(布告官)이 발방(發放)한다.
“관기청착(官旗聽착)” “아” “이청금고(耳聽金鼓)” “아” “안시정기(眼視旌旗)” “아” “가선여마(駕船如馬)” “아” “견적쟁선(見賊爭先)” “아” “동주공명(同舟共命)” “아” “선각위전(船各爲戰)” “아” “종도적주(縱逃賊舟)면 군법부대(軍法不貸)” “아”
발방을 다한 후에 노숙‧감택 여러 모사(謀士) 채책을 지키시며 오후(吳侯) 손권이는 육손(陸遜)으로 선봉삼아 후응으로 쫓아올 제 서산에 화포(火砲) 놓고 남병에 호기(號旗) 들어 출전을 하려 할 제 애잔한 채화(蔡和) 목숨 제물감 불쌍하다.
황개 화선 20척에 큰 못을 많이 박아 노위건시(蘆葦乾柴) 잔뜩 싣고 유황‧염초, 어유(漁油) 등물(等物) 그 속에 들어붓고, 청포유단(靑布油單) 둘러싸서 청룡아기(靑龍牙旗) 높이 꽂고 황개의 기동 보소. 엄심갑(掩心甲)을 몸에 입고 7척 장검 손에 들고 제3척 화선 위에 가만히 들어앉아 조조에게 밀통(密通)하되,
“파양호(파陽湖)에 운량선(運粮船)을 모두 몰아 가지옵고 강동명장(江東名將) 목을 베어 승상전에 항복차로 오늘 저녁 갈 터인데, 청룡아기 꽂은 것이 소장의 양선(粮船)이니 기다리고 계옵소서.”
조조가 대희하여 전선 위에 높이 앉아 제장을 데리고서 황개 소식 기다릴 제, 난데 없는 동남풍이 살살 부는구나. 정욱이 여짜오되,
“때 아닌 동남풍이 어찌하여 부옵는지 미리 방비하옵소서.”
조조가 염소 웃음을 웃어,
“네가 어이 무식하냐. 동지에 일양생래복지시(一陽生來復之時) 당하여서 동남풍이 없겠느냐.”
밤이 들며 달이 돋아 일대장강 만도금사(一帶長江 萬道金蛇) 경개가 장히 좋다. 은은히 바라보니 살같이 빠른 배가 순풍하여 날아올 제 청룡아기 넓은 폭에 ‘선봉 황개(先鋒黃蓋)’ 네 글자가 완연히 뵈는구나. 조조가 또 웃어,
“공복(公覆)이 항복하니 하늘이 도움이라.”
의기가 양양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오는 배 수상하니 멀리 매라 하옵소서. 양식 실은 배 올진대 무겁게 떠서 올새 배가 저리 가볍고 동남풍이 또 급하오니 어찌하여 막으리까.”
조조가 깜짝 놀라,
“얘, 큰일났다. 저 배를 뉘 막으리.”
문빙(文聘)이 썩 나서서 외쳐 이르기를,
“저기 오는 강남 배야, 승상 분부 계옵시니 가까이 오지 말고 돛을 지어 거기에 매라.”
이 말이 지든 말든 시위 소리 얼른 나며 피루루 오는 살에 문빙이 팔을 맞아 배 안에 자빠지니, 20척 날랜 화신 일시에 불을 질러 조조 수채 달려들 제, 바람은 불을 좇고 불은 바람 좇아 화열풍맹(火烈風猛) 급한 형세 조조의 수만 전선 연환(連環)이 굳었으니 저 어디로 도망하리. 좌편에는 한당‧장흠, 우편에는 주태‧진무, 한가운데 오는 것은 주유‧정보‧서정‧정봉 사면으로 달려들 제 텡텡 연주포, 뙤뙤 천아성(天鵝聲), 둥둥 뇌고 소리, 쨍쨍 징 소리, 번듯번듯 장창(長槍)‧환도(環刀), 휘딱휘딱 쇠도리깨, 핑핑 오는 살 소리, 훨훨 붙는 불 소리, 우주가 바뀌고 벽력이 진동하니 조조의 백만 대병 각색으로 다 죽는다.
불 속에 타서 죽고, 물 속에 빠져 죽고, 총 맞아 죽고, 살 맞아 주고, 칼에 죽고, 창에 죽고, 밟혀 죽고, 눌려 죽고, 엎어져 죽고, 자빠져 죽고, 기막혀 죽고, 숨막혀 죽고, 창 터져 죽고, 등 터져 죽고, 팔 부러져 죽고, 다리 부러져 죽고, 피 토하여 죽고, 똥 사고 주고, 웃고 죽고, 뛰다 죽고, 소리지르다 죽고, 달아나다 죽고, 앉아 죽고, 서서 죽고, 가다 죽고, 오다 죽고, 장담하다 죽고, 부기(浮氣) 쓰다 죽고, 이 갈며 죽고, 주먹 쥐고 죽고, 죽어 보느라 죽고, 재담으로 죽고, 하 서러워 죽고, 동무 따라 죽고, 수없이 죽은 것이 강물이 피가 되어 적벽강(赤壁江)이 적수강(赤水江), 군장복색(軍裝服色) 다 타진다.
청도‧순시‧영기이며 오방(五方)‧고초‧황신‧표미‧조총‧환도‧장창‧등패(藤牌)‧낭선이며, 귀약‧통남‧날개‧모람‧쇠거마작‧화승살이‧도래송곳‧운월상모(雲月象毛)‧전립이며, 안갑(鞍匣)다래 막이‧관이‧영전‧숙정패(肅靜牌)‧징‧북‧나팔‧태평소‧바라‧광쇠‧고등이며, 장막노구‧아리쇠‧흑각(黑角)‧생각(生角)‧간각궁(幹角弓)과 철전(鐵箭)‧편전(片箭)‧유엽전(柳葉箭)‧동개‧통아‧호수등채‧팔찌‧깍지 휘어지며, 협수‧호의, 요대‧전대,선상 기물 다 타진다. 풍석(風席)‧초둔‧삼판, 하판‧노사곡대, 용층 닻줄‧돛대‧치목, 입으로 세는 대로 일시에 재가 되어 만경창파상에 술렁술렁 다 떠가니, 장요는 활만 남고 허저는 몸만 남아 구사불섬(救死不贍)할 수 없다.
조조가 넋을 잃고 조각배 얻어 타고 주먹 쥐고 도망할 제, 범같은 선봉 황개 장창을 손에 쥐고 벽력 같은 호령 소리,
“홍포 입은 저 조조놈, 너 어디로 가려느냐. 선봉 황개 여기 있다.”
조조가 할 수 없어 홍포 벗고 도망하니 도 크게 외치는 소리,
“수염 긴 놈 조조니라.”
수염을 석 베이니,
“수염 벤 놈 조조니라.”
깃발 떼어 턱을 사고 반생반사(半生半死) 도망할 제, 장요의 날랜 살이 황개 소아 물에 넣고 언덕에 올라가서 안장 없는 말을 타고 죽자살자 도망할 제,
“이놈, 조조 닫지 마라.”
벽력 같은 호령 소리 예서 나고 제서 나니, 여몽‧능통‧감녕이라 마른 뜰에 부어 쫓듯 나무꾼들 노루 쫓듯 빈틈없이 쫓아오니 조조 거동 장관이라. 총 소리에 귀가 먹먹 내를 쐬어 눈이 캄캄 눈썹이 다 탔으니, 용천아치 초를 잡고 낯이 데어 벗어지니 당창(唐瘡)을 올렸는가 온몸에 내를 쐬어 전복 따러 가게 되고, 두 코가 뻑뻑하여 재채기하는 모양 굴 속에 너구리가 고춧가루총 맞은 듯 알몸으로 말에 앉아 아무리 도망한들 사면이 복병이라. 죽을밖에 수 없으니 그래도 간웅이라 정욱을 돌아보며 재담하여 하는 말이,
“내 마상태(馬上態)가 어떠하냐?”
정욱이 여짜오되,
“그대로 모셔다가 동작대에 앉혔으면 이교녀가 반하겠소.”
조조 평생 먹은 마음 역적질 뿐이기로 죽을 판에 재담하되 천자 편으로 붙이어,
“이게 어디 적벽강이냐, 지소방(紙所房) 고랫속이지. 내 형상을 내 보아도 숯장수 뽄이로다. 이대로 붕하시면 송자이나 될지라도 목야(牧野)의 상주(商紂) 송장, 귀신이 될지라도 북방의 흑제(黑帝) 귀신, 송장 중에 잡것이요, 귀신 중에 하뻘이라,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죽고 살기 고사하고 남부끄러 못 하겠다.”
제 손서 말을 몰아 달랑달랑 달아나며 살이 올까 철환 올까 목은 장 옴츠리니, 정욱이 비소(誹笑)하여,
“승상 목 좀 내놓시오. 근본 두풍(頭風) 과하시니 좋다는 편전(片箭)으로 삼박 퉁겨 피 빼시면 두풍이 나으리다.”
“아서라, 그러다가 숟가락을 아주 놓으면 천자 노릇 누가 할꼬.”
불변천지(不辯天地) 도망터니 화광(火光)은 점점 멀리 복병은 안 나온다.
앞으로 가는 길에 산세가 험준하고 수목이 총잡(叢雜)하니 조작 물어,
“예가 어디냐?”
좌우 여짜오되,
“오린이오 조조가 말 위에서 손뼉치며 대소하니 제장이 물어 여보시오 승상님 장졸을 다 죽이고 좆만 차고 가는 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저다지 웃으시오.”
조조가 대답하되,
“주유와 제갈량이 꾀 없음을 웃는다. 이러한 좁은 목에 눈 먼 장수 하나라도 매복을 하였으면 우리들 남은 목숨 독 속의 쥐새끼지.”
이 말이 지든 말든 방포 소리 ‘퀑’ 복병이 내닫는다.
화광(火光)은 접천(接天)하고 고성(高聲)이 진지(震地)로다. 범같은 일원(一員) 대장 호통하며 나오는데, 활면중이(闊面重耳)에 백옥을 깎았는 듯 눈망울은 물결 같고, 이어 허리, 곰의 팔에 황금 투구 녹포(綠袍)‧은갑(銀甲)‧장창(長槍)을 비껴들고,
“이놈 조조야, 당양‧장판 큰 싸움에 상산‧자룡 내 재조를 네 눈으로 보았지야. 우리 군사 장령 모아 너 하나를 잡으려고 이속 온 지 오래로다. 닫지 말고 창 받으라.”
동에서 번뜻 서장(西將)을 베고, 남에서 번끗 북장(北將)을 베며 번개같이 쫓아오니 조조가 혼비백산(魂飛魄散) 하마(下馬)에 뚝 떨어져 주먹 쥐고 도망할 제, 따라오던 장수‧군사 절반이나 다 죽이고 여간 남은 군장복색 하나 없이 다 뺏긴다. 장합‧서황 두 장수로 자룡을 대적하고 조조는 도망할 제, 동남풍은 끈지게 불고 검은 구름 뒤엎으며 급하게 오는 비가 동이로 퍼붓듯이 쭉쭉 쏟아지니 조조와 장졸 신세 갈수록 불쌍하다. 의갑(衣甲)이 다 젖으니 춥긴들 오죽하며 여러 날 굶었으니 배가 오죽 고플소냐. 조조가 쫓겨가도 호기는 그저 잇어 복마군(卜馬軍)을 불러,
“우산 올리라. 데인 살에 빗물드니 쓰려 어디 살겠느냐.”
정욱이 여짜오되,
“승상의 하는 분부 어찌 그리 무식하오? 노불승거(勞不乘車) 서불장개(薯不張蓋) 옛 명장의 한 일이라 상창기곤(傷瘡飢困) 남은 군사 울며불며 따라오는데, 적벽강 불 속에 우산 어디 남았으며 설령 우산 있다 하고 승상 혼자 우산 받고 어디로 가시겠소. 이만 비를 못 견디고 만일 장비 만낫으면 우산으로 막으시려오?”
십전구도(十顚九倒) 가느라니 날이 점점 새어가며 비가 조금 개는구나.
남이릉 가려 하고 호로곡에 당도하니 인마(人馬)가 기진하여 촌보(寸步)를 갈 수 없다. 조조가 쉬어 앉아 의갑을 벗어 내어 바람결에 말리며 화병(火兵)에게 분부하여,
“노구 걸고 밥을 하라.”
화병이 썩 나서서 정면상대 바로 떠서,
“걸 노구 어디 있고 밥할 양식 어디 있소?”
조조가 호령하여,
“너 이놈, 군량, 누구 다 어디 두었는고?”
그 판이 되었거든 무슨 법이 있겠느냐. 화병이 바로 막 서서,
“양식 간 데 모르시오? 취철산‧적병강에 산같이 쌓인 양초(粮草) 승상의 방정으로 불 속에 넣었으니 저리 시장하거든 거기를 찾아가서 튀밥 주워 잡수시오.”
조조가 화를 내어,
“승패는 병가상사(兵家常事), 한 번 실수하였다고 네 놈의 말버릇이 그럴 수가 있단 말가. 양식은 그렇다고 노구 얻다 두었느냐?”
“예, 노구 말씀 들으시려오? 적벽강 그 불 속에 간신히 아니 죽고 이 몸 살아 돌아올 제, 퉁노구 안 버리고 등에 지고 오옵기는 승상의 진지 짓자 정성인 게 아니오라, 행여나 아니 죽고 내 집에 돌아가면 부엌에 걸어 두고 나물국 끓여 먹자 단단 간직하였더니, 오림에서 자룡 만나 목숨을 살자 하고 퉁노구 무릅쓰고 수풀 밑에 엎어졌더니, 누구 밑 복판에 위나라 위자(魏字) 어찌 쓰여 조장군이 보시더니. ‘애고 이놈 위병이라, 여름날 급한 벼락 쪽박 쓰고 방위해도 조자룡 내 창법을 퉁노구로 방위할소냐.’ 그놈의 얕은 꾀가 똑 조조. 창으로 푹 찌르니 노구 산산 부서지고 창 끝이 빗나가서 목은 아니 찔렸기에 죽은 듯이 누웠다가 그 장군 가신 후에 가만가만 걸어왔소.”
조조가 꾸짖어,
“너 이놈 퉁노구가 그랬으나 저랬으나 네 장수 이름자를 조조야 조조야 여호소아(如呼小兒) 한단 말가.”
“그 장군님이 조조라 하더랬제 내가 조조라고 하오? 그러하나 저러하나 우리 군중에서 승상님 장군님 하제, 오‧한 양국 사람들은 그러한 장수 말고 오륙세 아이들도 모두 다 하는 말이 조조 그놈 죽일 놈, 조조 그놈 죽일 놈 하니, 행세를 어찌 하여 인심 그리 못 얻었소? 지금 살아 계실 적에 남의 욕이 저러할 제, 상사(喪事)나신 천만년에 그 시비(是非)가 어떻겠소?”
조조가 들어 본즉 대답할 말이 없어 대고 얼러,
“너 이놈 그런 걱정 네게는 부당(不當)이라. 진지 지금 안 올리면 네놈 목을 베리라.”
위턱과 아래턱이 견딜 수가 있겠느냐.
진지를 지을렬 제 아총(兒塚) 덮은 질솥 단지 벗겨다가 걸어 놓고 촌가의 노략한 쌀 물에 씻어 안친 후에, 부시를 치려 한들 그 비 맞은 부싯깃이 아런들 불붙겠나. 부시를 한참 칠 제 조조가 정욱더러,
“우리 따라 온 군사가 도합이 몇 명이냐?”
“백만 명이오.”
“모두 다 어디 가고 저것이 남았느냐? 갈 길은 아직 멀고 군사는 몇 없으니 화병놈 밥할 틈에 군사 점고하여 보자.”
“어디 점고할 것 있소. 나는 가르칠 게 승상님은 꼽아 보오.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모퉁에 한 놈, 나무 밑에 한 놈, 부시치는 놈 하나, 승상님 하나, 나 하나, 모두 일곱이오.”
“그럴 리가 있나. 앞에서 먼저 간 놈, 뒤에서 못 따라온 놈, 산곡에 숨은 놈, 촌려(村閭)에 노략간 놈, 응당히 많을 테니 대좌기(大坐起)하고 장호적(掌號笛)하라.”
정욱이 대답하고 점고를 시작할 제, 할 노릇은 다 하여 좌기취(坐起吹)를 하는데 주먹대고 나팔 불고 입으로 북 불고 놋기 조각 바라 치고 막대기에 가랑잎 달아 숙정패(肅靜牌) 삼아 꽂고 대취타(大吹打)한 연후에 장호적을 한참 하니, 군사들이 들어오는데 이것이 전장에 온 군사 뽄이 아니라 기(己)‧갑년(甲年) 기민(飢民) 뽄이로구나. 어린 작대안을 정욱이 펴들고 차례로 부르는데,
“좌부(左部) 우사(右司) 전초(前哨) 일기(一旗) 일대장 공중쇠.”
기총(旗總)이 옆에 서서 대답하되,
“물고(物故)요.”
“이대장 육대쇠.”
“물고요.”
“삼대장 무거쇠.”
“물고요.”
“사대장 허망쇠.”
‘물고’ 소리 장 하기가 기총(旗總)도 무안하여 대담 뽄을 고쳐서,
“죽었소.”
“오대장 맹랑쇠.”
“그놈도 그랬소.”
“낭선수(狼선手) 팔랑쇠.”
“아까 하던 말이오.”
“어따 이놈아, 쇠자 항렬은 다 죽었단 말이냐?”
“적벽강 그 불 속에 무슨 쇠가 안 녹겠소?”
“장창수(長槍手) 장내두리.”
“예.”
저놈이 들어오는데 한 다리는 절룩절룩, 한 팔은 들어 메고 부러진 창대 끌면서 애고애고 울며 온다. 조조가 반겨 물어,
“점고 시작한 지가 반일(半日)이 되었으되 대답하고 오는 놈 처음 너를 보았으니, 반갑기는 반가우나 울기는 왜 우느냐?”
“우는 내력 들어보오. 적벽강에 뛰어 나다 이 다리가 위골(違骨)하고, 오림에서 복병 만나 이 창을 뺏삽기에 창 아니 뺏기려다 팔과 창이 다 부러져, 창날은 빼어 가고 창대 꺾어 버리기에 짚고는 왔소마는 내 신세를 생각하니 모진 목숨 아니 죽고, 설령 고향 갈지라도 병신되기 원통한데 만일 복병 또 만나면 내 꼴이 어떻겠소 그 생각하고 우오.”
조조가 복병소리 실허하여,
“방정스런 주둥이로 복병 소리 왜 하는고.”
“승상님은 유복하여 저 꼴이 되었나 보오.”
“등(藤)채 수성(守城) 가토리.”
“예.”
저놈이 들어오는데 고개 뒤로 딱 잦히고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느짓느짓 걸어와서 조조 앞에 절한다고 입으로,
“절이오.”
하고 배만 쑥 내미니 조조가 꾸짖어,
“이놈, 그 절 뽄을 어디서 배웠느냐?”
“적벽강에서 난 절이오.”
“누가 절을 가르쳤노?”
“선생 없이 자득(自得)이니 절 내력 들어보오. 적벽강 화염(火焰) 중에 몸을 뛰어 도망할 제, 군복 뒷자락에 불이 방장(方將) 타는 것을 어떻게 겁냈던지 아무런 줄 모르고서 주먹 쥐고 한참 가니, 고개 뒤로 잣당기고 맛난 내가 곧 나기에 함께 오는 사람더러 자세히 보라 한즉, 등덜미가 다 익어서 힘줄이 다 오그라져 빨끈 잦혀 놓았으니 앞으로 숙이기는 죽어도 할 수 없소.”
조조가 의사 내어,
“이번은 ㅇ파자락에 또 불을 질렀으면 가슴에서 잡아당겨 절로 꼿꼿하여지제.”
“의사 참 영웅이오.”
“조총수 한눈감이.”
“예.”
저놈은 들어오며 항문에 손 받치고 울면서 하는 말이,
“애고 똥구멍이야. 애고 똥구멍이야.”
조조가 불러,
“너 이놈, 앓을 데가 오죽 많아, 똥구멍은 왜 앓느냐?”
저놈이 대답하되,
“적벽강서 아니 죽고 오림으로 도망터니 한 장수가 쫓아와서 내 벙치 썩 벗기고 내 상투 석 잡으며, 어허 그놈 어여쁘다. 죽이자 하였더니 중동 해소시켜 볼까. 갈대 숲 깊은 데로 끌고 들어가서 엎어지르며 하는 말이, ‘전장에서 나온 지가 여러 해 되었기로 양각산중(兩脚山中) 주장군(朱將軍)이 참것 맛을 못 보아서 밤낮으로 화를 내니, 옥문관은 구지부득(求之不得) 너 지닌 항문관(肛門關)에 얼 요기(療飢) 시켜 보자.’
침도 안 바르고 생짜로 쑥 디미니 생눈이 곧 솟는데 뱃살이 꼿꼿하여 두 주먹 아드득 쥐고 앞니를 뽀득 갈아 반생반사 막 견디니 그 옆에서 굿 보는 놈 걸음 차례 달려들어 일곱 놈을 치렀더니, 항문 웃시울 망건 당줄 조른 것이 뚝 끊어져 벌어지니 뱃속까지 훤하여서 걸림새가 아주 없어, 그래도 그 정으로 총은 아니 뺏아가고 옆에다 놓았기에 간신히 정신 차려 온몸을 주무르고 총대 짚고 일어서서 일보일게(一步一憩) 오옵는데, 제일 극난(極難)한 게 밥 먹어도 그대로, 물 먹어도 그대로 쉬지 않고 곧 나오니 밖에서는 못 막아서 안으로 막아볼까 포수에게 석냥 받고 총을 팔아 황육(黃肉) 사서 종자 만큼 떼어 넣어도 수르르 도로 나와, 주먹만큼 목침(木枕)만큼 아무리 떼어 넣어도 도로만 곧 나오니 어찌하여 살 수 있소.”
조조 또 의사 내어,
“쇠살을 가지고서 사람 살을 때우려거든 암만 한들 될 것이냐. 길가에 쌓인 송장 사람 살을 베어다가 착실히 막아보라.”
“궁노수(弓弩手) 두팔잡이.”
“예.”
요놈은 들어오는데 아무 데도 상처 없고 매우 덤벙여,
“이놈, 너는 무슨 재조 몸이 저리 성했느냐?”
저놈이 장담하여,
“팔십삼만되는 군사 게 하나 쓸 것 있소? 모두 나와 같사오면 일생 해도 치 패(致敗) 없지.”
조조 반겨 급히 물어,
“어찌 하면 그러하냐?”
“남들 한참 싸움할 제 모퉁이나 바위 틈에 가만히 숨어 앉아 구경을 실컷 하다, 호궤령(호궤令)이 내리거든 살짝 나와 얻어먹고 얻어먹고 하였으면 평생 제 몸 치패 없지. 설령 승전하다기로 승상이나 좋으시지 우리 같은 군사들이 무슨 큰 재미 보자 물인지 불인지 불계사생(不計死生)하고 왈칼왈칵 달려들어. 못된 놈들이제.”
조조가 또 웃어,
“네 몸 하나 아끼기는 물 샐 틈이 없겠구나.”
“복마군(卜馬軍) 마철이.”
“예.”
이놈이 들어오는데, 아무것도 안 가지고 쓴 것은 전립(戰笠) 꼭지, 말채만 쥐었구나. 조조가 화 내 물어,
“말과 기계 얻다 두고 빈채만 쥐었으며, 전립 버렁 얻다 두고 꼭지만 쓰고 온다?”
저놈이 대답하되,
“생각하니 허망하오. 말은 기계 실은 채로 적벽강에 여몽 만나 두 수 없이 다 뺏기고 몸만 남아 도망타가 오림에서 복병 만나 꽉 잡고 안 놓기에 군복 주어 사화(私和)하고 오다가, 생각하니 말 안 된 일 있어서 전립을 벗어 내어 절초(切草)장수 칼받침에 칠 푼 받고 팔아다가 바늘 한 쌈 사가지고 점잖은 사람으로 상투람 올 수 없어, 전립에 남은 꼭지 끈 달아 쓰고 왔소.”
“너 이놈, 군중에서 바늘은 얻다 쓰게?”
저놈이 웃으면서,
“세 치로 내어 놓아, 뉘 제 어미 붙을 놈이 이 고생 겪은 후에 군중(軍中)에 또 다녀요? 홍안유부(紅顔幼婦) 우리 아내 천리전장(千里戰場)에 날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 올까, 내일이나 편지 올까, 주야 축수(祝手) 바라다가 옥창앵도(玉窓櫻桃) 꽃이 지고 정상(井上) 오동잎 떨어져 설청운산 북풍한(雪晴雲散 北風寒)에 독수공방(獨守空房) 누웠다가, 문전에 청삽사리 퀑퀑 짖는 소리 듣고 행여 우리 임 오시나 전도출문(顚倒出門) 내다보니 임은 정녕 아니 오고, 풍설야귀(風雪夜歸) 하는 사람 청루(靑樓) 찾는 한량이라, 설운 마음 둘 데 없어 방 안으로 들어와서 각침찬금금란(角枕燦錦衾爛)에 여미망차 수여공침(予美亡此 誰與共寢)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들제, 이내 몸 돌아가서 낭도래시근야래(郎到來時近夜來) 사립 안에 들어서며 아기 어멈 거기 있나, 적벽강 싸움 갔던 자네 낭군 안고, ‘와 계신가, 와 계신가, 우리 낭군 와 계신가. 팔십삼만 다 죽는데 낭군 혼자 아니 죽고 날 보려고 와 계신가.’ 방으로 들어가서 울려는 듯 웃으려는 듯, 낯을 대며 손을 잡고 ‘자넨 웬 사람으로 내 간장을 다 녹이는가. 남정북환(南征北還)하실 적에 배가 오죽 고팠으며, 초행노숙(草行露宿)하실 적에 몸이 오죽 추웠을까. 이 밥 먹고 이 옷 입소.’ 온갖 정담 다 하면서 훨썩 벗고 둘이 누워 그린 상자 푼 연후에, 나는 무엇 줄 것 없어 바늘 한 쌈 정표(情表) 하자 주머니에 깊이 넣었소.”
조조가 나무라,
“그놈 음남(淫男)이로고.”
“승상은 영웅이라 팔십삼만 죽였으니 패남(敗男)이라 하오리까.”
그렁저렁 점고하고 진지를 재촉하니 화병이 치던 부시 이때까지 안 붙었다.
“진지 올려라.”
“밥 안쳤소.”
“진지 올려라.”
“상 놓소.”
“진지 올려라.”
“진지 괴오.”
“진지 올려라.”
“가져 가오.”
“진지 올려라.”
“내 좆도 인제 부시 치오.”
원 오래 치느라니 어쩌다가 붙었구나. 막 불 살라 넣느라니 조조가 또 염소 웃음을 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승상의 한 번 웃음 조자룡을 청하여서 남은 인마 다 죽이고, 어떤 장수 청하자고 또 웃음을 웃으시오?”
조조가 대답하되,
“주유와 제갈량이 여간 재조 있다 하되 하룻비둘기라 암만 해도 재 못 넘제. 이러한 험한 곳에 복병을 하였으면 우리 신세 된 모양이 묶어 놓은 돼지라 살 수 잇나, 살 수 있나.”
이 말이 지듯 말듯 좌우에서 총 소리가 콩 튀듯이 일어나며 벌떼같은 복병들이 불 지르고 냅다 설 제, 저 장수의 거동 보소. 검은 낯 고리눈과 표범 머리 제비턱에 비단 갑옷 순금 투구 장팔사모(丈八蛇矛) 비껴 들고, 심오마(深烏馬)에 높이 앉아 거뢰(巨雷)같은 목소리를 성정대로 뒤지르며,
“이놈 조조야, 연인(燕人) 장익덕(張益德)을 장판교(長坂橋)서 보았지야. 너 한 놈 탁란(濁亂)으로 한실(漢室)이 망케 되고 창생(蒼生)이 무슨 죄냐. 적벽 오병(鰲兵) 큰 싸움에 주도독께 아니 죽고 험악한 이 산중에 목숨 도망 너 왔느냐. 우리 군사 장령 모아 너 잡으러 내가 왔다. 탐낭취물(探囊取物) 내 창법을 네가 생심 방위할소냐. 종천강 종지출(從天降 從地出)을 네 재조로 못할 테니 목 늘여 창 받으라.”
조조가 혼이 나서 벗은 갑옷 내버리고 말 등에 뛰어 올라 자분필사(自分必死) 도망할 제, 장요‧서왕 뒤를 막아 장비와 대적하니 조조가 한참 도망타가, 장비 점점 멀어지니 방정을 또 내떨어,
“이애 정욱아 날 보아라, 목 있느냐?”
“목 없으면 말하겠소?”
“장비가 홀아비냐?”
“좋게 아들 낳아 장포(張苞)도 명장이라우.”
“그 낯바닥 검은 색과 그 눈구멍 흰 고리에 어떤 계집이 밑에 누어 쳐다 볼거나. 내 통이 크지마는 만일 꿈에 보았으면 정녕 지녈키제.”
말하며 가느라니 앞에서 가던 군사 아니 가고 품(稟)을 하여,
“앞 길이 두 갈랜데 큰 길은 좋사오되 형주(荊州)로 가자 햐면 오십 리가 더 있삽고 작은 길 화용도(華龍道)는 오십 리가 없사오니 산이 험코 길이 좁아 구렁텅이 많사옵고, 산등에서 내가 나니 어느 길로 가오리까?”
“화용도로 들어가자.”
제장이 여짜오되,
“내가 나는 곳에 정녕 복병 있을 테니, 왜 그리 가자시오?”
“병서 아니 읽었느냐? 허즉실 실즉허(虛則實 實則虛)라, 제갈량이 얕은 소견 산머리에 연기 피워 복병이 있는 듯이 내가 그리 아니 가고 큰 길로 갈 것이니, 큰 길에 복병하여 꼭 잡자 한 일이나 내가 누구라고 제 잔꾀에 넘겠느냐? 잔말 말고 그리 가자.”
제장이 추어,
“승상의 묘한 국량(局量) 귀신도 알 수 없소.”
옆에 따라오는 군사 입바른 말을 하여,
“왜 저렇게 알거드면 황개의 사항서(詐降書)와 방통(龐統)의 연환계(連環計)에 그리 몹시 속았는고. 살망을 저리 떨고 무슨 재변 정녕 나제.”
앞에 가던 말과 군사 아니 가고 자저(자저)하니 조조가 재촉하여,
“왜 아니 간다느냐?”
군사가 여짜오되,
“산은 험코 길 좁은데 새벽 비가 많이 와서, 구렁에 물이 괴고 진흙에 말굽 빠져 암만해도 갈 수 없소.”
조조 호령 크게 한다.
“군사라 하는 것이 산 만나면 길을 파고, 물 만나면 다리 놓아 못 갈 데가 없는 것을 수렁에 물 괴었다 지체를 한단 말가?”
군사를 동독(董督)하여 길가에 나무 베어 깊은 구렁 높이 메우고 좁은 길 넓힐 적에, 장요‧허저‧서황 등은 칼을 쥐고 옆에 서서 게으른 놈 목을 베니, 상창기곤(傷瘡飢困) 남은 군사 밟혀 죽고 칼에 죽고, 날은 차고 배는 고파 손 발 시려 우는 말이,
“적벽강에서 죽었더면 죽음이나 더운 죽음, 애써서 살아 와서 얼어 죽기 더 섧구나.”
처량한 울음 소리 산곡이 진동하니 조조가 호령하여,
“죽고 살기 네 명이라 뉘 원망을 하자느냐.”
우는 놈은 목을 베니 남은 군사 다 죽는다. 처량한 울음 소리 구천(九天)에 사무치니, 엄동설한 이 시절에 새가 분명 없을 터나 적벽‧오림‧호로곡(葫蘆谷)에 원통히 죽은 군사 원조(寃鳥)가 되어 나서 조조의 허다 죄목(罪目) 조롱하여 꾸짖는다.
벽오서로봉황지(碧梧棲老鳳凰枝) 저 봉황이 꾸짖는다.
“편체문장(遍體紋章) 이내 몸이 덕(德)빛 보고 내려오다 남훈전(南薰殿) 소소풍류(簫韶風流) 날아 내려 춤을 추고, 기산(岐山) 아침 날에 날아가서 울었더니 너같은 역적놈이 천하를 탁란키로 세상에 못 나가고 이 산중에 숨었노라.”
월상비취(越裳翡翠) 무소식 저 비취가 꾸짖는다.
“문‧무‧주공 성인덕화(聖人德化) 천무열풍음우(天無烈風淫雨)키로 교지남(交趾南)에 월상씨(越裳氏)가 공 바치러 가올 적에 이 몸이 따라가서 좋은 상서(祥瑞) 되었더니 너같은 난신적자(亂臣賊子) 인군(人君)을 구박하여 천시재변(天時災變) 종종 하니 이 산중에 숨었노라.”
자고비상월왕대(자고飛上越王臺) 저 자고가 조롱한다.
“여보소 조맹덕아, 불의지사(不義之事) 저리 하고 자네 부귀 오랠손가. 동작대 봄바람에 이교녀는 간 데 없고 낙목한천(落木寒天) 슬픈 바람 내가 올라 춤을 추세. 산량자치 시재(山梁雌雉 時哉)로다. 끌끌 우는 저 장끼 나의 뜻이 경개(耿介)하고 오색 문채(文彩) 고운 고(故)로 우리 임금 곤의수상(袞衣繡裳) 나의 형용 그려 내니, 너 입은 홍포 위에 이내 몸 그릴 생각 생심(生心)도 먹지 마라.”
농산앵무능언어(농山鸚鵡能言語) 저 앵무가 말을 한다.
“적벽강 패군들아, 너의 고향 어느 곳이고? 객사전장(客死戰場)했다 하고 일봉서(一封書)를 써서 주면 너의 집 도장(堵牆) 안에 날아가서 내 전하마.”
어사부중오야제(御史府中烏夜啼) 저 오작이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내 소리를 잊었는가. 월명성희(月明星稀) 깊은 밤에 요수삼잡(繞樹三잡) 높이 떠서 싸우면 망하리라 내 아니 일렀는가. 내 소리 안 믿다가 저 골이 웬 꼴인가.”
까욱가욱 울고 간다.
상유황리심수명(上有黃리深樹鳴) 저 꾀꼬리 노래한다.
“객사전장(客死戰場) 저 장졸아, 너희 고향 잊었느냐. 너희 아내 너 기다려 네 얼굴 보려 하고, 사창전(紗窓前)에 졸다가 내 노래 한 소리에 꾸던 꿈 깨었다고 날 원망을 하더구나. 꾀꼴롱 꾀꼴롱.”
유작유소 유구거지(維鵲有巢 維鳩居之) 저 비둘기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사백년 한나라가 까치 집이 아니어든 공연히 뺏으려고 내 재조를 하려 하니 아무런들 될 것이냐. 꾸우륵 꾸우륵.”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 저 따오기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간신 행세 부끄러워 황개의 호통 소리 그리도 무섭던가. 홍포조차 벗었으니 나 입은 것 빌려 줄까. 따옥따옥.”
각향청산문두견(却向靑山問杜鵑) 저 두견이 슬피 운다.
“사장백골(沙場白骨) 저 원혼아, 천음우습(天陰雨濕) 깊은 밤에 고국산천 바라보며 추추(추추)히 우는 소리 나와 함께 불여귀(不如歸)라. 귀촉도 귀촉도.”
저 쑤꾹새 조롱한다.
“욕심 많은 조승상아, 만종록(萬鍾祿) 좋은 고량(膏梁) 무엇이 부족하여 불의지사(不義之事) 하려다가 기갈이 자심한가. 이 산중 적막하여 먹을 것 없었으니, 쑥국이나 먹고 가소.”
이리 가며 쑤꾹 저리 가며 쑤국.
저 비쭉새 조롱한다.
“통일천하 너를 주랴. 아나 옜다 비쭉. 이교녀를 너를 주랴. 아나 옜다 비쭉. 협천사(挾天子) 호령 제후 역적놈이 너 아니냐. 아나 옜다 비쭉. 짐살국모(짐殺國母) 족멸충신(族滅忠臣) 네 죄목을 뉘 모르리. 아나 옛다 비쭉.”
저 검정새 조롱한다.
“여보소 조승상아, 자네 형용 못 보거든 나를 보고 짐작하소. 볼수록 유복하지.”
대가리 까딱까딱, 꽁지는 까불까불, 이리 팔팔 저리 팔팔. 비거비래(飛去飛來) 뭇새들이 온 가지로 조롱하니, 조조 제 역(亦) 무색하여 한 말 대답 못하고서 먼 산만 바라볼 제, 수목 삼삼 깊은 틈에 은은히 섰는 장수 신장은 팔척이요, 붉은 낯 채수염에 가만히 서 있거늘 조조가 보고 깜짝 놀라 마하(馬下)에 떨어지니 정욱이 묻자오되,
“승상님 평생 행세 어양도 하 많아서 웃기도 하 잘하고 울기도 하 잘하고, 불시에 좋아하고 불시에 나자하니 측량을 할 수 없소. 즉금(卽今) 하는 저 재조는 남 도르잔 궤술(詭術)이요, 적벽강 불에 간담(肝膽) 놀라 지랄병을 얻으셨소. 왜 공연히 앉았다가 솔방울 모양으로 뚝 떨어져 굴러가오.”
조조가 손을 들어 수풀 사이 가리키며 정신 없이 말을 하여,
“나무 사이 보이는 게 정녕 관공(關公)이제.”
“승상님 혼 나갔소? 그것이 장승이오.”
“얘야, 장승이면 장비(張飛)하고 일가(一家) 되냐?”
“십리 오리 표하자고 나무로 깎아 세우니 화용도 장승이오.”
조조의 평생 행세 만만한 데 호기 내어 나무로 깎았으니 말 못할 줄 짐작하고 호령을 크게 하여,
“너, 그놈 잡아 오라.”
그래도 장령이라 어쩔 수가 있나. 추운 군사 손을 불며 장승 빼어 들여 놓으니, 조조 소견 만만커든 적벽‧오림‧호로곡에 무한히 당한 분(忿)과 여럿에게 받은 욕을 만만한 장승에게 모두 풀자 시작하여, 봉초(捧招)하는 죄인같이 문목(問目)하여 묻는구나.
“살등(煞等) 너의 신이 공산의 노목으로 사모(紗帽) 품대(品帶)하였으니 무슨 벼슬하였으며, 낯이 저리 붉었으니 웬 술을 그리 먹고, 눈을 몹시 부릅뜨니 홍문연(鴻門宴) 번쾌(樊쾌)러냐. 콧마루가 높았으니 한 고조의 후신이냐. 입 있어도 말 못하니 예양(豫讓)의 탄탄(呑炭)이냐. 뱃바닥에 글 썼으니 손빈(孫빈)의 궤술(詭術)이냐. 수염이 좋았으니 염참군(髥參軍)이 되려느냐. 뻣뻣 서서 절 안하니 주아부(周亞夫)의 군법이냐. 수림간(樹林間)에 우뚝 서서 대승상 가시는데 문안도 아니 하고 마음 놀랜 죄가 만사무석(萬死無惜)이니 장찬(粧撰) 말고 직고(直告)하라.”
이런 난리 당하여서 인신(人神)이 잡유(雜유)하니 인형 지닌 장승으로 목신(木神)이 없겠느냐. 장승이 초사(招辭)할 제 간흉한 저 조조를 말 못하게 잡죄는데,
“의신(矣身)의 지원정세(至寃情勢) 낱낱이 아뢰리라. 천지개벽 구궁(九宮) 생겨 삼팔(三八)이 목이 되어 천상 천하에 있는 나무 영욕이 다 다르네. 요지의 벽도나무 왕모의 과실이요, 월중의 단계나무 항아의 정자되고, 봉래의 교리‧화조 신선이 사랑하고, 남명의 대춘나무 천만년 장수하고, 역양의 오동나무 순임금 거문고요, 송나라 살구나무 공부자의 강단(講壇)이요, 진라 노송나무 오대부 벼슬하고, 풍패(豊沛)의 잣나무는 한 고조를 덮었고, 탁군의 뽕나무는 유황숙의 일산(日傘) 되니 장하다 하려니와, 근래 다른 나무라도 어떤 나무 팔자 좋아 미앙(未央) 건장(建章) 들보 되어 오채용문(五彩龍文) 몸에 감고 언연(偃然)히 높이 앉아 삭망 절일 제사날에 금관조복(金冠朝服) 하온 승상 꾸벅꾸벅 절을 하니 오죽이 좋을 텐데, 이내 팔자 무상하여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자라나서 시비(是非) 없이 늙쟀더니, 무상한 형주(荊州) 사람 도끼로 꽝꽝 찍어 가지 베어 울섶이며, 밑동 캐서 마판(馬板)하고, 장작나무‧뒤삭 가래, 가지가지 다 한 후에 그 중에 곧은 도막 목척(木尺)으로 열 두 자를 먹줄 놓아 인거(引鋸)하여 큰 자귀질 고이 하고, 웬 놈의 얼굴인지 방울눈, 주먹 코에 주토(朱土)칠 많이 하고, 써렛니, 개털 수염 뱃바닥에 새기기를, ‘자형주관문(自荊州官門)으로 남거오십리(南踞五十里) 장승’이라 큰 길 가에 우뚝 세웠으니, 입 있으나 말을 할까, 발이 있어 도망할까, 부끄럽기 측량 없어 낯은 일생 붉어 있고 분한 마음 못 이기어 눈은 항상 부릅떴네. 불피풍우(不避風雨) 혼자 서서 내인거객(來人去客) 호송터니 오늘날 승상 행차 문안을 아니한다, 잡아 오라, 끌어 오라 호기(豪氣)를 저리 피우니, 호기 조금 두었다가 관공님 만나거든 피워 보게 하옵시오. 무타소공(無他所控)하니 상고처지(詳考處之) 하옵소서.”
조조가 들어보니 대답할 말이 없어 문자로 얼버무려,
“물구즉신(物久則神)이라 언족이식비(言足以飾非)로다. 불가취설(不可取說)이니 나출문외(拿出門外)하라.”
장승 끌어 내던지고 차차로 전진할 제, 조조가 왜가리 웃음으로 웃어 제장이 여짜오되,
“승상아 하하 웃으시면 번번 큰 일 나옵는데, 또 저리 웃으시니 이번 우리 다 죽겠소. 싸우자니 군사 없고, 도망하자니 길이 없어 어찌 하잔 말씀이오?”
조조 장담 마구 하여,
“생각하니 시석업퍼 웃음이 버썩 난다. 우리가 이번 길에 할 치패를 했느냐? 불가사문어타인(不可使聞於他人)이제. 적벽강서 본 치패는 오나라서 한 일이니 손권(孫權)이라 하는 손은 저의 아비, 저의 형이 창업하여 준 것으로 삼세나 되었으며, 주유라 하는 손도 나인 비록 젊었으나 인물이 밉지 않고 풍류 속도 대강 아니, 저에게서 본 치패는 오히려 덜 우세제. 아까 소위 한나라는 그것 다 무엇이냐? 내 입을 떼어 놓으면 그것들이 갓 못 쓰제. 유황숙은 탁군에서 신만 삼던 궁조대(窮措大)요, 제갈량은 남양(南陽)에서 밭 파던 농토생(農土生), 아까 그 관운장(關雲長)은 하동의 독장수, 더더구나 장비 그 손은 탁군의 저육(저肉)장수 괘씸하다. 조자룡은 상산에서 노략질꾼, 세상이 그릇되니까 저희끼리 모여 주먹의 힘만 믿고 아무 인사 통히 없어 나와 저의 의론하면 가세는 고사하고 연치(年齒)만 가지고도 저의 존장(尊丈) 푼푼한데 절하기는 의논 않고 이놈 조조, 이놈 조조, 어른의 함자를 게딱지 떼듯 하니, 그러한 잡것들을 내가 탄키 점잖쟎아 버려는 두거니와 제 버릇 괘씸하제.”
정욱이 들어보니 조조의 헛 장담이 원 듣기에 얄밉구나. 한번 물어보아,
“세상 말 알 수 없소. 사람마다 하는 말이 승상님 간사하여 남의 성자(姓字) 가지고서 행세를 하신다고, 근본은 하후씨(夏侯氏)인데 환자(宦者)놈에 수양(收養) 들어 추세(趨勢)를 하시느라 조씨라 한답디다.”
조조가 할 말 있나, 속 좋은듯이 슬쩍 덮어,
“실없은 놈들이다. 남의 성은 어떻든지 제 성이나 잘들 쓰제. 그러나저러나 이렇게 좁은 목에 장수 하나 고사하고 군사 열만 두었으면 내 재조와 네 재조가 여우 새끼 같더라도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하 하고 또 웃더니 소리 못 끊어져 방포소리 일어나며, 오백명 도부수(刀斧手)가 철통같이 길을 막고 일원 대장 나오는데, 중조면(重棗面) 와잠미(臥蠶眉)에 봉(鳳)의 눈을 부릅뜨며 삼각수(三角鬚) 거스르고 녹포‧은갑‧백금 투구‧청룡도 비껴 들고 적토마에 높이 앉아 벽력같은 호령 소리 산악이 무너진다.
조조는 넋을 잃고 장졸은 혼이 없어 서로 보고 말이 없다. 조조가 떨며 하는 말이,
“이래도 죽을 터요, 저래도 죽을 테니, 죽기로 싸워볼까.”
제장이 대답하되,
“사람은 싸운다고 말 힘 없어 할 수 있소.”
조조가 장담(壯談)통이 쏙 빠지고 방정을 떠는구나. 두 발 동동 구르다가 가슴 탕탕 뚜드리며,
“이번은 나 죽는다 어찌 할거나.”
정욱이 여짜오되,
“관공의 가진 성기(性氣) 자세히 아옵나니, 오상이불인하(傲上而不忍下)요 기강이불릉약(欺强而不凌弱)에 은원(恩怨)이 분명하고, 신의소저(信義素著)하였는데 하물며 승상에게 구일은(舊日恩)이 있사오니, 애긍히 빌었으면 죽이지 않을 테니 지성으로 비옵소서.”
조조의 평생 행세 간흉한 사람이라 제 마음 가지고서 남의 마음 생각하니, 전 은혜야 어떻든지 그러한 좋은 판에 똑 죽이는 수로구나. 잔꾀를 내어 보아,
“얘야, 나는 배 아프니 내 투구 네가 쓰고, 내 갑옷 네가 입고 나 대(代)로 가 빌어 보라.”
정욱이가 모사(謀士)여든 제 수에 넘겠느냐. 아주 떼어,
“이런 말 앗으시오. 죽음에도 대신 있소? 애긍설화(哀矜說話) 다 빈 후에, 관공은 한 말씀에, 에라 이놈 간사하다. 청룡도 드는 칼로 연한 목을 콱 찍으면 어디가 생심이 나 대조조(代曹操)라 하오리까.”
조조가 콱 소리에 목을 쑥 움츠리며,
“애고, 얘, 내 목이 똑 떨어진 것 같다. 말도 그리 박절하냐. 기신(紀信)은 임금 위해 대로 가서 죽었는데, 어찌타 내 막하에 대신 보낼 사람 없노.”
무수히 자저(자저)할 제, 삼국지에 있는 사적 조조가 관공 보고 말 타고 빌었으되 비는 뽄 아니기로 부득이 이 대문을 세상이 고쳤것다. 조조가 하릴 없어 갑옷 벗어 말에 걸고 투구 벗어 손에 들고, 관공전(關公前)에 나아가서 백배 합장 애걸한다.
“장군님 뵈온 지가 여러 해 되었으니 기체 안녕하시니까?”
관공이 말 위에서 몸을 굽혀 대답하되,
“관모는 무사키로 군사의 장령(將令) 모아 승상을 만나려고 이곳 온 지 오래노라.”
조조 울며 비는 말이,
“조조 신수 불행하여 적벽강에 패진(敗陣)하고 혈혈한 이 목숨이 간신히 이곳에 왔사오니, 장군님 장한 의기 옛날 정을 생각하셔 목숨 살려주옵소서.”
관공이 대답하되,
“하비(下비)에 패군하고 승상 군중에 갔을 적에 과연 후은(厚恩) 입었기로 안량 문추 목을 베어 백마위(白馬圍)를 풀게 하여 그 은혜를 갚았으니, 오늘 같은 나라 일에 이사폐공(以私廢公) 못하리라.”
조조 다시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군전에 비나이다. 장군이 패군하고 소장의 나라 와 계실 제, 청하신 삼건사(三件事)를 그대로 시행하여 미부인(미夫人)‧감부인(甘夫人)을 별당에 사처(舍處)하고 천자께 여짜와서 장군을 인견(引見)하여, 편장군(偏將軍) 한수정후(漢壽亭侯) 작록(爵祿)을 봉하옵고, 능라금수(綾羅錦繡) 금은기명(金銀器皿) 아끼쟎고 바치옵고, 삼일 소연(小宴) 오일 대연(大宴) 객례로 대접하고, 미녀 10인 보내어서 두 부인께 시위하고 비단갑옷 몸에 맞게 새로 지어 올리오며 사주머니 곱게 지어 수염싸개 하였으며, 타옵신 적토마도 소장이 드렸삽고, 황숙의 소식 듣고 하직 없이 가실 적에 금포(錦袍) 지어 가지옵고 몸소 가서 전송하고, 오관(五關)에 육장(六將) 베고 동행 천리하실 적에 막은 일이 없사오니 지성으로 하온 일을 장군 어찌 잊으니까.”
관공이 대답하되.
“하직하러 수차 갔다 회피패(回避牌) 걸었기로 부득이 떠나올 제 봉금괘인(封金掛印) 하였으니 무슨 말을 그리 하노.”
조조가 또 빈다.
“장군님 장한 의기 문독(文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유공지사(庾公之斯) 자탁유자(子濯孺子)들의 일을 모르시오. 일제포(一제袍) 연연하여 고인정(故人情)이 있사오니 장군도 전포(戰袍) 모아 범저(范雎)를 생각하오. 천리마 주던 사람 평생 아니 잊었으니 장군도 적토마 보아 제오륜(第五倫)을 생각하오. 소장 평생 먹은 마음 장군 어찌 모르시오. 황건적 난을 만나 이 몸이 기병(起兵)하여 역적을 소멸하고 천하를 삭평(削平) 후에 이 몸이 죽삽거든 묘비에 새기기를 한고(漢故) 정서장군(征西將軍) 조후지묘(曹侯之墓)라.
소원이 이뿐인데 인심이 무거(無據)하여 천자를 바란다고 지목을 하거니와. 견마(犬馬) 같이 천한 나이 53세 되었으니 인제 산들 몇 해 살며. 풍진(風塵)에 고생하여 이 털이 세었으니. 센 대가리 베어다가 어디다 쓰오니까. 백마진(白馬陣)에 죽을 목숨 장군이 살렸으니. 장군이 살린 목숨 장군 도로 죽이시려우. 태산같은 높은 의기 새알에 다 누르시려우. 맹호같이 장한 위엄 궤상육(궤上肉)을 잡수시려우. 살려주오 살려주오. 소장 목숨 살려주오. 함정에 빠진 짐승 열어 놓아 살리시오. 그물에 걸린 새를 끌러 놓아 살리시오. 명촉달야(明燭達夜)하신 맹세 천지가 증인이라. 만고천지에 독왕독래(獨往獨來)하실 테니 초개(草芥) 같은 이 목숨을 죽여 무엇 하오리까. 장군님 가실 적에 봉서(封書) 중에 하시기를 기유여은미보(其有餘恩未報)는 원이사지이일(願以俟之異日)이라 친필로 쓰였으니 두 말씀을 하시리까. 봉서가 여기있소. 살려주오 살려주오.”
손을 싹싹 비비면서 꾸벅꾸벅 절을 하니 비는 짐승 꼬리 같고 죽는 새의 울음이라. 관공의 평생 행세 의중여산(義重如山)하온지라 불인지심(不忍之心) 못 금(禁)하여 말 머리를 돌리시니 주창(周倉)이 옆에 서서 분분(忿憤)하여 여짜오되.
“장군님 오실 적에 조조를 못 잡으면 군법을 당하기로 군령장(軍令狀)을 두었으니 저만 놈의 사정 보아 군령장을 어쩌리까. 청룡도를 소인 주면간사한 조조 목을 콱 찍어 올리라니.”
조조가 깜짝 놀라 목을쑥 움츠리며.
“여보시오 주별감(周別감)님 어찌 그리 유독(有毒)하오. 웃양반의 인심 얻기 하인에게 매였으니 아무 말씀하지 말고 말머리만 돌리시면. 가다가 큰 주막에 좋은 안주 술 대접을 양대로 하오리다.”
얼레설레판에 조조와 제장들이 다 살아 도망하니 관공의 높은 의기 천고에 뉘 당하리. 훗사람 글을 지어 관공을 송덕(頌德)하되 조만병패주화용 정여관공협로봉 지위당초은의중(曹瞞兵敗走華容 正與關公狹路逢 只爲當初恩義重)하여, 방개금쇄주교룡(放開金쇄鎖走蛟龍). 이러한 장한 일을 사기(史記)로만 전하오면 무식한 사람들이 다 알 수가 없삽기로. 타령으로 만들어서 광대와 가객들이 풍류좌상(風流座上) 장 부르니 늠름한 그 충의가 만고에 아니 썩을까 하노라.
唯一書官本 赤壁歌
제 2회

주랑이대계결정(周郞以大計決定) 주랑이 큰 계교로써 결정하고
조조대패적벽전(曹操大敗赤壁戰) 조조가 적벽 싸움에 크게 패하다

어시(於時)에 또 한 군사가 내달으며,
“이놈 저놈 다 듣거라. 우리 승상은 대군을 거느리고 천리전장에 와 천하대사를 바라는데 너희 놈은 어찌 울음을 우는다? 울음이랑 그치고서 나의 싸움타령이나 들어 보라. 헌원씨(軒轅氏) 습용간과(習用干戈) 염제(炎帝)로 판처싸움, 농작대무 치우장수 서로 잡든 싸움, 주나라 쇠한 천지 분분하다 춘추싸움, 육국싸움, 봉기지장 요란할 제 초‧한 풍진 팔년싸움, 태공려후 잡히겄다 서북대풍 회수싸움, 칠십여전(戰)에 공이 없다. 항도령의 우격싸움, 마상의 천하여든 유방의 지혜사움, 통일천하 언제 하리, 위‧한‧오 삼국싸움, 남풍이 솰솰 불면 위태롭다 적벽싸움, 싸움 다시 말고 공성신퇴(功成身退)하고지고.”
또 한 군사가 하는 말이,
“이에 앗어라. 싸움타령 다시 말고 파제만사무과주(破除萬事無過酒)로다. 함포고복(含飽叩腹) 먹었으니, 없든 심정 절로 난다. 우리 승상은 죽고 살고 고향에 가서 즐기든 우멍거지 조개국이나 실컷 먹고지고.”
한 군사가 내달으며,
“여봐라, 이놈 못 쓰겠구나. 우리 몸이 군사가 되어 갈충보국(竭忠保國)이 떳떳한데 아녀자만 생각하고 음탕한 말만 하니 진중의 부당하다.”
하고, 등 밀어 쫓아내니, 저 놈 나가며 하는 말이,
“이 근래에 진남진녀 덧붙이기 아들놈들 많이 보겠군.”
또 한 군사가 한숨 쉬고 눈물 지며 슬픈 형상으로 슬피 앉아 하는 말이,
“너희들이 아직은 술잔 먹고 재담‧교담‧장담‧패담 한다만은 명일 대전시에 견디어들 보아라. 승부를 뉘 알소냐. 유능제강(柔能制强)하고 약능제승(弱能制勝)은 병가에 증험이오, 성쇠흥망은 재덕(才德)이오 부귀험이니, 성군덕장의 하올 바라. 승부간에 횡사‧급사‧오사‧즉사‧분사 할 제 뉘 능히 살아나리. 애고 애고 설운지고.”
또 한 군사가 나서더니,
“여봐라. 위병군졸들아. 부모처자 이별하고 천리전장 나온 몸이 사정은 일반이라. 대장부 세상에 나서 위국갈충 하올진데, 요하(腰下) 삼척(三尺) 드는 칼로 한장의 머리 덩그렁케 베어 들고 회군 취타 승전하며, 고향에 돌아가서 그리든 부모처자 애정하든 내 권당 반갑게 만나 즐길 적에 그 아니 상쾌하리. 너희놈이 좀놈일다.”
한창 이리 분주할 제 이 때에 주도독은 조조 진중 구경차로 남병산 찾아 갈 제 좌편에 한당‧주태 우편에 서성‧정봉, 일진 제장군졸이며 기치(旗幟)‧창검은 일광을 덮었는데, 의기 양양하여 강북을 바라보니, 홀연 서북풍이 대기하여 조조 진중황의 섰는 황기, 깃대가 직근 부러져 풍파 강상에 펄펄 흩날려, 주유 면상을 치고 가니, 주유가 대경하야, 한 일을 깨치더니 연지 같은 붉은 피를 입으로 솰솰 토하니, 좌우 제장이 급히 구완하야 장대로 와 눕고, 어찌 못하거늘 손장이 대경하야 양의를 방구하고 찬약으로 치료할 제, 심간에 맺힌 병을 그 뉘라서 구완하리. 강동에 제장이며 일진 군졸이 서로 보고 근심하되, 도독의 병세는 일분소효가 전혀 없고, 강북의 백만대병 호기 염탐하였으니 군심은 흉흉하고 백성 소동(騷動)한다.
이 때 공명이 노숙을 데리고, 장대에 들어가 주유를 보고 이른 말이,
“일야지간(一夜之間)에 무슨 병이 그다지 위중하시니이까?”
주유가 대답하되,
“심간이 번열하고, 구역이 대발하야 조석을 난(難)보로소이다.”
공명이 대소 왈(曰),
“내게 묘한 방문이 있어 도독의 병을 낳을지라.”
좌우를 물리치고 필연(筆鉛)을 내 와 글 십육자를 써 주유를 준데, 받아 보니 하였으되,
‘욕파조공(欲破曹公)데 의용화공(宜用火功)이오, 만사구비(萬事具備)하되 지흠동풍(只欠東風)이라.’
하였거늘.
주유 대경실색하야 비는 말이,
“선생의 신기묘산은 귀신도 난측이라. 사세만분위급(事勢萬分危急)하니, 비계를 이르소서.”
공명이 대답하되,
“내일 신인(神人)을 만나 둔갑천서(遁甲天書)를 배와 경천위지지재(經天偉地之才)와 호풍환우지술(呼風喚雨之術)을 아는지라, 이제 도독을 위하여 남병산에 올라가 칠성단 높이 모으고 동남 적토(赤土)로 축단을 높이 하여 이십일 갑자에 바람을 빌어 이십이일 병인에 동남풍으로 도독의 국세를 돕게 하리이다.”
공근이 대희하야, 오백 장정군을 남병산으로 보내여, 공명의 호령을 기다리더니, 이 때에 공명이 노숙을 데리고 남병산 올라가 진세를 살피더니 동남방 적토로 축수단을 높이 할 제, 광(廣)은 이십사장이오, 뜰은 층층이 삼척이니 합 고하면 구척이라. 한 일층 이십팔수의 기치를 꽂고 동방칠면은 청기라. 각항‧저방‧심미‧기표‧청룡지서 하고, 북방칠면은 흑기라 두우녀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자 현무지서 하고, 서방 칠면은 백기라 구루위묘필자삼기 백호지서 하고, 남방칠면은 적기라 정귀유성장익진성 주작지서 하고, 제 이층 육십사면의 화기를 꽂았으되, 육십사괘를 응하야 팔주를 세워 두고, 상일층 사람은 속발관의 조라포를 입고 봉의박대와 주리방군을 세워 두고 전좌에 한 사람은 긴 대를 들었으되 대 끝에 닭의 깃에 살 꽂아 풍신을 표하고, 전후에 한 사람은 보검을 들고, 후우에 한 사람은 향로를 받들고, 단하의 이십사인은 각각 정기, 보개와 주번 도독을 잡아 사면으로 세워 두고.
이 때에 공명은 십일월 이십일 갑자에 목욕재계하고, 도의를 떨쳐 입고, 머리 풀고 발 벗은 채 단하에 독립하야 노숙을 불러 분부하되,
“공명이 허망하다. 륭동에 동남푸이 어이 있으리오.”
노숙이 여짜오되,
“공명은 성실군자오니 허망치 아니 하오리이다.”
아이오, 풍성이 요란커늘 빨리 나가 보니, 오방깃발이 술해방으로 펄펄 흩날리니, 주유대경하야 이른 말이,
“이 사람이 이러하니 타일에 강동의 대환이 되리라.”
하고, 창전 좌우 서성‧정봉 급히 불러 분부하되,
“서성은 궁로수 일백을 거느리고 수로로 쫓고, 정봉은 도부수 일백을 거느리고 육로로 쫓아 남병산 빨리 올라가 공명의 머리를 한 칼에 베어 오라.”
두 장사 청령하고 수륙병진 쫓아갈 제, 정봉이 칼을 들고 남병산 올라가니 공명은 간 데 없고, 기 잡은 장사가 바람을 못 이기여 붙잡고 있거늘, 그 장사더러 묻는 말이,
“공명이 어디 가뇨?”
그 장사가 여짜오되,
“바람을 얻은 후에 머리 풀고 발 벗은 채 단하로 내려가더이다.”
정봉이 대노하야 칼을 들고 삼강변으로 내려가니, 서성이 수군을 거느려 왔는지라, 두 장수가 합세하야 사면으로 추심할 제, 물 군사가 고하되,
“작일 일모시에 강안에 매인 배 양양강수 맑은 물에 고기 잡는 어선인가 십리장강 벽파상에 왕래하는 거루밴지오. 호상연월 속의 범상군의 가는 밴가 동강 칠칠탄에 엄자릉에 낚시밴지 그 배만 만단의심터니 뜻밖에 어떠한 사람 창황분주 오옵더니 그 배 선듯 잡아 타고 저 상수로 가더이다.”
서성‧정봉이 이 말 듣고 배를 바삐 저어 쫓아 가며 상류를 바라보니, 일범풍선 선두상에 혼부채 두 적인이 공명일시 분명하다. 정봉이 쫓아 가며 선두에 우뚝 나서 크게 외어 이른 말이,
“저기 가는 공명선생 거기 잠깐 배 머물러 나의 한 말 듣고 가오.”
공명이 허허 대소 왈,
“주도둑이 나를 해할 줄 이미 짐작하고 사표를 대후하야 이 배 타고 돌아가니 장군은 오지 말고 도독 진중 돌아가서 호호용병하라.”
정봉이 할 일 없어 돌아가니라.
각설(却說). 주도독이 동오 제장을 지휘하야 차례로 분발할 제, 제 일대 한당, 제 이대 주태, 제 삼대 장흡, 제 사대 진무, 선봉 대장 황개라. 각각 전선 삼백척에 화선 이십척씩 전면에 띄워 두고, 감영를 불러,
“그대는 바로 오림에 들어가 조조 양초(糧草)에 불을 지르라.”
태사자 불러,
“그대는 삼천군 거느리고 황주 지경 들어가서 조조의 접응군을 엄살하라.”
여몽을 불러,
“그대는 삼천군을 거느려 오림에 들어 가 감녕을 접응하라.”
능통을 불러,
“그대는 삼천군 거느리고 이릉으로 들어가 오림에 불을 보아 조조의 뒤를 막자르라.”
동습을 불러,
“삼천병 거느리고 적벽으로 쫓아 조조를 엄살하라.”
반자을 불러,
“그대는 삼천군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 동습을 접응하라.”
이 때의 대도독 주유는 상선에 높이 앉아 서성‧정봉으로 좌우익을 삼아 대장청도로 행군하다, 청도 한 쌍, 홍문한 쌍주작, 남동각, 남서각, 홍초남문 한 쌍, 청룡, 동남각 서남각, 남초황문 한 쌍, 등사‧순시 한 쌍, 황초‧백문 한 쌍, 백호 동북각 서북각 백초 홍문 한 쌍, 현무 북동각 북서각 홍신 백신 남신 흑신 황신 표미 금고 한 쌍호총 한 쌍 나 한 쌍, 바라 한 쌍, 적 한 쌍, 나발 한 쌍, 세악 두 쌍, 고 두 쌍, 순시 한 쌍, 영기 한 쌍, 중사명 좌관이며 우령전 집사 한 쌍, 기패관 두 쌍, 군노 두 쌍, 좌마와 독이오, 난후, 칭병, 교수, 당북, 각 두 쌍이 명금이하대취타하라 퉁 광 난니나노 뚜 때.
‘퉁 퉁.’ 방포일성이 천지 진동하며 청포장삼승 돛을 덩그렇게 높이 달고 순풍행선 할 제, 이때에 공명은 하구에 돌아와 현덕을 뫼시고 장대에 높이 앉어 제장을 분발할 제, 자룡을 불러,
“그대는 사천군 거느리고 오림소로로 들어가 수목을 의지하고 가만히 매복하였다가 오늘밤 삼경에 조조가 그리로 갈 것이니 군마를 엄살하라.”
조운이 여짜오되,
“오림에 길이 둘이오니 어느 길로 가 오리이까?”
공명이 대답하되,
“조조가 형주를 향하야 허창으로 갈 것이니 이리이리 하라.”
익덕을 불러,
“그대는 삼천병 거느리고 북으로 통한 좁은 길 호로곡에 매복하였다가 내일 비 온 후에 조조가 그리 가 밥을 지을 것이니 연기를 보아 산곡의 불을 놓고, 조조글 업살하라. 이번 싸움에 다는 못 잡아도 익덕의 공은 적지 아니하렸다.”
미방‧미축‧류봉 등을 불러,
“그대는 각각 전선을 타고 적벽으로 쫓아 조조의 패군 기계를 탈취하라.”
이렇듯 분발한 후에 공명이 현덕께 여짜오되,
“현주는 번구의 둔병하고 오늘밤 삼경에 주랑의 적벽대전을 구경하소서.”
이때 관공이 곁에 있으되 종시 분발치 아니커늘 분기를 참지 못하야 장대에 들어가 고성하야 여짜오되,
“소장이 선생을 좇아 여러 해를 출전하되 낙후하온 일이 없더니, 오늘날 조조의 적벽대전을 만나 소장을 쓰지 아니심은 무삼 연고이시니이까?”
공명이 대답하되,
“장군을 긴요한 곳에 보내고자 하나 구애할 사정이 있을까 저어하노라.”
관공이 대답하되,
“무슨 일이 그리 구애하시나이까.”
공명이 대답하되,
“장군을 화룡도로 보내면, 조조를 잡을 것이로되, 장군이 전일 허창에 갔을 때, 독행천리하고 오관참장할 제, 조조에게 또한 후은을 입었으니 필연코 놓을지라 글로써 보내지 못하나이다.”
운장이 가라사되,
“그는 선생께옵서 지기일(知其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로소이다. 소장이 비록 조조에게 후은을 입었으나 안량‧문추 머리를 베어 제 은혜를 갚은지라. 어찌 저를 놓으리이까.”
공명 왈,
“만일 놓으면 어찌 하오리이까?”
운장이 대답하되,
“군령장 다짐하오리이다.”
다짐 사연에 하였으되,
“소장 관모는 지벌(地閥)이 수미(數微)나 충의는 진정이라 염도원결의(念桃園結義)하니, 망사생동심(望死生同心)이오, 전장출(戰場出)이 감감하니, 이 기력이갈력(氣力而竭力)이라. 기병(起兵)이 공퇴(空退)하니 방조하착(放操何捉)가 금립어화용도(今入華容道)하야 조조를 생금(生擒)함이 무이탐낭취물(無異探囊取物)이라. 약위령(若違令)이옵거든 상고처치의당사(相顧處置宜當事)라.”
이렇듯 다짐 후에 운장이 여짜오되,
“조조가 만일 화용도로 아니 가오면 그는 어찌 하오리이까?”
공명이 답 왈,
“나도 군령장 다짐하오리이다.”
맞 군령다짐 두니라. 공명이 운장을 불러 분부하되,
“장군은 화용소로 들어가 높은 봉에 연기 내어 조조를 유인하소서.”
운장이 대답하되,
“조조가 연기를 보면 복병을 의심할 것이니 어찌 화용도로 오리이까?”
공명이 대답하되,
“장군이 허허실실 일을 모르는 말이로다. 조조가 비록 병법이 익으나 연기를 보면 허장성세라 하고 연기를 쫓아 올 것이니 장군은 의심치 말으소서.”
운장이 청령(聽令)하고 관평주창 오백 도부수(刀斧手)를 거느리고, 화용도로 행군할 새, 검광은 날 빛을 가리였고, 정기는 연속하야 천리길을 이었으며, 영웅준걸은 강산을 뒤흔들며, 살기 충천하야 화용도로 행하니라.
이 때, 조조는 상선에 높이 앉아 황개의 약속을 기다릴 제, 뜻밖에 동남풍이 대기(大起)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동남풍이 불길하오니, 미리 방비하사이다.”
조조가 대소 왈,
“동지 후 일양이생(一陽而生)하니 기무동남풍인(豈無東南風)가 의심 말라.”
분부할 제, 군사 보(報)하되
“강남 일척 소선에서 황개의 밀서를 올리나이다.”
받아 보니, 하얐으되,
“주유 구지막 자르기로 벗어날 길 없는 차, 이제 번양으로 가 양식을 수운(輸運)하라 하매, 승야(乘夜)하야 대진으로 갈 것이니 뱃머리에 청룡화기를 꽂은 게 양식 실은 배라.”
하얐는지라. 조조가 대희하야 때를 기다리더니 점점 황혼이 되매 동남푸이 대기하니 파도는 흉흉하고, 월색은 조용한데, 강파(江波) 만리에 금사(金沙)도 좋을시고. 조조 앉아 살펴 보매 선중(船中) 깃대에 황개 명자(名字) 은은히 뵈이거늘 조조가 대열(大悅) 왈,
“이는 하늘이 도움이로다.”
정욱이 여짜오되,
“그 배 분명 간사하니이다.”
조조 왈,
“어찌 아는다?”
정욱이 여짜오되,
“양식 실은 배면 깊이 떴을 것이여늘, 오는 배 가벼와 이렇듯 범유(帆流)하니, 만일 간계 있을진대, 어찌 써 당하리이꼬?”
말이 맞지 못하야, 뜻밖에 청포선 천여척이 벌떼같이 늘어서며 기화포(起火砲)‧승기전(繩起箭)에 뚜따 나팔 소리, 퉁퉁 뇌고 치며, 번개같이 달려들어 고함성이 진동하며 헌번 불을 버썩 지르니, 강산이 무너지고, 두번 불을 버썩, 우주가 바뀌는듯, 세번 불을 버썩 풍조화세(風助火勢)하니, 화진풍위(火振風威)하야 화염이 충천, 천지 진동, 풍성은 울루루, 물결은 출렁 출렁, 전선(戰船)은 뒤똥, 돛대 직끈, 용총마루 닻줄이며 모두 다 끊어지며, 장막도 쪽쪽, 기치도 펄펄, 화전‧궁전‧방패‧창과‧기말장‧통노구‧말음쇠‧나발‧징‧북‧꽹과리, 산산이 다 깨어져, 풍파 강상에 웡그렁떼 요렁어, 둥실 떠나가니 수만 전선 간 데 없고, 적벽강이 디끓을 제, 불빛이 낮빛이라. 조조의 백만 대병 일시에 함몰할 제, 숨막히고 기막히고, 초두(焦頭) 난액 불에 타서 이놈 죽고, 저놈 죽고, 앉아 죽고, 서서 죽고, 보다 죽고, 울다 죽고, 자다 죽고, 참 모르고 죽고, 주기 싫어도 죽고, 애써 죽고, 동 싸고 죽고, 가엾이 죽고, 불상히 죽고, 원통히 죽고, 어이 없이 죽고, 함부로 짓밟혀 다리 지끈, 팔도 꺾어 물에 풍덩 빠져 죽고, 가슴 땅땅 치다 죽고, 선두에 우뚝 나서서 네미 욕하고 주고, 횡사(橫死)‧급사(急死)‧즉사(卽死)‧분사(憤死) 할 제, 날랜 장수 무용이오, 일등 명장 쓸 데 없다. 어제밤 장담하던 조조 홍안(紅顔)이 숯빛이오, 정욱 얼굴 똥빛이라. 한창 이리 분주 중에 황개 거동 볼작시면, 장창 대검 눈 위에 높이 들고 화광 중 번듯 나서며,
“이놈 조조야, 선봉대장 황개를 아는다 모르는다? 닫지 말고 창을 받으라.”
조조가 기가 막혀 선두에 뚝 떨어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장요의 용맹으로 일척선 바삐 저어 강두에 내여 놓으니 엉겁결에 젖은 의복 훨적 벗고, 군사 중에 싸여 가며, 그 중에 잔말이 비상하다.
“날더러 조조라 말아라.”
실로 조조라. 부질 없이 총 놓다가 화약조차 눈에 들어 몹시도 앓는다. 둔종났다 다칠세라 자칫하면 똥 싸겠다. 여광여취(如狂如醉)하야 혼미(魂迷) 중에 겨우 일어나 정신을 차려 강사을 바라보니, 불빛이 뒤덮이고, 고함성은 진동한데, 조조가 적벽강상 혈육(血肉)되니 비전지조(非戰之兆)요, 천망지아(天亡之我)라 하고, 장흡은 적벽으로 쫓아오고, 여몽 감영은 하구로 몰아오며, 주요의 대장은 뒤를 쫓아 엄살(掩殺)하니, 진퇴유곡 패군이여. 조조 갈 길 전혀 없다.
천방지방(天方地方) 가는 길이 오림산곡을 당도하니, 수목은 총잡(叢雜)하고, 산천은 험준한데, 만학(萬壑)에 눈이 쌓이고, 천봉에 바람 칠 제, 화초목실(花草木實) 바이 없고, 앵무‧원앙 그쳤으니 새가 어이 울리요만은 적벽 화염에 상한 장졸에 탁무로 원조(寃鳥) 되어, 가지가지 우는 소리 도탄에 싸인 군사 고향 이별 몇 해런고.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라, 펄펄 수루룩 울고 간다. 또 저편 바라보니 저 흉년 새 울음운다. 여봐라, 위병(魏兵) 군졸들아, 너희 진중에 양식이 없었으니 무엇으로 밥을 질랴나. 이리 가며 솟텅, 저리 가며 솟텅 새 울고 간다. 저 입삣쪽새 울음 운다. 백만 군사 자랑터니 금일 패장(敗將)이 웬 일이오, 자칭 영웅 간 데 없고, 백세도생(百歲圖生) 괴로운데, 이리로 가며 입삣쪽, 저리로 가며 입삣쪽 입삣쪽, 울고 간다. 저 까마귀 울음 운다. 초평(草坪)대로(大路) 마다하고 심심 총림 고향 갈 제, 구악깍깍 울고 간다. 또 저편 바라보니, 저 호새 울음 운다. 장요는 활만 들고 살 없다고 설워 말아, 여기 살 나간다, 펄펄 수루룩 울고 간다. 저 따오기 울음 운다. 황개 호통에 벗은 퐁포 다 입었다, 따옥따옥 울고 간다. 저 종달새 울음 운다. 공주에 높이 떠 동남풍을 막아주랴, 철망을 벗어났다. 화병아 우지 마라. 저 종달새‧때작우리 뒤섞여 울음 운다. 울음 끝에 놀낸 장졸 갈수록이 알망궂다. 복병 보고 도망 마라. 이리 가며 행똥, 저리 가며 행똥, 펄펄 수루룩 울고 간다.
조조가 보고 낙루(落淚) 탄식다가 허허 한번 웃었으니, 정욱이 여짜오되,
“근근도생(僅僅圖生) 창황(蒼黃) 중에 슬픈 신세, 생각지 않으시고, 웃으시니이까.”
조조가 대답하되,
“웃음이 아니 날까. 들어 보라. 주유‧공명을 뉘라서 모사(謀士)라 하더냐. 가소롭다. 이렇듯 좁은 길에 복병을 두었으면 내 어이 살아나리오.”
하더라.

제3회

조군근행화용도(曹軍僅行華容道) 조군이 계오화룡도로 행할 새
관공의석조맹덕(關公義釋曹孟德) 관공이 외로 조맹덕을 놓다

차설(且說) 조조가 말이 맞지 못하야서 방포 일성이 컹 오림산곡에 화염이 충천하고, 기치 창검이 휘황중(煇煌中) 주적 주적 한 장수 나온다. 저 장수 거동 보소. 백포‧운문‧단엄‧신갑의 팔모장창 눈 위에 높이 들고, 당당위풍 큰 소리를 벽력 같이 지르며,
“이놈 조조야, 상산 조자룡이 아느냐, 모르느냐? 난다 긴다 팔랑개비라. 비상천(飛上天) 하며 두더지라 땅으로 들까. 닫지 말고 창 받으라.”
번개 같이 달려들어 동에 얼른 서를 치고, 서에 얼른 북을 칠 제에, 와서 번듯 예와 땡그렁, 두껍이‧파리 잡듯, 박송고리 뀌오듯, 장졸의 머리 추풍낙엽이라. 조조는 넋을 잃고 마두(馬頭)에 뚝 떨어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서황‧장흡 등이 죽도록 구완하야 간신이 도망할 제, 군량‧군기 모두 잃고 약간 남은 장졸들이 창도 맞고 살도 맞어, 행보할 길 전혀 없다. 간신히 도망하야 이릉 어귀를 당도하니, 날이 장차 밝아오며 동남풍은 불식(不息)하고, 검은 구름 일어나며 일경 망망이라. 화염의 상한 장졸우중이 불상하다. 호로곡 다달아서 젖은 의복 흔탈하야 날빛에 걸어두고, 주린 말을 잡히며 촌여의 양식을 겁탈하야 화병 불러 밥을 지으라 재촉하고, 한 곳을 가만히 살펴 보니, 한수에 흐르는 물은 이릉에 다았는데 적적산곡(寂寂山谷) 청계상에 쌍쌍 백구 높이 날아 둥실둥실 높이 떴다. 우후청강(雨後淸江) 좋은 흥미 뭇노라. 저 백구야 홍요월색(紅蓼月色) 어느 곳 고어적수성(孤漁笛數聲)이 적막한데, 너는 어이 한가하야 뉘 기약을 기다리며, 나는 분주하야 반생반사 고생하며 천리본국을 어이 갈까, 이렇듯 탄식다가 허허 대소하니, 제장등이 여짜오되,
“승상이 웃으시면 복병이 똑똑 일어나오니, 웃음 그만 참으시오.”
조조가 화를 내어 하는 말이,
“내가 웃으면 복병이 똑똑 일어난단 말가. 전의 우리 집에서 아무리 크게 웃어도 복병 커녕 술병도 아니 나더라. 그놈들이 승상이니 마상이니 하며 헛 동요를 지어 평생 즐기는 웃음도 못 웃게 하는구나. 술이나 들어라.”
거방(車傍)에 측괘일호주(側掛一壺酒)로다. 취토록 먹은 후에 취중의 주담한다.
“이번 싸움에 패는 보았거니와 한나라 장수의 근본을 의논하면 모두 다 상놈들이었다. 우선 유현덕으로 일러도 한종실(漢宗室)이라 칭하거니와 양산 채미점(彩米店)에서 짚석이 삼든 상놈이오, 또 운장이 기운은 있는 체하고, 사람은 잘 찌르거니와, 하동 땅에서 그릇 구워 먹든 점한에 손이오, 장비 여간 표독한 체하고, 우직은 하거니와 탁군 땅에서 제육장사 하던 놈이로되, 현덕이 그손 고리눈에 혹하야, 결의형제하얐것다. 또 조자룡인지 이손은 날랜 체하고 억지는 있거니와, 제 근본을 의론하면 상산 돌구멍에서 뚝 비어진 상놈이오. 제갈량인지 이손이 슬기는 있는 체하고 말을 잘 하거니와 남양서 밭갈아 농토생장(農土生長)이로되, 현덕이 용열하여 고운송백(孤雲松柏)을 데려다가 선생인지 후생인지 하거니와, 일후에 만가 곳하면 내 한 말로 그 손들을 문 밖에 나지 못하게 하리라.”
정욱이 여짜오되,
“왕후장상(王候將相)이 영유종호(寧有種乎)아. 예로부터 일었으니 교병자(驕兵者)는 패라 하는 말을 못 들어 계시오? 기세 불리면 이기졸(以其卒)로 여적(與賊)이오. 장부지병(將不知兵)이면 이기군으로 여적이오. 군불택장(君不擇將)이면 이기국으로 여적이라 하였사오니, 남의 험구 말으시고, 점고나 하사이다.”
조조가 대답하되,
“점고하야 무엇할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넘나들면 불과 일곱 쯤 되는데 점고하야 쓸 데 없다만은, 제법 수품이나 차례로 점고 착실히 하라.”
정욱의 거동 보소. 군중에 호령하되,
“명금이하취호적(鳴金以下吹胡笛)하라.”
흩은 군사 모여들 제, 총도 맞고 살도 맞어 행보를 어이하리. 각기 울고 들어올 제, 깨어진 통노구며 꺾어진 활 창만 들고 원망하노니.
“제갈량의 동남풍 아니런들 팔십만 대병이 다 죽으랴. 어이 타 불에 쇠진하야 이 몸 곤(困)케 하시는가.”
각기 울고 들어오니 조조가 가로되,
“남은 군사 무던하다.”
점고 급히 할 새,
“일대장의 안우명이 물고(物故)요.”
조조가 깜짝 놀라,
“여 어찌 죽은다?”
“오림서 자룡을 만나 죽었소.”
“아깝다. 너희 오륙인이 가 살려 불러 오너라.”
저 놈 대답하되,
“승상이 손수 가 불러 오시오. 나 혼자 가다가 맞아 죽게요.”
“또 불러라.”
우부좌 사천총의 허무적이 들어온다. 투구 비슥 팔에 걸고 갑옷 벗어 둘러 메고, 한 팔은 늘어지고, 한 다리 맞아 저며 대성통곡 우는 말이,
“고향을 바라보니 구름 밖에 멀어 있고, 가권(家眷)을 곰곰 생각하니 그립기 측량 없다.”
어이 갈꼬. 빈년(賓年)의 불치병하니, 돌아가지 못한 패군 가기는 아니 하고 점고는 무삼 일고, 설이 울고 들어오니, 조조가 보고 대노 왈,
“너는 신위천총(身爲千摠)놈으로 군례도 아니 하고, 체면이 없이 들어오니 그럴 도리 어디 있으리오. 만일 그저 두었다는 다른 놈이 본을 받을 것이니 잡아내어 효수(梟首)하라.”
천총이 고성하야, 여짜오되,
“여보 승상님 들으시오. 적벽강 화전 만나 망신패군지장(亡身敗軍之將) 되었으니 죽어 마땅하거니와 굴신(屈身) 못하옵고, 걸어 고향 못 갈 것 인생 차라리 죽어지면 혼비(魂飛) 고향 돌아가서 부모처자 얼굴이나 보려 하니 제발 덕분 죽여주오.”
조조가 어이 없어 몰아내고,
“또 불러라.”
“화병의 변란쇠.”
변란쇠가 울고 들어온다. 전립 벗어 둘러 메고, 군복 벗어 옆에 끼고 대성통곡 우는 말이,
“고향이 저기로다. 천리 본국을 어이 갈꼬. 애고 애고 내 신세야.”
조조가 보고 대노 왈,
“너는 어찌 우는다? 화란의 군기를 모두 다 잃었소? 어따 둔다?”
“오다가 어떤 장수가 나서더니 장막은 이불할란다 뺏고, 말음쇠는 문 돌저귀 할란다기에 해다 주고 왔소.”
“통노구는 어따 둔다?”
“예 가져 왔소.”
줌치를 끌르더니 쇠천만한 쇠 한쪽을 내어 놓으며,
“가져왔소.”
조조가 기가 막혀,
“이놈 그게 통노구냐?”
“예, 알외오리다. 오림서 자룡을 만나 일포성(一砲聲) 날랜 창에 장졸에 머리 추풍낙엽 떨어질 때에, 혼불부체(魂不付體)터니, 번개같이 달려들어, ‘이놈 네 진 것이 무엇이냐?’ 하기에, 잠깐 꾀를 내어 ‘산제불공(山祭佛供) 다니는 통노구오’ 한즉, ‘이리로 올려라’ 하니 어느 항우 아들놈, 아니 올리고 견디겠소. 두 말 없이 올렸더니, 통노구 복판에 위나라 위자는 어떤 별난장(別難杖)의 아들놈이 썼는지 그 글자를 보더니, ‘이놈 조조의 화병놈이 조조의 꾀를 본받아 잔꾀 비상하다’ 하고, 공중에 내치기에 줏어 보니 쪽쪽이 나털털 하기로, 내 던지고 오다가 물고내자 하고, 나 한쪽 가서 왔소.”
몰아내고,
“또 불러라.”
“군량지기 변난쇠.”
젼난쇠 들어온다. 방정맞은 불알 만한 옹동자리의 쌀 한 홉 좀 넣어 홰홰 두르며 들어온다. 조조가 보고 가로되,
“허다한 군병 먹을 양식을 다 어따 두고 저 뿐인다?”
군량지기 대답하되,
“승상은 매우 무던한 체하든 그 적벽풍파 요란할 제, 백만군사 몰사하니, 군량인들 온전하오리이까. 나기에 망정 요만치나 가져 왔소. 어떤 제미랄 놈이 군량 한 홉 떼어 먹었소.”
몰아내고,
“또 불러라.”
“우기병의 몰내종이.”
몰내종이 들어온다. 안팎 곱사둥이에 다리 앓아 절둑절둑 눈시울이 자빠지고, 입이 올라, 비틀어져 곰배팔을 휘저으며, 바짱다리 흔들거리며 들어온다. 조조가 보고 대소 왈,
“어따 그놈 병신 중에는 부자로다. 저러한 것이 진중에 부당하니, 몰아내고. 또 불러라.”
“직대군에 둥덩발이.”
둥덩발이가 들어온다. 벙치 벗어 둘러메고, 군복 벗어 앞에 끼고, 대성통곡 우는 말이,
“잔약간신(殘弱干辛)이 오는 사람을 무엇하랴. 부르시오?”
조조가 보고 대소 왈,
“이놈 네 목이 어찌 저렇게 되었느냐?”
저놈 골내어 하느는 말이,
“어떤 제미랄 놈이 목이 근본 이렇게 생겼겄나. 오다가 중로에서 어떤 장수가 나서더니, 이놈 조조가 어이도 가더냐 하옵디다.”
조조가 대노 왈,
“이놈 네 목이 어찌 저렇게 되었느냐?”
“글쎄요, 장수가 그리 하옵디다.”
조조 왈,
“일렀느냐?”
“글쎄 들어보오. 아니 일러서는 반가의 죽겠삽디다.”
“그러면 일렀구나.”
“글쎄 들어보오. 이놈 죽이기 전에 곳 일러라 하니 강약이 부동(不同)하와 견딜 일 있소.”
조조가 대경 왈,
“그러면 일렀구나.”
“글쎄 들어보오. 일렀으면 편할 것이오, 아니 일러서는 즉시 죽일러이다.”
조조가 펄펄 뛰며,
“그러면 일렀느냐?”
“글쎄 들어보오. 오죽 자꾸만 모른다고 떳치니, 그 장사가 돌덩이 같은 주머니로 대골이를 칵 치니, 목이 속으로 들어가기에 눈을 떠 보니 겨우 염통만 뵈입디다.”
조조가 그제야 숨을 참을 내어 ‘쉬’ 하는 말이,
“애고 착실한 내 아들이야.”
점고를 다 한 후에 남은 군사 수습하니 불과 수백명이라. 조조가 보고 낙루탄식다가, 또 허허 대소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백만군사를 몰사하고 군량 한 홉이 바이 벗어 기갈이 자심한데, 또 어찌 웃으시나이까?”
조조가 대답하되,
“주유공명이 꾀 없음을 웃었노라.”
말이 맞지 못하야, 방포일성(放砲一聲)에 컹 하며, 좌우 산공으로 복병이 벌때같이 달려드니, 정욱이 황겁하야,
“승상님, 이제는 죽겠소. 범같은 장비가 나오.”
조조가 황겁주에 살펴 보니 얼굴 먹장고리 눈, 다박 수염, 사모장창(四模長槍) 눈 위에 높이 들고 불꽃 같이 급한 성정 맹호같이 나서며, 벽력같은 소리로 천둥같이 소리지르며,
“이놈 조조야, 탁군 땅 장익덕을 아느냐? 모르느냐? 선생이 보내시매 너 잡으라 예 왔노라. 장판교 도망, 조조 금일 생금 어이 갈까, 닫지 말고 창 받아라.”
조조는 기가 막혀 아래턱을 까불까불하며,
“정욱아, 날 살려라 살려라.”
조조는 넋을 잃고, 장졸은 황겁 분주 중에 허저‧장흡 등이 죽도록 구완하야, 간신히 대적할 제, 조조의 거동 보소. 안장 없는 말을 타고, 천지도지 도망할 제, 갑옷 벗고, 제장이며 군복 벗어, 엎어진 놈 먼저 간다. 욕하는 놈, 떨어졌다 재촉하며, 슬기로운 놈 나무라고, 우악한 놈 장담하며, 냉병 (冷病)들어 설사한 놈, 배고파 기진한 놈, 오장경풍에 다리 떨며, 서늘증의 자몰한 놈, 창대 잡고 다리 절며, 반생반사(半生半死) 도망할 제, 약간 남은 장졸들이 총도 맞고 살도 맞아 횡보를 어찌 하리. 호로곡 넘어 갈 제, 늘어진 잡목이며 뒤엉클어진 칡넝줄을 후루쳐 잡고, ‘후윽’ 한숨 쉬고 촉도지란(蜀道之亂)이 험타 한들, 이에서 더할소냐. 죽을 판, 살 판 도망하야, 호로곡을 겨우 넘어, 정욱이 낙루(낙루) 통곡한다.
“평생 소학진심(所學盡心)하야 운주결승(運籌決勝) 하쟀더니, 제불시불이라. 초행 노숙이 어인 일고. 오늘 이리 됨이 그 뉘를 원망하리. 망측한 우리 승상, 일빈일소(一嚬一笑) 탓이로다. 애고 애고.”
설이 우니, 또 천별장이 울고난다.
“방망소둔(傍望燒屯)에 겨우 살아 적벽오전이 어인 일고. 승상이 망상하야 주색 보면 한사(限死)하고, 임진(臨陣)하면 교봉(交鋒)터니, 삼부육사(三部六士) 간 데 없고, 백만군사 몰사하니, 모사도 허사되고, 장수 공수로다. 전(前) 복병이 다시 나면 이 일을 어이 하잔 말가. 애고 애고, 내 신세야.”
또 파총이 울고난다.
“변덕스런 우리 승상 패업(覇業)하랴 한들 인덕으로 용이할까. 패군장 도망하니 전후 난로(欄路)허여지고, 좌우초(左右哨)는 간 데 없다. 전로 복병 일어나면 좌우익을 뉘 당하리. 애고 애고.”
울고 나니, 또 한 관인이 울고난다.
“전탐후보(前探後報)하쟀더니, 사중구생(死中求生)하였으니, 충량지심(忠良之心) 생각 없고, 영솔삼기(領率三騎) 쓸 데 없다. 철 없는 우리 승상, 우설(雨雪)에 상한 길을 고치랴 호령한들, 지천 군사 원(寃) 없을까. 공성신퇴(功成身退)하쟀더니, 노상 기사(飢士)되었으니, 어찌 아니 슬플소냐.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또 깃대총이 울고난다.
“헌원씨 심용간과(甚用干戈) 후생 곤(困)케 하시도다. 우리 작대(作隊) 차례로 날 때 인기(人氣)도 건장하고 기개(氣槪)인들 범연(凡然)한가. 간능(奸能)할사 우리 승상 용병(用兵)이 남만 하되 황개 방통(龐統)의 꾀를 듣고 일야 풍진탕멸(風塵蕩滅)되니 삼기구대(三騎九隊) 정병군사(精病軍士) 일삼오칠 간 데 없고 이사육팔이 죽단 말가. 병든 보병 두세 병이 열파(裂破)된 총대 메고 화약조차 없었으니 윤방을 어이 할꼬. 고향을 바라보니 구름 밖에 멀어 있고, 가권(家眷)을 곰곰 생각하니 그립기가 측량(測量)없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한창 이리 설이 우니, 조조 듣고 대노 왈,
“사생(死生)이 유명한데 너희는 어찌 요망이 우는다. 다시 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참하리라.”
이렇듯 호령하며 행군을 재촉할 제, 정욱이 여짜오되,
“화룡소로의 연기가 나옵고 남군대로의 동정이 없사오니, 어느 길로 가오리이까?”
조조 대답하되,
“화룡소로로 들어가자.”
정욱이 여짜오되,
“연기 나는 곳에 복병이 있을 듯하오니, 대로로 가사이다.”
조조 대답하되,
“네가 병서를 못본 말이로다. 병서에 하얐으되 허즉실하고 실즉허라 하였으니 꾀 많은 제갈량이 대로에 복병하고 소로에 연기를 내어 날을 속이려는 꾀 아니냐? 잔말 말고 화룡도 소로로 들어가자.”
하릴 없어 화룡도 소로로 들어갈 제, 산고곡심험(山高谷深險)한 길에 행로하기 어렵도다. 층암절벽은 반공(半空)에 솟았는데 장천에 걸린 폭포비류(瀑布飛流) 즉하삼천척(卽下三千尺)하니 산명곡응(山明谷應) 요란하다. 공산에 초목들은 병마가 의심하며 좌우 산천 둘러보니 안개 걷어 백운되고 백운 걷어 다기봉 하니, 경개절승(경개절승) 여기로다. 풍경도 구경하며 행군을 재촉할 제 약간 남은 장졸들이 기한(기한)이 자심하고 초두란 액병든 형용이오 융동설한(융동설한) 추운 날에 살아갈 길 전혀 없다. 새벽 바람 찬 비 그쳐 인정 없는 조승상은 행군을 재촉하니, 굴헝에 빠진 군사가 죽는 자가 많은지라. 천방지방(천방지방) 가는 길에 조조가 또 앙천대소(앙천대소) 하니 주유.공명 가소롭다. 병목 같이 좁은 길에 복병을 두었으면 우리 등이 살자한들 어이하며, 피하자한들 어이하리. 식은 웃음 헛 장담에 행군을 재촉할 제, 뜻밖에 방포일성에 산상이 요란커늘 살펴보니 오백 도부수 좌우에 늘어서며 일원대장이 삼각수 거느리고 봉(봉)의 눈 부릅뜨고 적토마를 바삐 몰아 천둥같은 고함소리가 벽력 같이 되지르며, 조조야 하는 소리가 산악이 무너지고 천지진동하며,
“선생이 보내시매 너 잡으러 예 왔노라.”
조조는 넋을 잃고 장졸들은 황겁하야 서로 잡고 발발 떨며 대적할 이 뉘 있으랴. 적벽강 남은 혼백 다 죽었다.
“정욱아, 날 살려라. 날 살려라.”
정욱이 여짜오되,
“여보, 승상 듣자시오. 운장이 본디 웃사람은 만류하고, 아랫사람은 사랑하며, 강한 사람 억제하고, 약한 사람 붙잡나니 은수(은수)는 북명하고 의기(의기)는 대인이라. 전일 승상전에 은헤를 끼쳤으니 원컨대 승상은 한 번 빌어 화를 면하사이다.”
조조가 하릴없어 빌려할 제 투구 벗어 땅에 놓고 장검 빼어 옆에 끼고, 갑옷 벗어 말께 얹고, 대야머리 고쳐 상투 가는 목을 움추리고, 간교한 웃음으로 몸을 굽혀,
“장군님 뵌 지 오래더니 별래무양(별래무양) 하시니이까?”
관공이 인후한 양반이라 마상에서 흠신(흠신)하여 호언으로 대답하되,
“나는 봉명하고 이 곳에 와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어라.”
조조가 다시 여짜오되,
“박명한 조맹덕은 천자의 명을 받아 군을 거느리고 천리전장 나올 제, 분분천하(분분천하) 봉기장(봉기장)을 낱낱이 항복받고 촌공(촌공)을 세우고자 장졸을 쉬일 날이 전혀 없이 주야 싸움 하옵더니, 천행으로 살아나서 초수 오산 험한 길에 겨우 살아 오옵다가 장군님을 만나오니 반갑삽고 즐거우나, 장군님은 노색하사 원수 같이 미워하니 의장(의장)이라 하는 말씀 그 아니 허언(허언)이오. 장군님 헤어보오.”
운장이 대노 왈,
“발칙하고 간사하다. 네 내 말을 들어보라. 당초에 네 조상이 한국 녹을 먹었거늘 그 은혜를 배반하니 네 몹쓸 마음이오, 통일천하 삼분함도 너로 하야 그리 되고, 기린각충절화(기린각충절화)도 너로 하야 그리 되고, 억조창성곡성(억조창성곡성) 소리 처처에 낭자함도 너로 하야 그리 되니, 잔말 말고 수이 죽어라.”
조조가 다시 비는 말이,
“장군님 듣자시요. 장군님께옵서 전일 고정(고정)을 생각하야 나의 말을 듣자시요. 그 때 허창에 와 계실 때, 삼일소연(삼일소연)의 오일대연(오일대연)하옵고 상마에 은 천냥이오, 부인 안녕하심도 소장의 힘이옵고, 천하일색 초선이도 소장이 드린 바오, 입으신 화전포도 소장이 드린 바요. 좌로 나오실 제 오관참장(오관참장)하옵고, 허다한 장졸을 무수히 죽였으되 일분혐의 아니하고 장요에게 분부하야 무사호송하올 적에 장군님 하신 말씀 일후상봉(일후상봉)하자하고 연연 이별하옵더니 오늘날 나의 신세 패군지장 되었다고 청룡도를 받드라 하시니 그 아니 원통하오. 관후(관후)하신 성덕으로 잔잉한 조맹덕을 제발 덕분 살려주오. 살아지이다. 살아지이다. 장군님 덕택에 살아지이다.”
만단으로 애걸하니 관공의 어진 마음 도리어 비창하야 말머리를 도투혀시며 오백 도부수를 한 편으로 치우시니 간사한 저 조조가 운장에 거동보고 쥐 숨듯 도망커늘 관공의 어진 마음 차마 죽이지 못하나 반드시 속이리라 하고,
“이 놈 분부 전에 어데 갈꼬?”
조조가 펄썩 주저앉아 가도오도 못하니 정욱이 여짜오되,
“다시 빌어보옵소서.”
조조가 다시 빌려할 제 가는 목을 움추리고 간교한 웃음으로,
“여보, 장군님, 옛정을 생각하와 제강부약(제강부약) 하옵시니, 잔잉하고 가긍하온 조맹덕을 살려주오.”
관공의 어진 마음 말머리 두루쳐 거짓 호통하야 물리치고, 관공은 신야(신야)로 들어가고 조조는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때 관공이 신야로 돌아오니 선생이 당에 내려 관공을 맞아 이른 말이,
“장군이 제일공을 이루었사오니 그 은혜를 어찌 다 측량하오리이까?”
운장이 대답지 아니 하거늘 공명 왈,
“장군이 성공하고 오는 길을 멀리 나와 맞지 못하오니 그로 혐의하시나니이까?”
운장이 겨우 대답하되,
“조조를 잡지 못하였나이다.”
공명이 대답하되,
“조조가 화룡도로 가지 아니하더니이까?”
운장이 대답하되,
“조조가 화룡도로 지나나 관모가 능히 당치못하였으니이다.”
공명이 대노하여 왈,
“장군이 군령을 어기었으니 어찌하리오. 옛날 태조고황제도 정공효를 베시고 웅치(웅치)를 세운 뜻은 그 법을 세움이라. 이제 장군이 군령을 어기고 어찌 감히 용서하리요. 잡아내여 베이리라.”
현덕이 공명의 손을 잡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선생님 전에 비나이다. 우리 세 사람이 전일 도원결의 할 제 불신 동년동월동일에 생하고 지원 동년동월동일에 죽자하고 나늘에 맹세하였사오니, 이제 운장을 베이시면 전일 맹세를 어찌 저버리리이까? 죄를 기록하였다가 일후에 공을 세우거든 그로 속죄하옵심을 바라나이다. 또 문무중관이 일시에 하당복지(하당복지) 주 왈,
“현주(현주)의 심맹(심맹)이 자재(자재)하옵고 또한 조아지장(조아지장)을 죽이오면 후일 사직을 어이하오리이까. 살려주오, 살려주오. 한국사직을 생각하와 살려 주옵소서.”
여출일구(여출일구) 비는지라 공명이 하릴없어 운장을 불러 분부하되,
“현주의 천맹을 버리지 못하고 또 중관의 낯을 보아, 아직 용서하거니와 후일 공 세우거든 그로 속죄할 것이니 부디 군법을 경홀(경홀)이 알지 말라.”
하더라.
정권진 창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