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문명화과정요약2004/11/14 991

http://was.pe.kr/soc.htm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문명화과정(The Civilizing Process)]은 이미 1930년대에 출판되었지만 줄곧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 70년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의 대표적인 저서다. 57세가 되어서야 전임강사가 되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불운했던 엘리아스. 영미권을 풍미하던 기능주의와 체계이론이 점차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의 역사적인 실증연구와 결합된 독창적인 사회학 이론과 방법이 부각되기 시작한 이래 엘리아스는 최근까지 새로운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는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독일의 사회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다음은 [문명화과정]의 국내 번역문 중에서 머리말을 발췌하여 소개해본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1996. 문명화과정 박미애 올김. 한길사. p 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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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중심주제는 서구적으로 문명화된 사람들에게 전형적이라고 간주되는 행동양식이다. 그 주제가 던지는 질문들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에게 전형적이며 ‘문명화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예전부터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서구적으로 문명화된 우리 시대의 사람이 과거의 어느 시대로, 예컨대 중세 봉건적인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는 자신이 오늘날 다른 사회들에서 ‘야만적’이라고 평가하는 많은 특성들을 재발견할 것이다. 그때 느끼는 그의 감정은 서구 밖의 봉건사회 사람들의 행동이 그에게 촉발시키는 감정과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마 자신의 처지와 취향에 따라 곧 그 사회의 상류층이 영위하는 거칠고, 자유분망하며 모험에 가득 찬 삶에 끌리거나, 아니면 그들의 ‘야만적인 ‘ 습관, 불결함과 조야함에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든 과거의 어느 시점의 서구사회는 현재의 서구사회와 동일한 의미에서 그리고 동일한 수준으로 ‘문명화’된 사회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그는 분명하게 감지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으므로 다시 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은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그 질문이 우리의 자기이해에 전혀 무의미하지 않는데도,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세대의 의식 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 변화, 즉 서구의 ‘문명화’가 실제로 일어났는가, 그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그 원동력과 원인 또는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이 연구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주된 질문들이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즉 그 질문에 대한 서론으로서 독일과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문명화’ 개념에 담겨 있는 여러 의미들과 가치평가들을 살펴보겠다. 제1장에서 이 과제를 다룰 것이다. 이 작업은 ‘문화’와 ‘문명’의 개념을 항상 대립시키는 우리의 고정된 사고틀을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독일인에게는 프랑스인과 영국인의 행동에 대한 역사적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반대로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에게는 독일인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은 문명화과정 자체의 전형적인 형태들을 명료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중심문제들에 접근하기 위하여 우선 서구인들의 행동과 감정을 다스리는 구조가 중세 이래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은 제2장에서 다루게 될 과제이다.

서구 역사의 흐름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심리적 태도의 변화가 특정한 질서와 방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순수하게 이론적으로 또는 사변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경험자료들의 검토만이 무엇이 올바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런 연유로 여기에서, 즉 이러한 실물자료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지 않은 지금 전체 연구의 구성과 주요사상들을 간략히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들 자체가 단지 점차적으로, 즉 역사적인 사실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또 나중에 관찰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들을 통하여 이전에 보았던 사실들을 통제하고 수정함으로써 확고한 형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

독자들은 제2장에서 여러 가지 예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 보기들은 장면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영화에서처럼 전체의 발전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행동수준의 변화가 여러 세기에 걸쳐 항상 동일한 상황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여기에서는 단지 몇 쪽에 걸쳐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있는 광경을 본다. 그들이 잠자러 가거나 혹은 전투에서 적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관찰한다. 이런저런 기초적인 활동에서 개개인이 행동하고 느끼는 방식이 천천히 변화하고 있다. 그 방식은 단계적 ‘문명화’의 의미에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만 이 단어가 원래 무엇을 뜻했는지 더 명확해진다. 예컨대 이 단어는 수치심과 불쾌감의 특정한 변화가 이러한 문명화과정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의 수준도 변한다. 이 변화에 발맞추어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불쾌와 불안의 한계점도 변한다. 사회적으로 발생한 인간의 불안문제는 문명화과정의 핵심문제 중의 하나로 부상한다.

이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다른 문제들이 있다. 행동 및 전체 심리적인 구조에서 어른과 어린의 격차는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점차 커진다. 왜 많은 민족들과 민족집단들이 ‘더 어리거나’, ‘어린아이와 같은지’, 다른 민족들이 ‘더 나이가 들었거나’ 또는 ‘어른스러운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이런 식의 표현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이 사회들이 거쳐온 문명화과정의 종류와 단계들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 책의 테두리 안에 넣을 수 없는 문제이다.(…)

제3장의 과제는 이러한 긴 역사의 특정한 과정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제2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3장에서는 정확하게 규정된 몇 개의 영역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서구사회의 구조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부단히 변화하는지 밝혀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그 영역 안에서 서구인들의 행동수준과 심리적인 태도가 변화한 까닭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여기에서 우리는 중세 초의 사회적 풍경을 보게 된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성들이 가득하다. 오래 전부터 도시 주거지였던 곳조차도 봉건제화되었다. 무사계급 출신 지주들의 농장과 성들이 도시의 중심을 이룬다. 문제는 어떤 사회적 관계들이 서로 얽혀 우리가 ‘봉건제도’라고 부르는 것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몇몇 ‘봉건제화의 기제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자유로운 도시의 수공업자와 상인의 주거지를 거느린 성채의 충경에서 부유한 대영주의 저택들이 서서히 돌출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무사계급 내에서도 점차적으로 일종의 상류층이 뚜렷하게 형성된다. 그들의 저택이 한편으로는 연가와 중세 남프랑스 음유시인풍 트로바도르 서정시 중심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궁정 기사적’ 행동과 대화양식의 중심지이다. 앞에서 심리적 태도변화에 대한 명확한 상을 제시하는 여러 보기들의 출발점으로 ‘기사적인’ 행동수준을 설정하였다면, 여기에서는 이러한 기사적 행동양식의 사회발생적 근거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또는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것의 초기 형태가 서서히 형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행동은 ‘절대주의’ 시대에 ‘예절’의 표어 아래, 오늘날 우리가 ‘예절’에서 파생된 낱말을 가지고 ‘문명화된’ 행동이라고 표현하는 그러한 행동수준의 방향으로 변화해갔다. 문명화과정을 밝히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일은 절대주의 정권과 국가의 형성과정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 작업에 요청되는 방법이 과거를 관찰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여러 사실들을 관찰하여보면 ‘문명화된’ 행동의 성립은 서구사회가 ‘국가들’로 조직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크고 작은 세력을 가진 무사들이 서구지역을 실제로 장악했던 중세 초의 지방분권적인 사회로부터 내적으로는 어느 정도 평화를 유지하지만 외부에 대해서는 무장한 사회, 즉 우리가 ‘국가’라 부르는 사회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어떤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넓은 지역들이 비교적 안정되고 중앙집권적 하나의 통치기구로 통합되는가.

모든 역사적 구성체들의 발생근거를 묻는 것은 일견 불필요하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현상들, 인간의 태도나 사회제도들도 실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인위적인 추상화를 통해 이 현상들을 자연적 또는 역사적 흐름으로부터 분리하여, 그것으로부터 운동과 과정의 성격을 박탈하고 또 이 현상들을 발생, 변화되어가는 과정과는 무관한 하나의 정적인 구성체로서 파악하려는 사고형식들이 어떻게 이 역사적 현상들의 이해에 평이하고 적합한 것일 수 있겠는가.

다른 사유수단과 방식을 요청하는 것은 어떤 이론적 선입관이 아니라 경험 자체이다. 역사적으로 동적인 모든 것을 부동적인 것으로 또는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을 가진 ‘정태주의’의 호구(虎口)를 피하는 한편, 역사에서 단지 끊임없이 변화만을 보기 때문에 이 변화의 질서와 역사적 구조의 형성을 지배하는 법칙을 꿰뚫을 수 없는 ‘역사적 상대주의’의 용혈(龍穴)로도 빠지지 않고 우리의 의식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유의 길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여기에서 시도되고 있다. 사회발생적·심리발생적 연구는 역사 변화의 질서와 법칙, 구체적인 기제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잡한 것으로, 또는 사유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한 상당히 단순하고 정확한 답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의 사회발생적 근거를 묻는 것이다. 국가의 형성사와 구조사의 한 측면을 말한다면, 그것은 ‘권력독점’의 문제이다. 이미 막스 베버도 처음에는 단순히 개념을 정의하려는 의도에서 물리적인 폭력행사의 독점이 이른바 ‘국가’라는 사회 조직체의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이 연구에서 폭력행사가 서고 경쟁관계에 있던 무사집단의 특권이었던 시대로부터 점차 물리적인 폭력행사와 이를 위한 수단의 중앙화와 독점화에 이르는 구체적인 역사과정을 밝혀내고자 한다. 과거 어느 시대의 독점현성 경향은 현 시대보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관계들이 함께 얽혀 있는 일종의 매듭점인 육체적인 폭력행위의 독점과 더불어 개인을 형성하고 각인하는 장치들, 개인에게서 사회적 태도를 조형해내는 사회적 요구와 금지의 작용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불안의 형태가 결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전체의 개략으로서 ‘문명이론의 초안’은 사회구조의 변화와 심리적 태도 및 행동구조의 변화 간의 연관관계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제1권에서 구체적인 역사과정을 서술하면서 단지 암시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여기에서 분명하게 진술된다. 제1권에서 사료를 직접 고찰하면서 저절로 드러난 사실들로부터 도출해낸 일종의 이론적 결과로서 수치감 및 정서적 고통의 구조에 대한 짧은 개요가 마지막 장에 들어 있다. 또한 왜 이런 종류의 불안이 문명화과정의 진전과 함께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첨부되어 있다. 동시에 ‘초자아’의 형성을 비롯해 ‘문명화된’ 사람들의 정신구조 속에서 의식적 충동과 무의식적 충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몇 가지 사실이 밝혀진다. 또 역사적 과정의 문제도 이 결론부분에서 비로소 해답을 얻게 된다. 즉 이 모든 과정들이 개인의 행위들로만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어떤 한 개인의 의도와 계획에 따르지 않은 제도와 구성체들이 생성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