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과의 싸움-유엔사, 김현아 나와우리2005/06/12 821


유령과의 싸움
작성자 : 현 아 2005-04-13 조회 655

2004년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삼보일배와 단식이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세걸음에 한번씩 절을 하며 올라온 문규현신부와 수경스님,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45일간 단식을 한 지율스님.(지율스님은 90일이 넘는 단식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 몸은 사의 영역에 있고 정신만 생의 영역에 있다고 그를 진단한 한의사는 말했다.)
소통과 교류와 합의를 위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목숨을 건 단식을 필요로 하고 늙은 성직자들의 무릎에 피가 흘러야 하는 것일까.
이런 와중에 진행된 한 ‘건장한 남자’의 ‘걷기 명상’은 세상의 큰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엔사 해체를 위한 이시우의 걷기명상.
이슈도 생뚱맞았다. 주한미군철수도 아니고 통일도 아니고 유엔사 해체라니.
그래서였을까, 나와우리에 와서 강의도 하고 민통선평화기행 진행도 해준 이시우선생이 고성에서 부산까지,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 걷고 또 걷는 이유를 나 역시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유엔사가 왜 해체되어야 하는지, 아니 그 이전에 유엔사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촛불집회니 총선이니 이라크파병이니 눈앞에 닥쳐오는 문제들을 바라보기에도 버거웠다. 정말이지 이 땅은 잠시도 한 개인이 온전히 사적인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며 신문과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기웃거렸다. 짬짬이 그의 걷기명상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메일이 개인편지함에 도착하곤 했다.

올초 우연히 이시우선생을 목동에서 만났다. 정릉에 사는 나와 강화도에 사는 이시우선생이 우연히 만나기에 목동은 좋은 장소다. 우연히 만나 같이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우연히 혜화동까지 지하철을 함께 타고 왔다. 목동에서 혜화동까지는 우연히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그 30여분의 시간은 유엔사 이야기의 꼬리를 슬쩍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거대한 지하철의 소음에 파묻히려는 그의 낮은 목소리를 잡아내기 위해선 온신경을 집중해야 했지만, 그래서 웬만하면 건성으로 듣는 척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유엔사 이야기는 너무 황당하고 엽기적이었다. 뱀파이어나 마녀의 이야기라면 밤이 깊어 은하가 삼경이어도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은하철도999와 혹성탈출이라면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은 개인적 취향에 유엔사 이야기는 딱 제격이었다고나 할까. 안개가 흐르는 밤에 듣는, 음습하긴 하지만 간을 졸이게 하는 유령이야기.

지하철의 소음에서 건진 유엔사에 대한 단편1
옛날도 멀지 않은 옛날, 1950년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한국의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왜 그들은 한국의 전쟁에 개입하려 했을까, 유엔에서는 안보리를 열고 참전을 결의한다. 하여 16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이 탄생한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정부의 군통수권을 유엔군사령관인 맥아더에게 넘긴다. 맥아더는 난처하다. 왜냐면 군통수권을 넘겨받으면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승만은 군통수권과 작전지휘권을 혼동하여 군통수권을 넘긴 것이고 군통수권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이니까 이걸 받으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실로 맥아더는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맥아더는 “프레지던트 리, 나는 군지휘권만 받겠소” 라고 하여 대한민국은 국가 이래 최초의 미국인 대통령을 맞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어쨌든 그 날 이후 한국의 군통수권은 유엔군에 넘어가게 되었고 1978년까지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유엔사에 있었다. 유엔사라 함은 유엔군 사령부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국민학교 때 배웠던대로 한국전쟁을 도우러(?) 온 16개국 참전국가들의 연합체인 것이다. 그런데 유엔사령부는 미군 합참의장의 지휘하에 있다.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의 지위가 일개 국가인 미군의 지위보다 낮은 것이다.
게다가 16개국 중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들은 1967년 태국을 마지막으로 모두 철수했다. 그러므로 유엔사령부란 그야말로 허울만 남은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되자 다시 필리핀, 태국, 이디오피아 등 당시 참전국들에게 연락하여 연락장교 한 사람씩을 용산기지로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현재 유엔사는 유엔군 15명과 나머지 미군으로 구성된 엽기부대인 셈이다. 유엔군이 하는 일은 아침 저녁으로 유엔기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엽기군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어 1975년 유엔에서는 유엔사 해체결의가 있었다. 당시 헨리 키신저는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신 1978년 한미연합사가 만들어지면서 작전통제권은 유엔사령부에서 한미연합사로 넘어가게 된다. 미국 역시 언젠가는 해체될지도 모를 유엔사보다는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작전통제권을 가지는 것이 한반도에서 미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한미연합사령부를 다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의 차이는 뭘까?
한 가지만 말한다면 이런 거다.
만약에, 정말이지 만약에 한반도에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유엔사는 한국 대통령과 협의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과 미국의 협약 아래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는 당연히 한국의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한반도 전쟁 사실을 통보 혹은 사전에 말해야 하지만 유엔사령부의 사령관은 말할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1994년 당시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3가지 중 한 문서에 클린턴이 싸인을 했을 때도 한국의 대통령은 몰랐다. 내 운명은 태국, 필리핀, 이디오피아를 비롯한 15개국의 연락장교와 미군의 손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유령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와우리의 멋진 새 집으로 그를 초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