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자주문예운동의 예술학적 기초 (1) 예술에 대한 견해20011001

제 3 장 자주문예운동의 예술학적 기초
(1) 예술에 대한 견해
1) 미와 예술의 관계

(1) 예술에 대한 견해
1) 미와 예술의 관계
제가 연애할 때의 얘기입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작은 아름다움에도 감동 받고 싶어지는 시기죠. 저녁노을이 지는 풍경을 보고 ‘와, 정말 멋있네요.’라고 말하면 ‘정말 아름다운 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거예요.’라고 대답하면서. 무슨 말을 못하게 막곤 했었습니다. 그 다음이야 시시한 얘기니 각설하지요.
말로 표현하지 않아야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맞는 것이고, 자기가 느낀 아름다움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보겠다고 하는 것도 맞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미와 에술의 차이를 드러내주는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지난 소식지에서 미의 특성에 대해 말한 것을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미는 사심이 없다는 말 말입니다. 즉 목적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표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자기완결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정치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종교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으며, 예술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목이 잘린 채 나무에 내걸린 전봉준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비극미는 정치적으로는 반봉건 혁명의 상징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어떤 박해에도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 했던 성직자의 사례가 될 것이며, 예술적으로는 시대의 한계에 자주성의 실현이 처절히 유린된 인간의 전형으로 표현될 것입니다.
어쨋든 정치, 종교, 예술은 표현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대상이 있다는 말이며 대상이 전제되지 않은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와 예술의 구조적 특성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소통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지 않는 자기완결적 구조를 갖는가, 아니면 창작자와 감상자간의 소통이 기본구조로 되는가?
이렇게 거창하게 얘기를 전개하는 것은 미와 예술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게 우리 활동에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취미는 꼭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좋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산에 올랐을 때의 장엄미를 체험하는 게 좋아서 등산에 취미를 갖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때문에 자원 봉사가 취미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풍물이 좋아서, 노래가 좋아서 신바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심이 없고, 순수한 정신적 요구를 갖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목적을 갖고 표현한 것을 감상해야 할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제 신명에 겨워 풍물치는 것은 낙조에서 눈을 떼지못하고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적인 활동영역입니다. 그러나 다른 분과나 동네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풍물을 치거나, 전시회를 갖는 것은 그것이 서툴건, 세련됐건 예술적인 영역의 활동이 됩니다.
별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아서 이거나 저거나 풍물치는 건 다마찬가진데 하고 섣불리 집회에 나가 풍물을 치자고 한다든지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선 심한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단 한명이라도 눈여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 둘 떠나다보니 지금은 많은 수가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데에는 우리도 모르게 잘못된 미학관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술은 미의 집중이다’라고 하는 전통적인 명제를 비판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미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 부분적으로 상호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전자는
예술

.후자는

미 예술

그러나, 미의 집중이 항상 예술이 되진 않습니다. 앞서 얘기 했듯이 미는 정치적으로 집중될 수도 있고, 종교적으로도 집중될 수 있습니다. 미는 예술 뿐 아니라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혼돈을 지양하고 질서를 지향하는 인간의 자주적 이상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미의 집중이 예술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대중문예조직에서 이러한 견해는 회원을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든지, 창작물의 보급통로로 보는 등 여러가지 안좋은 모습을 나타냈으며 이렇게 하다 안되면 극단적으로 생각을 바꿔서 목적성이 완전히 배제된 취미조직으로만 남아 자기영역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창작예술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갈래내에서 분과 발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되면 이것은 보다 심각한 갈등으로 발전될 수도 있고, 더 긴밀한 상호관계의 통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예술을 미의 집중으로 보는 견해는 현실에서는 취미나 다양한 예술활동의 획일적 집중으로 나타납니다.
회원들간의 다양한 차이를 풍부하게 통일시킬 수 있는 길은 취미나 예술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회원들간의 구체적 요구를 중심으로 실정에 맞게 발전시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에서는 더욱 미묘하고 섬세한 상호작용을 동반합니다. 어느 누구든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영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면서까지 보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예술적 영역의 감상활동이지만 작가의 창작의도를 알려는 정신의 집중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느끼고 마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예술적 창작욕구로의 발전이나 비평 등으로의 발전을 기약할 순 없는 것입니다. 혼자 느끼고 마는 버릇을 같이 토론하고 객관화시켜 가는 것으로 그것이 더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안내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일방적지도나 방치가 아니라 사려깊은 관심과 서로의 미적 경험을 통일시켜가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와 예술의 관계는 상호연관되어 있으면서도 대립될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자주적 이상을 중심으로 서로의 미적체험을 존중하면서 풍부하게 통일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럴 때 풍물, 노래, 영화, 사진, 문학, 미술 뿐 아니라 사람의 요구에 기반한 놀이, 마술, 웅변 등 날로 새로운 분과가 만들어져가고 분과 활동의 질도 향상되는 경이적인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간 문예활동 거쳐오면서 문학예술이라는 범주만으로 회원을 받아들이고 운영했을 때, 취미를 위해 오는 사람이나 사람이 좋아서 오는 사람들은 진정한 주인으로 모실 수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문예보다는 문화라는 범주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화는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예술 뿐 아니라 과학, 기술, 종교, 법률 등 사회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정치조직이 되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영역이 됩니다. 이로부터 문예패원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예술창작의 영역과 예술조직의 영역, 예술교육의 영역, 예술이론의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범주로 사람중심의 미적 범주가 필요해 집니다.
문예가 본성을 가짐으로서 본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 문예운동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문예운동의 구조가 밝혀지지 않아 많은 혼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예운동의 구조 그것이 다음에 얘기하고자 하는 ‘예술문화’라는 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