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10일까지의 기록

선생님, [1] 부산 청년 2009/08/12 737
부산청년회입니다.
일전에- 8월15일날 기행가이드 부탁 드렸었는데
연락이 닿질 않아서 초조해 하고 있습니다. ^^;

글 확인하시면
010-9398-5849 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은옥 [2009/08/12] :: 이작가가 제주도에 갔는데 13일에 강화에 옵니다. 기행일정은 알고 계시니 너무 염려 마시고 저에게 연락주세요. 010-7737-1674

큰 슬픔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시우 2009/08/20 1221
또다시 찾아온 큰 슬픔앞에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바로 전날 김대중김정일의 6.15선언이 가진 유라시아 리더십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는데 다음날 들은 비보는 이 모든 것을 무상하게 했습니다.

내몸의 반이 무너져내렸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나머지 반마저 무너져내리고 마셨군요.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란 속수무책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일뿐이니…

이승만에 대한 미국의 사찰 [1] 솔향 2009/08/19 1068
해방 후 미국이 이승만 등 주요인사에 대한 사찰을 하였고 그것이 관계당국에 보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것은 미국 ‘나라’에서 수집되어 소개된 CIC관련 자료에도 일부 나오고있다. 그런데 1948년 여름 이후 이 일과 관련된 일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혹은 적어도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던 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그의 재산에 관한 것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상당한 자금을 갖고 있었고, 그 중에 일부의 출처를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4.19이후 하와이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는 일간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동시에 풍족했을 것이라고 하며 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의외로 세상에 일부 알려진 사건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한국전쟁 중 평안남도의 모 공장에서 입수된 금괴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이 금괴의 절반이 사세보 항에 입항해 정재과정을 거친 후 사라졌다고 하였고 그것이 그리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중요한 일이 있을때마다 독대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창룡, 한웅진 등으로 이어지는 방첩대(특무대) 계열, 헌병대 계열 등 군인들과 정치인, 그리고 서청의 문봉제 등 우익단체들의 핵심 멤버들이다. 이들과 그 단체들은 이승만과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중요한 시국과 국면에 해결사 역할들을 해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을 통해 이승만의 정치적 입지는 공고해졌다.
관리와 자금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다닌다. 그의 사람관리가 권력분배의 형식이 아닌 권력의 독점과 관리라는 특성을 지닐 때 이들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이시우 [2009/08/22] :: 중요한 방향제시 감사합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8월지나 9월이 되면 한번 연락드리겠습니다.

월간 마운틴에 실린 이시우 사진갤러리 김은옥 2009/08/22 1225
월간 마운틴에 실린 이시우 사진갤러리
신새벽이에 철망의 이슬처럼 오라

http://olv.moazine.com/tviewer/index.asp

김구 살해와 김성주의 피살 [1] 솔향 2009/08/24 1925
‘사단법인 독립유공자 유지계승 유족회’의 ‘ 김구암살사건과 미국’ (주소 http://www.815family.or.kr/independence/view.php?id=22)에 들어가면 김구 암살사건을 간단히 정리하여 놓았는데 그 중에 일부를 발췌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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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벌어진 백범 김구 암살사건에서 가장 큰 쟁점은 이승만 초대대통령과 미국이 이 사건에 관련됐는지 여부다. 먼저 `이승만 배후설’은

△당시 육군소위로서 암살 하수인이었던 안 두희
△사건 당시 서울지검장으로 기소를 맡았던 최대교
△구국청년단 대표 고정훈, 헌병사령관 전봉덕 및 백범 아들 김신의 증언 등이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이승만이 사건 당시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 부단장으로 암살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김성주(54년 헌병사령관 원용덕 집에 서 살해됨)를 사형에 처하도록 한 영문 메모를 보낸게 중요한 단서다.
또 암살 20일 전 친일세력의 영향 아래 있던 경찰에 의해 반민특위가 습격당하고 49년 8월말 마침내 공식해체되면서 이승만의 권력기반이 확고해지는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그러나 이승만의 정치고문이었던 로버트 올리버 같은 이는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여러 정황과 증언으로 볼 때 이승만은 자신이 직접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도록 부하들에게 암시해 암살을 부추겼을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미국의 개입여부다. 안두희는 92년 4월12일 사건의 진상을 끈질기게 추적해온 권중희에게 암살배후를 토로하였다.
△경무부장 조병옥과 수도청장 장택상 등의 소개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의 한국 책임자 (중령) 등을 알게 됐으며
△오에스에스 한국담당 장교와 안두희의 서북청 년단이 긴밀히 정보교환을 했다고 진술했다.
안은 이어
△미군 장교는 백범을 제거해야 할 `블랙 타이거’라고 부르며 넌지시 암살의 필요성을 흘렸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특히 사건 바로 뒤 존무초 대사의 보고를 통해 장례식까지의 정국과 사건의 추이를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암살사건의 내막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이승만 정부로부터 보고를 받았음을 추정케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국이 암살에 직접 개입한 증거로 보기에 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이 백범의 남북협상노선에 강한 거부감을 갖 고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적어도 암살을 예상했거나 희망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

이 중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1954년 당시 헌병대 사령관이었던 원용덕에게 살해당한 김성주(1949년 김구 암살사건 당시 서청 부단장)이다. 김성주는 왜 살해된 것인가?
김구 암살과 김성주의 피살에 대한 관계는 주로 고정훈의 발언에서 몇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주장은 사건관련자나 주변 인물에 대한 탐색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김구 암살의 흐름은 그의 말대로 흘러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구 암살의 직접적인 시행자에 대한 다소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점은 문제가 된다.
다음은 미국의 배후의 문제이다. 먼저 안두희를 통해 미국의 관련성을 끌어내려는 것과 Oss의 한국 책임자의 관련성을 유출하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시도라고 본다. 먼저 우리는 안두희가 사건발생 당시 어느 소속이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Oss인지, CIC인지, 아니면 한국 정보기관에 속해 있었는지 조차도 명확히 알고있지 못하다. 소속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두희의 불명확한 소속과 그의 진술에 의존하여 김구의 죽음을 재구성하고 지휘명령계통을 따지려 한다면, 그것은 사건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오류에 빠지기 쉽다.
미국이 관련되었다면 미군이 김구를 죽이려고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먼저 정보를 얻으려할 것이고 그것은 김구 암살의 지휘명령의 꼭지로 부터 시행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정보원을 근접시켰을 것이다. 이들이 미국인일 수 있지만 한국인일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해서는 않된다.
미국의 관련성은 ‘안’의 소속과 ‘안’을 비롯한 주변 인물의 진술에 의존하는 것보다 김구암살사건과 관련하여 “이에 대한 정보원으로서의 활동을 한 사람이 있는지”, “이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파악하면 미국의 개입의 정도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분명한 것은 이승만은 그의 일처리 패턴상 복잡한 단계를 거쳐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더욱 그러하며 특히 정적제거는 수 많은 양아들과 심복중에 한 명을 택하여 그에게 문제를 해결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위 문서에서도 나와 있듯이 사건발생 당시 김성주가 시행자의 입장에서 중요역할을 한 것은 사실인듯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누가 그 지시를 받았는지, 지시의 형태는 어떻했는지, 시행자들은 누구였는지, 이들이 어떻게 협의했고 시행했는지, 안두희는 누가 추천했는지, 사후 관리는 누가 담당했는지, 그리고 미국의 어느 기관이 이 정보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고, 어떻게 관여했는지에 대한 것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안’의 진술은 상당부분 왜곡되어 있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참고로 전쟁 전후 군에서 이승만이 양 아들이라고 부르던 사람 중에는 미군의 하우스만, 육군cic의 김창룡, 헌병대의 원용덕 등이 있다. 이들은 여순사건, 한국전쟁, 전쟁 후 혼란기에 이승만의 측근에 있으면서 중요한 역활을 했다.

이시우 [2009/08/24] :: 안두희의 증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그 증언을 교차 확인 할수있는 다른 자료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방법에 대한 의미있는 지적 감사합니다. 참고해 보겠습니다.

간디학교 이시우 초청강연회 관련 [2] 최보경 2009/08/28 848
안녕하십니까?
간디학교 교사 최보경입니다.

요즘은 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계속 공판 중입니다. 며칠 전 10차 공판 마쳤구요. 다음달 9월 22일 11차 공판이 예정되어 있답니다.

예전에 말씀드렸던 초청강연 때문에 연락드립니다.

현재 구상중인 계획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시 : 11월 6일(금)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장소 : 간디학교 강당
주제 : 평화, 인권, 통일 그리고 사진(이건 제 생각이구요. 작가님께서 정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고민은 작가님의 작품을 미리 학교에서 전시한다거나 아니면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강연하시면 좋지 않을까 하는데 어떠신지 의견을 주십시오.

제 연락처는 017-530-2015, tongiljoguk@hanmail.net 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최보경드림

최보경 [2009/08/31] ::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일시는 11월 6일로 준비하겠습니다. 주제도 작가님 말씀처럼 [유라시아체계와 통일]로 알고 있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저도 재판 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시우 [2009/08/28] :: 재판에 심신이 피곤하시겠지만 열심히 준비하시고 잘 싸워주시길 바랍니다. 강의제목은 유라시아체계와 통일정도로 했으면 합니다. 유라시아의 관점에서 통일문제를 재조명해보기정도가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보면서 강연하는 정도로 하면 어떨까요? 자료는 이 홈페이지의 평화강의실에 있는 동명제목의 글을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시우 작가님 한강 사진전을 개최하고 싶습니다. 설혜영 2009/09/15 787

이시우 작가님 사진을 함께 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드립니다.

저는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서 일하는 정책부장 설혜영입니다.

10월 11일 (일) 한강 시민 걷기대회 행사를 준비중입니다.
국정감사 기간에 4대강사업과 한강운하에 대한 문제점도 부각시키고, 서울시민들과 한강의 가치를 느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걷기행사의 마지막에는 한강운하 문제에 대한 공청회를 진행할 예정이며, 공청회때 주변에서 한강사진전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강하구 관련 사진이 대부분이실것 같은데요, 사진을 통해서 한강하구, 평화문제로 확장할 수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락처를 남깁니다.
(설혜영 016-281-0714)

그대그런 사람을 가졌는가-함석헌 [2] 이시우 2009/09/24 750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2009.9.18

처음엔 달인줄 알았는데 다시보니 심장이었다
처음엔 언덕인 줄 알았는데 다시보니 가슴이었다.

과연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가?

막막한 가을 창창한 하늘 무심한 바람 멀어진 앞산
서러운 눈물 ………

김종욱 [2009/09/25] :: 허~~~~~

임윤지 [2009/09/25] :: ………

사진작가 이시우씨, `한강하구` 주목하는까닭?오마이뉴스 김은옥 2009/10/07 65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6537&CMPT_CD=P0001

사진작가 이시우씨, ‘한강 하구’ 주목하는 까닭?
28일 저녁 창원노동회관 “평화와 통일 이야기” 강연 … “유엔사령부 어떻게?”

09.09.29 09:26 ㅣ최종 업데이트 09.09.29 15:53 윤성효 (cjnews)

사진작가 이시우, 주한미군, 유엔사령부, 휴전선, 한강 하구

“우리 몸의 중심은 어디인가.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어떤 이는 발바닥이라 하던데, 아픈 곳이 중심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도 아픈 곳이 중심이고, 세계도 빈곤 등으로 아픈 곳이 중심이다. 아픈 곳이 몸과 세상의 중심이다. 아픔과 함께 하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소외된 곳과 함께 하면 힘들기도 한데, 그럴수록 세상의 중심이 된다.”

‘평화 사진작가’ 이시우(42)씨가 “통일과 평화 이야기”를 하며 한 말이다. 1995년과 2007년 두 차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진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과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를 펴낸 그는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운동과 대인지뢰 반대운동에 앞장 서고 있다.

▲ 사진작가 이시우씨.
ⓒ 윤성효 이시우

그는 28일 저녁 창원노동회관에서 강연했다. ‘유라시아 체계’와 ‘한강 하구’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땅에서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그는 통일은 유라시아 대륙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유라시아의 ‘의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해방 이후 이승만, 김일성, 박헌영, 김구, 여운형 중에 누가 유라시아의 의제를 가장 잘 설정했을까? 이시우씨는 ‘반공’이라는 의제를 던진 이승만을 꼽았다.

“이승만은 반공의 화신이 되어 있다. 당시 반공은 유라시아 전체의 의제였다. 우리는 민주화를 겪으면서 반공을 옛날 의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민주화는 남한만의 의제였지 남북의 의제는 아니었다. 지금 이명박정부 들어 옛날 반공 의제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했던 것은 이승만을 부활하자는 것이고, 반공이다. 반공을 놓고 보면 이승만은 스승이고 박정희는 제자다. 이승만이 다시 부활한다는 것은 우리한테 큰 불행이다.”

북핵 문제도 하나의 의제로 설명했다. 이시우씨는 “90년대 미국이 핵 확산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북한은 핵을 의제로 내세웠다”면서 “김일성-김영삼 회담이 예정되었을 때 통일의 가장 좋은 시기였는데 놓쳤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에서 우선 순위로 따지면 북한은 몇 번째일까. 실제 ‘북한문제’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최하위권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아쉬울 게 없다. 그런데 ‘북핵문제’가 터지니까 외교의 1순위가 되었다. 북핵이 유라시아의 의제가 되니까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는 다르다.”

이시우씨는 “미국은 북핵문제만 해결하고 북한문제는 그대로 끝내버리고 싶어 한다”면서 “북핵문제만 해결하느냐 북한문제까지 해결하느냐가 북-미간 외교 줄다리기의 핵심이며, 북한문제까지 함께 해결하는 게 통일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 사진작가 이시우씨는 28일 저녁 창원노동회관에서 강연했다.
ⓒ 윤성효 이시우

“지금 북-미 관계는 신문에 나오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만 하고 있을 것인가. 나중에 너희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래서 이는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한을 제쳐놓고 북-미간의 문제를 해결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시우씨는 “남북교류는 결국 전략적 의제를 누가 주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10.4선언 때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남북이 꼭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해 놓았는데, 이명박정부가 이행하려고 하지 않으니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미 군사관계를 ‘한국주둔미군’, ‘한미연합사령부’, ‘유엔사령부’ 가운데 어느 것으로 보는지가 중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보수층도 주한미군이라고 하면 반감을 가지는데, 유엔사령부의 개념으로 보면 보수적인 시각에서도 반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미 군사훈련 때 진해미군기지에 들어오는 잠수함이 ‘핵’을 장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녹색연합에서 진해 기지에 들어온 게 ‘핵잠수함’이라고 사진을 찍어 공개했더니, 반대측에서는 핵을 장착한 게 아니고 핵 연료로 움직인 것인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따진 적이 있다”며 “미국에서 공개된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진해에 들어온 잠수함은 4기 중 1기 이상은 핵이 장착돼 있을 수 있다.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시우씨는 “북한이 핵 사찰을 받겠다고 나올 경우, 남한의 핵에 대해서도 동시에 사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며 “터지면 핵 피폭과 같은 효과를 내는 열화우라늄탄은 핵무기로 분류하는 게 평화운동단체의 입장인데, 그것은 수원과 오산, 청주기지에 있다”고 말했다.

▲ 사진작가 이시우씨는 28일 저녁 창원노동회관에서 강연했다.
ⓒ 윤성효 이시우

그는 ‘한강 하구에 평화의 배 띄우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곳은 군사분계선도 아니고 비무장지대도 아니다. 2005년 공사를 위해 배가 다닌 적이 있었다”면서 “인천과 강화, 파주, 계양지역 주민들이 제기하고 있는데 우리 모두가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우씨는 “제3의 서해교전을 막기 위해서도 한강 하구의 역할은 중요하다”며 “한강 하구는 철책은 한국군이 지키지만 관리권은 유엔사가 갖고 있는데, 민간인에게 개방될 수 있는 분단의 해방구가 될 수 있다. 한강 하구에 평화의 배를 띄우기 위한 준비 모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막혀 있는 통일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고민해야 하고, 막혀 있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어야 할 게 아니고 움직여야 한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무엇인가는 준비해야 하고, 유엔사령부며 평화협정 문제를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출처 : 사진작가 이시우씨, ‘한강 하구’ 주목하는 까닭? – 오마이뉴스

시 한편 이시우 2009/10/07 548
날망과 등성이

이성부

날카로운 봉우리는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사랑하기 위해
저 혼자 솟아 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저 혼자 웃음을 머금는다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어찌 곧추선 칼날을 두려워하랴
이것들이 함께 있으므로
서로 사랑하므로
우리나라 산의 아름다움이 익는다
용솟음과 낮아짐
끝없이 나를 낮추고
속으로 끝없이 나를 높이는
산을 보면서 걷는 길에 삶은 뜨겁구나
칼바위가
부드러움을 위해 태어났듯이
부드러움이
칼날을 감싸 껴안는 것을 본다

펌>강화도 기행을 다녀와서-오마이뉴스 김은옥 2010/04/05 74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62837

강화 고인돌에 ‘남북관계’ 해법 숨어있네
6·15공동선언 9주년 기념 강화도 기행을 다녀와서

09.06.24 15:26 ㅣ최종 업데이트 09.06.24 15:26 안신정 (ekrmf)

강화도기행, 안양, 이시우, 평화통일, 6.15공동선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금의 시국을 민주주의, 민생, 남북관계의 3대 위기라고 했던가. 요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다룬 기사들을 보다보면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전쟁의 공포가 슬금슬금 되살아난다. 늘 지정학적 위치로 외세침략에 시달렸다는데 언제까지 동포끼리 총부리를 들이대며 으르렁거려야 할까. 우리에게 정말 평화와 통일이란 요원한 문제일까?

그러나 우리가 만난 강화도는 그 험난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평화와 통일, 그건 쉬운 일이야’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시우 평화사진작가와 함께 한 강화도 기행(6월 21일)은 우리에게 역사와 평화통일이란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주었다.

기울어짐의 균형, 고인돌의 미학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고인돌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철학과 미학을 곁들이면 아주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세계의 수많은 고인돌 중 한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만 살짝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졌기에 더욱 멋드러진 고인돌의 비밀은 바로 모멘트(기준점)에 있다. 중심을 잡는 기준점을 모멘트라고 할 때 고인돌은 받쳐주는 돌과 상석이 기울어짐으로써 서로 균형을 잡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은 기울어짐으로 균형을 이루는 우리 선조들의 미학과 철학을 말해준다.
ⓒ 안신정 강화도

단순히 고인돌만이 아니라 통일을 상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체제와 사상이 존재하는데 이를 무리하게 내 쪽으로 세우려 하면 결국 서로 무너지고 만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의 기울어짐에 맞춰 나도 기울어짐으로 오묘한 역사적 미학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통일철학이 아닐까. 바로 그런 점이 6·15공동선언 2항의 철학일지도 모르겠다.

군사분계선이 없는 민통선

“우리는 지금 민통선 안에 들어왔습니다.”

검문소 앞에 멈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인원을 알려주는 동안 잠들어 있던 기행참가자들이 깨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왜 검문하는데?”

검문소를 통과하여 차가 출발하자 비로소 참가자들은 우리가 민통선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과 부도에 보면 군사분계선은 서해 백령도에서 끝이 나는데 이는 거짓이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군사분계선은 육지에만 있다. 따라서 한강하구와 바다에는 군사분계선이 없으며 강화도의 민통선은 아무런 근거없이 군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민통선에 불과하다. 또한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규정하는 것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바로 이시우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하여 ‘평화의 배 띄우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민간선박일 경우 한강하구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에 따라 유엔사의 ‘허가’ 없이 북녘으로 향하는 배를 띄운 것이다. 물론 유엔사는 ‘등록된 선박만 가능’하다는 논리로 이를 막아섰다.

그렇다면 항공은 어떨까? 열기구를 만들어 비행하는 것은 어떤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먼저 보수단체들이 북에 삐라를 보내는 열기구를 띄웠다고 한다. 북을 자극하여 남북관계 긴장을 고조시키는 보수단체들의 행동은 법적 문제가 없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가 평화의 열기구를 띄우는 것도 막아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는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화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면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이 보인다. 이 섬이 ‘나들섬’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 섬을 콘크리트로 발라버릴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럴 경우 북쪽과 영토분쟁, 한강상류의 홍수피해, 한강하구의 오염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강하구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분쟁의 지역으로 만들 것인가가 한반도 평화문제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셈이다.

▲ 지척의 거리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 안신정 강화도

민통선 안 평화전망대에 올라서면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 가까운 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뿐…. 그럼에도 우리는 그 강물이 마치 금단의 선인 양 멀리서 망원경으로만 바라볼 뿐 다가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강화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연미정

연미정은 얼마 전까지 민통선 안에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곳곳에 촬영금지 팻말이 서있고 군 초소도 쉽게 눈에 뜨인다. 이곳도 북녘과 지척에 있다.

한강하구를 바라보고 왼편의 논이 우리 역사에서 간척1호인 논이다. 몽골이 침입했을 당시 고려정부는 강화도로 옮겨왔다. 당시 10만 호(10만 세대)가 이주를 했다니 엄청난 인구가 강화도로 몰려온 것이다. 당시 강화도는 바다 위에 삐죽 솟은 산봉우리 사이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생기는 갯벌이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갑자기 늘어난 인구로 가장 곤란한 것은 식량문제였다. 고려정부는 갯벌간척을 결심하고 갯벌에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무수한 노력을 들여 논으로 개간을 한다. 그것이 지금 강화도의 모습을 만들었으니 강화도 그 자체가 몽골과 항쟁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역사유적인 셈이다.

몽골은 당시 유럽으로 진출 중이어서 사실 고려에 많은 병력을 집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강화에 대한 침략 의지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유라시아 정세를 꿰뚫어보면서 앞날을 대비할 사람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저 몽골은 수군이 약하기 때문에 강화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결국 고려는 몽골에 굴복했다. 연미정은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문서를 바친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분단과 대립이 반복되는 한강은 지리적으로 전쟁의 최전선이 될 운명이다. 그런 한강일대에서 전쟁을 꿈꾸는 이들의 상상력을 깨고 평화와 통일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시우 작가는 역설하였다.

▲ 연미정
ⓒ 안신정 강화도

이곳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물살이 빨라 예전에는 서울로 조공물을 나르는 물길이었다는 이곳은 배를 그냥 띄워놓으면 북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고 한다. 어느 날 배 한 척이 밧줄이 풀려 물살에 휩쓸려 북쪽으로 흘러갔다. 그 배 안에는 배 주인이 선실에 잠들어 있었다. 해군은 배 주인을 깨우기 위해 총을 쏘고 포탄을 쏘았다. 강화도 주민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쏘아대도 배 주인은 일어날 줄 몰랐다. 그런데 그 배 주인을 깊은 잠에서 깨운 것은 핸드폰이었다고 한다.

총소리도, 대포소리도 아닌 핸드폰 소리에 잠을 깬 배 주인처럼, 분단의 아픔에 마취된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것은 무력충돌이나 적대정책이 아닌 바로 조용한 평화와 화합의 실천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 연미정 곳곳에는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이 자체가 분단의 선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 안신정 강화도

노론을 통해 본 보수의 의(義) 충렬사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쳐들오자 김상용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분신폭사한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 사건으로 노론은 향후 조선시대의 주류를 장악하였고 그 흐름이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원칙을 지킬 것인가 실리를 택할 것인가 선택에서 흔히 사람들은 실리를 많이 선택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원칙을 높게 평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상용의 죽음은 큰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즉, 죽음으로 역사적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 김상용의 위패
ⓒ 안신정 충렬사

김상용의 죽음은 조선시대 가장 큰 해악이라는 안동김씨세력을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그 정신이 남긴 철학적 문학적 성과도 있다.

청나라를 거부하는 그들의 반청의식은 조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소중화’사상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정신 속에서 남겨진 문화적 유물들이 있으니 바로 진경산수화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이다. 그때까지 중국의 것만 따라하던 유교적 관점을 깨고 우리의 것을 찾고 우리의 것을 일깨운 역할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김상용은 조선시대 이래 대표적인 보수세력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의 죽음도 의였다. 그런데 조선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그의 의는 역설적으로 기득권세력의 기반을 강화시켜주고 말았다.

의란 자신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글꼴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보수는 스스로 옳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몸까지 바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나의 희생, 그것만 올바른 것일 수는 없다. 바로 우리의 정신은 정의(正義)이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희생할 것인가. 어떤 의를 지킬 것인가 사색을 남기는 곳이다.

시대담론에 대한 사색의 장 광성보

광성보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곳이다. 병인양요는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이다. 이때 당시 프랑스군을 격퇴할 임무를 받고 온 양헌수는 전등사 법당에서 결의를 다지며 기둥과 서까래에 묵서를 썼다. 그리고 그는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다. 군사적으로 보면 열세에 있었던 조선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조건은 몇가지 있었다. 우선 양헌수의 지략이다. 그는 프랑스군과 맞서기 위해 정족산성으로 프랑스군을 유인한다. 즉, 유리한 고지에서 적들을 공격할 지략을 세운 것이다. 또 당시 프랑스군이 전면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어쨌든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거둔 큰 사건이 병인양요였다.

▲ 광성보에서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 안신정 강화도

그러나 그 후 있었던 신미양요는 달랐다. 병인양요 후 5년 뒤, 강화도를 침략한 나라는 미국이었고 프랑스와 다르게 조선침략 의지가 강했다. 갯벌로 상륙이 늦어진 미군을 조선군은 밤에 기습하였으나 대패하고 순식간에 초지진과 덕진진을 내주고 광성보에서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진무중군 어재연을 비롯한 조선의 병사들은 손돌목 돈대에서 마지막 일인까지 저항하고 전원 죽음을 맞이하였다. 신미양요는 최초로 사진으로 기록된 전쟁이라는데 당시 미군측이 찍은 손돌목 돈대 조선군 주검을 보면 관군이 아닌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승패를 가름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적을 나에게 끌고와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는가, 아니면 적들이 유리한 고지로 내가 쳐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라고 이시우 작가는 해석하였다. 즉, 우리 스스로 담론을 형성하고 그 담론으로 상대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주변을 맴도는 세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

사회정치적으로 포지티브냐 네거티브냐 하는 문제가 역사적인 사건으로도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희생을 기리는 신미순의총 앞에서 우리는 근대민족국가의 완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목숨조차 바치며 싸운 그분들 앞에서 분단의 상황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분들이 죽음으로 지키고자 한 민족의 자주를 실현하는 길은 지금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길임을 새삼 느꼈다.

▲ 신미순의총 앞에서 근대민족국가 완성인 통일을 다짐하는 참가자들
ⓒ 안신정 강화도

최근 서해안에서 군사적 충돌의 위험이 높아지고 손가락질을 해도 손목을 자르겠다는 강경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물론 정부당국이 대북정책을 전환하고 다시 6·15로, 10·4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답이다. 그러나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민주주의의 소중함, 서민경제의 중요성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평화와 통일의 담론을 국민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안양본부는 지난 6월 21일 6·15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로 강화도 기행을 다녀왔다. 민통선 사진작가로 유명한 이시우 작가의 해설과 함께 만난 강화도는 새로운 역사적 해석과 평화통일의 상상력을 던져주었다.

경향신문 ‘책과 삶’팀이 꼽은 국내 7개지역 관련서 21권중 민통선평화기행 김은옥 2009/10/10 664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07171737155&code=900308

[책과 삶]휴가 배낭에 무슨책 넣고 떠날까

한윤정·김진우·김재중기자 ㅣ경향신문

ㆍ경향신문 ‘책과 삶’팀이 꼽은 국내 7개지역 관련서 21권

‘무슨 책을 들고 갈까.’ 휴가철이면 하게 되는 고민이다. “고전의 향기에 빠져보자”는 이들도 있고, “여름엔 역시 추리소설”이라는 이들도 있다. 올해 ‘책과 삶’ 여름휴가 특집에선 ‘지역색’을 내걸었다. 당신이 가려고 하는 ‘그곳’과 ‘특수관계’가 있는 책들을 골랐다.

국내 7개 지역별로, 그 지역과 연관된 책을 여행·문학·인문 세 분야에서 한 권씩 소개한다. ‘그곳’에 가기 전이나 가 있는 동안, 아니면 갔다 와서 읽어보시길.

민통선 평화기행 이시우 | 창작과비평사 = 백령도에서 고성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민통선을 따라가면서 ‘민족’과 ‘평화’의 프리즘으로 고달팠던 한국 현대사를 그렸다. 강화도의 고인돌에서 민족의 미학을 발견하고, 항몽전쟁에서 내려오는 저항정신을 되새겼다. 자유로를 따라 동쪽으로 향하면서 한강의 문명사적 의의를, 반구정과 화석정에서는 방촌 황희와 율곡 이이에 대해 공과를 생각했다.

국토대장정-분단선을 걷다’ -이시우강의 김은옥 2009/10/10 808
’2009 국토대장정-분단선을 걷다’ 기획 부산지역 대학생 동아리 ‘알통’
“분단의 현실, 대학생들 못 느껴 안타까워요”

오금아 기자 다른기사보기

2009 국토대장정-분단선을 걷다’ 기획 부산지역 대학생 동아리 ‘알통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직접 기획·진행한 통일 동아리 ‘알통’ 회원들. 왼쪽부터 황성혁, 정연수, 배동환, 전위봉씨.

2009 국토대장정-분단선을 걷다’ 기획 부산지역 대학생 동아리 ‘알통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직접 기획·진행한 통일 동아리 ‘알통’ 회원들. 왼쪽부터 황성혁, 정연수, 배동환, 전위봉씨.

“취업도 중요하고 자기계발도 필요하지만 대학생들이 분단과 통일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큰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 열린 ’2009 대학생 국토대장정-분단선을 걷다’ 행사를 기획한 남북대학생교류협력기획단 ‘알통(알면 알수록 필요한 통일)’의 전위봉(28·부산대) 회장의 말이다. 알통은 지난 3월 우리겨레하나되기 부산운동본부에서 만든 대학생 통일 동아리. 부산대, 부경대, 해양대, 동아대, 부산외대 등 부산지역의 대학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파주 임진각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318㎞ 행진

이들은 이달초 9박10일 일정으로 부산지역의 대학생들과 함께 통일 국토대장정에 참여했다. 이번 행사는 알통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통일은 알면 알수록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통일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졸업 전에 가장 도전하고픈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국토대장정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통일을 생각하는 국토순례를 생각해냈죠.”

알통이 국토대장정을 기획한 것은 지난 6월 말. 황성혁(25·부경대)씨는 “모두 3차례 사전답사를 통해 일일이 구간별 거리를 측정하고 휴식장소, 숙영지 등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국토순례단은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출발해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약 318㎞를 걸었다. 숙영지는 학교로 하려고 했지만 방학 중이라 공사에 들어간 곳이 많아서 마을회관을 이용했다. 국토대장정을 한다니까 동네 어른들이 수고가 많다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단순히 걷기만 하는 국토대장정에 그치지 않고 노동당사나 평화의 댐 등 다양한 통일 관련 시설까지 돌아봤다. 도중에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인 이시우씨 초청강연회도 열고 지뢰피해지역 주민과 만남의 시간도 가져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알통은 이에 앞서 지난 6월에는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해 ’6150 도미노를 쌓아라’ 행사를 열었다. 이것도 역시 통일 의식을 널리 전파하자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정연수(22·부산대)씨는 “3개 대학에서 행사를 가졌다. 예상외로 너무 호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통일에 거의 관심이 없어요.”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젊은이들이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취업문제 만큼 직접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단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대학생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배동환(25·부경대)씨는 말한다.

“알통을 통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대학생 통일 전문가가 많이 나오고, 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분야에서 적절한 통일 정책과 방향을 제시하는 ‘통일의 알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취업도 중요하고 자기계발도 필요하지만 대학생들이 분단과 통일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큰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최근 열린 ’2009 대학생 국토대장정-분단선을 걷다’ 행사를 기획한 남북대학생교류협력기획단 ‘알통(알면 알수록 필요한 통일)’의 전위봉(28·부산대) 회장의 말이다. 알통은 지난 3월 우리겨레하나되기 부산운동본부에서 만든 대학생 통일 동아리. 부산대, 부경대, 해양대, 동아대, 부산외대 등 부산지역의 대학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파주 임진각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318㎞ 행진

이들은 이달초 9박10일 일정으로 부산지역의 대학생들과 함께 통일 국토대장정에 참여했다. 이번 행사는 알통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 “통일은 알면 알수록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통일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졸업 전에 가장 도전하고픈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국토대장정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통일을 생각하는 국토순례를 생각해냈죠.”

알통이 국토대장정을 기획한 것은 지난 6월 말. 황성혁(25·부경대)씨는 “모두 3차례 사전답사를 통해 일일이 구간별 거리를 측정하고 휴식장소, 숙영지 등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국토순례단은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출발해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약 318㎞를 걸었다. 숙영지는 학교로 하려고 했지만 방학 중이라 공사에 들어간 곳이 많아서 마을회관을 이용했다. 국토대장정을 한다니까 동네 어른들이 수고가 많다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단순히 걷기만 하는 국토대장정에 그치지 않고 노동당사나 평화의 댐 등 다양한 통일 관련 시설까지 돌아봤다. 도중에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인 이시우씨 초청강연회도 열고 지뢰피해지역 주민과 만남의 시간도 가져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알통은 이에 앞서 지난 6월에는 6·15남북공동선언을 기념해 ’6150 도미노를 쌓아라’ 행사를 열었다. 이것도 역시 통일 의식을 널리 전파하자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정연수(22·부산대)씨는 “3개 대학에서 행사를 가졌다. 예상외로 너무 호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통일에 거의 관심이 없어요.”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젊은이들이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취업문제 만큼 직접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단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대학생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배동환(25·부경대)씨는 말한다.

“알통을 통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대학생 통일 전문가가 많이 나오고, 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분야에서 적절한 통일 정책과 방향을 제시하는 ‘통일의 알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ubSectionId=1010010000&newsId=20090817000091

장수의비결전- 이시우사진 김은옥 2009/10/10 760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57

문화연대의 도전이 장수하길 바란다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展 리뷰

2009년 09월 17일 (목) 11:34:16 안태호/객원기자 webmaster@mediaus.co.kr

언젠가 우석훈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국에 시민단체를 하나만 남기라면 문화연대를 남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사실, 이 블로그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터라 문구가 정확하지 않고 시기마저 불분명하지만, 요는 문화연대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벌여왔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거다.

하긴, 굳이 우석훈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문화연대의 역할은 대중적으로도 퍽 알려진 편이다. 대중음악 개혁과 관련한 일련의 활동들은 2004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고, 문화교육과 관련한 논의들은 2005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대마 비범죄화에 대한 요구는 현실화되진 못했지만 세간의 이목을 끌어 사회적 담론을 촉발시켰다.

▲ 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전

한미FTAㆍ한양주택뉴타운ㆍ노들섬예술센터건립ㆍ동대문운동장 철거ㆍ콜트콜텍 사태ㆍ용산참사 등에 개입하는 활발한 활동들은 문화연대를 손꼽히는 사회운동단체의 포지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광화문을 광장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돌려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고, ‘민중의 집’을 설립해 실제 지역주민들과의 진보적인 접점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전국을 돌며 나눔의 영화관을 진행하기도 하고, 문화사회연구소를 발족해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문화유산에서부터 대중문화를 거쳐 스포츠 정책에까지, 정책입안과 제안에서부터 대중적인 캠페인을 거쳐 반정부 투쟁까지. 문화연대의 활동은 그야말로 숨가쁘고 전방위적인 것이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문화연대 단독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명명된 것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고,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의도와는 상관없는 왜곡을 겪어야만 했던 사업들도 있다. 이슈에 근접해 싸우는 스타일은 ‘치고 빠지는 언론플레이용 활동이 아니냐’는 의혹 아닌 의혹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문화연대의 활동이 이전까지 문화운동이 가진 한계영역을 냉철하게 짚어내고 문화운동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화연대 활동이 10주년을 맞았다. 10년 동안 문화연대를 놓아주지 않는 고민이 있다. 물론, 문화사회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본질적인 고민이 하나 더 있다.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정부지원이 없었다곤 하지만 활동의 물적 토대는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악화일로를 걸었다.

문화사회를 계속 꿈꾸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10주년 기금마련전을 열었다.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전은 지난 13일부터 오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북촌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실, 기금전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역설적으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기획전에는 모름지기 기획에 어울리는 코드가 있고, 기획자의 심중을 읽어내는 게임이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금전은 일단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인만큼 이 ‘기획’이 제대로 드러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시제목 ‘장수의 비결’은 기획의도를 투영하는 바가 있다. 이는 문화연대가 장수하는 비결을 얻고 싶다는 이야기이도 하면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활동가들과 예술가들, 나아가 문화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어떻게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계속 꿈꿀 수 있는지를 소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연대 10년의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 역시 이 비결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임정희 문화연대 시민문화자치센터 소장은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이 “모듬살이의 윤리와 미학적 실천을 따로 분리하거나 어느 한 편만을 고집하지 않고, 양자를 접속하고 결합시키면서 다양한 예술의 길들을 만들어 오신 분들”이라고 소개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장수의 비급이다. 기꺼이 작품을 내준 작가들은 10년간 문화연대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함께 활동해 온 이들이다. 여기에는 대표나 고문, 운영위원이나 자문위원을 비롯한 회원들이 있는가 하면 문화연대 바깥에서 활동별로 연대를 표했던 이들도 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북촌미술관 역시 전시장을 기꺼이 열흘씩이나 무상으로 내줬다.

전시장을 들어서니 주재환, 김정헌, 민정기, 임옥상 등 민중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편견에서, 혹은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나는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낭만’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역사를 관통해 온 어떤 뜨거움, 현실을 응시하는 모종의 기운이 어른거린다고나 할까.

전시장 복판에 놓인 윤석남의 나무패널 작업이 반갑다. 작가가 유기견을 모아 기르는 ‘애신의 집’을 접하고 만든 수백여 개의 패널화 중 108번째 작품이다. 작가는 작년 아르코미술관 전시 전에 낱개로 파는 일이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맘이 바뀐 건지 아니면 그만큼 문화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물론, 이 역시 내 기억의 왜곡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전시장을 가로질러 끝까지 가서 방향을 틀면 사진작업들이 모여 있다. 최근 독일에서의 대규모 개인전과 유럽 순회전시로 세칭 ‘뜨는’ 작가 노순택의 작품이 걸려있다. 여성 명사들을 ‘망가진’ 포즈로 잡은 <미친년 프로젝트>로 유명한 박영숙은 여성의 신체이미지가 보여주는 색다른 가능성을 타진한다. 모퉁이를 돌면, 평화를 위한 예술활동이 법의 시비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문제적 사진가’ 이시우의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사진섹션의 막바지에선 뜻밖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가수 이상은의 작업이다. 이상은은 독특한 공간감을 보여주는 저 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는 예술가로서 이상은의 다양한 활동을 증명하는 동시에 문화연대 외연의 광범위함을 증명해준다.

만화작품도 곳곳에 출품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만화가들 역시 그간 문화연대 활동에 있어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던 게 사실이다. 이희재, 박재동, 주완수, 김광성 등 중량급 작가에서 정재훈, 김대중 조윤혜까지 젊은세대의 작품을 아울렀다.

판화에는 김준권, 남궁산, 이철수, 김봉준 등이 ‘생명’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내놓았고 건축가 정기용, 조건영 등은 건축 프로젝트와 관련한 드로잉을 출품했다. 안상수, 노네임노샵, AGI 등의 디자인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전시에는 모두 57명의 작가가 100여점의 작품으로 참여하고 있고 오는 9월 22일까지 북촌미술관에서 계속된다.

▲ 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 ‘장수의 비결’전

일궈온 성과가 폄하될 이유는 없다

문화연대 공동대표들은 전시 팜플렛을 통해 “문화연대는 문화운동에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운동에 문화적 관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전자의 목적을 위해서는 문화운동을 사회운동 전반과 접목시키려고 했고, 후자의 목적을 위해서는 문화운동이 다른 운동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화연대 10년을 돌아볼때, 문화연대가 사회운동 전반과 접목해 활동한 것만은 틀림없지만 문화가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내기에는 조금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이는 사회운동 전반의 인식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문화연대 자체역량의 문제일 수도 있다. 사실, 문화연대가 문화운동의 의제를 도발적으로 제기하며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뛰어들었지만 결국 문화운동을 사회운동과 접목시키는 데 일정한 한계를 보이면서 사회단체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연대가 일궈온 성과가 폄하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런 우려나 비판들은 문화연대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에서 나온 것이지, 질시나 냉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문화연대가 운동의 의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문화운동의 외연을 넓혀온 것이 사실인 것만이 아니라, 문화연대는 지금도 그 어느 단체보다 뜨거운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연대의 불온한 상상력과 진보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도전이 장수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장수의비결전-한겨레신문 김은옥 2009/10/10 597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5700.html

그림 보는 게 돕는 것

문화연대 활동기금 마련전 ‘장수의 비결’

문화연대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활동기금 마련전 ‘장수의 비결’을 연다. 이번 전시는 9월13~20일 서울 북촌미술관에서 열린다. ‘장수의 비결’은 문화연대가 어떻게 10년을 지속해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면면은 문화연대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와 사회의 분리가 아니라 접속을 추구해온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미술가로는 윤석남·임옥상 등이 참여하고, 사진작가로는 박영숙·노순택·이시우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여기에 만화가 박재동·이희재 등이 가세하고 건축가 정기용 등도 전시회에 함께한다. 이렇게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문화사회를 열기 위해 노력해온 문화연대의 정신에 공감하는 작가들이 다양한 세대와 장르에 걸쳐 참여했다. 나아가 문화연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시민들과 연대를 더욱 탄탄히 하고, 단체가 지속 가능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전시도 구경하고 작품도 구입하고 단체도 도울 기회다. 문의 02-773-7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