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기만화가 장진영, 미술가 김진수선생님 부부 2005/04/28

경청하기

-만화가 장진영, 미술가 김진수선생님 부부

논에 물이 가득 하다. 논은 물만을 담아 놓는게 아니라 하늘이 제 모습을 비출 거울이 되기도 한다. 논물을 보고 있노라면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과 푸른 하늘을 본다. 물댄 논안에서 천지일체의 대원융을 만난다.

도장리에도 논일이 시작되고 있다. 아스팔트길이 한동안 흙길로 변하는 한해의 두 시기중 첫 시기가 온 것이다. 일년중 제일 기분좋은 봄바람을 맞으며 지도를 말아들고 장선배 집으로 간다.

지도를 펼쳐 유라시아로부터 강화에 이르는 사연을 길지 않게 말씀드렸다.

장: “야 이거 최병수가 강화로 이사 온다고 해서, 사고 친다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벌써 사고가 쳐 졌구만. 좋아 좋은데…
중요한 일은 이주민들끼리의 벽을 넘어서는 거야. 처음 시작할 때 누구와 함께 시작하냐가 중요하거든. 이미 시작이 되면 남의 마당에 내가 왜 가서 노냐 이렇게 되거든. 안그래
전교조가 중심이 되면 학교장들은 무조건 안 할거라고 교육청도 마찬가지고. 학교장과 교육청까지 포함하는 틀로 갈꺼냐. 전교조틀로 갈꺼냐 처음에 결정을 해야지.”

이: “이일은 처음에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목표는 분명 합니다. 마을 이장님들까지 찾아뵙고 설득해서 지역주민이 주인공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강화민주평통자문회의 같은 데서도 관심을 가지시리라 생각되고 시선뱃노래 기능보유자 같은 분이 평통자문위원에 천거된 것도 무관치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치않은 원칙은 ‘지역주민이 주인공이다.’ 이거 거든요.”

장: “그럼 희정이를 끌어들이면 어떨까? 김포 군하리에 박희정있쟎아. 희정이가 풍물쟁이중에서는 그래도 서사를 채택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집어넣고 있다 말야. 그러니까 가을에 북쪽 마을 중심으로 가을걷이 굿을 하는 거야. 그럼 대개 여섯 일곱개 마을이 되나. 풍물패가 예닐곱번만 뛰면 되쟎아. 그리고 그때 미술가들도 논바닥에서 작품전시회도 하고 굿판을 벌여보면 괜챦겠다. 어차피 배가 지나갈 때 그 마을 사람들이 다 지켜 볼 것 아냐. 저것들이 배때기 부르니까 배나 타고 놀고 있네. 이러면 안되는거 아냐. 내 작품도 지금 합천에 가 있거든 그게 다 우리 동네에서 하면 되는거 아냐. 그리고 이번에 청소년문화교실프로그램도 여기랑 맞춰서 하면 좋겠네.“

김:“그러지 않아도 시우씨가 그런 내용을 가지고 청소년과 만나는 문화프로그램을 시도했으면 했어요. 면단위로 주민자치 센타가 있으니까…”

장:“결국 문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야 하는거 아냐”

장:“근데 나도 그렇고 다들 안 움직일라고 그래, 그게 문제야. 예술가들하고 한강하구 문제를 가지고 창작하자. 그러면 그건 기획전으로 가는 건데. 기획전은 사람들이 안 할려고 해. 왜냐면 자신의 예술적인 진수를 담을 수가 없거든. 나도 이제 기획전 싫어. 그래서 왠 만하면 안하거든. 그리고 강화도에 들어온 사람들은 거의 개인전급의 중견들 아냐.”

이: “당장 올해 결판을 내자가 아니라 한강하구문제가 곧 강화의 문제니까 공부도 하고 차분히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가면서 자기의 주제로 하는 것은 어떨까요.”

장: “글쎄 좋은 얘기지… 우선 논의를 해보자고. 허용철, 오영호, 김애영하고는 갯벌음악회 가지고 한번 얘기 했거든. 어쨌든 논의틀은 필요하쟎아”

이: “준비위원회 같은 것으로 가지 말고, 우선 작은 단위별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게 서로 성장하고 모아질 때 조절할 필요가 생길테니까 그때 한두번 만나는 정도가 되면 어떨까요”

김: “그래도 최소한 틀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러면 혼자다 뛰어 다녀야 되는데 너무 어렵쟎아요. 발품을 많이 팔아야 될 텐데요.”

이: “새로운 무엇을 짜기보다 기존의 모임들과 일정에 이것이 결합되어서 그 계획들도 살아나고 한강하구문제도 살아나는 그런 구조가 되는게 어떨까 생각했어요. 야단법석 평화걷기를 하면 한강하구문제뿐아니라 48국도 이야기도 하고 다른 문제도 알리면서 가는 거죠. 그렇게 걷기가 정착되는게 중요할 것 같아요”

장: “발품 많이 팔아야겠다. 일단 모이자고. 나는 4월달은 안되고 5월달 12일 정도 어때. 너무 늦나?”

이: “거기에 맞춰야죠. 그동안 한사람 한사람 찾아뵙고 의견을 경청을 하는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허용철선배 댁에 찾아가 봐야겠네요”

장: “걸어가게”

이: “여기서 40분 거리 밖에 안되는데요”

바퀴품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야 할 이유가 있다. 발품을 팔며 오가는 동안 들은만큼 생각해 볼일이 많기 때문이다. 말에는 여러 층위가 담겨 있어서 말이 곧 실천이 된다는 생각은 할 수 없다. 나의 주관 때문에 상대방의 말뜻을 오해하거나 곡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항상 판단유보상태이다. 그 결과 말귀를 빨리 못 알아듣는다. 많은 것을 유보상태로 놓다보니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처럼 자꾸 판단 속도가 느려진다. 많은 유보상태를 짊어지고서도 속도가 느려지면 안되는 과제가 있는 것이다.

대화에서 오간 말을 미결상태에 놔두지 않고 그때그때 탁월하게 정리 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그것은 때로 자신이 결의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약속할 수 있는 능력, 약속해 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약속할 결의와 능력이 없는 망설임이 말뜻을 중층화시키고 모호하게 한다. 말은 가치를 담고 있으므로 무한대로 의미 분화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말은 교환가격처럼 약속되었을 때 비로소 제 가치를 발현한다.

나는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듣지 못했는가. 걸으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