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바라던 시대에서 통일을 즐기는 시대로2006/05/19

YMCA 잡지 ‘꽃들에게 희망을’ 6월호 원고

통일을 바라던 시대에서 통일을 즐기는 시대로
사진가 이시우
(www.siwoo.pe.kr)
논어에서 공자님 말하시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하셨다. 아는 것을 지식에 비유한 것이라면, 좋아하는 것은 가치에 비유한 것이며, 즐기는 것은 미학에 견주는 비유이리라. 지식과 가치의 종합과 완성이 즐거움이니, 즐거움은 머리의 냉철함과 가슴의 열정이 몸의 리듬으로 완전히 체화된 상태임을 말한다.
통일이란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잡혀가던 시대가 있었다. 북에 대한 지식은 반공을 위해서만 유용한 것이었다. 1980년대 일어난 북한바로알기운동과 몇몇 대학에서의 북한학과의 출현은 통일에 대해 ‘일단 좀 알고 보자’는 아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케 한 시대의 현상이었다. 그리고 선구자들에 의한 투쟁으로 통일의 길이 닦여지고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통일의 열기로 거리를 달구었던 통일운동시대에 통일지상주의는 절정에 도달했다. 북한학과 대신 통일학과가 생기고 있는 것은, 북을 대상화 한 ‘알기’가 아니라 북과 함께 해야겠다는 통일 바라기로 시대의 요구가 바뀌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 모든 수고와 노력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 이르러 완전히 꽃피워졌다. 비무장지대에서 남과 북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하던 것이 엊그제의 일인데 우리는 어느새 비무장지대를 넘어 금강산으로 제주도로 오가고 있다. 서해교전으로 전쟁의 위기가 감돌던 시기조차 동해에서의 금강산여행은 계속되었고 금강산을 다녀온 사람은 보수적인 사람조차도 통일지지자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해졌다. 통일운동가만의 통일운동이 설자리가 없어졌음은 통일운동가들이 피흘려 이룩한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했지만, 통일운동가들은 이를 서운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바야흐로 통일을 아는 시대에서 통일을 바라는 시대로, 통일을 바라는 시대에서 통일을 즐기는 시대로 들어섰다. 금강산관광 전에 받는 방북교육을 통해 관광객들은 1980년대 북한바로알기운동 수준의 통일에 대한 교양을, 금강산여행의 과정을 통해 90년대 거리의 통일운동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대중의 통일의식을 돈오와 같은 깨달음으로 단번에 달성한다. 6.15시대는 통일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때문에 통일학은 통일미학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즐거움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즐기기에는 특징이 있다. 관념적인 즐거움이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만이 즐길 수 있다. 나머지는 상상이거나 추억이다. 금강산을 예로보자. 우리는 금강산 여행을 통해 통일자체를 즐긴 것이 아니라 금강산이 담고 있는 통일의 이미지를 즐긴 것이다. 왜 금강산이어야 했을까? 금강산이 민족의 명산으로, 두번이나 민족미학의 최고봉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신라시대 불교사상문화의 한 매듭을 이룬 ‘산천만다라’를 통해, 두번째는 조선중기 조선성리학에 기초한 ‘진경미학’을 통해서였다. 이제 금강산은 새로운 통일사상의 토대에서 3번째 민족 미학을 중흥시킬 대상이 될 조건을 갖추었다. 금강산미학은 즐기는 통일시대를 한차원 높게 열어갈 것이다. 통일미학은 전례없이 광대한 분야를 포괄하는 깊이와 체계를 갖는 학문이지만 인터넷 프로그램을 알지 못해도 인터넷을 즐기듯 사람들은 통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즐기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고난과 수고를 우리는 모두 거쳐왔고 이제 자랑스러운 시대를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