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지역문화운동론2009/11/19

강화미학시론을 축약하여 정리한 글로 무크지 강화시선에 올라갈 원고 입니다.

강화지역문화운동론

지역
지역은 공간이다. 한축으로는 정치,경제,문화의 통합체계이고 또 한축으로는 그것의 역사,구조, 기능이 총체화되어 있는 공간이다.
우선 공간을 이야기해 보자. 첫째로 생리적인 공간이 있다. 화장실은 아무리 집단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하더라도 혼자만의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다. 생리적 공간이 침해당하면 개인의 영역도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대인적 공간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간이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을 보면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전기줄에 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는 사람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장(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인적 공간은 문화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우리의 지하철을 보면 기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기둥을 등지고 바깥쪽을 향해 보도록 되어 있다. 원심적인 공간이다. 이에 비해 옛날의 멍석문화는 서로가 마주 바라보고 앉도록 되어 있다. 구심적인 공간문화이다. 지하철의 기둥의자는 개인간의 공간을 최대로 확장시키고 서로 간의 간격을 벌여놓는데 목적이 있다. 멍석은 개인간의 공간을 최소화 하고 서로간의 간격이 쉽게 허물어지도록 되어 있다. 전후 독일에서는 복구기간 동안 몇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도록 하였다. 그러나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같이 쓰는 문화가 부족했던 이들에겐 빈번히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이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사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 정치적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셋째, 향토적 공간이다. 단일한 문화를 갖는 마을과 이질적인 문화를 갖는 마을간에 맺어지는 관계에 따라 사회적 공간의 성격이 달라진다. 봉건시대의 공간은 지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평지를 따라 다니기 좋은 곳으로 길이 나고 바위나 산에 막히면 돌아가고 하는 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풍수지리는 봉건시대의 공간관을 대표한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신작로가 생기며 전통마을공간은 파괴된다. 공간끼리의 긴장이 생기고 이는 곧 정치적인 문제로 되었다.
넷째, 지역적 공간이다. 이는 행정구역을 훨씬 뛰어 넘는 공간이다. 영남, 호남, 서울로 나뉘는 이들 공간에 우리는 익숙하다. 나머지 군소 지역은 이 공간에서 정치적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 정치적 문제로서의 지역갈등, 지역문제는 이 차원에서 일어난다. 유럽의 지역주의(regionlism)는 이 지점에서 향토주의(localism)와 구별된다. 우리나라의 영호남 차별주의야 말로 전략적 의미에서의 지역문제이다. 이 구조를 깨기 위한 전략이 김대중정부의 지역등권을 앞세운 정권교체론이었다.
지역은 문화공간이다. 지역은 자연과 역사와 문명의 통일을 그 내용으로 한다. 자연은 생활의 조건이고, 역사는 생활의 과정이며, 문명은 생활의 결과이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문화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역은 문화공간이다. 한편 문화는 정치적 지배권의 행사에 따라 규정된다. 지역자치가 자치권력과 거의 같은 뜻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역은 정권이 행사되는 문화공간이다.
서양에서 민주주의의 어원인 데모크라시는 고대 희랍의 Demos(지역민)+Cracy(정치)의 합성어이다. 민주주의는 집단적주체로서의 데모스, 즉 전출입을 통해 거주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거주지 개념에 기초한 지연공동체에 기초한다. 이웃사촌이란 정확한 데모스적 인간관계를 말한다. 따라서 거주지보다 출생지에 대한 정치적 귀속성이 우세한 사회에서는 진정한 데모스와 데모크라시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강화의 오랜 문제중의 하나인 원주민에 의한 이주민의 배타는 거주지가 아닌 출생지를 앞세우는 관념이며,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데모스는 형성되기 어려운 것이다. 300년 전부터 강화에 살고 있는 사람은 300년 된 이주민일 뿐이며, 한 달전에 강화로 이사 온 사람은 한 달된 원주민이라는 데모스적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강화사상미학-자득과 조화
강화역사를 통해 나타난 미학정신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인간주체의 자각을 바탕으로 당대의 거대담론들을 통합,조화시켰다는 점이며, 이같은 자득정신이 사회적으로 표출될 때에는 농민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개혁하려는 논리로 발전되었다는 점이다.
강화에 출현한 사상,미학의 역사에서 단연 으뜸은 이규보이다. 이규보 철학사상의 특징은 유불선 삼교융화에 있고, 삼교융화사상의 기저에 민족고유사상이 있다. 그의 삼교사상은 인간주체의 문제를 통해 서로 회통내지 귀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규보 미학에서 표현된 인간주체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으로 농민들의 핍박한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농민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만이 아니라 사회의 주인임을 자각하는데서 빛을 발한다. 명대 양명학자의 시대정신은 자득自得과 조명론造命論의 강조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양명학을 계승하여 스스로의 미학이론을 발전시킨 인물로 동국진체를 완성시킨 이광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광사는 육경의 문장처럼 가장 훌륭한 글은 모두 실천을 통한 깨달음 즉, ‘궁행심득躬行心得’으로 자득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득에서 비롯되어야만 진시眞詩가 되고 진시가 되어야만 자기 진정眞情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의 미학사상은 문학에서의 진시와 회화에서의 진경산수, 서예에서의 동국진체가 곧 반의고주의反擬古主義에 대한 비판위에서 자득自得의 정신이 발휘된 것이라 하겠다.
자신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당대에 소통되던 사상이론을 체화하는 자득정신은 근대의 성재 이동휘선생에게로도 이어져 1920년대 독자적인 민족해방이론과 유라시아의제였던 레닌의 ‘민족.식민지테제’의 창조를 주도한다. 이르쿠츠크파가 민족의 주체적인 상황과 역량을 무시한 채 볼세비키사회주의혁명노선을 추종한 것과 달리 이동휘의 상해파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민족의 현실적 주체역량을 바탕으로 오히려 레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민족.식민지 테제’는 향후 2차대전까지 유라시아지정질서를 주도한 의제였다. 이것은 당시 중국에서 1924년 국공합작으로 귀결되고, 식민지조선에서는 1927년 신간회의 창립을 가져왔다. 한편 한국전쟁당시 강화 양민학살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강화향토방위특공대 중 유일하게 화도면에서만 학살을 막았던 화도면대장 윤성근의 행적은 이동휘의 정신계승이란 점에서 주목을 끈다. 윤성근의 아버지인 윤명삼은 이동휘와 보창학교설립운동을 함께한 동지였기 때문이다. 강화사상미학은 인간주체의 입장에서, 자득의 정신으로, 거대사상담론을 통일,조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자기주체에 대한 자득을 확장하여 사회의 생산주체와 민족주체를 고양시키는데로 나아갔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강화의 지역전략
지역문화는 7가지의 요소로 구성 된다. 1.지역사상 2.지역전략, 3.지역전술, 4.지역조직체계, 5.지역체계의 운영방식, 6.지도자와 지역주민, 7. 지역의 기술,문화적 수단이 그것이다. 이중 지역전략과 지역의 문화적 수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강화라는 지역체계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강화지역의 실질적 연관관계의 최상위체계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정묘호란 당시 연미정이 정전협상의 장소가 되었고, 다시 한국전쟁에 의해 정전의 현장이 된 것은 역사적 인과가 서로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한강하구가 지닌 지정학적 지위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저어새의 이동경로나 황사의 피해영역 등에서 강화의 동아시아적 체계에 대해 실감한다. 그러나 고인돌의 유라시아적 분포, 유라시아제국 몽골의 침략, 병인.신미양요와 한국전쟁에 이르면 강화의 유라시아적 체계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고 사유할 수 있게 된다.
유라시아체계의 토대위에서 생각해 볼 때 가장 본질적인 연관을 보여주는 곳은 한강하구이다. 사회적연관중에 가장 필연적인 관계는 법적형식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정전협정상문제는 가장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강하구생태보존지구의 설정이나, 남북통항과 교류, 통일농업, 치수관리, 유엔차원의 의제설정등 모든 문제가 정전협정에 걸려있다. 국가간 협정은 평화조약이 체결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정전협정은 국내법이 아닌 국제법의 영역이며 그 관련자가 16개 참전국을 포함, 20개국이나 된다는 점에서 유라시아적이다. 한강하구 평화의 배띄우기 행사로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상 분단의 해방구였음 확인되자, 남북간의 의제인 모래준설, 서해평화협력지대, 이명박정부의 나들섬구상등이 쏟아져 나왔고, 환경쪽에서도 저어새, 물범, 습지등 중요의제들을 부각시켰다. 이는 한강하구가 갖고 있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구조가 반영된 결과이다. 현단계 강화의 지역전략은 유라시아차원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나가는 평화전략을 우선순위로 통일을 연습하고 준비하며 궁극적으로는 건강한 환경과 생명농업의 발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전략조직으로는 한강하구라는 전략의제의 핵심인 한강하구 관할권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룰 ‘한강하구위원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강하구위원회는 유럽의 다뉴브강위원회나 라인강위원회처럼 국경하천을 공유하고 있는 남북을 포함하여 정전협정의 쌍방을 구성하고 있는 18개국이 자격요건을 갖는 국제하천관할권위원회의 성격을 띨 것이다. 또한 민간의 주도성이 인정되면 최초로 민관복합의 국제하천위원회가 탄생하게 된다. 한강하구위원회는 다양한 분과를 두어 수질, 수량, 농업, 기상, 유역관리, 항행, 문화, 관광, 교육, 군사등의 현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기구가 될 것이다. 이 기구가 평화협정체결과정에서 한강하구 관리문제를 담당할 주체로 인정받을 경우 한반도 평화협정에 공식적인 기구로 등재될 것이며 평화협정은 역사상 최초로 정부 간 조약이 아닌 민관합동조약이 될 것이다. 21세기 ‘신외교’ 개념에 의하면 민관 합동기구는 평화체제의 유지 관리의 안정성을 훨씬 강화시킨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강화지역은 기초지자체에 불과하지만 한강하구지역은 강화, 김포, 인천, 파주, 고양, 서울등 권역지자체의 성격을 갖는다. 한강하구를 통해 지역차별의 소외지역이었던 각 지자체가 정치,외교적 단위의 지자체로 격상될 것이다. 평화조약상의 ‘한강하구위원회’가 전략조직이라면 이를 준비하고 실험하기 위한 ‘한강하구준비위원회’는 평화조약 체결 전까지 전술조직으로 역할 할 것이다.

강화의 지역문화운동
지역본성 실현의 최종형태는 문화이다. 어떤 전략, 전술, 지도자, 조직체계도 그 자체로서는 아직까지 가능성일 뿐이다. 그것이 힘을 얻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지역본성을 생활양식으로 즉 문화로 체득했을 때이다. 지역문화운동의 특성상 강화의 공간을 새롭게 재창조할 필요가 있다. 강화에서조차 변방이었던 한강하구를 중심으로 유라시아체계를 상상하고 주도할 공간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자득과 조화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이규보, 함허대사, 강화학파, 이동휘등을 재조명하여 이들을 사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창조하고 이를 한강하구를 중심으로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그 방식으로는 나들길을 공간적으로 확장하고 그 정신을 걷기명상으로 심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문화조직측면에서 보면 현존하는 강화문화원, 강화역사문화연구소, 조봉암기념사업회와 거론중인 강화양명학연구소, 관심이 모아져야 할 이동휘기념사업회등을 지원, 설립함으로서 이규보, 함허, 강화학파, 이동휘, 조봉암등에서 나타나는 자득과 조화의 정신을 심화시켜 나갈 역사문화조직이 정착되면 좋을 것이다. 한편 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처럼 한강하구의 유라시아적 성격을 체득해 나갈 수 있는 문화행사와 생명평화교육프로그램의 개발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문화운동의 핵심이 될 예술가의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정책의 기조가 강화되어야 한다. 예술가 또한 강화의 사상미학을 계승하고 창조하는 일에 주도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지역브랜드도 새로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브랜드는 지역사상과 전략, 전술, 조직체계와 운영방식의 변화까지 가져올 문화적, 미학적상징이다. 현재 강화군의 브랜드명인 ‘비타민 강화’는 ‘섬 전체에서 느껴지는 자연에너지가 품고 있는 열정, 기상등이 가득한 보물창고’를 의미하여 자연의 섬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명품자족도시등의 전략제시와 고품격농산물공동브랜드 개발이나 강화 전체의 경관디자인 작업등이 추진되어 왔다. 가치는 역사적 통찰력과 철학적 지혜가 민감하게 표출되는 주제이다. 따라서 지역의 가치제시는 지역사상과 미학으로부터 근거할 때 지속성과 감동을 제공할 것이다. 비타민강화는 매우 공들인 브랜드이고 공유되는 바도 크다. 그러나 강화군이 제시한 자연의 생기는 생활의 조건일 뿐이다. 생활의 조건인 자연을 인간이 주체화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동시에 포괄하는 개념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화는 인간주체에 의한 자각과 실천, 자득에 의한 거대담론의 조화와 통합이라는 사상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자득과 조화’로 가치를 압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두가지 브랜드명을 생각해 본다. 하나는 ‘아하! 강화’(Aha! Kangwha)이다. 아하!는 자각의 탄성이자, 강화의 자연과 역사에 대한 감탄사이며, 갯벌에서 유라시아체계까지 강화가 가진 끊임없는 가능성을 열어가는 구호를 상징한다. 또 하나는 ‘무지개 강화’(Rainbow Kangwha)이다. 이는 일곱 빛깔 무지개가 은유하는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유라시아평화체계의 사상으로서 다양성의 인정과 관용, 이해를 상징한다. 작은 물방울과 빛의 연관이 창조하는 거대한 아름다움이 나란 주체가 유라시아의 주체로까지 확장 될 수 있는 통합과 조화를 상징하며, 하늘에 남지 않고 언제든지 사라진다는 점에서 관계에서 연유하되 집착하지 않는 혁신을 상징하며, 지금.여기의 구체성을 강조하며, 창조와 혁신의 창신성을 추구하는 의미를 담는다.
지역문화운동은 예술운동만이 아닌 지역사상과 전략으로부터 생활양식에 까지 이르는 방대한 운동이다. 강화는 지역의 규모에 비해 사상미학적 자산과 유라시아의 지정학체계까지 아우르는 놀라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지역문화운동은 상상력을 회복하고, 상상이 역사와 만나 희망을 만들게 하며, 희망이 전략을 만나 전망을 만들게 하는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