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쟁 가능성2004/03/01

한반도 전쟁 가능성
이시우

미국의 세계전략
9.11은 미국의 90년대 예방적 방위전략의 종결과 응징전략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냉전과 같이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방위 위협에 대한 인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대칭적인 냉전시대와 다른 것은 비대칭적인 열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지배전략을 추구하고 잇다는 점이다.

반테러전략과 지정전략의 관계
2차대전당시의 지정전략은 냉전으로 의미가 약화됐다가 냉전의 해체와 함께 본격화 되었다. 이러한 지정전략은 국가를 구성단위로 전제했다. 그러나 반테러전쟁은 대칭전쟁에서 비대칭전쟁으로, 지정전략에서 비지정전략으로의 변화를 예고했으며, 전쟁의 주체도 국가에서 단체로 그 범위가 확산시켰다. 그러나 아프간전쟁이후 지정전략은 포기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 아프간전쟁에서 내건 세가지 목표는 1. 빈라덴 체포 2. 알카에다 해체 3. 아프간 전복이었다. 이중 1,2는 반테러 전쟁의 성격을 잘 보여주지만 3은 지정전략적 목표로 파웰과 나머지 전쟁결정자들의 논쟁 끝에 파웰의 양보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중 본질적 목적인 1, 2는 달성하지 못하고 부가적 목적이었던 3만을 성공하고 전쟁을 일단락지엇다. 그 뒤 이어진 악의 추축국 발언은 미국의 전략이 실제로는 과거의 지정전략에 상당부분 묶여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본토방위 중시와는 달리 세계전지역에 미군을 파견하여 확전을 획책하는 상황은 공화당이 그토록 비판햇던 클린턴의 무분별한 개입주의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다.
반테러전은 2차대전후 세계적 정당성을 확보한 민족해방운동, 민주적 저항운동을 테러로 규정하는 언술적 마력을 발휘하고 잇다. 이에대해 무장, 비무장 평화세력은 크게는 ‘테러’에 대해 ‘평화적 저항’의 개념을 발전시켜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또한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미국의 지정전략에 대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미국의 유라시아 지정전략에서 중동과 한반도의 가치
악의축으로 지목한 세나라에 미국이 실제 적용하고 잇는 혐의는 WMD이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은 이미 인도가 두차례 실험에 성공했고 중국도 본격개발을 선언햇다. 위협의 강도나 현실성의 면에서 세나라보다 더한 나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나라가 지목되는 것은 테러라는 명분과는 달리 지정전략이 더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악의 축 국가는 반테러를 명분으로 한 미국의 지정전략의 대상이란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 나라의 지정전략적 가치는 각각 상이하다.

이라크
이라크는 이미 지정학적 추축도 지정학 게임의 참가자로서도 의미를 상실했다. 반테러라는 비대칭개념이 자의적으로 적용되면서 걸프전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라크 전쟁은 추진되고 있다. 이는 걸프전 종전의 실제 결정자였던 파월과 그 반대파의 대립에 연유한다. 후세인 제거를 전쟁목표로 본 사람들에 대해 파월은 서둘러 전쟁을 종결하면서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전쟁을 할려면 유프라테스문명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에도 지금도 보스니아나 코소보처럼 이라크도 미국의 유라시아 지정전략의 주요 당사자는 아니었다.

이란
이란이 현시점에서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아제르바이잔 때문이다.
90년대 독일의 통일이후로 유럽에서의 지정학의 축은 우크라이나였다. 이는 우크라이나 페르보마이스크의 구소련 핵무기처리를 둘러싼 헌팅턴식 견해와 미스마이어의 견해의 충돌로 드러났고 결국은 헌팅턴식 논리에 따라 넌루가 프로그램에 의한 핵무기철수가 완료됨으로서 일단락 되었다. 그 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성공적으로 견제했고 97년 이후 미국은 동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추축국이 아제르바이잔이다. 아제르바이잔은 흑해와 카스피해를 끼고 있으며 유전을 비롯한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서방세계가 진출을 노리는 나라이다. 더구나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이 서방에 자원을 쏟아놓는 병마개의 역할을 하는 요충지이다.
아프간전쟁의 지정학적 고려도 카스피해의 중심인 아제르바이잔을 축으로 하는 파이프라인과 연관이 있다. 9.11당시 러시아가 반테러 연합에 참가한 것은 체첸분쟁에 대해 미국이 묵인하기로 이면합의 했기 때문이었다.
미-아프간전쟁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미국의 자승자박이었던 셈이다. 이 자승자박을 풀기 위해 ‘악의축’에 이란이 포함된다.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영향력에 필사적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국이 직접 러시아와 싸울 수는 없다. 한편 이란은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할 경우, 이란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아제르인들의 독립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것을 염려하고 잇다.
9.11이전까지 이란은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지역의 다양성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란은 페르시아만의 동쪽 연안을 지배하고 있으며 미국에 대한 이란의 적개심과는 상관없이 이란의 독립은 러시아의 장기적 위협에 맞서 페르시아만에 걸린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장벽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란이 직접 지정전략 게임의 참가자로 나서지 않을 때의 얘기다.

미국에 대한 이란의 적대감은 테헤란으로 하여금 적어도 전술적으로나마 친모스크바적인 성향을 띠게 할 것이며 이러한 경향은 아제르바이잔의 독립이 이란 자신의 결집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인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브레진스키.거대한체스판 P178)

9.11이후 이러한 상황은 도래했다.
결국 미국의 이란에 대한 지정전략은 아제르바이잔을 염두에 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러시아를 염두에 둔 것이다. 때문에 최근에 나타나고 잇는 흐름처럼 미국이 그루지야에 직접 개입하여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막으려는 시도가 성공한다면, 또는 미러합의에 의해 카스피해 유전과 천연가스의 공동개발이 실천된다면 이란의 지정전략적 가치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한반도
미국에게 있어 남은 극동지역의 지정학적 추축이다. 남이 미국과 맺고 있는 밀접한 관계는 미군이 일본에 대규모로 주둔하지 않고서도 일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주며, 따라서 일본이 독립적인 군사강국으로서 성장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통일 혹은 중국영향권으로의 편입등으로 말미암아 남한의 지위가 변화하면, 극동에서 미국의 지위 역시 크게 변화할 것이고 일본의 지위도 마찬가지로 크게 변화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후 고양된 통일분위기는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핵심요소이다.
서반구와 달리 극동에서는 남이 후퇴할 경우 남한을 대신할 지정학의 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과 함께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군사대국화의 길로 들어설 것이고 대만의 중국에 의한 통일분위기도 더욱 가속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라시아대륙의 서쪽과 동쪽의 차이이다. 서반구의 지정전략은 2차대전 후 계속 변화되어 왔다. 독일에서 우크라이나로 우크라이나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만약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통제권에 들어갔다면 지정학 축은 폴란드가 됐을 것이다. 이에 비해 극동의 일본과 남과 대만에서 2차대전후 50년간 지정학적 축은 변함 없이 한반도였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이러한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동에서 미국이 전술적으로 밀리면 곧 전략적으로 밀리게 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가 초긴장상태이면서도 총성이 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북에 대해 11가지에 이르는 외교군사적, 경제적 제재를 가함으로서 총성없는 전쟁을 수행해 왔다.
북을 악의 축으로 포함시키게 된 명분은 반테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북과의 전쟁에서 베트남전 같은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군사적 준비가 완료됐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미국의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 5027의 변화
50은 태평양사령부, 2는 한반도, 7은 작전번호를 뜻한다. 소련에 의한 홋카이도의 피침을 상정한 작전계획은 5051, 일본은 5052, 중동은 5053, 그러니까 아프간전쟁은 5053에 따라 전개된 것이다.
70년대 중반이전에는 북한의 남침에 대해 불가피할 경우 서울을 포기하고 서울 이남지역으로 후퇴했다가 미 증원군이 투입되면 단계적인 반격을 펴 휴전선 이북지역으로 격퇴한다는 소극적인 개념이었다. 남측이 이에 대해 서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미측에 여러차례 강력하게 건의했었다. 월남전 패망을 계기로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북한의 진격을 반드시 고려하고 서울 이북지역에서 방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군부는 레이건행정부와 와인버거국방장관을 만나면서 비약의 시기를 맞는다.
80년대 들어 한­미작전계획은 북에 대해 더욱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일부의 비판과 미국의 공지전개념(Air­Land Battle)을 수용함에 따라 보다 공격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북이 선제공격을 해옴과 동시에 공군기와 특수부대를 동원, 이북지역의 주요시설물을 공격하고 미 본토에서 대규모 증원군이 도착한 뒤 반격작전을 펼 때에는 대규모 상륙부대를 이북 후방지역에 상륙시켜 큰 타격을 가한다는 내용이었다.
84년 팀스피리트연습에서 핵전쟁이 시험되고 이 공격적인 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에 배치한 핵전쟁용 전력을 강화했다. 이와 관련한 정보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8군 내부의 전화번호부에는 주한 「계획­작전 핵부대」가 게재됐었다.
한미연합사가 이같은 응징보복전략을 「작계5027」에 포함시킨 것은 87년쯤이지만 그전엔 공개되지 않다가 북­미 핵협상이 교착되고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면서 일부 내용이 미언론에 간헐적으로 보도되었다.
걸프전을 통해 월남전패배의 늪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군부의 체계가 완성되면서 일대변화를 맞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핵정책의 포기다. 즉 겁이나 주다가 써보지도 못하는 핵대신 현실적인 재래전략의 채택한 것이다. 걸프전승리를 통해 군부의 재래전중시사상이 확인된 것이다. 중심인물은 자의든 타의든 파월이 되었다. 91년 전술핵철수 선언이 있었고 이 계획은 수정되는데 이때 5027의 쟁점은 어느정도까지 북을 공격할 것인가 하는 ‘목표’ 문제였다. 한국전과 같이 중국의 참전여부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신중을 기하는 문제였다.
이 「목표」 문제는 지난 90년 리스카시가 한­미연합사령관에 취임한 뒤 한­미작전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면서 제기되기 시작, 한­미군간에 협의가 시작됐으나 한때 양국이 의견차이를 보이다 결국 양국은 지난 92년 평양을 점령 또는 고립시키고 평양 이북지역의 진격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결정하되 북한정권을 붕괴시킬 정도로 공격, 한국주도의 통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합의에 이른다.
한­미 양국이 약 1년간의 연구 검토 끝에 93년 수정한 이 작전계획에 따르면 신속전개억제전력(FDO;FlexibleDeterrenceOp­tion)개념과「전투력증강(FE;Forc­e Enhancement)」개념을 구체화 한다. 「신속전개억제전력」은 외교적인 조치를 포함하는 다소 광범위한 개념인데 비해 「전투력 증강」은 군사적인 면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예방 조치다. 핵대신 발달된 조기경보수단으로 전쟁을 미리 예보하고 단계별로 증원군을 파견한다는 것이 이 수정계획의 핵심이다. 이것은 94년 6월 전쟁위기때 시험을 받게된다.
가상의 한국전쟁 시나리오에서 북한측 역할을 맡아온 미국방부의 아시아 군사문제 전문가 폴 고드윈은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북은 1. 서울점령후 평화적인 타결을 모색하거나 2. 서울을 우회해 속전속결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두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이 어느 쪽을 택하든 미국은 24∼72시간의 여유밖에 없어 걸프전 때와 같은 신속한 군사적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에따라 북에서 걸려온 카터의 전화와 함께 전쟁시나리오는 마지막 순간에 포기됐다.
한미 양국군은 95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에서 이 「전투력 증강」전략을 시험, 「신속전개억제전력」의 경우보다 많은 전폭기 등을 한반도에 전개해 북의 가상남침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훈련을 했다.
96년은 국방예산저하와 군축압력과 함께 페리의 군개혁프로그램이 진행되던 시기로
주일미군의 주력부대인 오키나와 주둔 제3해병원정군(기동전개부대·제7함대 소속)의 성격이 전선전투에서 후방지원쪽으로 변화했다. 대신 존 틸럴리사령관에 의해 TMD가 추진되기 시작한다.
99년 코소보 전쟁과 연이은 서해교전을 계기로 군부에선 클린턴의 윈-윈 전략폐기 움직임이 가시화된다. 미국은 북한이 화생무기 공격을 감행할 경우 핵무기로 대응한다는 신핵전략을 채택한다. 마침내 부시 정부하에서 2001년 미 국방부는 ‘윈윈’(win-win)전략을 수정·폐기함으로서‘작전계획 5027’의 전면적인 수정을 예고하게 된다. 그 내용은 진행과정에 있고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가까운 장래에 미국이 관련되는 대규모 국지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 중동이 아닌 한반도를 꼽고 있다. 또한 럼스펠트는 시나이에 주둔하는 미군을 감축하고 북의 갱도공격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지하침투용 핵탄두 개발을 지시했다. 5027이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받을 경우 한반도 전쟁위기설은 미국언론의 흐름과 관계없이 미군에서 내재적으로 준비되는 실체가 될 것이다. 즉 TMD와 신핵전략등 현재 급속히 추진되고 있는 미군의 군사적 우위가 달성되면 한반도 전쟁은 현실화 될 것이다.
더구나 2003년은 북미제네바 합의의 시효년도 이다. 내년 10월까지 미국이 북에 경수로건설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북이 핵개발을 해도 미국은 뒷짐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또한 올브라이트 방북시 대륙간 탄도미사일실험도 2003년까지로 보류되어 있다. 2003년의 정세는 시한을 정해놓은 대립이란 데에 이전의 위기와는 다른 차이가 있다.
미국의 내재적 목표의 변화와 북미 관계의 제한된 선택 가능성은 전쟁 아니면 통일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결론날 수 있다. 타협과 양보의 중간지대가 협소해지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은 이 어려운 선택 앞에서 결국 평화의 길을 택했으나, 부시는 전쟁의 길을 택할 가능성을 비상히 높여가고 있다.
우리에게 문제는 전쟁과 평화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전쟁의 가능성을 평화의 가능성으로 뒤 돌릴 수 있는가에 있다.

200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