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진스키의 거시적 국제전략론 이시우 2004/07/17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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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본 · 중국 ‘삼각 군사협의회’ 구성해야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시적 국제전략론
6년 만에 나온 새 책에서 브레진스키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한 동북아시아 정세의 긴장에 그 나름의 거시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미국·일본·중국 3국을 축으로 한 동북아 지역의 안보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유라시아대륙 전체로 확대개편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비현실적인 제안 같지만 다자주의적이고 장기적인 전망에서 미국의 대외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요약정리/국방저널 편집실>
미국 국제정치학계와 워싱턴 정가에서 헨리 키신저에 견줄 만한 비중을 지닌 인물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다. 현재 워싱턴의 영향력 큰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센터(CSIS) 고문인 브레진스키는 올해 3월 ‘선택: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 이끌어갈 것인가(The Choice: Global Domination or Global Leadership·242쪽 분량)’란 책을 펴냈다.
여기에는 지난날 제임스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1977∼81년)을 지낸 브레진스키다운 거시적인 전략가로서의 분석이 담겨 있다.
책의 주제는 ‘초강국인 미국이 현재 부딪힌 국제 전략적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다. 이 책에서 브레진스키는 ‘부시독트린’으로 대표되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브레진스키는 키신저와 마찬가지로 강국들 사이의 세력균형을 중요시해왔다. 그가 1998년에 펴낸 ‘거대한 체스판(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은 서유럽,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를 포함하는 유라시아대륙 자체를 미국의 국가이익이 시험받는 ‘거대한 장기판’에 견줬다.
21세기 초 미국의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미국은 매우 독특한 역설(paradox)에 부딪혀 있다. 가장 강하면서도 맞설 상대가 없는 유일 초강국이지만 여러 적대적인 세력으로부터의 위협이 갈수록 커가는 그런 역설이다. 미국의 경쟁 맞수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질투와 분노, 그리고 어떤 세력에는 강한 적개심의 과녁이 됐다.
핵심적인 문제는 미국이 올바르고 효과적인 대외정책을 펴느냐에 달렸다. 궁극적으로 미국이 부딪히는 대외정책 안건의 핵심은 ‘무엇을 위한 패권인가?(hegemony for the sake of what?)’로 모아진다.
미국이 지구촌 구성원 다수의 이익을 위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려 노력하느냐, 아니면 미국만의 이익을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느냐다.
초강국 미국이 부딪힌 역설
9·11테러로 국제관계는 큰 영향을 받았다. 9·11테러가 세계를 바꾼 게 아니라 미국이 9·11테러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계는 9·11테러 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이 전통적, 집단적인 안보장치들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걱정한다.
민주주의 우방국과의 안보협력을 새로운 반(反)이슬람 전선으로 갈음함으로써 미국의 장기적인 이해관계가 보장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부시의 일방주의 대외강공책은 미국을 외로운 성채 안에 갇힌 국가(fortress state), 또는 테러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요새국가(garrison state)로 만들어가고 있다.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WMD)가 결합하는 것은 참으로 위협적인 구도다. 그러나 ‘악(evil)’이란 애매하고 추상적인 공식을 내세워 미국 혼자만으로 그 같은 결합을 막을 수는 없다.
우방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부시 행정부의 접근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런 문제가 부시 행정부 주장대로 국제적 이슈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특정 지역의 이슈와 깊이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은 흔히 ‘국제 테러리즘’에 대해 말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특정 지역의 문제에서 비롯된 증오가 더 본질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WMD 확산이나 국가 테러리즘도 국제적인 사안이 아니라 지역적인 사안이다.
같은 논리에서 북한 핵무기 개발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려면 동북아시아라는 지역적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중·일이 개별 또는 집단적으로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위기를 풀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의 변화가 중요하다. 미국의 안보보호령(security protectorate)으로서의 일본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군사력을 지닌 일본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대규모 군사작전이 가능할 정도로 일본 육군을 키우자는 얘기는 아니며 ▲첨단 군사기술로써 미국과 방어체계를 공유하면서 ▲공군력과 해군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일본이 특수작전에 투입될 정예 기동타격군(elite strike force)을 양성한다면 지구촌 평화를 위해 파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 군사력 증강은 자위(self-defense)로 역할을 좁힌 일본평화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와 아울러 지금껏 이따금씩 비공식적으로 이뤄져온 미·일·중 사이의 국방 교류를 강화하고, 공식적인 삼각군사협의회(triangular military consultation)를 정기적으로 소집해야 한다.
상대국의 국방 전략에 대해 물어보고 안보와 관련한 서로 간의 걱정을 더는 과정에서 미·일·중 3개국은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3국은 보다 광범한 동북아 지역 안보 이슈들을 다루게 되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이 군사협의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반도 안보문제와 관련, 남한과 북한의 군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밀어붙여온 핵개발문제는 결국 한반도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끼리 다각적인 협력을 통해서만이 평화적으로 풀 수 있다.
위와 같은 협력적 지역 군사협의체가 없다면 두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사항만이 남는다.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인정한다면 일본이 미국의 안보 우산에서 뛰쳐나와 (핵개발을 비롯해) 그 자체의 국방력을 키우기 위해 서두를 것이다.
만약 미국이 일방적인 군사행동에 나선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말미암아 뒤로 미뤄졌던 한반도 전쟁이 드디어 터지는 결과를 낳고 동북아 지역 전체가 위기에 빠지고 만다.
“일본, 평화헌법 안에서 군사력 키워야”
북한 핵개발은 동북아 지역의 효과적인 협력관계가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를 재는 리트머스(litmus) 시험지가 됐다. 미국이 동북아 지역의 협력관계 구축에 실패한다는 것은 (북한은 물론,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에 자극받은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의) 핵무기 확산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지역 긴장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럴 경우 사태는 심각해진다.
만일 동북아 지역에서의 안보협력이 잘 이뤄진다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발전적으로 개편해 유라시아대륙 전체로 그 활동을 넓힐 수도 있다(OSCE는 1973년 CSCE, 즉 유럽안보협력회의라는 이름으로 발족돼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사이의 대화창구를 맡았었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뒤인 1994년 이름을 OSCE로 바꾸고, 나토 비회원국 지역의 안보협력을 맡아왔다. 1995년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뒤 1999년 코소보전쟁 뒤에 치러진 일련의 선거들을 주관하는 등 유럽의 안보협력과 분쟁조정 역할을 맡아온 국제기구다-역자 주). 비록 주어진 역할에 한계는 있지만 OSCE의 지역적 범위를 유라시아대륙 전체로 넓히는 것은 국제 테러리즘과 WMD 확산을 막는 측면에서 새로이 시도해볼 만한 작업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작업이겠지만 OSCE를 유라시아대륙 전체로 확대 개편하는 것은 나토를 중심으로 한 유럽 안보체계의 확대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토 회원국을 늘려나가 러시아마저 가입한다면 그 다음 단계는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유라시아 전체의 집단안보체제로 나토를 발전적으로 개편할 수 있다.
그런 날이 오기까지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동북아 지역 안정에 효과적으로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의 양해가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OSCE와 나토의 확대뿐 아니라 정치·경제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주요 8개국 정상회담(G8)’의 범위도 아시아 주요 국가를 받아들여 참가범위를 유라시아로 넓혀야 한다(현재 일본을 뺀 나머지는 모두 서방국가다). 원래 G7이었는데 러시아를 받아들여 G8이 됐지만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고 경제 강국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인도를 주요국 정상회담에서 제칠 이유가 없다. G8이 이 두 국가를 받아들여 G10으로 확대된다면 세계의 정치경제 현안을 유라시아대륙 차원에서 다루는 기구가 출범하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국제적 협력관계의 범위를 넓혀가고 제도화해간다면 한반도나 대만을 둘러싼 긴장은 수그러들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무엇보다 먼저 중국이 “남북통일이 중국에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을 내릴 때만이 이뤄질 수 있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잠재적 위협이 아니다”는 판단을 중국이 내릴 때만이 남북통일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봤듯이 OSCE와 나토, 그리고 G10 등의 발전적 확대와 개편과정을 통해 정치경제와 군사안보 측면에서 유라시아대륙에 걸친 국제협력체제를 구축해나간다면, 그래서 중국을 그 협력체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한반도 긴장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의 안보문제는 제대로 풀려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