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시사자키의 이시우인터뷰 이시우 2004/08/30 334
CBS시사자키오늘과내일 토요초대석 이시우 인터뷰
“유엔사는 해체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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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는 해체되어야 합니다”
<시사자키가 만난 사람>유엔사 해체 1차 걷기명상 마친 이시우씨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50여 일 동안 배낭 하나 메고 강화도를 출발해서 휴전선을 따라 동해안까지 걷고, 또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걸은 뒤 일본까지 건너갔다 오신 분이 있습니다. 50일 간 1500km를 걸으면서 명상을 했다고 하는데요. 혼자 조용히 걷는 길 앞에 붙은 화두가 남다릅니다. 그 제목은 ‘유엔사 해체’입니다. 1차 유엔사 해체 걷기 명상을 마치고 돌아온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 《이시우씨》를 만나보시죠.
◎ 사회/정범구 박사>언제 떠나셔서 언제 돌아오신 거죠?
◑ 이시우>6월 20일에 출발해서 8월 13일에 돌아왔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코스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이시우>강화도를 떠나서 민통선을 따라 동해 쪽으로 고성까지 갔습니다. 그것은 유엔사가 관할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그렇게 했구요. 다시 고성에서 부산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길이 한 달 정도 걸렸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괜찮겠습니다만, 저도 70년대 초에 무전여행을 하다가 간첩으로 몰려서 화천에서 신고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까?
◑ 이시우>한번 있었습니다. 강원도 화천을 지나갈 때였는데 구멍가게에서 서울에 공중전화로 전화를 한 일이 있어요. 구멍가게를 나와서 한참 걸어가고 있는데 경찰과 군부대 정보과 차가 제 앞을 딱 가로막아 서면서 저를 세우더군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저 아래 구멍가게에서 무슨 내용으로 어디에 전화를 하셨습니까?” 하더라구요. 아마 가게 할머니가 신고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간첩으로 한번 오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경찰하고 군 정보기관에서 나왔을 때 어떻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까?
◑ 이시우>유엔사 해체를 위해 걷고 있다고 자세한 설명을 다 드렸죠. 그랬더니 ‘아이고, 훌륭한 일 하시네요’그러더라구요(웃음).
◎ 사회/정범구 박사>우리 사회가 정말 많이 나아졌습니다. 옛날 같으면 우선 다짜고짜 연행을 한 다음에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그러면서 시작을 했을 텐데(웃음).
유엔사 해체 1차 걷기를 마쳤다고 하시는데, 다시 2차가 예정돼 있습니까?
◑ 이시우>원래는 1, 2차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계신 분들은 유엔사의 후방기지가 일본에 7개나 있고, 또 자위대가 유엔사에 의해서 한국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무척 놀라워하시더군요.
그래서 이 분들이 10월 정도에 같이 결합하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그런데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려면 유엔사 정문 앞에 가서 구호를 외치던지 다른 사람들과 세미나를 하거나 토론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혼자서 묵묵히 걷는 것으로 유엔사 해체 문제를 고민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왜 이 걷기 명상이 필요했는지 설명해 주시죠.
◑ 이시우>우선은 유엔사 해체라는 문제가 원체 큰 문제라고 생각했구요. 이것을 제가 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단계인데 사물과 관계를 맺는 것을 관심(觀心)이라고 표현하잖아요. 마음을 본다고.
사물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본다는 표현이 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제 마음을 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저부터도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이 다른 사람에게도 울림이 돼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정치적 구호나 주장으로 이해가 되면 사람들의 생각과 분리가 되는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냄새가 묻어있는 문제로 다가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걷기 명상을 하게 됐습니다.
사진 이시우
◎ 사회/정범구 박사>그 긴 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이시우>한 번은 더위에 지쳐서 풀밭에 쓰러지다시피 누운 적이 있었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이름 모를 들꽃이 있었습니다. 제가 걷기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저도 계속 자문하고 있었는데 그 들꽃들은 한 뼘도 움직일 수 없잖아요.
제자리에 서서 일생을 마치지만, 벌이 날아와서 또 나비가 날아와서 자신의 분신을 가져갈 수 있도록 자신을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의 제약의 폭을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서 남들이 그것을 퍼 나르게 하고 그것이 결국 번식이 가능하도록 해서 결국 전 세계가 다 들꽃으로 덮이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발로 걷고 구호를 외치지 않더라도 이렇게 알려질 수 있구나, 또 퍼져나갈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됐고, 그 들꽃이 제 걷기의 아주 위험했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해 줬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이제 일본 이야기를 들어보죠. 일본은 시민운동이 상당히 다양하고, 한번 운동을 시작한 분들이 오래하는 경향이 있죠.
◑ 이시우>수염이 허연 할아버지들이 단체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오끼나와에서는 어떤 분들이 맞아주셨습니까?
◑ 이시우>오끼나와에는 그 지역에서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시는 분들이 맞아주셨습니다. 우리 경우는 그런 분들이 소수인데 오끼나와에 가보니 그런 분들이 다수더군요. 그 역사가 느껴졌습니다.
어떤 분은 아버님 때부터 기지 반대 운동을 해서 아들도 농성장에서 핵심적으로 농성을 이끌고 있는 가족이 있더군요. 대를 이어 운동하는 살아있는 역사죠. 그런 것이 참 감동 깊었구요.
한번은 오끼나와에서 어느 지역을 돌다가 너무 더워 탈진 상태가 됐는데, 가게도 없고 민가도 없더라구요. 멀리 집 한 채가 보이는데, 거기까지 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자마자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말이 물을 주세요, 일본말로 ‘미즈오 쿠다사이’란 말이었어요.
그런데 히로시마 원폭 박물관에 가보니 피폭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물을 주세요라는 말이었더군요.
그래서 평화운동이라는 것이 정말 그 물을 달라는 절박함,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오끼나와에서는 주로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 이시우>오끼나와에는 유엔사 후방 기지가 세 군데 있거든요. 카데나 공군기지, 후텐마 해병대 기지, 그리고 화이트비치라는 해병대 기지인데 가서 국기 게양대에 성조기, 일장기, 유엔 깃발이 게양된 것을 보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사진 이시우
다른 기지는 보통 성조기와 일장기만 걸리는데 오끼나와 분들도 그것을 잘 몰랐더군요. 유엔사 깃발이란 것도 몰랐고, 그냥 군대 깃발 중 하나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유엔 깃발의 의미를 설명하자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이 한국에 가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경악하는 분위기였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오끼나와는 미군 주둔의 역사가 오래돼서 그런지 일본 본토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요. 오끼나와 주지사도 대미 협상에서는 아주 깐깐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 이시우>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던 사람이 주지사가 될 정도니까요.
◎ 사회/정범구 박사>그러니까 똑같이 미군 범죄가 발생해도 오끼나와에서 흑인 병사가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에 대해서는 클린턴이 직접 사과를 할 정도였죠.
우리는 효순ㆍ 미선 사건 났을 때 사과하라고 해도 그렇게 안 했는데 말이죠. 그런 것이 단순히 한일간의 국력 차이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끼나와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그런 주민 운동이 큰 힘이 됐을 것 같은데요.
◑ 이시우>그런 것 같습니다. 국력의 문제 뿐 아니라 시민이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군 기지를 감시하는 한 단체에서는 지역 주민 감시대라고 해서 자기 동네에 망루를 만들어 놓고 망원경으로 뚫어지게 감시를 하고 있더라구요.
저희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인사를 하는데도 말은 계속 하면서 눈을 망원경에서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단 1초라도, 차가 스윽 지나가는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몇 시 몇 분 몇 초에 뭐가 왔다 갔는지 계속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치열성과 정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구나, 주지사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저런 주민들의 정성에 어긋나게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오끼나와나 일본 본토에서나 주로 평화운동을 하시는 분들을 주로 만나셨을 텐데요. 우리와 비교해 볼 때 그들에게서 어떤 점이 배울 만 하던가요.
◑ 이시우>우선은 그 장기성인데요. 나이가 들고 할아버지가 되도록 하나의 주제를 놓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것 저것 주제를 많이 옮겨 다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어떤 박사보다도 전문가가 돼 있는 단체들이 많았고, 우리 같은 경우는 교수님들이 시민사회 운동에 많이 참여하시는 편인데, 일본은 그런 것이 없더군요. 교수와 시민 단체 활동가들이 분리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성 이었습니다. 뭘 하나 잡으면 꿰뚫고 들어가서 물고 늘어지는 치열성, 이런 것은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일본 평화운동가들이 현재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뭔가요?
◑ 이시우>지금 가장 중요한 쟁점은 평화헌법 9조를 사수하는 문제입니다. 무장을 하지 않고,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평화 헌법의 가장 핵심적인 조항이죠.
그런데 우리는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사안별로 싸우잖아요. 그러데 일본은 이라크 파병 반대라든가 자위대를 한국에 파견하는 위험성 등, 이런 모든 문제를 하나로 묶어서,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다 거부해야 한다는 헌법 수호라고 하는 측면에서 능동적인 아젠다로 접근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진 이시우
◎ 사회/정범구 박사>일본에서의 활동을 통해서 유엔사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해답을 얻으셨습니까.
◑ 이시우>무척 의외의 사실들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후방 기지가 일본에 7개가 있죠. 오끼나와에 3개, 본토에는 도쿄에 3개, 사세보 1개, 이렇게 4개인데요. 후텐마라는 기지를 헤노코라는 마을에 이전하려고 하는데 헤노코 마을 사람들이 싸우고 있고 이것이 일본 평화운동의 최대 이슈가 돼 있습니다.
그런데 후텐마 기지가 유엔사 후방 기지인데 만약 이것을 철수하게 되면, 유엔사 기지 하나가 없어지는 거죠. 이랬을 때 없애고 마는 것인지 아니면 옮긴 기지로 가서 재등록을 해서 기지가 추가되는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유엔사에 직접 연락을 해서 물어봤더니 철수하게 되면 그냥 철수시켜버리는 것이지 재등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오끼나와 헤노코 마을의 농성이라는 것이 유엔사가 포함된 기지들을 하나씩 없애나가게 할 수 있는, 그런 역사를 만들 수 있는 농성이었어요. 그래서 유엔사 해체 문제가 한국에서만 싸워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 있는 분들에게도 직접 눈 앞에 와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일본 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무척 놀라워하시고,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이번에 일본에서 걷기를 하면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고 하셨는데요.
◑ 이시우>기지를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히로시마 현에 있는 캠프 이와쿠니라는 미 해병대 기지가 있습니다. 이 해병대는 한국에도 독수리 훈련을 할 때 자주 오는 그런 부대입니다. 그런데 탄약고에 화학 무기 표식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한 사항들은 나중에 정리를 해서 발표할 생각입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그리고 요코스카 기지의 키티호크 항공모함이 8월 초에 동해에 배치됐던 사실을 현지에서 확인하셨다구요.
◑ 이시우>사세보에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치열하게 망원경을 들여다보면서 감시하는 감시 운동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8월 5일 아침에 사세보에서 미군 함정 두 대가 한국으로 떠났다고 해요. 왜 갔냐고 했더니 키티호크 항모가 5일 전에 이미 동해에 배치가 돼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키티호크 항모가 가기 전에 사세보 기지에 있는 함정이 출동한 것이었죠.
이 사실은 의외였습니다. 보통 키티호크 항공모함은 한국에 훈련차 오던지 아니면 중동 같은 경우 전쟁이 터졌을 때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잠시 전력 과시용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경우였는데 이번 경우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거든요.
전혀 그런 징조가 없는 상태에서도 키티호크 항모가 동해에 배치되고 항모 전단이 꾸려져서 온다는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구체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또 한국에 배치된 요코스카 기지의 키티호크 항공모함가 이라크로 간다고 나갔는데 그것이 아닐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 거죠?
◑ 이시우>미 2사단이 이라크로 차출될 때 제가 7월 부산에 도착해서 바로 그 부두 앞에 있었거든요. 그 때 2사단 마크가 붙은 차들이 계속 8부두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때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팔라딘 자주포라는 것은 전쟁용이죠. 게릴라 들을 향해서 포를 쏘지는 않거든요. 그것은 보통 보병의 전투무기인데, 그것이 약 10대가 나갔고, 그것을 지원하는 차량들이 부산 8부두를 떠났습니다.
이것은 이라크와도 관계없는 것이구요. 미군이 우리 정부에게 알리고 있는 수준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지금 병력을 급작스럽게 이동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언론에 보도로는 10월에 열릴 한미 안보 연례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실질적으로는 병력 재배치가 이뤄지고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 명상을 50여 일간 하고 돌아오셨는데요. 유엔사 해체의 해법을 찾기 위한 걷기 명상의 의미를 스스로 평가하고 정리하신다면 어떻습니까?
◑ 이시우>유엔사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제 소망인데요. 우리 헌법에 영토 조항이라는 것이 있죠. 우리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는 조항이 있는데 1950년 10월 유엔결의에 의하면 통일 이후의 통치 주체는 유엔사로 돼 있습니다. 유엔사가 있는 한 대한민국 헌법 자체가 의미가 없는 거죠. 엄청난 사실입니다.
이런 문제를 볼 때 우리가 왜 이 문제를 이제서야 알았는가 후회스럽구요. 헌법이라는 것이 이런 일개 군사 구조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주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문제에서 저도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여러분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50일 간의 걷기 명상을 마치고 돌아오신 평화운동가 이시우씨를 만나봤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반갑구요. 오늘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진행:정범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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