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곳이 세계의 중심…평화의 가슴엔 눈물 마를 날 없다-제주오키나와평화기행 서평-통일뉴스

아픈 곳이 세계의 중심…평화의 가슴엔 눈물 마를 날 없다

<화제의 책> 이시우 사진.글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승인 2014.12.12 01:07:50

“나는 강화를 떠나 비무장지대를 걸어 부산까지 내려간 다음 일본으로 건너가 오키나와까지 두 달간을 걸으며 사색하고 또 사색했다. 이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명상은 나에게 한국과 일본, 제주와 오키나와를 세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었다.”

이시우 사진가가 전작 『유엔군사령부』에 이어 국가보안법의 뿌리를 찾아 탐구하고 여행하며 찾은 결과물을 ‘결’과 ‘어둠’, ‘눈물’의 미학으로 풀어내『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을 펴냈다.

작가는 바람결 따라 떠난 길에서 ‘빨갱이 사냥’의 뿌리인 ‘제주 4.3′을 찾았고 세상의 아픔이 있는 그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화두를 걷어 올리고 거기서 본 동백꽃의 이슬에서 눈물의 미학을 추가한다.


▲ 사진.글 이시우『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도서출판 말) 표지. [사진제공-도서출판 말]

“아픔이 있는 곳이야 말로 사회와 세계의 문제가 집중된 곳이고, 그곳의 문제가 풀릴 때 사회와 세계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아픔을 피하지 않고 끌어안고자 하는 평화의 가슴들엔 언제나 눈물 마를 날이 없다. 눈물은 아픔보다 더한 소외와 같이, 설명되지 않으나 간절한 마음으로 소통하고자 할 때 흘러내린다”는 것이다.

작가는 또 제주도에서 4.3의 사람들과 함께 폭설 속 동굴체험을 하면서 산에서 끝까지 버틴 사람들을 존경하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이해나 관용은 아픔을 이겨낸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실천이다. 그리하여 투철한 사람이 너그러운 것이다”라는 깨달음과 함께.

이 깨달음은 숨겨진 진실이 살아있는 현장으로 향하고 “투쟁의 현장에서 처절한 고민으로 잉태된 그 생각은 무조건 존중되어야 한다. 설령 자기 생각과 일치하지 않더라도”라는 것으로 심화된다.

그래서 작가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그 화두를 다듬어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할 수 있는 선정홍보자료를 만들어내는 역할만 해도 영광이다. 이 책은 그래서 쓰인 것이다. 이 책의 기조는 이미 그들이 몸으로 다 썼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제주와 오키나와가 겪은 저항과 실패, 숙명을 한 섬만의 수직적 역사로 읽는 것은 환상이었다. 그래서 두 섬을 횡단하는 수평적 구조, 즉 두 섬을 관통하는 세계체계의 사슬을 찾아내기 위한 기행이 시작된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13세기 삼별초 항쟁과 몽골제국기에서 시작해 1919년을 전후해 강렬한 저항과 실패의 시기를 주로 다루고, 현재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를 실현 할 해군기지로 건설되는 강정과 미군기지 반대투쟁의 중심에 서 있는 오키나와 헤노코를 아우른다.

작가는 삼별초의 항파두성과 우라소에 성을 살피면서 13세기 고려와 오키나와는 이미 ‘팍스 몽골리카’라는 하나의 체계에 편입됐었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제주 출신의 사회주의 논객인 김명식의 묘와 오키나와 출신으로 천황제 폐지를 주장했던 일본공산당 도쿠다 큐이치의 기념비에서는 한.일 혁명가들 사이에 강렬한 공동운명체 의식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지하진지였던 서귀포시 섯알오름에서 벌어진 양민학살과 오키나와 치비치리 가마에서 벌어진 집단자결을 가장한 학살행위에 치를 떤다.

그리고 제주 4.3무장투쟁과 미군정의 대결이 빚어낸 장면들을 찾아나서고 캠프 가테나, 캠프 화이트비치에서 오키나와에 휘날리는 유엔기가 휘날리는 이유를 탐색한다.

그러다 닿게 되는 지금 제주 강정과 오키나와 헤노코에서 작가는 미군에게 있어 오키나와와 제주는 하나의 전쟁터라는 결론과 함께 “제주.오키나와를 비롯한 전세계 민중운동은 각각의 현장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지만 초국가적 힘에 대항할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초국가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기회로 작동하도록 끝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헤노코에서 ‘유엔사 해체 명상’을 한 작가는 “세계 민중운동의 구조적인 문제는 현장의 투사는 있는데, 후방의 지휘부가 없다는 것이다. 현장의 싸움을 세계 차원에서 도와주고 보충하며 지속시킬 수 있는 토대, 병참의 토대가 부재하다. 헤노코는 세계적 모순을 봉합하고 있는 분화구이다”라고 풀어놓았다.

책은 본문만 600쪽, 참고문헌 목록만 100쪽에 달할만큼 방대하다. 책속의 사진은 사진작가 이시우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