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시우와의 평화기행 대담집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서평-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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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의 틈’, 이 말 실감합니다

사진작가 이시우와의 평화기행 대담집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

15.03.31 15:02l최종 업데이트 15.03.31 16:46l

강신천(mumu)


▲ 한강하구는 정전협정의 틈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강화도 평화전망대에서 한강하구와 유엔사, 유라시아에 대해 강의하는 이시우 사진작가.
ⓒ 강신천

“저 아래쪽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서 바다로 흐르는 한강하구 앞에 있는 섬이 우도이고, 저기 북쪽에 툭 튀어 나온 곳이 예성강 하구입니다. 저 멀리 앞에 보이는 산이 개성 송악산이고요.”

지난 26일, 이시우 작가와 함께 하는 강화기행 모임의 행선지는 강화 북단 양사면에 있는 평화전망대였다. 평화전망대에서 강의하기에 앞서 이 작가는 한강하구를 따라 펼쳐진 지형에 대해 설명했다. 손 내밀면 닿을 듯이 가까운 거리에 북녘 땅이 놓여 있었다.

나는 강화에 20여 년 살았지만, 정작 이곳에는 처음 왔다. 5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북녘들판에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삭막했으나 집들은 단정했다. 당연히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요란한 선전 문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한강하구

이날 이시우 작가의 강의 주제는 한강하구, 정전협정, 유엔사, 유라시아였다. <한강하구>, <유엔군사령부>라는 대작을 펴낸 이 작가의 강의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깊이가 있었다. 2000년과 2005년에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기획자로 참여했을 때의 경험담은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의 틈’이라는 이 작가의 말을 실감하게 했다.

“정전협정 1조 5항에는 ‘한강하구는 민간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고 되어 있어요. 한강하구는 법률적으로는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죠. 유엔군사령부도 인민군사령부도 아닌 민간인에게 출입이 개방된 한강하구는 분단의 피해자였던 민간인이 주체가 되어 냉전의 마지막 상징을 평화지대로 만들 수 있는 평화의 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강하구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런데 ‘관성’을 경계하는 이시우 작가는 철조망을 해체하고, 한강하구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그에게 한강하구는 정전협정의 틈일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의 창’이기도 하다.

한강하구에서 유라시아대륙의 레닌을 보다

남북을 마주보며 펼쳐진 한강하구의 모래톱과 갈대숲 그리고 길게 이어진 산들이 어깨를 맞댄 풍경은 아름다웠다. 이시우 작가는 남북한의 풍경에 고정된 우리의 시야를 멀리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유라시아 열차를 타고 비무장지대를 넘으라고 한다. 평양과 원산을 지나 조봉암 선생이 밀사로 달려갔던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수를 지나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서 있는 레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 2014년 8월, 이시우 작가와 함께 강화 교동향교를 답사하고 있는 기행 모임 회원들.
ⓒ 강신천

처음 그에게서 유라시아나 이르쿠츠크라는 단어들을 들었을 때 그 곳은 마치 동화에나 나올법한 낮선 세계였다. 비행기로 불과 한 시간 거리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비행기로 13시간이 걸리는 미국보다 멀게 느껴지던 곳이었다. 그런데 평양과 원산은 더 멀게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는 스스로 결박했고, 지리학적 거리감마저 권력에 의해 조종당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작가는 한강하구 너머의 유라시아 대륙을 바라보라 말한다.

“우리가 분단 사회에만 살고 있어 무감각해진 측면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우리 역사는 유라시아 체계 속에서 작동되고 있었죠. 몇 년 전 독립운동단체의 지원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을 했어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해 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가 살던 집터를 살펴보고,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 참석했던 독립운동가 김규식이 머물던 파리 시내의 건물을 바라보면서 유라시아체계에 대해 확신을 했습니다.”

나는 이시우 작가의 현장 강의를 10여 차례 들었다. 제주 평화기행도 여러 차례 동행했고, 작년부터 1년 가까이 매월 진행한 강화 평화기행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제는 그의 심도 깊은 강의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역사, 철학, 운동, 미학을 넘나드는 그의 강의를 듣는 게 수월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최근 이시우 작가의 다양한 강의 주제를 한 권으로 묶은 책이 나왔다. 강화기행 모임에 함께 하는 최진섭 전 <말>지 기자가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역사인)라는 제목으로 펴낸 이 책은 이 작가의 평화기행 안내서로 제격이다.

이시우 평화기행 안내서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


▲ 사진기는 평화를 위한 무기 ‘사진작가 이시우와의 동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 작가의 미학과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안내서라 할 수 있다. ⓒ 강신천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는 최 기자가 2011년부터 3년간 20여 차례에 걸쳐 이시우 작가가 해설을 맡은 파주·철원·양구·강화·제주 등의 기행에 동행하면서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사진작가 이시우와의 동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비무장지대, 지뢰, 미군, 한강하구, 유라시아, 헌법3조, 국가보안법, 주체사상, 제주 4·3을 주제로 한 이시우 작가의 사진과 함께 작품해설, 동행취재기가 실려 있다. 필자는 기행에 참가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시우 작가의 남다른 미학, 사진관, 세계관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람에서 대담집을 엮었다고 한다.

이시우 작가의 평화기행에 참가하는 이들이 가이드북으로 지참하면 유용한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간과 공간, 사건을 종횡으로 엮어가며 해설하는 이 작가의 강의를 한 번 듣고 다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시우 작가와 2006년부터 강화 민예총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이 작가의 세계관이나 예술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를 읽으며, 그의 사진 미학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밖에 못했음을 확인했다. 결의 미학, 어둠의 미학, 가슴의 미학으로 구체화된 그의 서정적 리얼리즘은 수십 년간의 이론과 실천을 통해 다져진 것이었다.

이시우 작가는 사진 작업 주제를 정하면 2~3년간 그 분야에 대해 “당대의 지식수준을 독파”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피사체에 대한공부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셔터를 누를 때 자기는 처음 찍는 사진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도 모르게 자기에게 입력된 이미지를 반복적, 관성적으로 누르는 경우가 많아요. 사진을 많이 찍지만, 그 사진이 그 사진인 것은 그 때문이죠. 새로운 이미지를 찍기 위해선 피사체에 대한 연구,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기에 투자하는 것보다 파사체 공부에 투자하는 것이 휠씬 가치 있는 것이에요. 그래야 새로운 이미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가의 미학은 언제나 역사적 전망과 함께 한다. 그는 분단의 외딴 섬 강화도에서 유라시아 대륙 저 너머에 있는 레닌의 손끝을 본다.


▲ 블라디보스토크의 레닌 동상 1920년 채택된 레닌의 민족식민지문제에 관한 테제는 그 후 20여 년 간 유라시에서 가장 강력한 의제로 자리잡았다. 이 테제는 당시 베트남, 중국,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이시우

“(레닌) 동상의 손끝이 가리키는 유라시아를 향해 새벽기차에 몸을 싣던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연장선이 다른 이의 그것과 한 점에서 만날 때 그것은 희망이 됩니다.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하나의 꼭짓점을 향할 때 그것은 전망이 됩니다.”

평화전망대에서 진행한 세 시간 넘는 긴 강의가 끝나니 한강 하구 모래톱이 더욱 커져 있었다. 한강 하구를 바라보며 유라시아 대륙을 떠올린 하루였다. 우리의 마음이 통일에서 만나고, 유라시아를 향할 때 그것은 어떤 전망이 될까? 혹시 우리는 5천 년 전 이 땅에 고인돌을 만들었던 사람들보다도 작은 가슴으로 통일을 꿈꾸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