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담는 작가, 이시우를 만나다 – 강원문화재단웹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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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다

평화를 담는 작가, 이시우를 만나다

권용택 / 서양화가, ‘18.9月

DMZ 248km 중 절반 이상을 접하고 있는 강원도는 그동안 분단과 통일안보관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남북 간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는 이즘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그동안 DMZ를 주제로 가장 절절하게 평화문제를 고민하고 사진 작업으로 실천해온 이시우 작가를 만났다. 그의 작품 소개와 더불어 작업 활동 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부분과 평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한다.

1. 사진작가로서 창작관은?

이시우: 우리 몸의 중심이 어딘가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그분이 자답하시길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라고 했다. 몸이 아프면 그곳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아픈 곳이 치유될 때까지는 몸의 중심이 된다. 사회의 중심도 아픔과 고통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세계도 전쟁과 기아와 빈곤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예술가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곳 중의 하나가 민통선이라고 보았다. 아픔을 함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픔을 함께하는 것을 넘어 아픔을 치유하는 작업이 예술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그런 일을 하려면 가능한 대상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90%의 공부와 9%의 실천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권용택: 우리 예술인들의 작품 태도 중 남과 다른 개성 위주의 작업 방식, 아방가르드적 표현 등이 있는데 이것은 본질을 놓치기 쉽다. 작품은 읽혀지고, 보여지는 것인데 보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부족하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모호한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아픔과 고통을 작품의 중심에 놓고 고민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평화를 담는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으신데,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시우: 평화는 단순히 전쟁 없는 상태만이라고 봐선 안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평화란, 무엇보다도 전쟁 없는 상태여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 갈등과 분쟁까지 해결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평화를 상상하는 힘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을 평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하에 평화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전쟁으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평화를 만들고, 만들어 낸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더불어 평화를 지키는데 머물지 않고 강화해야 한다. 이런 과정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은 내 안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상상하고, 만들고, 지키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일상의 평화가 흔들리면 안된다. 나도 평화를 위해 싸우다 보니 내 안의 평화가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평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논어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은 지식을 갖는 것을 말하고 좋아하는 것은 지향점을 가지고 실천하는 것을 말하며 즐기는 것은 아는 것과 행함이 체화된 상태를 말한다. 즐김이야말로 최고의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야 비로소 내 안의 평화와 밖의 평화가 일치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지금 나의 목표는 평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3. DMZ를 본격적인 사진 주제로 작업과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시기가 궁금하다.

이시우: 1993년도에 시작했다. 92년도에 대선이 있었다. 그때 크게 좌절했다. 좌절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가 여행을 권했다. 그때 간 곳이 철원이었다. 눈이 내린 벌판, 철원평야에서 철새가 북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사진에 담았다. 그 사진은 나에게 처음으로 밖의 풍경과 내 안의 풍경이 일치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마음과 풍경이 일치되는 경험이 DMZ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민통선지역을 다니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분단의 아픔이 가장 많은 곳임을 깨닫게 되었다. 민통선에 사시는 분들은 분단의 가장 큰 짐을 짊어지고 사시는구나 싶었다. 몰랐던 영역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 이 수많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UN(국제연합)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엉뚱하게 한국에 지뢰를 매설하고, 67년 비무장지대에 처음 철조망을 세우고, 고엽제를 살포하는 등의 일들이 유엔사의 작전통제하에 일어났다. 1954년 이래 38선 이북과 군사분계선 이남까지 유엔사의 점령지대로 되어 있으며 한국정부가 주권이양을 요청했음에도 행정권만 이양한 것을 알았다. 즉 유엔사에 의해 주권이 제약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민들이 겉보기에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말이다. 일상에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살다가도 이번에 유엔사가 남북철도사업을 가로막으며 튀어나오는 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비무장지대의 문제는 의외로 복잡하고 국제체계의 모순이 응어리진 곳이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일이 민족사적 일일 뿐 아니라 세계사적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4. 밖에서 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긴장이 응축 되어 있는 DMZ, 작업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이시우: UN이 만들어지고 나서 미국이 UN을 앞세워 한국전쟁에 개입한 후로 국제차원의 모순이 이곳에 집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비무장지대가 바로 세계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이 같은 현실을 사진으로 이미지화하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목표다.

권용택 : 맞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UN이 주둔하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이 남북, 북미 평화 협정 후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5. 이시우 작가님 하면 DMZ 예술창작 관련한 구속과 재판, 무죄판결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창작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의 관계는?

이시우: 창작표현이 허용된 경계선을 한 발씩 넘어가지 않으면 창작표현의 범위가 넓어지지 않는다. 분단시대를 사는 창작자가 이것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에 걸렸을 때 창작표현의 자유라는 깃발로 싸울 뿐 아니라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꼼꼼한 준비와 공부가 필요했다. 재판과정이 치열했다. 결과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아서 지금은 예술의 영역을 넓히는데 작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다루기 위한 작업을 함에 있어 대상에 대한 형상화 작업을 해야 한다. 정치적 이유로 인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학자는 이론으로 정립하지만 예술가는 현장을 체험하고 형상화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학문보다 더 치열하다.
나는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을 항상 마음속에 담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이면서 위대한 사상가가 아닌 자는 없다.” 시대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답할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우리 앞에 거대한 문제가 있는데도 그것을 없는 듯이 무시하거나 슬그머니 피해가는 자세로는 예술가의 사명을 다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권용택: 우리 창작자들에게는 민통선까지만 허용된다. 허용된 지역 외에서는 사진, 스케치 다 안된다. 그런데 UN은 헬기를 동원해서 사진을 찍어 발표했다. 우리에게 차별을 둔 것이다. 앞으로 이런 문제는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창작품, 치열한 창작품을 형상화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작가들이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6. 민통선 주민의 일상성이 궁금하다.

이시우: 겉으로는 한없이 선해 보이는 이웃 사이인데 어느 순간 갈등이 폭발할 때가 있다. 전쟁이나 폭력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의 일상에 있다. 분단체계라는 말은 객관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우리의 분단은 심리 깊은 곳에 파고들어왔고 원한체계를 만들었다. 원한관계에 있으면 이성적인 설득이 안 통한다. 전쟁의 한 가운데서 원한이 아닌 화해로 평화의 가능성을 만든 사례가 있다. 철원제일감리교회 목사였던 서기훈 목사다. 서기훈 목사가 부임할 때 철원은 38° 이북지역으로 인민군통제하에 있었다. 당시 이 교회는 반공청년활동의 거점처럼 되어 있었다. 이곳에 미군이 인천상륙작전 후 북진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청년들은 좌측 사람들을 안과 겉이 모두 빨간 토마토와 겉은 빨갛고 안은 하얀 사과로 분류해서 살생부를 만들었다. 그 사실을 서기훈 목사가 알고 그 청년들을 모아 놓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설교를 통해 청년들을 설득시켜서 살생을 막은 일이 있다. 이 같은 일이 전남 영광이나 인천 강화 등에서 거의 기적같이 일어났다. 전쟁은 적을 만드는 과정이자 죽이는 과정이다. 권력자는 민중들을 이 과정에 동원하고 민중들은 이 과정에서 상대를 적으로 체화하고 원한관계가 일상화된다.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진실로 참회하고 피해자가 그것을 포용함으로써 화해가 이루어져야 사람을 적과 동지로 나누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참회와 화해가 자연스럽게 계속될 때 원한체계를 평화체계로 만들어가는 힘이 나온다.

7. 2004년 ‘민통선 평화기행’이 한국을 대표하는 100권의 책에 선정되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출품하는 등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고 계시다. 최근 준비 중인 책에 대해 궁금하다.

이시우: 2013년에 「유엔군사령부」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1부가 UN 체계이고 2부가 UN사다. 이 책을 쓰며 국제체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새로운 국제체계에 대해 고민하며 공부하고 있다.

8. 남북화해가 진전되어 DMZ가 평화지대가 된다면 어떻게 보존되고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시우: 평화지대가 된 후의 고민보다도 평화지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평화지대가 되는 과정자체가 어렵다. 절대 쉽지 않다. 지금 비무장지대는 유엔군 사령부의 점령지로 되어 있다. 입법, 사법, 행정권 중 행정권만 돌려받았다. 양양, 철원, 경기도 연천 등 38선 이북 지역은 주권 전체를 넘겨받지 못한 상태다. 철도 연결할 때 유엔사가 반대한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우선 유엔사가 해체되어야만 이곳이 우리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 될 것이다. 그래야 자유로운 상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주의할 것은 평화협정 후에 통일협정이 얼마나 빨리 체결되느냐. 즉 평화협정과 통일협정의 간격이 중요하다. 평화협정 후에 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가 평화지대가 되면 평화를 더욱 공고하게 굳히고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만들어 가장 빨리 통일로 갈 수 있도록 통일을 연습하고 준비하는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통일을 하세월 미루어서도 안 되지만 준비 없이 급하게 통일하려다가 위험해 질수도 있다. 영리하고 치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권용택: 통일협정은 어려운 문제다. 어느 한 체계로 가게 될 것을 우려한다. 관심있는 사람과 전문가들이 통일을 위해 이런 문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9. 강원 예술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시우: 금강산 미학을 만들어 주시길 바란다. 현재까지 남북의 주민이 유일하게 경험을 공유한 곳이 금강산이다. 민족의 명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역사상 두 번이나 금강산 미학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의 침략을 이겨내며 신라식 불교사상이 완성되자 국민들에게 이를 체화시키기 위한 미학적 전략으로 금강산을 부각 시킨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으로 반청의식이 고양되고 새로운 조선의 성리학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이를 미학적으로 체화시키기 위한 전략이 다시금 금강산을 주목하게 한다. 송강 정철, 겸재 정선 등의 금강산 미학이 성공하자 금강산 산유록이라는 기행문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이 과정을 통해 금강산은 민족의 명산이란 공식이 공고해진다. 이 두 시기 모두 외세와의 항전이 있었고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킬 사상이 완성된 시기다. 금강산 미학이 출현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지금의 금강산도 그러하다. 금강산 미학을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사상인 평화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
평화는 이론이나 정책으로만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분단이 원한체계이듯, 평화도 이론과 정서가 결합된 체계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미학이 필요하다. 어느 지역보다 강원의 예술가들이 이 작업에 사명감을 가져 주시면 좋겠다.

권용택: 강원지역 예술인들이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원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비무장지대에 관심을 가진다면 호기심 차원이 아닌 독특하고 진정성 넘치는 예술작품들이 꽃피우게 될 것으로 본다. 이것은 강원 미학의 시발이 될 것이며 강원 미학을 정립하는 과정이 남북 평화에 대한 정서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 이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이시우 작가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