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평동 – 몽피 김경학화백

잊고 있었는데 몽피 김경학화백이 그린 건평리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강화 건평리에 살때 지붕에 물이세서 땜질을 하고 있었는데 지나던 김화백이 지금은 이장한 이면백선생묘자리에서 무엇을 그리더니 나중이 이 그림이 되어 발표되었습니다. 건평리는 ‘민통선평화기행’과 ‘유엔군사령부’가 집필된 곳입니다. 몽피선생은 제 사진한점과 이 그림을 물물교환했고 지금 이 그림은 제게 있습니다. 강화나들길카페에 있는 그림과 글을 옮겨왔습니다.

2010. 장지에 수묵담채 40×65센치 건평동 몽피

평화롭다는 것은

평화로운 풍경과

평화로운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가며 살아 숨 쉬는 것.

1906년 화남이 보았던 그 하늘(乾)

건평이 水평이었듯

봄기운 머금은 뭇 생명들

내 붓 끝에 달라붙어

생명. 생명. 생명

평화. 평화. 평화

한다.

생명. 평화

이 아름다운 말이 이제 좌파를 상징하는 말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시화호. 새만금. 4대강사업. 대운하. 조력발전소. 이 땅의 주인이 사람뿐이라는 그 편협한 생각들로 인해

선하고 착한 사람들.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왼편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생명. 평화의 아이콘은 이제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하! 시절이 수상하다는 것 요즘 들어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누구에 누군가들은 생명과 .평화라는 이 두 단어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를 바라는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불은면 백운곡. 백운 이규보선생이 살았다던 그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주에 올릴 그림이 백운곡 이기 때문이었지요.

구제역으로 축사. 돈사에 생명은 없고 을씨년스럽게 산벗고목나무에 꽃 만개 하였습니다

차마 그곳에 화판을 펼칠 수 없어 하우고개지나 건평나루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같은 땅 이면서 생명이 없는 듯 바람도 숨어가는 듯한 . 백운곡과 달리 이곳은 참 평화로웠습니다.

평화운동가 이시우선생 거처 뒤편 밭에 앉아 건평나루쪽으로 구도를 잡았습니다.

마침 평화운동가 이시우씨 화도의 맑은 농사꾼 후배 이준서씨 불러 여름장마 대비 지붕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 달 여전 이집 안벽에 도배를 도와주었던 인연이 있는지라 산 아래쪽으로 부감 하며 스케치 하였습니다.

앞마당의 광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스레트지붕의 함석용골이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이름 모를 어떤 장인이 날밤 새워 만들었을 용머리의 함석조각들

그대나 나나 모두 쟁이 였을 겁니다.

몽피-배

http://cafe.daum.net/vita-walk/Rn1A/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