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맑실 칼럼] 이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 – 한겨레2021.11.26

[강맑실 칼럼] 이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

등록 :2021-11-25 18:18수정 :2021-11-26 02:32

차가운 바람에 팔랑이는 깃털만이 주검 대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한 혀만 들어 있던 부리는 철조망을 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박힌 철조망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의 눈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고통 속에서 흘렸을 기러기의 피 섞인 눈물은 길고 가녀린 고드름이 되어 바람에 흔들렸다.


강맑실 | 사계절출판사 대표
“꽈륵 꽈륵 꽈꽈륵 꽈륵….”

올해도 어김없이 이곳 파주 출판도시를 찾아와준 기러기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출판사 지붕 위를 날고 있을 기러기들의 소리를 들으면 반갑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갈수록 기러기들의 소리도 움직임도 부산해지리라. 기러기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은 알아버려서일까, 한편으로는 애잔하다. 무릇 모든 철새들의 삶이 그러하듯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4천㎞ 이상 날아왔을 그네들, 내년 봄이면 왔던 거리를 날아 고향인 시베리아로 돌아가야 하는 그 여정이 경이롭기만 하다. 기러기 소리에 잊고 있던 지난겨울의 영상 하나가 떠오르면서 급기야 죄책감으로 가슴이 옥죄어 온다.
이곳 출판도시는 한강 하구에 인접해 있다. 한강 하구는 백두대간과 디엠제트(DMZ)를 이어주는 육상 생태계의 연결고리이다. 또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 조강(祖江)을 이룬 강줄기는 강화도 연미정에서 제비 꼬리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한 줄기는 개성의 예성강과 몸을 섞으며 서해로 흘러가고, 다른 한 줄기는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염하강으로 흘러들어 서해와 만난다. 이렇듯 한강 하구는 강과 바다의 생태계도 이어준다. 민통선 안과 강화도 쪽으로 너른 논이 펼쳐지고, 강화도의 갯벌은 출판도시 인근의 공릉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이곳은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이자 새들의 번식지이며 월동지이기도 하다.
출판도시에는 한강 하구의 물줄기와 이어지는 갈대 샛강이 흐른다. 물길과 유수지를 모두 매립해 건물을 짓겠다는 한국토지개발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 쪽과 싸워 지켜낸 소중한 샛강이자 습지이다. 심학산과 갈대 샛강 덕분에 출판도시의 생태는 코밑까지 숨통을 조여 오는 주변의 무자비한 난개발에도 아슬아슬 버티고 있다. 참새, 오색딱따구리, 박새와 같은 텃새들은 물론 봄이면 꾀꼬리와 휘파람새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리고, 출판도시의 유수지에는 꼬마물떼새와 물닭이, 갈대 샛강의 작은 물길에는 물총새와 흰날개해오라기가 내려앉는다. 여름이면 검은등뻐꾸기가 짝을 부르는 소리가 힘차게 들려오고 멸종위기종 새호리기는 출판도시의 가로수인 상수리나무에 둥지를 튼다. 겨울 철새 큰부리큰기러기는 물론, 개리와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들도 기러기와 함께 출판도시를 찾는다.
이처럼 수많은 새들이 깃드는 출판도시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 한강 쪽을 바라보면 확 트인 경관을 가로막고 있는 물체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바로 철조망이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지배와 소유를 위한 울타리 도구로 ‘히트 상품’이 되어 백인들의 원주민 약탈의 상징이 된 철조망. 그래서 인디언들은 철조망을 ‘악마의 끈’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이 철조망이 우리나라에서는 분단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디엠제트를 따라 한반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250여㎞의 철조망 철책이 남과 북 양쪽으로 나란히 쳐져 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디엠제트에서 수십㎞ 떨어진 곳까지 군경계시설이라는 명분에 갇혀 어김없이 철조망 철책이 둘러쳐져 있다. 대부분 와이(Y)자 기둥이 지탱하는 철책 위에 직선형 ‘가시 철조망’과 면도날 같은 철침이 촘촘히 박힌 ‘면도날 원형철조망’이 이중으로 세워진 구조다. 면도날 철조망에 사람이 걸리면 혼자서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너덜너덜 찢기고 잘려 빠져나오려 할수록 상처는 깊어진다.
지난겨울, 출판도시 생태조사단 단톡방에 ‘기러기의 피눈물, 고드름이 되다’라는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 디엠제트 티브이>가 제작한 2분 남짓의 짧은 영상이었다. 거기에는 면도날 철조망에 걸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몸부림치다 얼어 죽은 기러기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발가락 사이 물갈퀴는 날카로운 칼날에 박혀 있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퍼덕였을 날개는 활짝 펼쳐진 채 철조망과 엉켜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팔랑이는 깃털만이 주검 대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한 혀만 들어 있던 부리는 철조망을 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박힌 철조망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의 눈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고통 속에서 흘렸을 기러기의 피 섞인 눈물은 길고 가녀린 고드름이 되어 바람에 흔들렸다. 고드름을 달고 있는 기러기의 치켜뜬 눈은 처연했다. 기러기들의 죽음이 상징하는 철조망의 잔혹함은 수백가지 예를 들어도 부족할 만큼 동물은 물론 인간의 삶까지 황폐화시키고 있는 악마의 끈이다.
이 잔혹한 철조망은 도대체 언제부터 디엠제트를 비롯한 한반도 곳곳에 둘러쳐지기 시작했을까. 디엠제트에서 수십㎞ 떨어진 한강 하구가 언제부터 민간인 통제구역이 되어 철조망이 쳐진 것인가. 사진가 이시우가 < 통일뉴스>에 기고한 ‘철조망 이데올로기’란 글을 읽어 보면 한반도의 철조망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에는 1965년까지 뚜렷한 경계 표시물이 없었다고 한다. 큰 잡목을 베어 몇몇 군단 지역에만 목책을 세웠으나, 그나마도 밑동이 썩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철조망 철책선 구축을 남방한계선 전역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미국은 스스로 강조해온 정전협정(협정에서는 정전을 위해 철조망 제거를 명문화했다)을 어겼다. 한때 록펠러재단 산하였던 미국의 한 철강회사는 자본과 권력 융합체라는 옷을 입고 한국에서 대대적인 철조망 건설을 시작하면서 미국 패권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철조망은 분단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업고 본격적으로 분단을 공고히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무를 가열차게 수행했다. 급기야 군시설, 군경계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지역의 민간인 통제와 출입금지까지 떠맡게 되었다.
철조망 철책은 경계를 주목적으로 한다. 2016년 12월, 전방철책 약 240㎞에 ‘광망’(광그물)이라 불리는 스마트 감지센서가 설치되었다. 철책에 광그물을 씌우고, 감시카메라와 열영상 감시장비 등으로 낮엔 1~2㎞, 야간에는 200~400m 경계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철조망 철책은 이제 광망을 설치하기 위한 거치대의 의미만 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경계가 필요한 지역이라 할지라도 철조망을 제거한 철책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디엠제트 속 지뢰는 무기로서의 효용성을 상실해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뢰보다도 무기로서의 효용성이 훨씬 미약한 철조망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이시우, 같은 글)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철조망, 분단이라는 상징적 허구에 떨고 있는 이 끝없이 이어진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
얼마 전 김포시는 군 관계자들과 오랜 협의를 거쳐 일산대교에서 전류리 포구까지 8.7㎞ 구간과, 초지대교부터 안암도 유수지까지 6.6㎞ 구간의 철조망과 철책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무려 50년 만의 일이다. 당연한 듯 무심히 서 있던 철조망 제거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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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0841.html#csidxeff61a41e210e0b8440e3930fde7c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