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평] ‘헌법위의 악법2’, 나는 이렇게 읽었다. -민중의 소리22.6.17

[서평] ‘헌법위의 악법2’, 나는 이렇게 읽었다.
이시우 사진가
발행 2022-06-17 08: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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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의 악법 2 – 국가보안법, 폐지가 답이다 표지
헌법 위의 악법 2 – 국가보안법, 폐지가 답이다 표지 ⓒ민중의소리

왠지 책이 잘 펼쳐지지 않았다. 첫 장을 열기가 무던히 어려웠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있을까하는 선입견, 그럼에도 새롭게 사고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것 같은 부담과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산책길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아와 앉고서야 어렵게 첫 장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가 시작되자 직전까지의 주저가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새로운 시각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의 정교함에 손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민변이 국가보안법폐지TF를 만들어 법 조항 하나하나를 주석하여 집필한 책이다. 이정희변호사가 기획‧편집‧출판을 총괄했다. 전작인『헌법위의 악법』이 국가보안법 7조를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후속작인 『헌법위의 악법2』는 7조를 제외한 전체조항을 망라했다.

새롭게 본다는 것, 기존의 관성을 벗어나 본다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경이를, 칸트는 숭고를, 들뢰즈는 강렬도를 말했다. 경이와 숭고가 대상의 압도적인 크기에 근거한다면 강도는 간절함의 근거가 된다. 경전을 대하는 숭고함과 화두를 참구하는 간절함이 결합되었을 때 새롭게 보기가 가능해진다. 박원순의 『국가보안법연구1.2.3』이라는 태산 앞에서 느끼는 압도와 그것을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이 책은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숭고한 시대적 사명으로 여전히 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없이 보고 또 보았을 법조문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의 영토를 발견해낸 간절함에서, 이 책 저자들의 법철학적 성취는 주목받아 마땅하다. 이 책 덕분에 우리 운동은 최첨단의 이론 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지나치는 단어인 표현, 회합, 거주, 편의, 지원, 양심 등에 예리한 전선을 긋고 법철학적 차원까지 끌고 내려가 근본적 탐구를 전개하는 것은 저자들이 가진 간절함의 증거이다. 세상어디서나 쓰이는 평범한 일상어가 국가보안법의 장에 들어오면 무시무시한 명령어가 되는 경험 때문에 한국인에게 이들 언어에 대한 감각은 복잡하고 긴장되며 분열되어 있다. 단어마다 억압과 상처와 피 냄새가 진동한다. 이들 일상적 단어가 법과 권력 사이에서 얼마나 치열한 투쟁의 용융점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오직 국가보안법에만 있는 ‘특별형사소송규정’을 주목하여 재발견한 것도 간절한 연구의 성과이다. 또한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피해자인 탈북민의 존재를 부각함으로서 이 분들에 대한 기존의 편견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점 역시, 저자들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간절함의 결과이다.

보수진영은 국가보안법 존치를 위해 이렇게 압도적인 크기의 사명감과 간절함을 보이지 못했다. 연구의 크기와 강도 면에서도 국보법 폐지론은 국보법 존치론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

『헌법위의 악법』이란 책 제목은 오랫동안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의 현장에서 사용되어 익숙해진 표현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특별함 대신 시 대적 상식을 선택했다.『공산당선언』이 역사에 던진 충격은 새롭고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시대의 상식을 정확히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헌법위에 악법이라니, 헌법을 부정하는 법률이라니,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 얼마나 충격적인 표현인가?

조르주 아감벤이 사용한 개념인 호모 사케르는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 책의 도처에 이 개념이 사용되지만 저자들은 아감벤이나 호모 사케르를 인용하지 않는다.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쉽게 읽히게 하기 위해 유식한 체할 수 있는 인용을 모두 자제했다. 그러면서도 그 개념들의 용법을 가장 정확하게 적시하고 있는 점에서 저자들이 얼마나 현장에서 이론을 단련시켜 왔는지를 실감케 한다. 이론에서 겸손이 읽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곧 국가인 법치국가에서 헌법위에 혹은 헌법밖에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모순이다. 이러한 예외상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질서는 균열을 심화한 채 종국에 붕괴할 수 있다.

신윤경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p.69) 자유민주주의 질서 확립은 국보법이 존치해야하는 이유로 제시되는 핵심논리이다. 신 변호사는 여기에 ‘완전한’이란 수식어를 첨가함으로서 국가보안법을 품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불완전하고 자기모순으로 균열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헌법 밖에서 헌법을 위협하고 위기에 빠트리는 국가보안법의 위헌성, 반국가성의 역설을 폭로하고 있다. 국보법 존치론의 뿌리인 자유민주주의 담론의 영토를 점령한 것이다.

반공

「세계인구절반과 대결한 법률」(p.74)이란 소제목은 국가보안법을 인권과 민주주의에 국한시켜 보던 관점을 넘어서게 한다. 1948년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이승만도, 1961년 국가보안법을 개정한 박정희도 국가보안법은 ‘반공’이라는 세계차원의 의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수단이었다. 1961년 반공임시특별법시안 제4조에는 기존 국가보안법에 없던 찬양‧고무조항이 신설되었고 ‘표현물불고지죄’조항도 들어갔다.(p.407) 불고지죄는 정태욱교수가 국가보안법에서도 폭압성의 정도가 가장 크다고 평가한 조항인데, 이들이 모두 반공의 이름 하에 신설되었다.

남한 차원의 민주화와 한반도 차원의 통일이란 의제가 성공해도 세계 차원의 반공 의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친중정서가 반중정서로 바뀌는데 걸린 빠른 시간만큼 반공시대의 도래 역시 먼 미래가 아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철 지난 반공이 문득문득 소환되어 통일과 민주화를 위협할 것이다. 민주화와 통일보다 반공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인권침해와 민주주의 후퇴는 국가보안법의 효과이지 의도가 아니며,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반공이 엄존하는 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도 또 다른 이름의 국보법이 등장할 수 있다.

따라서 국보법폐지 운동은 수동적 방어나 부분적 권리 찾기만이 아니라 반공 의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기획과 전략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유엔이면 될까? 유엔을 창설한 미‧소가 2년 만에 냉전으로 돌아서고 반공이 부활한 역사는 유엔이란 의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 의제의 창설을 요청하는 반면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국가단체

이 법의 핵심조항은 2조 반국가단체규정이다. 이 책에서 ‘국가’와 ‘단체’란 단어를 놓고 전개하는 논리는 흥미진진하다. 우리는 누구나 반국가단체가 북한을 지목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헌재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에 대해 헌법 심사를 거절해왔다.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법 2조의 반국가단체 규정은 북한을 특정하여 지목하지 않고 있다. 2조 1항의 반국가단체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관성을 깨고 이 조문에만 맞추어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다. 자! 비무장지대 내 민간인마을인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대한 민사행정의 정의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아군 지역에서 현지정부와의 합의하에 현지 정부가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특정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외국정부가 수립하는 행정’

한국의 일부 영토에서 한국정부 아닌 외국정부가 수립하는 행정이라면 이는 점령이다. 실제 이 규정은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채택하고 있는 변형 점령 개념으로, 미 국방부 지시와 미 합참의 합동 교범에서 그대로 인용해 온 것이다. 외국 정부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와 조약을 통해 합의된 것이라면 이는 문제가 없다. 그리고 이 규정은 마치 그런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비무장지대와 대성동 마을에 대한 점령통치를 합의했을 리 만무하다.

이 인용문은 『유엔사규정525-2』의 14쪽에 있는 문장이다. 여기서 외국정부란 미국이며 유엔사는 미 국방부 지시와 합참 교범에 따라 미국 정부의 행정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군사기구‧단체이다. 한국정부와의 조약없이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행정을 수립하고 있다면 이는 정부를 참칭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비록 국가전복에 이르지는 않았다 해도 대성동 주민에 대한 납세와 국방의 의무 이행을 배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란을 꾀했다 할 수 있다. 거기에 한국정부의 주권행사를 얼마든지 중지시킬 수 있는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이다. 정전협정을 근거로 한다고 할 수 있으나 정전협정은 우리가 서명하지 않아 국내법적 지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관성에 사로잡혀 있지만 않다면 유엔사는 반국가단체의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은 법 조문에 따라서가 아니라 법 밖에서 정치권력의 선입견에 따라 적용되기에 유엔사의 반국가 단체성은 검토해볼 생각도 못하는 것이다.

이중적 지위론

이 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논리는 이중적 지위론의 극복이 아닌가 싶다. 이중적 지위란 남북이 국가로서의 지위와 민족 내부관계로서의 지위를 동시에 갖는다는 것이다. 동서독기본조약의 이중적 지위론이 동서독의 상호인정과 존중을 위해 고안된 개념이라면, 국가보안법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와 처벌을 위한 논리로 악용되고 있다.(p.84)

이 책은 동서독 기본조약의 이중적 지위론을 처음으로 수용한 남북기본합의서가 신사협정에 불과하다는 헌재의 판시에 대해 항변한다. 그러나 굳이 남북기본합의서를 근거로 할 필요가 있었는지 필자는 의문이다. 기본합의서 이후 법률은 훨씬 발전하였다.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3조1항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하여 이중적 지위론을 부정하였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호대신 남한과 북한이라고 표기함으로서 국가관계의 부정을 일부러 강조하기까지 하였다.

이 법에서는 오직 하나의 지위만이 존재한다. 9.19평양공동선언에서 양 정상은 국가 간 주권평등의 원칙이 아닌 민족자결권의 원칙을 확인했다. 국가관계보다 민족관계를 우선시한 것이고, 분단보다 통일을 우선시한 것이다. 또한 양 정상이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한 9.19평양공동선언은 남북합의서로서 비준‧발효되어 국내법이 되었다. 신법은 구법에 우선하므로 이들 법률에 근거한다면 국가보안법의 낡은 논리는 법적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회원국으로서 주권평등 및 상호내정불간섭의 의무를 진다. 그러나 도래할 통일국가의 주권인민으로서는 ‘자결권’을 갖는다. 여기서 민족의 법적지위는 현 분단국가의 국민의 지위가 아닌 미래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통일국가를 수립할 주권인민으로서의 지위이다.

주권인민은 법적지위를 부여받는 자가 아닌 창출하는 자이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자신이 창설한 헌법에 의해 통일국가국민으로서의 법적지위를 부여받는 존재인 것이다. 통일주권인민의 자결권이란 관점에 선다면 이중적 지위론의 악용을 좀 더 효과적으로 막을 논리가 개발될 수 있지 않을까한다.

양심과 애국심

이 책은 제정법인 국가보안법을 탄핵하는 무기로 자연법 이론을 호출한다. 자연법론은 실정법론의 한계를 돌파하는 논리로서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양심의 자유는 편의제공죄, 불고지죄등 각 조항을 탄핵하는 공통논리로 활약한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으로서 양심의 자유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도처에서 놀라운 치밀함으로 실증하고 있다. 그 연구성과에 경의를 표하면서 필자는 조심스럽게 다른 논리를 하나 더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 우선 헌법재판소가 대응하는 논리를 보자.

‘양심의 자유는 양심형성의 자유와 양심실현의 자유로 나뉜다. 양심형성의 자유는 내심에 머무르는 한 절대적 자유라고 할 수 있지만, 양심을 실현하는 자유는 필요한 경우 법률에 의한 제한이 가능하다.’(p.382참조)

헌재는 양심형성의 자유는 주관적인 것으로, 양심실현의 자유는 객관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후자는 이미 주관속의 양심이 아니다. 양심을 형성된 것과 실현된 것으로 구분하는데 그치면 이는 고착적‧형식적 사고이다. 변증법을 적용하면, 형성된 양심은 실현되어야 하고 실현된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 양심은 실현과정을 통해 그 본질을 보존하지만 형태는 바뀌기 때문이다.

헤겔 법철학에 따르면 추상법차원의 자유의지는, 주관도덕차원의 양심으로, 객관공동체차원의 가족애와 애국심으로 발현된다. 1) 추상법-도덕-윤리공동체 차원에서 법은 자유의지-양심-애국심의 발전단계를 거치며 구체화되는 것이다. 헌재가 말하는 ‘양심의 실현’이 가족차원에서 발현되었다면 사랑이고, 국가차원에서 발현되었다면 애국심이다.

따라서 국법에서 양심을 논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을 논쟁하는 것이 된다. 국법에서 다루어야 할 양심의 문제는 곧 애국심의 문제여야 한다. 국법체계에서 도덕차원의 양심의 자유를 논하면 이에 대응하여 국가는 얼마든지 국가차원의 자의적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헌법 37조 2항을 보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기본권의 침해와 불가침에 대해 침해의 권리는 법률로서 보장되나 불가침의 권리는 법률로서 보장되지 않는다. 불가침은 실정법이 아닌 원리로서 보조할 뿐이다. 침해와 제한만이 법적 강제로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정법 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법이나 기본권은 설령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해도 법이 아니다. 도덕규칙이나 원리일 뿐이다. 따라서 기본권 수호를 내세워 싸우는 전략은 그 풍부한 잠재성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의 승리가 의심된다.

국가보안법폐지론에서 다루어야 할 양심의 자유문제는 ‘애국심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애국심하면 맹목적 애국주의가 연상되어 공론장으로의 진입 자체를 망설이게 한다. 그러나 애국심은 맹목적‧전제적 애국심만 있는 게 아니다. 유럽 헌법 제정 과정에서 하버마스가 주창한 헌정주의적 애국심도 있고, 신공화주의자들의 비지배적 애국심도 있다. 통일헌법과 더불어 통일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남북 국민사이에서 형성되지 않는다면 분단국가에 대한 맹목적 애국심으로 복귀하려는 관성을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애국심은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취해온 애국심은 권력자의 자의에 의한 맹목이다. 우리 스스로 애국을 맹목에 고착시키는 순간, 풍부한 애국논의를 포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맹목적 애국주의에 패배하게 된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 책의 대담에서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다른 거로 또 편가르기를 할 것 같다’(p.64)고 염려한다. 이러한 염려는 국보법 폐지운동이 기존 제도에 대한 반대운동이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창설 운동이 아니기에 갖는 기본적 한계이다. 국보법 폐지와 더불어 새로운 애국의 이름으로 국보법의 위헌적 조항들이 발호하지 않도록 적극적 법률화를 추진하는 기획도 동시에 필요해 보인다.

헌정적 애국주의는 결국 애국심의 입법화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양심은 원리이기에 실정법이 될 수 없으나 실현된 양심으로서의 애국심은 실정법화 할 수 있다. 국보법의 자의적 적용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자의 해석과 선처를 바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애국심을 법률화한 ‘애국법’을 선제적으로 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반공이나 테러나 국가안보를 이유로 양심에서 발현된 애국심을 훼손시키지 못하도록 애국의 이름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안티고네의 불법(p.366)이 왕 크레온의 맹목적 애국주의에 대한 양심의 저항만이 아니라, 헌정적애국주의‧비지배적애국주의를 정립하는 새로운 애국심임을 강조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요구하는 분단애국심에 대해 통일주권인민이 요청하는 통일애국심의 논리로 맞서야 한다. 주관의 영역인 양심보다는 실정법인 헌법의 평화통일원리와 남북관계발전법률등의 정당성, 적합성에 기반한 헌법적 양심, 즉 헌정적 애국심의 원리로 반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반론이자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사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약적으로 풍부해졌다. 이 책이 쉼없이 치밀한 논리로 대화를 요청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헌법위의 악법1,2』는 『국가보안법연구1,2,3』도 달성하지 못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00년 뒤에도 읽힐 법학의 고전이 탄생한 것이다.

1) 헤겔, 이동춘 역, 『법의 철학』(전편), (서울: 박영사, 1983 중판), p.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