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을 이겨낸 시간-이정희변호사, ‘통일뉴스백서(2000-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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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을 이겨낸 시간

◎ 일일 녹취 일지

“8. 14 대상과 동일 통화자” 2004. 8. 31. 서울지방경찰청 보안2과가 작성한 「일일 녹취 일지」의 한 구절이다. 2주일 전에 전화한 사람의 목소리를 기억해낼 만큼 줄곧 캐고 있었구나. 국가보안법 제5조 제1항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를 지원할 목적’을 입증하겠다며 검찰이 제출한 유일한 증거 역시 통화 녹취였다. 새해맞이 금강산 사진촬영대회에 초대받아 다녀온 이시우 작가가 막역한 친구에게 웃음 섞어 건넨 “공화국에 새해인사하고 왔지” 한 마디가 ‘지원할 목적’의 증거로 둔갑했다.

통일뉴스 기자 자격으로 한미합동군사훈련 현장을 취재한 이 작가의 하루는 집에 들어갈 때까지 경찰에 쫓겼다. 이 작가의 『민통선 평화기행』이 < 한국을 대표하는 책 100권>에 선정되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참석차 출국할 때도 경찰은 공항까지 뒤따랐다. 소도시에서 열린 10명 내외가 참석한 강연 내용이 반국가단체 선전·동조로 기소되었다. 그 작은 모임의 참석자 가운데 경찰 관련자가 있었던 것일까.

3년 넘게, 경찰은 이 작가의 모든 활동과 만남과 일상을 뒤쫓았고, 그 조각들을 ‘지원할 목적’을 입증하기 위해 재조립했다. 통일뉴스 기사를 비롯한 모든 기고와 강연과 대화와 작품과 창작과정의 촬영이 국가보안법상 자진지원(간첩-국가기밀누설),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회합·통신, 군사기밀보호법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수사도 기소도 모두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에 이뤄졌다. 경찰과 검찰 모두, “국가보안법을 이제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대통령의 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작가 한 명을 뒤쫓는 데 인력과 돈을 쏟아부었다. 공소사실 110개에 징역 10년, 촬영 필름 6,345개 모두 몰수 구형은 다행히 1, 2, 3심 모두 무죄로 결론 났다. “국가보안법과 함께 죽겠다”며 46일 단식하며 얻어낸 무죄였다.

◎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시우 작가는 1심 최후변론에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작품을 들고 나왔다. 불온한 사상을 가졌다고 지목된 사람은, 국가보안법에서 풀려나도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 작가는 1심 최후변론에 일리야 레핀의 <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작품을 들고 나왔다. 제정 러시아의 혁명가가 유형지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선다. 하지만 문을 열어준 여인은 다시 불안에 휩싸이고, 가족들은 혁명가에게 달려가 끌어안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일어서거나 쳐다볼 뿐이다. 이를 본 혁명가는 모자를 가슴에 대고 멈칫한다. 형형한 눈빛은 잃지 않았으나, 재회의 기쁨은 그의 것이 아니다. 불온한 사상을 가졌다고 지목된 사람은, 국가보안법에서 풀려나도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무죄판결을 받아도 달라지지 않는다. 완벽한 감시,

숨 쉬는 것 외의 모든 활동에 대한 ‘이적행위’ 기소는 무죄판결 이후에도 배제와 소외의 이유가 된다.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사회적 관계를 차단시키는 것, 이것이 국가보안법의 강제력이다. 이 작가의 고난으로, 변호인이었던 나는 사상과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가해지는 국가폭력으로서 국가보안법의 단면을 엿보았다. 그러나 몇 년 뒤 통합진보당과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겪고야, 당사자의 고통을 다 몰랐구나, 후회했다.

◎ 재일 조선인, 아직도 반국가단체 구성원

이 작가가 국가보안법 피의자가 되었던 것은 2004년 유엔사 관련 일본 미군기지 조사를 위해 재일동포와 통화한 때부터로 추정된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해외 민간교류를 위해 보수-진보 시민사회는 물론 정당까지 망라해 구성한 민족화해협의회 담당자로부터 소개받은 조선학교 교사였다. 잠시 완화된 남북대결 상황에서 생겨난 만남에 대해서조차, 국가보안법은 감청과 미행과 기소를 이끌어냈다.

조총련은 북의 지원을 받는 반국가단체이고, 조선학교 교사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이유다. 이 작가가 쓴 통일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에 붙인 짧은 답글마저 통신 혐의로 기소되었다. 댓글을 올린 사람이 조총련 구성원이라는 이유다. 반국가단체로 지목된 단체와 그 구성원들과는 어떤 이유로도 얽히지 말라는 엄포, 일체의 접촉 차단, 이것이 국가보안법의 강제력이다.

2023년 9월, 간토대지진 100주년 조선인 학살 추모식에 참석한 윤미향 국회의원은 극우단체에 의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고발당했다. 추모식 공동주최단체에 조총련이 포함되어 있으니 ‘조총련 행사’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라며 공격했다. 국가보안법은 시간의 흐름에 무관하게 건재하다.

◎ 미군기지 사진 소지, 아직도 국가기밀 탐지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던 윤석열 내란의 근거가 된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의 석권호 씨에 대해 적용된 두 건의 간첩 혐의 중 하나는 평택 미군기지 사진 소지다. 석권호 씨가 찍은 것도 아니고, 비밀리에 획득한 것도 아니다. 평화운동단체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은 평화활동가의 발표 자료를 저장해둔 것이 국가기밀 탐지라는 이유다. 미군기지 주민피해예방감시활동차 기지 밖에서 훤히 보이는 장면을 찍은 사진일 뿐인데, 찍은 사람도 같은 자료를 다운로드 받은 다른 사람도 문제되지 않았는데, 석권호 씨만 간첩으로 처벌되었다. 미군기지 사진을 더 선명하게 보도한 뉴스가 많고 많은데, 석권호 씨는 간첩죄를 벗지 못했다. 북한 사람과 만나고 말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다.

이 작가가 촬영한 많은 미군기지 사진들은 ‘지원할 목적’의 ‘국가기밀 탐지’로 인정되지 않았다. 예술창작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군사기밀누설 혐의도 무죄 확정되었다. 1심 판결은 ‘평화적 감시의 권리’를 인정했다. 통일뉴스 기자이자 평화운동가, 무엇보다 사진작가였던 이 작가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미군기지를 촬영한 사람이라는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15년 전에 인정된 이 권리는 윤석열 내란시 수거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민주노총’ 간부에게는 보장되지 않는다. ‘체제위협세력’으로 공격당하는 사람은 미군기지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간첩죄가 된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자를 처벌하는 차별적 법률이고,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악법이다. 윤석열 계엄이 ‘내란’이 아니라는 국민의힘은 2025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건을 들먹이며 민주노총과 정부를 공격한다.

이 작가가 국가보안법을 이겨낸 시간은 변호인이었던 내게는 지금도 이어지는 국가보안법의 차별과 폭력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통일뉴스가 과거에도, 지금도 이 시간을 함께 헤쳐나가고 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