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해체에 대한 부산과 함께하는 걷기명상에 부쳐2004/07/21 1043

유엔사해체에 대한 부산과 함께하는 걷기명상에 부쳐

이시우

양양을 지날 때 였다. 태풍의 여진이 남아 있는 바다를 향해 총을 들고 한 초병이 서 있다. 어느날 밤인가 강화 초소에서 저렇게 서있던 초병이 허공에 마구 총을 쏘아대는 것을 보았다. 사격은 총신이 그 긴 탄피를 다 삼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허공은 그 총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 두려움도 외로움도 죽이지 못했다. 총은 실패한 것이다. 총은 공포를 쏘아 맞추지도 어쩌면 공포보다 더한 외로움을 사살하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더 큰 공포가 더 큰 외로움이 총성의 그림자에 잉태된 채 초소를 엄습해오고 있었다. 나는 총의 속절없는 실패를 보았다. 바람은 파도를 밀어 해안초소로 엄습해오고 있었다.

사나흘 전인가 이곳 8부두에선 이름대신 고유번호가 예리하게 음각된, 잘 포장된 총과 무기들이 배에 선적되어 바다로 나갔다. 이라크로 간다고 했다. 군인들이 가기전에 총이 먼저 가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전쟁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 순간, 베트남전쟁의 공포와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들은 공포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것으로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아 무자비한 융단폭격을 가했다. 공포가 죽는 대신 민간인이 죽었다. 악몽이 사라지는 대신 유프라테스에서 탄생한 인류의 꿈이, 문명의 희망이 사라졌다. 우리는 총의 속절없는 실패를 보았다. 그 확증된 실패를 향해 8부두는 총을 실어 떠나보냈다. 군인들에 앞서 실어보냈다.

파병에 대해 말하자면 1990년 걸프전 당시 우리는 유엔가입국이 아니면서도 미국의 청을 받아드려 1달 정도 파병한 일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사이프러스 동티모르등 여러나라에 한국군이 파병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미 한국은 유엔헌장을 위반하고 있다. 안보리의 군사적 제재 권한에 대한 유일한 법적 근거는 유엔헌장 제42조이다. 그러나 제42조에 의해 안보리에 병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제43조가 규정하고 있는 안보리와 회원국들간의 특별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 즉 제43조에 의한 특별협정 체결은 제42조에 의한 군사적 강제조치 적용의 전제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하여 특별협정체결 없이 회원국의 병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도 안보리의 사용권아래(at the disposal) 놓여야 한다. 즉 안보리의 통제(control)하에 있어야 하며, 달리 말하면 유엔군사참모위원회의 작전통제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파병문제를 헌법이나 유엔헌장의 준수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나라에 대한 파병문제까지 전체로서 이야기해야 한다. 김선일씨 사례로 증폭된 전쟁의 위험문제도 이들 파병지역이 모두 분쟁지역이므로 이라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없다. 한 국방부 관계자의 말처럼 지금까지 운좋게 특별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유엔군사령부가 지나온 길을 우리도 일정부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파병문제에서의 중심은 무엇인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내용상으로 위반하려는 한미동맹강화론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해야할 판에 이 조약이라도 지키라고 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문구나 합의에 얽매이지 않고 내용상으로 조약을 위반할 수 있는 불평등성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미 유엔사가 작전권을 장악한 상태에서 맺어진 조약이다. 때문에 조약의 내용도 정확한 책임과 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미국이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상황적 조약’으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구를 바꾼다고 해서 이러한 관계의 맥락이 근본적으로 바뀌진 않는다는 것을 파병문제는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불평등성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주둔군으로서 맺은 조약이 아닌 점령군으로서 맺은 조약으로서의 성격 때문에 존재하는 필연이다. 때문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갖는 불평등성의 근원에는 유엔사가 있다. 유엔사의 작전통제권이 78년 한미연합사로 이양되긴 했으나 단서로서 한미연합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는 한에서만 이양은 효력을 발생한다. 때문에 조약문구의 수정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구조로서의 유엔사 해체와 그에 의해 수반될 한미연합사의 해체가 파병문제의 전략중심이 된다. 이해관계 때문이든 미적관계 때문이든 민감한 자에 의해 세상은 구분되고, 구획되고, 해석된다. 민감함은 세상을 구분함으로써 창조성의 토양이 되며, 구획함으로써 통제의 범주를 결정하며, 해석함으로써 지배한다.

파병 문제의 중심을 공략해 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우리에게 대두되고 있다면 그것은 유엔사 해체이다.

2004.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