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34일째 일본행에서의 교훈2004/07/31 1138

일본행에서의 교훈

인터넷

어렵게 참으로 어렵게 다시 글을 쓰게 된다. 일본으로 오면서 예상은 한 일이지만 인터넷사용이 이렇게 어려울줄은 몰랐다 어제는 하루종일 피시방 같은 것을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보냈다.오사카에서 코리아타운이 있다는 쯔루하시라는 곳을 찾아 이잡듯 뒤졌지만 단 하나의 피시방도 찾을 길이 없었다. 어차피 폭염이었지만 날씨와 친해질겸 세시간을 걸어 숙소근처에 당도하니 피시방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허탈했지만 동시에 너무 반가워서 지친 다리는 생각치도 않고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이곳에선 피시방 대신 뭐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처럼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된 개념이 없는 듯했다 책도 팔고 여러가지 기능을 하는듯 했지만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적어내야 하는것이 많은 것도 낯설었다. 더구나 여권번호까지 적어야 한다는 대목에선 의아할 뿐이었다. 가격도 비쌌다. 한시간에 팔백사십엔 거의 만원이다. 그래도 절박한 나에게 문제가 될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한글지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엄습해오는 피로와 지친몸을 공원의자에 던져놓고 망연자실 허공을 바라보았다. 전쟁터에 나가 무기지원을 받지 못하는 병사의 처지를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인 통신망이 구축되어 있어서 번잡한 짐을 덜고도 소통이 가능했다. 마치 미군이 추진하는 경무장의 스트라이커부대처럼말이다. 스트라이커부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터넷망이 그러하듯 거대한 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열심히 싸울 것을 결의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유엔사는 그러한 거대체계를 건설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까 걸림돌일까 디딤돌일까. 일본에 인터넷 문화가 한국만큼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들어보니 일본은 자신들이 사용하기에 너무 편리한 워드체계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여 이것이 정착되었고 그래서 이체계를 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유엔사 역시 한반도와 일본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틀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계철선을 포기하고 군사혁신을 추구하는 미래 미군혁신 계획에 있어 유엔사는 짐이 되고 있다. 버리긴 아깝고 안버리면 짐이 되는 존재말이다.
어쨌든 오늘이 되어서야 정말 우연치 않게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부산을 떠나서 오늘까지 하루 뒤의 운명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다. 사실 내게 닥친 가장 큰 위기는 이것이었다. 사물의 발전이 사람의 주관적 의지와 무관한 객관적 실제인가 아니면 사람의 의지로 개척될 수 있는 도전의 대상인가. 이 갈림길이 내게 현재 내놓을 수있는 답변은 하나였다. 일정의 불확실

나리타에서 간사이로
도착지가 나리타에서 간사이로 바뀐 것은 김해공항 출발 한시간 전이었다. 전날밤 비폭력평화물결의 대표이신 박선생님과 함께 내려오신 김영진님, 그리고 나는 일본출발준비를 위한 바쁜일정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서 그동안 일본에서의 일정을 상의해온 오사카의 도유사선생님으로부터 온 마지막 이메일을 확인했다. 부정적인 답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행은 부산으로 도착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안개속으로 파묻하는 것 같았다. 한일오끼나와연대운동을 이끌어온 도유사선생님은 처음부터 이 일정이 무리이므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과 그 이유를 조목조목 적어보내오셨다. 첫째 지금 일본은 몇십년내에 경험하지 못한 폭염으로 사망하는 사람까지 생기고 있고, 둘째는 일본청소년들의 범죄가 여름방학만 되면 상상할수 없을 만큼 폭증하기 때문에 안전문제를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일본의 우익과 경찰이 북의 납치사건 시인이후 남이든 북이든 조선사람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것이다. 네째 팔월에는 일본단체사람들이 거의 모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대회에 참여하기 때문에 조직이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단체들 조직문제가 어려운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헤쳐나갈 수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도선생은 다시 간곡한 편지를 보내셔서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려 하였다. 뭔가 내가 판단을 한쪽으로만 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박선생님께서 도유사선생님의 편지를 읽어보시고 한번도 직접 뵌적이 없는 도유사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하고 신중한 분인가를 예를 들어가며 깨우쳐 주셨다. 나는 그과정에서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선생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선생님은 이번 일처럼 준비없이 벌인 일을 수용하기 힘들어 하는 일본사회에 살고 있고, 몰랐으면 모를까 알고 있으면서 더구나 한번 부탁을 받은 일을 모른채 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지는 분임에 틀림없었다. 만약 도선생님의 뜻을 무시하고 일본행을 강행할 경우, 도선생님은 안된다고 말할 상황에서 된다라고 말해야하는 상황에 내 몰리게 될것이었다. 그것은 일본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도선생님을 몰아붙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일정을 포기할 것인가 그럴수도 없었다. 이 난처한 상황에서 박선생님은 참으로 현명한 답을 주셨다.

여러 사람에게 확인해본 결과 도선생님이야말로 이일을 책임질 가장 적임자입니다. 그를 어떤 경우에도 곤경에 빠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선생님이 글에 쓰셨듯 감동의 심리전을 벌여야 합니다. 어려운 일정이지만 도선생님을 우리가 감동시킬수있다면 도선생에 의해 방법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기위해 우리는 전략적 후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정을 후퇴하면서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도선생님의 마음도 움직일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일입니다. 예술가의 시적 상상력으로 시작된 이 일이 한일간에 연대를 넘어선 연합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들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가가 기록으로 남아야 합니다.

박선생님은 이일의 세부조차도 하챦은 일상이 아닌 역사로 보시고 있었다. 부산에 이틀 일찍 도착하고 하루늦게 출발을 늦추어 3일을 벌었다. 그리고 그 기간에 안전문제를 풀수있는 방법으로 일어를 속성으로 배우기로 했다. 또한 백방으로 일본에서 조력할 사람과 단체를 알아내어 도선생님과 연결하기로 했다 날마다 진행상황을 도선생님께 편지로 알려드렸다. 도선생님은 자신의 뜻을 이해해주려고 해서 고맙다는 말과 이년전 나고야에 삼천리철도의 초청으로 왔을때 초청자인 도상태씨가 자신의 형님이며 형님께 물어보니 이시우는 좋은 사람이니 돕자고 말했으며 잘 상의하셔서 좋은 답변이 오길 기다린다는 답장을 보내오셨다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삼일이란 일정안에 일어를 배우고 일본행을 준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일어강사를 구해야 하는 일이 우선 벽에 부딫쳤다 박선생님과 한번 뵌적이 있다는 생명의 전화 오흥숙선생님이 이일을 맡기로 하셨는데 첫만남인 식사자리가 있었다. 오선생님은 헤어지는 자리에서 부탁을 받긴 했지만 쉽진 않을 것이란 말을 남기셨다 저녁으로 성의를 다 하시겠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강사섭외가 어렵겠다는 전화를 주셨다 하루를 허송하고 반나절이 흐르고 있었다 박선생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는 박선생님의 친구분이 오전중으로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전화를 주셨다. 부산외대 유동훈교수님과의 해운대 달맞이광장에서 만난 것은 그렇게 해서였다 간단한 인사뒤 무작정 일어공부로 들어갔다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두터운 신뢰관계가 없다면 상상할수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교수님과의 시간이 다 되어 갈때 오흥숙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탁을 받은 박선생님께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사람이 없었다는 이메일을 쓰려다보니 정말 백방으로 알아본건가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알아보다보니 정말 적합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저녘시간에는 그분을 만나러 갔다 노인과복지라는 단체의 이일녀선생님이셨다 하루간의 정신없는 공부였지만 저녁쯤이 되자 일어라는 언어의 벽이 내앞에서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감을 얻은 하루였다 나의 상황에 맞는 교수방법을 고민하면서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덕이었다 사람들의 성의가 불가능할 것 같은 이일을 한걸음씩 전진시키고 있었다
평화시민연대의 강제숙선생님과 통일맞이와 통일뉴스에서 백방으로 일본과 연락하며 조직을 하고 계셨다 도유사선생님께 이런 진행상황을 알리고 답장을 기다렸다 예정대로 일정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출발전날밤이 되어서 도선생님의 메일이 도착했다 답장을 본 순간 앞이 깜깜했다 일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런 상태라면 도울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삼일간의 노력과 성의는 도선생님의 고민을 덜어드리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내일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알수가 없었다

박선생님과 상의하고 강제숙선생님과 전화로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 것인가. 의견은 일정의 연기냐 강행이냐로 모아졌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렇게 기계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많은 사람관계의 결이 남아있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손바닥이 마주쳐지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도선생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일만이 남은 것 같았다
한 사상가의 말이 생각났다 세계는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전하는 객관적 실제이지만 사람의 의지와 사물의 법칙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건 비약만이 그것을 가능케한다. 관계의 혁명. 그것은 목숨을 건 비약이다

새벽에 이메일을 보내고 김해공항으로 출발하며 도유사선생과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이일정의 운명을 결정할 통화였다

혹시 이메일을 보셨습니까? 이 메일을 보실수있으십니까?
예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메일을 확인하신 뒤 다시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도선생님은 지금 어디냐고 물으셨다 공황으로 가는길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도선생님의 말투가 달라지며 지금은 바쁘니까 다시 전화합시다라고 하신다
언제쯤 다시 연락을 드릴까요
다시 연락합시다

통화를 듣고 있던 박선생님의 표정도 굳고 나 또한 그랬다 그 미묘한 어투에서의 일방적인 절통은 아무래도 도선생님이 거절의 뜻을 분명히 한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뜻을 무시하고 일정을 강행하는 것으로 해석하신듯 했다.도쿄에서 도선생님과 만남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무리한 희망이 되었다 오사카로 직접가기로 했다 박선생님이 한곳에 연락하셔서 도쿄행을 오사카행으로 바꾸셨다 비행장에서는 시간에 쫒겨 달리듯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는 평소에 볼 수 없는 시야를 제공하기에 나는 비행기를 탈때면 한순간도 눈을떼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런 여유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도선생님께 연락을 드리자 도선생님은 어디냐고 물으셨다 간사이라고 하자 도선생님은 무척 놀라며 그렇지 않아도 이시우씨가 잘아는 비폭력평화물결 회원인 이윤숙씨와 점심을 먹고 헤어졌노라고 하셨다. 도선생님과 만나서 간 곳은 오사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 빌딩이었다. 자신도 이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자리에 않고 이야기가 시작되어서야 도선생님을 편하게 볼수있게 되었다. 도선생님은 많은 자료를 가지고 나와 하나하나 내게 설명해주셨다. 김해공항가는길 전화통화에서의 미묘했던 거절의 메시지는 만나는 순간 아주 단순한 오해였슴이 증명되었다 그는 무척 활달하고 열정적이며 진지했다. 여러사람들을 통해 들었던 그분의 인간적 매력은 결코 과장된것이 아니었음을 알수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유사선생님께서 유엔사해체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으셨고 거듭해서 한일 단체간 연대가 아닌 연합이란 단어를 사용하시며 새로운 화두를 반기시는 눈치였다.
살아있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어감은 많은 궁금증을 해소 시켰다. 말에 담긴 것은 의미만이 아닌 가치임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우린 어느새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지금의 안좋은 사정과 10월 정도가 조직하기에 수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했다. 그리고 8월 6일과 9일에 있을 원폭대회에 참석하여 일본의 단체들에 정식으로 제안하고 조직하는 것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넜는데 배가 아까워서 산에까지 짊어지고 가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걷기의 형식이 아닌 그 목표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했다. 그리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양보할수도 있는 것이었다. 융통성이란 사물의 다양한 발전과정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원융의 정신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합의 못할것이 없었다.

그럼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고민 하고 있을때 도선생님이 일정을 바꿔서 오끼나와부터 하면 안되는 거야라고 물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그렇게 하면 되겠다는데 합의했다. 히로시마로 가기전까지 오끼나와에서 먼저 걷기명상을 실시하고 지금 헤코노마을에서 미군 해상기지 건설에 반대하여 싸우는 주민들의 농성에 함께 하는 것으로 했다.

내일 바뀐 일정에 따라 오끼나와로 간다. 그리고 8월4일 오사카로 와서 8월6일 히로시마로 8월9일 나가사끼로 간 뒤 사세보까지 가서 사세보에서 1차 일본 일정을 마무리한다. 8월 13일 인천공항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