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40일째 오끼나와 후템마기지의 철수와 헤노코2004/07/30 1219


오끼나와 후템마기지의 철수와 헤노코기지 신설은 유엔사해체의 징후

헤노코농성장
오끼나와 헤노코 농성장에서 이틀을 보냈다. 통역자가 돌아가고 나서 내가 사람들과 소통할수있는 말이란 극히 제한된 것이었다. 그래서 틈만나면 일거리를 찾아내려고 했다.사람들과 농성장을 정리하며 드는 생각은 말이 다르더라도 일하는 것만은 같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하는 것이었다. 말하는것을 통한 연대보다 일하는 것을 통한 연대가 더 편안한 것도 내겐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게 생긴 신뢰 덕분에 일본말도 부쩍늘고 있었다.

나서서 말하기를 아직도 부끄러워 하는 터라 첫인사로 만남은 간단히 끝나는것 같았다. 그런데 열심히 메모를 하며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할머니가 한분이 계셨다. 에쯔미란분이었다.고상하게 나이든 노인에게서 느껴지는 고귀한 풍모가 자연스레 몸에서 배어나오는 분이었다. 그녀 덕분에 끊어질듯 이야기는 이어졌고 통역자를 통해 유엔사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그들은 모두 놀라워 하며 몰입해갔다. 특히 51년 9월 요시다와 애치슨장관 사이의 유엔군지원교환공문에 의거 지금도 자위대가 자동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 충격을 받는 모습이었다. 그뒤 통역자가 돌아가고 난뒤에도 토론과 질문은 계속이어졌으며 농성장에 상주하던 기자들은 도착소식을 다음날 신문에 알렸다. 다음날은 헤노코농성이 100일을 맞이하는 집회가 있어 오끼나와의 전 시민단체와 일본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왔다. 신문에서 농성기사와 함께 나의 기사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관심을 표명하며 토론했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토론이 가능함을 느끼게 했다. 다음날이 되자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나에대해 또 시간이 허락하는 눈치면 유엔사문제에 대해 지치지않는 수행자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단한명도 스치지 않고 반드시 자리에 멈추게하는 힘이 그녀에겐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권위였다. 그들은 그녀의 소개로 내가 누구인지 무슨일로 왔는지를 서두름없이 조근조근 알아갔다. 그결과 오전에 도착하기 시작한 각지역의 활동가들은 이미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녀가 집에서 가져온 일한사전 한일사전 두권이 농성장이 흘러다녔고 한국말 배우기가 또 나의 일어배우기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되었다.

후템마기지

오끼나오 기노완의 후템마 해병대기지는 도시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가운데가 비어 있다는 의미로 후템마를 [도너츠도시]라고 비유한다. 기지의 펜스를 따라 7개의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다.해병대의 헬기가 활주로에 뜨고 내릴때 진입각도가 0.7도만 어긋나도 학교에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연구되어 알려졌다. 이외에도 미군들의 범죄문제와 주변지역의 문화적 이질감이 가져온 상황들의 총체가 시민들의 우려로 나타났고 그 우려는 다시 분노로, 분노는 급기야 저항으로 발전되어 주오끼나와 미군 당국을 압박하였고 일본정부에서는 후템마기지가 철수 할것이라는 발표를 흘렸다. 일본최대의 전화회사인 엔티티의 평범한 직원에서 오끼나와평화 활동가가 된 도미야마씨는 힌마디로 ‘믿어지지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당국은 일본정부의 발표를 즉각 부인했고 다시 상황을 판단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또다른 해병대기지인 켐프 슈와브가 위치한 헤노코마을 앞바다에 새로운 해상기지를 건설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미군이 왜 해상기지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이곳 활동가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었다.

우선 후템마기지의 기동성저하이다.

오끼나와의 기지들은 아무리 최근에 건설된것이라도 30년 이전 것이다. 후템마는 도시에 포위되어 기동성을 발휘하기엔 이미 틀려버렸다는 분석이다.장비를 싣고 급히 이동해야 할때 통과해야하는 나하시는 심한 교통체증으로 주차장처럼 서있어야 하기에 겪는 불편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미 시민들의 생활의 발전이 군사를 압박하는 것이다. 헬기가 그나마 자유로운데 시민들은 헬기 이착륙시에 발생하는 소음과 착륙진입각도, 진동으로 인한 피해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저항은 자연스런 생활구조의 변화와는 달리 조직적이고 의식적으로 군을 압박한다.물리적인 기동의 저하뿐아니라 정신적인 기동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즉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연계성이다. 해병대는 기본적으로 원정부대이다. 후템마의 병력이 주로 이용하는 부두는 켐프 화이트비치이다. 이곳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증가하고 결국 부대가 산개해 있다는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지를 축소하면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는 것은 미군전체의 변화와도 상통한다.
현재는 북쪽지역인 나고에 해병대가 남쪽인 나라에 군사항구가 중간인 우라소에에 보급기지가 있는데 나하의 군항은 얕아서 아얘 안쓰고 있는데 우라소에에 군항을 만들면 보급기지 바로 옆에서 군항에 배를 대놓고 수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헤노코에는 슈와브해병기지가 있어 기지가 건설될 경우 최대의 해병대기지가 될 것이다. 우라소에와 마찬가지로 헤노코는 탄약고 앞의 바다깊이가 25미타나 되기 때문에 원자력잠수함은 물론 항모도 들어 올수있다.

한편 헤노코탄약고는 핵무기가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계속된 곳이다. 신도겐이치의 책에 의하면 헤노코탄약고안의 1097번호가 붙은 이글루식탄약고에 핵이 보관되어 있을것이라고 했다.신도겐이치의 추정근거는 탄약고에 붙는 표식인데 1097탄약고에는 숫자 ’1′이 부착되어 있었고 그것은 핵무기보관을 상징하는 표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군탄약교범에 의하면 최소한 지금은 그렇지 않다. 1은 고폭탄을 뜻하며 핵은 오히려 탄약고에 어떠한 표식도 존재하지 않을때 이다. 이곳 활동가들은 핵이 있을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수십번이나 지나가는 비를 맞고 밀림을 헤치며 직접 확인을 해 보았다.1097탄약고를 외부에서 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른 탄약매거진과 달리 숲에 둘러싸인 탄약고지역 중심부에 4개의 피뢰침이 사각형을 이루며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군의 탄약보관에 관한 야전교범에 의하면 번개를 맞아 대형폭발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탄약에 대해서는 탄약고 주위에 규격에 따라 피뢰침을 설치 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핵무기의 실체로 접근하길 원한다면 바로 그 탄약고가 감시 일순위가 되어야 할 터이다. 타이라나쯔메 목사에게 이 같은 이야기를 하자 탄약고를 설계한 사람은 자신의 친구인데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그 건물은 핵무기 보관을 위해 설계되었다.’ 그 정도의 정보가 있다면 움직여야 한다. 라고 나는 말했다. 유엔사 문제와 더불어 한일의 운동을 하나로 묶일수 밖에 없도록 만들 주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한 비핵지대화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엔사기지의 폐쇄문제
어쨌든 후템마기지의 폐쇄와 헤노코기지의 신설은 유엔사 문제와 관련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후템마기지의 폐쇄는 유엔사기지의 폐쇄를 의미한다. 후템마기지가 유엔사의 일본 후방기지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폐쇄된다면 유엔군사령관은 부대목록에서 후템마기지를 해제하고 이를 미합참의장에게 보고하며 합참의장은 유엔안보리에 적절한 보고를 하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 될 것이다. 그렇다면 후템마기지가 옮겨가는 헤노코기지는 다시 유엔사 후방 기지 부대목록에 포함시킬것인가? 아닌가?
유엔사 공보실에 질문지를 보냈다. 얼마되지 않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신속한 답변이 왔다.

첫째 후템마기지의 철수는 공식적으로 언급된 바가 없으며 철수를 전제로 하는듯한 어떤 답변도 할 수 없다.
둘째 개인적 의견이지만 만약 부대를 폐쇄한다면 그 기지는 당연히 제외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지를 포함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만일 그의 말처럼 된다면 미군재배치 작업은 유엔사의 해체를 거들며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헤노코 기지가 유엔사 후방기지에 다시 포함된다면 이는 즉각 거부되여야 할 것이다. 헤노코에서도 유엔사문제는 살아있는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