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명상 40일째-해인 유지 선생2004/08/09 1138

7월 29일 – 해인 유지 선생

아무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도 소금기 섞인 끈적 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어떤 것도 녹슬지 않는 것이 없고 사람마저 이 바다바람에 녹이 슨다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적응해버리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바다에서 뜻 모를 사랑을 본다. 저 넓은 가슴을 쉼 없이 바람으로 쓸어내려야 하는 바다의 허무를 본다. 바다는 제 방식을 보이는 이로 하여금 감염시키는 힘이 있고 바닷가 사람들은 그 감염을 받아드려 운명을 개척하려한다. 그래서 사람은 결국 바다를 닮아간다. 이런 자신들을 ‘海人해인’이라 부른다. 가장 간명하고 적절한 작명이다.

끝없이 바람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8년간 망부석처럼 제자리를 지켜온 유지 선생에게서 바람에 쓸려간 드넓은 바다의 태허를 본다. 3년전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의 인상은 쉽게 낯이 익어지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제야 그의 얼굴에 담긴 바다의 태허를 알듯하다.

이번에 오끼나와에서 알게 된 유학생 진필수는 내게 말했다. 헤노코와 킨의 차이점은 킨이 생존권 투쟁이라면 헤노코는 역사투쟁이다. 활동가들이 경향각지에서 모여드는 것도 그렇고 줄다리기 축제에 미군을 초청하는 것도 그렇다. 싸움의 방향을 기획하고 지도하는 젊은 활동가들이 일을 척척 추진해 가는 모습도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그러나 내가 얼굴을 아는 것은 그가 유일했다.

영민한 활동가들이 들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는 자리를 지켰다. 8년간을 이끌어온 이 지도자가 하는 일은 농성장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혀줄 요량으로 끝없이 물탱크에 물을 채워 날라다가 농성장 앞길을 적시는 일이었다. 이렇게 소박한 지도자를 나는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제자리를 지킨다는 것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 바다 같은 경이 앞에서 오고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끝없이 마음을 비우고, 비우고를 했을것이다. 그 기나긴 역사를 유지 선생은 자신의 얼굴에 고스란히 기록해 놓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서야 그의 얼굴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2005/03/21 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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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고개를 넘던 그때를 기억하고 싶소
나에게도 어려운 동화의 시절이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