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무부정보분석국

미국 국무부 정보분석국 관리는 1972년 7월 7일자 보고에서 주한미국군 감군은 남(한국)의 대북(조선) 입지를 완전히 침식해버릴 것이므로 주한미국군의 규모에 어떤 변동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부분적인 감축도 박정희의 대북(조선) 협상력과 정치적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므로 결국 미국 정부와 의회 모두 주한미국군의 추가감군을 추진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미 국무부 비밀문서로 밝혀진 7.4 남북공동성명 내막-박정희 권력욕, 미 압박이 대북협상 물꼬 텄다」, 『신동아』 2004년 1월호)
(http://www.onekorea.org/남(한국)의 비밀핵물질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국무부 관리 대부분은 해외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외교관, 국제관계 및 지역문제전문가들이었다. 1979년 국무부에서 ‘작은 펜타곤’이라고 불리던 정치군사국(Bureau of Politico-Military Affairs)은 외교관이 아닌 전직 뉴욕타임스 평론가인 레슬리겔브(Leslie Gelb)가 주도했다. 군사력통제문제를 두고 펜타곤과 벌이는 어려운 논쟁을 처리하려고 겔브는 젊은 행정, 군사분석가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을 만들었다. 나는 그팀의 일원이었고 다른 젊은 관리와 함께 이후 20년동안, 계속 중요성이 높아졌던 업무를 담당했다. 팀원중에는 후에 대통령의 국방정책 특별보좌관과 아버지 부시정권에서 국무차관을 역임한 아널드켄터와 네명의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참모를 역임한 랜디비어스(RandyBeers), 그리고 20년동안 펜타곤에서 고위관료로 근무한 후 대통령특별보좌관이 되었고 9.11테러때 텅빈 백악관에서 나와 함께 머물겠다고 한 프랭클린밀러가 있었다.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는 두가지 충격이 있은 후, 정치군사국의 분석가들은 페르시아만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모든적에 맞서 P71-72)
*정치군사국 인맥과 페르시아에 대한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