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대활동(1)창작활동6)새예술형태1.대화술2002/09/09

제4장 자주문예운동의 4대활동
(1) 창작활동에 대하여
1) 문예에 대한 견해 (예술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의 체계)
2) 문예의 본성
3) 문예에 대한 관점
4) 문예관
5) 예술작품의 구조
1. 외적형식
2. 내적형식
3. 내적형식과 외적 형식을 연결하는 요소들
4. 작품의 내용
6)새로운예술형태창조의 예
1.대화술

6) 새로운 예술형태의 창조 예
1. 국민이 주인으로 나서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형태 대 화 술
ㄱ. 대화술은 시대의 요구속에서 제안되는 새로운 예술 형태
예술의 형태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속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발전, 완성된다. 복잡하고 전면화된 사회모순구조를 담아내고자 하는 요구가 소설을, 새로운 기계의 발전을 형상수단으로 수렴하고자 하는 요구가 사진과 영화로, 민족고유의 정서를 표현하고자하는 요구가 민요와 풍물, 탈춤으로 창조, 발전 완성된것이 그 예이다.
시대의 요구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주동적인 것은 대다수 민중의 정치적 요구였다. 풍물굿만보더라도 현재에서도 생생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 풍물굿으로 발전된 것도 10C였다. 땅도 땅도 내땅이다. 조선땅도 내땅이다라는 구음이나 봉건왕조를 상징하는 별에 대한 혁명의지로 별따세 별따세 하늘 잡고 별따세라는 구음으로 회자된 것도, 각종 군악과 전투 풍물적 요소가 등장한 것도 반외세 반봉건의 요구가 하늘을 찌르던 19C의 조선말의 시대의 요구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6월항쟁 이전 조금만 사람이 모여도 최루탄이 발사되어 해산될 정도로 사람이 모여 집회하기가 힘들던 시기에서 수만명이 모여 집회를 해도 신문에 1단기사 정도로나 처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는 이런 현상에 좌절하기도 하고 누구는 더욱더 고집스럽게 갈길은 가야한다고 한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기차가 정거장에 들어오기까지 승객들은 기차가 오는 쪽을 향해 모두 시선을 집중시킨다. 기차가 올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시선집중도는 더 높아진다. 그러다가 막상 기차가 도착하면 하나로 모아졌던 시선은 다시 자기자리를 찾아 가기에 바빠진다. 이러한 시선의 분산, 관심의 분산을 분열로 볼 것인가, 발전으로 볼 것인가?
원래 기차는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온 것이었다. 지금은 질서있게 승객을 차에 태울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시선과 관심의 분산에 초조할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승객을 기다리게만 했지 차표를 미리 나눠주지도, 몇호차가 어디에 서는 지 푯말을 박아놓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이제 기차를 내가 운전하겠다고 나서는 놈도 있다. 이렇게해서 생기는 혼란과 분산을 막기 위해 한쪽에서 나를 따르라고 호루라기 불고 집회만을 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열심일꾼끼리 모이기 전에 준비된 일꾼부대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질서를 잡아주고 안내해 주어야 한다.
지금은 질서요원과 안내자가 필요하다. 거리마다에서의 문예행사도 이에 큰몫은 했지만 ‘앞서서 나가니 나를 따르다’가 다양화된 것일 뿐 주인이 승객들과 진정으로 함께 가자는 것으로 되진 못했다. 국민을 향해 선전과 선동만이 아니라 차분한 1대 1 대화로 통일 투사에서 통일의 전도사로, 거리에서의 화염병 등 시위방법에서, 집집마다 방문하는 세일즈방식으로 바뀌어야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6월항쟁 이후 우리에겐 정리되고 합의되진 않았지만 새로운 예술형태로 웅변술이 요구되고 발전되었다. 정치적 이념을 딱딱한 명제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으로 전달하려는 요구의 고양이 가져온 결과였다. 우리에겐 어느 집단에도 없는 뛰어난 연설가들이 있었다. 그들의 한마디에 눈물흘리고, 박장대소하며 수만이 거대한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몇날몇일 잠못이루며 결의를 다지던 사람도 여럿있었으리라. 그리고 웅변술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선전선동훈련, 연설교실의 형태로 체계화되고 교육되어졌다. 이로써 타고난 연설가들 뿐아니라 교육과 훈련으로 탄생한 2세대 연설가들이 이땅엔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연설도 대중을 대상화 시킨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대중이 주인으로 되게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대중이 주인되는 문예운동을 열심히 일궈온 일꾼들에 의해 우리는 기존에는 보도듯도 못하던 새로운 예술형태들을 많이 창조발전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형태들은 창작자-감상자라는 구조를 벗어나진 못했다.
이젠 같은 주체와 주체의 관계로 되는 예술형태가 요구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대화술이다. 대화술의 사상, 이론, 방법적 근로를 살펴봄으로써 단순한 기술이나 기법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예술의 그릇에 그 성과가 담겨지길 바란다.
ㄴ. 대화술의 사상적 근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대중을 주인으로 여기는 세계관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중주체, 대중주체하면서도 선의의 오류에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은 인식적인 편향을 띠거나 가치적인 편향을 띠는데, 이런 예를 들어보자
얼마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삼돌이:야! 우리 아주머니 편하게 하나로 통일해서 시키자.
팔봉이:야! 그러나 그러나 어차피 마찬가지니까. 이왕이면 따로 따로 시키자.
이것이 잠시 가벼운 논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와서
“아이구 싸우지들 말고 나야 어떻게든 비싼 거 시키면 좋지” 하신다.
삼돌이는 하나로 통일시키는 게 옳다는 당위에서 출발했고, 팔봉이는 아주머니 입장에선 어차피 따로따로 하게 되니까 우리 편하게 시켜도 미안할 게 없다는 자기 가치기준에서 출발했다. 둘다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논쟁한 것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주체인 아주머니의 이해요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추상적인 주체의 요구였다. 물론 자기나름의 경험속에서 추측한 것이기에 나름대로 일리는 있는 것이지만 아주머니가 직접 자기의 목소리로 얘기한 생생한 요구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아주머니를 자기 나름의 판단속에서만 주체로 설정해 두고 있을 때 이것은 소모적인 논쟁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주머니까지 무엇을 시킬 것인가 하는 판단의 주체를 참여할 때 이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주의할 것은 아주머니의 생생한 목소리하고 해서 그것이 모두 자주적인 요구는 아니다. 아주머니는 자기욕심만을 위해 얘기할 수도 있고, 아예 마음을 닫고 자기속을 털어 놓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요구의 통일은 합의에 의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차선이다. 합의에 의한 통일은 당위적 집중으로 나타나고 최선의 통일은 결의와 힘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기적 요구가 아니라 자각된 요구를 내세울 때 가능 해진다.
사람은 어떻게 자각하는가. 불교에 돈오점수란 말이 있다.
돈오는 순간적 깨달음을 말하며 점수는 이러한 깨달음을 학습과 체험적 단련을 통해 공고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 없는 지식과 실천은 때로 깨달음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 아는 사람이 배신하면 더하다는 말은 이에 해당한다. 또한 깨달음만 있고 학습과 실천 과정이 없으면 그것은 좋은 추억으로만 남고 만다. 6월항쟁을 경험한 모래시계 세대들이 80년대의 추억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이 자각된 주체가 된다는 것은 수많은 경로와 다양한 계기, 급격한 진전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자각된 주체가 되도록 안내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식당 얘기로 돌아가자. 우선 아주머니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추상화된 주체로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얼굴 마주보고 함께하는 주체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나도 변화되면서 달궈진 쇳물처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식 뿐 아니라 정서와 분위기와 직관이 하나로 통일되어 깨달음에 이르른다. 자각된 주체가 자각되지 않은 주체를 대상화하여 교육하고 교양해서 지각되는 경우도 있지만 진정한 자각은 함께하는 깨달음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에서 경험한 바 있다.
우리는 사람은 만날 때 여러가지 형태로 만난다. 사람관계를 지휘, 관리하기 위해서 정치의 형태로 만나고 사람다운 자질을 개발시키기 위해서 교육의 형태로 만나고, 형상을 통한 감동을 주기 위해 예술의 형태로 만난다. 그러나 이 경우 모두는 주체가 대상을 향해 맺어지는 관계이다. 물론 작용과 침투가 이루어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주체-대상의 관계이다.
그에 비해 대화라는 형식은 주체와 주체가 교제하고 소통하기 위해 맺어지는 관계이다. 대화의 형식을 통해, 그것이 교육적으로, 정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발전될 수 있지만 대화의 기본은 상대를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 관계맺는데 있다.
우리 예술에서 예술의 여러 측면 중 소통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열린 무대, 열린 판과 같은 형식이 나오게 된 것도 감동의 전달이 아니라 함께 감동을 만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동등한 주체로서만 사람관계가 맺어져서는 관계의 발전에 한계가 온다. 정확한 대상화가 필요한 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대화는 사람을 자각된 주체로 안내하기 위해 관계 맺어 나가는 형식중에 중요한 요소이다.

ㄷ. 대화술의 이론적 근거
대화술에 새로운 시대의 요구속에서 탄생한 예술형태라는 것이 주관적인 정의가 되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적이란 무엇을 말함인지, 구체적으로는 예술의 내용과 형식이 다른 사회의식의 형태와 어떻게 차이나는지 밝히고 예술의 특수한 쟝르인 대화술과 비슷한 쟝르와의 비교를 통해 최종적으로 대화술의 구조와 특성을 밝혀야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세계와 자신의 가치평가에 대한 인식을 그 내용으로 한다.
우선 예술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객관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과학과 다른 점은 세계에 대한 자신의 가치평가도 함께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죽음은 위대한 것이었다.’라는 표현속엔 이순신 장군의 죽음과 관련된 인식을 담고 있으며 거기에 자기 자신의 이 죽음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가가 나타나 있다. 과학이라면 이러한 표현이 용납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극복될 때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직접적으로 이것을 표현한다.
예술의 세계와 인간의 가치관계에 대한 인식이란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형식(정치, 종교, 법률, 도덕 등)과 유사하나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첫째, 예술은 정치나 종교법률들과 같이 분화된 형태로서가 아니라 이들의 총체를 일상의식속에서 형성되는 만큼 담아내는 것이다.
둘째, 예술은 이데올로기적 구조보다 일상적 의식의 구조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술에서는 지식과 정서, 의식과 무의식이 생동하게 통일되어 있는데 비해 이데올로기는 현재의 상태야 어떻든 지향성이 뚜렷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통일은 대상화시키고 파괴되지 않으면 않된다.
레닌이 `기회주의는 정치적 문제이다. 나약해서 배신하는 자와 노골적으로 배신하는 자의 차이는 개인적으로 크지만 정치적으로는 같다.’라고 했을 때 사람이 구체적인 차이속에서 이해되고 통일될 수 있는 것은 예술적 구조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일상적 의식에 강한 영향은 일으키고자 할 때만 그것은 예술로 전화된다.
이런 점에서 노조와 학생회서 수많이 진행된 선전선동훈련 또는 연설교설의 내용은 잘 들여다보면, 자기가 지향하는 목적의식적인 가치에 대해 어떻게 대중을 설득력있게 이해시키고 함께 하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세밀한 고민들로 채워져 있다. 선전선동 또는 연설, 웅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념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생활의 구체적 요소, 형상적 요소와 조화를 이루므로해서 가히 응용 예술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TV나 라디오 등의 발전은 이러한 응용예술을 확장시키고 있으며 TV 예술 고유의 특수성 중의 하나를 포착하기도 한다. 대화술도 이런 응용예술의 영역에 있다.

ㄹ. 대화술의 방법적 근거
성공적인 대화사례를 한번보자

어머니가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의 방을 청소하다가 책상 서랍에서 ‘담배갑’을 발견했다.어머니는 드디어 나에게도 올것이 왔구나하고 눈앞이 깜깜해지고 가슴이 내려 앉는 것을 느꼇다.아들에 대한 배신감과 어떻게 해야하는 생각으로 자리에 선채 몇시간을 있었다.그리고 내린 결론은 오히려 잘됐다.이번참에 이 애가 담배를 끊을수 있도록 단단히 마음을 먹고 대하자.감정을 쉽게 드러 내서도 안되겠고 무조건 다그쳐서는 더욱 삐뚤어 질지도 모른다.마음을 비우고 비우기를 몇번 학교가 끝나고 아이가 집에 돌아 왔다.밥상을 물리고나서 삼식이 방에 문 두드리고 들어갔다.

엄마 ; “삼식아 엄마가 너한테 사과 할 일이 하나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좀 낼수 있니”
삼식 ; (왜 갑자기 이러시냐는 듯 퉁명스럽게) “뭔데요?”
엄마 ; “사실은 아까 청소를 하는데 네 책상 서랍에서 뭐가 있을 지 굉장히 궁금해 지는거야 그래서 네 허락도 안받고 열 어봤는데..담배갑이 있는 걸 보고 사실은 너무 당황 됐 어”
삼식 ; “아니 엄마 왜 남의 책상을 뒤지고 난리에요정말…
알았어요.고3까진 스트레스 받을일이 많으니깐 그때까진 피우고 대학 들어가면 서서히 끊어 볼께요 ”
엄마 ; “그래 네가 그렇게 솔직히 얘기 해주니까 고맙다.”
삼식 ; (시간이 좀 지나고) “근데 엄마 예전엔 안그러다가 오늘 은 이상해 지셨어요?”
엄마 ; “그러니”
삼식 ; “옛날에 엄마를 좋아 했을때의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엄마 ; (말을 못잇고 돌아서며 눈물흘린다)
삼식 ; (아양떨 듯 뒤에서 엄마를 끌어안으며)”에이 엄마…
담배 끊도록 노력 할께요.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는 몇번의 참기 힘든 고비를 극복하면서 아들을 변화 시키는데 성공했다.여기서의 대화방법을 일반화 시켜 정리해보자.

첫째,대화는 상대를 진정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의 방법이나 기술을 알고 있다고 해서 성공적인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순간 순간 자기 감정이 상처 입을 수도 있고,자기의 얘기가 의도하지 않게 엉뚱한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수도 있다.사람은 주인으로서 자각할 때 가장 힘있게 변화한다.그래서 대화 하기전 마음을 정리 하고 다잡아 보는 것은 중요하다.이 어머니의 경우에도 처음엔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 봤다.
우선, “너 당장 담배 안끊으면 아버지한테 일른다”라고 위협하는 것이다.이런 경우 가장 않좋은 대화법이다. 위협하므로서 아이가 ‘엄마는 나의 개성따위는 안중에도 없구나 그래 당장 고개 끄덕이고 상황이나 모면하자’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것이다. 그뿐아니라 아버지한테 문제의 해결권을 넘김으로써 엄마를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한판 붙을 지언정 엄마는 아버지 의견 앞에서는 아무런 실권이 없는 존재로 인식한다.
다른 경우는,”너는 괜챦은데 아무래도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런 것 같으니 친구들 만나는 걸 자제하면 어떻겠니” 라고 하며 아들은 감싸주고 제3의 적을 만드는 방법이다. 당장에 아들의 감정의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만약 아들이 ‘ 맞아요 모든 원인이 제 친구들한테 있어요’라고 인정하게 되면 친구들의 의리를 상황에 따라 쉽게 배신하는 저열한 인간이 될것이고,다행히 그렇지 않다면 자기 한 사람에 대한 부정이 아닌 자기가 속한 세계 전체에 대한 부정이 되므로 더더욱 감정에 상처를 받고 어머니를 불신 할 것이다.
자기의 가치판단을 그대로 수용할 것을 강요하면, 상대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상대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되도록 하면서 일부러라도 다른 방향으로 가게된다. 이런 자세는 검사의 논고나, 추상같은 윤리강령은 될 수 있어도 대화가 될순 없다. 대화는 상대를 진정 주체로 존중할때만 가능해진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아들의 책상을 열어본것에 대해 사과 먼저 하기로 했다. 상대의 잘못을 먼저 발견했거나,자기의 잘못에 비해 훨씬 큰것일 지라도,자기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를 인정하는 것만으로 모든게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씩 인정을 해주니까 되레 상대가 자기 잘못은 없는 것처럼 대들면 어떻게 할것인가. 소극적인 사람이면 꺼꾸로 당한 자기한테 피해의식이 생길것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면 대화고 뭐고 한판 붙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의 분명한 잘못을 보고 어떻게 무조건 미안한 마음만 가지란 말인가?그거야 원칙이고 현실은 아니다. 맞다. 현실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며 자기가 대화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 그토록 힘들기에 마음을 다부지게 다져야한다.이것인 상대를 주체로 인정하듯이 또하나의 주체인 내가 더욱 자각된 주체가 되기 위해 결의를 다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자기 스스로가 무너지면 여기서의 대화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목적도 이룰수 없게 된다.이번 대화야말로 상대를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로 만들자는 주체적 다짐,이것이 대화법의 발전차 이다. 그래서 어느때고 자신의 다짐과 호흡이 흐트러 질땐 대화를 멈추는 것이 좋다.
이처럼 대화하기전 마음을 정리하고 자기다짐을 하는 것은 대화의 방법이나 이론을 정리하는게 아니라, 상대가 깨달을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정리 하는 것이다.그래서 관점과 방법이 머리속에 환하게 잡히면 대화를 시작한다. 이는 마치 작가가 작품을 손대기전에 머리속에서 작품핵을 확실히 틀어잡는 과정과 같다.
 
둘째,상대의 행동에 대해서는 객관적 사실만을 얘기하고,자신의 감정에 대해선 솔직하고 순서있게 얘기하라
담배갑을 발견한 부모가 다짜고자 “너 이리와봐! 아니 네가 나이가 몇인데 벌써 담배를 피우고 다녀 이자식아, 아이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넌 글렀다 글렀어” 라고 했다면 두가지 잘못을 한 것이다. 그 하나는 객관적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라도 본인의 입을 통해서 확인 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자신도 잘못을 객관화 시켜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정 이전에 단정을 지어버리면 설령 사실이 그렇다 치더라도 절차상의 반발심이 생길수 있다. 자기가 잘못햇다는 사실보다 절차를 무시하고,자신의 인격을 무시하는 상대에 대한 불신의 감정이 더 크게 자리잡아 뒤범벅이 된다. 우리가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 부터 그렇게 많이 혼났지만 무엇 때문에 혼났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고 그때의 나쁜 감정만 남아 있는것은 우리 스스로 이런 과정을 겪었음을 의미 한다.
또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한게 아니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것으로 강요 되었다. 사실에 대한 인식과 감정에 대한 인식은 다른 형태를 갖고 있다.사실은 누가봐도 객관적인 것이지만 감정은 그 감정을 느낀 사람의 가치판단으로 부터 발생하기에 내가이렇게 판단한 것을 상대방은 전혀 다르게 판단할수 있고 그결과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때문에 사실은 객관성을 갖고 있기에 강요되어도 결국은 인정될 수 있지만 감정은 절대로 그렇게 인정되지 않는다. 감정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감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감정 상태를 솔직하고 순서있게 즉,감정의 논리에 맞게 그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삼식이와 엄마의 대화에서 엄마가,”청소를 하는 데 네 책상 서랍에 무엇이 있는지 굉장히 궁금해 지는 거야 그래서 열어봤어”라는 표현은 매우 솔직하다.만일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네 서랍을 열어 보게 됐어”라고 했다면 삼식이는 ‘우연히는 무슨 우연 열어보고 싶었으니까 열어본거지 엄마는 아직도 나를 엄마 맘대로 할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거야’라고 결론 내릴 것이다. 사실 우연히 열리는 경우는 있지만 우연히 열어보는 경우는 없다. 이처럼 솔직함이 없는 대화는 금방 단절을 가져온다. 때문에 솔직한 감정묘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래 나라도 그럴 수 있지’하며 공감을 이끌어 낸다 왜냐하면 그것이 생활의 논리이고 감정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정의 논리에 맞게 표현되지 않을 때 감정은 표현이 아니라 주장이 되어 버린다.감정의 전달은 표현을 통해 감정이 감정에게로 호소하는 것이다. “너무 당황 됐어”는 감정의 논리에 따라 잘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만일 “담배갑이 있는 걸보니 너 정말 안되겠더라” 라고 감정표현 대신 자신의 가치판단을 얘기 했다면 삼식이는 ‘그래 엄마는 당연히 그럴거야 그러니까 엄마지’라고 생각하며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엄마의 가치판단을 최대한 자제하고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있는그대로 표현해주는 것은 상대가 ‘그 상황에서라면 아마 나라도 그랬을 거야’라고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상대가 자기의 입장을 바꿔서 이해해 보려는 태도를 만드는 것이 감정표현의 목적이다. 때문에 그것은 자기의 욕심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삼식이의 경우도 엄마가 그렇게 자제하고 인내 했건만 겨우 한다는 소리가 “알았어요.. 대학 들어가면 서서히 끊도록 노력해 볼께요”라니 이때 쯤이면 아들에 대해 실망하고 이렇게 자상하게 해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가 자기의 욕심에 가려 삼식이의 태도변화를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퉁명스럽고 투박하게 표현 했지만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입장의 변화가 나타난 것 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리고 그 다음의 가치판단이야 자기 수준에서의 최선인 것을 어쩌랴.엄마의 마음을 아직 덜 이해 하기 때문 인 것이다. 문제는 유약한 감정표현인가,뜨거운 감정표현 인가에 있다. 삼식이가 엄마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옛날에 엄마가 좋았을때의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말했을때 엄마가 말을 못잇고 눈물을 흘리자, 삼식이는 결국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엔 담배를 피우는 사실에 대해서 계속 얘기 되다가 엉뚱하게 “그런데 엄마 이전엔 안그러다가 오늘은 이상해 지신 것 같아요”라고 대화 방향이 바뀐 것은 사실과 논리의 발전이 뒤로 물러나고 감정의 발전이 본격화 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감정의 흐름을 다시 논리의 흐름, 당위의 흐름으로 뒤바꿔 놓으면 대화는 다시 벽을 만날 것이다. 논리가 평행선을 긋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감정으로의 발전 ,또 낮은 감정에서 고양된 감정으로의 발전이 이루어졌을 때 대화는 무르익어 진다. 상대의견에 대해 나의 의견을 말하기 이전에 상대방 의견의 배경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말과 주장에 대응하기 전에 말의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에는 논리와 정서가 고도로 통일된 지혜가 필요하다. 옛날 한 왕이 파랑새를 너무나 예뻐하여 금으로된 새장과 장식을 만들어주고 하녀를 시켜 이새를 시중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새가 죽었다. 왕은 대단히 진노하여 하녀의 목을 당장 베라고 명령했다. 하녀는 나와 말하기를 저는 세 번 죽어 마땅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왕은 기분이 좀 누그러들어 죽기는 죽는데 왜 세 번 죽어야 한다고 하는지 물었습니다. 하녀 말하길 첫째는 임금님이 사랑하는 새를 죽였으니 죽어야하고, 둘째는 새하나 돌보지 못하는 저스스로 자책하여 죽어야하고, 셋째는, 다른나라에서 임금님을 사람목숨을 새목숨보다 천하게 여긴다고 흉보게 만들것이니 세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이말 들은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하녀에게 내린 벌을 거두었다. 말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우리민족의 대화 사상을 엿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지혜로운 대화는 나의 변화와 상대방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발전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대화의 방법은 생활묘사의 진실성,표현의 순차성,주장(이념)과 정서의 통일등 예술형상방법의 원리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앞부분에 이어 대화술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형태가 되는지에 대해 방법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였다.대화는 수다 떨기와 같이 유희적인 의미에서 부터 말 한마디가 성전의 어록이 되는 고도의 철학적 의미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우리는 대화에서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택하는 편협함을 일부러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말한마디가 사실주의의 전형적 높이에 이르렀을 때 그말은 생활력을 얻고 사람들 사이에 회자 되며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되는것을 우린 보아왔다.그리고 뛰어난 조직가와 상담자는 이런 말을 창조해내는 창작자가 된다.머하이 되는 그렇다면 대화술을 어떻게 실제 생활에서 적용 발전 시킬것인가?
우리는 이미 대화술의 풍부한 토대와 인재를 갖고 있다. 우리의 조직 생활이 그것이며 날마다 밤새다시피 하는 뒤풀이 문화,고민있을 때 만나 상대의 고민을 들어주는 탁월한 예비 조직가들이 있다. 이러한 조건은 조직 생활에서 우연적인 계기가 아니라 항상 필연적으로 지속된다는 점에서 대화술 발전의 귀중한 토대이다.이미우리는 고도의 고민과 집중으로 많은 훌륭한 사례를 가지고 있음에도 체계있게 정리 축적 된 것은 하나도 없다.우리는 뛰어난 조직가들의 이름과 명성은 알고 있지만 그들이 사람과 만나서 어떻게 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다. 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는 어떻게 이런 틀을 만들것인가이다. 이런틀은 어떨까.조직부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상적인 논의만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만나고 다닌 사람들과의 대화를 매번 기록하거나 외워 뒀다가, 즉흥극식으로 발표한다.그리고 그것에 대해 합평회를 한다.그 결과를 자료로 정리하고 축적한다.이것은 조직활동의 생생한 지침서 일 뿐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된다. 대중예술단체의 조직가는 어떻게 조직활동과 예술활동을 통일 시킬수 있는가 라는 고민에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ㅁ. 대화술의 실제 운용
㉠ 대화를 위한 준비
* 일반적인 무작위 대상 — 자신의 대화목표가 정확히 정리되어 있어야한다. 무작위 대상일 때는 대화 자체보다 설명과 설득, 사람들이 호감을 일으키는 요소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향,나이,족보,학연,사회적 관심사등
* 구체적인 대상 — 대상이 정해졌다는 것은 구체적인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가능해 졌음을 의미한다. ㄱ)의 경우와 같이 기본적인 전제가 준비되어 야한다.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정보 수집이 이루어 져야한다. 이일이 때로는 장기간을 요구할수도 있다.
㉡ 대화과정의 기록
녹음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아니면 자기의 기억을 더듬어서 정확히 기 억해 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우리에겐 이 한마디 한마디 순서가 작품이 된다.
㉢ 대화술의 합평회
녹음기를 틀어 놓던지 아니면 그 상황을 모노드라마 식으로 재현한다.반드시 합평회를 해야만이 대화술의 기법이 발전하며 대화의 정신에 대해 각자깊이 이해하게 된다.
㉣ 총화와 관리
합평회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교류되고 축적 연구되어야한다. 자주문예자료 실의 한칸을 메우는 작품이 될것이다.
대화놀이를 통해 익히는 논술사례를 보자 (1997년 4월 중등 우리교육 145쪽)

어느교과 교사이든 자기 교과 단원에서 학생들이 한번 짚어 보아야할 내용을 찾아 한문장으로 정리해 보도록하자. 되도록 한문장에 한가지 내용을 담되, 상식적인 결론이어야된다. 예문을 참고하여 각교과에서 핵심내용을 100개쯤 뽑아보자.
…뽑아놓은 문장을 16절지에 다섯 개쯤 인쇄하면 교사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고등학교 한 반 학생들과 한시간 작업할수 있는 양이다.중학생이라면 다섯 개쯤 인쇄하고 배경지식이 전혀없는 학생을위해 그 다섯 개에 대해 10분쯤 설명한다. 나머지 시간은 학생들 시간으로 돌린다. 그러나 배경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학생들이 아는대로 스게하고 교사는 되도록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유인물을 한 장씩 나눠주고 그 한문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또다른 문장을 한두개 더 뒷받침 하라고 한다. ‘뒷받침’을 이해 못하는 학생을 위해 교사가 설명해주어야한다. 설명해도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들다 싶으면 ‘대화 놀이’를 통해 뒷받침하는 법을 이해 시킨다. 뒷받침을 해야하는 사람은 학생이고, 뒷받침 할 내용을 이끌어내는 사람은 교사이니 배역이 바뀌면 안된다. 학생이 말한 것 중에서 교사가 한단어를 꼬집어 자꾸 되물어야 집중적으로 뒷받침 할수 있다.
학; 얘 사회는 혼자 살수 없는 곳이래.
교; 혼자 살수 없는 곳이라고?
학; 그럼 사회는 여러 사람이 조화를 이룰수록 잘 돌아가거든
교; 조화를 이루다니
학;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것처럼 말야
교; 아 그렇구나

이렇게 주고 받은 대화를 다시한번 천천히 반복하고 학생의 말만 모아 놓는다.

사회는 혼자 살수 없는 곳이래. 사회는 여러사람이 조화를 이룰수록 잘 돌아가거든.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야

이것을 ‘글’로 정리하면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한 글 한덩어리가 완성된다.(이런 단락 너댓개를 모으면 논술 글 한편이 될 수 있다.)

사회는 혼자 살수 없는곳이다. 사회는 여러 사람이 조화를 이룰수록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를 기계에 비유하면 크고작은 톱니 바퀴가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이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