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자주문예운동의4대활동2001/10/01

제 4 장 자주문예운동의 4대 활동

(1) 창작활동에 대하여
1) 문예에 대한 견해 (예술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의 체계)
2) 문예의 본성
3) 문예에 대한 관점
4) 문예관
5) 예술작품의 구조
1. 외적형식
2. 내적형식
3. 내적형식과 외적 형식을 연결하는 요소들
4. 작품의 내용

(1) 창작활동에 대하여

창작활동은 작품의 생산과정입니다. 자본의 생산과정을 알기 위해 상품이라는 기본요소를 이해해야 하듯이, 창작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작품의 구조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작품을 만들어 내기위해 어떤 요구와 능력을 가져야 하는지, 또 그것을 감상하기 위해 어떤 요구와 능력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문예에 대한 견해 (예술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의 체계)

현대미술의 포문을 연 기록적 작가중의 하나로 꼽히는 마르셀 뒤샹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느날 화장실의 변기를 떼어다가 전시장에 설치해 놓고 그 옆에 샘이라는 제목을 달아놓았습니다. 이로써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현대에술에 화두로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회적 재부는 여러가지 기능을 갖습니다. 우선 실용적 기능을 갖습니다. 변기는 똥통보다 청결하게 배설물을 해결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둘째로는 소통적 기능이 있습니다. 실제로 변기가 밥그릇보다 깨끗해도 더러움, 배설구, 등의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사회적 재부가 사회적 소통의 기능을 가질 때 기호라고 합니다. 변기자체는 기호의 형식이고 변기의 이미지인 더러움, 배설구는 기호의 내용입니다.
기호의 형식을 기표라고 하고 기호의 내용을 기의라고 합니다. 기표와 기의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변기를 만드는 공장은 밥그릇을 만드는 도자기공장입니다. 도자기 공장사람들에겐 밥그릇이나 변기나 똑같이 깨끗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마르셀 뒤샹이 거기에 착안 하여 변기에 샘이라는 가장 깨끗하고 순결한 이미지의 제목을 단 것은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기의의 질적인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가능성, 그렇습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전시장안에서의 변기엔 뒤샹 개인의 주관적인 가능성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억지스럽고 그걸 다 이해해 주려고 하니 짜증이 납니다. 뒤샹은 이렇게 변명할 것입니다. 불을 붙이는 수소와 산소가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에 따라 불을 끄는 물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우리집 화장실이라는 구조에선 똥통이지만 전시장이란 구조에선 전혀 다른 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라구요. 그의 변명은 구조주의의 핵심사상 “구조만 바꾸면 본질도 바뀐다”는 전환성이론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상, 예술적 혼란에 한마디로 논쟁을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구조의 변화가 본질의 변화까지를 수반하는 질적인 변화가 되기 위해서는 구조변화의 시간적 전개과정인 역사에서의 변혁이 있어야 하고, 구조가 객관세계에 대해 갖는 능력인 기능에서의 질적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한 요업공장에서의 가상 파업 수기를 통해 알아봅시다.
변기를 만드는 이천의 모 요업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사업주는 직장을 페쇄하고 단전 단수조치를 했다. 이곳의 근로자들은 더욱 분노하여 언제 끝날지 모를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다. 전기없는 불편도 불편이었지만 먹을 물이 없는 것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땡볕 가뭄에 하나 둘 탈진되고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얼마 있지 않아 백기를 들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가족들을 통해 회유공작까지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낙비가 내린다. 근로자들은 빗물을 받기 위해 변기란 변기는 모두 공장 바깥으로 내놓는다. 빗물을 정화하기 위해 로에 들어가는 숯을 담가 놓는다. 변기에 받아놓은 물을 먹으면서 최소한의 탈진을 극복하게 되고 끝까지 버틴 근로자들에게 사업주가 항복한다. 힘겨운 파업을 하며 “변기나 만드는 주제에 월급도 더럽게 적다”는 멸시의 변기가 “필사즉생”의 희망과 용기의 샘으로 바뀌게 되고, 변기 만드는 일에 뭔지 모를 애착과 애정이 생기게 되어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의 운명이 변화되고 개척되는 과정에서만이 기표는 새로운 기의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것은 기호의 주인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문예의 본성

그래서 고리끼는 예술을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고 정의 했습니다.물론 체육이나 의학도 인간을 위한 학문이지요 .그러나 의학의 대상이 물질적 존재인 인간이라면 예술의 대상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정신적 내용입니다.예술은 대상을 반영하므로 대상의 성격은 예술내용의 성격과 깊은 관계에 있습니다. 대상과 예술내용의 관계가 예술내용의 구조를 이룹니다.이러한 구조로 부터 예술의 속성이 나옵니다.또한 본질적인 관계로 부터 본질적인 속성 즉 본성이 나오게 됩니다.
인간의 정신적 내용에서 가장 중심적인 지위에 있는 것은 사상의식입니다.어떤 사람이 화려하고 찬란한 장미꽃을 좋아 하는가? 숲속에 숨어자신을 드러내지않는 수줍은 도라지꽃을 좋아하는가? 하는 사소한 취향의 문제도 그사람의 사상감정에서 비롯됩니다.표현에 있어서도 예를들면 ‘문예의 본성이란 무엇인가?’에서 처럼 조사’란’과 같이 한국말을 오래동안 써 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민족어를 쓰는가 ‘문예에서 본성적인 것은 무엇인가.?’ 처럼 조사 ‘적’과 같이 일본식 표현을 쓰는가하는 것도 그사람의 사상문화적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상의 가치기준은 그것이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하여 사람의 요구에 맞고 사람에게 이로운것인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따라서 예술에서 그리는 모든 것이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는가 안맞는가?,즉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닌것인가?의 문제를 떼어놓고 생각할수 없게 됩니다. 예술의 대상과 예술내용과 형식의 관계로 부터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정신적 내용을 그리는 예술의 구조가 만들어지며,이러한 구조로부터 예술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본질적속성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상을 중심으로 한 예술에 대한 견해는 87년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의 과정에서
확인 되었습니다.사상이란 말이 곧장 빨갱이로 통하던 시절 대중은 ‘우리일은 우리힘으로’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주인의식을 만

방에 떨쳤으며 모든 것을 이 주인의식으로 바라보고 생활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속에서 생활로 걸어나온 주인사상은 예술에 대해서도 예술의 본성을 중심으로한 통일적인 이해의 체계를 우리에게 움켜쥐게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예관을 구성하는 한쪽의 날개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 한쪽의 날개는 문예에 대한 관점에 의해 마련됩니다.

3)문예에 대한 관점
학생들의 통일노래한마당이 청소년음악회니 열린음악회로 대중적문예강습이 신문사 문화쎈타니 구청주부교실등으로 성과 이전되는 것을 맥없이 바라보면서 두가지 점이 뇌리를 치고 지나갑니다. 첫번째는 똑같은 대상에대해 전혀다른 결과를 나오게 하는 세계관의 중요성이고, 두번째는 대대로 내려온 민중의 성과물을 돈몇푼에 팔아버린 가족주의,개인주의의 우매함(그것이 자신들을 망하게할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것을 예측하지 못하는)입니다.문예는 그 자체가 진보적이라 풍물치는 것 만으로도 그사람을 바꿀수있다는 신념이 대중문예운동을 압살하기위해 기업과 관에서 똑같은 풍물강습을 하는 조건에서 과연 어떤 힘을 발휘할수 있을까? 상대와 내가 똑같이 칼을 들었을때는 맨손대신 칼을 들었다는 전제는 아무런 실천적 의미가 없습니다.실천하는데서 의미가 없는 방법론이라면 그것은 과감히 버려야합니다. 숲 속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간다는 것은 다른 길을 가지않는다는 선택을 한것이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어렵고 험난한 역경이 기다리고 있어도 다른길로 돌아가지 않고 그길에서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다른길로 돌아가 본다는 것은 헤매는것일뿐 길을 가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방법은 관점과 입장의 체계입니다.방법의 선택은 맨처음 출발조건과 목표가 무엇인가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파악하고 선택하가에 의해 출발조건은 정해지기 때문에 결국 방법이란 관점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다음의 조건을 파악하고 선택하는데서도 앞의 관점과 일관될수록 일관된 방법을 유지할수 있기 때문에 결국 방법이란 관점과 입장의 체계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관점, 즉 방법론은 세계관의 한 부분으로 통일되어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습니다.서로 대등하게 독립된채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것은 1930년대 소련의 로젠탈리와 누시노프로 부터 비롯된 창작방법–세계관 논쟁을 통해서도 정리 된바입니다.
예술에 대한관점은 대상인 예술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주체인 사람에 대한 이해에 의해 규정됩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 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힘이될때도 있고 병이 될 때도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사람의 조건과 요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따라서 문예에 대한 관점은 사람의 요구와 활동의 법칙을 중심으로 할 때 가장 정확한 방법론으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민중 중심의 관점입니다. 민중은 생활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자기를 최고의 화가로 자처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가 싸우는 그림을 그렸는데 어찌나 잘 그렸는지 실제 소가 싸우는 것 처럼 생생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칭찬했고 화가도 기고 만장하여 자기 그림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았습니다. 한 부자가 화가에게 백지 수표를 주며 이 그림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림값은 마음대로 백지 수표에 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화가는 더 기고 만장해져 ‘글쎄요 제 그림을 과연 값으로 멕일수가 있을까요?’하며 거드름을피웠습니다. 이때 한 목동이 지나가면서 그림을 보더니 깔깔깔 웃는 것이었습니다. 화가가 발끈 화를 내자 목동이 하는말 ‘이 그림이 얼마나 엉터리 인줄 아세요. 소들이 싸울때는 꼬리를 다리 가랭이 사이로 집어넣고 싸우는데 이 그림에는 반대로 꼬리가 모두 솟구쳐 있잖아요 저희 농장에 와보세요 소 싸우는 것을 보여드릴 테니까요?’ 이말을 듣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부자도 화가의 손에서 백지수표를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존의 예술이 위기에 빠지던 시기에는 언제나 민중예술의 약진이 있었고 민중예술을 수용하고 포용하므로서 지배예술은 다시 그 명맥을 유지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시대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중심으로 할 때 문예는 올바른 관점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4) 문예관

춘원 이광수는 문예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바 있습니다.
‘문학은 엄숙한 인생의 해부자요,계시자요,지도자라야한다. 이점에서 문학은 철학이나 종교와 동일한 사명을 가진다. 따라서 문인은 자기를 구원한자, 자기를 확립한자,만인을 가르칠 깨달음과 수양을 가진자일 것이다.’
중국의 호적이 이런 얘길 한적이 있습니다.
“사상이 문학에 들어있는 것은 두뇌가 사람 몸에 있는 것과 같다.”
문예관은 문예에 대한 견해와 관점의 통일된 체계를 말합니다.
문예관은 사람이 자기의 요구를 실현하기위해 세우는 것이므로 자주성을 띄게 되는데 자주성의 발전 정도 에 따라 개성,계급성,당성을 띠게 됩니다.또한 문예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줍니다.또한 사람과 예술에 대한 법칙을 줌으로써 사람을 그리고 사람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줍니다.따라서 문예관은 사람을 위한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문예관의 차이가 가치관의 측면에서는예술인들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여기 두명의 견해를 봅시다.
“작가는 기억을 좀 희미하게 가지는 편이 좋아요.(내경우엔 더…) 집착해선 안되기 때문이죠.격동기나 변혁기엔 좋은 작품이 안나온다는 얘기가 있지요.그것은 걸러내고 가라앉히고 잘 혼합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지요.밥도 뜸이 들어야하고 술도 시간이 지나야 익는법.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까이서보면 한 부분밖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정도 거리를 두면 전모를 볼수있고 전모가 파악되면판단이 서는 것은 뻔한 이치 아니겠어요.소위 객관성이지요.그런 다음 파고 들어가는 겁니다.”
(박경리,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한 강의)

겨울꽃이 발표되고 난 뒤 두어달만에 영광고리의 민중들이 ‘반핵 생존투쟁위원회를 만들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겨울꽃’의 현실과 ‘반핵’의 현실이 동일한 운동법칙에 따라 발전했기 때문이다.
(정도상 ,창작이란 무엇인가)
박경리의 ‘객관성’이란 개념은 루카치를 연상 시킵니다.그는 ‘예술과 객관적 진리’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 한적이 있습니다.
“현실의 예술적 반영의 객관성은 총체적 연관관계의 올바른 반영에 근거한다.”
코끼리의 다리도 만져보고 코도만져보고 여기저기 만져본후에 이것은 코끼리다라고 규정하는 방법이 객관성이라고 얘기될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코기리의 코를 만져보지않고 내린 결론을 우리는 신뢰할수 없듯이 모든 사물의 본질을 단번에 규정할수 있는 결정적인 자리 또한 있습니다. 레닌은 이것을 당파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루카치의 반영론은 모방론(미메시스)에 가깝습니다.루카치는 레닌이 얘기한 현실을 가장 과학적으로 볼수 있는 자리로서의 당파성대신에 단지 현실의 명령,현실에의 충실성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예관의 차이가 이론적 측면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사진과 포토그라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포토그라피라는 말은 포토(빛)+그라피(그림)의 합성어로 단지 기술적 측면을 중심으로 개념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에비해 사진이란 말은 진실(眞實)또는 진리(眞理)+ 묘사(描寫),반영의 합성어로 내용적 사상적 측면을 중심으로 개념이 정의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마 어떤 예술갈래 보다도 사진이 사실성의 실현에 가장 가깝다는 데 별이견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개념상의 차이때문이 아닐까요?그리고 이런 개념은 단순이 용어만들기의 차원이 아니라,수십년동안 진행된 조선말기의 예술이론 논쟁의 성과물이기 때문입니다.박지원은 사대부들의 형식주의적인 미학에 맞서 문학을 사의(寫意)즉 생활에 내포돤 의미를 그리는 것으로 보았으며 비슷한 개념인 사경(寫景),사영(寫影)을 거쳐 사의(寫意)에서 사진(寫眞)으로 발전해 나간 사진의 개념은 예술수단은 서양것이었지만 그것을 민족의 것으로 훌륭히 소화 시킨 사례입니다.한국의 사진역사는 이러한 정신이론적 재부에 힘입어 카프사진가동맹이후 다른 갈래가 서양사조에 밀려 혼돈을 겪던 시기에도 사실주의 전통을 의연히 지킬수 있었습니다.우리에게 이처럼 훌륭한 문예관의 전통이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한 일입니까? 그러나 요즘 그좋은 사진관이란 이름 대신에 포토스튜디오니,웨딩포토,키즈포토같은 간판이 나붙고 그 내용도 서양것을 베끼기 바쁜 실정이고 보면 민족과,민중의 입장에선 문예이론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이대목의 마무리를 창작에 대한 탁월한 판단력으로 어떤혼란도 꿰뚫어보는 한 창작자의 글로 대신할까합니다.
“5년여만에 <아리랑>을 끝내고 바라본 세상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다.그중에서도 거대담론의 퇴조와 미시담론의 확장이란 말이 가장 빈번하고 심각한 기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유식한 편이 되지못하는 내가 뒤늦게 알고보니 거대담론이란 80년대 식으로 사회문제나역사문제를 소재나 주제로 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미시담론이란 그와

반대로 개인의 문제나 인간의 내적인 문제를 작품화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결론을 요약하자면 미시담론은 새로운 시대인 90년대식문학이며 90년대문학은 당연히 미시담론의 문학이어야한다는 것이었다.그런결론과 주장은 마치 약속이나 한것처럼 문학지부터 신문까지 통일을 이루고 있었다.나는그저 씁쓰레한 웃음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다.그건 마치 80년대 문학에 대한 감정적인 보복을 하는 것 같아서 였고,또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말인데도신조어로 단어만 바꾸어 대단히 새로운 진리라도 발견한양 과장하고 있엇던 것이다.미시담론이 거대담론을 문학이 아니라거나 문학성이 없다고 공격하는 것은 새로운 논리가 아니라 지난70년대의 순수와 참여의 입씨름이 신조어의 탈을 쓰고 재등장한것일 뿐이다. 순수 참여의 입씨름(논쟁이 아니고)처럼 소모적이고 미숙아적인 행위가 또 있을까? 이끝없는 입시름도 부엌에 들 어가면 며느리말이 맞고, 안방에 들어가면 시어머니의말이 맞는다는 격으로 언뜻들으면 그나름의 일리가 있는것도 같다. 그것이 바로 눈리라는 것이 갖는 교활이고 묘술이다.나는 오래 전부터 원고지 앞에 앉을때마다그 두가지 극단론이 가지는 불구성을 넘어서야 한다고 나자신에게 경고 해왔었다.빅톨위고 말을 곁들여가며
‘순수는 아름답다.그러나 참여를 포함한 순수는 더욱 아름답다.’라고…..(후략)
(조정래,1996나의 창작교실중에서 ,실천문학1996년 가울호238쪽부터)

파업과정에서 발견된 변기라는 형상은 근로자들의 새로운 생활내용을 담는 형식, 즉 기표가 되었습니다. 예술작품은 내용과 형식의 통일로 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형식을 떠나서 실제세계라든가 예술가의 생각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품의 내용이란 형식의 의미이며, 형식이란 내용의 구조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창작활동의 첫번째 분석대상인 작품의 기본요소가 내용과 형식의 통일로 이루어진 것이란 것을 감잡을 수 있습니다.

5) 예술작품의 구조
우리는 예술 작품을 감상 할때 알게 모르게 경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사람은 구도나 구성을 어떤사람은 사회적 메시지나 인물의 성격을 중심으로 봅니다.그러나 무엇을 중심으로 보든 진지한 자세만 가지고 있다면 결국 작품전체, 즉 작가가 창작의 충동을 느낀 그자리로 부터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이 나오기 까지의 전과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가장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작품의 형식에서 시작하여 작품의 내용에 꼭꼭숨어 있는 작품핵까지 작품의 전체 구조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재는 고민 끝에 통일맞이에서 나온 95년 문익환 통일 달력을 쓰기로 했습니다.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여러모로 설명하기 좋았으나 작품의 깊은 심층으로 들어가서는 우리와 시대를 같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생생한 이해는 어려울것 같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이작품은 미술관에서 화가의 눈을 중심으로 모든것이 흐리게 보이는 거리에 섰을때야 비로서 이작품이 갖는 외적형식의 진면목을 볼수 있기에 인쇄된 사진으론 한계가ㅡ 있을것 같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문익환 통일달력은 이런 점들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아 최종적으로 그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문목사님을 알기 때문에 문목사님의 얼굴을 보는것만으로도 이내 어떤감동에 휩싸일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문목사님을 잘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이 사진이 여러분과 똑같은 감동을 줄수 있다면 이사진은 뛰어난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리라 생각됩니다. 문목사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시각에서 함께 출발해 봅시다.

사진1

1. 외적형식
이 사진에서 가장 표면에서 눈에 들어오는것은 감각적 형식입니다. 검은 두루마기와 뒷사람의 검은색 옷으로하여 마치 스튜디오 에서 찍은 초상사진 같습니다.목사님의 얼굴은 화면중앙에 있지않고 약간 위쪽에 위치함으로 해서 시각적 안정감을 줍니다. 얼굴이 정면이 아니고 측면인점,시선이 사진기를 의식하지 않은듯 바깥쪽을 향하게 한 점은 어두운 배경과 극적으로 대비 되면서 활기에 넘치게 합니다. 또한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애처럼 활짝웃고 있는 모습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든 뚜렷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왼쪽에 약간 삐쳐나와 있는 흰 코트입니다. 전체가 검은색인데 비록 적은 부분이지만 이 흰부분은 시선을 자기쪽으로 빼앗아가므로서 인물로의 집중을 분산시켜 버리고 맙니다. 광선상태, 전체구도와 배치등을 구성이라고 합니다. 회화 사진등이 공간적 구성형식을 갖는다면 연극, 음악등은 시간적 구성형식을 갖습니다.
이와같은 단계의 층을 외적 형식이라 합니다.작가는 외적형식에서의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서 고도의 숙련성을 연마합니다.

사진2

사진2는 마무리의 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입니다.만약 작가의 의도가 노령에도 관계없이 학생들과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이사진은 실패한 사진입니다.천진스런 활기로 차있지도 못하고 엄숙하시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작가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엇다 해도 결정적인 표정이 나타나는 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문목사님의 권위도 마무리 단계에서의 실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합니다.

2. 내적형식
외적 형식의 면에서 참신함과 완결성등이 아무리 봐도 흠잡을데가 없을때 까다로운 감상자는 그다음의 단계로 빠져듭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무엇때문에 이렇게 환하게 웃는것일까? 이장면이 주는 느낌은 어떤것일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이든 노인네가 아이의 재롱을 보면서 귀여워서 웃는 웃음일까? 아니면 실성해서 실없이 웃는것일까? 아니다.그런 일상적인 느낌의 웃음은 아니다. 안경때문인지 지적인 면모가 있다. 그렇다고 먹물 냄새나는 날카로운 지성의 모습은 아니다. 길지 않게 기른 수염이 자유주의자 같기도 하다.
그러나 눈가의 주름과 자상한 눈매는 날카로운 지성만도 자유주의자도 아니라고 다시 생각을 돌려놓게 한다. 얼핏 보기엔 편안하기만 했던 인상이 보면 볼수록 복잡해지다가 다시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단순해지고… 한참후에야 까다로운 감상자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활짝핀 연꽃에서 부터 썩은 진흙탕에 내린 뿌리까지를 다 보여주고 있다고. 그리고 이 주인공은 우연히 한순간 웃은 것이 아니라, 항상 언제나 어떤 난관 앞에서도 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웃음은 곧 그의 성격인 것이다.
이 단계는 감상자가 내적형식과 만나는 단계입니다.작가가 이인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떻게 형상화 되고 구조화 되어졌는가를 깨닫게 됩니다.사진이나 그림에서는 주인공의 성격으로 나타나고 시에서는 서정으로 나타나며 음악에서는 선율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성격은 갈래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릴뿐 어떤 예술종류에나 내적형식을 이루는 요소입니다. 성격과 더불어 내적형식을 이루는 요소가 또하나 있습니다. 제재입니다. 성격이나 선율이 변화, 발전하면서 만들어지는 줄거리나 서로간의 상호 작용을 제재라고 합니다. 줄거리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수단입니다.
성격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행동과 실천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 되는 것입니다.

행동과 실천이 있으면 필시 사람과 사람사이의 복잡한 관계가 있게 되고, 각양각색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작품중에서 줄거리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여기 문목사님의 사진 을 몇점 더 소개 합니다.

사진3 명동성당앞의 투사

사진4 백두산 걸개앞의 시인

사진5 서재의 사상가

앞에서본 사진2에서는 어린 학생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어울려 노는 진정 청년다운 성격을 읽을수 있으며, 사진3에서는 전경과의 대치선앞에서” 한치도 물러설수 없어” 라고 외치는 노 투사의 결연한 성격을 읽을수 있습니다. 사진4에서는 금방눈물이라도 쏟으실 듯하면서굳게 다문 입술의 비장한 시인의 성격을 읽을수 있으며, 사진5에서는 차분하면서도 투철한 지성을 발견할수 있습니다.이 다섯장의 사진은 문목사님의 성격과 환경이 어떤 연관속에서 변화발전하는가를 형상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단계에서 문목사님을 잘모르는 사람이라도 약간의 집중력만 있다면 작가가 제시한 여러 전형적 상황속에서 보여지는 목사님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할수 있는 형식이 모두 마련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3. 내적형식과 외적 형식을 연결하는 요소들
앞서 살펴본 제재가 의미를 중심으로한 연결이라면 구성은 공간이나 시간상의 물질적 연결을 중심으로한 연결입니다. 앞서 다섯장의 사진에 시간적 흐름을 중심으로 구성한다면, 맑게 웃고 있는 천진한 성격으로 부터 명동성당의 투사가 되기까지 기숭전결의 구조로 갈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공간적배치를 중심으로 구성해서 주인공 성격의 다양한 측면을 어느 한 사진으로 통일되게 하는 구조로 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건 이러한 구성의 차이는 보는 이에게 전혀 다른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이상화 시인의 시와 변규백 작곡의 노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인용문으로 싣기엔 좀 긴감이 있지만 유장하게 굽이치는 정서를 옳게 전달하기 위해 그대로 삳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하늘 푸른들이 맛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을 가듯 정처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갑부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제비야 깝치지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바른이가 지심매던 그들이라 보고싶네 보고만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메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시에서는 작가가 일본 유학생활 등에서의 혼란을 극복하고 나의 고향 나의 땅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살겠다는 정서가 갈수록 구체화 되고 강화되다가 절정에 이른 시점에서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라고 말하면서 여지껏 그토록 소중하게 가꿔온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리고 마는 어쩔수 없는 조국현실에 대한 비극적 정서로 맺음 합니다. 그에 비해 노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변규백 작곡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하늘 푸른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을 가듯 정처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나비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들이라 보고싶네 보고만 싶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나는 온몸에 풋네를 띄고
푸른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걸어 봄신명이 가슴에도 지폈네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마지막에 지금은 들을 빼앗겨가 한번 오는게 아니라 각 절마다의 끝에 오면서 비극적 정서의 리듬이 파도치듯이 연결됩니다. 이에 비해 이상화의 원작시에서는 힘겹게 오르고 오른 희망의 봉우리 정상에서 절망의 절벽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노래가 비극적 정서를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구성이라면, 시는 희망적 정서의 최고조에서 절망으로 급변시키는 충격적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의 내용이 같음에도 전혀 다른 색깔과 정조를 띄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처럼 구성은 내용과 형식을 연결하는 중요한 형상화의 수단입니다.
작품의 구성에는 중요한 법칙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의 명확한 사상적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사상적 목표가 있어야지만 복잡다난한 현실 생활에서 현상과 본질을 정확히 구별, 선택할 수 있으며 아무리 선명하고 생생한 자료라 할지라도, 그것이 중심 사상을 움직여 나갈 수 없다면 과감하게 팽개쳐 버려야 합니다. 둘째, 중심인물입니다. 중심인물은 구성의 중심입니다. 중심인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구성을 진행할 방법이 없습니다. 춘향이 빠진 춘향전이 있을수 없고, 흥부가 빠진 흥부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전의 민중극에서는 가끔 집단적 주인공이라 해서 중심인물을 치열하게 고민 하지 않고 극을 구성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작품이 사건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중심인물을 세우지 않은 것에 철저히 기인하는 것입니다.
세째, 자질구레한 것은 줄이고, 수미일관되게 하되 순서가 명확하고 다양한 가운데 통일되도록 하는 등 쟝르의 특성에 맞게 구성되어져야 합니다. 이로부터 구성이나 리듬과 같은 요소는 작품의 내적형식과 외적 형식을 연결하는 고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작품의 내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4. 작품의 내용
기호적 접근

소재 – 형상재료

주제 – 기본문제

사상 – 요구와 이해관계

작품핵- 작품의 원자, 씨앗, 언어적 형태로 구성가능, 언어의 억양적 특성과 의미적 특성. 노래 작곡 과정에서 가사와 곡은 같이 진행 될 수도, 따로 진행될수도 있다. 어쨌든 가사가 먼저 됐다하더라도 가사가 가진 억양적 특성을 가지고 작곡이 가능해진다. 어떤경우든 생활속에서 발견된 것일 때 그 감정의 진폭이 크게 일어난다. 논리와 정서의 변증법은 생활의 논리로 통일된다. 생활의 논리와 정서의 논리는 공통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개념이다. 하위체계의 속성으로부터 상위체계의 본성의 파악으로 가야 작품핵이 나타난다. 하위체계에서 갈등대립하는 요소가 상위체계에서는 통일된다. 이때 생활의 구체적 요소가 기본이 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을땐 도식이 될 수 밖에 없다. 1차 추상은 해독가능하나 1차추상을 요소로하여 2차 추상이 될땐 생활요소로서의 의미가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