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16일까지의 기록

안녕하세요, 강연요청드립니다. [1] 부경대련 2010/08/03 221

안녕하세요 부산울산경남지역대학생연합(부경대련)입니다.
지난번 부산대에서 해주신 강연을 듣고
너무 좋아서 이번에 다시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대상은 DMZ기행을 가는 대학생들 입니다.
(부산대 학생들도 있지망 아닌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일시는 8월 13일 오후 5시반으로 예상하고 있구요
장소는 부산이 아니라 서울 모처 대학입니다.
(다음날 임진각으로 떠날 예정이라 서울에서 1박을 하려고 합니다.)

연락처는 부경대련 손지연 (010 9324 8659)로 해주시면 됩니다.

사진전 하시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건승하세요^^

김은옥 [2010/08/05] :: 예 장소정해지시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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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녹색 스위치를 켜요’ – 연합뉴스 김은옥 2010/08/17 208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8/10/0200000000AKR20100810174600055.HTML?did=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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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지나간다 입춘대길 2010/09/02 243
61. < 한산모시 > ㅡ 절망에게

한 : 한 번, 그래… 단.한.번.의 그대 사랑도
산 : 산(山)이 무너지는 아픔도
모 : 모든 것은 지나간단다
시 : 시간이 신(神)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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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tv 환경스페셜 9/11(수) – 끝나지않은전쟁 지뢰 김은옥 2010/10/02 194

http://www.kbs.co.kr/1tv/sisa/environ/vod/1673031_11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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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강화도 산마을고 특강-오마이뉴스 이시우 2010/09/19 257

“우리 사회의 큰 벽, 이걸 깨부수려면…”
민노당 이정희 대표의 강화도 산마을고 특강

10.09.18 16:52 ㅣ최종 업데이트 10.09.18 16:52 최진섭 (dream4star)

민노당, 산마을, 이시우, 이정희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 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대안학교인 산마을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바위처럼>을 부르고 있다. ‘삶과 철학’ 시간의 강사로 초청된 민노당 대표 이정희 의원의 특강을 기다리면서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숫자는 60명 정도이데, 이 인원이 산마을고 전교생의 숫자이기도 하다.

▲ 망치와 송곳 9월 15일 강화도 양도면 산마을고에서 열린 특강에서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의 벽을 허무는 송곳이 되기 위해서는 눈 크게 뜨고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당부했다.
ⓒ 최진섭 이정희

산마을고의 윤영소 교장과 함께 강단에 선 이 대표는 10년간 인권변호사 활동을 했고,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공동대표, 18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 7월부터는 민노당 대표직을 맡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학생들을 상대로 1시간 가까이 국회의원의 주요한 역할인 법률제정, 예산심의, 여론형성, 선거운동 등에 대해 실감나는 사례를 들어가며 강연을 했다. 강연의 말미에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이 의원답게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할 것도 주문했다.

“우리 사회엔 큰 벽이 있어요. 차별, 빈부격차, 분단과 같은. 이런 벽을 넘어서려면 때론 망치가 돼서 벽을 부수고, 때론 송곳이 되어 금이 가게 해야 합니다. 보수적인 사람도 설득할 수 있는 송곳처럼 예리한 논리를 갖추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합니다. 두 눈 크게 뜨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준비하길 바랍니다.”

강연에 이어서 학생들의 질문이 줄을 이었는데, 시간때문에 다 받지 못할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 법은 아래로 흘러야 변호사로 일 한 10년 동안 미군범죄, 호주제, 동성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등을 주로 다뤄왔던 이정희 대표는 법은 아래로, 힘 없는 이들에게 흘러가야 함을 역설했다.
ⓒ 최진섭 이정희

- 변호사, 국회의원으로 십여 년간 일했는데, 법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법은 법(法)이라는 글자처럼 물이 아래로 흐르듯 낮은 곳으로 흘러야 한다고 봐요. 돈과 힘이 없어서 언론이나 정치인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법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정규직 전환을 내걸며 오랫동안 싸워온 기륭전자 노동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해요.”

-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에 대해 반대한다고 하셨는데, 전자 팔찌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요?

“전자팔찌도 반대해요. 국회 논의 과정에서 놀란 것이 물리적 거세를 주장하는 분도 적지 않다는 것이죠. 성숙한 시민사회에서는 사형제나 신체형처럼 인간의 몸에 폭력을 가하는 법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봐요. 재소자들을 교정, 교화하는데 힘을 쏟아서 재범률이 낮아지도록 하는 게 보다 효과적인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 당대표로 일하면서 힘드실 텐데 시간관리, 체력관리 어떻게 하나요?

“국회는 거친 곳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요. 가끔 몸싸움도 하지만(웃음) 주로 말로 일하는 곳이잖아요. 시간당 4110원의 최저임금 받으면서 낭떠러지 끝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정말 많잖아요. 건물이나 지하철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도 그렇고요.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 혹시 멘토가 있나요?

“사법연수생 시절 법무법인 덕수에서 일했는데, 그때 만난 이석태 변호사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번역하기도 한 이 변호사께서는 나한테 ‘이름 내세우려고 하지 마라. 일이 잘 되는 게 우선이다’는 점을 늘 강조했죠. 그리고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라’며 겸손함을 당부했어요. 이석태 변호사님이 그렇게 일하는 분이기도 하죠.”

- 어떤 때가 제일 힘든지 궁금합니다?

“냉소적인 반응이 제일 힘들어요. ‘뜻은 좋은데, 너네가 할 수 있겠어?’ 이런 말 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민노당이 힘을 키워야만 희망을 줄 수 있겠죠.”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대학 졸업할 무렵 동두천 기지촌으로 자원봉사 활동 갔어요. 그때 만난 여섯 살 난 여자 아이의 비극적인 삶에 충격을 받고 사법고시 시험 준비를 하게 됐죠. 주한미군 병사와 성매매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예쁘장한 이 아이는 엄마가 돈을 벌어와 찾아가지 않으면 포주가 좀 더 키운 뒤 성매매를 시켜서 돈을 벌 요량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변호사가 돼서 이런 아이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형법 책을 사서 맨 앞장에다 이 아이의 이름을 적어 놓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밀어주고 끌어줬는데 여기 산마을고등학교 학부모인 이시우 사진작가도 그들 중의 한 분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 작가를 변론하면서 저보다 더 미군문제, 법률문제에 대해 해박한 것을 보고 ‘피고인에게 꿀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웃음)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 진보신당과의 통합문제는 어떤 상황입니까?

“당연히 합쳐야죠. 민노당은 의견을 모은 문제고, 진보신당은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문제에 대해 올해 안으로는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줄 계획입니다.”

- 청소년 선거권 문제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요?

“선거 연령은 더 낮아지는 게 좋다고 봐요. 그리고 일반선거와 교육감선거를 분리해서 접근할 생각이고요. 교육감선거는 16세부터는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 벽을 부수는 망치와 송곳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그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시나요?

“평화로운 세상이요. 국회에서 천안함에 대해 질문할 때 국방부 장관이나 일부 여당의원들이 보여 준 반응을 색깔론이라 말하기엔 너무 얌전한 표현이예요. 북에 대한 증오 때문에 논리적 대화가 불가능했죠. 북에서 만들었다는 어뢰설계도가 맞냐는 질문에 ‘북을 변호하려고 애쓰십니다’라는 국방장관의 답변에 벽을 느꼈어요. 이 벽을 넘어야만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 송두율 교수가 등장하는<경계인>이라는 영화를 보면 ‘가치와 테크닉’이 충돌할 때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데, 대표님은 이럴 때 어느 편에 서나요?

“가치를 지키는 편이죠. 저는 피고인들이 ‘잘못했습니다’ ‘반성합니다’라는 말을 안 하고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변론을 하려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힘들어 하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이 옳았다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송두율 교수도 감옥에 들어가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게 정리됐다고 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라’는 글귀를 수첩에다 적어놓고 다니는 이정희 의원이 추구하는 이 시대 최고의 가치는 ‘평화’이다. 그는 평화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운동은 선거운동이라 여기고 2012년 총선에선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할 것을 공표하기도 했다.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차별이 적어지고, 인권이 보장된 평화의 나라는 또한 행복의 나라이기도 할 것이다. 산마을고 학생들이 가슴 모아 함께 부르는 ‘행복의 나라로’가 흘러간 옛노래가 아닌 미래를 여는 신세계 합창곡으로 들렸다.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강화 민노당원들과 함께 산마을고에서 열린 이정희 의원의 특강에 참가한 강화지역 민노당원들이 다 모여서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이 산마을고 윤영소 교장 선생님이다.
ⓒ 최진섭 산마을고

출처 : “우리 사회의 큰 벽, 이걸 깨부수려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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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평화여행-시민주권,노무현재단 이시우 2010/09/19 663

참가신청 : 댓글로 달아주세요.(비밀글 체크하시면 개인정보를 보호하실수 있습니다.)
– 이름 / 연락처 / 생년월일 / 탑승지(서울역, 합정역중 선택)

참가비 : 신한은행 100-025-542049 (시민주권모임)
참가비를 30일(목)까지 납부해주셔야 참가신청이 완료됩니다.

출발 : 오전 8시 – 서울역 9번 출구 연세빌딩 앞,
오전 8시 20분 – 합정역 8번 출구 sk주유소 앞

<임진강 평화여행 Tip!>

이번 임진강 평화여행을 통해 민족분단의 아픔과 임진강에 어린 우리 역사의 애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가게 될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장쾌한 풍광과 북녘땅을 보게 됩니다. 정전협정 상 휴전선은 육지에만 적용되는데, 한강에 왜 군사분계선이 그어져있는지 설명을 듣습니다.
자유로를 따라 끝까지 가면 임진각이 나옵니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교환이 이루어졌던 자유의 다리를 건너보고 52년만에 이어진 경의선 철교를 보게 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트루먼 동상의 비밀과 한국전쟁 당시의 무기들을 보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게 됩니다.
간단한 수속을 거쳐 민통선 지역에 있는 남한 최북단 역사인 도라산역에 이릅니다.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던 시기에 지어진 터라 규모나 시설면에서 위용을 자랑합니다. 개성, 평양방면으로 나 있는 철로를 배경으로 사진촬영도 합니다. 뒤편에 있는 도라산 평화공원에서 점심을 먹으며 통일의 숲을 거닙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식재하신 기념수도 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도라산 전망대에 오르면 세계최고 깃대(160m)에 펄럭이는 인공기가 보이고, 멀리 개성공단을 볼 수 있습니다.
화석정은 성리학의 대가 율곡 이이가 기거하던 유서 깊은 정자입니다. 바로 앞에 임진강이 흐르고, 동파리 미군사격훈련장이 코앞에 펼쳐집니다. 왼편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신할 때 사용한 임진나루터가 보입니다.
37번 국도를 따라 임진강을 거슬러 가다 연천군으로 들어서 임진강 북쪽으로 건너갑니다. 신라의 마지막을 함께 한 경순왕의 능을 경주가 아닌 경기도 그것도 휴전선 바로 밑에서 만나게 됩니다. 한국전쟁 전까지 임진강 최대의 집산지였지만 지금은 갈대밭만 남은 고랑포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삼국시대부터 군사요충지였던 고구려성 호로고루에 올라 굽이치는 임진강에 어린 역사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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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결을 가진 사진작가 이시우-오마이뉴스 2010/09/19 230

http://blog.ohmynews.com/grove/rmfdurrl/344015

고운 결을 가진 사진작가 이시우

이시우작가를 오마이스쿨에서 만났다.

엉성해 보이는 곱슬머리는 묶여있고,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갈색계통의 개량한복 차림새 와는 달리 손은 무척 곱고 섬세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시우 작가에게 사진은 ‘결’이다.

바람결, 물결, 나무결, 숨결…

‘결’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이다.

그는 말한다. 세상에 ‘결’이 있다. 그리고 그 ‘결’에는 ‘지금’, ‘여기’가 있어야 한다.

그는 또 말한다. ‘결’은 발견하는 것 이면서 동시에 만드는 것 이라고.

그가 사진을 찍는 것은 세상의 ‘결’을 드러내고자 함이다.

그는 세상의 결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것은 동시에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결을 만들어 가는 작업일 것이다.

그는 참 따뜻하다.

그가 다가가면 철조망에도 꽃이 피어나고, 지뢰밭에서 꽃향기가 나온다.

그에게 사색의 도구인 사진은 우리에게도 사색을 선물한다.

그의 사진은 우리를 회복시킨다.

자유를 잃어버리고 관성에 젖어있는 우리의 무감각에 ‘아픔’이라는 감각을 회복시킨다.

그는 말한다. “ 아픔과 함께 하는 것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나를 세우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상생활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까지 당한 그가 하는 말. “사회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생활이 무디어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

그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밖에서 온 것 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것으로 착각’하여 싸우려 하지 않는 관성’에 빠지는 것이다.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그는 오늘도 사진에 몰두한다. 사진은 추상적인 한계를 넘어 구체적인 것으로 확언하는 작업이다.

” 세상의 아픔과 함께 하지만, 그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고 치유가 이루어져야한다” 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결이고 그가 찾고 싶은 세상의 결이다. 이시우 작가는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외모와 잘 다듬어진 듯 곱고 섬세해 보이는 손을 가지고 세상의 결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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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한강하구` 탁상용달력 주문받습니다. 김은옥 2010/10/07 689

안녕하세요^^

강화 이시우작가 사무실에 김은옥입니다.

지난여름 8월 한달간 열린 이시우작가 ‘한강하구’ 사진전시회에 방문하여 주신 많은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이시우작가가 이번 전시회때 준비한 작품들중 일부를 선정 2011년 탁상용 달력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혹 구매하시고자 하는 개인 및 단체는 아래와같이 보내드리니 참조하시고 연락주세요

– 아 래 -

* 단가 : \5,000 / 개

크기 : 240 * 195

재질 : 재질 스노우지

삼각대색상 : 곤색

단체주문 : 100개이상 로고를 새겨드립니다.

(샘플달력 보시고 주문하실곳은 받으실곳 연락처와 주소, 담당자 성함과,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1차주문 마감 : 10/15일 – > 10월30일(토)까지 배송

2차주문 마감 : 10/29일 – > 11월13일(토)까지 배송

3차주문 마감 : 11/15일 – > 11월30일(토)까지 배송

문의 : 김은옥 010-7737-1674

e.mail: keo19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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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워크샾-한강하구와 강화 이시우 2010/10/06 793

사진 워크샵-한강하구와 강화
· 일 시 2010년 11월 5~7일
. 장 소 오마이스쿨(강화 넙성리 전화: 032 937-7430)
· 강 사 이상엽 | 이시우
· 정 원 20명 (접수중)
· 수강료 200,000

한강하구와 연결된 강화도는 가깝고도 먼 곳이었습니다.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왕이 피난을 할 정도로 자급자족이 가능하면서도 4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천혜의 섬 강화도는 선사시대 이래로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지켜온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현대사에서도 북한 황해도와 바로 접하고 있어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땅이기도 합니다.
<오마이스쿨>이 위치한 강화도에서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사진 워크샵을 진행합니다. 블로그와 매거진 기고, 작은 포트폴리오를 갖고자하는 사진인들을 위해 포토스토리의 촬영, 편집, 마무리까지를 함께 경험하고 제작하는 시간입니다.

강좌개요;
- 강화에서 열리는 2박3일간의 사진 워크샵.
- 3인의 사진가와 함께 현장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를 점검한다.
- 당일 찍은 사진을 지도 강사들이 직접 평가하며 개선할 부분을 이야기한다.
- 다큐멘터리사진과 인물사진, 포토저널리즘까지 다양한 주제의 강의가 진행된다.
- 특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블로거에게 유용한 사진편집 방법을 제시.

<환불규정>
*불가피한 사정으로 강의에 참석 못 할 경우 다음 강좌로 이월이 가능하며, 환불을 원할 시에는 다음 규정이 적용됩니다.
-강의 2일 전에는 100% 환불
-강의 1일 전에는 50% 환불
-강의 당일 취소시에는 환불 없음

이상엽
다큐멘터리사진가이며 작가이다. 이미지프레스의 대표로 있으며, <실크로드 탐사>, <레닌이 있는 풍경> 등을 쓰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1, 2> 등을 기획했다. <중국 1997~2006>, <청계의 나날들> 등 전시를 했고, 네이버 ‘오늘의 포토’, <내셔날지오그래픽> 등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이시우
고등학교 도서반 시절 노자와 장자에 빠져 지냈고, 대학다닐 때 사진을 전공하면서 불교학생회에서 철학공부를 했다. 문화운동을 오랫 동안 하다가 비무장지대 사진을 10년 동안 찍었고 그 결과물로 <민통선 평화기행>(2003년)을 펴냈다. 이 과정에서 유엔사 문제에 직면했고, 유라시아와 한강하구를 주제로 예술, 사상,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펼쳤다. 2008년 7월에는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의 창 - 한강하구>를 발간했다. 사진집으로는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이 있다. www.siwoo.pe.kr

11월 5일 (금)

13:00 합정역 출발 – 8번 출구 (구)홀트아동복지관 앞

13:00~14:30 지역 다큐멘터리를 찍는 법 이상엽(버스 안에서 설명)
15:00~18:00 강화도 지역 촬영
18:30~19:30 저녘 식사
20:00~22:00 강화도의 역사와 촬영 포인트 이시우
22시~23시 사진과 나-자기소개시간

11월 6일(토)

07:00 기상 및 아침식사
08:00~08:30 현장에서 피사체를 선택하는 법 이상엽 이시우
09:00~17:00 강화지역 취재, 중간에 점심식사
#강화지역 취재는 시내버스 이용해서 이동(시간표, 지도 나눠 줌,강사 동행)

18:00 저녁식사
19:00~20:00 참가자 각자 사진 셀렉트
20:00~22:00 사진 크리틱
21:00~23:00 사진의 편집과 내보이기(블로그나 포트폴리오)
23:00 뒤풀이

11월 7일(일)

08:00~09:00 기상 및 아침식사
09:00~11:00 워크샵 간담회
11:00~12:00 슬라이드쇼 및 수상식
12:00~13:00 점심식사 후 서울로 출발, 2시30분 합정역 도착 예정

http://school.ohmynews.com/OSH_WEB/Lecture/class_view.aspx?pLC_CD=SL000001326

더 자세한 사항은 위 웹주소를 클릭하여 오마이스쿨 홈페이지에서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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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한번 주세요 김두현 2010/10/29 193
대구의 김두현입니다. 김포, 도라산 쪽으로 기행을 한번 갈려고 합니다. 일시는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혹은 12월 첫째주 일요일로 잡으려고 합니다.
안내요청 및 상의를 드리려고 합니다.
전화 한번 주십시오 전화번호는 010-5880-770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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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선생님… 당성근 2010/11/08 196
안녕하세요.
지난 번 민주노총 강화역사기행에 참석 했던
지엠대우차지부 교육부장 당성근 입니다.

가까운 거리인 강화에 저희 조합원들이 여행을 자주 갑니다.

가서 장어만 먹고 옵니다.

그래서 이번에 교육위원들의 강화역사기행을 실시하고
그 영상을 제작해서 전체 조합원 6,000명에게 상영을 하고자 합니다.

선생님 연락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일시는 12월 초로 계획 하고 있습니다.

010- 3774-9372 , 032-520-293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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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목숨 걸고 찍어라 – 사진워크숍 참관기 [1] 김은옥 2010/11/08 219

“사랑을 할 때처럼 사진도 목숨 걸고 찍어라”
2박3일 동안 열린 ‘오마이스쿨’ 사진워크숍 참관기
출처 : “사랑을 할 때처럼 사진도 목숨 걸고 찍어라”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4438

입춘대길 [2010/11/10] :: 남자가 [목숨 걸고 할 일]에 한가지가 추가되었네요. 1. 사랑 2. 바둑(조치훈) 3. 사진 … 또 목숨 걸을 만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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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에서 북녘땅을 보다.-재일동포의 한국기행 김은옥 2010/11/08 173

http://www.tongilnews.com

한강하구에서 북녘땅을 보다
삼천리철도의 길을 따라-한 재일동포의 한국기행 (5)

2010년 10월 26일 (화) 17:45:58 남상삼 tongil@tongilnews.com

남상삼 (삼천리철도 부이사장)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으로 우리에게도 알려진 일본 나고야 소재 비영리법인(NPO) ‘삼천리철도’에서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상삼(68세) 선생은 지난 7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한달 보름여 고국에 체류했다. 그는 모처럼의 고국 방문기간 중에 평소 가보고 싶었던 독도와 지리산, 광주 망월동묘역과 현충원 김대중 전대통령 묘역 등을 찾았고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등 지인들을 만났다. 그의 이번 고국 방문기를 ‘삼천리철도의 길을 따라 -한 재일동포의 한국기행’이란 제목으로 몇 차례로 나누어 <통일뉴스>에 전재한다. /편집자 주

▲ 8월 11일 홍대앞 ‘공간415′에서 열린 이시우 사진전을 찾아 이시우 작가로부터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사진제공 - 남상삼]
이시우씨의 사진전은 홍익대 가까이의 ‘공간415′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통일뉴스의 김치관 국장으로부터 8월 11일에는 작가가 전시장에 있으니 그때 가는 게 좋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나는 우리 삼천리철도에 대하여 아낌없는 사랑과 지원을 보내주신 국내 분들께 드릴 도상태 이사장의 감사의 서신과 책자를 함께 갖고 왔었다. 벌써 우편으로 보내기는 했으나 될 수만 있으면 직접 만나 우리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특히 이시우 작가는 우리들에게 남다른 감회가 있다. 그는 우리 삼천리철도가 2002년에 주최한 6.15기념행사 <이시우 사진전>에 임수경씨와 함께 와주었으며 그해 3월에는 일본에서 고국을 찾아간 DMZ견학투어에 동행, 해설을 담당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올해 결성10주년을 맞는 우리 단체의 기념지「비무장지대에 서다」(일문판)에 축하글을 기고해주어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해외에서의 자그마한 운동에 늘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지하철로 홍익대 앞에서 내려 먼저 홍대 정문을 찾아갔다. 거기서 전화를 걸었다. 한 여성이 받아 길을 설명해주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더니 이내 마중갈테니 그냥 거기서 기다려달라고 전화를 끊었다.

기다리는 사이 나는 사진기를 꺼내어 홍대 정문을 찍었다. 높이 솟은 정문은 학교 교문이라기보다 무슨 개선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앞을 자동차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이윽고 저쯤에서 낯익은 사람이 손을 번쩍 들어 나를 알아본 듯 반기며 다가왔다. 서로 초면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그는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고 했다.

공간415는 거기서 얼마 안 걸어 나타났다. 대학가의 분위기를 감촉하게 하는 올망졸망한 가게들을 지난 어느 골목 2층에 있었다. 1층 계단 옆에는 이북 인민군 비슷한 군복을 입은 인형이 보초 서듯이 서있다.

문을 들어서니 이곳 관장이 맞아주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에 이곳 여성 관장에게 들어오면서 본 인형의 사연을 물어보니 애래층은 쿠바요리 전문점이라고 일러주었다.

이곳 관장과 이시우 작가는 구면인 듯 했다. 아무 스스럼없이 서로 대하고 있었다. 민중 속에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운동을 하며 서로 알게 된 듯 했다. ‘공간415(사이로)’는 그런 그들의 꿈을 담아 민중 사이로, 여러 문화 사이로, 사람과 사람 사이로 파고들려는 의지를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하여 개설 첫 이벤트가 <한강하구 이시우 사진전>이 된 듯 했다.

나는 내부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전시된 작품들을 보기 시작했다. 매 사진판들에는 작가의 시같은 짧은 글이 적혀있었다.

어느새 그도 내곁에 와서 사진에 깃든 당시의 창작동기와 심정 등을 설명해주었다. 노을이 붉게 타는 하늘을 받치듯 솟은 산, 그 정상에 자그만한 네모난 건물이 찍힌 사진 앞에서 그는 “이 때문에 좀 고초를 겪었습니다”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 사진에 찍힌 건물은 미군의 전파도청시설이다. 바로 이 사진으로 이시우씨는 군기밀을 탐지하고 그를 유포했다고 국가보안법에 걸려 난데없는 법정투쟁을 치러야 했다.

당시 검찰측 기소장에는 삼천리철도 일부 관계자와 만났다는 사실도 기소 이유가 되어있었으니 우리 역시 비상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었다. 하여 우리도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내 지원운동과 한마음으로 그의 구원을 바랬다.

그러던 어느날 이시우씨의 법정에서의 최종진술을 어느 인터넷 싸이트에서 발견했다. 피고인은 어느날 갑자기 이웃들마저 빨갱이, 간첩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피해가는 기막힌 처지로부터 이 땅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와 역사적 근원, 본질을 제주도 4.3사건 등을 들어가며 논증하고 나서 그 때문에 흘린 이 땅의 많은 민중들의 희생과 눈물을 설파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최종진술을 “법은 그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이 되어줄 순 없을까요? 법은 그들이 기대어 울 어깨가 되어줄 순 없을까요?”하고 호소하여 맺었다.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나는 가슴에 솟구치는 뜨거운 것을 억제하지 못했다.

전시장에서 작가의 덤덤한 설명을 들으며 나는 그 때 있었던 일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오랜 동지를 만난 기분으로 이야기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 공간4.15가 주최한 ‘한강하구가 보고 싶었습니다’에 참석했다. 이시우 작가가 해설자로 나섰다.
[사진제공 - 남상삼]
며칠후 나는 공간415가 주최하는 여행 ‘한강하구가 보고 싶었습니다’에 참가했다. 그날 아침 9시30분에 공간415에 집합, 간단한 일정설명과 자기소개가 있은 다음 자동차 두 대에 분승하여 강화도를 향했다.

다리를 건너 먼저 들린 곳은 옛 누각이 바라보이는 어느 일반도로 주차장이었다. 우리는 밭 사이로 난 풀밭길을 누각을 향해 걸었다.

담장 사이로 들어서니 이시우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색 티셔츠에 검정바지와 고무신을 신은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공손히 인사하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었다.

아직은 40대 초반, 그의 30대 초반에 출판한 사진집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에서 본 사진은 매끈한 얼굴에 예리한 눈초리가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텁수룩한 수염을 길렀다. 국가보안법 재판과정에서 서울 국회로부터 임진각에 이르는 삼보일배의 고행을 치르며 기른 수염, 48일의 옥중단식을 강행하여 국보법 재판에서 승소할 때까지 지지자와 더불어 자란 사랑과 믿음, 신념이 어린 수염이 이 순간은 한없이 고귀해 보였다.

한차례 인사가 끝나자 나는 한강하구 쪽 담장 곁으로 갔다. 대안의 이북땅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비구름이 드리웠으나 대안의 황해도 곡창지대는 길다란 푸르른 띠처럼 안겨왔다. 어쩐지 삼엄한 육지의 비무장지대 인상과는 달리 유유히 흐르는 한강하구 넘어 보이는 이북 풍경은 아늑하고 포근해보였다.

그러는데 이시우씨가 다가왔다. 무얼 짐작이라도 한 듯 그는 “남 선생님, 아시는 분 있으면 불러 보시지요”하고 말을 건네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 비구름 아래 살아있을 학창시절의 동창생, 친구들, 동네 어르신과 제자들의 얼굴들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속으로 되뇌이던 터라 소리내여 불러보려 했다. 때마침 담장너머 바로 코앞에 있는 군의 감시초소에서 젊은 병사가 수상한(?) 눈치로 이쪽을 보는 바람에 조심스러워져 소리는 내지 못하였다.

이윽고 또 한 집단이 합류했다. 태반이 부인들이었는데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씨가 강화도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민운동 그룹 멘버들이라 했다. 이시우씨는 부인과 함께 온 외아들 우성 군을 일부러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러자 부인은 반색을 하며 그때 해외에서 서명운동이랑 구원활동을 해주어 고맙다고, 그 분들께 인사 전해달라고 부탁했었다.(중학생인 우성 군이 여행 내내 아버지의 해설을 열심히 메모하던 모습이 기특해보였다. 그는 장차 유기농 농사를 하겠노라고 자기 꿈을 똑똑히 말했었다)

그날 20여명이 모였다. 태반은 2,30대의 청장년들과 부인들, 학생들이었다. 전원이 원을 그려 주최자의 인사와 자기소개들이 있은 다음 여행 쎄미나가 시작되었다.

강사 이시우씨가 소개되었다. 강사는 먼저 이곳 누각의 내력을 말했다. 이곳이 연미정이라 함은 한강하구가 제비꼬리 모양으로 갈라지면서 서해로 흘러든다고 지어졌다고 했다.

설명을 들으며 나는 새삼스럽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눈여겨보았다. 이따금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였으나 한강, 임진강이 어우러지면서 좌우로 갈라지며 흘러가는 이곳은 예로부터 절경으로 이름을 날릴 만 했다.

이어서 강사는 자신이 강화도로 이사한 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무릇 사물의 중심, 핵심은 아픔이 제일 큰 곳, 그 곳이 사물의 중심입니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와 한강하구는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있는 분단의 현장이고 아픔의 핵심입니다. 나는 아픔의 이 현장에 몸을 두고 활동하고 사색하고 창작하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생활터전을 옮겼습니다.”

그날 이시우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엄청난 내용을 담았는데 그걸 다 적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다. 그의 해박한 지식, 투철한 사색과 과감한 행동력은 한두마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벅차다.

다만 몇 가지 잊지 못할 모습들만 더 적으려 한다.
연미정을 떠난 우리는 고대 우리 조상들의 유적이 산재하는 고인돌공원을 돌아보고 점심을 지나서는 평화전망대에 들렸다. 전망대는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인지 군의 검문초소에 신고한 다음에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건물 안마당에 들어서니 전차의 현물이 도사리고 있다. 처음 보는 진짜 모습에 절로 무시무시해 몸이 오싹해진다. 순서에 따라 4층 건물 최상층에 올랐다. 망원경이 몇 대 설치되어 있었다. 육안으로도 이북땅이 연미정에서 보다는 더 뚜렷이 바라보였다.

▲ 삼천리철도 도상태 이사장(왼쪽)이 지난 4월 강화도 이시우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사진제공 - 남상삼]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시우씨가 거처하는 서재를 찾았다.
자동차를 내려 비탈진 길을 걸어가니 키낮은 살림집들이 나타났다. 비탈길 바로 곁에 있는 집이 작가의 작업장이었다. 처마가 낮게 드리운 비좁은 입구를 들어서니 두 칸짜리 방 벽을 각종 서적과 자료들이 에워싸고 있다. 방 한가운데 앉은뱅이 책상과 컴퓨터가 한대 덜렁 놓여있었다.

그날 평가를 겸해서 작가를 보며 둥그렇게 앉았다. 제각기 감상을 이야기하는데 내 차례가 되자 작가가 얼른 내 소개를 대신해주었다. 일본에서 민단, 총련, 일본사람들이 이념과 민족을 초월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고 우리 삼천리철도를 평해주었다.

좀 계면쩍은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한강하구에서 이북땅을 본 감상을 솔직히 토로했다.
“비무장지대에서 북쪽에서도 보고 남쪽에서도 보았었는데 그때마다 분단의 비극을 실감하면서 되돌아가야 했었습니다. 오늘 이곳 한강하구에서 손에잡힐 듯한 이북땅을 보니 희망이 솟는 것 같아요. 정전협정에는 분계선이 없으니 한강하구에 배를 띄우자, 배가 안 되면 기구를 띄워 보자고 공론이 나올 정도니…. 10.4때는 이곳을 남북의 공동어로구역으로 하자고, 이곳을 평화의 바다로 만들자고 합의를 보지 않았습니까. 얼마 전에 천안함 사건이 있어 초긴장의 현장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해외에서도 희망을 갖고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산기슭에 차린 작가의 서재로부터는 강화도의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단 하루 사이의 교류였으나 무언지 이별이 아쉬워진다. 모두들 한 작가의 성스러운 자그마한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오늘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듯 했다.

부인 김은옥씨는 바구니에 찐 감자와 옥수수를 들고 다니며 참가자들의 손에 쥐어주고 있다. 돌아갈 때 차안에서 들라고, 또 오시라고…. 그러면서 익살섞인 어조로 남편을 보고 “이 시우 선생님, 어서 나오세요”하고 소리를 지른다. 남편과 함께 고생길을 걸으면서도 언제나 활달하고 명랑한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일상 속에 든든히 자리잡은 이들의 강인함을 보는 듯했다.

헤어질 때 작가는 내 손을 잡으며 도상태 이사장께 안부 전해달라고 했다. 지난 봄에 갑자기 이곳까지 찾아온 이사장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또 용기를 얻었다면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강화도, 한강하구는 이시우의 사색과 창작, 평화와 통일에로의 불굴의 의지와 활동과 더불어 나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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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바랍니다. 이재원 2010/11/10 173
안녕하세요! 이시우 선생님!
전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이재원입니다.
민변 전부회장 이오영변호사 소개로 다음과 같이 도라산 기행관련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 다 음 -
1. 일시: 2010.11.27(토)
2. 장소: 도라산인근
3.코스: 이시우 선생님의 안내에 따르겠습니다.
4. 주최:(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5. 인원:40명내외(성인)
6. 연락처:02)723-4770, 010-3832-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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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바라…는건 아니구요, 그냥 부탁이 ;; [1] 랄랄라 2010/11/12 219

강의실/자료실에 올려놓으시는 글들을
틈틈이 보고 있는 팬입니다.
최근 올려 놓으신
‘조선과 현재의 관직 비교표’의 글과 같이
특정 카페에 가입을 해야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요.
가입하지 않고도 볼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살짜악 긁어 와 주시면
참 좋겠는데요 ㅋ

같은 경우로 몇 번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어서
한 번 적어봅니다.
안부도 여쭐겸 해서요 :)

이시우 [2010/11/15] :: 죄송합니다. 저작권관계로 글을 직접 옮겨 올 수는 없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해당카페에서 찾아보셔야 겠습니다. 아니면 포탈 검색창에서 조선과 현재의 관직비교등의 검색어를 쳐보시면 비슷한 정보를 얻으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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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민간인사찰대상자중 이시우관련기사 이시우 2010/11/25 252
국정원장.차장. 정세균…청 무차별 사찰 민정수석에 보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1652571&code=91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2203305&code=9104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2201345&code=910100

[종합]이석현 “민간사찰 靑 연루 문건 갖고 있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3541668

청와대, 전 국정원장-야당 대표-여당의원 사찰
총리실은 연예기획사-트로트 가수-사진작가까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9752&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청와대가 직접 국정원장ㆍ친박ㆍ실세 정치인들 사찰했다”
“‘박영준 라인’이 <피디수첩>, 트로트 가수, 사진작가까지 사찰”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01117172017§ion=01

“청와대 파견 국정원 직원 국정원장과 야당대표 사찰”
이석현 의원, 불법사찰 관련 추가의혹 제기
‘1심 유죄’ 지원관실 직원수첩 사본도 공개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49207.html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49256.html

민주, 검찰 체포에 ‘초강수’ 대응…MB정부에 전면전 선언
이석현 “청와대가 직접사찰. 지원관실이 추가사찰” 추가 폭로

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32978

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32991

청와대 불법사찰 광범위 개입 새 증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057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08

“청와대가 국정원장까지 직접 사찰했다”

http://www.vop.co.kr/A00000337795.html

동명이인 유시민보좌관 이시우씨로 밝혀짐. 그분께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20&newsid=20101122032504526&p=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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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가기 전에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경남겨레하 2010/12/03 168
선생님, 반갑습니다!
경남겨레하나 황 국장입니다.

인근에서 긴장과 대결의 포성이 울려 얼마나 놀랐습니까?
어쩌면 현 남북관계가 잉태한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요.

강연 요청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연평도 포격사태와 한반도 평화체제 : 성찰적 접근과 실천과제> 라는 정도의 제목으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연말 바쁘신 일정 중이실 건데, 일정이 가능하신 지 부탁드립니다.

*** 요청 일자 : 12/16(목), 12/21(화), 12/22(수)
*** 장소 : 경남 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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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프랑스문화원서 이시우DMZ 평화사진전-충청투데이 김은옥 2010/12/04 186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6392

사진작가인 이시우 씨가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을 주제로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 분원 갤러리 라 노마드에서 DMZ 평화사진전을 연다.

초청장

http://poolaca.or.kr/tc/entry/2010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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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현묵 2010/12/10 186
이 작가의 누리집 방문이 늦었습니다. 진즉 집주소를 찾아 방문했어야 했는데…틈나는데로 창 너머 보고 가리다. 이 작가의 열성에 내가 자극을 받습니다. 고추당초보다 맵구려.
나중에 또 봅시다.

현묵 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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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문화원서 이시우사진전-오마이뉴스 김은옥 2010/12/15 189

뉴스사회
대전충청

프랑스문화원에서 만나는 ‘한반도 평화’
프랑스문화원 대흥동분원에서 이시우 작가의 DMZ 평화사진전 개최

10.12.11 11:41l최종 업데이트 10.12.11 11:41l임재근(seo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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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면 ‘똘레랑스’, ‘관용’이 먼저 떠오른다. 관용이란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한다고 한다.

서해상에서 남북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맞서다 결국 군사적 충돌까지 벌어진 한반도의 현실을 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관용’이란 생각이 든다. 남과 북이 서로 ‘관용’정신을 갖을 때, 군사적 충돌이 아닌 평화가 유지되고, 더 나아가서는 통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이란 제목으로 진행중인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의 DMZ 평화사진전이 15일까지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분원 갤러리 ‘라 노마드’에서 진행된다.
ⓒ 임재근 관련사진보기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분원 갤러리 ‘라 노마드’에 가면 분단의 아픔이 녹아 있는 비무장지대에 숨어있는 ‘평화’의 메시지를 찾아낸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평화사진작가로 알려진 이시우 작가의 ‘DMZ 평화사진전’이 개최되고 있다. 이시우 작가는 그간 비무장지대를 둘러보며 조국의 허리에 둘러쳐진 철조망, 지뢰표지판, 총탄이 뚫고 지나간 녹슨 철모 등을 사진으로 찍어 왔다.

프랑스문화원에 전시된 이시우 작가의 사진은 전쟁은 민족의 공멸을 가져온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깨닫게 하고, 지금 남과 북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용’이라는 사실을 사색하게 만든다.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의 DMZ 평화사진전은 대전평화여성회가 마련했고, 오는 15일까지 계속된다. 오후 12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둘러볼 수 있고, 일요일은 휴관이다.


▲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의 DMZ 평화사진전 대전 프랑스문화원 대흥동분원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이시우 작가의 사진작품들을 시민들이 감상하고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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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미술관 분단미술전 참가 이시우 2010/12/15 195

올해말에는 대전과 인연이 많군요.
대전 프랑스문화원 전시가 끝나자 마자
대전시립미술관에서 12월 23일부터 두달간

분단미술전 ‘눈위에 핀 꽃’ 전시가 열립니다.

저의 ‘철망눈꽃’ 사진이 포스터 사진으로 채택되었다는군요. 그것은 무슨 특별한 의미는 아니고 요즘 같은 시절에 분단미술하니까 사람들이 무겁게 생각해서 제 사진을 고른 것 뿐이랍니다. 분단관련 작업을 해온 작가들이 무려 40인이나 참여하니 명실공히 한획을 긋는 전시가 될 듯합니다. 자세한 내용은다음을 참고 하십시요.

http://blog.naver.com/arirangseoul?Redirect=Log&logNo=140119837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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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학교 파주평화여행 김은옥 2011/07/18 121
벼리학교 파주평화여행

http://kr.blog.yahoo.com/wknasw/95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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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김재송 이시우를 만나다. 김은옥 2011/07/18 117

http://blog.naver.com/jaesongkim?Redirect=Log&logNo=20116789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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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와 함께 떠나는 강화도여행 김은옥 2011/07/18 123
이시우와 함께 떠나는 강화도여행http://blog.naver.com/seouljenny?Redirect=Log&logNo=110101093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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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아카데미강연 김은옥 2011/07/18 118

우연치 않게 이시우 선생님을 알게된 것은 4년 전입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기획한 민통선 평화기행을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행 전 유엔군사령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강하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뒤 이시우 선생님은 아름다운 사진 한 장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됩니다.

공부와 현장이 만나는 사진작가, 이시우

그뒤 잊고 지냈는데, 어제(2011.3.31)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이시우 선생님을 모셔서 평화와 통일 강좌를 열어주었습니다. 사진작가로도 좋아하는 분인데, 이시우 선생님은 사진을 찍으려면 현장에 가야되고, 현장에 서게 되면, 관념에 있던 공부의 흔적들이 실재가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진과 공부가 함께 가는 분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삶을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부터 살게되었다고 합니다. 2001년 테러 이후, 한반도 전쟁가능성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죽고 사는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미쳐 산 것 같습니다. 한반도 평화문제와 911테러가 북핵문제와 맞물리면서 10년을 평화에 미친 삶을 살았던 게지요.

유라시아 의제를 잡는 나라가 강국이었던 시대를 넘어

한반도 평화문제를 유엔군사령부 문제와 연결하여 유라시아 의제로 말씀하시면서, 지금 우리가 어떤 의제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시우 선생님의 화두는 마음에 많이 남았습니다. 유라시아 의제를 가지게 된 나라가 강했던 적이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민족자결주의를 얘기했던 미국, 임시정부 총리를 지냈던 이동휘 선생님이 초안을 작성하였던 민족해방이론 의제를 택했던 레닌의 소련, 유엔을 만들어낸 루즈벨트, 스탈린의 미국과 소련, 그리고 1970년대 비동맹 의제로 떠오른 여러 나라들을 생각하면, 향 후 어떤 의제를 가지고 있는지가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낼 힘이라는 말이 됩니다.

지금까지 유라시아 의제를 통한 재편된 세계 질서가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미쳤었습니다. 이승만의 반공 의제는 한반도 문제가 아닌 유라시아 문제로 미국까지 개입하게 만든 의제였다는 것이 이시우 선생님의 평가입니다. 문제는 지금 그런 의제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통일 문제에 있어 북한은 북핵이란 의제로 미국 외교 상대 1위에서 2위를 다툰다고 합니다. 미국을 상대로 이란과 북한은 핵이란 의제로 강대국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죠. 그만큼 의제가 중요한 문제라는 의미였습니다.

역사상 북한은 마지막 국가차원의 의제를 가진 나라

이시우 선생님은 과거 민족문제나 국가문제 차원에서 의제가 설정된 것은 이제 북한의 북핵 의제가 거의 유일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어산지 같은 개인이 가진 힘이나, 대인지뢰금지법 등을 만든 새로운 단체들이 힘을 가지는 시대입니다.

한반도 땅에 새로운 질서를 위한 의제가 필요한 시기

의제를 유라시아 차원으로 생각한 경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힘을 얻었던 것이 지금까지 역사라면, 새로운 질서로 우리에게 필요한 의제는 뭘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새로운 연대와 문명, 평화 등의 가치를 지닌 의제를 가지게 되면, 세계는 다른 질서, 다른 문명의 전환을 더욱 힘차게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은 우리에게 위기이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의제를 가질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북핵문제가 먼저 걸립니다. 북, 미 대화에서 우리가 빠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핵의 문제는 북, 미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와 세계의 문제라는 것이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로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평화와 생명의 연대에 대한 의제 역시 유라시아적인 의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 통일, 유엔군사령부해체와 전시작전권 이양의 모든 문제가 바로 이 평화와 생명의 연대 의제로 연결됩니다. 이시우 선생님은 유엔군사령부 문제가 한반도 문제 뿐 아니라 이웃인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얘기하십니다. 동북아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한 것입니다.

유라시아를 넘어 전지구적 의제, 생명평화공동체

일본 후쿠시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지금 전 지구적인 문명 전환의 시기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전간기 처럼, 어수선 하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의제는 분명해집니다. 10년 동안 미국 주도로 잡아왔던 테러 의제가 허구이며, 동시에 세계 문명이 바뀌는 시점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은 의제였음이 우리는 지금의 뼈아픈 생명의 죽음소리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의제가 없다는 사실 하나로, 구제역이라는 광풍(미친바람) 속에 수많은 생명을 묻게 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동안 원자력 발전소는 생태적인 대안에너지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시 문명은 에너지를 빨아먹으며 고통속에 울부짖으며 죽어간 생명의 값으로 유지되었던 공간이었습니다.

이 시점, 우리에게 의제는 너무도 분명해집니다. 문명의 전환기 속에 생명평화공동체 의제를 이제 가지고 전 지국적인 생명의 연대와 공동체를 이루고, 문명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갈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시우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라시아 의제를 넘어, 전지구적 의제는 이제 문명의 전환기 속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 생명평화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http://blog.ohmynews.com/life7/36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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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빈블로그 한강하구책소개 김은옥 2011/07/18 135

http://leedongkil.blog.me/10074016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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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인터뷰-김용민이 만난사람 김은옥 2011/07/18 116

2011.01.01 2011년 01월http://www.peoplepower21.org/727199
완전한 봄을 기다리는 자작나무처럼
평화의 봄을 씨뿌리는 사람

이시우 사진작가

글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반갑습니다. 목소리를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운동가이며 사진작가인 이시우 씨. 2010년 12월 22일 인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첫 대면을 했다. ‘목소리를 들었다’ 함은 내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다는 이야기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익히’라는 말에 놀랐다. 정주(定住)하기보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활동가가 하루 10분 넘지 않는 내 방송을 고정적으로 들었다는 뜻 아니겠나. 특별한 취미가 있었던 것일까.

“구치소에서 구내방송으로 틀어줬거든요.”

그랬다. ‘본의 아닌 정주’였다. 그렇다면 서울구치소에 몸이 묶인 이들 대부분이 내 목소리를 익히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감격할 일은 아니나 갑자기 무거운 책임감이 엄습한다. 왜 구속됐을까. 2004년이었다. 이시우 씨는 미군 초청으로 판문점 기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탄약고에 있는 생화학전 무기 표식을 발견했다. 남들은 영문도 모르고 지나갔으니 결과적으로는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병인 셈이 됐다. 잽싸게 사진기에 담았다. 큰 파장을 예상하며. 왜냐. 그 당시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며 이라크 지도자 후세인을 잡으려고 혈안이었거든. 나는 되고 남은 안 되는 이런 미국의 이중성이 상징적으로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유사시 이 화학 무기는 민족 구성원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흉기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이시우 씨는 유엔사 공보관에게, 또 미국 대사관에 물었다. “내가 판문점에서 여러 장면을 촬영했다. 이거 공개해도 되겠는가”라고. “뭐 어떤가, 하라”는 답을 들었다.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 줄을 몰랐던 것이다. 난리가 나고 미군은 길길이 날뛰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미군 용산기지 대테러 담당관 또 그 위에 미군 사령관이 “이시우를 잡아넣어라”는 의견서를 정부에 냈다고 한다. 이에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국민에 대한 처벌 수위는 우리가 결정한다’라고 나올 우리 정부인가. 이시우 씨는 구속됐다. 죄목은 군사기밀을 탐지해서 누설했다는 점.

터무니없는 시비지만 군 특히 미군의 노여움을 샀다면 평범한 국민으로서는 겁부터 먹기 십상. 하지만 이시우 씨는 이정희 변호사(현 민주노동당 대표) 등과 함께 촬영한 것이 군사기밀일 수 없고 탐지도 아니며 당연히 누설도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이겼다. 승리의 의미는 일개 사건에 국한되지 않았다.

“우리 헌법에 보장된 평화적 생존권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 감시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재판부가 수긍했거든요. 일본에서 온 활동가도 ‘획기적인 사례’라며 감탄하더군요.”

이 순간,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과 인터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통선 아픔, ‘유엔사 해체 걷기 명상’의 화두

그의 전공은 사진이다. 그러나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이른바 ‘486’세대라는 정황이면 설명이 쉬워질까. 시대가 그를 학교 현장에서 거리로 차출한 것이다. 1992년 겨울 대통령 선거. 야당은 단일후보 김대중을 냈고, 여당이 도리어 정주영과 표를 나누게 돼 그 어느 때보다도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당선은 김영삼의 몫이었다. 실망이 하늘을 찔렀다. 비운은 겹쳐 속했던 단체(전국노동자문화운동단체협의회)도 해산했다. 이러다보니 할 게 없어 혼자 할 일을 찾다가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됐다.

“강원도 철원, 눈 내린 벌판에서 새가 날아가는 장면을 찍었지요. 이게 인연이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통선을 돌아다녔어요. 사실 통일 문제에 대해 문외한은 아니었어요. 단체에서 활동하며 쌓은 견문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서울시내에서 데모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이때에 알게 됐어요. 민통선 권역 내에 사는 분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맹성(猛省)을 하게 됐거든요.”

민통선 주민의 애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1959년을 거슬러 올라가자. 당시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 3,459명을 비롯해 총 1,900여 억 원의 재산피해를 남긴 사라호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기성면, 온정면, 평해면, 근남면 일원에서 피해를 입은 수재민 70세대가 당시 강원도지사 주선으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됐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일구어야 할 밭에 지뢰가 있으니 알아서 개간하는 것이었다. 되돌아갈 수 없는 법. 목숨 걸고 땅을 일궜다. 그랬더니 원래 땅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토지대장을 들고 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고생을 고생대로 하고는 소작인이 된다. 정부와 도, 군은 팔짱만 끼었다. 또 하나. ‘고통이 있어도 있는 척 하지 말라’ 이건 민통선 안에 불문법이다. 이는 지뢰 사고가 나도 당한 사람 아는 사람 모두 입을 다물게 되는 근거이다. 만약에 사실이 알려지면 군사지대에 들어가 일하고 (날품팔이가 불가능해진다) 하나 더. 고엽제 실험의 탓도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을 앞두고 고엽제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비무장지대에다 고엽제를 살포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시우 씨로 하여금 1,500km 휴전선 걷기 일주를 가능케 한 동력이었다. 성찰의 힘, 가공할 만하다. 강화에서 고성까지. 이시우 씨는 이를 ‘유엔사 해체 걷기 명상’이라고 했다. 그냥 ‘걷기 명상’이 아니었다. 그 장거長去 속에 장고長考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민통선 현실을 돌파할 해법, 그는 찾아냈다.

“유엔사 해체가 시급합니다.”

유엔사 해체라. 이것은 또 웬 화두인가.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를 의제이다. 이 이야기에 앞서 짚을 것이 있다. 1975년 유엔총회는 유엔사 해체를 결의했다. 유엔군 사령관이며 한미연합 사령관인 주한미군 사령관은 그러나 이걸 이행하지 않고 있다. 총회 결의로는 안 되고 안보리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미군은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38선 북쪽지역에 대한 점령주체가 유엔사라는 1950년 10월 7일 결의는 절대 존중한다. 이런 이중성에는 마수가 있다.

“이런 원칙대로라면 미국은 언제든 유엔 총회 결의라는 명목으로 안보리 결의 없이도 유엔사를 앞세워 북한을 침공할 수 있습니다. 주한 미군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느냐. 없어요. 그렇게 되면 침략하는 것이 되고, 허울뿐입니다만 미군이 안보리에 회부될 문제입니다. 따라서 유엔사 해체는 곧, 북한이 느끼는 ‘공격당할 것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강 하구 평화지대화 남북 화해의 시금석

강화도로 가는 길에 ‘애기봉’ 표지판 여러 개를 지나쳤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밤 대북심리전 차원에서 군이 성탄 점등을 허용했다. 점등식에는 민간인들이 상당수였다. 만에 하나 비극적 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했다면 “북한에 대해 온 국민과 함께 분노 한다”라며 립 서비스 몇 마디로 끝낼 요량이었을까.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하는 의도가 역력했다.

“점등 자체는 ‘상대로 하여금 적대행위라 느끼게 만드는 것’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정전협정은 금지하고 있어요. 남북관계, 크게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입니다.”

강화도 또 애기봉이 있는 김포와 북한 땅 사이로 한강이 흐른다. 이시우 씨는 평소 이 한강하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곳이 남북화해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군사 분계선이 있던 현장에 항상 분쟁이 있었습니다. 연평도 사건도 보세요. 쟁점은 서해 북방 한계선이었습니다. 이거 아십니까? 한강하구에는 군사 분계선이 없습니다. 한강하구를 정전협정대로 배가 다닐 수 있는 평화지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면 서해도 그런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강하구부터 해야 합니다.”

반추해보니 이곳에서 ‘평화의 소’ 구출작전이 있었다. 1996년 홍수 때 북한에서 떠내려 왔던 그 소,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 초식동물 소가 군사적 긴장지대에서 인도적 발상으로 구출된 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감(感)을 이명박 대통령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10대 치적을 자랑했지요. 그 세 번째가 한강하구 관련한 것이었어요. 경남 통영에서 출발한 거북선을 남해 서해를 거쳐 한강하구를 통해 마포에 도달하게 한 것입니다. 당시 유엔사와 북한군이 양해했었고요. 한강에 대한 꿈이 그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가 돼서는 한강하구 갯벌을 나들섬으로 만들어 남북교류 캠프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단히 얕은 발상이다. 국제해양법에서 물이 빠지고 또 들어오는 섬을 간출지라고 한다. 한강갯벌이 그러하다. 이곳은 땅인가 아닌가. 땅이라고 할 경우 누구의 소유냐 하는 점에서 분쟁의 소지가 생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를 준설해 없애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유인도를 만들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구상의 이면에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의 종착점으로 나들섬을 터미널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평화 공존지대로서의 한강하구에 대한 관심은 뭐라 할 수 없으나 이것이 개발 욕구에 기초해 있음은 ‘MB 다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남북문제, 우리 민족이 평화협정 당사자 돼야

화제는 자연스럽게 MB의 대북정책으로 이어졌다. 평화운동가로서 연평도 사건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대결 국면을 바라보는 시각을 물었다.

“북한은 대단히 전략적입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실험도 두 차례나 했습니다. 미국의 우려가 커지게 됩니다. 반사적으로 일본이 핵 무장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핵 확산을 결코 바랄 리 없는, 나아가 그랬다가는 스스로 모순에 빠지고 마는 미국으로서는 결국 북한의 핵을 무력화하는 수로 북미 간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미 사이에 대화가 급속 기류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기대와는 달리 북미 간 평화협정, 생각보다 빨리 진척될 수 있습니다. 협정이 이뤄지는 날에는 남한은 이만저만 난처해지는 게 아니게 됩니다. 대비해야 합니다. 평화체제 만들어갈 때 남한이 빠진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군사분계선 설정을 비롯한 모든 영토 협상을 북미 간 협상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남한은 어떻게든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돼야 합니다.”

연평도 포격에 대한 반격 성격의 훈련을 하던 날, 북한은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핵 사찰단 재 입북을 허용 한다”고 약속했다. 남한이 군사적 응징의 목소리를 높이던 날, 북한은 외교를 했던 것이다.

전략적 대응을 주문하는 이시우 씨의 이런 주장은 여전히 ‘종북의 꼼수’로 매도되는 형국이다.

“얼마 전 동명이인의 이시우 씨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의해 사찰당한 일이 있었지요. 많은 언론은 저인 줄 알고 문의 전화를 걸어오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라고 답했어요. 그 이시우가 제가 아니라고 판정 나도, 또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에서 무죄로 결론 나도 이미 ‘반정부 인사’로 낙인 찍혔다고 말이지요. 재판을 겪고서 알았는데요, 검찰이 저를 4년 동안 사찰했더라고요. 지금은 사찰 안 당하느냐, 확답 못하겠습니다. 중요하지도 않고요.”

그의 시계는 남들보다 앞서 있다. 이미 재 도래할 평화 시대를 대비해 한강하구 사진전 또 유엔사 관련 책 출판 준비에 부산하다. 애써 과거로 시침을 돌리려는 이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민단체에 대한 ‘한마디’도 시국에 얽매이지 않는다.

“겨울에 나무는 몸에 있는 물을 뿌리로 내립니다. 봄이 되면 다시 물을 몸으로 끌어올리고요. 이러다보니 봄에 꽃샘추위라도 올라치면 동사하는 나무가 많습니다. 자작나무는 다릅니다. 완전한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지난 10년 정부 동안 시민단체 중에는 좀 더 많이 쬐려고 햇볕에 몸을 맡겼지요. 갑자기 겨울이 오다보니 시련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햇볕이 있건 없건 자생할 수 있는 나무, 그런 나무가 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닭의 목을 비틀어도 봄은 온다. 그 봄이 왔을 때 이런 일이 오리라는 상상은 여전히 무엄한가. ‘내 목소리를 익히 들었다’한 이시우 씨. 이 분의 뒤를 이어 몇 년 뒤 ‘그 분’도 그곳에서 내 목소리를 익히 들어 잘 알게 될 가능성 말이다. 그 분의 지은 죄가 너무나 주홍 같아 하는 이야기이다.

대구평화통일시민연대와 양구평화여행 김은옥 2011/07/18 138

평화뉴스-대구에서 이시우의 고엽제강연 김은옥 2011/07/18 131

“고엽제, 정치.경제.과학.군사 종합 커넥션”
평화운동가 이시우 대구 강연 / “SOFA, 환경오염 보상 명시적 조항 넣어야”

2011년 06월 14일 (화) 13:23:59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고엽제는 정치, 경제, 과학, 군사, 법조계까지 포함된 종합적인 커넥션이 존재하는 사건이다”

평화운동가 이시우 사진작가는 13일 대구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 같이 말하며 “SOFA(한미주둔군지휘협정) 개정 뿐 만 아니라 미국 정부와 고엽제 생산 업체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작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시우 작가의 강연이 열렸다. ‘캠프캐롤 사건을 계기로 본 미군기지 환경오염실태와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은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40여명이 참석했으며, 대구시민센터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 ‘캠프캐롤 사건을 계기로 본 미군기지 환경오염실태와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평화운동가 이시우 사진작가의 강연이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시민센터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2011.06.1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시우 작가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 이전부터 고엽제의 유독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며 “단순한 군사적 문제가 아닌 정치, 경제, 과학, 군사, 법조계까지 포함된 종합적 커넥션이 존재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미국은 1924년부터 화학전과 생물학전의 가능성을 연구했고, 1944년 중반 미군 화학전부대인 ‘디트릭기지’에서 고엽제 효과에 대한 야전 시험이 있었다”며 “1948년부터 농약, 종자 생산 기업인 ‘몬산토’와 ‘다우케미컬’을 비롯한 7개사에서 고엽제를 생산했다”고 말했다. 특히 “1948년 몬산토 고엽제 생산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피해를 입은 직원 228명을 미국 정부가 4년간 관찰했었다”며 “미국은 이미 그 때부터 고엽제의 심각한 유독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미국 정부가 엄청난 배상금액을 우려해 고엽제 피해의 책임을 민간 기업에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이시우 작가는 “베트남 참전 미군들이 고엽제 피해를 이유로 몬산토를 비롯한 7개 고엽제 생산업체에 소송을 제기했다”며 “당시 고엽제를 생산한 기업들은 소송을 포기하는 대가로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을 지불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정부가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법적 판단이 내려질 경우 유사 소송이 증가할 것을 우려해 고엽제 생산기업들이 피해자들과 합의하도록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고엽제 생산기업은 ‘이미 배상을 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 미국 정부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의료사고의 경우에도 의사가 과실여부를 입증하도록 돼 있는데, 유독 고엽제 피해에 대해서만 피해자들이 인과관계를 입증하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비난했다.

고엽제 “SOFA 개정뿐 아니라 고엽제 생산업체, 미국 정부에 꾸준히 책임 물어야”

이시우 작가는 고엽제 문제에 대해 “SOFA(한미주둔군지휘협정) 개정뿐 아니라 고엽제 생산업체와 미국 정부에게도 꾸준히 책임을 물어야하는 사항”며 “환경오염을 비롯한 주한미군기지에 대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문제를 제기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아주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조항을 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시우 작가는 “사실 고엽제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백린탄과 열화우라늄탄을 비롯한 화학무기”라며 “만일 사고가 날 경우 재앙적 환경오염과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 평화운동가 이시우 사진작가

백린탄은 인(P)을 주성분으로 하는 발화용 폭탄으로 인명살상용과 연막.조명용 두 가지로 나뉜다. 강한 화학작용으로 대기에 노출될 경우 발화하며, 연소를 끝내려면 산소를 완전히 차단하거나 백린을 모두 태워 없애야 한다. 백린탄은 인체에 2~3도의 심각한 화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로, 공중에서 폭발시킬 경우 대량살상을 일으킬 수 있다.

열화우라늄탄은 원전 연료인 U-235를 농축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폐기물인 U-238을 주재료로 만든 무기로, 핵 분열성 물질인 U-235를 포함하고 있어 공격 목표와 충돌하는 순간 미세한 방사능 입자와 가스를 분출한다. 장갑차와 탱크를 무력화 시킬 목적으로 제작됐으며, 두꺼운 장갑을 뚫고 들어가 공격목표를 녹이는 무기다.

“경기도 일산 모 부대 살상용 ‘백린소이탄’ 보유”

이시우 작가는 “그동안 미군과 한국군은 인체에 무해한 연막용백린탄만 사용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경기도 일산의 모 부대에서 백린소이탄을 보유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백린탄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살상용 백린소이탄의 경우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도덕성 논란을 일으켜왔다.

이 작가는 “국가보안법사건과 관련해 서울지방검찰청검사장의 요구에 따라 지난 2007년 6월 28일 국방부가 제출한 ‘탄약고 표식기호 해설 및 설치현황’ 자료에 경기도 일산 모 부대에 백린소이탄이 보관돼 있다고 표시돼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대기 중에 노출될 경우 곧바로 발화하는 성질이 있어 백린소이탄과 백린연막탄 모두 평시 훈련이나 보관, 취급과정에서 사고가 날 경우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40여명이 이시우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다 (2011.06.13)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이시우 작가는 “지난 1997년 경기도 연천 폭발물 처리장에서 있었던 주한미군의 열화우라늄탄 오폭사고로 한국에 열화우라늄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며 “표적을 뚫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스형태의 방사능물질을 분출하기 때문에 환경오염과 인체에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무기”라고 설명했다.

“오산 공군기지, 열화우라늄탄 9,408발 분실”, “화학무기, 보관상 위험 존재”

특히 “지난 2006년 미군 태평양사령부가 공개한 자료를 통해 수원 공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청주 공군기지에 모두 270만발의 열화우라늄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오산 공군기지에서 보관용 컨테이너 1개 분량인 9,408발을 분실했다는 기록도 함께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열화우라늄탄의 경우 부식에 의해 물기와 접촉할 경우 유독성이 있는 불화수소를 발생시킨다”며 “보관 과정에서도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시우 작가는 “오산 공군기지의 열화우라늄탄 분실 사고에서 보듯 완벽한 보관은 있을 수 없다”며 “고엽제와 백린탄, 열화우라늄탄을 비롯한 화학물질과 화학무기의 보관, 취급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재앙적 환경오염과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미국 정부가 지난 1972년부터 하와이주에 있는 존스톤 섬에 고엽제를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과 화학무기를 폐기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녹이 슬어 내용물이 드럼통 밖으로 유출된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며 “왜관 미군기지에 만약 고엽제가 묻혀있다면 마찬가지로 유출돼 주변 토양을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도 화학무기 보관됐을 가능성 있다”

이시우 작가는 대구에도 화학무기가 보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지난 1953년 8월 10일 미군 제5공군 병참담당부사령관 에프라이트 대령의 진술서에 따르면 도쿄 인근 공장에서 생산된 세균전무기를 수송기를 통해 부산과 대구 공군기지로 운송했다고 기록돼 있으며, 또 다른 정보제공자의 진술에 의하면 특수임무를 위해 K-2공군기지 활주로 옆 유도로에서 전투기에 세균폭탄을 장착했던 사실이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K-2 공군기지 안에 ‘방사능 위험’ 표시가 붙어있는 건물이 한 군데 있다”며 “직접 들어가지 못해 어떤 물질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한 번 확인 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 강연이 끝난 뒤 참석자들이 이시우 작가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한편, 이날 강연은 <왜관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 대구경북대책위원회>가 마련했으며,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와 <대구참여연대>가 공동 주관했다. 대구경북대책위원회는 15일부터 1달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 7시30분에 2.28기념공원에서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오사카 이시우 사진전 참관기 – 남상삼 김은옥 2011/07/18 145

‘평화의 목소리를 38도선에 전하자!’
<기고> 오사카 이시우 사진전 참관기 – 남상삼

2011년 02월 03일 (목) 15:56:39 오사카=남상삼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

오사카= 남상삼 통신원 (삼천리철도 부이사장)

▲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남북의 평화를 염원하는 이시우 사진전이 개최되었다. [사진 - 통일뉴스 남상삼 통신원]
2011년 1월 28일, 일본 오사카 이꾸노구 미유끼모리 상점가 알각에서 이시우 사진전은 개최되었다.

20만 동포들이 거주하는 오사카에서도 유달리 동포들이 밀집해서 사는 이곳은 예로부터 코리아타운으로 불리워 왔다.

나는 30일 오후에 찾아갔다. 목적지 근처에 가까워지면서 들려오는 말소리, 눈에 보이는 간판, 가게 매대들에 얹혀있는 갖가지 상품들을 보고 있으니 여기가 과연 일본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 날은 마침 일요일, 한류열풍 탓인지 이곳 주민들과는 다른 관광객들도 어울려 거리는 붐비었다. 한 중학생인 듯한 집단은 떡볶이, 족발 등을 제각기 손에 들고 먹으며 깔깔 웃으면서 지나갔다.

갤러리 ‘또라이(渡來)’는 어느 한국식품가게 2층에 있었다. 나는 접수에서 방명록에 기장하고 나서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비무장지대를 찍은 이시우 사진작가의 작품과 사진마다 곁들인 시적 해설문을 읽으며… 작가의 철학적 사색의 자욱, 평화에 대한 갈구, 분노와 사랑이 이름할 수 없는 감동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한 시민활동가의 제의로

▲ ‘이시우 사진전’ 포스터. [사진 - 통일뉴스 남상삼 통신원]
이윽고 주최측의 한 분과 마주 앉았다. 그녀는 삼천리철도 출발 당시부터의 회원이면서 현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서지구네트워크 일을 보는 니시무라 수미꼬씨이다.

이전에 몇 번 만나본 일이 있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니시무라씨는 첫날에 취재왔던 신문사들의 기사를 보고 어제부터 관람자들이 부쩍 늘었다면서 손님이 올 때마다 연신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나는 내일 다시 전화하기로 약속하고 이 기획을 생각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만 짤막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직접적인 계기는 작년 11월 23일 연평도포격 사태에 접했을 때라고 했다. 갈수록 전쟁에로 치닫고 있는데 일본에서도 무엇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가 삼천리철도 주최로 진행된 2002년 3월 JSA투어, 같은 해 6월 나고야에서 이시우 사진전에서 작가를 접한 기억이 떠올라 이 기획을 생각했다고 했다.

니시무라씨는 이시우씨를 비무장지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젠가는 일본에 소개하려 벼르다가 이번에 이렇게 실현할 수 있었다고 빙긋 웃어보였다.

▲ 2002년 3월 삼천리철도 회원들이 이시우 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비무장지대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니시무라씨. [자료사진 - 통일뉴스]
취재는 다음 날 전화로 이어졌다.
니시무라씨가 자신의 속마음을 첫 번째로 내비친 사람은 JSA투어에 함께 갔던 김경자씨였다. 친구의 말에 쌍수를 들어 찬성하며 김경자씨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다짐하였다.

용기를 얻은 니시무라씨는 그 후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되는 강습회에 참가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수강자에게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 생각 좋다. 하자, 나도 한몫 끼겠다”고 호응해주었다.

이리하여 이 지역의 대학교수, 역사학자, 이곳 동포들과 뉴커머(한국에서 와 오래 일본에 있는 동포들), 폭넓은 일본인들에게 파문이 일듯 소문이 퍼져갔다. 삽시에 13명의 발기인이 나섰고 실행위원회 결성, 회장확보, 홍보활동 등이 전개되어갔다.

작년 연말에는 실행위원회 명의로 되는 수수한 호소문이 오사카지역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호소문에는 세밑의 분주한 시기에 안내를 드리는 무례를 용서해 달라며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11월 23일, 한반도 서해 연평도에서 포격사건이 터졌다. 또다시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이 사태를 누가 바라겠는가.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휴전상태를 항구적인 평화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는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비무장지대를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평화통일에로의 희망이 부풀었었는데 그 소중한 꿈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호소문의 원문 역시 니시무라 수미꼬씨가 작성했다. 그는 계속하여 일본의 식민지통치와 분단으로 하여 흘린 피와 눈물을 생각할 때 다시는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남북의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여기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궁리하다가 이시우사진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고 자시의 심정도 토로하였다.

고요하면서도 평화에 대한 신념과 기원이 담긴 전시회

▲ 200여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회를 둘러봤고, 사진첩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사진 - 통일뉴스 남상삼 통신원]
무슨 단체나 조직이 주관한 것이 아니었다. 한 일본인의 이웃과의 평화를 바라는 한마디로부터 이시우 사진전은 열렸다. 그래도 방명록에 기장된 인원만 170명, 지나가다 들린 사람들을 합하면 200명을 훨씬 넘는 관람자들이 전시회를 찾았다. 그 가운데는 한국 방문시 평화기행 해설자로 나선 작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작가의 사진첩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하여 때마침 들이닥친 한파로 코리아타운 거리에 달린 청사초롱도 찬바람에 떨었는데 여기 전시회장 안은 마냥 온돌방처럼 훈훈했다.

오늘 니시무라씨로부터 메일이 왔다. 어느 야간중하교 교사로부터 왔다는 메일 문장을 보내왔다.

“뜻깊은 이번 사업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해요.
이시우씨의 작품을 보며 나는 고요한 정적 속에 담긴 작가의 분노를 느꼈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뢰와 흰 꽃 사진이 어른거립니다.
징그러운 지뢰가 어쩌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는지…
아름답게 보이던 그 배후에 숨은 부조리한 현실을, 앞으로는 똑똑히 직시하며 살아갈 거예요.”

▲ 도쿄에서 3.1절 92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2.26집회 포스터. 『한강하구』의 저자이기도 한 이시우 작가가 강연자로 참석한다. [사진 - 통일뉴스 남상삼 통신원]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3509

길담서원 한뼘미술관-이시우사진전 김은옥 2011/07/20 215
새벽은 어두운 하늘에서 온다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을 소재로 한 이시우작가의 사진작품들이 길담서원 한뼘미술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작품이 한 뼘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마음 한 쪽이 늘 그 쪽을 향해 있습니다.

문득문득 그런 이끌림으로 한뼘미술관 안에 들어서면 푸른 칡잎 뒤에 얼비치는 녹슨 철망이 극적인 대비로 다가옵니다. 비무장지대, 거기 인간에 의해 가지런히 이발 당한 자연이 자연 그대로의 흐트러진 평화를 그리워하며 불안하게 있습니다. 의족을 벗어 놓고 돌아앉은 어르신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마치 눈물로 피사체가 뭉개진 것처럼. 그리고 아래 또박또박 쓴 글귀를 읽습니다.

_방 한 켠에 세워 놓은 의족이 주인을 본다. 의족과 살결의 잦은 불화

_나뭇잎에도 가슴이 있어 아침햇살이 던져주는 날선 철조망을 날마다 품어 안고 삽니다. 그 지난한 포옹의 시간에 철망은 녹슬어 무디어 갑니다.

_실개천이 흐르는 광삼리 벌판 금강산 철로 터엔 유람객대신 구름과 봄볕이 뒹굴며 놀고 있었습니다.

민통선 일대에 매설된 대인지뢰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한 분이 의족을 벗어 옆에 놔둘 정도로 작가는 셀 수 없이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 마음을 녹여드리지 않았을까? 그 시간을 지나 이런 사진이 나왔겠구나 하는 이야기가 작품 속에서도 읽힙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아래로 내려버리고 싶었던 그 작품을 눈높이에서 보고 있으면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지배하는 과거이자 현실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눈 감아 버리고 싶은 현실, 이 사회에서 가장 아픈 곳을 찾아 나선 작가는 사진작가로서의 예리한 눈빛과 따뜻한 열정, 분단을 극복하려는 평화운동가로서의 역사인식과 연구, 통일기행 길잡이로서의 자상함과 깊은 사색으로 대상을 상징적으로 잡아냅니다.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비무장지대에서 전쟁을 상징하는 철조망과 녹슨 전차, 풀 한 포기, 저녁노을, 새들이 나는 들판을 조용히 담아 조곤조곤 평화 속에 아픔을 말합니다. 이미 잊혀져버린 정전停戰 상태를 낮은 목소리로 얘기합니다. 문득 문득 가서 그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_이평리에 김준권 할아버지가 나물향에 취해 들어갔다가 돌아가셨다던 들꽃 한 송이가 지뢰에 기대 피어있었습니다.

_새벽은 불빛에서 오는 게 아니라 어두운 하늘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_지뢰로 발목을 잃은 조만손 씨는 자다가 가끔 있지도 않은 발가락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 눈을 뜹니다. 묻어둘 순 있어도 사라질 순 없는 것, 진실입니다.

_비무장지대란 말을 들으면 중무장지대를 떠올리고야마는 우리의 관성이 한강하구마저 중무장지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입니다.

이 작품들을 통해서 “나의 창작은 90%의 학문과 9%의 실천과 1%의 영감이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확인합니다. 대상을 예술로 승화 시키되 대상에 대한 수집 가능한 모든 정보를 모으고 연구한 후 구상하여 수없이 헛걸음을 하고 인내하고 기다린 후에야 줄탁동기啐啄同機의 순간을 만나 원하는 사진을 찍는, 탄탄한 학문위에 작품을 세우는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십 차례 찾아가고 기다리는 것이 9%라면 그가 90%라고 말하는 학문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비무장지대의 사색을 품에 안고 한강하구에 이르러 강화도 건평리 작은 언덕 위 작업실에서 유엔사해체를 위한 연구와 씨름하고 있을 작가의 작품들이 7월 30일까지 전시됩니다. 그리고 7월 17일 일요일 강화도에서 이시우 작가를 만납니다.
노마드
2011/07/11 11:52
“나의 창작은 90%의 학문과 9%의 실천과 1%의 영감이다”라고 말하는 작가분의 멘트에 참으로 감동입니다. 학문과 실천까지 더해진 작가의 작품이 참으로 궁금하네요

서원지기소년
2011/07/11 13:51
그의 작업실(+ 공부방) 풍경도 느껴보실겸,, 노마드님, 강화 걷기에 함께 가시지요~

intotheself
2011/07/16 23:35
강화도에는 못가도 길담에 가서 이시우님의 사진을 보고 싶어지네요.

포스티노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제대로 한 번도 이야기나누어 보지 못했지만 늘 그 자리에서 몫을 해주시고, 좋은 글로

마음을 두드리는 사람이구나 ,지금 듣고 있는 음악처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토요일 밤

강화도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고, 다시 목소리 들려주시길!!

[출처] [전시]이시우사진전_새벽은 어두운 하늘에서 온다 (길담서원) |작성자 뽀스띠노

[출처] [전시]이시우사진전_새벽은 어두운 하늘에서 온다 (길담서원) |작성자 뽀스띠노

http://cafe.naver.com/gildam/5900

길담서원 강화평화여행후기 김은옥 2011/07/20 440

에필로그님의 강화평화여행사진보기

http://cafe.naver.com/gildam/5958

소마나님의 사진후기

http://cafe.naver.com/gildam/5958

요셉20님의 수필같은 후기

http://cafe.naver.com/gildam/5958

이광욱님의 꼼꼼한 여행 후기

http://cafe.naver.com/gildam/5949

제60주기 강화추모비 제막식 및 추모제 김은옥 2011/10/16 434

6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동족상잔의 와중에 평화롭던 가정이 산산조각이 나고 아무죄도 없는 우리 부모형제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하여 시신도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여기 희생되신 322명의 영혼을 모시고 추모비 제막식과 추모제를 봉행합니다. 우리 유족들의 아픈 가슴을 달래고 위로해 주시는 이 자리에 참석 하시어 깊은 의미와 희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시 : 2011년 10월 14일(금) 오후2시

장소 : 추모비 건립지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 21-10) 길상 정수장앞

행사 : 1부 추모비 제막식 / 2부 위령제

주최 : 강화민간인희생자 유족회

주관 : 강화민간인희생자 추모비건립위원회, 인천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후원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강화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