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12월까지의 기록

강화도평화기행-승천포앞바다에 배가뜨는 날 이시우 2011/11/11 179
10월초 부천시민연합의 강화평화여행이 있었습니다. 한 회원님이 쓰신 글입니다.

승천포앞바다에 배가 뜨는 날

강화도 평화기행을 마치고.

“강화도에 민통선이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

민통선 평화기행을 왔는데 이곳에 민통선이 있어서는 안된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사실 나는 이 하루의 여행이 통일기원 기행이든 민통선 평화기행이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날도 좋고 마침 쉬는 토요일이고 그리고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이제 슬슬 재미가 생기는 사진에 대한 기대가 더 컸으니 말이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을 포함한 가족단위의 참가자 들이 많았다. ‘하늘은 푸르고 날도 적당히 시원하니 하루 여가를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네’라는 생각으로 강화도에 도착했다.그런데 그런 나의 무성의와 지나친 개인주의는 오늘 기행을 함께 해 줄 이시우 선생이 버스에 타면서 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는 사진을 전공했지만 민통선안에 사시는 분들의 고통을 외면한 자신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며 1,500km 휴전선 걷기 일주(강화도에서 고성까지)를 마친 후 더 열심히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분이었다. 선생이 마이크를 잡은 이후부터 그가 설명하는 철학과 통일미학에 빠져 들기 시작하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우리가 먼저 도착한 곳은<연미정>이다. 이곳은 북한 땅이 내려다 보이는 월곶리에 위치하고 있는 정자인데 정묘호란(1627)때 강화조약을 체결했고 무엇보다 6.25전쟁 때 한강을 중심으로 미군과 소련이 작전을 펼쳤으니 이곳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말씀이다. 게다가 눈앞에 펼쳐진 비옥한 논들이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을 견디게 해준 병참기지역할을 단단히 해 주었다는 설명, 전쟁에 있어 병참기지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새로웠다. 어른들의 진지한 모습과는 상관없이 성곽언덕에 모여앉아 티없이 깔깔웃던 아이들을 데리고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고려궁지>다.

프랑스군이 우리나라의 의궤를 약탈해간 ‘외규장각’이 있는 <고려궁지>.

“상대의 계략에 말려들지 말고 상대를 내 싸움판에 끌어들여야 이길 수 있다” 이 말은 중국의 손자병법에 나와 있는 ‘조사의 북산’에 전해오는 병법의 하나다. 외세의 침입에 무방비상태였던 병인양요 때 조선군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양헌수 장군이 이 전략을 잘 사용했기 때문이란다.그들이 침탈해갔던 왕조의 의궤를 다시 찾아 온 지금 그것을 빼았겼던 자리에서 듣는 병법 한 소절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끌려 다니지 말고 우리판으로 끌어 들여야 이길 수 있다’ 우리가 남북대화에 ,통일문제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해 주는 대목이다.고려궁터 안에서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회화나무의 당당함을 뒤로하며 우리는 강화도령으로 알려진 철종 이원범의 잠저(나라를 새로 세웠거나 세자가 아닌 종실 가운데 즉위한 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인 <용흥궁>에 들른다. 가을햇살의 따사로움과 한옥의 정겨움을 느끼고나서 우리가 가게 된 곳은 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이다. ‘고인돌과 통일, 통일과 고인돌이 어떤 관련이 있을까?’

“아는 것만큼 보인다”

이 말이 새삼스럽게 와 닿으며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던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나는 이제까지 고인돌하면 청동기 권력가들의 돌무덤 쯤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 무덤을 만든이들의 철학에 대해 생각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선사시대의 우리선조들은 무덤을 만들면서도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의 조화를,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우리조상들은 무덤에 소통의 공간(고인돌의 남쪽 부분에서 덮개돌이 튀어 나와있는 곳을 문(門)이라 하셨다)을 만들고 그 곳에서 산자와 죽은 자가 서로 왕래 할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또 굄돌이 기울어져 있는것은 세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굄돌을 세운다음 덮개돌을 얹어 기울기의 미학을 꾀했다는 것이다.이 고인돌을 축조한 우리 조상들은 조화와 과학적 원리-모멘토 제로상태에서 평형을 이룬다는-를 숙지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상대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 부조화속의 조화, 비정형의 정형이 상생과 상극을 어우러지게 하는 방법이라니. 어렵긴 하지만 언뜻 무엇을 말하려는 의도인지 알것도 같다.비단 남북문제를 벗어나서도 우리가 살면서 꼭 명심해야 할 철학이 이 고인돌에 숨어 있었던거다.

고인돌의 철학을 음미하며 오늘 기행의 마지막 장소인 평화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늦은 오후시간이 되어 있었다.이곳은 원래 해병대가 사용하던 군사시설인데 몇년전부터 전망대로 시설을 개조해서 개방한다고 했다. 이 평화전망대에서 내다 보이는 곳은 한강과 서해가 만나는 승천포 앞바다다.개성과 가장 가까운 나루터여서 북한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던 곳이라 한다. 망원렌즈를 들이대니 포(浦)너머 북한의 땅이 더 가깝게 다가왔고 아이들도 바로 눈앞에 보이는 북한 땅이 신기한듯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서로 받쳐주고 안아주며 망원경에 눈을 댄다.”와 ,신기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고 망원경 앞을 떠 날 줄 모른다.수많은 외침을 겪었고 같은 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현실속에서 아직도 유라시아대륙 전체 차원에서 지정학적 질서가 작용되는 곳. 승천포, 아니 강화도. 전망대 창밖으로 코발트색 하늘에 흰구름이 흐르는 배경앞에서 이시우선생은 작지만 힘있게 말씀하신다.

“정전협정상 강화도의 바다에는 군사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민통선(휴전선에서 20km에 설치되는 민간인 출입통제선)의 존재는 이치에 맞지 않는거죠. 오히려 정전협정에 저촉되지 않는 민간인들의 배가 다닐 수 있는 평화지대로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 한강하구부터 평화지대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 기수역(汽水域)이다. 민물이 민물임을 포기하고 바닷물이 바닷물임을 포기하며 격렬하게 껴안을 때 비로소 그 곳에서 좀 더 풍부한 생물종이 탄생하고 자라게 되는 거란다. 지금 우리의 한강하구 기수역은 살아 있을까? 평화롭게 흐르는 승천포 앞바다를 포함한 한강하구의 기수역이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날, 눈앞에 거슬리게 쳐져 있는 철조망이 걷히고 강을 노니는 배를 타고 저 건너 북한 땅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날,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 아름다운 강화갯벌에 온 세계 사람들이 여행오늘 날, 오늘 다녀가는 강화의 가치가 진정 살아나겠지.

“통일되서 북한 친구들 만나고 시퍼요”

“쌀을 주세요.북한 친구들한테. 게토레이두요”

“북한에 하루 빨리 가보고 싶어요.”

기행을 마무리 하며 현수막을 바닥에 펼치니 아이들이 서슴없이 그적대기 시작한다.

어떤 정치적 논리나 권력적 차원의 통일이 아닌 저 바닥에 엎드린 맑은 동심같은 통일이 하루 빨리 찾아 와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돌아오는 길은 주말차량들로 막혔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일정들이 막힌 도로 위를 물들이는 노을위에 수놓아 진다.나만 생각하고 시작한 오늘 하루 기행. 진정성과 깊은 성찰을 함께 하시는 분으로 인해 좀 더 성숙하게 마무리 된다.

나도 승천포 앞바다에 노니는 나룻배를 하루 빨리 타고 싶어진다.

[펌]전쟁의 상흔 바라보며 평화를 논하다 -경인일보 김은옥 2011/11/12 138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15921

전쟁의 상흔 바라보며 평화를 논하다

북한 접경지역 답사길 오른 이시우 사진작가

데스크승인 2011.11.08 지면보기 정운 | jw33@kyeongin.com

그는 평화활동가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개량한복을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다.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평화를 강조하는 그의 말에서 주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5일 ‘민통선 평화기행’의 저자인 이시우 사진작가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변호사들과 경기도 연천군 일대 북한과의 접경지역을 답사했다.

이 작가는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 그리고 임진강 일대를 돌아보며 평화와 전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그는 “비무장지대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무장지대와는 전혀 다른, ‘중무장지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며 “이번 답사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왜 그렇게 된 것인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태풍전망대에 오르자 GP초소마다 걸려있는 유엔 깃발을 가리키며 “이곳은 비무장지대로 유엔군이 관할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에서 남북 각각 2㎞씩 떨어진 4㎞를 비무장지대로 정하고 있지만, 이 곳은 1㎞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호로고루 성지에서는 “예전엔 이 일대가 상업이 번성했으며, 화신백화점도 이 근처에 자리했다”면서 “전쟁과 이어진 분단으로 지금은 폐허처럼 과거의 터만 남아있을 뿐이다”며 전쟁 전후의 변화상을 강조했다.

충남 예산 출생인 그는 10여년 전 강화도에 터를 잡았다. 강화도가 가진 지정학적 위치에 관심을 가졌고, 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

이 작가는 강화도를 포함한 인천이 ‘평화의 관문’이라고 했다. 20세기초 러시아와 일본의 전장이 되었고, 한국전쟁때는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졌다. 지난해에는 연평도 포격의 아픔을 겪은 곳이 인천이다. 그는 “인천이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더 나아가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그 첫번째 단계로 ‘평화적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평화를 만들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개인과 사회 모두가 평화를 ‘즐기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며 “즐긴다는 것은 평화를 위해 모든 힘을 쏟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고, 평화가 새로운 에너지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시우 작가는 지난 2007년 강화도 고려산의 미군기지를 촬영했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달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1999)’, ‘민통선 평화기행(2003)’, ‘한강하구(2009)’등의 책을 펴냈다. 2007년에 박종철인권상을 수상했다.

/정운기자

봉원중학교 – 강화민통선평화기행 김은옥 2011/12/03 156

민변 통일위.미군위 파주 민통선평화기행^^ 김은옥 2011/12/11 93

연천 파주 민통선 답사 후기

글_이오영 변호사

사진_이오영 변호사

지난 11월 5일 토요일 민변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는 연천지역의 DMZ와 민통선을 답사하였다. 우리들은 카풀로 각자 출발하여 오전 10시 대광리역에 모였다. 대광리역은 용산에서 출발하는 경원선 열차의 종착인 신탄리역의 직전역이다.

이번 답사의 안내와 해설은 이시우 사진작가가 맡아 주셨다. 이 작가는 몇 년 전 민변의 철원지역 민통선 답사 때에도 함께하였으며, 개인적으로는 강화도와 파주에서 몇 차례 우연히 반갑게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국가보안법으로 어처구니없이 기소되었으나 치열한 법정투쟁으로 얼마 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가 쓴 《민통선 평화기행》은 분단과 평화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이 시대의 필독서이다.

우리는 먼저 열쇠전망대와 태풍전망대로 갔다. 전망대의 이름은 부대이름을 땄다고 하는데, 티본고지니 베티고지니 하는 것과 함께 그 이름이 영 엉망이다. 모두 개명하여야 한다.

5사단 지역에 있는 열쇠전망대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방문하였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곳은 28사단지역에 있는 태풍전망대이다. 군사분계선과 불과 800미터 떨어져 있는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가히 감탄을 자아낸다. 비장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임진강을 따라 찰랑거리는 산들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몇 해 전 방류가 문제되었던 임진강댐과 가까이 보이는 낯선 파란색 유엔사 기는 우리의 뒷덜미를 잡으며 긴장하게 한다. DMZ와 북녘으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마음에만 담아 둘 뿐 눈앞의 전경을 직접 보여주지 못하지만 아무튼 태풍전망대 ‘강추’다!

우리의 답사는 비운의 경순왕릉 근처에 있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성으로 이어졌다. 임진강 북안에 험한 지형을 활용하여 세워진 호로고루성은 그 자체로 요새이다. 지난달 찾았던 단양의 온달산성이 떠오르면서 대륙에서 한반도 깊숙이 미친 고구려의 활동범위가 그려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이다. 우리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이곳은 바로 124부대 (일명 김신조부대)가 그 직전 설치된 철조망을 끊고 침투한 곳이다. 또 한강의 왕래가 자유롭던 시기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 물류로 번성하던 (이곳에 일제 화신백화점도 있었다) 고랑포가 바로 근처에 있다.
호로고루성에서 하염없이 임진강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사이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 왔다. 우리는 미군부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파리로 이동하여 장단콩 두부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당연히 막걸리가 함께 하였다.

예정하였던 답사 지역 중 적군묘에 가보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쉬웠다. 적군묘는 분단시대에 희생된 인민군과 중공군의 주검을 모은 묘소로 김영삼 정부 때 조성되었다 한다.(이 이름도 개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적군묘에 가지 못한 것은 시간이 부족하였기 때문인데, 이것은 일부 차량이 내비게이션을 맹신하여 천낙붕 위원장과 이시우작가등 지도부의 탑승차량을 따라오지 않고 다른 길로 새버린 것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러나 지도부에 대한 신뢰는 항상 중요하다.

민변의 답사가 끝난 다음 주 토요일인 11월 12일 , 나는 다시 파주지역의 민통선으로 갔다. 내가 관여하는 남북경협포럼 회원들과 함께 아침 일찍 전세버스로 합정역을 출발하여 파주지역의 임진각, 도라산역과 도라전망대, 통일촌, 허준묘소, 해마루촌, 덕진산성, 경순왕릉과 고랑포를 두루 들렀다.

남북관계에 정통한 교수들과 개성공단 입주업체 사장등 전문가들이 버스안에서 유익하고 재미있는 해설을 이어갔다. 우리는 버스를 “달리는 학교”라 불렀다.

파주의 답사 지역 중 ‘강추’는 역시 덕진산성이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성인 덕진산성은 작년 해마루촌 주민과 함께 들른 이후 항상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덕진산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표지판도 없어 찾기 어렵고, 길도 좁아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며, 포럼회원인 파주시청 직원이 일정에서 제외하자고 권유할 정도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은 덕진산성과 이곳에서 바라보는 임진강은 우리의 노고에 값하였다. 덕진산성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임진강 유일의 섬인 초평도는 그 활용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질 만하다. 덕진산성은 도시락과 막걸리 몇 통을 가지고 와서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좋은 사람이 옆에 함께 한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민통선에서 돌아오는 길은 항상 무겁다. 비무장지대, 민통선, 지뢰, 정전협정, 소파협정, 군사시설보호법, 미군, 유엔사, 땅굴 등 낯선 용어들이 실체인 벽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낯선 실체가 우리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고 이를 직면하여 이겨내지 못한다면 고단한 우리 삶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민통선의 비장하면서도 능청스런 임진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http://minbyun.org/blog/767

충북도의회 파주-강화 민통선평화기행^ 김은옥 2011/12/11 126
2011.12.16(금)~17(토)

늦봄 문익환학교 분단선기행(후기)^^ 김은옥 2012/02/23 60

2012.1.14(토) ~ 15(일) 1박2일(총45명)

늦봄 문익환학교 2012년도 예비학생들과 학부모님 그리고 선생님들이 문익환목사님 기일을 기념하여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강화도에 도착하셨네요

저녁식사후 민족21 안영민(편집주간) 선생님으로 부터 행복한 통일이야기 강의를 듣고,

다음날은 이시우작가와 강화 분단선기행을 했습니다.

첫번째 장소인 부근리 ‘고인돌’에서는 ‘부조화의 조화’와 ‘고인돌의 통일미학’에 대하여, 날씨가 무척 추웠던 탓에 밖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계속되고,

다음 장소인 강화중앙교회에서는 이동휘 선생님과 유라시아 리더쉽에 대하여

또 못다한 이야기는 다시 버스안에서

다음은 연미정으로 향하였습니다.

그간 공사중이었던 ‘갑곳진’과 ‘황영장군 묘비터’가 깔끔하게 정돈되었네요

강화나들길의 시조 ‘화남 고재형’선생님이야기와 연미정에 역사이야기가 계속되고,

과거 ‘조강’이라 불리던 ‘한강하구’의 지정학적이야기를 듣고,
다음 장소인 평화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정전협정전문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며

‘한강하구의 배띄우기’행사와 유엔사령관과의 만남이야기,

그리고, 문익환목사님의 시에 나오는 ‘비무장지대’를 60여년동안 ‘중무장지대’로 떠올리고 살아왔던 우리민족의 분단현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은 다행이 날씨가 맑아 강건너 북녂땅이 아주 잘 보였습니다.

평화전망대를 마지막일정으로 마치고 늦봄가족들은 근처

농민식당 ‘콩세알’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추운날씨 기행을 하느라 허기진 배속을 달래고,

다음에 만남을 약속하며 이곳에서 늦봄 식구들은 다시 전라남도 강진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기행전체사진 http://cafe.daum.net/dmzphotoshop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