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50년∼’90년대 사진의 흐름2001/10/01

나) ’50년∼’90년대 사진의 흐름

(가) 앞 글
19세기말 사진술이 처음 도입되고나서 일제강점을 거치고 해방과 전쟁의 혼란을 겪어야만했던 우리의 상황은 서구에서처럼 꾸준한 사진의 발전을 이룩할만큼 여유롭지가 않았다. 우리만의 사진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세계사진조류와의 급속한 만남이 시작되었던 50년대, ‘카메라’라는 기계가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아마츄어, 프로 집단이 형성되었다. 맨처음 리얼리즘을 선언하고 나선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선두로 ‘찍는 형식’, ‘찍는 내용’을 모색하고 사진적 시각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민족에게는 불행이지만 전쟁을 비롯한 혼란의 시기는 사진가에게 카메라의 눈을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전쟁후 바로 리얼리즘 작가군이 등장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50년대후 지금까지의 사진사를 크게 분류한다면, 리얼리즘 사진이 큰 줄거리를 형성하고 그 곁으로 리얼리즘사진의 영향을 받은 보도 사진, 영상사진, 엮음사진 등이 가지를 형성한다고 보겠다. 이것은 창작방법과 내용에 따른 분류로서 현재까지도 큰 맥으로서의 리얼리즘은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왜곡되지않게 전달한다’로부터 사진의 리얼리즘은 출발한다고 할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쿠르베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린다. 나는 보이지 않는 천사는 그리지 않는다.” 라고 선언한 후 , 현실에 충실하라는 것이 중세기의 리얼리즘 운동이었고 회화상에서는 사실주의가 주장되었다
사진에 있어 리얼리즘은 미와 진실이 담겨 있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자하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는 형식과 내용을 갖는다. 즉 사진만의 독특한 기능- 현실 기록성-을 전제로 현실을 포착하되 작가의 세계관이 그 현실의 본질을 꿰뚫어 전형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50년대로 거슬러가보면, 카메라의 기계적 기록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한, 소위 생활주의 사진으로 불리우는 초기 기얼리즘 작가군이 형성되는데, 이들은 관념적인 회화주의에 반대하면서 사회적, 인간적인 대상으로 카메라의 초점을 이동하여 그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때를 한국사진사에서는 사진의 대중화의 토대를 형성하는 시기로 볼수 있으며, 60년대 이후는 사진의 사회적 정착기에 접어드는 시기로 볼 수 있다.
보도사진, 영상사진, 엮음사진 등 창작방법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정착되는 시기로서 그 바닥에는 리얼리즘 사진의 영향이 컸다. 그 후 객관적 현실을 직시하는 사진의 기계적 기록성–사진의 기록성은 사회성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을 단순한 기록성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시선을 한데 모은 카메라를 무기로 삼아 왜곡된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던 애정어린 심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에 의심을 품은 일군의 작가들은 찍히는 대상의 이동을 꾀한다. 아주 일상적 삶의 이모저모나 그속에 놓여있는 사람의 내면세계에 촛점을 맞춰 표현하는 경향이 80년 90년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80년대 후반 해외유학파의 대거 입성은 사진계의 판도를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일부는 미술 등 다른 장르와의 경계를 허무는 일련의 작업을 획책하면서 사진이냐 미술이냐의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세계사진사적으로도 이때는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극사실주의, 개념사진 등이 정착되는 때였다. 이들은 현실세계속의 자아의 정체성, 동일성 문제를 주요 고민으로 삼는데 이런 내용을 형상화하기위한 방법으로 창작자체에 작가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한다.
80년대 후반부터 ’11월- 한국사진의 수평’전과 ‘한국현대사진전- 관점과 중재’ 전이 열리고 있다. 후자가 전통적 사진의 맥을 잇고 정리하는 차원이라면 수평전은 90년대 이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사진예술의 쟝르 확대와 영상사진의 요구를 표출하는 사진전이라 볼 수있다.
다양한 창작방법의 변화를 일구고 그것에 따른 다양한 형식의 발전이 있어왔지만 현실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사진 본래의 속성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진이 ‘현대미술’ 의 범위안에서 논의 되는등 사진의 세계는 여러 각도로 확대 구축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뒤늦게 출발했지만 바쁘게 반백년을 살아 온 남한의 사진사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그 속에서 사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고 현재에도 유효한 것은 무엇이며 또 문제가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는 무엇인지 밝혀보고자한다. 우선은 시대별 주요 흐름을 정리한 단계로 끝났다. 사진가와 다양한 조류의 점검, 사진을 통한 작가의 해석―재해석―, 나아가 다시 배열하며 제자리를 찾아보는 작업들이 앞으로 해야할 작업이겠고 거기서 한계를 알아내고 가장 최선의 대안 찾기가 남아 있는 과제이다.

(나) 가운데 글

1) 50년대-풍경사진에서 생활주의 사진으로
일제 강점기를 사진의 도입 정착의 시기로 본다면 해방과 전쟁, 분단의 역사적 질곡을 건너왔던 50년대 전후는 사진의 대중화 시기로 볼 수 있다. 대규모 사단형성과 더불어 사진인구의 저변확대가 그렇지만 리얼리즘의 등장으로 현실기록성의 사진적 특징을 자각하던 시기였다.
일제 강점기 초기 사진은 풍경사진―살롱사진―위주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풍경사진의 특징은 조선후기 산수화풍과 직결되는데 자연과의 일치감을 추구하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한편 리얼리즘의 등장으로 풍경사진은 대부분 살롱사진으로 치부되면서 일견 사진의 타락처럼 매도당하기도 했다. 이후 사진의 전반적 이해와 함께 풍경사진은 하나의 장르로 정립되고 세분화된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소재의 차이에 따라 Water, Sky, Social, Urban, Human, Cloud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풍경사진의 인식에 차츰 변화가 생기는데 자연의 모습을 그림같이 –윤곽을 뿌옇게, 신비스럽게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만이 풍경사진이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그것은 작가의 사상, 세계관이 풍경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며 결국은 작가의 현실세계의 반영이라는 인식이었고 그러므로해서 풍경사진이 표현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리얼리즘 사진을 표방했던 초보적 작가군은 사회적, 인간적인 대상에 눈을 돌려 현실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민중은, 일상의 생활모습은 조형적 대상이나 사진구성의 흥미로운 소재에 그치고만 감이 있다. 이들을 생활주의 사진가로 칭하는 이유가 여기있는데 이건중, 이해선, 이형록 등의 사진을 보면 50년대 혼란의 상황이 세련되고 정제된 사진속에 현실과 유리된 채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부는 패턴화 되어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는 리듬감을 형성하고 일부는 관광민속사진처럼 낭만적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이들이 리얼리즘의 시각을 획득하지 못하고 경향에 머물렀던 것은 자연과학적 합리주의적 의식을 투철하게 체득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30여년 동안 수용자적 입장에 설수밖에 없었던 우리 역사의 단절상황을 일면 원인으로 볼 수 있겠다.

2) 60년대
A. 보도사진
60년대는 저널리즘의 근본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그것은 텔레비젼이 보급되고 컬러사진이 대중화되면서 좀더 세련된 시각적 영상성이 요구되어진 바도 있지만, 근대화정책의 과정속에 사회전반적으로 조장되어진 경쟁력 강화의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모습은 계몽자의 역할에서 독자의 시각을 의식하는 서비스 저널리즘으로,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변화되는데 1964년 컬러 사진의 인쇄를 시작으로 신문, 잡지사의 경쟁은 가속화된다.
신문사에서는 사진부가 독립하는 등 뉴스사진은 곧 보도사진이라는 등식이 깨지면서 보도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의 위상이 강화된다. 그것은 동시에 찍는 사람, 즉 기자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인데, 기록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단순한 사람이 아닌 좀더 세심한 관찰력과 지적 교양, 사물과 세계를 보는 관점의 분명함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 중앙일보에 주명덕이 있었고 동아일보에 강운구가 있었는데, 주명덕이 전통적인 한국인의 생활감정에 바탕을 두었다면 강운구는 대상의 본질에 육박하는, 핵심을 포착해 내는 사진으로 보도사진의 수준을 향상시켰다. 66년 주명덕은 ‘섞여진 이름들’이라는 작품집을 펴낸다. 68년 최민식은 작품집 ‘인간’을 펴낸다.
B. 엮음사진
포토에세이, 포토스토리 등으로 불리는 사진의 창작방법이다.
5.16 이후 자연주의적 수법을 이용한 현실포착의 방법이 등장하는데, 자기 이미지 정착의 방법으로 혹은 자기 주체성 확립을 목적으로 문명 비판적인 내용을 담는 포토에세이 류가 주를 형성한다. 이들은 기존의 ‘사진찍음’을 객관묘사 중심의 무계획적 방법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테마성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엮음을 이용한 것이다. 대상을 내용과 형식의 측면으로 나누어 관찰하여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초기의 형식은 개개의 작품을 군집, 나열는 군사진 형식을 취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과거 ‘읽는다, 만든다’는 형식에서 ‘느낀다, 표현한다’는 형식의 변화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3) 70년대부터 현재까지
70년대의 특징은 ‘사진’이라는 것이 산업과 예술의 복합적 속성속으로 편입되는 측면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60년대부터 추진된 급격한 근대화정책의 결과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속에서 광고사진의 산업화가 가속된다. 충무로의 스튜디오화가 그렇고 인쇄매체의 급부상 등이 그렇다. 또 한편으로는 순수사진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생각하며 미술과 컴퓨터 그래픽과의 만남을 통한 또다른 표현양식을 개발하고자한 측면이다. 여기서는 예술보다는 시각적 전달 기호화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유학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조류가 형성되면서 점차 가시화된다. 이들은 심층적 내면세계로의 침투를 중요하게 여기고 사진을 통하여 자기동일성을 획득하고자 한다.이러한 경향을 영상사진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이 흐름들은 사진의 다양성속의 한 부분일 것이며 ‘진실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리얼리즘사진은 면면히 계속되어졌고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른 예술이 그렇듯 사진도 시대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놓인다. 외향적으로는 산업사회의 눈부신 성장이 있지만 그 그늘에는 인구, 식량, 공해문제, 이윤의 분배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다. 또한 인간이 수단으로 가치전도되는 비인간화의 위기의식은 한편으론 저항의식을 한편으론 심각한 인간의 소외감을 야기시킨다. 이모든 것들이 사진적 대상이고 본질적 문제를 똑바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사진가의 사명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70년대 이후는 이모든 상황이 다양성의 범주 속에서 논의 되어지고 있으며 사진을 포함한 다른 예술도 그 안에서 갈길을 모색하고 있다도 볼 수 있다. 다만 현대의 모든 예술의 중심에 흐르고 있는 공통분모는 ‘세계와의 관계맺음’이다. 사진의 경우를 보면 사진이 개별적 사진으로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계와의 관계 속에 ‘찍은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어떻게 관계 맺었는가’가 ‘어떻게 무엇을 찍었는가’를 규정한다는 것이고 그인식이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사진은 이런 것이다’라고 한마디로 규정짓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은 틀림없다. 모든 것을 수용하는 입장이라고하면 ‘예술제도론’적으로 바라보게되고 예술가 연하는 사람의 작업은 그 정체가 무엇이 됐건간에 인정해야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영상사진의 급진적 경향성이다. 사진의 매카니즘이 변형되고 단지 카메라라는 도구를 사용했을 뿐인데, 더구나 현실은 극히 추상화된 형태로 변형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사진전’이란 타이틀 아래서 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애쓰곤 한다.
소위 ‘타쟝르와의 벽 허물기’ 작업은 80년대 후반 해외유학파의 입성과 함께 가시화 된다. 김대수를 비롯한 몇몇의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경계 허물기’작업은 위에서 말한바대로 해석의 불편함을 안겨주었고 ‘사진이냐’ ‘반사진이냐’의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현실을 모순과 복합성 가운데 갈등의 형식으로 풀어나간 하나의 창작방법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아예 사진이 아닌 미술로 떠나보내는 입장도 있고보니 사진의 의미확대는 이 시대의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70년대이후는 다양한 시각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전개해온 시기라고 볼 수 있다.
50, 60년대가 회화적 경향의 추종에서 카메라의 광학적 시각에 바탕을 둔 ―육안에 뿌리를 둔―사진의 기록성의 인식회복기였다면 영상사진은 광학적 시각의 특성에 사람의―눈―시각이 개입되면서 카메라 eye의 잠재적 기능을 파헤치고자 했다. 또한 80년대 김중만, 한정식, 김종수, 김복만 등이 신진세력을 형성하여 커뮤니케이션에 사진미학을 접목시키는 방법을 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이자 과제는 이들이 추구하는 내면적 진실이 세계를 보는 정확한 인식의 토대위에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대안 없는 개인의 놀이에 머무는 위험스러움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시 사진본래로 돌아 갈 경우 일련의 작업이 가지는 의미가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시기 세계사진사에는 콘템포러리 포토그라피 운동이 등장한다. 현실의 관념적 이미지를 해체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고자 했던 운동으로 영상의 흔들림, 흐려진 입자를 이용하는 등의 방법을 이용하였다. 이들은 리얼리즘사진의 속성가운데 결정적 순간, 절대 비연출, 객관적 형식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개성적 창조표현을 추구한 조류였다. 영상사진의 일부 조류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진 본래의 특성, 본질과의 상관관계 속에 위치하여야 개인의 세계로 닫혀버리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다) 마무리 글
전통사진의 미학을 재평가하는 시도, 시간의 의식보다 공간성을 중요하게 양상 등 새로운 조류는 계속해서 일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다양성을 핑계로 혼란의 시기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정범태는 50, 60년대 이후 소위 좋은 사진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될만한 ‘사건’이 있으면 찍고 ‘사건’이 없으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식으로 리얼리즘 사진이 왜곡될 수도 있다. 가치전도의 발원지인 현실 속으로 걸어들어가 저항의 렌즈를 들이대거나, 아예 180도 머리를 꺽어 철저히 개인안으로 침투하거나, 그것이 진실에 대한 충실한 해석이든 전위적 형상화이든 간에, 또는 컴퓨터, 디지탈의 발달에 힘입어 조합된 그무엇이 예술의 한 형태가 되든간에 사진은 총체적 예술의 범위안에서 다시 해석되어지고 있으며, 역으로 얘기하면 세계와의 관계속에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회화의 시녀’에서 타쟝르와 똑같은 지위를 얻기까지 그 면면한 흐름은 사진을 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말 못할 감동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해체의 위기감에 방치되어 있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자본의 발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의 성을 쌓고 있다. 대안은 무엇이겠는지.
그러나 미래에도 유효한 것은 진정한 리얼리즘– 리얼리즘 정신–의 승리일 것이다. 현실 모순의 대항 매체로서 혹은 내면의 충실한 반영자로서의 사진은 그 본질적, 기계적 속성이 변하지 않는한 미래에도 유효하지 않겠는가. 현실의 상황은 아무에게나 포착되는 것이 아니다. 자각이 없이는 안된다. 섬세한 외적형식이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력으로부터 사진가는 탄생하는 것이다. 현실 가능한 개혁을 모색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정서위에 사진가는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를 사진의 역사이래 줄곧 그래왔듯 계속되는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공부의 부족이 곧 지식의 부족이고 부족한 통찰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많은 것이 의문으로 남았다. 그러나 사진은 이 시대의 진실을 파헤치는 또다른 현실이 될 수 있다. 앞과 뒤가 동시에 열리고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동시에 존재하여 현실을 해석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거나 그 자체가 진실일 수 있는 사진. 셔터가 열리는 순간 응집된 세계가 카메라에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