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기-일산포럼2005/04/28

황사가 날리는 도시를 오가다 보니 기관지의 천식기운이 돋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쉬어야 안정이 될 것 같다. 지난주의 만남과 경청하기를 기억해서 정리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청하기도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정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만큼 이것은 보람 있는 일이다. 사색은 깊게 하지만, 경청은 풍부하게 하며, 기록은 함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금요일쯤엔가 CBS의 김종욱피디로부터 메일이 왔다.

몇 달 전에 제가 우연히 어떤 모임에 연루(?)되게 됐습니다.

서강대학교 정치학과 박호성 교수라고 계신데,

지난 해 연말에, 일산지역에 살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이 한달에 한번 모여서

이런 저런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 모임을 가지려고 하는데 참여하라”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거듭 사양하다가 “심부름이나 하겠다”며 그 모임에 끼게 됐고,

지금까지 서너 차례 모인 것 같습니다.

모임 이름은 가칭, 그리고 거창하게도 [일산포럼]입니다만,

7~8명이 참여하는 작은 모임입니다.

이 모임의 멤버는

김금수(노사정위원회 이사장), 이해동 목사가 이른바 어르신 격이고요,

(지난 달에는 김낙중선생님이 오셨더랬는데 계속 나오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아래로 박호성 교수가 있고,

그 아래로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역시 성공회대) 등 몇 사람이 있고,

제가 비슷한 연배지만 그 아래인 편이고요,

그 밖에 이런 저런 직업을 가진 몇 분들이 있습니다.

(모두 기억하지 못합니다)

요점은, 이번 주 토요일에 이 모임이 열립니다.

그래서 일산에 사는 사람들이니까 오셔서

‘한강에 배 띄우기’에 대해 맛보기 설명이라도 한 번 하는 것은 어떨까…싶습니다.

그래서 토요일(16일) 강화유족회의 위령제가 끝나고 난 뒤, 최미란님과 지정희님과의 만남이 끝나고 서둘러 일산으로 향했다. 박호성교수님과 인사를 하시며 명함을 주신다. 내가 명함을 받기만 하고 주지 않자 박교수님이 ‘이 선생님 명함 없으세요.’라고 묻는다. “예 저는 명함이 없네요.”옆에 있던 김피디가 “명함이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응수해 주신다. 곤드레나물집이라는 글씨가 써진 봉고에 타자 이미 맨 뒷자리 구석부터 김금수선생님과 이해동목사님, 그 앞자리에 김창남선생님과 박경태교수님등이 앉아 계셨다. 어딘가 식당으로 우선 가는 분위기였으나 굳이 묻지 않았다. 뒷자리에선 노사정위원장을 얼마 전 그만두신 김금수선생님의 이야기가 한참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으십니까? 그래도 감이란게 있으시쟎아요?” 김피디가 물었다. “글쎄요. 오늘 내일이 고비인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기했어요.” 개인적 사견임을 전제로 그러나 아직 이 문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인일 수 있는 당신의 말씀을 아끼시며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견해를 담담히 설파하고 계셨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라고 의식하신 듯 다른 주제로 옮겨간 이야기가 후배들의 결혼등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주례를 많이 서시는 이해동목사님에게서 이야기보따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오늘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 분위기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식사에 앞서 간단한 소개를 하는 자리에서도 모두 고양일산에 사는 분들로 일산포럼에 걸맞는 자격이 있었지만 나만 도시 위치설정이 안되는 것 같았다. 고양시민회의 대표일꾼이신 이충연님, 김금수님,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원이신 윤영주님, 박호성교수님과 학단협시절 같이 일을 도우셨던 김혜린님, 김창남님, 김종욱CBS노조위원장, 성공회대 박경태님, 이해동목사님, 건치대표이신 두리치과 전성원님, 원당에서 정신과의사를 운영하시는 조중근님, 김동춘님과 김낙중님은 불참하셨다. 박호성교수님께서 식사가 시작되기 전 또한번 명함이야기를 꺼내셨다. “이 작가님 그래도 일을 하실려면 명함을 하나는 가지고 다니셔야지. 여기에 주소라도 써주세요.” 보통은 한번만에 끝나는데 두 번 세 번 명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시기는 박교수님이 처음이다. “네 고려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하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고 생각하셨는지 “우선 식사를 하고 강의는 식후에 하도록 양해 해 주십시오” 라는 말을 내게 하셨다. 그제서야 오늘 해야 할 것이 강의란 것을 알았다. 식탁을 세워 준비해 간 한강하구의 위성사진을 붙이고 설명을 시작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참석한 분들은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은 긴장감을 내내 유지한 채 경청해주셨다.

설명이 끝나자 이해동목사님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하셨다.

이해동: 아니 그게 정말이에요. 아니 왜 나는 여지껏 그걸 몰랐지. 그래도 강가운데에 휴전선 같은 것은 있을 것 아니에요”

이시우: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는 육지에만 있고 강에는 어떤 군사적 개념의 ‘선’이나 ‘지대’가 존재하질 않습니다.”

이해동: 그거 정말 재미있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배를 띄워서 가면 되겠네. 이거 완전히 지난시간에 들은 김낙중선생이야기와 딱 맞아 떨어지는구만”

김금수: 그래, 김낙중선생을 선장으로 하면 되겠네. 우리들도 배에 태워줍니까? 응 그럼 됐어”

박경태: 이 이야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아니 이런 이야기를 정말 왜 우리가 몰랐지….

박호성: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이건 굉장한 일인데… 우선 우리 김종욱피디가 오늘 이 선생님을 모셨으니까 책임을 지고 일을 좀 맡아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김종욱: 저는 연락책입니다. 이일은 이미 비폭력평화물결이란 단체의 대표이시고 일산에 사시는 박성준교수님과 일하는 팀이 있습니다.

이시우: 그 팀은 기획단입니다. 사이버상의 캠페인을 통해 이를테면 지원하는 팀인데 무엇을 지원하는가 하면 바로 한강하구에 접해있는 강화, 인천, 김포, 일산, 파주 지역주민들의 아래로부터의 조직을 지원하는 역할입니다. 이일의 주인공은 지역주민입니다. 특히 마을이장님까지 찾아가서 주인공으로 모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일산에서는 일산의 지역모임이 만들어지고 지혜를 내어주시고, 움직여 주시길 바랍니다.

박호성: 우리가 무슨 일을 했으면 좋겠는지…그래도 먼저 고민하시고 준비하신 분이니까 말씀을 해주세요

이시우: 우선 여론을 형성하는 일입니다. 조만간 사이월드에 미니홈페이지가 만들어질텐데요 이곳에 많이 들르셔서 보아주시고 그것을 다른곳에 열심히 옮겨주셔서 초기 분위기 형성의 기세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엔 6월경 유엔군사령관을 직접 찾아가서 이 일을 설명드리고 협조를 구할텐데요. 그때도 함께 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금수: 지금 당장도 배를 띄울 수 있다고 했쟎아요. 유엔사령관의 허가도 필요없다고 하셨고?

이시우: 물론입니다. 한사람의 모험가가 무작정 배를 띄워도 정전협정상 아무런 법적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험가 뿐아니라 평범한 주민들이 안전하게 한강하구의 닫혔던 문을 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안전하고, 부드러우며, 권위있는 분위기가 민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창남: 아니 어떻게, 사진가가 정외과 교수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어요.

박호성: 어허 정치외교도 분야가 넓어요. 다 알 순 없지… 하하하

이충연: 한강하구를 여는 문제나 철조망을 제거하는 문제는 한편에서는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시우: 군대가 환경을 지켜왔다는 역설이 가끔 회자되고, 환경단체들이 군과 손을 잡는 모습도 발견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왜곡된 역설입니다. 군이 환경의 파수꾼이라고 보기엔 민통선이나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서 많은 훼손을 유발해 온 책임이 있습니다. 사설업자들의 무분별한 개발도 막아야겠지만 군에 의한 한강하구의 훼손도 더 이상 방치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태를 보존 하는데만 치중한 환경정책은 한강하구의 오염과 파괴를 방치하자는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한강하구는 위험지경에 이를 정도로 훼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인 보존이 아니라 능동적인 환경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한강하구의 생태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어느 한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아닌, 민간과 정부의 종합적인 조사와 연구, 토론에 의해 한강하구의 통합된 전망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여기계신 전문가분들이 한강하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분야별로 진척시켜주시는 것이 평화의 배 띄우기 이후에 도래 할 상황을 준비하는데 절실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되며, 고양시민단체들의 지혜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박호성: 우리 어쨌든 이 문제를 같이 진행합시다. 김종욱피디가 아무래도 좀 일을 해줘야 겠어. 우리가 모일 필요가 생기면 연락을 좀 맡아 해 주세요.

김금수: 다음 모임은 한강하구에 뜬 평화의 배 위에서 합시다.

박경태: 김낙중선생님께 연락해서 반드시 선장을 맡겨야 합니다. 하하하

김금수선생님께서 차에서 먼저 내리시며 ” 배 띄우기 꼭 합시다” 하신다.

김포까지 와서 대곶행 버스를 갈아 타고 와서 초지대교를 건너는데 뒤에서 군인이 호루라기를 불며 나를 잡는다. “여기는 오후 8시 이후 통금입니다” “여지까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요. 오늘만 그런겁니까?” ” 아닙니다. 규정입니다” “강화대교는 그렇다 치고, 여기를 통금시키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북이 있지 않습니까?” “북이요…..”

‘초지대교를 건널 때 오른뺨을 치듯이 불어오는 북풍의 합창을 추억속에 묻지 않기 위해서도 한강하구가 열려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