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평화의배띄우기 선상낭송문2006/08/09

이슬이 모여 강을 이룬 것이라면
풀잎에서 담던 세계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을 담으리라
눈물이 모여 강을 이룬 것이라면
두눈에 머금던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을 머금으리라
마음이 모여 강을 이룬 것이라면
가슴에 품었던 뜻보다 더 큰 뜻을 품고 흐르리라.
한강하구의 물빛이 푸른 것은 하늘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하구는 언제나 유라시아의 하늘을 비춰왔다. 유라시아의 패권이 한반도로 요동쳐 올 때마다 이곳은 가장 먼저 수난과 항전으로 민족의 운명을 예고해 온 역사와 문명의 나침반이었다. 대륙의 패권을 꿈꾸던 몽골기병에 밀려 고려 고종이 한강하구의 승천포를 건너던 순간이나, 근대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였던 프랑스함대가 한강하구를 지나 양화진에 닿았을 때에나, 미국함대가 초지진에 상륙하던 때에도,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전후로 무고한 양민이 학살되던 한국전쟁의 아수라에서도 강화는 어김없이 예리하게 유라시아지정학의 축소판이었다. 역사의 파도를 해일로 맞고, 문명의 갈등을 전쟁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변방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정전협정의 쌍방인 18개국 민간인에게만 그 출입이 개방된 한강하구가 국제하천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 웅비의 나래를 치고 있다.
냉전의 모범답안이라 불리는 정전협정의 1조 5항은 “한강하구는 민간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고 명시했다. 하천의 항행기능만을 법적 합의 대상으로 하던 당시 서구의 한계가 그대로 반영된 이 문구는 그러나 후속합의서인 한강하구항행규칙에서는 그 대상이 민간선박만이 아닌 민간인임을 정확히 했다. 군용선박이나 정부선박이 아닌 민간선박의 항해는 물론이고 비행과 다리를 이용한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우리는 오늘 한강하구의 막혔던 뱃길을 열 뿐만 아니라, 한강하구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얼과 삶을 되찾고, 한강하구를 우리 겨레의 평화로운 삶을 위한 터전으로 복원하려 한다. 또한 고향 땅을 강 건너 눈 앞에 두고 오랫동안 그리움과 상실감에 시달리며 살아오신 남북의 실향민들에게 통일의 다리가 되어주고, 분단과 전쟁으로 말 못할 상처와 시련을 강요받아야 했던 우리의 이웃들에게는 그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평화의 손길이 되고자 한다. 또한 개발위협에 생존의 터전을 빼앗겨야 했던 온 생명들이 이 강에서 위로받고 보호받도록 생명의 둥지가 되고자 한다. 모든 국제하천의 근본문제가 그러하듯 한강하구의 근본문제 역시 ‘관할권’에 있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주권의 표현인 관할권은 남,북정부에 있고, 인민군과 유엔사는 관리권만이 행사될 수 있다. 그러나 유엔사는 비록 관리권이라 해도 출입자체를 불허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관할권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하구에는 유엔군사령관과 인민군사령관이 그 출입을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이 배제되어 있기에 남북정부가 공동으로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도 인민군사령부도 아닌 민간인에 그 출입이 개방된 한강하구는 통일과 평화, 생명의 해방구인 것이다.

한강하구는 분단의 피해자였던 민간인이 주체가 되어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정점이며, 국제전과 세계냉전의 대상이었던 18개 국가의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 냉전의 마지막 상징을 생명과 평화지대로 만들 수 있는 평화의 축이 될 것이다. 우리의 고정관념 말고는 우리의 길을 막을 장애는 없다.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다.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한강하구의 민간 평화적 이용은 우리 스스로의 관성을 극복하는 일인 것이다.

그리하여 아시아와 유럽의 민중이여! 만일 새로운 대륙의 미래를 상상하는 자 있다면 유라시아의 끝, 반도의 젖줄 한강하구를 보라. 지금 한강하구의 나침반은 다시 유라시아 지정학의 축을 향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