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사진전 심사평200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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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심사평

아무도 경험하지 않은 생소한 피사체를 다룰 때는 ‘무엇을’ 보는가가 중요해진다. 많은 사람이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피사체를 다룰 때는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해진다. 이때는 보는 방법의 혁신만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이 체험할 것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현대 사진은 ‘무엇을’보다 사변적인 ‘어떻게’에 더 많은 방점을 두는 경향이 뚜렷하다.
어떤 경우도 사진가만이 처음 본 사물이란 없고,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물 또한 없다. 때문에 ‘무엇을’만을 절대시해도 ‘어떻게’만을 절대시해도 안 될 일이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는 가끔 어떻게 볼 것인가에 혁명적인 비약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마주할 사상과 이론적인 준비가 충분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비록 그렇지 못하더라도 현실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급속한 깨달음에 이르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돈오(순간적인 깨달음)는 가능해도 점오(수양을 통한 점진적인 깨달음)는 불가능하다고 하듯, 결국 사상, 이론을 교육받았다 해도 현실과의 생생한 부딪침없이는 견오각성이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을’과 ‘어떻게’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이다. 그런점에서 그 어떤 매체보다도 사진가에겐 그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자리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그 자리를 금강산으로 택했다. 금강산이란 공통의 장소에 모임으로서 우리의 미학적 과제는 ‘무엇을’보다 ‘어떻게’로 비약했다. 이전까지 소수의 작가가 금강산이란 소재 자체로 금강산의 미학을 주도해 왔다면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해 ‘어떻게’를 미학의 중심으로 옮겨 놓는 행위를 한 것이다. 대중적인 통일사진대회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미학적 혁명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금강산의 미학은 한단계 진전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서도 일어난 변화였다. 출품된 사진을 보니 비슷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보이지 않는 교류를 한 결과이고 무언의 교육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사진다운 교감방식이다. 그러나 같은 장소와 피사체에 대해 아주 미세한 차이를 나타내는 작품들로 출품작은 나뉘어 졌다. 그 미세한 차이에 의해 심사의 결과는 크게 달라졌다. 미세한 차이야 말로 개인의 창작적 끼와 숙련도가 발휘된 징표이다. 출발 전 공부한 역동성, 개방성, 총체성의 조화가 각자의 역량에 맞게 표현되었다.

이승희의 구룡폭포 가는 길은 첫눈에는 잘 띄지 않는 작품이지만 볼수록 새로운 미학적 기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희의 작품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경이 되는 웅장한 세존연봉, 멀리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그리고 왼쪽하단의 연인이 그것이다. 옥류동쪽에서 바라보는 봉우리들을 먼저 보자. 외금강은 내금강과 달리 웅장하고 장대한 기상을 연출하는데, 만물상의 귀면암이나 절부암등이 홀로 우뚝 선 장엄이라면, 옥류동에서 보는 연봉은 삼각형의 기반위에 뒤틀리듯 꺽인 봉우리가 연출하는 기운으로 하여 단단하고 역동적인 장엄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가장 잘 잡은 것이 장유정의 ‘구룡연’이다. 특히 눈부신 역광을 봉우리 뒤통수에 위치시켜 역동성을 강조한 솜씨는 감탄할 만하다. 장유정의 작품에는 만수대 창작사의 화가들이 금강산 봉우리들을 그리는 필체를 닮은 역동성, 자주성의 미학이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작품에서 나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열린구조가 없는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 것이 이승희의 작품이다. 이승희의 작품에선 장유정이 보여준 역동적 구조를 잘라먹은 아쉬움이 있다. 사진창작에서 ‘어디까지를 잘라낼 것인가’가 마지막까지 사진가가 고뇌하는 핵심임을 다시한번 실감케 된다. 장유정과 같은 구도를 갖추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경이 되는 눈내린 세존연봉의 기상은 언제 어디서도 불 수 없는 장엄을 갖추고 있다. 이승희 작품의 탁월함은 왼쪽하단에 하산하는 남녀의 형상을 배치한 점이다. 편의상 연인으로 표현하자.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구성을 시도했지만 이승희만이 그중 완결성을 갖추었다.
다리의 산행개들은 부가적 의미로만 존재한다. 다리위의 관광객들의 흐름을 대표하는 것이 연인이다. 역동적이고 웅장한 봉우리들에 비해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연인의 호젖하고 여유있는 발걸음의 형상은 보는 사람이 이 사진에서 자신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눈높이를 제공하고, 혼돈의 자연으로 안내할 안정과 질서의 근거를 마련한다. 그러나 이승희의 사진에서 연인이 주는 이미지는 왠지 현대적이질 않다. 나에겐 너무 뜨겁지 않고 담담한 거리가 존재하는 이 형상에 볼수록 깊은 호감을 갖게 하지만, 자칫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설명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 점에서 한세연의 작품 ‘IMG 5263′은 설명과 울림의 차이를 확연히 보여준다. 외로이 걷고 있는 한사람과 배경이 되고 있는 만물상의 웅장한 암석의 주상절리에는 이승희의 구룡연과는 다른 짙은 울림이 있다. 감정이입의 대상으로서 두사람 보다는 한사람이, 대화보다는 사색이 더 강한 울림을 갖게 한다. 그러나 굳이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사람의 자취를 강하게 울리는 작품도 있다. 조혜연의 ‘만물상2’를 보자. 작은 산행로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깍아내린 듯한 암석들과 달리 작은 선에 불과한 산행로이지만 여기엔 강한 사람의 흔적이 있다. 그렇다. 인간이 있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화된 자연만으로도 그것은 훌륭히 표현된다. 그리고 비어있음으로 해서 수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조혜연의 ‘만물상2’와 한세연의 ‘IMG 5263′이 보여준 부감촬영은 이승희의 ‘구룡폭포 가는길’의 앙감촬영과 대조된다. 위에서 내려보기와 아래에서 올려보기의 차이인데, 앙감이 웅장함과 역동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구도라면, 부감은 총체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구도이다. 조혜연의 사진에는 다른 사진에서 불 수 없는 또 하나의 독특한 해석이 있다. 왼쪽 계곡의 아우성치는 듯한 암석의 형상이다. 작가는 얼핏 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형상을 발견하고 있다. 바위를 보는 해석은 백운종의 ‘비상을 꿈꾸는 장산곶매’와 같이 우화적인 것이 있고, 장유정처럼 숭고한 것이 있다. 그러나 조혜연이 본 바위의 형상은 비극적이다. 비극은 숭고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훨씬 높은 미학적 성취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는 웅장한 금강산의 자태가 있기까지 산은 수수만년을 비바람과 싸우며 자신을 깍아냈고 지금의 형상에 이른 것이다. 우린 그 결과만을 보고 웅장함에 압도되거나 우화와 전설을 만들어 낸다. 인생의 극적 과정을 통찰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연에서 비극의 형상을 찾아 낼 수 있다. 이러한 극적 과정을 좀더 승화시켜 표현한 작품도 있다. 라풍자의 ‘공존’이다. 달빛만이 자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외로이 서있는 바위는 작가의 감정 이입에 의한 결과이면서, 바위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다. 다시 인생의 역정을 통찰할 수 있는 자만이 혼돈의 자연에서 독창적인 의미와 상징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신정남의 삼일포 와우도를 묘사한 ‘PICT4129-M4’ 역시 삼일포에 대한 독창적 해석이 돋보인다. 판소리 동편제가 웅장하고 호방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편제가 그 반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임방울이란 한많은 인생을 산 명창에 의해 동편제도 서편제처럼 깊은 한과 정에 서린 음색을 가질 수 있음이 발견되었듯이 삼일포는 화랑들의 풍류처답게 맑고 쾌청한 인상이 역사적으로 굳어져 있던 곳이지만, 신정남의 삼일포는 짙게 드리운 먹구름과 놀랍도록 단순화 시킨 형상으로 삼일포의 그늘에 서려 있을 수 있던 또다른 정서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가장 많은 남과 북의 국민이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대상이 금강산이란 점에서 현재의 시기 금강산은 민족미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소재임에 분명하다. 새로운 사상, 이론을 개발하고 조선시대까지 도달했던 금강산미학의 높이를 새롭게 갱신할 주인들이 바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우리의 시대가 민족미학의 새로운 르네상스임을 자각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