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편지12007/10/30

은옥씨에게….
당신이 접견을 하고 간뒤 남겨준 민원서신을 보고 나도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문정현신부님, 권오헌선생님등과 함께 검찰에서 접견한 후 써놓은 편지가 있었는데 이제야 편지지를 구했소.

– 단식에 대하여 -

5/9 검찰청으로 문정현신부님과 권오헌선생님,김애영강화민예총지부장님,오마이뉴스의 장윤선기자와 처인 김은옥씨가 방문해 주셨습니다. 갑작스런 만남은 반가움을 넘어 울컥 눈물이 복받쳐 왔습니다. 짧은 면회시간동안 오간 대화의 주제는 단식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건강을 생각하면서 단식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고, 문신부님께서는 “도저히 슬퍼서 지켜볼 수가 없어”라고 하셨습니다. 그 따뜻한 배려와 진심어린 걱정을 접하며, 그래도 만약 단식을 놓을 수 없다면 밖에서 동조단식에 들어가겠다는 말씀을 들으며, 저는 그제서야 밖에서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헤아려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 입장만을 생각해오고 있어구나 하는 반성이 순간 들었습니다. 문신부님께서 또 단식을 하시게 해선 안될 일이었습니다. 짧은 면회를 마치소 구치소독방에 좌정하고서야 제 자신도 단식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검사님이 “도대체 단식을 하는 목적이 뭐냐?”라고 다그쳐 물었을때 지금까지와 같이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특별히 할말이 없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저
의 단식은 무슨 목적을 세우고 시작된것이 아니었습니다. 4.19일 경찰과 처음 만났을때, 그리고 옥인동 분실로 끌려가 조사를 받던중 저녁 시간이 되어 경찰들이 밥을 시켜왔을때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던 한마디로 지그까지의 단식이 이어진 것입니다. 그때의 심정은 분노나 저항심이 아니라 뭔지 모를 깊은 슬픔이었습니다. 한없이 밀려오는 슬픔이 저의 입을 닫게 했습니다. 묵언과 단식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목적도 없이 단식을 시자했다는 말에 의아해하거나 실망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3년전 ‘유엔사해체에 대한 걷기명상’을 결심했던때가 기억났습니다. 신중하게 계획하고 검증되지 않은 일엔 쉽사리 손을 대지 않는 저를 2개월동안이나 길위에 서 있게했던 무모한 결정을 하게 했던것은 ‘바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고민해줄것을 부탁하며 번번히 무관심과 부딪치기를 몇일! 강화집으로 걸어가다 만난 벌판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그래 이렇게 계속 걷자’고 결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유엔사해체를 ‘위한’이 아닌 ‘대한’이었고, ‘캠페인’이 아닌 ‘명상’이었습니다. 다른 분들께 부담을 주지 않고도 제 마음을 향해 조용히 걸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저는 제가 논리적이지도, 조직적이지도 않다는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이번 단식 역시 그랬습니다. 목표나 조직과제 같은 것을 생각치 못했습니다. 3년전 들판이 ‘바람’대신 경찰과의 ‘만남’이 제 마음의 결심을 하게 한 계기였고, 내 삶자체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마음의 ‘결’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결을 따라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입니다. 다른분들께 안타까움과 걱정을 끼쳐드린것은 참으로 뜻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아직도 제 단식의 목적을 첫째,둘째,셋째로 정리하는것은 웬지 불편합니다. 그리고, 1단계, 2단계로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이기에도 저는 어색합니다. 무엇을 치거나,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가 끌어안기로 결심한 이 상황 전체를 민감하게 성찰하며, 한걸음 한걸음 제 스스로를 향하여 걸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단식투쟁’이기보다는 ‘단식명상’이 맞겠습니다.

물처럼 흐르다가 돌에 부딪치면 맞서듯 싸워야 할것이 나타나면 싸우게도 될것입니다. 몸과 마음에 새롭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면 즐겁게 받아안겠습니다. 그리고, 이제그만 멈춰야 될때라고 하는 제안의 목소리가 들리면 조용히 멈추겠습니다. 과분한 배려와 사랑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몸둘바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문신부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조금이나마 더 여유롭고 너그러이 지켜봐 주신다면 저는 제가 선택한 ‘결’을 따라 가는데까지 더 흘러가 보고 싶습니다. 지금 단식을 멈추지 않는 것을 책망하거나, 아파해 마시고, 반 걸음만 뒤에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무리하지 않고 그러나 쉼없이 조용히 흘러가 보겠습니다.

2007. 5. 10 이 시 우

* 그리고, 은옥씨 몇가지 더 쓰겠습니다.

책은 꼭 새책이 아니어도 반입이 가능하답니다. 한번에 들여 올 수 있는 책이 몇권인지 알아보셔서 준서차나 당신차로 작업실에서 보던 책들을 들여왔으면 합니다. 우선 연리의 컴퓨터 왼쪽 책상에 책들하고 미군, 군사관련된 책들을 한번 실어 날랐으면 합니다. 만약, 애로사항이 있으면 보안과장님하고 연결을 해달라고 해서 실어날랐으면 합ㄴ다.

이곳에서 너무 신경을 많이 써주고 계셔서 불편할 만큼 많은 편의를 제공해주고 계시니 궁금한 사항은 언제든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김치관 선생님께도 10여권 정도되는 제책을 받아서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우편이나 택배가 되는지 모르겠으니 가능하면 편한 방법을 쓰세요.

그리고, 통일뉴스와 통일맞이 주소도 다음에 올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여기까지 오가는것이 어려운 주 알면서도 어린애처럼 요구사항만 많구려. 여기 오가는 것 보다는 변호사님 숙제를 하는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이니 모든일은 숙제에 집중해야 겠습니다. 저 보다도 당신 건강을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리듬을 잘 유지하길 바랍니다.

– 2007. 5. 11 당신의 시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