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국방대한용섭 이시우 2004/05/02 132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국방대한용섭
세미나 주제발표: 2003.10.24 향군회관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

한용섭 (국방대 교수)

I. 서론

2003년 내내 주한미군의 재조정이 한미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미국정부는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적용하여 방만하게 운영되어온 주한미군기지를 재조정하는 차원에서 용산기지는 후방으로 이전하고, 주한 미군 2사단은 단계별로 후방으로 이전시키면서 경량화 기동화 첨단화 시킨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서 북한 핵문제 등으로 한반도 안보상황이 매우 불안정한 시기에 주한 미군 2사단의 후방이전은 연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이 제시한 주한미군의 재조정 일정을 대체로 수용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대북한 억제력과 방어력의 보강에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도전은 그보다 더 일찍 시작되었다. 첫째, 2000년 6월 사상 최초의 남북한 정상회담의 결과, 한국내에서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북한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억제해 왔던 주한미군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소수의 한국인들에 의해 제기되기는 했지만, 남북관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으로 비쳐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둘째, 2002년 6월 주한 미군 2사단의 훈련 중에 한국의 두 여중생이 장갑차에 치이는 사망사고를 당한 이후, 전국민적인 촛불시위로 인화된 반미감정과 미국내 반한감정의 교차속에서 주한미군에게 거센 도전이 일어났다.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주한 미군의 정책과 주둔 규모에 변화를 초래하게 한 원인을 살펴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세계 정세의 변화, 미국의 국내 여론과 국방정책, 군사전략의 변화, 남북한 관계의 변화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세계정세 변화 중 가장 큰 요인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탈냉전이다. 탈냉전의 결과 미국 정부는 [넌.워너 법안]에 의해 주한미군을 7000명 정도 줄이고, 현재는 3만 7천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미국의 정책은 “한국 방위는 한국이 주도적(leading) 역할을 하고 미국은 지원적(supporting)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미국은 1991년 12월에 주한 미군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철수시켰다. 한반도에서는 비핵화와 더불어 재래식 무기로 상호 억지력을 갖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의 국내 여론과 국방정책, 군사전략의 변화의 결과로 주한 미군에 대한 정책과 규모가 조정된 사례는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반, 월남전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미국내의 반전 여론에 따라 주한 미군의 규모가 재조정되고, 그 결과 미 육군 제7사단이 한국으로부터 철수했다. 이때에 리차드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 해야 한다”는 괌 독트린을 선포하고,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만 명을 철수시켰다. 군사전략의 변화의 결과로 주한미군을 재조정하는 것은 2003년의 일이다.
남북한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나 주한미군이 철수한 사례는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초래된 한국전쟁에 파병했던 미군 32만 5천명 중 1954년에 10만 명, 55년에 13만 7천 명이 철수하여 한국에는 총 8만5천명이 남게 되었다. 즉 전쟁으로 인해 파병했던 미군의 대다수를 철수시킨 것이었다. 북한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미군이 남한을 강점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장애요인”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500명을 남기고 철수했던 미군이 다시 한반도에 오게 된 것은 북한이 남침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6.25로부터 50년이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개선에 따라 한미관계의 대등화와 주한미군으로 인한 한미관계의 불평등성 시정에 대한 한국의 국내 여론이 있는 것은 한반도 내부에서 일고 있는 주한미군에 대한 변화요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000년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일부 한국 국민들이 요구한 주한미군의 재조정은 시기 상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반미는 국익이 되지 못하고,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주둔해야 한다고 이 요구들을 잠재운 바 있다. 남북한 간에는 이산가족 상봉과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 면에서 교류 협력은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룩했고 한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정치적 신뢰구축은 어느 정도 이룩되었으나, 정치 군사적 관계에는 아직도 화해와 협력시대가 도래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거나, 적대감이 감소된 실질적 증거를 찾기 힘들다는 데 한미 양국 정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한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풀리고, 남북관계가 계속적으로 발전할 경우, 한미군사동맹의 구조와 주한 미군의 규모와 임무는 변화의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군사위협이 실제로 감소되거나, 남북한과 미국간에 합의를 통해 긴장완화를 하게 될 경우, 한미 양국은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을 포함한 남북한 군대의 규모와 군사정책을 조정하고 변경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바람직하게 발전되고 한반도에 긴장완화와 공고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한미양국은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에는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한 평화공존기와 통일기에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 불확실성을 제거해 줄 수 있는 지역의 안정자와 균형자로서 역할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한 미군의 규모와 군의 구성은 현재와는 달리 지상군 규모는 줄고 해공군의 규모는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19세기 말에 한민족이 주권과 자주적 방어능력을 구비하지 못했을 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의 안보불안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적 안보불안 방지와 미국의 동북아 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국가이익이 서로 맞물려, 탈냉전 이후 주한미군은 북한의 침략 억제와 격퇴 뿐만 아니라 지역정세의 안정과 평화달성이라는 목표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한반도가 평화통일을 향해 가면서, 주한 미군은 통일된 한반도를 주변국의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는, 또한 지켜 주어야만 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한미동맹이 너무 가까우면 자주권의 양보가 수반되고, 한미관계가 너무 멀게 되면 동맹의 파트너로서 버림을 당할 수도 있는 딜레마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파트너로서 버림을 당하기엔 너무 오래되고 가까운 동맹관계에 있다. 미국 또한 한국을 버릴 수 없는 긴밀한 관계가 되었음을 자각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한국의 자주성이 적절히 반영된 동맹으로 발전해야 하고, 한미관계는 전략적이고도 협력적인 수평적인 동반자관계로 발전해야 하며, 주한미군은 한미 군사동맹을 튼튼히 뒷받침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통일을 향해 가는 한반도에서, 미국 정부와 주한 미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에 대한 억지 기능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관계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거나 한반도와 주변의 안보환경 변화와 발전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하는 세력으로 보여져서는 곤란하다.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을 협력적이고 평화스런 지역으로 만들어가는 적극적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세계적 안보환경의 변화 속에서 주한미군 정책에 대한 변화를 시도했던 1990년대 초반을 살펴보고, 21세기 남북한 관계 개선을 시도하면서 한반도의 지역적 안정을 도모해야 되는 상황 속에서 주한미군의 규모와 임무, 역할 변화에 대한 전망을 해보기로 한다.

II. 1990년대 초반의 주한 미군의 재조정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는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킴에 있어 매우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고 한국 정부에 통보하는 형식을 취했다. 미국이 우리에게 현대식 무기체계를 제공하는 등 한국의 군사력 증강에 기여를 하고 미군을 감축시키기는 했지만, 이러한 결정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불만이 많았다. 남북한 군사력 균형이 한국에게 매우 불리한 경우에도 주한 미군의 감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표1>에서 보듯이1980년대에 등장한 로날드 레이건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철수에 종지부를 찍고, 오히려 한국에 대한 안보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때부터 주한미군의 규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1980년대 말 시작된 탈냉전에 직면하여 미국은 안보전략과 해외 주둔군 정책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미•소 군축협상의 진전에 따른 세계적 긴장완화 분위기의 확산과 세계적 차원의 탈냉전 분위기, 유럽에서 재래식 군비통제의 성공, 독일 통일 이후 주독일 미군의 규모 축소 등에 부응하여 구라파 주둔 미군의 규모를 1/3로 줄이면서, 한반도에서도 주한미군의 규모를 감축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미국 국내에서 제기된 해외 주둔군 규모 축소 요구는 1980년대 쌍둥이 적자의 해소와 세계적 평화 도래에 따른 평화배당금 (peace dividend)분배 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표1> 주한미군의 규모 변화 추이

연도 병력규모 연도 병력규모
1945 72,000 1970 54,000
1947 40,000 1971 43,000
1948 16,000 1972 41,000
1949 500 1973 42,000
1950 214,000 1974 38,000
1951 253,000 1975 42,000
1952 266,000 1976 39,000
1953 325,000 1977 42,000
1954 223,000 1978 42,000
1955 85,500 1979 39,000
1956 75,000 1980 39,000
1957 70,000 1981 38,000
1958 52,000 1982 39,000
1959 50,000 1983 39,000
1960 56,000 1984 41,000
1961 58,000 1985 42,000
1962 57,000 1986 43,000
1963 57,000 1987 45,000
1964 63,000 1988 46,000
1965 62,000 1989 44,000
1966 52,000 1990 43,000
1967 56,000 1991 43,000
1968 67,000 1992 36,400
1969 61,000 1993~2003 37,000
출처 : C. Murphy and G. Evans, U.S. Military Personal Strength by Country of Location Since World War ІІ, 1948~1973; U.S. Embassy, Seoul, Report on Korea, 1976. 세종연구소, 주한미군과 한미안보협력 (서울:세종연구소, 1996), p. 86.

이러한 배경하에서 미 의회는 미국의 해외개입전략을 대폭 수정할 뿐 아니라 유럽주둔 미군병력의 감축과 함께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병력의 규모를 재평가할 것을 국방부에 주문했으며, 특히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과 국민의식 성장에 따른 주한, 주일미군의 역할, 임무, 책임을 재 고려하도록 미국방부에 지시하였다. 이러한 미 의회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는 1989년 8월 넌•워너 법안의 통과로 나타났으며, 미국방부는 1990년 4월에 ‘21세기를 향한 동아시아 전략구상’을 작성하여 미 의회에 보고하게 되었다.

동 전략구상에 의하면 <표 2>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주한미군을 3단계로 감축하게 되어 있었다. 즉, 1990년부터 1991년까지 1단계로 7,000명을 철수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이는 집행되었다. 그리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총 6,500명을 추가 철수하며, 1995년부터 2000년까지는 그때의 전략상황을 고려하여 추가 감축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흥미를 끄는 대목은 주한미군의 병력감축의 단계와 휴전협정 관리체제의 변화, 한미연합지휘체제의 변화가 다 연동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2001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그때 국방장관이었던 딕 체니 부통령과, 당시 국방부 차관보였던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현직에 있음으로써, 그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진행되었던 넌 워너 법안에 의한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다시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표 2> 넌-워너안에 따른 미 국방성의 3단계 주한미군 재조정 계획안
구 분 병 력 감 축 휴전협정 관리체제 연합지휘체제
제1단계
(’90~’92) - 육•공군 6,987명
(육군 5,000, 공군 1987) - 군정위 수석대표
한국군 장성 보임
- JSA(판문점) 한국
경비병 증가 - CFA 해체
- GCC 분리/한국군
사령관 임명
- 작통권 환원 검토
제2단계
(’93~’95) - 감축완료시 미 2사단 2개 여단,
7공군 1개 전투비행단 규모로
재편
※ 북한 핵개발 연계로 보류 - JSA(판문점)경비
임무 한국이 인수 - CFC 해체
- GCC 분리/한국군
사령관 임명
- 작통권환원 검토
제3단계
(’96 이후) - 북한 위협정도, 억제개념,
미군의 지역역할에 따라
주둔규모 결정
(최소규모 장기체류) - 미 2사단 책임지역
인수 - 전시작통권 환원
- 한•미기획사령부
정착
- 한•미 병렬체제
발전
※ 용산기지 이전
출처 : US. DoD Report to the Congress, 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n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st Century (1990,1992), pp. 12~25.

1993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2단계 추가 감축계획은 1992년 10월, 제 24차 한•미 안보협의회의에서 북한이 남북한 상호사찰을 수용하지 않음을 감안하여 팀스피리트 연합훈련의 재개 문제와 넌•워너 법안에 의한 주한미군의 2단계 철수계획의 진행여부를 북한의 핵사찰 수용여부와 연계시킴으로써 무기 연기된 바 있다.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채택과 북한의 조속한 시일 내 핵사찰 수용을 조건으로 1992년도 팀스피리트 훈련이 취소된 바 있음을 회고해 볼 때 한•미 양국의 연계전략은 일면 전략상으로는 고려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1993년 한미양국의 팀스피리트 연합 훈련의 재개 선언은 북한의 NPT탈퇴라는 강경수를 초래했으며, 그에 따라 주한미군의 2단계 철수 계획은 백지화 되었다.
그후 미•북한간 핵협상을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1994년과 1995년의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기로 결정했고, 북미 양측은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 그 후 핵문제의 진전에 따라 넌•워너 법안에 의한 주한미군의 2단계 철수안이 진척될 수도 있었으나, 1993년에 등장한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는 공화당의 정책을 승계하지 않고, 1995년 2월 27일, 동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규모를 10만에 묶어둔다고 선언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동아시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미국의 신 동아태 전략의 주요내용은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이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에서 지금까지 누려오던 정치•군사적인 주도적 역할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즉, 점진적인 철군을 전제로 했던 넌•워너 법안을 완전 폐기하고 미국은 이 지역에서 20세기 말까지 미군의 군사력을 10만 수준으로 유지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대 동아태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한 이유는 미국의 아•태지역에 대한 안보와 경제적 국가이익은 점차 증가하나, 이 지역의 전략환경은 탈냉전 이후에도 위협이 감소되지 않고,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 가득하다고 파악하고, 미국의 국익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고 증진하기 위해서는 미국 전력의 전진배치가 필수적이라고 파악한 데 있다.
이로써 미국은 아태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당연시하며, 아시아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을 완전 중단시켰다. 그리고 전략적 차원에서는 신속하고 신축적인 범세계적 위기 대응능력 보장을 하고, 역내 패권국가의 등장을 저지함으로써 안정에 기여하며, 미국 내에 전력을 유지하기 보다 동아시아에서 전력을 유지함으로써 부대 유지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전진배치 전력을 이용하여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며, 영향력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탈냉전 이후 세계의 군사전략을 구상하면서 중동과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2개의 동시 전쟁을 승리하겠다는 소위 윈윈 전략을 발표했다. 냉전시 미국의 전략기획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군대가 나토를 침공할 경우 이를 저지할 뿐 만 아니라 한반도와 중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을 억제하고 방어한다는 전략이었으나, 소련의 위협이 소멸되자 두 개의 지역전쟁에서 동시에 승리한다는 전략으로 바꾸고, 미군의 크기도 거기에 맞추어 규모를 축소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중시 정책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조지 W.부시 행정부로 승계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중시하면서 미국의 안보전략의 중심축은 이제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겨왔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미군을 신속배치군 형태로 전환하며, 동남아와 중앙아시아에도 미군의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한미군을 신속배치군 형태로 전환시키겠다는 방침은 북한문제의 불확실성과 유동성으로 인해 당분간 수면 하에 잠복하게 되었다. 또한 2001년 9월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테러 전쟁을 수행할 필요성 때문에 주한미군은 그대로 남게 되었다. 2001년 말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 큰 위협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감축시키거나 변경시킨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국내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을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는 전략구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 졌다. 미국은 기 배치한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을 활용하여 미래의 안보환경을 미국의 국가이익에 유리하도록 조성하고자 시도했다. 이것은 클린턴 행정부 때, 환경조성이란 전략의 일환으로 나타났으며, 미일 동맹을 재조정하면서 더 강화되었다. 즉 불확실한 동북아의 안보환경을 미국의 국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환경을 조성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군사적 패권국가의 출현을 저지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이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위협론을 내세워 중국 포위전략을 암묵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은 동북아에서 중국 패권주의의 등장을 견제하고자 함이다. 또한 미군이 안보환경을 조성하고 창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증거는 미국이 이 지역내 국가들간의 군비경쟁이 불필요하도록 막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데서도 발견된다. 한국에 대한 미군주둔은 남북한간의 군비경쟁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일본에 대한 주둔은 韓日간 日中간 군비경쟁을 방지해 왔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런 목적과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은 동북아 지역의 국가들이 미군을 장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안보상황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급속한 군비증강을 적절히 억제함으로써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서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환경을 조성하며, 중•일간의 갈등을 적정선에서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역할을 필요로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제질서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 지역질서의 변화를 관리하기 용이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확보 그리고 핵확산의 방지와 대량살상무기의 억제를 위해 미군 주도로 이 지역의 안보쟁점을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군의 역할과 임무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한반도에서 북한의 군사위협의 억지와 침략의 억제에 너무 중점을 두어 왔으나 지금부터 지역적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중점을 옮겨 가고 있다. 왜냐하면 탈냉전기에는 군사적 위협과 지역규모의 분쟁의 가능성이 잠재화되고 군사이익이 경제이익과 혼합되어 추구되므로 미군의 동아시아 지역 내 주둔도 군사적인 면에 국한된 미국의 이익이 아닌 포괄적이고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미국의 외교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III.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
과거 50년 동안 주한미군은 다음과 같은 긍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주한미군은 북한의 공격을 받을 경우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취약성을 보강하기 위한 자동개입을 담보해주는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해왔다. 이것은 공세적인 북한보다 군사력 면에서 열세인 한국의 안보불안을 해소하는 큰 역할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제3조에는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고 미국은 헌법절차에 따라 행동하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약의 취약성은 세가지로 보완되었다. (1)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여 한미연합사령관이 한미양국의 국가통수기구의 지휘를 받아 서울과 한국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것은 사실상의 자동개입을 의미한다. (2) 매년 개최되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의 공동성명에서 미국의 대 한국 안보공약을 재확인하고 양국간 협력을 제도화했다. (3) 한미 양국군은 1976년부터 대규모 팀스피리트 연합훈련을 시행해 왔으며, 주한미군의 2사단이 최전방에 주둔함으로써 자동개입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상의 자동개입 보장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재발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불안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자동개입보장에만 너무 과도한 신경을 썼고, 미국은 최전방에서 북한군의 침략을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덜 알아 주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가졌다.
그러다가 주한미군은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의 전쟁위협이 사라졌다”는 발언 이후 “전쟁위협이 없는데 왜 주한미군이 있어야 하나?”라는 불만을 토로한 바 있으며, 2002년 6월 여중생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 전방에서 훈련 수행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한국 국민들이 너무 과도한 데모를 하고 한국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면서 “왜 미군이 최전방에서 북한군의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나”라는 강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한국 국민들은 주한미군의 범죄와 환경오염, 불공정한 SOFA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반면, 미국은 주한미군이 감당해야 되는 불공정한 인계철선과 훈련장 부족을 불만으로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한국군과 미국군의 능력이 변화된 현재, 미국은 인계철선의 개념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편 한국도 이 변화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한미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조기경보와 전쟁 발발시 즉각적인 전투수행에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주한 미군 2사단은 최전방에서 주둔함으로써 북한 지상군에 대한 정보수집을 통해 북한군의 특이 동향을 조기 경보해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미 8군은 전략 및 신호와 영상정보의 대부분을 한국군에게 제공했다. 한국군의 주한미군에 대한 정보의존도가 90% 이상일 정도로 한국군의 정보능력은 매우 취약하다. 아울러 북한군의 장거리 포와 미사일에 대한 방어 책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한국군이 가지고 있지 않은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다연장로켓포, 지대지 미사일 등으로 전쟁초기에 북한군의 야포와 장사정포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주한미군은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하고, 피침시 성공적으로 격퇴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왔다. 억지(deterrence)기능은 두가지 측면에서 가능했다. 첫째, 주한미군은 핵억지와 재래식 억지를 수행했다. 1991년까지 전술핵무기를 한국에 배치함으로써 만약에 재래식 전쟁에서 불리할 경우 핵무기로 확전을 위협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해 온 것이다. 재래식 전쟁에서도 미국이 대규모 증원전력을 투입하겠다는 공약을 재천명함으로써 북한이 전쟁도발시 받을 피해가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인식시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 온 것이다. 이것은 보복적 억제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한반도에 추진 배치했던 핵억지력은 1991년 12월 한반도비핵화의 일환으로 미국 본토로 철수시켰다. 이로써 미국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억지력에 1차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주한미군의 실병력은 3만 7천여 명이지만, 전투능력 면에서는 북한 군사력의 5퍼센트에 해당함으로써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의 달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전쟁도발을 억제하는 기능을 해 왔다. 즉 거부적 억제능력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넷째, 한미연합사에서 주한미군이 주도적으로 한미연합군의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한국군은 세계 최강, 최신의 군사작전과 작전계획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정보우위와 우세한 기동전력, 그리고 세계 최첨단인 미군과 상호운용성을 유지하면서 한국군이 작전을 할 수 있도록 연합훈련을 계속해왔다는 것은 한국군이 세계적인 우수성을 갖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현대전의 특징인 연합전(coalitional warfare)을 세계 최강의 미군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군에게는 행운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섯째, 미군의 공고한 안보공약과 대규모 원조, 첨단 무기의 제공에 힘입어 한국 정부는 군사비에 과도한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1970년대 말 까지는 무상 군사원조 MAP 54억 7천만 달러와 무상 국제군사교육훈련 원조 1억 7천만 달러를 받았으며, 유상군사원조는 FMS 50억 5천만 달러와 상용판매차관 14억 3천만 달러, FMS차관 23억 5천만 달러를 받음으로써 거대한 방위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되어 한국경제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군사비에 들어갈 경비를 아껴 경제발전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었다.
여섯째, 주한미군이 전방에 주둔함으로써 남북한 간에 완충지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남북한간에 직접 무력 충돌을 막아왔으며, 남북한 간에 과도한 군비경쟁을 막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50년간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도 끼쳤는 바,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한미군의 철수론이 등장할 때마다 한국은 안보불안에 떨어야 했던 사실이다. 1970년대 초반에 가장 큰 안보불안에 시달렸다. 그리고 2002년도 후반과 2003년도 초반에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불만과 이에 따른 주한미군의 후방배치를 둘러싸고 한국 국민들은 또 한차례 안보불안에 휩싸이기도 했다.
둘째, 주한미군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억제와 방어를 의존함으로써, 한국 정부와 국민은 자주국방에 대한 정신적 자세와 자주국방능력을 키우기 위한 실제 투자 의지가 약했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주한미군을 현수준으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1995년부터 한국 정부는 자주국방과 독자적 작전지휘능력을 향상시켰어야만 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주둔정책이 불변임을 다행으로 여기고 오히려 국방예산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감소추세를 계속했던 것이다.
셋째, 한국 정부가 첨단 정보감시정찰능력을 건설하려는 것을 미루어왔다는 것이다. 첨단 정보수집능력을 구비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정보감시정찰능력에 의존하기로 선택함으로써 한국은 독자적인 정보감시정찰능력을 제대로 키우지 않았다.
넷째 한국군을 지상군 중심으로 키워 왔으며, 해공군은 미군에 의존하는 형태를 취해옴으로써 육해공 삼군간의 불균형이 심화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약 주한미군과 태평양지역의 미군이 한국군에게 지상전에서 방어임무를 맡기고 미군의 우세한 해공군을 활용하는 작전개념을 채택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더 균형된 군구조를 지향했을 수도 있다.
다섯째, 한미관계를 주한미군 유지 중심으로 운영해왔기 때문에 군사적 협의와 협조채널은 광범위하고 심화되었으나, 다른 방면 즉,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양국간의 심도깊은 관계발전이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군사정권은 1961년부터 1988년 까지 주한미군의 안보보장 및 정권지지 대신에 자주성을 약화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처하기도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섯째, 주한 미군의 한국군에 대한 군림하는 태도와 미군이 한국군과 한국 국민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한국군 또한 인근에 있는 주한미군을 이해하고 상호 협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2002년 6월 여중생 사망사고 이후에 벌어진 한국 국내 정치사회적 반발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일곱째,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전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한국군은 1979년부터 1999년 까지 한미미사일각서에 묶여서 사정거리 180km 이상이 나가는 미사일을 개발 또는 시험을 할 수가 없었다. 북한의 후방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정밀폭격능력도 향상시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군과 주한미군, 한미간의 관계 개선과 신뢰증진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내 주한미군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을 미리 발견하고 상호 긴밀한 협조체제를 마련하여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주한미군기지와 인근 주민들간에 신뢰증진프로그램의 실천 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 정부와 한국 국민, 한국 정부와 미국 국민, 한국 군기지와 주한 미군 군기지와의 상호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즉, 신뢰증진프로그램이 상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제공해 온 안보와 평화, 억지 등의 기능을 오늘에 살리면서도 한국군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한미간에 누적된 불신을 제거할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IV.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주한미군

미국의 군사전략은 변화하고 있다. 1999년부터 시작된 군변혁의 일환으로 미국은 해외주둔 지상군들을 신속기동군으로 바꾸고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 육군은 모든 스펙트럼의 작전을 집행할 수 있는 전략적 대응군을 지향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 육군은 대테러전쟁에서 변화된 군을 선 보였다. 준비태세가 강하고, 신속배치가능하며, 일단 전쟁에 투입되면 지상전을 조기에 장악할 수 있는 스타라이커 부대와 목표군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2003년 대 이라크 공격에서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그것은 군의 인력은 줄이면서 첨단 정보감시정찰(ISR: 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능력과 장거리 정밀폭격능력을 결합하여 단기간에 적의 전쟁지휘부를 마비,격멸시키고, 전쟁의 조기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상군은 경량화, 기동화, 첨단화 되었다.
미국은 나토에서 연합 군변혁사령부를 설치했으며 모든 나토국가들에게 미국의 군변혁의 교리와 군구조를 본받도록 설득하고 있다. 주한미군도 이러한 군변혁의 차원에서 군구조와 배치를 바꾸고 있다. 2003년 5월 15일, 부시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제는 전략양상이 변화하여 소수의 희생으로 전쟁의 원인제거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전략에 따라 주한미군도 재편성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7월말에 주한미군은 신속배치부대인 스트라이커(stryker)전투여단의 전개훈련을 한반도에서 가졌다. 스트라이커 부대는 전세계 분쟁지역에 96시간내에 C-130 수송기 등을 통해 신속히 배치하며, 기존의 보병 또는 기계화부대에 비해 M-1 전차 등 중장비를 보유하지 않은 대신 스트라이커라 불리는 8륜 구동장갑차량에 105mm 포 등을 장착하여 펀치력을 갖춘 기동성이 뛰어난 부대이다.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은 병력이 3600여명, 스트라이커 장갑차량 309대, M 198 155mm 곡사포 12문, 토 대전차미사일,첨단 지휘통제 및 정보수집체계 등을 갖고 있다.
이 스트라이커 부대는 2010년 경에 첨단 기술과 중화력, 모든 병력과 무기체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목표군(objective force)로 발전할 것이다. 이 목표군은 인도주의적 작전에서부터 전투까지, 전투와 안정화 작전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설계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 우선 스트라이커 부대나 목표군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형이 순탄해야 하고, 장애물이 적어야 하며, 지하 깊숙히 구축된 벙커나 깊은 산 등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특히 북한의 지형은 스트라이커부대나 목표군의 구사에 장애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전 세계 미군기지를 4가지 개념으로 구분할 것을 시사한 바 있다. 앤디 호언 (Hoehn) 미 국방부 전략담당차관보는 (1) 영구중추기지 (hubs: 미 본토, 괌, 영국, 일본), (2) 소규모 병력과 장비만 주둔하는 전진작전기지 (forward operating bases: 한국 사우디 터키 독일 등), (3) 비상시를 위해 병력주둔을 하지 않는 대신 기지협정을 체결하는 비상작전지역(forward operating locations: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중동 각국, 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 (4) 미국이 새롭게 설치할 FOB: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3개국과 호주 필리핀 등 태평양 국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새로운 부대개념과 부대 재배치는 지금까지 전방에서 억지와 방어를 성공적으로 해 온 주한미군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래서 주한미군은 용산기지 이전과 미 제2사단의 후방이전을 발표하면서 전력을 증강하겠다고 발표했다. 2003년부터2006년 까지 150개 분야에 110억 달러를 투자하여 군사력을 현대화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주한미군은 재배치를 실시할 예정임을 밝히면서 한국군에게 10가지 주요임무를 인수해 줄 것을 요구했다.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비책임, 유사시 신속한 공중지뢰 살포, 수색 및 구조, 후방지역 화생방 오염제거, 유사시 대 북한포병 작전, 북한 특수부대의 해상침투 저지 등의 임무를한국군이 조기에 인수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임무 중에서 한국 국방부는 지난 9월 3-4일 개최된 제4차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에서 JSA경비임무와 대포병 작전 임무만 제외하고 8개 임무를 미측이 요구한 일정대로 인수받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한미군의 기지이전과 동시에 주한미군의 일부가 감축될 것인가 여부이다. 왜냐하면 북한 핵문제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어 있고 한국 정부가 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이때에 주한미군의 감축은 한국의 안보불안 조성 뿐만 아니라 한미관계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주한미군이 철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20일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한미양국의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의 철군계획은 없다고 분명하게 약속했다. 그러나 중장기 즉 3-5년 앞을 내다보면 두 가지 시나리오가 발생 가능하다. 첫째 시나리오는 용산기지의 후방이전과 미 2사단의 후방 이전시 스트라이커 부대 중심으로 지상군을 정비하면서 1개 여단과 일부 지원병력을 철수할 가능성이다. 그 규모는 1만에서 1만 2천명 사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주한미군은 7공군과 미8군 사령부, 미2사단은 2개 여단 규모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은 지역내 신속기동군 형태로 존재하며, 한반도에서 전방의 억지력은 약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소규모 주한미군이 연합사령관을 맡고 전시작통권을 행사하면, 한국내 국민여론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주한미군이 대규모로 감축되고 지상군은 소규모 지휘부만 남고, 7공군을 비롯한 해공군력을 강화할 가능성이다. 이것은 북한군의 위협이 사라지거나 남북한과 미국에 의해 합의된 군비통제의 절차에 따라 북한군의 위협이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사라질 때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에 연합방위구조와 태세는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한국군은 전시작통권을 환수하게 될 것이며, 주한미군은 완전히 지역적 역할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명실공히 한반도 방어를 전담하게 될 것이다.
한미양국이 한반도 안보현실에서 갑작스런 변화를 회피하고,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를 희망하는 한, 위의 두가지 시나리오 중 첫번째 시나리오의 발생가능성이 높다. 여하튼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한 지금, 미국은 아무리 세계 군사전략상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2-3년 간은 주한미군의 규모를 감축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주한미군의 재조정에 맞추어 미군이 요구하는 구체적 임무의 인수여부와 기지 이전에 필요한 부지와 비용의 협상에만 온통 신경을 빼앗겨서는 안될 것이다. 미래 한미동맹의 정책구상은 주한미군의 기지이전과 임무전환을 넘어서서 한미 양국이 변화한 미국의 군사전략을 반영하면서 북한의 군사위협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억제하며, 유사시 성공적으로 격퇴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군사전략과 한미간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한미군사동맹의 모델 정립, 새로운 군사전략의 수립, 한미 양국이 갖고 있는 상대적 우위를 활용한 임무분담, 한국군의 변혁과 혁신 반영, 전시작전통제권의 점진적 환수 등 다양한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한국은 대미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V. 주한 미군의 장래

2003년 한반도 상황은 또 다시 북한 핵문제가 최대 안보현안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재조정 문제가 한미간의 최대 현안 이슈로 등장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후 처리과정에 개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안보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미래 주한미군의 임무, 규모 및 배치의 전환은 다음 네 가지의 시나리오로 나누어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만약 북한 핵문제가 1993-94년 같이 대화로 풀리게 된다면, 미국은 핵문제 해결 이후 북한과 미사일과 재래식 군사위협 감소 문제에 대해 협상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미국은 1994년 북미회담에서 칼루치 협상대표가 북한대표에게 제기했었고, 2001년 6월에 부시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 발표에서 제기했듯이 북미간에 비무장지대 근처에 추진 배치되어 있는 공세적 전력을 남북으로 후방배치 시키는 의제를 토의하게 될 것이다. 만약 북미간에, 또는 한국도 참여한 삼자회담에서 전방 배치한 북한군과 한국군, 미군을 후방배치하기로 합의하게 된다면, 동두천과 의정부 지역에 배치한 주한 미군 2사단 병력은 서울 이남으로 이동배치되는 과정에서 미 지상군의 일부는 미국 본토로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한반도 재래식 군비통제 논의는 곧바로 현실화 될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럴 경우, 주한 미군의 배치, 규모, 임무, 역할의 변경은 자연스럽게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나리오는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최상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대북한 억지역할은성공적이었으나, 한반도 평화구축에는 수동적인 입장을 유지해 온 점을 감안한다면 이 과정에서 미국과 주한미군은 능동적인 입장으로 전환하게 되어 미국의 이미지는 훨씬 개선되고, 평화공존 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하는데 한국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둘째, 북한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풀리고,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한국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에 나서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을 포함한 남북한 군대의 규모와 군사정책을 조정하고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 정책조정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풀리는 경우, 한국 정부는 북한에 보다 많은 규모의 대북 지원을 하고자 할 것이므로, 한국 국민과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지지를 얻어 내기 위해 한반도의 군사대결 상황을 실질적으로 완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즉, 북한의 군사위협 감소와 대북 경제지원의 증가폭이 어떤 형태로든 연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한미양국은 주한 미군의 규모와 역할 변경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관계없이 미국은 새로운 군사전략 하에서 지구적인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전세계에 배치된 미군기지를 조정하는 일환으로 주한미군의 규모, 배치, 임무를 변경할 수 있다. 지금은 한국의 대이라크파병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잠시 자제할지 모르지만, 한국의 여론이 잠잠해지면 미국은 주한미군기지 재조정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주한미군기지 재조정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안보전문가들은 미국이 주한미군기지를 통해서 동북아의 최전선에 접근 가능, 기지와 훈련장 보유, 한미연합사를 통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유지, 공동 작전, 긴밀한 한미협력관계, 한반도 및 주변국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보유, 군사물자 판매, 상호운용성 유지, 대테러전에서 한국의 지지와 성원 획득, 주한미군기지와 병력의 보호, 방위비 비용분담, 북한에 대한 전진 압박 등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완전한 철수라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젊은 세대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 대북한 강경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평등한 한미소파 개정을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의 조기 재조정 및 일부 감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표3>에서 보듯이 지난 6년간 한국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민들의 대다수는 주한미군의 조기 철수나 변경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 국민들은 주한미군의 당장 철수를 원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되거나 한국의 독자적인 방위능력이 갖추어 졌을 때 주한미군의 철수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표3>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 결과
조사기관 연세대 서강대 서강대 연세대 NHN
해당년도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즉각 철수 4.9 3.2 10.9 5.0 10.4 8.9
조건부 철수(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되거나 한국의 방어능력을 충분히 구비한 후) 51.1 60.1 41.2 75.0 70.7 61.6
통일이 된 후 철수 24.9 29.7 35.4 14.0 16.2 19.5
통일 후에도
주둔 4.3 6.7 10.9 6.0 2.6 8.8

상기 표는 범국민안보의식 여론조사로서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에서 연세대, 서강대, NHN회사에 외주를 주어서 조사한 것이다. 1998년부터 2003년 까지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보면, “통일 후에도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소수임을 알 수 있다. 2000년도에 10.9%로 올라갔다가, 2002년도에는 2.6%로 떨어졌다가 다시 2003년도에 8.8%로 증가했으나 큰 차이가 없이 약 10% 대에 머물고 있다. 즉각 철수 내지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철수를 지지하는 여론도 2000년도나 2002년도에 10%선일 뿐, 대략 5-8%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국민의 70%에 이르는 대다수는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전쟁의 가능성이 없어질 경우나 한국의 독자적인 능력으로 북한을 방어할 수 있을 때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조건부 철수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주한 미군의 철수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한 판단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한미군의 철수에 대한 견해는 2002년 말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비롯된 촛불시위로 인한 주한 미군에 대한 반대 감정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적인 것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중앙일보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한 2003년 2월의 의식조사에서도 한반도의 평화구축이나 한국의 자주적 방어능력 구비 후 미군 철수에 대한 항목을 묻지않았지만, 주한미군을 크게 줄이거나 철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은 13.8%, 다소 감축은 42.8%, 현수준 유지는 41.5%, 규모확대는 2.0%로서 주한미군을 현수준으로 유지시키거나, 다소 감축한다는 견해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촛불시위에서 일부 반미감정이 나타나기는 했으나, 대다수는 SOFA개정 및 한미간 불평등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다고 보는 것이 앞으로의 한미관계 발전 방향의 모색에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국내 여론 문제이다. 필리핀에서 미군이 철수한 것을 놓고, 미국의 국내여론이 나빠지면 미군이 철수할 수 있다는 사례를 들고 있으나, 주필리핀 미군의 철수는 무엇보다도 미군기지 주변의 화산폭발로 인한 자연재해 때문에 그랬다고 볼 수 있다. 하여튼 한미 양국의 정부와 전문가 그룹들이 볼 때, 북한의 군사위협은 불변하고 있고, 핵문제가 다시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지역내 안보불안을 고려해 볼 때,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다급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주한미군과 한국민의 바람직스런 관계 정립을 위해 용산기지 이전 문제, 한미관계에서 한국의 자주성을 점진적으로 제고시켜 가는 한편, 불평등성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시정해 가는 것이 더 시급한 정책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와 군사위협이 가시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후방으로 옮기고 감축하는 문제는 한국군의 독자적 정보와 작전 능력, 대포병전 수행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전방의 억지력에 차질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한반도 주변국인 러시아, 중국, 일본도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전쟁억지와 평화안정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주한미군의 남한 내 계속 주둔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북한의 상응한 위협감소가 없는 가운데 주한미군만 변경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일이 되고 있다. 또한 주한미군의 재조정에만 초점을 맞춘 한미양국의 억지력 보강은 한반도 전체를 고려에 넣지 않은 부분최적화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주한미군은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전쟁억지와 안정자 및 균형자로서 필요하며, 통일 후에도 지역 내 안정과 통일 한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남북한 관계와 북미관계의 발전에 맞추어 주한 미군에게 어떠한 임무와 기능을 요구할 것이며, 그 변화된 임무와 기능에 맞추어 어떻게 군 규모와 군 구성을 바꾸어 나갈 것인가는 문제는 한미 양국이 먼저 정치적 안보적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하겠다. 이것은 한미 양국이 한반도의 미래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공통적 비젼을 갖고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문제다.
한국은 주한 미군의 계속 주둔을 위해 한국측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그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미간 불평등 관계에서 초래되었던 SOFA개정 문제, 미군기지 주변 환경 정화 문제, 한미 방산 거래에서 파생된 문제점, UNC 사령관의 작전통제권 장기간 보유 문제, 미군의 훈련장 문제 등을 개선해 나가면서, 한미동맹을 더욱 발전시키는 문제는 한미 양국의 정부에 달려 있다. 문제가 너무 커져서 미래의 한미 양국 관계에 짐이 되지 않도록 적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미리 예견하고 풀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이 왜 필요한지를 젊은 세대들에게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주한 미군도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수수방관 하거나, 남북화해협력 성과를 부정하면서 현상유지만 기대해서도 안된다. 만약 주한 미군이 한반도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인상을 보일 경우, 남북한 관계의 발전에 장애물로 여겨질 뿐 아니라, 미래에 한국 국민의 더 큰 반발을 야기할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 정부가 주한 미군의 변화를 잘 이끌어가는 인상을 보여주지 않을 경우, 변화의 계기 마다 한국 정부는 우리 국민과 주한 미군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강건너 불보기 식으로 넘겨, 그 책임을 방관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의 안보외교 지도인사들이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사긴장의 감소를 요구하면서, 2002년 2월에 주한미군이 한국 국방부와 공동연구를 통하여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을 내놓은 것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시 대통령이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한미 연합방위는 방어적 성격이라는 것이라는 입장 표명, 북핵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입장 표명, 한미일 공조, 그리고 6자 회담을 통해 풀어나갈 것이란 입장 표명 등을 했는데 이런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 정부도 남북 군사관계를 어떻게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갈지에 대한 큰 그림을 미국에게 보여주고, 미국 정부와 주한미군이 이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같은 취지에서 한미 양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구축 뿐만 아니라 군비제한 조치와 군축조치, 그리고 평화체제에 이르는 모든 로드맵(road map)을 공동으로 작성하고, 한미 양국군이 이를 따르도록 하는 정치외교적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로드맵의 이행도 시나리오 베이스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한미 양국이 제시하는 로드맵을 수용할 경우에는 주한미군의 정책과 규모를 그에 따라 변화시켜 가겠지만, 북한이 수용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한미 군사 동맹을 더욱 강화시켜 나갈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한미 양국이 포괄적인 공동의 로드맵을 보여주는 것이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을 제대로 관리해 나가는 길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전쟁억지에 성공한 한미 군사동맹과 주한 미군이 21세기에도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를 선도해 가면서 변화를 제대로 관리해가는 이미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한미 양국군은 공동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적극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장기적 기획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요약

주한미군은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전쟁억지와 안정자 및 균형자로서 필요하며, 통일 후에도 지역 내 안정과 통일 한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남북한 관계와 북미관계의 발전에 맞추어 주한 미군에게 어떠한 임무와 기능을 요구할 것이며, 그 변화된 임무와 기능에 맞추어 어떻게 군 규모와 군 구성을 바꾸어 나갈 것인가는 문제는 한미 양국이 먼저 정치적 안보적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하겠다. 이것은 한미 양국이 한반도의 미래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공통적 비젼을 갖고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문제다.

다만 주한 미군의 계속 주둔을 위해 한국측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그 이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미간 불평등 관계에서 초래되었던 SOFA개정 문제, 미군기지 주변 환경 정화 문제, 한미 방산 거래에서 파생된 문제점, 한미연합사령관의 전시작전통제권 장기간 보유 문제, 미군의 훈련장 문제 등을 개선해 나가면서, 한미동맹을 더욱 발전시키는 문제는 한미 양국의 정부에 달려 있다. 문제가 너무 커져서 미래의 한미 양국 관계에 짐이 되지 않도록 적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미리 예견하고 풀어나가는 노력을 서둘러야 할 것이며,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서 젊은 세대들에게 홍보활동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은 21세기 새로운 군사전략과 군변혁의 차원에서 주한미군도 재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내 여론도 감안하여 용산기지의 후방이전과 미2사단의 점진적 이전도 고려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은 주한미군의 재조정에 따르는 억지력과 방어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단기적인 처방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차제에 21세기 한미동맹을 어떻게 변화 발전시켜나가야 하며, 미국의 변화된 군사력을 반영한 새로운 한국형 군사전략을 정립하고, 한국군의 RMA와 개혁을 반영한 새로운 군구조, 작전지휘체계 정립을 시도할 때이다. 이런 큰 그림 밑에서 재조정되는 주한미군을 어떻게 한반도와 지역의 방위와 안정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미래한미동맹의 구상에 대한 협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