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유엔군사령부’ 평화운동 사진작가 이시우씨

[저자와의 대화]‘유엔군사령부’ 평화운동 사진작가 이시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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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씨는 엄밀하고 치열한 학술연구도 결국 평화사진 작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 정지윤 기자

[저자와의 대화]‘유엔군사령부’ 평화운동 사진작가 이시우씨
김종목 기자

“유엔사는 미군… 유엔 조직으로 여기는 통념은 착각”

평화운동가 이시우씨(45)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을 누비던 사진작가였다. “한반도의 모순이 집중된” 그곳에서 대인지뢰로 다리를 잃은 피해자들,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신음하는 피해자들, 군사시설 보호법으로 집수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주민들의 아픔을 렌즈에 담았다. 이씨의 사진 작업은 직관에 의존하기보단 연구와 사색을 병행하며 객관적인 이미지를 끌어내는 스타일이다. 비무장지대와 해안선의 철조망 같은 피사체를 찍으려면, 분단의 역사나 한반도 평화 문제를 먼저 공부해야 직성이 풀렸다. 이씨는 “이곳의 수많은 문제를 관통하는 근본 문제는 뭘까”를 오래 고민했다. 그 답이 바로 <유엔군사령부>(들녘)다. 헌법, 국제법과 상충하는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의 모순과 해체의 당위를 담았다.

11일 만난 이씨는 유엔사를 유엔 조직으로 여기는 통념은 착각이라고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7월7일 유엔안보리를 통과한 것은 미국의 ‘통합군사령부’ 창설 권고였어요. 미군사령부가 유엔 군대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어요. 속임수입니다.” 유엔사령관은 유엔군사참모위원회가 아닌 미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는다. 실질적으로는 미군인 셈이다. 이씨는 “미국은 통합사령부 대신 유엔사령부라는 작명으로 현실의 균열을 은폐하는 데 성공했다”며 “거대한 환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가장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라고 말한다.

유엔은 1975년 유엔사 해체를 결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결의를 무시하고 지금까지 유엔사를 존속시키고 있다. 이씨는 유엔사가 한반도 모순의 근원이라고 여긴다. “평화로든 무력으로든 북의 붕괴든,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 유엔사는 국제법적으로 북쪽 지역에 대한 통치자가 됩니다.” 미국은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 결의안에 의거해 북 점령 시 유엔군이 점령과 통치의 주체임을 주장했다. 이씨는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 조항과 충돌한다”면서 “남측 정부의 주권 포기와 북의 점령통치를 전제하고 있는 유엔사야말로 가장 큰 반국가단체가 될 수 있는 역설”이라고 했다. 그는 “1950년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한 참전 결정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이 유엔사 논리”라며 “정전 상태로 전시체제가 유지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유엔사가 어떤 절차도 필요 없이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미국의 9·11 사건 이후 유엔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했다. 2004년엔 유엔사가 관리하는 지역을 다녔다. 휴전선, 동해안, 용산과 일본의 미군기지를 주로 걸어다녔다. 그는 ‘유엔사 해체 걷기 명상’ 도중 유엔사 해체를 주장한 글 때문에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유엔사 해체는 북한의 주장과 같고 따라서 북한을 찬양, 고무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이씨는 5년 동안 지루한 재판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씨는 “법원은 남쪽이 아니라 유엔사령관이 통치 주체가 되는 점을 두고 북한 주장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유엔사 해체 주장이 종종 종북, 친북으로 몰리는데 주권과 직접 충돌한다는 점에서 보수세력도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질 만한 주제”라고 말했다.

<유엔사령부>는 1763개의 각주에다 66쪽의 참고문헌까지 844쪽에 이르는 양의 방대한 학술서다. 사진작가가 미학이나 예술 분야의 전문서를 낸 적은 있지만, 역사와 정치를 아우르는 사회과학서를 낸 건 드문 일이다. 이씨는 법정에서의 경험 때문에 학술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사상 검증을 주로 하던 어느 교수분이 판사한테 ‘이시우의 주장은 학자의 주장이 아니라 아마추어의 주장일 뿐’이라고 했죠. 이런 분들을 학문적으로 납득시켜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도전의식을 갖게 된 그는 출소 다음날부터 국회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문헌을 파고들었다.

이씨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토대로 최근의 철학 이론, 사회과학 방법론을 종합해서 ‘유엔체계’에 관한 이론을 정립했다. “유엔사는 유엔의 내재적 모순이 은폐되어 있다가 폭발하고 발현된 사건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이씨는 초국가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유엔체계의 핵심이 국가간 체계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엔이 미국 패권체계의 하위체계라는 것이 이론적 결론”이라고 말했다. 책 2부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 개입의 법적인 부당성을 분석했다.

5년간 학자로 살아온 그는 “학문은 학문의 결이 있더라. 엄격성과 치열성을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번 책의 문제의식을 토대로 유엔체계를 극복하는 문제를 쓸 계획이다. 그럼에도 “학술 활동은 제 평화사진 작업의 일환일 뿐”이라고 했다. 곧 사진 전시도 열 계획이다. “해안가 경계선의 철조망을 담을 겁니다. 영토 개념이 반영된 자연 풍경이죠. 막기 위해서 설치한 건데, 사실 나가는 것을 막아버리는 기제가 되어버린, 그런 모순과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