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권력 유엔사 허상에서 벗어나기-한겨레신문서평

막강권력 유엔사 허상에서 벗어나기-한겨레신문서평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95673.html

막강권력 유엔사 허상에서 벗어나기
등록 : 2013.07.14 20:22 수정 : 2013.07.14 20:57

이시우(46)씨


유엔군 사령부 이시우 지음/ 들녘 펴냄

한 주를 여는 생각
정전협정 체결 60년, 한반도 평화 전망은 여전히 요원하다.

비무장지대 등 남북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평화·통일운동을 벌여 온 사진가 겸 저술가 이시우씨는 새로 쓴 <유엔군 사령부>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전쟁이나 북의 붕괴로 북에 권력공백이 생길 경우 그 통치주체는 한국이 아니라 유엔군 사령부(유엔사, United Nations Command)다. 유엔사는 어떤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한반도에서 당장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유엔사의 작전통제 아래 한국군뿐만 아니라 주일미군까지 한국전쟁에 동원될 수 있다. 일본 자위대가 유엔사 통제 아래 한국전쟁에 자동 개입할 수도 있다.’

유엔사령관은 60년 전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자이며, 1978년에 설치된 한미연합사 사령관이고, 주한 미군 사령관까지 겸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유엔사령관 직을 겸임함으로써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한미연합사 창설 공문은 밝히고 있다.

이씨는 민통선 부근의 대인지뢰와 고엽제 살포로 인한 피해, 후방에서는 사라진 전염병 발병을 비롯한 생태계 교란, 집수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통제 등이 모두 유엔사와 직접 연관되며,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방북 때 그랬듯이 군사분계선 통제권도 여전히 유엔사가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2015년 말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되더라도 해·공군 작전통제권은 유엔사가 계속 가질 것이고, 심지어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자동해체돼야 할 유엔사의 권한이 오히려 더 강화되는 쪽으로 한국 정치와 한-미 관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데 이 유엔사가 사실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가공의 조직이라면? 유엔이란 이름을 달고 있으나 유엔의 조직이 아니며, 유엔 총회의 해체 결의까지 있던 거라면? 그래서 한국군 작전통제권 이양 문제도 이와 관련해 그 정당성과 적법성을 따져봐야 한다면? <유엔군 사령부>는 이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파헤친다.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이씨는 “우선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싶었다. 제대로 모르는 데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이 조장하는 자기검열 등 우리를 옥죄고 있는 주박에서 풀려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유엔사에 유엔은 없다, 미국이 있을 뿐”

유엔사는 유엔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미군의 불법적인 명칭 도용이며 전용이다. 이시우는 그것을 보여주는 문헌 자료들을 집요하게 들이대며 진실을 찾아간다. 그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분단과 정전체제의 상징 판문점에 눈이 내린 모습. 이시우 촬영

“운동이 사건 터진 뒤에야 달려들어 저항하는 게 돼선 안 된다. 그렇게 해선 상대방 의지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먼저 의제를 설정하고 상대를 끌고 가야 한다. 그게 진짜 운동이다. 내가 문제투성이 유엔군사령부(유엔사)를 파고든 것도 그 때문이다.”

유엔사는 유엔사가 아니다. <유엔군 사령부>(들녘 펴냄)에서 이시우(46·오른쪽 사진)씨는 그렇게 주장한다. 미국이 한국 전장에 파견한 통합군사령부에 관한 유엔 안보리 첫 결의를 통과시킨 것은 1950년 7월7일이었다. 한국전쟁은 유엔사가 개입한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이었다. 그 결의안은 한국에 파병되는 모든 회원국 군대와 그밖의 원조를 “미국의 통합사령부”가 통솔하도록 돼 있었다. 미국 합참 합동전략조사위원회(JSSC)는 이렇게 지적했다.

“유엔 산하에 통합사령부를 설치하지 않았고, 또한 개별적으로 통합사령부와 유엔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관계도 명기하지 않았다. 안보리는 사령관을 지정할 의무가 없고 보고서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 것은 사령관이 아니라 미국 정부다.” 그 며칠 전 미국 국무부가 작성한 결의안 초안에도 통합사령부가 ‘미국 산하’로 못박혀 있었다. 유엔 산하라면 유엔군사참모위원회의 지휘를 받아야 했으나 미국은 그걸 명확하게 거부했다.

1950년 7월7일자 안보리 결의는
통합사령부와 유엔 사이에
어떤 관계도 명기하지 않았다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
북 붕괴시 한국에 통보 없이
미군이 전쟁상태를 선포할 수 있다

이 통합사령부가 유엔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 20일쯤 뒤인 7월25일 통합군사령부 설립 선언 때부터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만 미국 마음대로 그렇게 슬쩍 바꾼 것이다. 개입을 기정사실화한 뒤 유엔이라는 도덕적으로 더 그럴듯한 권위를 앞세워 반발을 무마하려는 방책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유엔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엔사였다가 참전국들이 다 빠져나가 이름만 유엔사인 미군이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유엔사는 없었던 것이다. 미군이 유엔군으로 행세하는 건 명백히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한국인들 중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시우씨는 그런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다가 2007년 4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2006년 가을에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 대사에게 이씨는 물었다. “1975년 유엔 총회에서 유엔사 해체 결의가 있었다. 그때 미국은 유엔사 해체를 약속해 놓고 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유엔사 해체는 유엔 안보리 결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1950년 10월7일 유엔 총회 결의에 의해 38선 북쪽 지역에 대한 점령 주체가 유엔사라는 주장은 접지 않고 있다. 둘 다 유엔 총회 결의인데 왜 하나는 유효하고 다른 하나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나?” 10월7일 결의안은 지금껏 유효하며, 그것이 한국 대통령과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미군이 임의로 전쟁상태를 선포할 수 있고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까지 한반도 전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 버시바우는 나중에 답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지키지 않았다. 그 얼마 뒤 답 대신 체포영장이 날아왔고 그는 국가보안법, 군사시설보호법, 해군기지법, 군용항공기지법 등 무려 28가지 법을 위반한 무시무시한 범죄 혐의자가 됐다.

미군기지들을 촬영하고, ‘한강 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주도했으며, 미군이 한국에 다량의 열화우라늄탄을 보관하고 관리 부실로 분실까지 했다며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한 그는 그 전부터 이미 ‘위험분자로 찍혀’ 있었다. 검사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판에 박힌 논고를 늘어놨다. ‘유엔사 해체를 위한 걷기 명상’을 하며 <통일뉴스>에 기고한 글들은 북한 찬양·고무죄가 됐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국가보안법의 백과사전”이라고 했다는 그에게, 서울중앙지법 제17형사부는 2008년 1월 몽땅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무죄 확정까지 5년이나 걸렸지만, 그는 1심 판결 뒤 본격적으로 <유엔군 사령부> 집필작업에 들어갔다. “이 책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재판에서 완전 무죄 판결이란 승리가 가져다준 행운 덕분이다. 나는 드디어 자기검열을 벗어나 유엔사 해체 문제를 논증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법적으로 무죄를 받았다는 것은 나의 시각이 승리했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일 수 있는 자리를 하나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씨는 자신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한 차원 높은 책을 쓰고자 6년을 매달렸다. 국회 도서관이 입수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 복사본과 미 합참 자료 등을 읽고 또 읽었다. 국내외 선행 연구자들도 두루 섭렵했다. 각주들로 빽빽한, 800쪽이 넘는 <유엔군 사령부>는 각고의 노력이 남긴 흔적들로 가득하다. 문헌적 입증자료를 일일이 찾아 들이댄 노력이 빛난다. 그럼에도 그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를 겸연쩍어했다. 하지만 유엔사를 이렇게 정면에서 본격적으로 문제삼은 예를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그 점만으로도 평가받아 마땅하다. 전문 연구자들이나 국가가 꺼리는 작업을 그 홀로 온갖 역경을 딛고 해낸 것이다.

이씨의 얘기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것은, 1951년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와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체결한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이다. 거기엔 일본 내 7개 주요 미군기지들이 유엔사 후방기지로 돼 있고,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그들 기지도 90일 안에 철수하도록 돼 있었다. 그렇다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경우 유엔사는 자동해체되고, 주일 미군기지까지 석 달 안에 철수해야 한다. 그걸 피하기 위해 유엔사는 유지돼야 했고, 그 때문에 평화협정은 저지당했고, 또 그걸 위해 한반도엔 긴장과 전쟁 위협이 조성돼야 했던 건 아닐까?

미국과 일본은 1996년 새 안보공동선언, 1998년 유사법제, 그 실행방안인 방위협력지침(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유엔사 해체 뒤의 주일 미군기지 자동철수 위험을 제거했다. 하지만 유사법제라는 게 일본 주변, 특히 한반도 비상사태를 상정하고 있는 건, 유엔사 등 동아시아 주둔 미 군사력 전체가 여전히 한반도의 불안정·긴장을 그 존립근거로 삼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평화·통일로 가려면 유엔사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글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