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작가의 12년 고민이 책으로, ‘유엔군사령부’ 문제 전면 제기

http://www.vop.co.kr/A00000657463.html민중의소리 이동권기자의 기사

이시우 작가의 12년 고민이 책으로, ‘유엔군사령부’ 문제 전면 제기
이동권 기자 su@vop.co.kr입력 2013-07-18 14:18:13l수정 2013-07-18 14:55:29기자 SNShttp://www.facebook.com/newsvop
이시우ⓒ고소미

지난 2005년 6월 강화도에서 이시우 작가를 만났다. 한참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 작가는 군사분계선 남쪽 2km에 이르는 비무장지대의 관리권은 유엔군사령부가 가졌고,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모든 사람과 물자는 유엔사령관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한강하구는 민간인들의 자유왕래가 가능하다며, 꼭 그 행사를 치러 내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기획한 이유는 유엔군사령부의 실체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의 고민은 “유엔사가 한반도에서 지금 당장,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켜도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것과 “전쟁으로 북이 점령되거나 북이 붕괴됐을 때 북의 통치 권한이 유엔사에 있다”는 것이었다.(1950년 유엔총회결의에서 유엔사가 북의 독립과 통일을 책임지는 주체로 결정됐다.) 그는 또 “유엔사는 일본에 7개 후방기지를 두고 있는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주일미군 전체가 동원되고, 일본 자위대도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우려했다.(1950년 9월 15일 요시다시네루 수상과 에치슨 국무장관은 유엔군 지원에 관한 교환공문에 사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엔군사령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엔군사령부의 문제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최근 이시우 작가의 12년 고민이 담긴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단행본 3~4권 정도의 분량을 압도하는 책, ‘UNC 유엔군사령부’다. 이 작가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문제가 우리의 현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엔군사령부 문제의 심각성을 전면적으로 들춰냈다.

이시우 작가는 왜 이 책을 썼나?

평화적이든 무력적이든, 남과 북이 통일되면 북쪽 지역의 통치주체는 국제법상 유엔군사령부다. 1975년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유엔사가 해체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한반도에만 존재한다.

독자들 중에는 유엔사와 미군이 다르지 않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 유엔사령관의 3개 계급장을 동시에 달고 있는 사람은 용산 미군기지사령관, 미군이다.


UNC 유엔군사령부ⓒ민중의소리

북한은 유엔사 해체를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이와 관련된 서적들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엔사 해체 주장은 북한의 정치선전이라고 선을 긋고 무시하거나, 친미추종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유엔사 관련 책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유엔사의 불법성을 드러낸 자료는 이 책이 전무후무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엔사의 불법성을 학문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유엔사 문제를 북한의 전유물과 남한의 국가보안법이라는 이중 구속에서 해방시켰다. 분단체제가 금기시했던 성역 하나를 허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기존에 북한이 주장했던 유엔사 해체의 범위를 뛰어 넘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유엔사지만 그 골자에 유엔체계를 응시하며 유엔의 한계를 구조적으로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베트남, 이라크와 달리 한반도 문제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엔 개입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반도의 문제는 유엔에서 시작됐고 유엔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을 발발책임이 아니라 형성과정에 초점을 뒀다. 이러한 접근법은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이자,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교훈을 찾는 데 더욱 효과적으로 보인다.

이시우 작가가 이러한 책을 내게 된 이유는 필연에 가깝다. 이 작가는 사진가로 비무장지대와 한반도의 평화에 천착했다. 한군데도 빠짐없이 한국의 미군 기지를 모두 둘러보면서 분단과 비평화의 본질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가졌고, 그것의 원인이 바로 유엔군사령부에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후 그는 강화도에서 오키나와까지 3,000km가 넘는 거리를 ‘유엔사해체에 대한 걷기명상’로 감행했다. 또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등의 행사를 기획하면서 유엔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들은 그를 국가보안법이라는 올가미에 걸려들게 만들었다.

공안당국은 이시우 작가가 제기한 유엔사 해체 문제가 북이 주장해온 선전선동에 동조해 이로움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국가보안법을 적용했다. 또 전국의 미군 기지를 촬영한 사진에 대해 군사기밀유출이라는 혐의를 덧씌웠다. 특히 경찰은 강화고려산 미군통신시설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었다. 하지만 그는 장장 5년이 넘는 재판을 통해 완전무죄판결을 받아냈다. 그 당시 이 작가의 변호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맡았다.


이시우ⓒ고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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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작가가 잊히지 않는 이유

이시우 작가에게 사진은 사색의 도구라고 한다. 사진을 통해 마음을 담고, 자신의 마음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들은 깊은 사색을 이끌어낸다. 그가 앞으로 기록할 이미지들이 기다려지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시우 작가를 떠올리면 항상 생각나는 말이 있다. 겸손하고 강인한 그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 말인 것 같아 잊히지 않는다. 그는 그동안 기자가 얼마나 교만했었고, 선민의식에 빠져 있었는지 한 방에 알려주었다.

“조직이나 대중사업을 할 때 인간관계가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관계를 쫓다 보면 서로를 다치게 되는 것이 관계라고 느꼈다. 인간관계를 소중하고 진지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긴장하고 존중해야만 한다.
자유와 연대가 중요하다. 자유의 반대를 구속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유의 반대는 관성이다. 자기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이며 이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다. 이 관성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찰하고 반성하며 되돌아보는 것 밖에는 없다.
아무리 노련하고 존경받는 사람도 한순간에 넘어간다. ‘일치성’은 없다. 일치를 향한 지향이 중요한 것이며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단결해나가는 것이 옳다.”

이시우 작가가 2005년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