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한반도 정전체제의 ‘맨얼굴’-통일뉴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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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한반도 정전체제의 ‘맨얼굴’

유엔사, ‘유엔사-북한 장성급회담’ 제안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승인 2014.03.31 22:14:36

포항에서 최대 규모의 한미합동 ‘쌍용훈련’이 벌어진 3월의 마지막 날,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선 남북이 포격전을 벌였다. 한반도의 정전체제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 지를 적나라하게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키리졸브-독수리 한미합동 군사연습’ 기간 북측은 여러 차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 26일 새벽 북한은 노동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듯 했지만 31일 포격전까지 이른 것.

지난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구상’을 내놓은 지 사흘만에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북한의 사격훈련이 진행 중이던 오후 2시 50분경,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유엔사 정전위)가 북측에 통지문을 보내 2시간 이내에 북한군과 장성급 회담을 위해 만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한 점.

남북 군부대끼리 포격전이 오가는 와중에 유엔사 정전위가 북한군과 장성급회담을, 그것도 통지문을 수령한 후 2시간 이내에 갖자는 제안은 다소 의외로 다가온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럴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미군이 주력인 유엔사는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1991까지 유엔사 군정위를 통해 한반도의 정전체계를 관리하는 주체였다.

1991년 군사정전위 유엔사 측 수석위원을 미군 장성에서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하자 북한은 군사정전위 불참을 선언하고 1994년 4월 28일에는 군정위 북측 대표단을 판문점에서 아예 철수시켜 무력화시켰다.

그 이후에도 미국은 유엔사 군정위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했지만 북측은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면서 북-미 군사회담을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북측은 이를 위해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운영해오고 있다.

결국 1998년부터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이 시작돼 2009년 16차까지 진행됐으며,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이후에도 유엔사는 북한군과 장성급회담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응하지 않았다.

『유엔군사령부』의 저자인 이시우 사진가는 “미국은 정전위라는 형식을 내세우면서도 실현불가능한 정전위 소집 대신 판문점 장성급회담을 제안했다”며 “이는 북측이 제시해온 회담형식”이라고 짚었다. “한미군사연습에 대한 북의 대응이 미국을 협상탁자로 끌어낸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북.미 장성급회담을 주장해온 북이 협상에 나올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한 이번 유엔사 군정위의 즉각적인 장성급회담 제안은 ‘일전불사’를 외치고 있는 한국 국방부와 톤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시우 사진가는 “한미군사연습은 그 주체가 유엔사와 연합사”라고 환기시키고 “그동안 서해에서의 위기조치는 곧바로 전시준비태세의 상향으로 이어질 것이 당연시되었으나 위기조치에 이은 대응이 유엔사의 협상으로 드러나면서 현 시기 미국의 전쟁의지와 능력도 간접적으로 확인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해의 위기조치 권한이 한국군이 아닌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사와 연합사에 있고, 유엔사는 전시준비태세 상향보다는 협상을 선택했다 흥미로운 분석이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첨예화 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구도의 현주소가 명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남북 간에는 2007년 한 차례의 국방장관 회담과 2004~2007년 사이 일곱 차례의 장성급회담이 열린 바 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군사실무회담 외에는 열린 적이 없다.

남북 간에 군사적 대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협상을 통해 풀 수 있는 최소한의 군사적 통로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