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사랑에 빠지다, 민통선 평화기행을 읽고-박은경2005/12/05 824

박은경님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문예공모전에 발표한 ‘민통선평화기행’ 독후 감상문입니다. 본인은 낙선했다고 상심하셨지만 저는 제 마음의 큰 상을 드립니다.

제목 : 평화와 사랑에 빠지다, 이시우 「민통선 평화기행」을 읽고

박은경
사람을 바꾸는 것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상황을 만나느냐, 그리고 어떤 책을 만나느냐 이 세 가지라고 하는데 최근 내 삶의 마당에 ‘평화’라는 새싹을 심어주고 통일과 분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 준 한권의 소중한 책을 만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바로 이시우님이 일반인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멀어져 있는 민통선을 10년 동안 발로 찾아다니며 평화의 관점에서 따뜻한 사진과 글로 기록한「민통선 평화기행」이다. 이 책은 올 10월 독일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독일어로 번역되어 소개된 책 중의 한권이기도 해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기쁘고 축하해 마지않을 일이다.

올 여름 운이 좋게도 나는 저자의 강의를 직접 듣고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함께 답사할 기회를 가졌었는데 책과 그리고 직접 만남을 통해 본 이시우님의 삶을 대하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이기도 한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의 아래와 같은 글의 주인공이라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전사상이든 반핵평화사상이든 우리가 어떤 사상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것은 그러한 사상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삶의 정서로서 일관되게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 해도 또한 비록 자신이 주장하고 있다 해도 실천이 없다면 자신의 사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삶과 사상의 조화 이것은 자기관리의 기본과제이다.”

시대를 이용해 부와 명예 등 자신을 높여간 사람들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고 절망한 경험이 많은 우리에게 삶과 사상이 조화된 삶을 살아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과정의 올바름은 묻지 않고 목표의 올바름은 고민하지 않은 채 오직 목표달성만이 성공과 승리를 결정짓는 유일한 기준이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글이나 주장이 아닌 실천으로 사표(師表)가 되는 삶을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이시우님의 지금까지의 삶의 발자취에서 나는 그런 값진 기쁨을 맛보았으며 앞으로 내 삶의 내용을 채워나갈 ‘평화’와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겠지만 시대의 현실과 모순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사진은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 그리고 삶의 바른 철학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대상을 사진과 글로 담아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감시운동과 대인지뢰 반대운동에 꾸준히 온 힘을 쏟고 있는 등 생활과 사상이 조화된 그의 삶은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말로 주장할 뿐 삶으로 말하지 않는 지식인들과 일상의 편안함에 안주하며 사회참여에 무관심한 나 같은 소시민에게 반듯한 거울이 되어 주고 있는게 아닐까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기행 글을 넘어서서 분단현실과 통일에 대한 바른 관점을 심어주고 일상에서 평화에 대한 실천을 이끌어내는 생생한 통일교과서로서 그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각인시켜주는 평화메신저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상처의 조건만이 아니라 성숙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그의 글에서이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그의 외롭고 힘겨웠을 여정을 짐작해 본다.
사진기 들고 민통선을 오래도록 배회했다면 아마 예전 같으면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간첩신고 대상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가 찾은 곳과 그 곳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 특히 대인지뢰 피해 주민들은 우리사회의 관심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지역이며 사람들이다. 이 지역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고작 오염되지 않은 자연관광지나 안보관광 코스 정도이며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삶의 조건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나 자신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이 책은 내게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특히 지뢰 피해 주민들에 대한 그의 따뜻한 기록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가끔 뉴스를 통해 지뢰로 인한 사고를 접할 때면 ‘왜 지뢰가 있는 곳으로 놀러가서 저런 봉변을 당하나 아니면 다치거나 죽을 줄 알면서 무엇 때문에 저런 곳에서 살고있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라고 생각하는 등 지극히 편협 되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지뢰피해 주민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로소 겸손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비무장지대 남쪽에만 1백만여개, 그 후방에 7만여개의 지뢰가 묻혀있고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지뢰가 비축되어 있다고 하니 지뢰에 의한 피해는 단지 개인의 부주의나 우연에 의한 사고가 아닌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초래된 비극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얼마든지 지뢰에 의한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람과 동시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목적으로서의 평화를 위해서는 수단으로서의 평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평화운동가 요한 칼퉁의 주장과 ‘좋은 수단에 의한 좋은 평화만 평화이다’라는 말, 그리고 ‘평화에도 그 실현을 위한 손잡이와 날이 다 있을 것이나 날을 잡고 손잡이를 내려치면 다치는 것은 사람이다. 잘못된 평화의 수단은 그 목표인 사람을 해친다’고 한 이시우님의 글 등을 곱씹어 보며 군비확장 등 힘의 균형으로 유지하려는 평화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평화적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책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는 지뢰피해 주민들의 고단한 삶의 기록을 보면서 피해 주민들이 외지에서 온 이방인에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불구가 된 몸을 카메라에 담도록 허락하기까지 저자가 보였을 말로 아닌 가슴으로의 설득과 따뜻한 이해, 그리고 정성을 더듬어 보았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몸을 보여주거나 사진 찍기를 한사코 꺼려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듯이 저자가 진실로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신들의 편이라는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신뢰는 한 두 번의 발품으로 쌓아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생각해 볼 때 저자의 애씀과 정성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저자의 이런 숨은 노력으로 나는 지뢰로 인해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와 교통사고로 실명한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다 과로로 어린딸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간 엄마를 둔 어린소녀 송희를 만나게 되었다. 송희할아버지는 임진강 건너 지금은 북한땅인 장단에 살다 한국전쟁때 며칠만 피난하기위해 집을 나섰다가 분단으로 인해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강 건너 고향이 바라다 보이는 파주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쪽에 땅 한 평 없었던 송희할아버지는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어 미군부대에 들어가 시야를 가리는 풀과 나무를 정리하는 마초작업 등 날품팔이를 하게 되었는데 지뢰투성이인 일터에서 결국 지뢰로 다리를 잃게 되었다.
대부분의 지뢰피해자들이 그렇듯이 송희할아버지도 보상은커녕 자신으로 인해 마을사람들이 일을 못하는 등 피해가 갈까 두려워 사고를 당하고도 쉬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고통은 고스란히 본인과 가족들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의족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송히할아버지는 1997년 대인지뢰 금지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조디 윌리엄즈가 송희네 동네에 의족을 기증하러 왔을 때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멀리서 배회하다 주변의 권유로 참석할 정도로 소박한 분이었다. ‘자다가도 없어진 발가락이 움직이는 것 같아 발을 더듬다 잠을 깰 때가 많았다. 아들도 실명하고 며느리도 죽고 가장 노릇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죽을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탄식하는 송희할아버지의 한숨에서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할아버지의 탄식을 듣고 자라며 한참 밝고 명랑할 초등학생 송희의 마음에 드리웠을 그늘을 짐작해 보니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엄마로서 저절로 코끝이 찡해진다.

송희네 동네에는 지뢰피해자만 13명이 된다고 한다. 본인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송희네 동네뿐 아니라 강원도 양구 해안면을 비롯해 민통선 근처에 삶의 터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지뢰로 인한 아픈 상처를 하나씩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상처를 잉태한 전쟁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뿐 아니라 치열했던 전쟁터에서조차도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을만큼 과거가 된지 오래되었는데 그 상처는 살아있는 자들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오래도록 남아 있는 셈이다.

지뢰와 폭발물 천지인 황무지를 목숨을 걸고 개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 그 척박한 삶의 조건이라도 부여잡고 미래의 희망을 꿈꾸었을 그들에게 세상은 그 희망을 그들의 것으로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절망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면 전체가 민통선 마을이라는 강원도 양구 해안면에 사는 한 할머니의 슬픈 가족사는 내게 대인지뢰 금지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충격이었다.

먹을 것이 변변치 못했던 시절, 할머니의 큰 아들과 손자는 근처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갔다 지뢰를 밟아 모두 즉사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둘째 아들도 근처 산에서 지뢰로 발목을 잃어 상심한 나머지 딸아이를 맡기고 서울로 올라가 공사판을 전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손녀를 맡게 된 할머니는 산마물을 캐다 팔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할머니마저 산나물을 캐다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게 되었다고 하니 할머니의 인생은 그야말로 지뢰밭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기에 발에는 생활의 표정이 그대로 새겨지는 것이다. 다리가 잘리면 신경의 순환기능이 파괴되어 시간이 갈수록 다리 살이 빠진다. 당연히 맞췄던 의족이 헐렁해져 살에 닿아 딱지와 굳은살이 생긴다. 다시 의족을 맞춰야 하지만 그럴 엄두를 못내는 할머니는 스타킹과 양말을 겹겹이 신어서 의족에 맞춘다. 의족에 수없이 까져 굳은살이 앉은 것을 보면 그녀가 이 다리를 하고서 얼마나 많은 길을 험하게 걸어야 했는지 알 수 있다. 상처는 분노로 남으로 하고 세월은 이제 그만 사랑으로 남으라 하지만 분단의 결은 고스란히 그녀의 살결에 새겨져 있다.’

저자가 할머니와 오랜 시간 동안의 마음의 교류 끝에 허락받은 할머니의 의족 벋은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쓴 위의 글이 오래도록 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할머니를 비롯해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선한 이웃들이 이제 그만 분노 대신 사랑으로 세상을 대할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할머니의 살결이 되어 줄 순 없겠지만 다리가 되어주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대인지뢰 금지운동뿐 아니라 반핵, 반전 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동참해서 다시는 이러한 슬픈 가족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이처럼 「민통선 평화기행」은 내게 우리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는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인 강원도와 경기 북부, 인천 일부의 지역과 지역민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이끌어 주었고 추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통일과 평화에 대한 막연함을 내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 갈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사실 그 동안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 그리고 통일에 대한 당위를 이론으로 듣고 배우고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그건 그저 추상적이고 관념 속에서만 존재했을 뿐 내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시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얼마 전 직장동료가 가족들과 함께 고성 통일전망대를 비롯해 강원도 일대 민통선을 둘러보고 와서는 안보관광 잘 하고 왔다며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여행담을 들려주는 걸 보고 몹시 씁쓸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 동안 내 생각과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포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김포대교부터 강화에 이르는 한강하구 도로변에 둘러쳐진 철조망을 매번 보면서도 분단의 흔적이 그렇게 가까이 있음에 대해 별다른 느낌 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나들이차 갔을 때에도 가깝게는 겨우 460미터도 안되는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마치 외국의 어느 마을을 보는 것처럼 무신경하게 구경했던 것 같다. 코앞에 있는 동포의 땅을 두 발로 가지 못하고 망원경에 의지해 바라보는 것에 대해 그 어떤 분노나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나의 이런 태도는 물론 내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이거나 가족 중에 이산가족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것은 ‘자유의 반대는 보통 구속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관성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만 관성은 그렇지 않다. 그게 관성의 무서운 힘이다’ 라고 한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들의 사고가 ‘관성’화 되어 버린 탓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이러한 관성을 깨울 수 있는 것은 ‘평화적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평화, 평화운동, 평화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약하나마 나도 참여를 통해 힘을 보태기로 마음먹기까지 나름대로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내게 결정적인 용기를 준 어느 평화학자의 글을 소개해 본다.

‘평화연구나 운동하는데 특별한 준비도 예비지식도 필요 없다.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타인에 대한 관심, 아마도 이것이 제일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평화만들기란 가장 인간다운 인간행위이며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 나는 어느 시민단체에서 평화의 관점으로 오두산통일전망대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안내하는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비록 아주 작은 일이지만 내겐 평화의 소중함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큰 창구가 되고 있다.

직장생활 13년차인 내게 이러한 ‘평화’와의 만남은 단조롭던 내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던져 주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만남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설레임과 부푼 희망을 안겨주었고 새로운 배움에 대한 참 기쁨에 눈뜨게 해주었으며 삶에 대한 새로운 지향을 꿈꾸게 해주었다.

사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는 문예공모전에 글을 보내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나름대로 망설임이 많았다. 워낙 글 솜씨가 없는데다 아이키우며 직장생활에 쫒기다보니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강요나 의무감도 없는 일이었지만 나와의 작은 약속이었기에 지키고 싶었다. 또한 무덤덤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내가 평화와의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인생지표를 얻게 된 것처럼 다른 분들도 내 글을 통해 그런 만남의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주부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이 사회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직장인으로서 평화의 소중한 가치에 눈뜨게 된 나의 이야기가 평화운동이나 활동이 일부 활동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평범한 시민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작은 보탬이 된다면 이 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 같다는 욕심도 있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에게 평화적 심성을 길러주기 위해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동화책과 만화책을 몇 권 사주었더니 엄마는 너무 교훈적인 책만 사준다며 투덜대더니 제법 독서삼매경에 빠져 지낸다. 아들과 함께 평화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정해보았다.

‘주변에 따뜻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친절과 다정함으로 대하기, 장애가 있거나 어려운 친구 도와주기, 물을 아껴 사용하고 쓰레기 용량 줄이기, 일회용품 사용안하기,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친구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기, 평화를 위해 일하는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하기, 총이나 칼 같은 장난감 갖고 놀지 않고 생명을 죽이는 게임 하지 않기,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동화책 읽기,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통해 폭력, 차별, 가난 등에 대해 조사하고 평화에 대해 배우기, 화가 날 때는 잠시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자신을 들여다보기. 다른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주지 않고, 상처를 줬다면 반드시 사과하기, 인터넷에서는 욕하지 않고 바르고 고운 글 사용하기. 친구 이야기 잘 들어주기’ 등등이다.

‘텔레비전에 비친 전쟁의 참화를 보고 울지 마세요. 당장 무언가를 해보세요. 세계평화 구축의 주역은 바로 당신입니다.’ 라고 한 대인지뢰 금지운동가인 조디 윌리엄즈의 메시지를 내 일상에서 실천에 옮기기 위한 작은 걸음이다.

박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