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하구 서평- 민종원2008/09/07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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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의 꿈, ‘닫힌 시대’에서 ‘열린 공간’ 엮어가기
[서평] <한강하구-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에서 본 분단한국의 오늘과 내일

민종원 (2005)

“정전협정상으로 합의된 한강하구는 비무장지대가 끝나는 장단의 사천강 하류와 문산 곡릉천으로부터 강화 끝섬 말도까지로 되어 있다.”(<한강하구>, 374)

한강은 늘 역사를 관통했지 비껴가지 않았다

2008년에서 55년을 거슬러 가보면 1953년 7월 27일에 맺어진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싸늘한 시선이 여전히 기세등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정전협정의 정식명칭은 ‘국제련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 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짓눌린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국내외 다양한 시선들과 빛바랜 꿈들 위로 정전협정 그림자가 짙은 흔적을 드리운 채 새로운 한국사의 진정한 개막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

역사로 보나 지리상으로 보나, 한국사를 관통하는 곳은 오랜 기간 수도 서울 지역과 그곳을 끌어안고 있는 한강유역(한국 현대사로 넘어오면서 한강하구가 특히 중요해졌다)이었다. 이곳은 현대사에서 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서 늘 주도권 쟁탈의 핵심지대였다. 이곳은 한반도 남북을 관통하는 곳인 데다 한반도 허리 옆으로 난 바닷길을 열고 닫는 곳이라는 특성에서 국제 지대라는 면도 지니고 있다.

지은이 이시우(사진가, 평화활동가)가 말하는 한강하구 3대 군사 활동을 보면, 몽골 항쟁, 양대 양요(병인양요, 신미양요), 한국전쟁이라는 3가지 특별한 사건이 있다. 한국사 내부 시선에서 볼 때 한강하구는 이미 역사, 문화, 군사 모든 면에서 중요한 요충지였다. 그런데 이곳은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몽골제국에 항거했던 몽골 항쟁기 시절부터 유라시아의 호흡과 맥을 같이하는 국제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양대 양요는 이 지역에 드리울 국제적 성격의 현대판을 여는 사건들이었으며 한국전쟁은 이 지역을 명실상부한 국제 지대로 만들어버렸다. 애초에 우리가 바라던 바도 아니고 우리가 바라는 바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면에서, 한강하구가 국제 지대로 변모한 일을 두고 ‘만들어버렸다’라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곳에서 벌어진 3대 국제적 군사 활동에서 보듯, 한강하구는 현대 한국사 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적 핵심이기도 하다. 이 책 <한강하구-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이시우 지음/통일뉴스, 2008)이 바라보는 한강하구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국제적 성격이다.

이 지역의 군사적, 역사적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적 가치(!)에서 우리는 새로운 한국사를 여는 틈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작가이자 평화활동가인 이시우의 확신과 주장대로라면, 한강하구는 여전히 ‘닫힌 시대’에 묶인 한국사에 숨통을 트는 ‘열린 공간’의 핵심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한강하구는 새 한국사를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한강하구-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이하, <한강하구>)이 현대사 문제만으로도 벅찰 게 분명한 한강하구 문제를 다루면서 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려한 것은 아주 분명한 의도를 띠고 있다. 오랜 기간 정전협정의 무서운 침묵 사이를 지나온 이곳은 많은 비무장지대 내 자연이 그렇듯 자연보존 가치, 사회·역사적 가치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가치를 유지해왔다.

책 절반에 가까운 분량을 한강하구 숲의 역사와 가치를 서술할 정도로, 이시우는 한강하구의 모든 것을 살펴보려 했다. 한국사의 핵심이 되기 전후로 서해와 맞닿은 한강하구는 국가정책을 포함하여 평범한 사람들 삶에도 부단히 영향을 미쳤다.

국내외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고, 오랜 기간 주요 연료 역할을 한 목재 운용과 관리(여기에는 나무의 생존과 가치 문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숲의 문제가 같이 엮여 있다) 문제에서도 한강하구는 파괴와 회복, 활용과 보존 등에 관한 고민을 끌어안아야만 했다. 본의 아니게 분단 한국의 교차점이 된 일까지 포함하여 한강하구는 역사의 모든 문제를 알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무장지대의 환경문제는 환경문제 이전에 정전협정문제이며 남북의 문제가 아닌 유엔사와 인민군 간의 문제라는 인식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프리가 예리하게 지적하였듯이 한강하구는 비무장지대가 아니므로 한강하구로부터 환경협력을 시도한다면 가장 실현가능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정전협정 1조 5항에서 한강하구 사용의 주체를 ‘쌍방민간선박’으로 하고 있으나 ‘한강하구 선박항행규칙’에서는 ‘민간선박’에서 ‘민간인’으로 바뀌어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의 쌍방은 남과 북이 아니라 유엔사 16개국 군대와 중공군, 인민군이다. 즉 18개국이 쌍방의 범주에 속하며 18개국의 민간인이 한강하구 사용의 주체인 것이다. 한강하구에 유엔사의 허가권이 없는 대신 18개국의 ‘민간인’에게 사용권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한강하구의 국제적 성격을 감안할 때 한강하구 숲의 문제 또한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이 책, 117)

한강하구의 특별한 의미는, 이곳이 사실상 한국사를 ‘정지상태’로 만들어버린 정전협정을 정면으로 마주보며 새 의미를 던져준다는 데 있다. 이시우가 지적했듯, 한강하구는 희한하게도 비무장지대와 같은 남북 대립각에서 얼마간 벗어나 있다. 정전협정이 한반도 허리를 처절하게 잘라내 둘로 나누어버린 것과 달리, 한강하구는 주권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관할권 문제에서 마치 틈새 역할을 하는 듯하다. 이같은 한강하구의 묘한 법적 지위가 <한강하구>가 말하는 바의 출발점이며 핵심이다.

정전협정 1조 5항에서 언급된 ‘쌍방민간선박’과 ‘한강하구 선박항해규칙’에서 언급된 ‘민간인’이라는 표현은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이 지닌 전쟁의 그림자를 벗어나 ‘정전협정 너머’로 가는 곳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강하구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정전협정 너머 새로운 한국사의 기틀을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 국제적 성격을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분단한국사는 여전히 완전한 ‘종전’을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한강하구는, 이러한 지은이의 시각과 주장에 따라, ‘정전협정의 틈’이라는 미묘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새로 부여받는다.

참고로, 이 책의 내용과 그 가치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거의 책 절반을 채울 만큼 엄청난 연구를 진행한 한강하구 역사(숲의 역사, 갯벌과 간척사, 항행 역사)는 한강하구의 사회·문화적 (이용)가치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나머지 절반 분량을 차지한 한강하구 군사사와 그 관련문제인 관할권 문제는 이곳의 평화·국제적 (이용)가치를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자는 후자를 떠받치는 토대이며 후자는 전자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지닌 현실적 주제가 되는 것이다. 한강하구가 지닌 이러한 다양한 가치가 결국 한강하구 지대를 ‘유라시아로의 창’으로 만들어간다.

통일한국의 관점에서 볼 때, 한강하구가 지닌 정전협정의 틈새는 여러 가지 논의거리를 만든다. 외교 쟁탈전의 상징처럼 되버린 한국 땅에서 한강하구의 독특한 지위는 평화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틈새를 열어줄 수도 있고, 통일한국의 중심역할을 새로운 의미에서 다시 살펴보는 출발점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치밀한 역사 고찰과 현대사 관찰을 통해 한강하구를 들여다 본 지은이의 의도를 새삼 다시 곱씹어보게 된다. 이 책의 부제가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인 이유도 이제는 더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어느덧 남북한은 한강하구에서 통일한국 및 국제 평화의 기틀을 찾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미 두 번이나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어 남북한 대화의 물꼬는 쉽사리 되돌릴 수 없고, 남북한 경제협력은 이미 그 궤도를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국제 협력과 대화도 여기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강하구의 특별한 의미와 가치는 더욱 주목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국제)현실은 무척 차갑다. 또, 냉혹하다. 분단한국의 이념대결은 여전히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한강하구의 법적 지위가 특별하면 특별할수록 해석 주체에 관한 문제, 협정 내용의 실제 해석 차이에 관한 문제,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길 (국제)분쟁에 관련된 문제 등 많은 관련 사안들의 진폭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분쟁 소지가 많은 한강하구의 독특한 법적 지위는 같은 이유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숙제를 안겨준다. 말하자면, 분단한국사의 유일한 숨통처럼 보이는 이곳 한강하구가 새로운 한국사의 길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실제로 이에 관하여 깊은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대담한 희망을 품은 이 책을 볼 때 주의해야 할 걸림돌(!)을 이렇게나마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높아지는 희망만큼 논란도 많고 논란이 많은 만큼 희망의 크기도 더 키워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바로 역사와 현실이 날마다 서로 들고나며 부딪치는 한강하구이다.

“모든 국제하천의 근본문제가 그러하듯 한강하구의 근본문제 역시 ‘관할권’에 있다. 육지의 비무장지대와 달리 한강하구에 대한 유엔사의 관할권은 실제로 관리권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 유엔사는 한강하구에 대한 출입허가권을 비무장지대와 같이 과도하게 행사하며 관리권을 남용하고 있다. 한강하구에는 유엔군사령관과 인민군사령관이 그 출입을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이 배제되어 있다. 유엔군사령부도 인민군사령부도 아닌 민간인에 그 출입이 개방된 한강하구는 통일과 평화, 생명의 해방구인 것이다.”(이 책, ‘한강하구를 보고 싶었다’에서, 8)

덧붙이는 글 | <한강하구-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 이시우 글/그림. 통일뉴스, 2008. 2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