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질문의 미덕
1990년대 북한바로알기 운동은 통일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때 배운 몇 가지 지식덕분에 금강산관광이 열렸을 때 나는 북한 관광안내원과 북에 대해 아는 척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다. “선생님 옷깃에 단 뺏지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답 대신 질문에 토를 달았다. “아니 북을 공부하셨다는 분이 뺏지가 뭡니까?” 나는 당황했다. “그럼 뭐라고 합니까?”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더니 답변했다. “휘장이라고 합니다.” 그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원래 질문을 다시 반복하지도 못하고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한참 뒤 그 장면이 다시 생각났다. ‘휘장을 모른 게 그렇게 정색할 일인가’ 싶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단어하나만으로도 오해가 쌓이고 갈등이 될 수 있으니 이해관계 사안이나 정책이나 이념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북한바로알기 운동은 북한과 관계를 맺기 위한 시작이 아니다. 전부이다.
불안, 공포, 혐오는 무지에서 온다. 유럽에 성곽도시가 만들어지자 성 안과 밖의 문명은 전혀 다른 격차로 벌어졌다. 성 안에 들어 올 수 없는 이민족, 유랑민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그저 바바바바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고 바바리안이란 단어가 만들어졌다. 야만인을 뜻하는 이 단어는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단어가 아니다. 그 자체에 불안, 공포, 혐오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객관적이기 위해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말처럼 위선적인 말은 없다.
한편 앎이 상대를 위한 지배수단일 수 있다. 인도학이 정립된 곳은 인도가 아닌 영국이었다. 인도 지식인들은 인도를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했다. 지배를 목적으로 한 지식은 지배를 위한 수단이다. 공자는 말했다.
‘함께 공부할 수 있으나, 도를 같이 깨달을 수는 없고, 도를 같이 깨달을 수는 있으나, 자리를 같이 할 수는 없고, 자리를 같이 할 수는 있으나, 권력을 같이 할 수는 없다.’(「子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