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의사소통 행위의 이론요약2004/11/14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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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의 이론”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의사소통 행위의 이론]은 그가 사회과학의 기본범주를 ‘노동’에서 ‘언어’로 옮긴 이른바 ‘사회과학의 언어학적 선회’ 이후 의사소통을 언어의 본질로 이해하면서, 비판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체계화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1929년 6월 서독의 듀셀도르프에서 출생하여 1961년 브르그에서 대학교수 자격을 획득하고 그 해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로 취임한 이후 비판이론으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계승자로서 명성을 유지해 오고 있다.

다음은 [의사소통 행위의 이론]의 국내 번역문 중에서 서론의 도입부분을 소개해 본다.

위르겐 하버마스. 1995. 소통행위이론 서규환 외 옮김. 의암출판. p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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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과 행위의 합리성은 철학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논의되어 왔던 주제이다. 심지어 철학적 사유는 인식과 논술과 행위 속에 체현된 이성이 반성되어짐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적 근본주제는 이성이다. 철학은 철학이 시작된 이후 전체로서의 세계, 현상의 다양성 안에 있는 통일성을 이성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원칙들을 갖고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 원칙은 세계 저편에 있는 신성과의 소통을 통해서나 문제 그대로 자연과 사회를 포괄하는 우주의 근거로 회귀함으로써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희랍적 사유는 신학이나 위대한 세계종교의 의미에서 윤리적 우주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을 목표로 한다. 철학적 가르침에 무엇인가 공통적인 것이 있다고 할 때, 그 의도는 세계의 존재나 통일성을 이성이 자기 자신과 교제하는 체험을 상술하는 길 위에서 사유하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할 때 나는 근세철학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적 전통은 철학적 세계관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한 애매한 것이 되었다. 오늘날 전체화하는 지식이라는 의미에서 세계와 자연, 역사와 사회의 전체와 더 이상 관계할 수 없다. 세계상을 위한 대용물이 경험과학의 실제적 발전에 의해서 뿐 아니라 이 발전을 동반한 반성적 의식을 통하여 더욱 탈가치화되었다.

이 의식과 함께 철학적 사유는 자기비판적으로 후퇴하였다. 학문적 인습의 태두리 내에서 철학적 사유의 반성적 권한이 무엇을 실행할 수 있느냐는 물음과 함께 철학적 사유는 메타철학으로 변하였다. 여기서 주제는 변하였으나 동일한 것이 남아 있다. 현대철학에서 보다 더 견고한 주제적 핵에 대한 일관성 있는 논의가 형성되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논리학이나 학문론이든지, 언어이론이나 의미론이든지, 윤리나 행위이론이든지, 심지어 미학 안에서도 관심은 인식과 언어적 이해력과 행위의 합리성의 형식적 조건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이 관심은 일상적인 논술과 방법론적으로 정립된 경험이나 체계적으로 정립된 논술의 차원에서도 나타난다. 이때 논증이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왜냐하면 논증이론은 명맥한 합리적 태도의 형식화용론적인 전제들과 조건들을 재구성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이 잘못된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철학이 탈형이상학적, 탈헤겔적 흐름 속에서 합리성이론의 수렴점을 추구하는 사실이 옳다면, 어떻게 사회학이 합리성의 문제에 대한 관찰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전체성에 대한 관련성을 포기하는 철학적 사유는 자기 분수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물질적으로 내용이 풍부한 자연과 역사와 사회 등의 이론에 대한 존재론적 희망이 합리성의 조건에 관한 형식적 분석의 목표와 연결될 수 없고, 비경험적 류의 주체나 의식일반을 마련하는 선험적 재구성에 대한 선험철학적 희망 역시 이것과 연결될 수 없다. 시원을 찾는 철학의 의도가 계속 명맥을 유지했던 최종적 근거를 놓으려는 모든 사도는 파산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철학과 학문의 관계 안에 새로운 자리매김이 시작되었다. 학문이론과 학문의 역사에 관한 예가 보여 주듯이, 합리성의 조건에 관한 형식적인 상술과 합리성의 구조에 대한 체현과 역사적 발전의 경험적 분석은 진기하게도 서로 맞물려 있다. 현대 경험과학의 이론은, 이 이론이 논리적 경험주의 노선이든지 비판적 합리주의 노선이든지 혹은 방법론적 구성주의의 노선 중 어느 것을 목표로 삼든지, 더 이상 존재론적이고 선험철학적 방법을 근본적으로 승인하여 옹호되지 않는 규범적이며 보편적인 요구를 제기한다. 그러한 요구는 반대되는 예들의 명증성에 근거하여 검토되며, 결국 재구성이론이 학문의 역사의 내부적 측면을 조절하고 경험적 분석과 연결하여 사실적이며 이야기체로 제시된 학문의 역사를 사회적 발전의 맥락 망네서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능력이 증명됨으로써 지지된다. 그와 같은 복잡한 이지적 합리성 및 최근서의 학문에 타당한 것은 다른 형태의 객관적 정신, 즉 그것이 인지적, 도구적 합리성이든지 혹은 도덕적, 실천적 합리성의 체현, 심지어 미학적, 실천적 합리성의 체현에도 해당한다.

물론 경험적으로 정향된 이러한 종류의 연구는 근본적으로 의미연관성과 문제해결에 관한 합리적 추후 구성과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인지론적 발달심리학은 이에 대한 하나의 예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피아제(Piagett) 전통 속에는 좁은 의미의 인지적 발달이, 비록 그것이 사회인지적이며 도덕적 발달이지만, 추후 구성할 수 있는 관할단계의 결과로 개념화된다. 이와 반대로 문제해결, 합리적 행위정향, 학습의 수준 등이 측정되는 행동이론이나 자기 주장의 요구에서와 같이 경험적으로 새로이 해석되고 잘못 정의될 때 합리성의 구조가 체현되는 과정은 엄격한 의미에서 학습의 과정이 아니라 기껏해야 수용 능력의 증가로 해석될 수 있다.

사회과학 중에서 사회학이 사회학의 근본개념에서 볼 때 가장 먼저 합리성 문제점과 연결되었다. 다른 학문분과와 비교할 때 나타나는 것처럼 이 사실은 학문이론적이고 사실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우선 정치학을 관찰해 보자. 정치학은 합리적 자연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했다. 현대의 자연법 역시 고대 유럽의 이해로부터 출발하였으며, 이 이해에 따르면 사회는 정치적으로 구성된, 권리의 규범을 통합하는 공동체로서 서술되었다. 물론 시민사회의 형식법이라는 새로운 구상은 구성적으로 행동하며, 법적 정치적 질서를 규범적 관점하에서 하나의 합리적 기계장치로 계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경험정향적 정치학은 이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정치학은 사회의 부분체계인 정치를 다루며 사회를 전체로써 파악해야 하는 과제로부터 벗어난다. 자연법적 규범주의와는 반대로 정치학은 정당성에 대한 도덕적, 실천적 물음을 학문적 관찰로부터 배제하며 이 물음을 그때마다 기술적으로 고려에 넣을 수 있는 정당성에 대한 믿음으로 취급한다. 이로써 정치학은 합리성의 문제점에 이르는 가교를 단절한다.

18세기에 합리적 자연법과 각축을 벌이고, 일차적으로 규범이 아니라 기능과 결합되어 행동체계의 독립성을 달성했던 정치경제학은 이와 다르다. 정치경제학으로서 경제학은 우선 아직 사회 전체에 대한 위기이론적 관계를 고집하였다. 정치경제학은 어떻게 경제체제의 역학이 사회를 규범적으로 통합하는 질서에 영향을 행사하느냐는 물음에 관심이 있었다. 이로부터 경제학은 전문 학문분과로 분리되었다. 역시 경제학은 오늘날 경제를 사회의 부분체계로 이해하며 정당성의 물음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경제학은 합리성의 문제를 이러한 부분적 관측으로부터 균형경제적 고찰과 합리적 선택에 대한 물음으로 분해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학은 정치학과 경제학이 전문 학문분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감당했던 학문분과로서 발생하였다. 사회학의 주제는 고대 유럽사회의 틀 안에서 근대국가제도의 발생과 시장을 조절했던 경제체계의 분화가 야기했던 사회적 통합의 변화이다. 사회학은 무엇보다 전통적인 사회체계의 해체와 근대적 사회체계 형성의 아노미적 모습을 취급하는 탁월한 위기학문이 되었다. 이러한 출발조건하에서 사회학은 유일한 하부체계로 제한되어질 수 있었다. 아무튼 학문이론적으로 고찰하면 종교사회학과 법사회학은 새로운 학문분과의 핵심을 이룬다.

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파슨스(Parsons)가 제안한 기능도식을 인용할 수 있다면 사회과학적 학문분과와 사회적 하부체계 사이에 다음과 같은 상호관계가 자유롭게 유추된다.

경제학
A 경제
G 정치
정치학

문화 인류학
I 문화
L 사회적 공동체
사회학

A: 적응 G: 목적달성 I: 통합 L: 구조적 모법의 보존

물론 사회학 역시 사회적 통합을 위한 전문 학문분과가 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다루려고 하는 위대한 사회이론가들이 원해 사회학자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징후이다. 사회학은 사회과학 분과들 중 유일하게 전체 사회의 문제에 대한 관계를 보존하였다. 사회학은 항상 사회의 이론으로 머물러 있으며 따라서 합리성에 대한 물음을 다른 분과 분과들처럼 밀쳐 내거나 재정의 하거나 작은 형태로 분해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주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는 문화인류학과 사회학에 동시에 해당한다.

사회의 하부체계에 대한 근본기능을 배열하는 일은, 문화적 재생산과 사회적 통합과 사회화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영역 안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결코 경제학이나 정치학과 같은 행동의 영역 안에서의 상호작용처럼 특수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속이고 있다.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은 사회적 행동이 보여주는 전 스펙트럼과 대결하며, 정치적 권력획득을 최대화하는 문제나 이 권력을 취득하는 문제나 적용하는 문제의 관점에서 목적합리적 행동의 변형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분해된 행동의 유형과 대결하지 않는다.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은 생활세계의 맥락 안에 있는 일상적 행위와 관계하므로 상징적인 행동정향의 모든 형식을 관찰한다.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은 행동이론과 의미를 이해하는 해석의 정초하는 문제를 더 이상 그렇게 단순하게 제외시킬 수 없다. 이 때 두 학문은 기능적으로 보다 특수화되고 확실히 강하게 분화된 다른 부분체계를 정초하는 생활세계의 구조와 부딪친다. ‘생활세계’와 ‘체계’의 패러다임적 개념이 서로 관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단지 사회적 공동체와 문화에 관한 탐구가 경제적 부분체계와 정치적 부분체계의 탐구에서와 같이 그렇게 단순하게 사회과학적 근본문제와 생활세계적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이 사실은 사회학과 사회이론이 집요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