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 “경제와 사회” 요약2004/11/14 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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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

막스 베버는 사회학, 정치학, 법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의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한 거장으로 받아들여 진다. 베버에 따르면 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일반원칙들과 개념들을 정립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곧 베버는 사회학을 과학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뒤르켐이 우회하려고 했던 딜레마, 즉 개인들의 행위에 수반되는 주관적 인식에 대한 이해를 사회학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과제로 설정하였다. 다음은 그의 저서 중에서 “사회학적 지식의 백과사전”으로 이해되고 있는 [경제와 사회]에 관한 소개글로 국내 번역서의 역자서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박성환. 1997. “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와의 작별과 재회”. [경제와 사회 1]. 문학과 지성사. pp 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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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는 체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분야가 워낙 광범위해서 여러 학문분야로부터 수용의 대상이 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 지식의 백과사전적인 창고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학의 모든 가능한 영역을 망라하는 일반 사회학을 서술하는 것이 이 책을 기획한 베버의 목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목표는 한편으로는 인류의 역사가 노정해 온 상이한 경제의 형식과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문화적 연관의 제도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지배, 법, 그리고 종교 사이의 구조적 연관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었다. 베버는 특히 근대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근대 자본주의와 여러 가지 사회적 질서 및 힘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근대 사회와 인간의 운명을 성찰해보고자 했다. 더욱이 베버가 활하던 당시에는 경제학과 사회과학이 아직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은 채 전반적으로 동일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경제와 사회]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그 사이에 내적 분화를 거듭해 온 사회학의 한 분과인 좁은 의미에서의 ‘경제사회학’이 취급하는 영역을 훨씬 넘어서 있다. 물론 근대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시대적 의의에 걸맞게 ‘경제’라는 실제적인 생활 영역이 하나의 중심적인 관점으로서 전편에 배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베버 자신이 그의 다른 저술과 관련하여 [경제와 사회]에 어떤 지위를 부여하였는가, 그리고 미완성의 상태인 본문의 확정적인 형태와 배열 순서는 어떠하였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베버가 그의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1910-1920) 줄기차게 추구했던 중심적인 물음에 대하여, 즉 ‘합리성(또는 합리주의, 합리화)’의 문제에 대하여 이 책은 미완성의 단편이라는 형식적인 제약속에서도 일종의 체계적인 사회학적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버의 합리성이라는 개념은 근대의 서구 문화만을 설명하고 특징짓는 고정적인 범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이론적 및 실천적인 가치 기반은 근대 서구의 합리성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듭해서 강조하였다시피 합리주의란 상대적이면서도 역사적인 개념이며, 내부의 수많은 대립적 내용을 안고 있는 개념이다. 모든 문화와 시대는 제각기의 독특하고 고유한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합리성과 비합리성이란 가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잠정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논리다. 또한 합리화란 삶의 특정한 분야나 방향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여러 종류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사회 문화적인 발전을 담아내는 개념이다. 일사불란한 평행선을 그으며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그는 누누이 상기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이론적 합리성과 실천적 합리성, 형식적 합리성과 실질적 합리성 등의 구분은 인간 생활의 그와 같이 역동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적 도구였다. 따라서 베버의 합리화라는 개념은 거칠게 말하자면, 인간이 자신의 내적 및 외적인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공하여 시간적, 공간적으로 다양한 문화의 세계에로 가꾸고 다듬어가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베버는 합리주의, 합리화, 또는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다종다양한 성격의 세계 문화와 그 착종된 발전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일종의 ‘전망주의적 만화경’으로 유연하게 사용한다. 그리고 ‘합리성’이라는 아리아드네 Ariade의 실에 의지하여 세계사의 미로 속에서 인간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산출해내었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것을 사회학적인 이상형적 유형론 idealtypische Typologie의 형태로 우리에게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

오늘날 서로 이질적인 사회와 문화가 ‘근대’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무차별하게 뒤섞여지고 있는 현실을 두고 볼 때, 바로 인간의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삶의 역정을 개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진단하고 있는 [경제와 사회]는 이른바 ‘세계화 Globalisierung’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세계사에 대한 하나의 사회학적 지형학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며, ‘근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정신적 도구로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물이 그러하듯 [경제와 사회]도 우리가 그에게 다가가는 만큼만 스스로의 속내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경제와 사회]와의 의미 있는 만남은 결국 우리 자신의 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