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남북평화 물꼬 틀 한강하구 보셨소?” – 한 겨 레 김은옥 2008/08/14 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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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이시우 “남북평화 물꼬 틀 한강하구 보셨소?”
평화운동가겸 사진가 이시우씨 책 펴내

한승동 기자 이정아 기자

» 사진가 이시우(41·사진)

수원 미군기지 136만여발, 청주기지 93만여발, 오산기지 47만여발 등 모두 276만여 발의 열화우라늄탄이 주한 미군기지에 저장돼 있다. 이는 오키나와의 주일 미군기지가 보유 중인 33만여 발의 8배가 넘는다. 게다가 주한 미군은 수만 발의 열화우라늄탄을 관리 부실로 분실하기까지 했다.
탄약고 안 습기로 인한 부식 때문에 방사능 오염 가능성도 높다. 2005년 말에 이런 사실을 폭로하면서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평화운동을 하는 사진가 이시우(41·사진)씨다.

2003년 미 태평양사령부가 미국친우봉사회의 정보공개 청구에 응해 공개한 이 사실 자체에 대해 “당국은 지금까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2006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내가 폭로했는데, 일본에선 열화우라늄탄 반대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한국에선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열화우라늄은 핵무기나 원전 원료용 우라늄235를 분리 농축하고 남은 우라늄 찌꺼기다. 강력한 밀도 때문에 관통력이 뛰어나 전차포탄, 철갑탄, 장갑재료로 사용된다. 열화우라늄탄이 금속을 관통할 때는 폭발하면서 다량의 방사능 함유 미세분진들을 뿌리는데, 백혈병을 비롯한 암 등 건강장애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한강하구-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통일뉴스 펴냄)이라는 두툼한 책을 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의 한강 하구 역사와 생태 등을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고 설명했다. 특히 군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강 하구는 정전협정상 민간인 통행이 가능한 해방구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통행을 허가하고 불허할 권한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북한군 역시 마찬가지다. 민간인들이 허가 없이 배로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한강 하구를 남북 통일, 나아가 유라시아 평화를 도모하는 소재, 강요당한 지금의 유라시아체제 중심을 흔들 수 있는 소재로 활용하고 싶었다.” 그는 2000년 민예총, 문화연대와 함께 ‘한강 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벌였고 2005년부터는 이 행사를 매년 개최해 지난 7월27일(정전협정 체결 기념일)까지 모두 네 차례 열었다.

그는 “강화도 외포리, 창후리에서 배를 띄워 한강 하구 쪽으로 가는 이 행사에 대한 반응은 굉장히 좋다”며 “한 배에 300여명이 타는데 가족 등 포함해서 참여자가 모두 수천명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권한 없는 국방부가 자의적인 어로한계선 ‘수칙’과 안전을 이유로 문제삼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국방부의 간섭이 오히려 불법이다. 올해 안에 이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그는 책 원고를 감옥에서 먼저 탈고했다. “원고를 마지막으로 다듬어 감옥 밖으로 발송하려고 서두르고 있을 때 뜻밖에도 보석 출소한다는 통고를 받았다. 원고를 안고 (2007년 9월14일) 서울구치소 문을 나섰다.”

감옥이라니? “2004년에 유엔사 초청행사 때 그곳 경비대 탄약고를 구경했는데, 거기에 노란색의 화학무기 표시가 붙어 있는 무기들을 봤다. 그걸 촬영한 뒤 공개해도 좋다는 유엔사 공보관의 허락을 받고 또 미 대사관 공보관의 괜찮다는 대답까지 받고 공개했는데, 난리가 났다. 그 뒤부터 취재 신청을 해도 안 된다는 답이 왔다. 아마 그때부터 ‘수사’라는 걸 시작해서 열화우라늄탄 폭로까지 포함한 혐의들을 착착 만들면서 잡아넣을 준비를 한 것 같다.”

그렇게 해서 2007년 3월19일 붙잡혀 들어간 그가 뒤집어쓴 ‘범죄혐의’는 국가보안법, 군사시설보호법, 해군기지법, 군용항공기지법 등 무려 28가지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국가보안법의 백과사전이라고 했다.” 그런데 2008년 1월 서울중앙지법 제17형사부(재판장 한양석)는 그에게 몽땅 무죄를 선고했다. “그 때문에 ‘판사님이 좌익판사’라는 우익들의 공격에 시달린다는 얘길 들었다.”

86학번인 이씨는 “6월항쟁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체험, 역사의 한가운데서 맞이한 놀라운 경험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노동운동에 가담해 고초를 겪기도 한 그는 비무장지대의 미군기지와 지뢰 현장 등을 찍으면서 ‘본업’인 사진작업을 비로소 제대로 시작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