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예운동론2001/10/26

통일문예운동론

통일
통일의 목표 – 강화도에서 얻은 교훈
책으로 읽는 강화도와 직접 보고 느끼는 강화도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느책이고 강화도는 투쟁과 항전의 땅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종이 위에 그려놓은 허상이 아니라 역사라는 점에서 깊이 공감되는 바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번 가본 강화도에 가서 느끼고 오는 것은 강화도의 역사와 항상 반대의 것이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밟히는게 유적지요 전적지인 강화도에서 민족의 강인한 투쟁정신을 찍지 못하는 것도 미안해 해야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진 찍는 사람에게 강화도는 참으로 사진 찍기 어려운 곳으로 찍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일사진기행에서는 강화도를 두 번째 촬영지로 잡았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거기에 마니산 참성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민족정신의 뿌리를 확인 하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흐지부지 포기한 일을 ‘해야한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선 강화도 공부를 다시 해야했습니다. 뭔가 놓친게 있기 때문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각자 공부한 내용과 경험을 다 쏟아 놓고 맥을 잡아 갔습니다. 정말 보지 못한게 있었습니다. 그토록 치열한 투쟁과 항전의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왜 그런 투쟁과 항전을 시작했을까? 투쟁과 항전의 출발과 목표가 일치한다는 생각에 미쳐서야 숙연한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평화 였습니다. 평화는 강화도의 역사의 흔적과 그와는 정반대의 천연덕스럽게 쾌청한 하늘과 자연을 모두 납득시킬만 했습니다. 강화는 투쟁과 항전의 정서를 뛰어넘는 원초적 평화의 정서를 갖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은 그 엄청난 상처와 시련을 모두 포용하는 평화와 원융의 상징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약한 감상적 평화가 아니라 피빛 진흙 구덩이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평화, 수단으로서의 평화가 아닌 궁극적 목표로서의 평화, 이것이 바로 강화도가 통일을 앞둔 우리 민족에게 던져주는 잔잔한 이야기였습니다. 통일은 민족운명체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민족운명체는 평화로부터 평화를 향하여 발전합니다. 평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일 때 그 또한 의미 있습니다.간혹 통일의 목표가 발전과 성장이라고 생각해서 다른나라보다 앞서고 때론 지배라도 하기 위한 조건인 것 처럼 생각하는 국내의 국수주의자나, 우리의 평화가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중국,미국등의 실용주의자의 태도는 평화를 목적으로 보지 않고 수단으로 보는데서 비롯됩니다. 평화는 평등과 조화입니다. 평등은 자기를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기준으로 자기를 낮추는 것이며, 조화는 둘이 한곳을 바라보고 하나가 되어 걸어가는 것입니다. 평화야말로 주체가 주체답게 발전할수 있는 지향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효의 화쟁사상이나 조선조 유학자 기정진의 원융사상은 참고되는바가 있습니다.
* 화쟁(和爭)사상 : 원효의 시대는 중국의 불교이론이 물밀 듯이 수입되던 시기였고 그로부터 여러 당파가 만들어져 대립논쟁하던 시기였습니다. 원효는 이를 통일하기 위하여 당시 모든 불교이론을 전체적 입장에서 이해하여, 언뜻보기에 대립적이고 모순되는 이론들의 각각의 가치를 밝혀주고 그것들이 하나로부터 비롯됨을 깨닫게 했습니다. 원효는 서로 달라보이는 모든 것도 일심(一心)으로부터 비롯되므로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으며, 말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자기의 집착을 버리는 태도를 가지면 대립과 다툼을 지양하고 화쟁할수 있다고 했다.
* 원융(圓融)사상 : 조선조의 유학자 기정진은 현상과 본질은 둘이 아닌 하나의 원리 즉 일리(一理)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고 수많은 다양성과 복잡성이 융통성있게 조화되어 하나로 일치된다는 원융사상을 폈다.
2. 통일의 관점
우리는 사람과 관계 맺을 때 4가지 태도를 갖습니다. 추종하기, 배려하기, 눈치보기, 무시하기가 그것입니다..추종하기는 내가 나를 버리고 상대방과 동일시할 때 생깁니다. 눈치보기는 나를 버리지도 상대의 주체를 인정하지도 못하는 긴장속에서 생깁니다. 배려하기는 나의 주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주체도 인정하며 연대를 통해 주체를 실현하려 할 때 생깁니다. 무시하기는 나의 주체만 인정하고 상대방의 주체는 인정하지 않을 때 생깁니다. 그러나 이중에서 추종과 무시는 결국 비주체화란 점에서 뿌리를 같이 합니다. 추종은 동일시하려는 자아의식이 너무 강해 주체를 포기한 일방적 의존이란 점에서 그렇고, 무시는 자신의 주체를 실현할 대상과의 관계가 단절된 자아의식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는 추종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또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주체를 포기한 추종은 과거에는 신 때문에 사람을 버리게 했고,근대에는 돈 때문에 사람을 버리게 했으며 현대에는 문화 때문에 사람을 버리게 합니다. 이런 자리에 사람 사랑이 존재 할 리 만무합니다. 눈치는 주체화를 실현할 수 있는 상태라는 긍정성과 언제든지 비주체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주의라는 부정성이 혼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루는 배가 나온 상사한테 ‘그것도 인격’이라고 말해서 ‘그래도 자네 밖에 없어’하고 칭찬을 들었는데, 다음날엔 ‘아니 자네 날 놀리는 건가?’ 하고 꾸중을 듣습니다. 눈치가 없어서 나의 주체가 무시 당하든 눈치껏 해서 나의 주체를 인정 받든 그 차이는 크지만 눈치 보는 상태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은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눈치보기는 나의 주체에 대한 확신과 대상 주체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체에 대한 확신과 대상에 대한 믿음이 충만한 상태는 오직 배려하기 밖에 없습니다. 배려하기는 대상과의 연관 속에서 나의 주체를 발견하고, 확대 실현 하기 위해 대상과 연대하게 합니다. 나의 발전이 곧 대상의 발전인 상태. 이것을 일컬어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그래서 주체의 발견과 성장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이 전제 되었을 때 눈치와 무시는 배려가 되고 추종은 존경이 됩니다. 사랑은 그래서 나를 개조하고 세상을 개조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개조하는 유일한 혁명입니다.

3. 통일의 본성

사랑과 평화가 통일의 관점과 목표라는 점을 얘기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물이 운동하는 것은 관점과 목표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강물은 강가의 바위와 무수히 부딪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흘러갑니다. 그러나 강물이 그럴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곳으로 모이려는 본성 때문입니다. 본성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모든 사물이 운동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본성과 맞으면 화합하고 본성과 맞지 않으면 대립 투쟁합니다. 본성은 사물의 다양한 속성중에 가장 본질적인 속성을 말하며, 사물의 질이 되는 공고한 틀 입니다. 우리를 통일로 지향하게 하는 본성은 개인의 운명이 곧 민족의 운명이라는데 있습니다. 민족이 운명공동체라는 본성으로부터 분단이 민족운명체의 본성을 실현하는데 질곡이 되기에 분단상태를 극복하려는 것이며, 통일이 민족의 본성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란 점에서 통일조국을 건설하려는 것입니다. 북한의 물피해로 인한 농업기반의 와해는 남한의 농업이 회생할수 있는 상생구조가 와해됐음을 말하며 남과 북은 현재의 상태대로라면 식량무기를 앞세운 선진제국의 하부구조로 편입되는 고통을 감수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핵공방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에서 만일 핵이 터지면 남한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북의 운명은 곧 남의 운명입니다. 분단의 피해는 둘의 힘이 하나로 분열된데 있는게 아니라 하나조차도 제힘을 내지 못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반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동해에 있는 배는 서해로 갈수 없습니다. 배한척이면 다 될 수있는 일도 반드시 두척이 있어야 합니다. 분단은 민족역량을 반감시키는게 아니라 소멸시키는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민족애와 민족자주의식을 기반으로 운명공동체로서의 민족을 회복하고 실현하고자 하는데 통일운동의 본성이 있습니다.

통일문예란

‘통일은 민족 문예가 전국적 차원에서 발전할수 있는 조건이며, 통일문예란 통일의 시대에 제기된 민족문예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문예에 관한 많은 개념 정의가 있습니다. 진보문예,노동문예등등. 과학적 정의는 우선 다른 것과의 연관성과 아울러 독자성을 밝혀야합니다. 노동문예가 문예의 담당주체를 기준으로 한 개념이라면, 진보 문예는 문예의 발전 단계를 기준으로한 개념이다. 통일 문예는 과제를 기준으로한 개념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기준으로 연관되어 있는가가 그 개념의 독자성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독자성만으론 그 대상을 정할 수 없고 가장 근접해 있는 유(類) 개념과의 연관성이 밝혀져야 합니다. “사과는 씨가 있는 과일이다.”와 같이 통일 문예의 최근접 상위 개념은 민족 해방 문예입니다. 그러나 민족 해방 문예는 과제를 기준으로 한 종(種) 상위 개념이며 유(類)의 개념은 아닙니다. 역사, 담당주체, 과제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상위 개념은 민족 문예가 됩니다. 통일 문예의 민족 문예와의 연관으로부터 통일 문예에 대한 과학적 정의는 통일의 시대에 복무하는 민족 문예의 시대적 과제로 됩니다. 과학적 정의는 또한 대상의 근본 특징을 표현해야 합니다. 통일 문예의 근본 특징을 밝히기 위해서는 민족 문예에서 통일 문예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옳게 밝혀야 합니다. 민족 문예가 역사적인 개념인만큼 통일 문예 또한 역사적 개념입니다. 민족 문예는 구체적 시대의 규정 속에서 발전되고 풍부화 됩니다. 통일 문예는 통일이 시대의 가장 규정적인 요인으로 되는 통일의 시대에 민족 문예의 가장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지위로부터 통일 문예는 민족 문예가 전국적 차원에서 통일적으로 발전된 조건을 마련하는 역할을 합니다. 통일 문예는 통일의 시대 이후 새로운 조국의 변혁 시대까지 민족 문예의 가장 중요한 이름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의에 기초하여 통일문예의 구체적인 실체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한 대상을 올바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구조적, 기능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체계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역사는 체계의 발생발전 과정으로 ,구조는 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역동적인 관계로, 기능은 통일문예체계가 다른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으로 파악됩니다. 이글에 적용된 방법론이 체계적 방법임을 미리 밝힙니다.

2. 통일 문예 운동의 역사적 과정
한 대상의 근본 특징은 구조 분석을 통해서 파악될 수 있지만 모든 사물을 운동하므로 구조의 시간적 형성 과정, 즉 역사를 해명함으로서도 파악됩니다. 분단 이전 민족 문예는 비판적 사실주의와 일제 시기 애국적이고 혁명적인 문예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으로 하여 북에서는 주체적 사실주의의 단계로, 남에서는 진보적 사실주의의 단계로 각각 발전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우선 분단 이전 민족 문예가 도달한 성과와 한계를 밝히는 것은 통일 문예의 발생을 이해하는데 전제가 됩니다.
서구의 근대를 형성한 두축을 과학을 기반으로한 합리화와 혁명을 기반으로한 주체화로 보기도 하고, 기술의 근대성과 해방의 근대성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대국가의 발전 결과가 제3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나타났을때는 주체화와 해방적 근대성은 후퇴하고 합리화와 기술적 근대성이 근대 국가의 중심을 차지한 상태였습니다. 실학문예의 높이가 아무리 높은것이라 해도 합리화와 기술적 근대성만을 중심으로한 이상 진정한 근대문학으로 보기 힘든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갑오농민전쟁을 통해 저항과 해방의 주체가 형성된 연후에라야 우리의 문예사에서 근대성을 발견할수 있게됩니다. 서구의 근대운동이 봉건 지배세력에 대한 저항을 통해 시민계급이란 주체를 발견했다면 우리나라의 근대운동은 서구 제국에 대한 저항을 통해 민족이란 주체를 발견했습니다. 서구에서 민족이 지배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이었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민족은 지배에 대항하는 역사적 주체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조선 말기 새로운 문예의 발생과 발전을 규정한 시대정신은 민족정신 이었으며,그 구체적 내용은 반외세 자주 의식, 반봉건 민주 의식, 민족 대단결의식 입니다. 우리 나라 특유의 역사 상황에서 발생 발전하고 구체화된 정신을 밝히는 것은 문예에 반영된 시대 정신의 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가 서구 시민혁명의 전취물이라면 우리나라 근대 민족의 전취물은 자주 민주 민족대단결의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말기의 문예가 높이 평가됨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의 창작적 높이에는 미달되는 것입니다.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민족 문예는 주체화 또는 해방성의 표현인 카프나 항일투쟁문예등 애국적, 변혁적 문예물에서 그 진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은 주체화 뿐아니라 합리화조차 억압하는 폭압적 지배구도를 만들어 냄으로써 근대성조차 크게 후퇴시키게 되고 오히려 전근대로의 회귀상태를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이처럼 민족 문예의 발전 성과는 남과 북의 단절 상태에서 기형적으로 발전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단계를 넘어 주체적 사실주의로 발전됐다고 하는 북한 문예의 성과가 남한문예에 공감되지 못하고, 다양성 속에서 진보적 사실주의 수준으로 발전한 남한 문예의 성과가 북한 문예의 성과로 되지 않는 조건에서 민족 문예 건설의 최대 과제는 분단 문예의 극복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남북 문예 공통의 목표는 민족 자주성을 회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것, 역사적으로 합의한 통일의 원칙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정신에 기초하여 민예총 황석영과 문예총 최영하 사이에 서명된 합의서(1989년 4월 23일)에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쌍방은 문예할동을 통하여 조국을 자주적,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통일하기 위한 성스러운 민족적 위업에 적극 이바지하며 나라의 분열을 영구화하고 민족의 단합을 해치는 모든 행위를 반대하는 것은 북남 예술인들의 가장 중요한 민족적 임무로 한다.” 여기서 명백히 밝힌 바와 같이 통일적 민족 문예의 시대적 과업은 7.4 남북 공동회담에서 밝힌《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 하에 민족 문예의 개념을 밝히고 통일 문예를 건설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90년대 남북문예가 도달한 지점은 창작내용과 문예정책의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창작내용의 측면에서 보면 민족운명공동체라는 통일의 본성이 그 중심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90년대 문예의 최대 성과로 자평하는 다부작영화 ‘민족과 운명’(김정일이 ‘내사는 내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노래를 영화로 만들라는 교시에 의해 만들어 짐)입니다. 핵심 종자는 ‘민족의 운명은 나의 운명’으로서 민족의 운명이 해결되지않고 개인의 운명이 해결될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개인의 운명문제와 민족의 운명문제에 대해 심오한 철학적인 해답을 줌으로써 세계사적으로도 현 시대정신을 가장 정확히 표현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한에서 90년대 문예의 최대 성과로 평가되는 태백산맥과 아리랑 또한 민족의 운명문제와 개인의 운명문제에 대한 주제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민족 운명 공동체라는 통일문예의 본성적 내용에 남북이 공히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운동의 발전을 반영하며 현실의 발전 법칙이 문예에 반영된 결과로 보여집니다.창작내용의 측면에서 앞으로 남은 과제라면 북의 수령중심의 민족관과 이와는 다른 남한의 민족관이 어떻게 교류,발전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둘째, 문예정책의 측면에서 보면 문예의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자는데서 고옹적 지향을 발견합니다. 남한 문예에서야 세계화다 뭐다 해서 이미 두말할 필요 없는 것이지만,북한에서도 70년대 속도전에서 실력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속도전이 어떻게 하면 창작주체들의 역량을 집중해서 당정책을 속도있고 체계있게 인식 교양 할 것인가에 방점이 있었다면 실력전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작가 예술인으로 될 것을 지향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개념으로 쓰고 있습니다.이런 점에서 남북만이 아닌 국제적 문예역량 교류의 장을 만드는데 서로의 관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이런 점에서 선진 제국의 북에 대한 정치적 봉쇄정책을 어떻게 완화시킬것인가도 이부분에서 남는 과제입니다.
이와함께 주목할 것은 본격적인 통일 운동의 발전 과정 속에서 쌓여진 성과들입니다.오월대, 완전한 만남, 통일행사때 선보인 집체 창작물등은 이는 담당 주체의 면에서 보면, 몇몇 예술인들에서 통일 운동에 참여한 각 대중 조직의 문예패들로 거대한 확대가 이루어졌고, 작품 내용의 질적인 면에서도 단절됐다고 생각했던 민족 문예의 전통을 다시 복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북한 바로알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북한 문예의 소개는 남한 문예에 적잖은 영향도 끼쳤고 본격적인 통일 문학비평의 소재가 되었습니다.또한 창작방법의 면에서도 조직창작법등의 괄목할 성과가 있었습니다. 조직창작법은 서로 다른 체제와 경험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남북이 민족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공동의 창작적 성취를 이룰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것이 아닐수 없습니다.노래 ‘통일의 길’이나 문예총과 민예총이 가사와 곡을 분담하여 만든 ‘잡은손 굳게 잡고 통일합시다’등 아직 확고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통의 지향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큰 성취가 아닐수 없습니다.

4. 통일 문예 운동의 구조
통일 문예가 민족의 운명문제를 생생하게 그림으로써 통일에 이바지 한다는 본성으로부터 통일문예운동이 성립됨을 깨달은 것이 80년대 문예운동의 성과였습니다. 통일문예의 본성이 밝혀진 조건에서 좀더 구체적인 고민으로 제기 된 것은 이러한 본성을 만들어 내는 구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통일 한마당 등을 통해서 생산된 생활글, 집체적 문선, 대중적으로 기획된 통일 한마당 자체가 그렇고 지역에서 시도된 통일마술, 경당, 통일 덩달이 시리즈, 통일뱀장사, 약장사 등 거리 문선과 그것의 총화로 나타난 전야제등의 행사에서 보인 대중문예 성과물들을 어떻게 봐야 할것인가? 소박한 민중 창작일 뿐인가 아니면 기존 창작의 구조를 변화시킬 새로운 구조의 변화인가하는 점입니다. 결론은, 후자로 나타났습니다. 그 증거로 통일을 염원하는 택시운전수가 쓴 ‘서울에서 평양까지’가사가 민중의 정서에 민감한 작곡가의 손에 의해 발굴되어 명곡으로 만들어 지고 제도문화권으로 훌륭하게 진출한 것과 같은 사례가 그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주체화 과정의 열정으로부터 창조된 투박하지만 진솔한 정서의 창작물들이 민족의 운명을 노래하는 대작으로 어떻게 발전되는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창작뿐아니라 조직, 이론, 교육,비평,정책등이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구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문화적 체계입니다.
예술이라는 체계는 창작과정-작품-감상과정을 기본구조로 합니다. 그러나 대중이 조직적인 창작주체로 나서고 있는 현대에 있어서는 창작과정과 감상과정은 결코 일방 통행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보의 개념에서 등장하는 쌍방향의 범주에서 그 실체가 더 잘 파악 됩니다. 수백명의 대중문예패들이 연행예술분야에서 개척한 창작 분임토의와 총회과정은 설계도를 그린 작가나 연출가의 의도대로 재현하는데서 벗어나 창작의 과정,과정마다 시연(시뮬레이션)해 보고 감상토론을 진행하면서 추창작의 경험을 하게됩니다. 이러한 쌍방향 과정은 자칫 창작이 해체되는 과정으로도 될 수 있으나 뚜렷한 작품핵의 존재는 방향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창작주체인 대중문예패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최대로 발양시켜 일종의 창작적 해방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창작과 감상의 역동적인 상호연관 과정에는 조직활동,교육활동,비평활동등의 눈부신 활약이 전제 되었으며 이는 다양성과 집중성이 주체화를 중심으로 통일되는 가히 원융(圓融)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란 체계는 창작적 주체의 새로운 조건을 맞아서 운동적 본성을 드러내는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예술문화라는 체계입니다. 예술 문화라는 체계는 인간의 인식 개조 활동이 예술을 중심으로 짜여진 체계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인식 개조 활동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개조 활동 : 주체가 세계를 변혁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자연을 변혁해 가는 노동과 사회를 변혁해 가는 사회적 실천이 있습니다. 경당이나 택견은 자신의 체력을 개조하는 활동입니다.
2) 인식 활동 : 주체가 세계의 연관에 관한 정보를 획득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3) 가치 활동 : 주체가 가치 체계를 만들어 내고 자신에 대한 대상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4) 소통 활동 : 주체가 주체와 교제, 교환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여기엔 언어와 사회 문화 속에서 형성된 기호 체계가 이에 속합니다. 덩달이 시리즈, 상징 몸짓등.
5) 예술 활동 : 앞의 네 가지 활동이 혼합되어 있다는데 질적 고유성이 있으며, 모든 인식 개조 활동을 묘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앞에서 본 예술 체계 속에 포함될 때 각각의 활동은 예술적 활동으로 됩니다. 경당이나 택견이 자기 체력을 개조하기 한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진취적인 기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때,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작품의 내용으로 전화 될 때, 정치적 활동이 예술의 이데올로기적 내용이 되어 00 하자는 방향을 가질 때, 덩달이 시리즈 같은 기호 체계가 일정한 내용을 가지고 일관된 예술 형식으로 들어올때(통일한마당판에서 통일로 글짖기를 하랬더니 통 일은 안하고 고민만 하고 있어요/연방제로 글짖기를 하랫더니 연방 쟤는 하품만 하고 있어요) 예술체계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러한 분석틀을 제기하는 요점은 예술의 영역과는 다른 문화적 현상으로로만 보게되고, 그결과 예술활동을 중심으로 그 성과가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활동의 한 기법으로 전락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중의 자주적 요구속에 피어나고 있는 새로운 예술형태를 조직적으로 발전시켜 낼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활동이 어떻게 예술문화속으로 들어오는가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개조할동은 예술적 생산으로 들어옵니다. 노동이나 투쟁,체육활동 자체가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창조되는 영역으로 예술문화에 들어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문예일꾼들을 묶는 조직 활동입니다. 통일문예운동을 담을 조직형태는 남북해외동포를 모두 포괄할수 있는 전민족적 문예조직체가 될 것입니다. 예술적 생산을 전민족차원에서 지휘하고 관리 할수 있는 조직건설의 방향을 가지므로 해서 통일문예운동의 안정적 조직기반을 구축할수 있을 것입니다. 인식활동은 예술에 관한 과학적 탐구로(조직창작론 ,문예운동론) 들어옵니다.특히 중요한 것은 통일문예운동론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후 통일문예일꾼들이 장기적으로 나아갈 나침반이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치활동은 예술현상에 대한 판단 주로 ,비평으로 들어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통일문예 3대원칙에 저촉되는 모든 이론 ,실천적 행위들을 비평,반대하는 것이며 이는 남북 예술인들의 숭고한 임무입니다. 첫째,민중예술과 민족예술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경향에 대해 반대 해야 합니다. 80년대 초 민족문학 주창자가 <계층적 성격이 일단 좀 흐트러지더라도 민족문제를 우선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논리는 노동자의 주도적 역할을 흐트러 지게 한데 그 잘못이 있습니다. 민중문예와 민족문예의 상호관계는 자주,민주, 통일을 하나의 통일된 과제로 해결하는데 복속된 관계인 것입니다.
둘째, 제국주의 문화 침투에 반대 해야 합니다.
셋째, 자연주의를 극복해야합니다. 자연주의는 통일문예 건설에서 복잡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주의를 곧 사실주의로 본다든지,자연주의를 사실주의의 저급한 단계로 본다든지, 솔직하기 만하면 지향이 어떻든 문제 삼지 안는다든지,저명한 평론가에 의해 자연주의의 미덕을 수용하자는 견해가 나오는등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연주의는 문학창작상 ,기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적 세계관에 의한 창작방법이란 점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주의는 현실의 평면적 묘사로의 재현, 현실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것의 식별에 전혀 무능할 뿐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을 확대 재생산 한다는 점, 현실 변혁과 개조의 적극적 낭만주의가 없다는 점등에서 사실주의와 대립된다.
우리는 민족예술의 완성의 견지에서 민족문예의 전지적 성숙을 논한다거나 <자연주의의 과학주의가 불완전하게 나마 내포하고 있는 인간 해방정신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좀더 확실히 모색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수긍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자연주의 작품이 일부 <개성옹호>사상을 가졌다고 그것을 인간 해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소통활동은 예술적 소통,소비로 들어옵니다. 북한 바로 알기 사업의 일환으로 소개된 북한 문예물은 단절된 채 발전되어 온 민족문예의 전통을 확인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야 했습니다. 통일운동 전체에 의해 주도된 북한 바로 알기 사업을 문예단위에선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소개할 문예잡지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되고 있습니다. 예술활동은 두말할 필요없이 창작물로 작품으로 예술문화속에 들어옵니다.
실제로 대중적 통일문예운동을 올바로 안내하기 위해서는 통일예술문화 전체로 연구하는 차원에서 창작에서부터 평론, 문예과학,문예유통,정치가 유기적으로 배치되고 조직되어야 합니다.

5.통일문예운동의 기능

기능이란 사람을 인식 개조 활동의 주체가 되게 하는 체계의 능력입니다. 통일 문예 운동의 기능은 통일 운동에서 사람을 주체가 되게 하는 통일 문예 운동 체계의 능력입니다.
소통적 기능 : 남북의 이질화된 정서적 단절감을 극북하는 역할을 합니다. 체육이 타국과의 경쟁이란 상황에서 민족을 하나의 정서감으로 묶어어준다면 예술은 언제나 그것을 가능하게합니다. 체육이 보는 것으로 제한된 반면 예술은 직접 참여함으로써 더 큰 민족 대단결의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주체 통일문예운동의 기능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양적 기능 : 남북에 대한 올바르고 정확한 지식을 얻는데서 문예는 과학이나 역사적 지식이 주지 못하는 정보를 줍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객관적 지식뿐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람의 태도, 관계,감정, 사상,의지등을 전해 주기 때문에 훨씬 풍부하고 살아 있는 지식을 줄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한을 소개하는 이론서나 구독률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비해 아직도 북한 소설이 일정한 구독률을 갖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자질을 높이는 것이 교육이라면 예술은 윤리나 정치, 법률과 같은 분야에 비해 더 풍부한 자질 향상의 계기를 줍니다. 통일 교육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래서 당연히 제고돼야 합니다.
조직적 기능 : 통일문예의 본성상 통일문예조직은 남북 해외의 전민족적 통일문예전선체로 지향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경로나 상이야 어떻든 통일의 과정이나 통일국가의 초기 단계에서 자칫 분단 이전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생길 때 통일문예조직은 민족적 이익을 앞세워 정권의 이익을 조직적으로 압박해 들어가는 기능을 하게 될것입니다.이를 위해서는 한국차원에서의 통일문예조직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통일문예운동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뭔가 될 것 같을 때 너도 나도 나섰던 사람들이 이제는 많이 지쳐있고 힘빠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경제분야처럼 이익이 크게 점쳐지지 않는것도 사실입니다. 환경이나 자치는 장사가 잘되지만 통일은 장사가 안된다는 푸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통일문예라는 화두를 놓지 않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 이길은 믿음직합니다. 우리는 서로에 의지할 뿐아니라 과학적 나침반을 마련해야 겠습니다. 이글은 그를 위한 시론적 글입니다.그래서 맺음말도 “통일문예운동론을 만들자” 입니다.

문학예술청년공동체기관지 사과꽃 게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