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예운동론2003/01/14

지역문예운동론

-지역본성론과 비무장지대의 세계평화문화지대화를 위한 구상-

1. 지역문제
지역은 민주화 운동시기, 독재권력과 싸우는게 모든 것의 중심이었을 때는 즉자적인 대상이었다. 지금의 지역은 이미 존재하던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한다. 재야세력의 지역운동도 스스로 주도하는 운동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개념이다. 그러나 행정구역은 역사적으로 정착된 생활터전과 일치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들면 광주와 담양은 행정구역은 분리되어 있지만 자연환경과 역사와 문화의 면에서는 분리가 불가능한 지역이다. 지역운동도 기존의 행정구역에 의존하는한 목적의식적이고 전략적 관점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지역운동에서 민족문제의 맹아를 발견하긴 했는데 더이상 발전되지 않는 경우라든지, 경상도의 노동자들이 평소엔 투쟁적이다가도 선거때만 되면 경상도 지역 대통령 후보를 찍는다든지 하는 것은 지역운동의 자생성이 갖는 부정적 현상들이다. 지역운동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매년 5월이 오면 이루어지는 경상도 노동자들의 광주 망월동 묘역 참배이다. 패권지역인 경상도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인 노동자가 소외지역인 광주를 찾아 저항적 지역주의를 계승하고 광주지역과 연대하는 행사가 바로 5월 망월동 참배 문화이다. 이 전통은 지역분권주의, 자치주의가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는 자생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민주화로 상징되는 전라도의 저항적 지역주의에 대한 타 지역의 연대가 광주기행을 만들어 냈다면, 분단극복으로 상징되는 강원도의 소외된 지역주의에 대한 타지역의 연대 가능성은 분단기행에서 찾을 수 있다. 광주기행과 분단기행의 차이라면 광주가 현대의 시점에서 최초의 저항적 지역주의를 실체로서 간직하고 있다면 철원등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은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만일 철원에 광주같은 저항적 지역운동의 역사가 있다면 기행만 하고 돌아오진 않을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 보면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강원도를 포함하는 비무장지대 (또는 중립지대)접경지역은 생활상으로는 거의 유사한 문제를 갖고 있다. 군사적 이유로 개발이 제한되고 유민문화가 형성되고, 인접도시나 대도시의 상수원 보호등을 이유로 각종규제에 묶여 있고, 지뢰나 폭발물에 의한 직접적 피해지대이다. 이런 이유로 이 지역은 한국에서 가장 소외 받은 지역이 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분단 때문이 아니라 분단을 이용한 지역 패권세력이 이 지역을 최하층의 소외 지역으로 수직 배치한 결과이다.
이런 이유로 비무장지대와 그 접경지역을 보는데 있어서는 좀더 정교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2. 지역본성론을 제안한다.

1) 지역의 정의
지역은 공간이다. 한축으로는 정치,경제,문화의 통합체계이고 또 한축으로는 그것의역사,구조,기능이 총체화 되어 있는 공간이다.
우선 공간을 이야기해 보자. 첫째로 생리적인 공간이 있다. 화장실은 아무리 집단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하더라도 혼자만의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다. 생리적 공간이 침해 당하면 개인의 원할한 생리활동이 침해 당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대인적 공간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공간이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을 보면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는 것을 볼수 있다. 마치 전기줄에 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 또한 사람마다 개인의 장(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인적 공간은 문화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우리의 지하철을 보면 기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기둥을 등지고 바깥쪽을 향해 보도록 되어 있다. 원심력적인 공간이다. 이에 비해 옛날의 멍석문화는 서로가 마주 바라보고 앉도록 되어 있다. 구심력적인 공간문화이다. 지하철의 기둥의자는 개인간의 공간을 최대로 확장시키고 서로 간의 간격을 벌여 놓는데 목적이 있다. 멍석은 개인간의 공간을 최소화 하고 서로간의 간격이 쉽게 허물어 지도록 되어 있다. 기둥의자와 멍석의 공간문화가 수평 비교 될 수는 없다. 억지로 개인적 공간을 없애버리려고 하면 공공연하게 대인간의 긴장과 투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취할 때 동료니까 꺼리낌 없이 같이 살자고 약속하고도 서로간의 생활 습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갈라서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자주 본다. 전후 독일에서는 복구기간 동안 몇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도록 하였다. 그러나 화장실이나 목욕탕을 같이 쓰는 문화가 부족했던 이들에겐 빈번히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이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사람들은 사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 정치적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셋째, 향토적 공간이다. 단일한 문화를 갖는 마을과 이질적인 문화를 갖는 마을간에는 맺어지는 관계에 따라 사회적 공간의 성격이 달라 진다. 봉건시대의 공간은 지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평지를 따라 다니기 좋은 곳으로 길이 나고 바위나 산에 막히면 돌아가고 하는 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풍수지리는 봉건시대의 공간관을 대표한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신작로가 생기며 이런 공간은 파괴 된다. 신작로는 전통적인 마을사회의 공간을 해체하고 파괴한다. 공간 끼리의 긴장이 생기고 이는 곧 정치적인 문제로 되었다.
넷째, 지역적 공간이다. 이는 행정구역을 훨씬 뛰어 넘는 공간이다. 영남, 호남, 서울로 나뉘는 이들 공간에 우리는 익숙하다. 나머지 군소 지역은 이 공간에서 정치적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 정치적 문제로서의 지역갈등, 지역문제는 이 차원에서 일어난다. 유럽의 지역주의(regionlism)는 이 지점에서 향토주의(localism)와 구별된다. 우리나라의 영호남 차별주의야 말로 전략적 의미에서의 지역문제이다. 정권차원의 통치행위가 민족의 문제든, 민주의 문제든 지역차별적 구조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의 대한정책은 모든 지역에 똑같이 적용된 게 아니라 차별 적용되었다. 98년 이전까지 거의 영남 재벌만을 만들어 냈고, 영남 정권만을 만들어 냈다. 이 구조를 깨기 위한 전략이 정권 교체론이었다. 각주1)
지역주의니 님비니 하는 현상은 공간을 둘러싼 심각한 정치 투쟁을 반영한다. 이제 사람들은 지역을 살아있는 유기적 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따라서 노동자에게도 사업장이 속해 있는 지역이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은 유기적으로 연관되면서 자신의 생활을 규정한다. 지역은 단순히 노조파업때 주민들의 호응도를 이끌어 내거나 유지하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역은 이처럼 중층적의미를 갖는 공간이므로 지역을 단순히 생활터전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공장도 학교도 모두 생활 터전이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가 지배하는 생활 터전인가가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역은 문화공간이다. 지역은 형식적 본질에 있어서 있어서 공간이다. 그러나 지역은 반드시 내용을 가진 공간이다. 지역은 자연과 역사와 문명의 통일을 그 내용으로 한다. 자연은 생활의 조건이고, 역사는 생활의 과정이며, 문명은 생활의 결과이다. 이들은 최종적으로 문화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지역은 문화공간이다. 한편 문화는 정치적 지배권의 행사에 따라 규정된다. 지역자치가 자치권력과 거의 같은 뜻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역은 정권이 행사되는 문화공간이다. 각주2)
지역을 정권이 행사되는 문화공간으로 정의 하는 것은, 지역자체가 전략적 단위임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지역은 민족문제나 계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위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운동은 다른 범주와 연관되지만 본질적으로 독자적인 영역이다. 민족문제가 계급문제의 단순한 양적확산이 아니듯이 각주3) 지역문제 또한 민족문제나 민주화 투쟁의 하부단위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가지 논의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 몇가지 지역이론과 적용
서양에서 민주주의의 어원인 데모크라시는 고대 희랍의 Demos(지역민)+Cracy(정치)의 합성어이다. 신분을 중심으로 했던 도시의 체제가 지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은 발생한 것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 변화였다. 신분이나 성별 외국인 내국인의 구별없이 현재 도시에 살고 있는사람을 중심으로 누구나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정신은 세습되어 내려오던 신분사회의 낡은 전통을 혁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평등한 지역’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근본문제이다. 변혁이론으로서 지역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한 사람은 그람시였다. 그가 옥중에서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미완성 초고 ‘남부지역문제에 대하여’는 그가 속해있던 북부노동당이 소외된 남부지역의 정치세력과 손을 잡는대신 북부지역의 패권주의세력과 손을 잡고 혁명을 팔아먹는 것을 목격해야 했던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작성된 것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지역문제가 민주주의 변혁운동의 주요 테제임을 밝혔다. 그의 뒤를 이은 헤치터는 근대의 지역문제가 정권차원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문화적 분업체계를 통해서 패권지역이 주변지역을 지배하는 모델로 내부식민지론을 얘기했다. 그러나 여기엔 지역문제를 계급문제와의 전략적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오류가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그람시의 지역-계층동맹론이 훨씬 설득력을 가진다. 황태연 교수는 이것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용하여 영남노동자와 소외지역(호남,제주,충청,강원,경기)민중간의 연합전선으로 영남지역의 패권구조를 무너뜨리자고 호소했다. 영남노동자와 소외지역 민중간의 연합론은 97년 대선때 정권교체론의 이론적 무기로 제시되었고, 선거에서의 승리로 그 실천력이 입증된 셈이다. 97 대선에서의 김대중지지론은 민족, 민주의 개념에서는 큰 설득력을 갖기 힘들었지만 지역의 개념에서는 선명한 기치였던 것이다.
자주민주통일의 구체적 과제 였던 반외세 자주화,반독재 민주화, 연방제 통일에서 민주화의 과제는 87년 이후 반독재민주화에서 반지역패권민주화로 이행되었다. 87년 직선제의 관철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시되자 과거 독재지배의 양상은 달라졌다. 지역패권주의는 합리적 절차를 가장하여 독재잔재를 연장하는 수단으로 작용햇으며 그자체가 독재체제로 전면화되었다.97년 대선은 이러한 지역패권주의에 대항한 최초의 승리였다. 반지역패권민주화의 과제는 아직도 달성되지 않았다. 정권차원에서 저항적지역주의가 승리했다 해도 건설적지역주의가 실패했을때 새로운 지역패권이 등장하는 틈새를 허용하게 된다. 지역패권의 본질적 청산은 지역간 수평적 등권의 확립이다. 97년의 정권교체는 이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영남의 지역패권 구조를 무너뜨리고 더 이상 지역패권이 민족, 노동, 민주화, 일상성의 문제를 은폐하는 구조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97년 정권교체를 통해 지역패권을 극복할 토대가 마련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패권적 지역주의가 저절로 사라지진 않았다. 광주의 아시아 자동차는 결국 현대로 넘어가고 영남 재벌 패권은 여전히 의연하게 버티고 있다. 대구 위천공단을 통해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의 지역패권의 사슬을 끊으려 했던 시도도 실패하면서 올해 선거에서 대구시민들이 다시 지역패권주의자들의 선동에 노출되도록 했다.
반지역패권민주화의 과제가 지금 시기 대두되는 이유이다.

3) 지역본성론
97년 정권교체 이후 호남에선 호남학의 강조나, 호남사림 정신과 5.18의 연계, 백제의 재조명, 견훤 연구등이 활성화되었다. 이것은 호남에서 본격적인 문화적 정체성 찾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것은 지역주의의 저항성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전망성을 강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헤치터가 소외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이 저항적 지역주의의 동력이라고 본 것은 옳다. 그러나 문화적 정체성은 저항성의 동력만이 아니다. 그것은 전망성의 동력이기도 하다. 나는 문화적 정체성이란 말 대신 더 확장된 개념으로 지역 본성이란 말을 도입하고자 한다. 문화적 정체성은 지역의 다양한 속성중 하나이다. 문화적 정체성 이외에도 지역의 경제적 정체성, 정치적 정체성, 역사적 정체성등 다양한 속성이 존재하며 이러한 속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주요한 속성이 되기도 하고 부차적인 속성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 본성은 다양한 속성을 규정하는 본질적 속성이자 동력이다. 지역본성은 저항성과 더불어 단합과 조화의 속성도 포함한다. 따라서 지역에서의 대중 교육문화 사업들은 저항을 위한 목적에만 바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고유한 독자성을 갖는다. 지역본성을 민족성이나 계급성, 저항성등으로 단순, 환원시켜 버리는 것은 개념차원의 오류이며, 지역공동체라는 구체적 체계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것은 추상차원의 오류이다. 지역본성을 실현하는 계기로서 지역공동체는 유의미 하지만 지역공동체가 지역본성을 실현하는 유일한 계기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패권지역의 지역공동체는 완강하게 저항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안동에서는 지역바람과 함께 ‘사투리’ 경연대회가 열린다. 사투리경연대회는 안동 지역공동체를 강화하는 기획이지만 이것이 지역패권주의의 맥락과 연결될 때 지역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하는 것이 된다. 독일의 바이마르가 그랬다. 바이마르는 민주혁명을 통해 새로운 체제로 거듭 났지만 17년 만에 이곳을 기반으로 한 히틀러의 파시즘이 발호하면서 바이마르는 민주혁명의 상징이 아니라 민주주의 퇴행의 상징이 되었다. 이때 파시스트들이 이용했던 것이 바이마르지역의 ‘사투리 경연’대회와 같은 기획이다.
향토(Local)와 지역(Region)은 그 역사적 개념이 다르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화(Globalism)와 지방화(Localism)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의 신조어로 세계방화(Glocalism)란 개념을 쓰는 것은 저항적 지역주의를 배제한 패권적 세계화의 논리이다.

지역본성이란 관념적 개념이 아니다. 지역본성은 역사적으로 다져진 성질이며, 현실의 사회구조를 규정하는 새것이다. 또한 다른 지역, 민족, 계급등에 실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기능이다. 그것은 저항적 지역주의와 건설적 지역주의를 통일한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이 필요하다. 저항과 건설을 대립물의 통일로 보는 시각을 넘어 저항과 건설이 하나의 체계안에 공존하는 것이란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옳다. 체계로서의 지역은 자기 나름의 요소와 구조와 속성을 갖는다.(철학적 기초 쳬계편을 참조) 다양한 속성중 지역이란 체계를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속성 ,즉 본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체계의 역사와 구조와 기능의 세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지역이라는 체계가 발생, 발전해 온 과정이며, 구조란 지역 요소들간의 필연적 연관이고, 기능이란 지역이 다른 범주에 대해서 갖는 능력, 영향력이다.

이제 비무장지대에 대한 구상과 연관시키면서 이들 개념을 알아보도록 하자.

3. 지역체계와 비무장지대 구상
1) 지역의 역사
지역은 역사가 있는 공간이다. 숲이 마을이 되고 마을이 도시가 되어가며 발전하고 융성하는 지역이 있고, 흔적도 없이 역사 속에 사라지는 지역도 있다. 경상도는 조선시대 이래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고 유권자 9백만을 넘는다. 전라도는 계속 소외 받아왔고 유권자 3백 50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충청도는 조선시대 이래 이승만 시절까지 가장 융성 했다가 현대에 와서 전라도 보다 더 소외되고 쇠락하게 되 었다. 강원도는 궁예의 태봉국 이래 역사에서 언제나 발전과는 무관한 곳이었고 유일하게 남한에서 자연이 합일의 대상이 아닌 도전의 대상인 곳이다. 오죽 했으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것네]라는 말이 강원도의 이미지를 대표할까?
지역이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를 가지고 발생하여 발전하는 과정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역주의 즉 지역사상이다. 지역주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며 쉽게 청산되거나 극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역주의의 두축인 지역사상과 지역정서를 알지 못하고 지역의 발전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 지역을 선정하자. 충남 예산이다. 충남 예산을 대상 지역으로 선정한데는 두가지이다. 첫째, 97년 대선의 도화선이 된 보궐선거가 이뤄진 지역이란 점(이회창은 예산 보궐선거에서 자신을 미는 오장섭의원의 당선으로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다) 둘째, 대선승리로 정권교체가 이루어 졌지만 기존의 지역패권 세력이 언제든지 반격할 수 있는 가능성을 97년 예산 보궐 선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예산 보궐 선거는 보수주의의 논리가 어떻게 지역의 현실생활에서 구체화 되는가를 보여준다. 예산 보궐선거는 이회창의 고향이 예산임을 내세워 득표하려는 신한국당 후보와 오랜동안 확고부동의 터밭을 일궈온 자민련과 국민회의의 진보적 세력(예산에선 진보적이다)까지 가세한 자민련 후보와의 선거였다. 신한국당 오장섭 후보는 초대 국회의원을 지낼 때 이 지역의 오랜 중심지였던 읍내의 버스 터미널을 예산 외곽으로 이전 시키는데 이 때문에 구 예산읍의 상권과 생활권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구 지역을 중심으로 학교, 주택, 상가, 교회등이 모두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군민들을 경악케 한 것은 새로 옮긴 신터미널의 부지가 오 후보의 개인 사유지로 엄청난 부동산 이득을 포획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오후보는 아무리 지역 유지라 해도 인심을 잃은 상태였다. 반면 자민련후보는 김종필 대통령을 꿈꾸는 예산 사람들의 열망에 농민회, 주민단체등 새롭게 형성된 진보세력의 지원을 받는 국민회의가 가세하여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유불리가 뚜렸한 조건에서도 오장섭 신한국당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이회창은 자민련의 아성인 충청도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경선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 예산 사람들이 김종필을 버리고 이회창을 선택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여기에 지역주의의 견고한 생활논리가 있다. 이 이야기의 가설은 멀리 조선 건국초로 거슬러 가서야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충청도는 지금도 초등교육을 받지 못한 산골의 농사꾼이라도 한문을 쓰고 읽을 줄 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지방과 축문을 쓰고 읊을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활이 고달프고 어렵더라도 제사만은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 유교문화의 영향이다. 충청도는 특히 조선 중기 권력의 핵심이었던 노론계열의 지역적 근거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이학파로부터 비롯되는 조선의 자유주의 세력들은 인조반정이후 조선 중,후기의 지배 세력이 된다. 율곡학파를 실제로 형성하고, 동방예학의 종장으로 불리워지는 김장생의 활동무대가 충청도 연산이다. 그의 문하로 아들 김집을 비롯 송시열, 송준길, 이시백, 이유태, 신흠, 이경직등 임란이후 노론을 형성한 당쟁과 권력의 핵심 인물들이다. 이로부터 연유하는 유교주의는 왜 김종필을 버리고 이회창을 택하는가? 이 수수께끼를 풀기위해서는 더 멀리 정도전과 정몽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묘에는 정몽주가 배향되어 있고 정도전은 유학의 역사에서 족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이자 조선의 역신이었고 정도전은 조선의 개국공신 중에서도 일등 공신인데 말이다. 그뿐인가? 조선 후기 까지의 유학의 기본적인 논리틀은 정도전의 논리를 벗어난 적이 없고, 언로사상이니 과거제도니 하는 국가경영의 기본틀도 그의 저서인 경국대전과 삼봉집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상논쟁에 있어서도 불씨잡변(불교논리를 비판)을 능가하는 치열함을 보여준 학자는 조선 후기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간혹 역사는 이성계가 정도전을 이용한게 아니라 정도전이 이성계를 이용하여 조선을 개국한 것처럼 묘사하기 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도전의 숙명적 경쟁자였던 정몽주가 어떻게 문묘에 배향되었는가? 여기에는 조선 유학의 뿌리인 의리사상이 깔려 있다.각주4) 이러한 의리사상의 관점에서 김종필은 아무리 실력자라 해도 쿠데타 세력이며 권력의 정통성이란 면에서 반동적 보수란 혐의를 벗기 힘들다. 이에비해 이회창은 전주이씨이자 원칙주의자이고 서울대 엘리트그룹의 지배세력을 상징하는 점에서 정통 보수로서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 병역기피가 이회창에게 그토록 큰 짐이 된 것도 반동보수와 정통보수를 구별하려는 논리와 정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역주의는 오랜 역사를 통해 견고하게 형성 되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예산은 같은 독립운동가라도 윤봉길은 기억하지만 박헌영을 기억하진 않는다. 충청도는 유관순의 만세운동은 기억하지만 계룡산을 중심으로한 중부 빨치산 활동은 기억하지 않는다. 50년이 채 안되는 진보사상의 역사는 600년 보수사상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해방전후라는 격렬한 시대였기에 그 정도나마 진보의 씨를 뿌린 것인지도 모른다. 지역주의는 이처럼 오랜 역사속에서 발생하여 다른 사상과 투쟁하며 단단하게 유지되고 발전된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지역사상이고 지역정서이다. 이러한 지역주의는 단순히 관념이 아니다. 거대한 물적 토대를 가지고 지역의 요소요소에 자기의 물적 토대를 재생산한다. 쓰러져가는 먼지투성이의 사당, 잡초무성한 무덤, 그저 자연스럽게 흐를뿐인 듯한 시냇물 줄기와 산줄기조차도 지역주의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풍수설과 같은 전근대적 문화가 대통령 선거때마다 엉뚱한 역할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풍수는 유교의 정신과는 전혀 상반되며 거부되는 미신적 요소였지만 유교보다 더 장구한 뿌리를 가진 풍수설을 결국 유교는 넘어서지 못했다. 조선시대 궁궐과 왕릉의 위치를 택하는 과정에서 유림의 관료들이 기준으로 했던 것은 풍수였다. 때문에 이 원시적인 결정론이 유교의 의리정신 같은 당위론보다 더 선동적으로 사람들에게 파고드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회창 후보의 부친이 묻힐 예산 선영에 전국의 내노라하는 풍수가들이 결집하고 스포츠 신문 같은 황색 언론이 대통령후보들의 조상묘 자리에 대한 분석기사 따위로 간접선거운동을 했던 것은 이러한 낡은 사상체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의리사상과 풍수사상처럼 지역주의 떠받치고 있는 사상체계에 대한 해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들은 언제나 지역주의의 화신으로 부활할 것이다. 유교와 풍수설등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의 사상체계를 건설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유교와 풍수설을 밖에서 뿐 아니라 그 안으로부터도 해체하고 새로이 건설해야한다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잘 생겨서 찍는다는 유권자들에게 ‘그건 잘못된 정치의식이요’ 라고 만 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아름다움인가라는 미학사상 차원에서의 비판과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대선은 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보이지 않게 내면화된 공고한 사상들간의 거대한 충돌이다. 그러나 선거에서의 승과 패만으로 새로운 지역사상이 등장하고 사라진 것으로 볼 순 없다. 세계적 냉전이후 가장 강력한 지역사상으로 행세해 왔던 반공주의의 벽이 6.15 남북정상회담과 아시안게임에서의 남북응원등으로 서서히 허물어졌기에 노후보의 대선 승리와 민노당의 약진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에서의 승리가 곧 지역사상에서의 승리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이들 지역사상을 정치적으로 무의미해지도록 해체하고 새로운 지역등권의 사상을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만일 충청권의 표심을 잡았던 것이 수도권 이전 공약이었다면 충청권의 지역사상은 유교주의나 풍수설 같은 사상대신 실용주의를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97년 대선이후 김대중정권의 대구에 대한 지역등권전략으로 제시된 대구위천공단 개발문제가 실패로 돌아가고 그 결과가 이번 선거에서 거대한 역풍으로 작용했던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구위천공단 건설에 최초로 제동을 건 것은 낙동강 오염을 주장한 부산 시민단체들이었다. 대구위천공단 건설 같은 지역전략을 경제공약으로만 바라봐서는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주었다.
실용주의는 지역을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일 수 있는 사상이지만 또한 가장 경쟁에 약한 사상이기도하다. 누구나 실용주의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대구시민들의 김대중정권 심판의 정서에 몰입했던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충청권 공약을 경제공약으로서만이 아니라 지역등권 사상의 건설이란 측면에서 근원으로부터 접근해야 한다.

2) 지역의 구조
지역은 7가지의 요소로 구성 된다. 지역주의와 지역의 전략, 지역의 전술, 지역조직체계, 지역체계의 운영방식, 지도자와 지역주민, 지역의 기술문화적 수단이 그것이다.

가) 지역주의
지역주의 즉 지역 사상과 지역 정서는 그 지역을 움직이는 거대한 중심축이다. 영남의 ‘우리가 남이가’야 말로 모든 논리를 뛰어넘는 600년의 역사적 구호인 것이다. 근대성의 기준인 합리성과 상식의 논리가 이 구호 앞에서는 왜소하고 궁색한 것이 된다. 우리는 아직도 사상적으로 근대 이전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각주5)
각 지역별로 보면 영남은 많은 서원문화에서 보여지듯 유교이데올로기의 엘리트들을 수백년동안 배출한다. 각주6)
이에비해 호남은 권력의 외곽에 있었던 관계로 저항의식과 상대적으로 유학의 계승관계가 느슨하여 사상적으로 자유로울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호남은 진보사상이 비교적 쉽게 뿌리 내릴 수 있었다.각주7)
북한지역은 변방지역이라는 이유로 과거제도등 유교적 사회정책이 거의 실시되지 않다보니 유교적 보수주의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었고, 해방전에는 기독교 사상이 해방후에는 마르크스주의 같은 진보사상이 급속도로 받아들여 질 수 있었다. 각주8)
지역주의는 실제 역사속에서 형성, 발전된 공고한 틀이다. 현재도 지역주의는 계속 뿌리를 굳히기 위한 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 각주9)
지역주의는 세계적 차원의 사상전략과 긴밀히 연결되어 움직임으로서 그 하위체계로서 작용한다. 근대화 = 서구화라는 근대주의가 서구이데올로기인데 반해 유교는 동양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유교는 요즘 여기 저기서 학문적 유행을 타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로서 유교는 왜 그다지도 중요한가? 두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프랑스 구조주의자 라깡은 탈근대성을 얘기하며 탈근대 이데올로기로서 동양철학에 주목을 돌린다. 특히 그 이후의 사상가들에게서 유학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한국에서는 서양철학이 갈 때까지 가니까 이제 드디어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는다는 유아적 환상에 휩싸인 말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둘째, 샤뮤엘헌팅턴이란 미국의 미래학자가 쓴 문명충돌이론에 따르면 냉전해체후 세계는 서로 다른 문명간의 충돌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각주10) 이는 새로운 냉전질서로 가고자 하는 교활한 언술인데도 한국에선 냉전이데올로기의 확장 전술이란 측면보다 독자 문명권의 건설이란 측면을 과장하며 유교에 몰두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각주11)
이처럼 지역주의는 어느새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이데올로기전략사업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역주의 전략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보통 [21세기를 향한 무슨 무슨 전략계획]이란 이름을 띄고 있을 때가 많다.
나) 지역의 전략계획
97년 중반 서울시는 [2000년대 서울]이 어떻게 변화 시킬것인가에 관한 전략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계획은 통일연습 공간이 되어야 할 서울에 흡수통일적 개발논리의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각주12)
이 계획은 비무장지대의 전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행주대교부터 서부전선 까지 곧장 이어져 있는 철조망을 걷어내고 한강 하류지역을 개발하자는 논리에는 서울의 유교지역주의와 함께 우려할 만한 지역주의가 있으니 파주, 문산의 유교 지역주의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는 한강중심의 통일연습 공간으로서의 서울개발계획은 흡수통일식 개발붐으로 오히려 통일망국론을 불러올지 모를 일이다. 이런 전략 계획을 노동자와 시민등 민을 중심으로한 내용으로 바꿔내기 위해선 자본과 권력이 주도하는 개발중심의 ‘통일연습’이 아니라 민간통일운동 중심의 ‘통일연습’이 되어야 한다. 보수적 유교주의를 중심으로 한 한강개발이 아닌 단군사상과 현대 통일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 통일운동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가능성으로서 강화도와 영종도 인천시를 연결하는 삼각띠를 정점으로 하고 한탄강, 임진강, 한강하류를 포함하는 강원, 경기, 서울의 일부지역을 [평화문화교류지대]로 설정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전략적 계획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지역본성론의 전략하에 만들어질 통일연습공간은 3가지의 조건이 통일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오랜 역사속에서 공고하게 구축되고 현재에도 그 생명력이 살아있는 민족생활의 동선(動線)이어야 한다. 각주13) 이 민족생활 동선이 분단의 장벽으로 잠시 가려질 순 있지만 사라질 순 없다. 역사적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비무장 지대의 평화적 이용 가능성이다.
비무장지대는 분단으로 묻혀 있었던 자연,역사,문명의 보고이다. 각주14)
특히 한탄강-임진강-한강-강화 문화벨트는 지역본성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전략적 의미가 강한 지역이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은 어떤 개발도 불허해 왔으며 그 결과 홍수때마다 최대의 피해지역이 되고 있다. 각주15) 또한 비무장지대안의 포유류는 바이러스 공포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환경의 적은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다. 사람과 교류하지 않는 자연은 혼돈 그 자체이므로 한순간에 생태위기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환경을 망칠 수 있는 것도, 살릴 수 있는 것도 사람 손에 달려있다. 철조망을 걷어 버리거나 완화하고 사람과 자연이 호흡하는 새로운 환경 지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각주16) 이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이 지역에 대한 충분한 조사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자본주도 관주도의 폐해를 막기위해 지역민들이 지역사상을 중심으로 저항과 전망을 계획할 수 있는 저항적 주체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지대는 경제교류지대로서의 성격보다는 문화 교류지대로서의 가능성을 열 것이다.
세 번째는 21세기를 향한 세계적 지역거점으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은 통일을 원하지만 중국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반도의 전쟁과 긴장을 원하지도 않는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평화이다. 각주17)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 그들로부터 활용당할 수도 있고, 그들을 활용할 수도 있다. 활용하기 위해선 주도적으로 중국, 일본등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또한 남북이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과 연계되어야 한다. 남북이 주체로 서지 못하는 이상 중국, 일본의 활용이란 사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을 모두 가능케 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남북은 통일을 지상과제로 하지만 현재의 수준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 수준의 화해가 문제이다. 화해의 전제는 불가침선언과 평화협정이며 이는 현단계의 근본문제가 평화로 됨을 알 수 있다. 중국, 남, 북, 미, 일의 공통된 주제인 평화의 문제를 실현하고 공고히 해나갈 수 있는 실천, 준비공간으로서의 평화 지대는 이런 이유로 하여 절실하다. 그 다음은 평화지대의 내용이다. 정치적 내용은 이런 시범공간을 통해서 완전히 실현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는 전국적 단위와 내용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의 문제는 금융전쟁이라 일컬어지는 현재의 세계적 상황에서 평화롭게만 진행될 사안은 아니다. 총없는 전쟁으로 더욱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다. 문화를 내용으로 할 때도 남북이 탄탄대로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여유가 있다. 각국의 문화는 그 자체가 고도의 정치성을 갖기도 하고, 거대한 구조를 통해 저강도 전쟁의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정치나 경제로 환원되지 않는 이해와 교류의 공간이기도 하다.
긴장속의 이해, 투쟁속의 관용이 평화문화 교류지대의 모습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지역주의는 차이의 통일, 평등과 조화, 원융과 같은 개념이 되어야 한다. 이런 지역사상을 제공할 역사적 뿌리는 강화도에 가장 공고히 버텨 서 있다. 강화는 이런 의미에서 이 계획의 전략적 거점이다.

다) 지역의 전술 계획
지역전략은 그것을 실현할 전술을 가질 때 힘을 발휘한다.각주18)
여의도 광장을 뜯어 내고 공원으로 만든다는 것은 환경이란 주제로의 전환이면서 집단주의 문화를 가족주의와 개인주의 문화로 바꾸는 전술적 사업이다. 각주19)
이런 의미에서 비무장지대의 평화문화교류지대화 전략은 우선순위로서의 전술적 사업 계획을 가져야 한다.
중서부전선의 3대 강이 흐르고 모이는 지대가 전술 우선순위가 된다. 즉 한탄-임진-한강-강화벨트이다. 이 지대야 말로 지역주의 없는 지역인데, 자연, 역사, 문명의 통일성을 볼 때 자본과 안보논리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비무장지대 중에서는 가장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획일 뿐 사람이 움직이기 위해선 전술배치의 원칙이 서야한다. 투쟁이냐 참여냐하는 이분법은 현실적 의미가 없다. 현재의 전선은 ‘저항을 통한 참여’냐 ‘참여를 통한 개혁’이냐로 양분된다. 어떤식으로든 참여하고 개입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저항적 주체가 없는 참여는 관성화되고 관료화되는 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생태관광지대로 개발한다 치더라도 이지역에 묻혀 있는 지뢰제거 없이는 불가능 하다. 미군들이 묻어 놓은 지뢰부터 한국군이 묻은 지뢰까지 지뢰와 폭발물에 의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군축 프로그램도 없이 생태관광지대니 뭐니 하는 것은 결국 대자본에 대한 새로운 특혜를 주는 모양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대는 다시 외지인들 특히 지역패권주의에 기반한 대자본의 하위체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저항을 통한 참여만이 지역본성을 실현하는 전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화문화교류지대 계획은 자기의 전술적 사업계획을 갖게 된다.
이에 강화도의 단군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전민족문화축제를 제안한다. 8.15 광복절 행사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그 사상적 뿌리를 역사적으로 더 높이 상승시켜 고조선의 평화사상의 거대한 흐름속에 용해시키고자하는 이 계획은 강화도의 단군조선문화와 서울의 통일운동을 육로가 아닌 수로 즉 한강으로 연결시키는 운동을 펼치므로서 한강하류에 쳐진 철조망을 걷고, 통일연습이 민족대단합의 통일사상을 전파하는 축제가 되게할 수 있다. 남북이 이 지역에 대한 정치적 해결에 앞서 민과 관, 남과북이 이를 준비하고 모의 실천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로서 제안하는 전민족 문화제의 취지는 이렇다. 통일은 분단극복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민족본성의 실현이라는 의미도 있다. 대립물은 대립투쟁을 통해서 통일되어 가지만 이것은 사물발전의 과정이지 원인은 아니다. 사물은 자기 나름의 체계와 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대립과 연관의 과정도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을 근본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구조나 체계 자체가 아니라 그 구조로부터 내재된 속성이다. 자기의 본성과 맞을 때 사물은 단합, 조화되고 본성과 맞지 않을 때 대립,투쟁한다. 분단은 민족의 본성과 맞지 않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 일어나는 것이지 분단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분단을 원하는 민족도 있다. 분단극복과 통일을 위한 강력하고 거대한 투쟁은 민족의 본성을 확인하고 신념화 할 때 성사된다. 우리의 통일노력에서 민족의 본성을 확인하는 일이 갖는 의미는 투쟁의 원인인 본성과의 만남이라는데 있다. 전민족 문화제의 기본 취지는 첫번째,민족본성의 확인과 신념화에 기여해야한다. 우선 1단계로 민족의 시원인 단군조선의 객관적 실체를 밝히는데서부터 이일은 추진되어야 한다. 단군조선이 단순히 신화나 종교적 윤색이 아닌 객관적 실체였음을 밝히는 것은 우리가 다시 하나가되어야할 본성적 이유를 해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북의 학계에서는 단군조선의 실체가 많은 부분 접근되어 있지만 종교계에서는 이를 종교적으로 신비화 하거나 부정하는등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때문에 학계의 연구성과가 대중화 될 수 있는 기획이 이 안에는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니산의 참성단으로부터 축제를 시작하기보다는 고인돌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성단은 고려이후 역사적 위작일 가능성이 있지만 고인돌은 고조선의 생생한 유적으로 당시 사회의 규모와 생활을 밝힐수 있는 객관적 자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북이 제안한 단군제에 동조하는 것 같은 인상 때문에 보수진영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우려에 대비하여 남북만의 축제가 아닌 동북아의 국제적 축제가 되게 하는게 좋다. 여지까지 남북교류의 과정을 보더라도 남북이 직접만나는 형식은 정치적 긴장 때문에 성사되기 어려웠던 반면 국제적인 외형속에서 남북이 만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성사되었다. 따라서 확실한 성사를 위해 형식을 유연하게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동북아 건국설화 축제’같은 것도 기발하며 참신한 생각이라고 판단된다.
둘째는, 비무장지대의 평화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강화-한강의 동선을 그대로 살리는 ‘평화의 배’와 같은 기획이 중요하다. 육로를 통한 이어달리기나 인간띠잇기등의 사업은 행사를 과거지향적 축제로 전락시키게 한다. 강화도 외포리에서 중립지대인 강화북부해협을 거쳐 한강으로 올라오고 성산대교에서 강화로 내려가는 수로동선이 핵심이다. 만약 수로를 터주지 못한다고 하면 배에서는 시위를 벌이고, 땅에서는 이 지대 철조망을 모두 감싸안는 거대한 인간띠 잇기를 한다. 그래서 분단이 멀리 휴전선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지역의 목앞에 들이대어진 칼이란 사실이 알려져야 한다. 이를위해 남북의 불가침선언이나 평화협정을 실험할 수 있는 시범지역이 되도록 양국 정부에 제안하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운동을 한다.
셋째는, 미래지향적인 국제연대를 이루는데 기여해야한다. 국제연대는 앞서 얘기햇듯이 남북관계의 이완제로서도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갖는 내재적 의미때문에도 중요하다. IMF체제는 통일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통일과정에서나 통일이후에서나 남북이 공동으로 풀어야할 가장 큰 과제이다. IMF체제는 그 특성상 일국차원의 민주적 대응을 무의미하게 한다. 피해 당사국들이 공동으로 연대하여 워싱턴의 IMF관리체계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요원한 장래의 일이 아니다. 국제민간기구의 운동의 모범적 선례를 남긴 국제대인지뢰금지켐페인 (ICBL)은 민간기구와국가가 공동으로 국제협약에 비준함으로서 세계민간기구 역사상 유래가 없던 기록을 만들어 냈다.
넷째는, 유연한 이합집산의 문화제로 지역성을 살리는데 기여해야 한다. 대규모와 정규성을 띤 고정된 문화제가 아니라 지역마다 유연하게 떠 다니며 역동적으로 집중되는 살아있는 체계가 되어야한다. 각 구나 동마다 주민과 함께 통일을 연습할 수 있는 지역특성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이것을 옆동네와 연결하는 띠의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띠의 집결점은 한강이다. 강동구 암사동의 고조선과 선사문화제, 송파의 몽촌토성과 삼국문화제, 성동광진의 아차산성 백제문화제등은 서울의 이조 중심적 지역주의를 분산, 해체 시키는 역할로 작용 할 것이다. 종로와 중구에서는 6월 항쟁, 통일문화제, 용산구의 미군기지 인간띠잇기, 여의도의 노동자,농민 통일문화제등 각지역별 소전략하에 문화제를 기동성있고 다양하게 정착시키고 이것을 한강을 통해서 단군정신계승 조정경기, 윈드써핑, 보트저어가기, 연등띄우기, 희망의 종이배 띄우기등의 형태로 해서 한강줄기를 타고 거대한 흐름선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성산대교 밑에서 배들은 배들대로 물위에서,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고수부지에서, 차들은 차대로 다리위에서 일제히 한판 굿을 한다. 다리를 중심으로한 수상, 육상, 노상의 입체적인 구도의 문화제 양식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태리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는 베키오궁과 로티궁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면서도 다리위의 전시회랑으로 금세공품상가로 변화하면서 그 자체가 문화가 머무는 공간으로 정착된 사례를 보여준다. 이것은 다리가 지나 다니는 도구적 기능이 아니라 문화가 머무는 새로운 공간으로 기능 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유연하고 역동적인 문화제 계획은 각구단위, 동단위의 지역조직체계가 살아있는 조직체 일 때 가능하다. 근대적 방식의 형식적 행정구역적 조직이어선 절대 불가능하다. 각지역이 자기특성으로 존재하면서도 이웃과 연대하는 살아 있는 체계,이 계획은 그래서 지역의 살아있는 조직체계에 관한 문제로 심화된다.

라) 지역의 체계
지역의 관공서는 물론이고 각종 사조직들은 지역의 본성을 실현해 나가는데 적이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는 정교한 체계를 구성한다. 이 지역은 이 차원에서 사상과 전략과 전술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98년 보궐선거를 몇일 앞두고 정부는 추미애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무장지대와 그 접경지역 특별대책위원회’를 급히 구성했다. 물론 이것은 보수성이 강한 강원, 경기북부의 표밭을 의식한 기구였다. 이 기구가 제대로 굴러갔을리 없다. 이에비해 강화군에서는 마니산 참성단축제를 하는데 지역추진위원회를 꾸려서 성과 있게 일을 치뤄냈다.각주20) 안정된 지역조직체계가 있다는 것은 지역본성의 실체가 구체화되고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역공동체란 지역의 본성에 맞는 조직과 개인의 체계이며, 저항성과 전망성의 다양한 통일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그 기능을 발휘한다. 지역이 정치를 떠나 얘기될 수 없다는 점에선 국가와 유사하지만, 국가가 권력행사 기구로서 법적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반면, 지역공동체는 문화적 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점에서 국가 기구와 다르다.

4) 지역의 조직체계
화양리에 있는 동부문화쎈타는 노동자들의 결의와 노력만으로 만들어진 자치시민문화 공간이다. 어디나 그렇지만 이 공간을 얻을 때 가장 크게 고려된 점은 임대가격과 위치였다. 그러나 1년이 안되어서 진지한 고민거리에 부딪친다. 동부문화쎈타는 영화 3편씩 동시상영하던 극장자리로서 유흥가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건대와 세종대생들의 동선이되는 큰 길가에는 첨단유행의 옷가게들이 있고 그 다음 안쪽으로는 술집이 있고, 그 안쪽으로는 락카페등이 있고, 그 안쪽으로는 룸싸롱과 창녀촌이 있다. 이 골목은 조직폭력배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센타 바로 뒤골목이 이위치에 걸려있다. 길건너편에는 화양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있고 여기는 화양시장 상인연합회라는 조직이 있다. 이들은 조직폭력배에게 자릿세를 내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이 모인조직이다. 신촌문화 축제처럼 화양리문화제를 만들기위해 지역 유지들이 모두 모였다. 학생대표와 쎈타대표, 덩치좋은 락카페 주인들, 상인연합회장, 회의는 잘될때도 있지만 험한 얘기가 오갈때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상인연합회장은 회의할 때 방탄조끼를 입고 나왔었다. 이유는 회의하다가 언제 칼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락카페나 창녀촌의 주인들은 자신들의 상급조직이 있거나 고위공무원들과 결탁되어 있어서 함부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문화쎈타에선 대중문화강좌를 열어도 어린이들이 거의 오질 않는다. 쎈타를 올려면 옷가게에서 창녀촌까지 연결된 거리를 통과 해야하는데 어느 부모가 맘놓고 아이를 보내겠는가? 센타안에서만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역의 문화지형이 바뀌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역은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공간으로 착각되어선 안된다. 긴장과 대립이 팽팽한 전선인 것이다. 막말로 데모하다 죽으면 열사가 되지만 지역에서 회의하다가 아니면 뒷골목에서 칼맞아 죽으면 개죽음이 되어 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지역의 전선은 생각보다 팽팽하다. 반대로 실천의 방식이 설자리는 협소하다. 대화와 설득, 여론형성등이 중요하며 실천도 이런 기반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창녀촌 같은 경우는 검경정도는 폭력배와 부분적으로 공생관계를 갖기 때문에 검찰이나 안기부 청와대 선에서 결단되지 않으면 건드릴 수 없는 대상이다. 아이들이 수십명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고서야 화양리의 창녀촌은 페쇄 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근본적인 처방일 수는 없지만 지역운동에서 조직체계가 바뀌기 위해 얼마나 큰 어려움을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비무장지대예술제의 기획에는 지역체계 변화를 염두에 둔 기획안이 잡혀야한다. 강화의 예를 들어보자. 강화도의 갯벌은 세계5대 갯벌중의 하나이며 곧 유네스코에서 세계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받게 된다. 한편으로 갯벌은 고조선 시대이전부터 선사문화가 존재할 수 있었던 기반으로 강화지역에서 벌어지는 전민족문화제의 주무대가 될것이다. 갯벌로 강화도의 종교계를 끌어들이기 위한 계획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갯벌 침향제이다. 침향이란 미륵신앙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잘자란 향나무를 갯벌 한가운데 묻어두었다가 천년뒤에 물위로 떠 오르면 미륵이 도래한다는 신앙으로부터 유래된다. 침향은 특히 서해안 갯벌을 중심으로 발전한 풍습이며 침향비 또는 매향비는 일종의 비밀 문서처럼 드러나지 않게 존재한다. 마리산 남쪽에는 천년고찰 정수사가 있다. 정수사로부터 침향무등을 연주하며 의식을 갖고 갯벌로 내려와 통일염원이 새겨지거나 조각된 향나무를 묻는 의식은 불교계를 이 기획에 참여하도록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천주교를 참여시키기 위한 계획으로는 동검리 천주교성지 부활제가 있다. 동검리는 강화에서 갯벌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 된 지역이면서 천주교가 처음 상륙하여 성당을 지은 섬이다. 민족문화의 모태를 거쳐 상륙한 천주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획이다. 마니산 참성단에서는 여지껏 해왔던 것처럼 단군을 모시는 민족종교단체들이 자기 행사를 가질 것이다. 이처럼 지역의 공고한 지역세력들의 조직체계가 새로운 문화적 틀속에서 재편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결정 뿐아니라 문화적으로 그것이 표현되고 성장 발전 될 수 있는 역사적 근거와 문화적 기획틀이 제공되어야 한다.
지역내에서의 조직체계는 저항과 대립 뿐 아니라 구체적 대안과 전망을 수반하여야 한다. 지역의 생활공간은 정치적 완충력이 많은 거시영역이 아니라 작은얽힘도 오해와 감정으로 발전하는 미시영역이기 때문이다. 지역에서의 대안없는 대치는 사람관계의 교착을 불러오기 쉽고 지역갈등의 요인이 된다.
지역의 조직체계는 새로운 지역주의로의 중심이 이동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을 전제한다.
마) 지역체계의 운영방식
비무장지대 지역체계의 운영 방식은 간단하다. 군부대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이다. 비무장지대 전지역이 군인과 군인가족들의 구성비가 30%이상되는 군사지역이다. 일상적으로는 군민간의 정서적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만 국방부나 군단등의 분위기에 따라 하루 아침에 봉변을 당하는게 다반사다. 각주21) 이것은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이 패권지역의 최하위에 편제된 소외지역임에도 지역민들을 결속시킬 저항적 지역주의가 없는 탓이다. 이지역에서 민과 군의 관계가 정상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저항적 주체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며 그럴때 합리적.대안도 의미를 갖게 될것이다.

바) 지역의 지도자와 지역민
소외지역의 주민들은 억압에 저항할 능력이 없다해도 그 이상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상이 가상의 영웅을 만들어 낸다. 철원의 임꺽정이 그렇고 서해5도의 임경업이 그렇다. 각주22) 근대사에서는 화가 박수근을 만들어낸다. 양구 소양호 휴게소에 들르면 박수근의 복제화를 액자에 넣어판다. 박수근은 양구출신이다. 패권지역은 소외지역에 대해 그들 소외지역의 지도자가 저항적 지도자이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대신 승인하는 인물이 주로 예술계 인물이다. 전쟁 당시 노동당의 간부였던 인물등이 남한에 살아있어도 이들이 지역에서 추앙받는 인물이 되긴 어렵다. 패권지역은 소외지역이 정치지도자 특히 패권지역에 저항적인 지도자가 출현하는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이 처음 당선된 곳이 인제였지만 정권교체가 되고 나서야 인제군은 김대중 대통령의 첫 선거 승리처로 자신의 지역을 말할 수 있었다. 정권교체가 패권주의를 다시 부활시키지 않는 한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에서도 정치지도자의 출현은 현실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그 지역의 지도자는 지역의 이익과 본성을 온몸으로 대변하며 지역주의를 밝히는 사람이다. 저항의 과정에서 지역민과 운명을 함께 한다면 때론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발휘 할 수도 있다. 그것은 합리성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지역민들의 강한 정서와 결합될 때 가능하다. 또한 지역의 지도자는 지역을 대표하지만 전국적, 세계적 차원에서 민족적, 또는 인류적 보편 가치를 추구하고 확장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지역의 지도자는 지역이기주의의 대변자가 아니라 보편가치와 연결된 지역본성을 실현하는 대변자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 지역의 문화적 수단
지역본성 실현의 최종형태는 문화이다. 따라서 어떤 지도자, 조직체계, 전략, 전술도 그 자체로서는 아직까지 가능성일 뿐이다. 그것이 힘을 얻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지역본성을 생활양식으로 즉 문화로 체득했을 때이다. 이런 의미에서 비무장지대 문화제등은 좋은 기획이 될 수 있다. 그 중심계획은 전술적 우선순위에 따라 중서부전선지대 3대 강을 중심으로하는 계획이 유효할 것이다. 이미 역사를 갖고 추진되고 있는 기획들로부터 출발할 때 기획의 안전성과 성과가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강화도의 단군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10월 전민족문화 축제와 같은 기획은 비무장지대 문화제의 중심을 이룰 것이다. 8.15 광복절 행사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그 사상적 뿌리를 역사적으로 더 높이 상승시켜 고조선의 평화사상의 거대한 흐름속에 용해시킬 수 있는 이 계획은 강화도의 단군조선 문화와 서울의 통일운동을 육로가 아닌 수로, 즉 한강으로 연결시키는 운동을 펼치므로서 한강하류에 쳐진 철조망을 걷고, 통일연습이 민족대단합 정신을 전파하는 축제가 되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획이 지역민들을 주체로 세울수 있기 위해서는 지역본성의 총체적 실현이란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4) 지역의 기능
지역은 다른 범주에 대해 서로 영향력을 미치며 상호작용한다. 민족개념은 계급과 달리 대립적 체계가 아니라 통합적 체계이다. 민족은 외부체계와의 문제에서 대립관계가 생긴다. 이런 이유로 민족내의 계급은 기본적으로 대립적 관계에 있지만 계급전체가 아닌 계층의 문제로 나타난다. 즉 자본가와 노동자 전체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반민족적인 자본가 계층인 매국적인 독점자본가와 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대립하게 된다. 민족내의 지역은 반민족적인 지역과 다른 지역간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반민족성을 나타내는 지역은 패권지역이되며 나머지 지역은 그로부터 소외된 지역이 된다. 지역자체가 침략적 외국세력 자체와 대립적 관계에 놓이지만 민족내부에서는 패권지역과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민족과 지역과의 관계에서 계급은 매국적인 자본과 패권적인 지역간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자본가 계층과 패권지역이 일치한다. 경상도 재벌자본이다. 노동자들의 재벌해체 주장은 지역과 민족의 통일속에서 봤을 때 경상도 재벌해체를 중심내용으로 가져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적 관점은 다른 범주와 통일되어 구체적 전술목표를 형성하는데 유의미 한 기능을 갖는다. 끝으로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구상에서는 기존의 행정구역과 자생적인 지역운동에 의한 수세적 입장이 아니라 전략적 입장에서 지역운동을 재배치하는 계기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역할이 있다.

4. 맺는 말
사진작가가 주제 넘게 이런 글을 쓴다는 말을 듣고, 그말도 일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무장지대를 찍기 위해,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가다가 너무 분에 맞지 않는 일을 한 것 같아 부담스럽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말을 붙인다. 지역본성론은 이론으로 많은 한계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방법론은 체계적 방법론이다. 체계는 구조를 갖고 구조는 그에 따르는 속성을 갖는데 나는 거기에 각 속성을 규정하는 본질적 속성, 즉 본성이란 개념 하나를 확장시켰다. 이 또한 가설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비무장지대와 그 접경지역이 이 가설을 풀어가는 핵심지역도 아니다. 앞서 밝힌 정도만큼의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현재 활동중이고 진행되는 지역운동이 우선이다. 또 한가지는 지역과 분단 세계라는 3가지 차원을 통일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통일적으로 본다는 것이 그만 범벅이 되어선 안될것이며 각각의 차이와 연관을 꼼꼼히 봐야 할 것이다. 많은 비판과 실천으로 질타 있길 바란다.

각주1) 국민회의의 정권교체론은 지역운동론 이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제공한 것은 황태연 교수이고 강준만 교수등의 촌철살인 또한 지역운동론이다.

각주2) 다른 개념과 비교해 보자. 국가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권력기관, 기구의 개념인점에서 지역과 차이가 있다. 민족은 혈연적 관계를 중요시 하는데 비해 지역은 거주지의 관계가 중요하다. 다른 민족이라도 거주지가 동일하면 지역개념에 포함된다.

각주3) 현대그룹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정주영이 방북하자 노동자들은 정주영과 함께 북한도 비난했다. 돈 없어 구조조정 한다면서 금강산에 투자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금강산을 통해 남북간에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 점은 지지 했어야 했다.

각주4) 의리사상은 정몽주와 길재에 의해 정립되었다. 정몽주의 의리사상은 자아인격의 확립으로서의 충실忠實, 인간관계에 대한 의리로서 충신忠信, 국가사회에 대한 의리로서 충성忠誠, 도덕 법칙에 대한 지절로서 충정忠貞이라는 네 단계로 발전 했고, 그 마지막 단계는 충절의 완성이자 인류에 대한 헌신의 실현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의리정신이란 단순히 왕조에 대한 충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작게는 고려왕실에 대한 충절을, 크게는 현실대응과 유학계승까지 관통하는 실천의지를 포괄하는 것이다. 성리학에 있어서 참된 학문은 문장으로 표현 되기 보다는 인격으로 우러나고, 독실한 실천을 통해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역사적으로 계승된다는 것이 공통된 신념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뛰어난 이론가요, 정치가인 정도전은 오히려 의리를 배반한 쿠데타세력으로, 정몽주는 성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것이다. 이것이 유교의 의리 정신이다.

각주5) 노조활동을 하다보면 지역에 따라서 노조활동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울산의 노조운동이 강성 할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봉건적 지역토대가 미약하고 대신 임노동관계, 자본주의적 관계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신흥도시이기 때문이다. 경제외적 강제가 상대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비해 마산, 창원, 대구, 대전은 투쟁의 격렬성이 울산 못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지역의 역사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 경찰등이 지역적 연고로 묶여있다. 그래서 파업이 한창일 때 아버지 친구인 경찰서장이 노조위원장을 찾아와서 ‘우리가 남이가’를 얘기한다. 노동자들은 자본의 불합리와 맞선 싸움을 고민 할 뿐아니라, 문중의 시향때마다 만나는 경찰서장이나 안기부 친척과 가족과 문중의 대소사를 얘기해야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런 지역적 연고가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앞 공장에서 파업을 하면 뒷공장 동생과 동생 친구들이 싸움 지원을 오고 그러다가 뒷공장도 파업에 돌입하는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인 노조의 이념은 아무리 거세게 몰아칠 때 조차도 심해의 바닷물을 움직이지 못하며 오히려 이 심해의 바닷물에 의해 포섭되기 조차 한다. 따라서 이런 지역주의와 지역정서를 노동운동은 고민하게 된다.

각주6) 이황이 성리학의 전면에 등장하기 이전에 김숙자, 김종직, 조광조등의 쟁쟁한 사림파에 의해 성리학의 근거지가 마련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귀향하여 후진을 양성하는데 여기에는 대토지 소유주들이라는 경제적 토대가 있었다. 이것이 호남사림과 영남사림의 근본적 물적 토대의 차이이며 조선조 이래로 현재 까지 이런 현상은 변화되지 않았다. 근대혁명을 경험해 보지 못한상태에서 600년전의 사회정치구조가 그대로 온존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진주에서는 대규모 민란이 있었고 신돌석 장군에 의해 최초의 농민 군대가 형성될 정도로 항쟁의 역사가 두터움에도 불구하고 진보주의의 씨를 만들지 못한 것은 지역주의가 워낙 강고한 때문이다.

각주7) 우리나라의 3대 민족종교가 전라도에서 나온 것은 이런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모악산의 증산교, 고부의 동학교, 벌교의 대종교, 모두 전라도가 출생지이다. 최시형은 경주출신이지만 전라도에 와서야 동학을 펼 수 있었다.

각주8) 평안도 지방은 해방전 후 친미엘리트를 가장 많이 길러낸 지역이다. 안창호, 조만식, 함석헌, 서경석 목사의 조부까지 미군정기 친미엘리트 인맥은 거의 다 평안도 출신이었다.

각주9) 이런 시도가 근래 가장 치열했던 97년도 월간 조선의 부록중에는 서울의 궁궐을 소개하는 총천연색 부록이 있었다. 서울 궁궐이란 이조의 이데올로기가 숨쉬는 실체이며, TV드라마에서는 97년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용의 눈물]이 절찬리에 방영되었다. 이 또한 이조의 역사이다. 또한 서울시의 2000년대 개발계획에는 서울 정도 600년이란 개념을 전략기조로 깔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역사 자체를 놓고 본다면 이미 2000년 전에 백제의 한성시대가 있었다. 백제 고분군에서 보듯이 백제는 한반도 뿐아니라 중국, 일본까지 그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문화 강국이었다. 이에 비해 이조는 경복궁의 해태상에서 상징되듯 건국초부터 이조말까지 중국 사대주의에 몸살을 알아야만 했던 왕조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97년 신한국당 경선에 나선 이씨 성의 후보들이 모두 [전주이씨]였다. 모 후보는 자신의 소개 맨 앞에 성종대왕 몇대손이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였다. 전주이씨 족보에는 이승만이 대통령이 아니라 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은 새로운 지역주의로서 이조의 유교 이념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주10) 그 핵심국가는 중국과 미국이다. 그러면서 기독교 문명권인 유럽과 미국은 단결하고 다른 문명권 예를들면 동아시아의 유교 문명권을 경계하라고 얘기한다. 이는 냉전이란 말을 문명이란 말로 바꿔치기 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계속 말하길 이제 근대화=서구화가 아니며 각 문명마다 근대의 형식이 다르다고 치켜세운다.

각주11) 김용옥은 유교를 통해 주체사상을 재해석하며 유교의 포괄범위를 논리적으로 확장하고 있고, 고대 홍일식 총장 같은 이는 문화민족주의를 얘기하며 그 핵심으로서의 유교문화를 실천적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KBS는 몇해 전 만화 영화 [공자]을 방영했다. 미국이 푸코의 구조주의를 만화로 소개했던 방식으로…

각주12) 이것에 기본안을 제공한 사람은 건축가 김석철씨이다. 그 핵심은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단 때문에 성산대교 이하 서해까지 철조망이 쳐져서 정치적 호수가 되어 버린 한강을 개발하여 통일을 이루고 21세기 동북아의 중심도시가 되게 하자는 구상이 기조를 이룬다. 한강을 둘러싼 생활권은 이 계획 발표전부터 부동산 시세가 뛰고 있다. 대표적으로 자유로를 끼고 있는 파주, 문산 지역은 땅투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주13) 한탄강 지역은 최초의 민중국가였던 태봉국의 실패한 이상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금도 지역 어른들에겐 엊그제 있었던 일 같은 역사로 살아있다. 그 증거가 철원에서 매년 치뤄지는 태봉제라는 문화제이다. 한탄강이 합류하는 임진강 하류지역은 조선 최대의 상업교역지로 중국과 통하는 관문이었고 이런 지역적 부를 토대로 율곡학파를 형성한 지역이다. 서울이 영정조의 탕평시대에 의해 만들어진 패권지역이었다면 조선시대 노론세력의 패권지역인 기호지방의 핵이 바로 파주지역이다. 똑같은 개발붐이 철원의 그것과 달리 극성스럽게 일어나는데는 그동안 분단 때문에 소외 되었던 파주 유림의 지역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임진강은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에서 한강과 합수하여 역사상 최대의 상업지, 전략 요충지가 된다. 강화는 예성강까지 받아들인다. 이 지역은 한반도 문명의 심장부인 것이다. 분단의 철책선만 제거되면 다시금 최대의 민족생활동선이 될 가능성이 살아 있는 것이다.

각주14) 한탄강 상류는 철원을 끼고 금강산 철도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임진강은 판문점을 끼고 있고, 한강하류는 서울,인천, 경기 세 지역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다. 강화도는 영종도등과 함께 동북아 국제도시의 정신사적 기준이 될 것이다. 또한 세계 5대 갯벌 생태계중의 하나인 서해환경의 중심으로서 세계적 의미가 부각될 것이다.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는 현 정전협정상 남도 북도 아닌 쟁점지역으로 남북기본합의서 발효가 가장 시급한 지역이다. 동부전선의 고성은 금강산호의 왕래를 바탕으로 건봉사,유점사등 애국적 실천불교의 전통이 되살아 날 것이다. 양구는 금강산 가는길의 육로와 더불어 형석광산과 우라늄광산과 조선백자 도요지로서의 산업적 개발 가능성과 대암산 용늪, 두타연등 세계적 희귀 생태계가 살아 있다.

각주15) 임진강의 경우는 강물의 수위변동이나 관측을 전혀 할 수 없어서 언제든지 수해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군사적 이유로 접근이 금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주16) 우루과이 라운드이후 21세기는 종자전쟁의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생물종다양성의 보호는 종자식민지를 막는 길이다. 현재우리나라의 토종 종자를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은 미국과 일본의 연구소들이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우리의 종자를 수입해쓰고 있다. 일본의 나까소네 전수상이나 마이클잭슨등이 비무장지대에 적극적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런 경제적 이해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비무장지대의 종자는 서방세계에 노출되지 않은 우리의 마지막 종자이기 때문이다.

각주17)중국은 이미 1992년부터 인민일보를 통해 중화민족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이것이 홍콩반환의 이념적 바탕이기도 했다. 화교중심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통일시키는 틀로서 민족주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미국의 IMF침탈을 방어한 중국은 오히려 동아시아 전체, 최후의 목표로는 일본을 향해 자신감있게 나아가고 있다. 그 중간의 지정학적 위치에 한반도가 있다.

각주18)
뉴욕시 롱아일랜드의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은 이상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도로 중간에 놓인 육교의 높이가 다른 도시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육교높이가 평균2.7미터에 불과 하기 때문에 이 지역 도로에서는 과도하게 화물을 적재한 대형트럭이나 버스는 운행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특이한 도로구조가 실은 한 건축가의 뿌리깊은 인종적 편견의 산물이란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20년대 뉴욕시의 공공건축을 거의 주도하다시피한 건축가 Robet Moses는 흑인 및 소수인종에 대한 깊은 편견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Moses는 새로 만들어지는 롱아일랜드 해변의 휴양지가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만을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지역에 대한 흑인과 소수인종, 빈민층의 접근을 차단하고자 마음먹었다. 그가 생각해낸 방법은 버스등의 대형 대중교통수단이 이 도로를 이용할 수 없게 만들어서 자가용이 없는(당시는 자가용의 보급이 일반화 되지않았다.)빈곤층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었다.이를 위해 Moses는 도로 전체에 걸쳐 200여개의 육교를 건설했고 구조적 차단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뉴욕 도시철도가 이 지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막았다.건축과 도시계획은 이런 정치적 의도와 가치관이 기술에 반영되는 가장 보편적인 경우이다. 예를 들어 군중폭동과 시가전을 방지할 목적으로 고안된 파리의 ‘방사상 대로’는 1789년 대혁명 이후 여러차례 반복된 시민봉기에서 좁은 파리의 가로와 골목은 바리케이트를 쳐서 봉쇄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에 효과적인 시가전의 무대가 되었다.1848년 혁명이후 집권한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의 조카인 3세)은 시가전의 재발을 방지하고, 만일의 경우 신속하게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리중심가의 대대적인 재개발을 명령했다. 이에따라 좁은 구가로들이 철거되고 군대이동과 군중진압이 용이한 폭넓은 방사상 대로가 만들어져 파리의 중심부는 오늘과 같은 모습을 띄게 된 것이다. 1976년 서울대가 동숭동에서 관악산 밑으로 이전을 했을 때 이전 장소와 건물 배치구조를 놓고 유사한 비판이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예를들어 도로나 철도를 건설할 때 지형적 요인이나 건설 비용등의 문제외에도 노선이 통과하는 주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특정기술을 선택하므로서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을 상쇄할 정도의 정치적, 사회적 부작용이 없는지 그럴 경우 다른 대체 기술의 선택이 가능한지 하는 것도 검토 해 봐야한다. 또 특정 기술의 채택이 불가피하다 해도 기술의 구성이나 배치방법등을 바꿈으로서 기술의 채택으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 할 방법은 없는지도 찾아봐야 할것이다.이는 결국 가치의 우선순위 문제이다.(1997.4 중등 우리교육 126쪽)

각주19) 서울시는 이를 위해 1단계로 97년 말에 여의도 샛강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한후 언론에 흘려서 시민들의 반응을 읽어보고 곧장 여의도 광장 뜯기 공사에 들어갔다. 샛강의 생태공원은 전술적 사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략적 사업은 전술적 사업의 홍보와 모의 실천적 성격과 연계되어 긴밀하게 추진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한 단체는 없었다. 98년 정권교체 되고나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서울시를 문책하기 까지….

각주20) 여기에는 요식업협회, 숙박업협회, 군부대, 관심있는 개인까지 광범위하게 구성하고 행사대행사의 선택에서도 군수등의 인맥으로 하지 않고 전체추진위원들이 모여서 참여희망업체들의 설명회를 듣고 그 자리에서 투표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여관주인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식당주인들은 강화도 특산음식을 제공하기로 하는등 자발적 참여로 예산을 절감 했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진행된 지역사상에 대한 확신과 적절한 지역전략,전술의 설정과 민주적인 조직운영의 결과 였다. 이 모든 물밑작업이 강화시민연대와 지역유지 군청을 망라한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체계로 나타난 것이다.

각주21) 철원의 민통선 안에 있는 대마리라는 동네는 민통선 검문소에 통행증을 맡기고 출입을 해야한다. 매일보는 초소병과 마을어른들의 관계는 부자지간 처럼 허물이 없다. 그런데 한번은 상부방침이 강하게 내려왔는지 마을사람과 초소병 사이에 평소에 항상 있는 가벼운 실강이가 벌어졌는데 이것이 군법무부에 보고되어 군사재판까지 받게되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때론 총을 발사하여 주민이 죽을때도 있다. 한편 이와는 정반대로 군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일을 나서지 않으므로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철원 근남면 마현리는 사라호 태풍의 피해를 받은 울진사람들이 60년 집단 이주한 마을이다. 전장터 였던 이곳에 군과 정부가 ‘이제 여러분들의 땅이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이들은 지뢰밭을 개간하여 현재의 논밭을 일구었다. 그러나 1980년경부터 땅주인들이란 사람들이 나타나서 땅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토지분쟁에 휘말렸다. 83년엔 결국 ‘수복지역내 소유자 미복구토지의 복구등록과 보존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란 것이 발효되면서 이주민들은 땅을 하루아침에 다 뺏기게 되었다. 군과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을 간단히 면피해 버리는 일도 비무장지대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각주22) 고석정으로 유명한 임꺽정의 전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철저한 사실주의적 고증으로 유명한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어디에도 임꺽정이 철원에서 활동했다는 얘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원사람들은 궁예왕이 이어 임꺽정을 가상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미륵을 기다리는 지역의 염원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임경업이 서해를 지키는 장군신이 된것과도 일치한다. 임경업이 서해안의 거의 모든 굿당에서 장군신으로 모셔지는 이유는 그의 역사적 평가와는 달리 임경업이 청나라를 정탐하러가는 도중 먹을것이 떨어지자 연평도 바닷가에 은가시나무를 꽂아 조기를 잡게하므로서 조기를 서해안의 식량원이 되게 했다는 황금조기 신앙과 연결되면서이다.

문학예술청년공동체 기관지 사과꽃 게재글